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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last modified: 2015-12-03 20:04:54 Contributors

한반도의 화폐 변천사
조선 문 조선 양 대한제국 원 조선 엔 북한 원
대한민국 원
(1기)
대한민국 환 대한민국 원
(2기)

동북아시아의 통화
몽골 투그릭 만주 위안 일본 엔 (본제국 엔)
대한민국 원 (대한민국 환) 북한 원
중화인민공화국 위안 홍콩 달러 마카오 파타카 신 대만 달러

Contents

1. 소개
1.1. 단위 입력하기
2. 해방 이후 ~ 한국은행 수립 전
3. 1기 시리즈
4. 2기 시리즈
4.1. 1차 (영제권)
4.2. 2차
4.3. 3차
4.4. 4차 (구권)
4.5. 5차 (현행권)
4.6. 동전(주화)
4.7. 수표
5.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
6. 이야깃거리

1. 소개


대한민국통화ISO 4217 코드는 KRW, 기호는 ₩이다. 보조단위로 "전(Jeon)"이 있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망했어요 1970년대부터는 일상 생활에선 전혀 쓰이지 않고 환율 계산에서나 쓰인다. 심지어는 1원, 5원짜리 동전은 주화세트용으로만 제작되며, 실생활에서는 10원, 50원도 잘 쓰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1.6%(2014년 7월 추정치)

1.1. 단위 입력하기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2. 해방 이후 ~ 한국은행 수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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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일본에서 계획한 조선은행권은 도안이 바뀌면서 한국은행권이 나오기 전까지 통용했었다. 일본 도안에 새겨져 있었던 일명 '수노인'은 독립문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인쇄를 일본 인쇄국이 아닌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를 맡았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저퀄이다. 책만드는 곳에서 만드니 그렇지

3. 1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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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천원 (일본인쇄)[1]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들어낸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1,800원/USD. 하지만 2주만에 희대의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공식적 첫 은행권 출범은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이승만 1,000원권과 광화문 100원권. 기존의 조선은행권과 같이 사용이 가능한 통화였다. 당시 조폐공사의 기술력이 저조하여 천원권에 경우에는 지폐의 판 번호 1번부터 500번까지는 일본에서 인쇄했고 판 번호 501번 이후는 한국에서 인쇄했다.[2]
하지만 이도 얼마 못가 천하의 개쌍놈이 남한 정부의 경제를 마비시킬 작정으로 판본(엄밀히는 조선은행권의 판본)을 득하여 위조지폐를 눈 뿌리듯 퍼부어댔고(북한발행 1천원권), 은행 본사마저 완전히 털려버리는 바람에 말 그대로 은행이 폭파...되어버려 첫 시리즈는 제 기능을 그대로 상실하고 말았다. 발단이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도 참고하자.

1952년 완전히 서울을 되찾았을 때 긴급히 조선은행권을 이승만&파고다공원 1,000원/500원 권(국내생산인 두번째 시리즈)과 교체해주며 무마하려 했으나 이미 통화시스템이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유명무실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7일 긴급통화조치(화폐개혁)를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때 환율은 6,000원/USD.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1945년 ~ 1950년 전반에는 조선은행권(일제치하기 시절 은행권)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비록 조폐공사 출신은 아니지만 연감통계등에는 이 시기의 통화로 놓고 본다. 1945년 환율은 15원/USD이니 이것으로 8년간 평균을 계산해보면 대략 200%쯤 된다. 다만 물가와 환율은 1:1대응이 아님에 유의하자. 생필품 물가는 더 지독하게 폭등했는데, 1945년 8월부터 12월까지 쌀값의 경우는 무려 55배나 폭등했다.

4. 2기 시리즈

2기 시리즈의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전(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 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4.1. 1차 (영제권)

1962년 6월 10일, 경재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원"화의 복귀에 의의를 두어 내놓았다. 1기의 "원"화와의 차이점은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환 = 1원이다. 따라서 1기 원화와의 비는 1000:1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3]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폰트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4]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이미 빈부격차는 시작되었다.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5]이다. 그러니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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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전, 오십전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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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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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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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원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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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원 석정[6]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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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 독립문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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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원 숭례문 봉화
  •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 여담이지만 이 당시(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서울에 집 한채 혹은 외제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4.2. 2차

  • 2차와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1962.09) → 나 백원권(1962.11) → 다 백원권(1965.08) → 나 오백원권(1966.08) → 나 오십원권(1969.03) → 가 오천원권(1972.07) → 가 만원권(1973.06) → 다 오백원(1973.09) → 가 천원권(1975.08) → 나 오천원권(1977.06) → 나 만원권(1979.06) 이다.

