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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last modified: 2018-03-23 02:54:16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탱크주의'의 실체
4. 현재
5. 대우그룹의 해체에 관련된 음모론
6. 주요 계열사


1. 개요

대한민국의 3대 그룹[2] 중 하나였으며, 현재는 해체된 재벌 중 하나. 창업주 및 회장은 김우중.

박살나기 전에는 독단적이지만 우월한 경영으로 소문났었는데. 대기업에 입사를 하면 삼성은 책상 속에 연필까지 깎여 모든게 준비되어 있고, 현대는 책상이라도 갖춰져 있고 대우는 책상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현시점에 와서 세 그룹의 위치를 보면 정말로 절묘한 이야기.

2. 역사

처음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시작하였다.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국내 최대기업으로서 성장하였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부실 국영기업의 불하[3] 등 M&A를 많이 활용한 측면에서는 이후의 STX나 웅진 등과도 비견되는 측면이 있다.

리즈 시절 직전인 1980년 당시의 광고.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중공업과 자동차, 특히 자동차 부문에서 고속성장을 거듭하였다.

리즈 시절 막바지인 1996년에 제작된 그룹 PR. 아역 광고모델은 다름아닌 장근석!!!

▲ 워크아웃 중인 1999년에 제작된 대우그룹의 마지막 광고(...) 배경음악은 가을의 전설 OST 'The Ludlows'로 마성의 BGM중 하나.[4]묘하게 당시 그룹 분위기와 비슷하다.

이 당시 김우중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 때문에 킴키즈 칸이란 별명이 붙었다.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진출과 경영 방식도 그렇지만, 중국-몽골-인도 공화국-루마니아-폴란드로 이어진 자동차 공장 확장루트도 흡사했다. 윙드 후사르 따위! 하지만 얄궂게도 4년 뒤 몽골 제국처럼 사라졌다. 별명 값을 했다.

실제 당시 대우의 대외 확장 방식은 체제 전환기를 맞아 투자 유입을 갈망하던 구 공산권 국가의 다급함을 이용해 있는 대로 금융 지원을 받아낸 것으로, 당시에는 적은 투자로 큰 사업을 한다고 호언했으나 결국 도박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레버리징에 의한 과잉 투자의 몰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도 맥락이 닿는다.

"만들어라, 그러면 팔릴 것이다"라는 야심만만한 발언은 정작 대우자동차가 주문물량을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부채로 변했다. GM과 결별 이후 사들인 뮌헨 연구소, 영국의 워딩 연구소[5]와 폴란드의 FSO 등도 모두 2000년 전에 모기업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안습.

1992년까지 긴밀히 협력이라 쓰고 사실상 지도편달이라 읽는다해온 GM폴란드에서 대우자동차가 정면충돌 하극상 한것도 이 시절인 1995년. 결국 M&A 다툼에선 승리했지만.. 이후 고부채로 포드에게도 버림받고 결국 GM에 팔린건 유명한 이야기다. 진성 망했어요.

1997년 기준으로 삼성을 제치고 재계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6] 참고로 1997년 1위는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 대우그룹은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포스를 가진 기업 중 하나였지만 방만한 경영[7]과 당시의 1997년 외환 위기, 김대중 정권과의 악연과 그리고 검찰 수사를 피해 비자금을 안고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아서 도망친 김우중(...) 회장 등의 악재가 겹쳐 1999년 공중 분해되었다. 회장님은 국내로 돌아와서 처벌을 받았다.

초기에 위태위태 할 때만 해도 당시 김대중 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대마불사를 외쳤다. 그래서 엄청난 위기 속에도 99년 7월에는 잠시 3조 원의 빚을 사재출연과 경영권 포기 등을 통해 위기를 잠시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를 살리려고 마지막 순간에 삼성자동차를 받고 우전자를 주는 빅딜을 하려고 한게 SM5 생산문제와 부산의 하청업체 문제 등으로 실패로 끝나면서 8월 워크아웃과 10월 김 회장의 중국 도피, 12월의 임원단 전원 사퇴로 몰락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몸집 불리기라니

이블 TV 초창기에는 DCN같은 케이블 채널도 운영했으나, 1997년에 외환위기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8] 1999년에 워크아웃을 맞아 해체되었다.

