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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

last modified: 2015-04-04 11:46:46 Contributors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국민의 의무
제 21 조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 22 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별 검열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 중국문화대혁명 북한의 도서정리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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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버릇를 고친다는 목적으로 만화들을 태우는 장면. 1970년대의 장발단속 현장.
강제로 시민들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장면.

Contents

1. 개요
1.1. 구체적 사례
2. 한국의 검열제도
3. 문화 탄압규제 관련 사건 일지
4. 게임에 대한 규제와 탄압
5.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규제와 탄압
6. 음악에 대한 규제와 탄압
7. 관련 항목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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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미니스커트 단속 현장.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정권긴급조치 시대가 등장하면서 대중음악은 몰락했다. 모든 음반에 대한 검열이 미풍양속 보존, 퇴폐문화 추방의 명목으로 강화되었으며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은 말살되었다. 또한 긴 독재시절의 폐해인 검열제도로 인해 만화, 애니메이션 등은 사회악 취급을 받으며 각종 규제를 받아 퇴보했다. 그리고 퇴보한 한국 만화의 자리는 그대로 외국산 및 (90년대까지)그 외국산을 표절(부분표절 포함), 해적발매한 작품으로 대체되어서 한국 애니메이션이 저연령층 중심으로, 한국 만화웹툰 중심으로 재기를 시작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대로 이어졌었다. 또한 10월 유신독재 시절에는 일반시민의 의복문화나 두발도 검열하고 규제하였다. 음악의 경우 가사에 대한 극심한 검열이 행해졌고 모든 음반에 강제로 건전가요를 삽입하게 하였고, 금지곡을 국가에서 멋대로 정하는 등의 강력한 통제가 시행되었다.[3] 당시 독재정권의 행태로 오랜기간동안 깊은 늪에 빠졌던 산업이 상당하다.[4] 다행히도 현재에는 이런 문제점들은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자유로워졌지만, 아직도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몇몇 국가행정조직들이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시행하려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문화에 대한 탄압과 시민에 대한 규제는 주로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지는 공산주의 국가와 파시스트 국가에서 시행되며, 경찰국가극우 에서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국외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중국문화대혁명북한도서정리사업[5] 괴벨스의 문화검열과 통제 등이 있다. 문화권으로 비교하자면 서유럽권과 북유럽권이 규제가 적다. 종교적으로 보면 이슬람권이 식문화나 여성의 의복에 대하여 심하게 통제를 한다. 종교적인 색체가 강할수록 문화에 대하여 통제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나키즘적인 성향이 강한 정부일수록 문화에 대한 통제를 극도로 거부한다. 경제적, 발전적인 면으로 비교하자면 선진국일수록 자율적이며 규제가 적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에 대한 규제와 탄압이 선진국에 걸맞지 않는 불합리한 처사이며, 그로 인해 이후 한국의 각종 문화 산업이 해외에 비해 뒤떨어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이런 성향이 계속될 경우, 탄압받던 문화산업은 고사하여 결국 외국의 문화나 컨텐츠를 표절한 것들로 대체될 것이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이는 컨텐츠를 향유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야 할 문제이다. 단적인 예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문화컨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전세계에 어디에나 있으며, 이미 세계적인 주류시장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고 인력이 넘치기 때문에 반드시 만화가, 소설가, 애니메이터, 시나리오 작가 같은 창조적인 크리에이터들을 제대로 활용을 할 수 있는 산업기반을 국가정책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문화산업은 한계점이 없으며 매우 유망한 산업이기까지 하다.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자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픽사, 스튜디오 지브리 등에서 제작하는 작품들이 수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 더 가까운 예를 들자면 한국의 리니지, 아이온 같은 온라인 게임도 전세계로 수출하여 역시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10월 유신 당시 높으신 분들의 주된 목적은 "유해한 매체로부터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아이들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온갖 정치적인 탄압과 부조리로부터 눈과 귀를 막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역량과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아이들, 그리고 청년들이 누렸던 모든 대중문화의 탄압의 대상은 만화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아동문화와 락음악을 들으며, 정의를 외치고 정치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의 탄압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기호품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심리', 즉 그들만의 문화 전체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서 기호품과 즐기는 문화를 빼앗을 수는 없었으며, 이런 당연한 '즐기는 문화'는 현재까지 잘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높으신 분들만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그들만의 문화 규제(를 빙자한 탄압)을 몰아붙였으며, 그렇게 한국의 애니메이션 및 만화산업은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이 그전의 한국 만화 산업을 대신해서 오랫동안 장악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의 높으신 분들이, 어른들에게 "담배는 청소년 및 어른들의 건강에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담배를 만들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아예 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외국산 담배가 불법으로 왕창 들어오게 될 것이다. 진짜로 높으신 분들이, 단지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으로, 담배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한다면, 담뱃잎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것이고, 결국 자국의 농업 및 산업을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담뱃잎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당장이라도 국회로 쳐들어 가서 "우리나라에서도 담배를 만들어라! 담배 제조 금지정책을 철폐하라! 흡연자들의 권리와,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이런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철폐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즉, 이런 황당한 상황이 한국이 지향하던 문화 규제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1.1. 구체적 사례