묶기는 2차로 묶었으나, 1차 시리즈 및 3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시리즈의 선행판 정도로 보면 된다.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수입산을 버리고 국내산을 쓰자는 운동이 크게 벌여지면서 적극 도입된 결과이며, 근본적인 도입 목적이기도 하다.[7] 1966년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하면서 이전권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둘 다 OME!!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세종대왕님은 은근히 작화보정(...)[8]을 받았지만 율곡 이이는...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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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9]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10]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11]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는데, 그걸 본 두 메이저 종교단체가 합심하여 반발해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왜 불교만 편애하냐!!는 식의 병크를,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따위에 올릴 수 없다!!!는 식의 병크를.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의 여유따윈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해버렸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원판화를 담당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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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십원[12] 첨성대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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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십원 파고다공원의 팔각정[13] 봉화와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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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백원 독립문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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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백원 숭례문(남대문) 거북선
(가) 오천원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가) 만원 세종대왕, 무궁화 경복궁의 근정전
  •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

4.3. 3차

묶기는 3차로 묶었으나, 2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됨에 따라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50원(1972년 12월 1일), 100원(1970년 11월 30일)동전이 추가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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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백원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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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백원 이순신,거북선 현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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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천원 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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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천원 이이 죽헌
(나) 만원 세종대왕 경회루

4.4. 4차 (구권)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화폐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이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14] 체계가 되었다. 지폐 자체의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15],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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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천원 이황, 투호[16], 사슴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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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천원 이이, 벼루[17], 죽헌
(라) 오천원[18] 기번호(시리얼)가 다르다.[19]
(다) 만원 세종대왕, 물시계[20],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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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만원[21] 앞면 여백부분에 소용돌이 무늬 추가
(마) 만원[22] 앞면 여백 아래 점자를 금색으로 변경
구권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아주 간혹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이곳이 사형장이로구나

4.5. 5차 (현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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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일에 위조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 되었다.[23]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

그러나 돈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이전보다 빠진 장식과 간략해진 글꼴 등에 대해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 답지 못하다는 것.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분위기. 또한 사람들이 이젠 크기가 작아진 신권에 익숙해지면서 도리어 옛날 지폐가 커서 불편했다라는 반응. 적응력의 힘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남아있긴 하다.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가능한한 자극적으로 틀어준 것까지 훌륭하게 콜라보레이션 되어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몰론, 빠른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흡사 코믹마켓 개장 전 모습인 마냥.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 자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이다.

2014년 현재 5만원권의 회수율은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묻지 마, 다쳐.돈이 사과가 되는 매직

앞면 뒷면
(다) 천원 이황, 명륜당[24], 매화 계상정거도
(마) 오천원 이이, 오죽헌(몽룡실)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바) 만원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천의[25], 천상열차분야지도, 현산 문대 망원경
(가) 오만원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월매도와 풍죽도[26]

4.6. 동전(주화)

공식적으로는 6종류이나, 실제로는 4종류만 쓴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일원 주화, 오원 주화 : 시중에는 풀리지 않고 있지만 일단 통용은 가능.
십원 주화, 오십원 주화, 백원 주화
오백원 주화 : 1982년생으로 늦게 등장했다.

4.7. 수표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와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거의 화폐 취급된다.
  • 자기앞수표 - 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한 수표. 한국에서는 주로 은행에서 발행한다.
    • 십만원권 수표 (연보라색)
    • 오십만원권 수표 (초록색)
    • 백만원권 수표 (진파랑색)
  • 백지수표 - 약속어음과 당좌수표 모두 백지수표라고 부를 수 있다.