3. '탱크주의'의 실체

물건을 너무 튼튼하게 만든 "탱크주의" 때문에 신제품이 안 팔려서 망했다는 농담이 있고, 꽤 널리 퍼져 있다. 단 '탱크주의'는 어디까지나 대우전자의 슬로건으로, 타 계열사는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한 부분이 있는데, 저 당시 탱크주의라고 해봤자 대우 전자의 제품은 삼성이나 금성(LG)에 비해서 품질이 매우 열악하였다. 1991년 당시 대우 IC냉장고라는 제품을 구입하였던 몇몇 소비자의 경우엔 구입하자 마자 몇 달 만에 냉장고가 고장이 나고 냉각이 제대로 안 되면서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겪었고 이후에 수차례 AS를 불러도 개선이 되지 않는 터에 결국 이사갈 때 이 니미럴 망할 대우 냉장고는 안 가지고 간다는 주인의 생각 하에 이사간 집에서 멀쩡히 대우 IC냉장고가 있던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었다. 이것이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나름대로 적지 않은 집에서 연출된 상황이니 그 당시 대우전자 생산의 냉장고의 품질은 알고도 남으리라... 비슷한 시기의 삼성이나 금성(LG) 냉장고는 아직까지도 꿋꿋한 현역이다. 결국 대우 냉장고는 희대의 남을 병크 제품이었더라는 이야기. 사실 이 병크는 대우그룹 편입 이전 대한전선 시절부터 유서가 깊었다. 이미 1978년 TV가 폭발한 사건이 있었는데 뭐...

다만 자동차 부분에서는 (특히 같은 시기 현대자동차에 비교해서) 실제 1990년대 초반까지는 탱크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내구성 및 성능이 우수했기 때문에 너무 과소평가된 경향이 크다. 게다가 언론의 영향으로 현대에 비해 대우는 뭔가 2인자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기 때문에 당시 자동차 판매원들 사이에서 "대우자동차는 연비, 내구성, 디자인 모두 다른 회사보다 좋은데 대우마크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 라는 말이 돌 정도. 특히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이전에 나온 대형버스, 대형트럭 같은 대형 상용차들의 내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라이벌인 현대나 기아가 선진국 시장의 경쟁 압력에 살아남기 위해 기술 자립도를 높이며 꾸준히 상품성을 끌어올린 반면, 대우는 GM과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전까지 GM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1997~1999년 라인업을 갈아엎기 전의 모델이 씨에로와 에스페로는 오펠 카데트, 프린스와 브로엄은 오펠 레코드 및 세너터로 모두 1984년에 출시되어 1980년대가 가기 전에 단종된 플랫폼을 20세기 끝날 때까지 사실상 페이스 리프트 수준으로 버텼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나마 에스페로의 외관만은 스스로 '사온' 디자인이고, 도산하기 직전에나마 풀 모델 체인지라는 걸 한번 해본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4. 현재

비록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몇몇 계열사들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영광만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신세. 이중 일부는 대우라는 이름 자체도 사라지고 있는 혹은 사라진 상태. 다만 그룹이 망하기 전에 잘 나가던 계열사들은 아직도 해당 업계에서 순위권을 유지 중이다. 재계 순위 14위의 대우조선해양, 재계 순위 24위의 대우건설, 업계에서 빅3에 속하는 대우증권, 3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포스코엔지니어링, 대우인터내셔널 등.

본사였던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은 구 서울역 앞에 위치해있다. 그 크고 아름다운 모습은 서울특별시에 찾아온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었다.[9] 지금은 서울역 신역사가 약간 남쪽으로 내려와서 대우빌딩을 약간 비껴서 보게 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조금 줄어든 듯. 다만 서울의 경관을 가리고 위압감을 준다는 점에서 건축가들에게 까이기도 한다. 위치상 도쿄역의 마루노우치 빌딩과 비교되기도 한다.