이러한 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가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1970년대까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1975년의 가요대학살 이후로 한때 박살나 버렸다. 레코드사는 허가가 없으면 설립이 불가능 했으며,[6] 모든 음반은 검열을 받은 뒤 발매할 수 있었고, 금지곡으로 판정받으면 방송에 나갈수도, 음반을 발매할 수도 없었다.[7]

한국은 가까운 일본에 비해 흑인음악이 강한 나라였고, 저항적인 포크의 전통이 잘 보존된 나라였는데,[8] 문화규제로 인해 완전히 씨가 말랐다. 이후 대중음악 시장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문화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건전가요나 뽕짝이 주도하게 된다. 재미있는건 뽕짝은 국가에서 워낙에 싸구려 음악 취급을 해서 크게 규제를 안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의 여파로 인해 한국은 오랫동안 주변 나라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뒤쳐진 모습을 보였으며, 200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른 나라들과 동시대의 음악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경우도 1960년대 내내 해외 영화제에 지속적으로 출품을 할 수준이었지만, 1970년대 엄청난 가위질과 영화법을 통한 규제로 인해 소위 말하는 '고무신 영화'내지는 '신파'로 불리며 상대적으로 품질이 나은 '외화'에 비해 '방화'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이는 1990년대에 국가의 지원에 힘입은 한국영화 붐이 올때까지 계속되었다.

2. 한국의 검열제도

한국에서는 26년간의 군사독재의 영향으로 각종 문화 매체에 대한 검열이 많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1987년 9차 헌법개정으로 인하여 검열이 금지되어도 노태우 정권 때까지는 살아남아 있었는데, 문민정부 체제로 바뀐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헌법재판소의 철퇴를 받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 음반 : 1996년까지만 해도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이 심의가 검열로 규정되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94헌가6)을 받고, 음반 자체의 심의는 사후심의로 넘어가게 되었다. 외국음반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 추천제라는 괴상한 제도가 있었는데, 역시 이것도 2006년 검열로 규정, 위헌 판결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의 발효로 인해, 모든 음반을 등급으로 분류하는 제도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하면, 이제 인터넷 음원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앨범에 있는 곡들 중 한곡이라도 19세미만 청취불가로 판정이 되면, 앨범의 모든 곡이 접근이 어려워진다(...). 무슨 곡이 있나하고 앨범을 클릭했는데 갑자기 19세 로고가 뜨면서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앨범 쟈켓도 전부 19금 로고도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최근까지도 여성가족부의 태클에 의해 어이없는 이유로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는 곡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영화 : 1996년까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역시 검열로 규정되어 위헌판결(93헌가13, 91헌바10)을 받은 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 등급분류도 사전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고, 특히 상영 자체를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제한상영가 조항은 결정방식에 대해 2008년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자체가 헌법불합치라는 건 아니다.)

※ 비디오 : 등급분류를 보류할 수 있었는데 2008년 이것도 검열로 규정, 위헌 판결을 받았다.

※ TV광고 : 방송협회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는데 2008년에 검열로 규정되어 위헌 판결을 받았다.

※ 인터넷 :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가 존재했으나 2012년에 위헌 판결을 받았다.

※ 게임 : 2012년 1월 13일 심의를 받기 위해 상정된 '디아블로 3'에 대해 게임물등급위원회측에서 특정 컨텐츠를 '임의로' 삭제하고 심의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기어코 게임을 검열하겠다며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는 게임을 마약과 같은 위치에 놓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 : 2010년부터 케이블 더빙 애니메이션도 규제에 들어가서 19세여도 칼, 담배는 모자이크되며 채널 중 투니버스는 아예 아동 채널을 선언해버린 탓에 15세인데도 성적, 폭력적 장면이 모조리 잘려나갔다. 근데 같이 하고있는 나루토는 의외로 멀쩡했다?