5.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

왠지 달러, 유로, , 파운드등 핵심 국가들의 것에 비하면 당연히 발리는 구석이 많은 화폐이며, 환율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저 4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끝판왕인 미국 달러, 끝판왕에 도전하는 거성 유로화, 과거에 비해 명성을 잃었어도 추종자가 굉장히 많은 영국 파운드와 직접 거품이 터지기 전 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엔화 이들과는 비교하기가 좀 가혹하다. 조건 자체도 열악한데 달러는 미국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하고, 파운드도 금융 강국 영국의 의외로 견실한 경제구조와 영연방 국가들과의 연계에 미국과의 핵심 동맹 체계가 결합[27]되었으며, 유로는 최근 남유럽의 막장 테크화 및 동유럽의 부실함으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알프스 산맥 북쪽의 경제대국들[28]이 받쳐주고 있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낮고, 일본 엔은 그나마 나머지 3화폐보다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어버린 20년을 제자리 걸음으로나마 버텨낸 일본의 견실함 및 재기 가능성에 대한 신뢰로 인해 중국 위안 등 소위 경제강국의 화폐들보다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 원은 2014년 기준 세계 13위에 불과한 경제 규모, 수출 위주 경제로 인해 국제 환경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한 점 등으로 인해 그 신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수출위주라 불안정하며, 원화의 양도 비교적 적어서[29]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되기 때문. 따라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30]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와버린다.[31][32]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 제공하는 국내 은행 경우 G8(미 달러, 유로, 엔, 파운드, 스위스 프랑,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통화 에 홍콩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 달러, 유로, 엔화 거래만 유럽식으로 표기하며
일본이나 다른 통화 FX마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 경우 엔, 중국 위안,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대해서는 미국식으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마진 회사를 빼면 나마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프랑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그리고 북한중국의 존재가 의외로 막강하다. 그나마 북한은 전쟁 수행 능력이 많이 약해진 데다 미국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리스크는 아니지만[33] 문제는 중국.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게 있어 심장을 노리는 단검이나 다름없기에 공격이건 방어건 언제든 차지하려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미중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 달러등 4대 화폐도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겠으나 승패와 무관하게 적어도 몇년간은 휴지조각 신세가 될 원화나 위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에서는 의외로 인기가 없는 편. 북한 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발각되면 정치범수용소 직행인데다 위의 이유로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신 중화인민공화국 위안미국 달러, 유로 등으로 재산을 쌓아놓은 경우가 많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띨 경우 욕을 많이 먹기도 한다. 대한민국/환율 항목 참조. 그래도 주요통화에 못 미쳐서 그렇지 경화(Hard Currency)까진 안되더라도, 세계적으로 꽤나 강력한 화폐 중 하나이다. 적어도 아시아권 대부분 지역에 가보면 모든 환전소에 원이 통용된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34] 06년도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안을 시행한 이후부터는 역외 미주나 유럽권에서도 아시아권역에서만큼은 안되지만 상당수 환전소에서 원이 통용되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급은 안되더라도 역내(域內)에서는 그 역할을 화폐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메이저 언어의 말석이나 마이너 언어의 선두주자인 것과 비슷한 위상인듯.

6. 이야깃거리

  • 아직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함께 차기 나올 10만원권은 백범 김구로 도안이 확정되었다.#

고액권 예상 도안 출처

  • 우연인건지 노린건지 현재나 과거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권 화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들이 죄다 이(李)씨이면서 조선시대 사람이다.(세종대왕(이도), 이순신, 이황, 이이, 이승만[35] 덤으로 50원 주화의 뒷면은 이삭) 1973년 1만원권 등장 이후로 24년만에 등장한 신 고액권 5만원이 이 법칙(?)을 깨트릴까 싶었는데… 신사임당도 결국 이씨 가문 며느리이기도 하니 이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채로 남게 되었다. "신씨"라고 해도 조선시대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만약 도안까지만 확정된 10만원권(김구 도안)이 발행되었다면 이 법칙은 완전히 깨졌을 것이다.[36] 근데 1962년 발행한 개갑 100환의 모자는 이씨도 아니고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지 않나

  • 한국에서도 계산의 편의성 등을 위해 구미권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2단위 화폐를 도입[37]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금방 도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 급하게 도입했다가는 2000년 일본에서 2천엔권 지폐가 발행되었을 때 터졌던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