대우사태 이후 대우빌딩은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손에 넘어가서 30년동안 달고 있던 DAEWOO 로고를 떼고 금호아시아나 로고를 달았다. 그리고 4개월 후에 모건스탠리에 팔았다.(...) 이후 리모델링 시 건물 외관을 유리궁전으로 완전히 뜯어고치려고 하였으나, 대우빌딩이 용적률을 초월한 건물이라서 외관을 리모델링하면 모건스탠리가 세금폭탄을 맞기 때문에 내부 수리와 외부 타일 교체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결국 모건스탠리의 손에서 대우빌딩은 이름이 바뀌어 서울스퀘어가 되었다.

5. 대우그룹의 해체에 관련된 음모론

대우의 부도와 파산, 그룹 해체에는 모종의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있기도 한데, 그 모종의 세력에 관해서 음모론은 대체적으로 두 설로 양분된다.

1. 유대계 금융자본이 대우그룹을 공격했다?!
당시 대우그룹은 국제적으로 마이너한 분야에서 잘 노는 플레이어로 정평이 나 있었다. 유대계열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에너지자원이라든지 건설, 금융 분야에서 한 켠 비껴가 있는 마이너한 곳들을 잘 공략해서 수익을 올리던 알짜기업이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 자본이 환율 공격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동원해 한국 정부와 대우를 압박했고 마침 분식회계 등 각종 악재가 겹친 상태에서 대우그룹은 이로 인해 결정타를 맞아 몰락하고 말았다고 하는데...이 내용이 조선일보 칼럼에도 이 내용이 기재되긴 했다.

이는 김우중 회장의 생각으로, 현재도 김 회장이 환율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라 한다. 다만 대우의 실제 붕괴는 사실 대한민국내에서 내려진 결정이 영향이 훨씬 컸으며, 이헌재와 김대중이 배후라는게 더 정확하다. 그 배후가 유대자본이라 우길려나

2. 대북사업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정권에서 본보기삼아 쓸어버렸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자기들이 추진하던 대북사업의 자금이 모자라 기업에 협찬금을 요구했고 이에 삼성, 현대 등은 정권이 요구한 금액을 납부했지만 대우그룹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대우그룹에 마침 악재가 터지자 본보기로 쓸어버린 일종의 정치보복이라고 하는데......

이 설은 협찬금을 냈다던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10]등도 당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과, 김우중 회장이 독재정권 시절 정치자금을 여당에 몰빵했던 타 기업과는 달리 여2:야1 의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여 김대중 대통령과의 친분을 쌓았던 전력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둘은 애초에 보수정권에서 큰 기업인과 탄압받던 정치가라 솔직히 안전빵으로 돈준게 크다.

사실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에 경제 부총리로 한때 김우중 회장이 거론될 정도로 당시 민주당 쪽에선 김우중과 대우그룹에 호의적이었다. 결국 입각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 경제분야 민관협력 회의는 거의 김우중 회장이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재벌쪽에서도 김우중 회장을 민주당 정권과의 의사소통 창구로 인정하고 있었고. 거기에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 동창이자 절친인 이종찬국가정보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정권의 핵심 실세로 떠올랐기에 더더욱...비록 김우중 회장의 부총리 임명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당시 탱크주의 광고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배순훈 대우전자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하고 새정치국민회의 박정훈[11] 의원이 김우중의 경기고 후배로 정계 입문 전 대우그룹 임원을 지냈을 정도로 민주당 정권과 대우그룹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하지만 마지막엔 여러 갈등들이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더구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92년 1월 남한 기업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여 무려 100만평 규모의 '남포공단'[12] 투자 합의를 이끌어낸 적도 있다. 민간 기업 단위에서의 최초의 남북경제협력 사업으로 이후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유야무야 되긴 했지만, 초창기 남북경협은 대우그룹이 주도하고 있었다.[13] 사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하던 개성공단도 위치만 남포에서 개성으로 바꼈을뿐, 사업 내용이나 추진방식은 1992년 남포공단 합의하고 똑같다.