4. 게임에 대한 규제와 탄압


게임을 악으로 보는 인식을 바꾸자

6. 음악에 대한 규제와 탄압

  • 항목참조 : 검열
  • 청소년보호법
  • 긴급조치
  • 장발미니스커트히피문화 단속. 경범죄처벌법
  • 방송윤리위원회 및 공중파 방송 -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방송 전파를 타지 않으면 홍보가 되지 않았던 당시 한국의 문화산업 구조상 이들이 2중 3중으로 검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애초부터 국가에서 모든것을 틀어쥐고 있었던 반면,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음반 사전검열 및 규제가 있었지만, 음반을 발매했다 해도 그 이후에 방송국이 2중 검열기제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을 타지 못하면 사실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문자 그대로 문화권력으로 작용한 것. 당시 하드록/헤비메탈 밴드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당시의 밴드들의 증언으로 잘 나타나 있다. #
  • 역관광: 악마주의 음반 사건(1997)
그야말로 한국 문화계 흑역사중의 흑역사이자, 병크중의 병크, 동시에 독재시대 검열만능주의의 종말을 가져온 바로 그 사건. 1997년 하반기에 모 시민단체가 헤비메탈 음반을 주로 수입하던 음반사를 "반사회적 불온매체 유포"라는 주장으로 고발, 이후에 음반사 관계가자 구속되는 상황이 야기되었으나, 대중 문화계의 매우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고, 당시 100분 토론까지 가서 "그런 음반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검열위원의 말에 "그럼 안 들어 보고 검열을 어떻게 하느냐?"는 반대측 패널의 반격으로 인한 데꿀멍과 충공깽을 연출하던 바로 그 사건.

이 일로 제대로 역관광을 탔기 때문에 음반 사전 검열제는 사후 심의제로 변경되었고, 홍대 클럽에서의 라이브 공연은 사실상 양성화 및 합법화로 전환되는 기적[9]이 일어났다.

이당시 그 타겟이 된 익스트림계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들은 "정당방위"라는 음반을 냄으로서 그들 나름의 항의를 하였던 셈이 되었고, 크래쉬를 필두로 한 한국 스래쉬 메탈 밴드들의 재조명과 함께 서태지의 시대유감 해금, 그리고 익스트림의 포르노그라피티 앨범이 정식으로 발매되는 상황역전극이 벌어지긴 했다.[10]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7.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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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까지도 다양한 규제가 버젓이 시행되고 있을 뿐더러 이 항목은 현재진행형으로 업데이트되고있다!
  • [2]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침해당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일 것이다.
  • [3] 1975년의 대마초 파동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유주의민주주의가 음악과 문화의 형태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계획적 조치였다. 자세한 내용은 대마초 항목을 참조할 것.
  • [4] 당시에 검열의 주요 대상이었던 젊은이들이 검열제를 시행하는 높으신 분들이 되어 있으므로 모순적인 처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맨 위의 국민학생들이 열심히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라. 그들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아동기에 만화 등의 매체를 나쁜 것이라고 배운 세대이다. 많은 정보를 접한 후에 생각이 바뀌는 이들도 일부 있었을 테지만, 대다수가 유청년기의 가치관을 그대로 갖고 성장해 사회 주류계층이 되어 있다. 아니, 정보를 접하더라도 이미 확립된 성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당장 공산주의라는 말의 어감을 생각해 보라. 학교에서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현재의 청장년 다수는 자본론을 골백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도, 당장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문화의 탄압이 벌어지는 사건은 단순히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과거 검열제의 필연적인 악성 잔재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
  • [5] 주체사상 항목 참고. 대한민국이 보기에 북한은 극좌세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북한은 이미 좌파의 상징인 레닌, 마르크스주의를 헌법에서 폐기하고 오직 김씨왕조만을 지도자로 숭배하는 주체사상으로 바꾸었으며, 사회주의적인 변혁을 거부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수구보수세력이다.
  • [6] 이것은 현재 한국에 소규모 인디 레이블이 우후죽순 생겨나서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이 생겨나는 것과 정 반대의 상황이다. 아니, 영미권에서의 인디 붐이 1970년대 중후반인걸 생각해보면 정말 시의 적절한 시기에 탄압을 때리는 바람에 제대로 망했어요(...).
  • [7] 이는 해외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서양에서 막 피어나고 있던 펑크 록은 전혀 수입이 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이러한 음반을 유통하다 걸리면 미풍양속 저해 행위로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동시대의 소련이 이러한 음반을 거래하는 정도는 자유롭게 놔 둔것에 비하면 오히려 북한에 가까운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 [8] 반대로 일본은 락 음악에 강했다. 이는 1950년대 이후 로큰롤/로커빌리 문화가 일본에 그대로 유입된 반면, 한국은 경제력 차이로 인해 문화가 몇년 늦게 유입되곤 했고, 1960년대에는 소울 음악이 강세였기 때문이다.
  • [9] 당시 공연관리법에 의거하면 일반음식점으로 지정된 까페의 경우는 밴드 공연을 원칙적으로 할수 없었는데, 음반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이 단속하는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 이 문제도 불거져서 반대로 그간 공연관리법에 묶여 있던 규정들이 양성화되는 상황으로 돌변, 규제측 입장에서는 가히 대참사.
  • [10] 그러나 3집 앨범의 Peace Maker Die는 계속 금지곡이 되어 수입반으로만 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