  • OECD 국가 중에선 액면 대비 가치가 가장 낮은 화폐.[38] 사실상 십원 이하는 시중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백원조차도 가치가 아슬아슬해졌다. 그래서 1000:1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너무 큰데 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액면이라 당분간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UN이나 IMF, OECD등의 권고가 있다거나, 아니면 국민의 결정적인 요구가 있지 않는 한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관련 논문에서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 한 해 5억 장 정도의 화폐가 손상 등의 이유로 폐기되고 이로 인한 교체비용이 매 해 500억 이상 든다. 착한 위키러는 동전, 지폐 등을 험하게 다루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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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권종은 1차 화폐개혁 후 환권에서 이승만이 많이 인쇄되어서 일명 '한복' 천원이라고 불리운다.
  • [2] 그래서 일본인쇄권과 한국인쇄권은 품질이 다르다.
  • [3] 주화의 통용에 관한 임시조치법
  • [4] 잔존수량이 많아 지금도 구매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려 관봉단위로도 팔고 두 장 세트로 비싸야 2천원이면 가능하다. 웬만하면 1000원이면 팔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기준으로
  • [5] 미사용 기준 60~100만원대. 사용제라도 어지간한 걸레가 아닌 이상 10만원 넘게는 쳐준다.
  • [6] 한국은행권 유일하게 실물이 북한에 있는 도안이다.
  • [7] 반은 농담이지만, 자존심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출되는 외화도 절약할 겸.
  • [8] 지금의 모습이 인자한 모습이라면, 이때는 간지폭풍이었다.
  • [9]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 [10] 정식 용어로는 시쇄권이라고 한다.
  • [11] 이 실물은 한국은행 본관 옆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12] 뒷면 하단 왼쪽에 발행 년도가 적혀있으면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
  • [13] 공식적으론 "파고다공원"이나, 흔히 팔각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
  • [14] 500원 주화가 비교적 뒤늦은 1982년에 등장한 탓에 지폐와의 공존기간이 있었다.
  • [15] 다만 초창기에는 지폐재질과 잉크의 화학적 상성이 워낙 옳지 못해서... X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진동하는 바람에 "X돈"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금방 문제를 인지하고 교체해 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 [16] 장대를 멀리서 던져 항아리 속에 넣는 전통놀이
  • [17] 그냥 판대기 처럼 보이지만, 서예할 때 쓰는 그 벼루다.
  • [18] 2002년 개정판
  • [19] 다 오천원은 "가가 0000000 가" 순이나 라 오천원은 "0000000 가가가" 순이다.
  • [20] 이 물시계 밑바닥에 "한국은행"이라 깨알같이 쓰여있다. 이를 미세문자라고 한다.
  • [21] 1994년 개정판
  • [22] 2000년 개정판
  • [23] 사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현행권과 비슷한 스타일의 스위스 프랑이나 독일 마르크화는 10년 이상 빠르게 나온 디자인이었고 특히 한국 화폐가 바뀔 당시의 스위스 현행권은 그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건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었고 당시 유로 및 비슷한 디자인의 영국 파운드 등의 변화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도 적당한 시기에 늦지 않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 [24] 성균관대에 있는 그것이다.
  • [25] 원래는 혼천시계를 그릴려 했는데 너무 육중한 몸매...때문에 혼천의만 분리해서 그려놓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Made in China라서 논란이 되었다. 실물은 고려대박물관에 있다.
  • [26] 신사임당 작품이 아니다. 각각 어몽룡과 이정의 작품.
  • [27] 일각에서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을 거론하는데 미국에게 있어 2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동맹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뿐이다. 나머지는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은 지정학적인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조차 외면한 적도 있다.
  • [28] 특히 독일북유럽.
  • [29] 무역결재대금, 외환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율 200%대비 1.5%로로 세계10위
  • [30]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정치-경제적 순위가 열 손가락에 들어가며 자칫하면 한국에 문제가 생길경우 외국인 투자자들도 왕창 손해보기 때문에 예들어 연평도 해전대 사태때 해외 증시를 급락시킨 걸 보면 알 수 있다.
  • [31] 그때문인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뿐이다. 그 외 통화는 메이저급이라도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룬다.
  • [32]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위완화간 직거래가 시작되었다.
  • [33] 선제타격이 성공할 경우 한국 측 민간인 피해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거라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 [34]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관광지 가보면 "싸다 싸! 천원!(...) 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 [35] 이승만도 일단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1875년 생이니까.
  • [36] 다만 김구 역시 1876년 생이므로 이승만처럼 일단 조선시대 사람이긴 하다.
  • [37] 역사상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2단위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었으며 미국 달러화의 쿼터(25센트)와 비슷한 두돈 오푼(2錢5分) 백동화도 통용된 적 있다. 다만 이때는 한국은행이 아니라 조선은행 시절.
  • [38] OECD/중위 가처분 소득 항목에 가서 자국 통화로 표시된 소득을 확인해보자. 천만 단위에 해당되는 건 한국밖에 없다. 사실 백만 단위도 굉장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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