이후에도 김우중은 독자적인 대북커넥션을 유지하면서[14] 남북경협에 대단히 적극적인 인물이었는데, 대북사업에 소홀했다고 정권의 보복을 당했다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하지만 1998년 김우중 회장은 대놓고 남포공단을 접는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김우중 회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사이가 나빠져서 해체당했다는 설을 퍼트리고 있으나 [15] 그러나 김우중 회장의 형인 김덕중씨가 대우그룹 해체의 와중에서 김대중 정부하에서도 교육부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부분 악연이 심했다. 허나 김우중 회장의 추징금이 괜히 17조원이나 되는게 아니다. 분식회계, 가짜 장부 등으로 회계를 조작하여 은행을 속여 빚을 낸 돈이 저 만큼인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행위고 미국에서는 비슷한 죄를 저지른 갑부에게 징역 150년형을 때릴 만큼의 중죄이다. 남의 돈을 사기쳐서 다 날려먹었으니 당연히 토해내야 하고 그 돈이 저처럼 엄청난 금액이다. 이것은 이미 당시 한국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으며 만일 어찌저찌 도와준다 해도 결국엔 서민의 돈이다. 허나 김우중 회장의 추징금은 차입금과 계산 중복 및 오류가 더 크다고 대우 측에서는 주장한다.

6. 주요 계열사

  • 대우자동차 - 사업 분야별로 4개로 쪼개졌다.
    • 한국GM(쉐보레) - 승용차 부문이 분리되어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에 인수되었다. GM대우라는 이름으로 계속 승용차를 생산해 왔었으나 결국 GM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현재는 한국GM으로 바뀌고 쉐보레 브랜드로 판매중.
    • 자일대우버스 - 중견기업인 안모자에 인수되었다.(참고로 영안모자는 이름처럼 모자 만드는 회사이고, 지역 방송국인 OBS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 타타대우상용차 - 트럭 만드는 회사. 인도의 타타그룹 뭔가 우리나라에서도 먹힐 것 같은 이름이다. 타! 에 인수됨.
    • 일자동차판매, 우산업개발 - (위에서 언급한 "만들어라, 팔 것이다"의 그 파는 회사.) 자동차 판매 부문을 따로 떼어내 GM대우와 타타대우, 대우버스의 자동차 판매를 대행했는데, 어쩐 일인지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이라는 이름으로 건설업계에도 진출했다. '이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푸르지오와는 다르다 푸르지오와는[16] 2010년 3월에 GM대우가 대우자판과의 결별을 선언하여 부도 위기에 처했고 대우버스와 마찬가지로 영안모자에 인수되면서 자일자동차판매로 바뀌었다. 건설부문은 2011년 12월에 대우산업개발로 분사하였다.

  • 대우전자(구 동부대우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 시초는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로 당시부터 잇따른 마케팅 실패등으로 악명이 높아 1980년에 대우가 넘겨받은 것이다. 한때는 도시바와의 제휴관계를 이용해 베타맥스 VTR을 출시하는등 나름 잘나갔지만 결국 위에서 말한 병크를 그대로 이어받은데다 그룹 해체크리로 사실상 망했어요까지 갈 뻔했다. 어쨌든 살아남긴 했지만 그동안 위기 없이 성장해온 삼성전자LG전자에 밀려 저가형 브랜드가 되어버렸다.이전에도 이 두 회사보다 싼 값을 더 내세우긴 했지만(...) 그러다가 결국에는 영상분야, 가정용 모터분야, 청소기분야, 에어컨분야는 각각 다른 업체에 매각이되고 공장부지도 매각이 어느정도는 진행이 되어 백색가전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냉장고 및 세탁기는 클라쎄(Klasse)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의 내수용 제품을 OEM 방식으로 제조하기도 하는 등 그럭저럭 굴러가는 중. 현재 삼성/LG에는 밀리는 상황이나 나름대로 백화점에 입점되어 있기도 하고, 해외 영업망 자체는 남겨두었다. 여러 번의 매각 무산 끝에 2013년 1월에 최종적으로 동부그룹이 인수하여 2013년 4월 사명을 '동부대우전자'로 개칭하였다. 로고도 완전히 동부그룹 느낌으로 변모했다.
    그 뒤 2018년에 대유그룹[17]에 인수되어 사명이 다시 대우전자로 돌아오게 된다.
    • 우디스플레이 - 영상가전을 생산하던 우일렉트로닉스 구미공장(현재 김천으로 이동)과 멕시코공장을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옛 임직원들이 퇴직금과 출자금 등을 모아 인수해 설립한 회사. LED, LCD TV 등 영상가전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디지털 방송 전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급형 디지털TV 제조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이마트를 판매처로 두고 있으며, A/S는 아래 동부대우전자서비스에서 지원.
    • 우어플라이언스 -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생활가전, 주방가전 등 소형가전 부문의 상표권을 인수해 설립된 회사. 청소기, 선풍기, 오디오, 전기밥솥, 정수기, 다리미, 커피메이커 등 꽤 다양한 품목들을 판매하고 있다. 주요 대형마트와 온라인을 통해 유통하고 있으며, A/S는 동부대우전자서비스에서 지원.
    • 우아이에스 -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문이 분사해 설립된 회사. 주로 제너럴 모터스, 대우버스, 타타대우상용차 등 완성차에 들어가는 순정 카오디오, 내비게이션, AVN 등을 공급하고 있으며, 애프터마켓 시장 쪽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2년 5월 셋톱박스 생산업체인 휴맥스에 인수.
    • 대우전자서비스 - 대우전자의 CS부분만 떼어낸 것. 대우전자, 대우디스플레이, 대우어플라이언스 제품의 사후서비스는 물론 코원, 코닥아이폰의 한국 내 A/S를 여기서 담당한다.
    • 우루컴즈 - MSX기종인 IQ시리즈와 과거 하이엔드 노트북에서 나름대로의 인지도가 있었던 솔로 시리즈로 유명했었던 대우통신 컴퓨터 사업부가 분사해 설립된 회사. 내수성적은 부진하나, 수출은 상당한 호조세이다. 주력제품은 역시 노트북과 PC이며, 최근에는 디스플레이/TV 사업부에도 진출. 하지만, 내수시장에서는 존재조차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 대우중공업 - 사업분야별로 3개로 쪼개졌다.
    • 두산인프라코어 - 대우중공업 건설기계부분이 분리된 뒤 대우종합기계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이 역시두산 그룹에 인수되어 두산인프라코어가 되었다.
    • 대우조선해양 - 2000년에 대우중공업 조선해양부분이 분리된 뒤 2009년 초까지 국내 기업과 인수 협상을 벌였으나 무산을 거듭하였다. 조선업 Big3 중 하나.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 현대로템 - 대우중공업의 철도사업부분은 한진중공업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의 철도 사업 부문과 합쳐져서 로템이 되었고,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이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여 현대차 그룹의 계열사가 되어 현대로템이 되었다.
    • 항공 사업부문 - 육군 경량정찰헬기인 Bo105를 100여대 도입한다는 계획 때문에 한창 들떠있다가 여러이유로 12대로 축소. 이후 한국항공우주산업에 합쳐졌다.

  • 쌍용자동차 - 대우그룹이 망하기 직전에 인수한 회사. 당연히 다시 뱉었다.(...) 이후 중국 상하이기차(SAIC)에서 먹었는데 거기서도 뱉어버렸다.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맞섰고, 회사는 강경 일변도로 대처하면서 멸망크리.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되었다.

  • 대우정밀 - 1999년 대우통신에 흡수합병되었다가 다시 분리독립된 후 2006년에 S&T 그룹에 들어가 S&T 대우가 됨. 이후 2012년 3월 9일 부로 S&T 모티브(S&T MOTIV)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K1, K2 소총을 비롯한 총기를 만드는 군수업체

  • 대우건설 - 2000년 12월 대우빌딩을 안고 분할됨. 이후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부활의 조짐을 보였으나,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무리한 M&A를 당하면서 대우빌딩을 포함한 양질의 유형자산을 매각하였고, 결국 금호아시아나의 유동성이 부족해졌을때 그룹에서 매물로 나왔다. 이후 한국산업은행이 지분확보. 르지오가 대우건설의 브랜드이다.
    대우건설이 회생절차를 밟을 때 자본감자 결의를 했는데, 이 때 소수주주(0.65%)에게 통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시민단체에서 감자 무효의 소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6개월간 임금 안받아가면서 살린건데 그걸 소급해서 무효로 돌리자고? 결과는 법원의 재량기각으로 끝났지만 기각 요건이 살짝 부족한데 법원의 적절한 해석끼워맞추기?으로 다행히 살아남았다.

  • 대우로지스틱스 - 옛 대우의 물류 팀을 종업원들이 인수해서 설립된 종합물류기업. 해외에까지 정경유착을 퍼뜨리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한 섬나라혁명을 일으키는 권능을 지닌 기업이다(...) 마다가스카르 혁명 참고.

  • 대우인터내셔널 - 옛 (주)대우의 상사부문에서 떨어져 나온 종합상사 기업.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 걸었던 옛 대우의 분위기가 남아있던 탓인지, 대우가 망한 후 그룹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줄곧 업계 1위를 달릴 만큼 잘 나가는 회사였다. 대단한 것은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더이상 무역종합상사로서 예전같이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성과를 냈다는 것. 2010년에 포스코 그룹으로 인수되었다. 포스코 쪽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크게 기대하는 듯. 대우의 옛 오리발마크에 대한 상표권은 대우 인터네셔널에서 보유중이며, 전 대우 계열사들간의 합의에 의해 대우라는 상호와 오리발마크의 국내에서의 사용은 무상이나, 외국에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로열티를 대우인터측에 지불해야 한다.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1995년에 대우에서 인수하였으나, IMF크리 맞고 헤롱헤롱.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인수하여 현대카드가 되었다.

  • 대우증권 - 산은금융지주가 인수. 원래는 되팔이 하려고 했으나, 빅3 증권사를 데리고 있는 편이 산은측에서는 훨씬 이익이라 매각을 포기하고 완전히 자회사로 편입했다.

  • 스코엔지니어링 - 1990년에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어 대우엔지니어링으로 설립.[18] 이후 2008년 포스코가 인수, 포스코엔지니어링으로 사명 변경. 국내 3대 엔지니어링회사 중 하나.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엔지니어링.

  • 우출판사 - 1980년 설립한 이래 대우그룹에서 발간한 책자나 카탈로그와 동화책,건설 및 디자인 교육 도서를 출판하다가 독자생존 하였다.그러나 2004년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가 파산.현재 대우출판사라는 이름은 다른 회사가 이어쓰고 있다.[19]

  • 우초등학교 - 1982년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 직원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거제군 옥포리에 있던 대우쇼핑센터에서 시작한 대우의 사립학교.[20] 1983년 거제군 아주리에 있던 아주산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규모의 건물을 신축해서 이전. 1982년에는 1학년만 있다가 1983년부터 전학년으로 확대.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국민학교였다.[21] 대갈장군께서도 거제도만 오면 꼭 들리던 곳. 물론 땡전뉴스에도 단골. 김우중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이사장이었는데, 대우그룹 해체 후 병맛크리를 타더니 그냥 평범한 사립학교가 되어버렸다.[22] 그래도 경상남도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초등학교'였던' 초등학교로 기억되는 학교지만 이제는 그냥 섬에 있는 학교...라고 하기엔, 여전히 섬에선 위상있는 학교이다. 섬 유일의 사립 초등학교로서, 주변 공립 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곤 한다.[23] 같은 대우조선 계열로 거제중학교와 거제고등학교도 있었지만, 이쪽은 대우조선에서 신설이 아닌 기존의 사립학교를 인수한 것으로, 역시나 대우그룹 해체 이후로 평범한 사립학교가 되었다.

  • 힐튼호텔 - 서울특별시, 경주시, 남해군에 있는 힐튼 계열의 호텔. 대우 망하고 지금은 이미지가 안습이지만… 한때 서울 밀레니엄힐튼 최상층에 김우중 집무실이 있었다.

  • 아주대학교 - 현재 아주대 이사장은 대우 전무이사와 대우중공업 종합기계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한 추호석 씨이다. 이 학교에 다니던 축구 선수들이 같은 그룹내의 프로축구팀으로 많이들 갔다. 대표적으로 안정환.
    • 아주자동차대학 - 아주대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 1994년 설립인가를 받아 1995년 대천전문대학으로 개교해 2004년 현재의 교명으로 변경했다.

  • 제대학교 - 경남 거제시에 있는 전문대학으로 현재는 대우학원 소속이 아니지만[24] 이사장이 대우조선해양의 대표를 지냈던 남상태 씨이다.

  • 우병원 - 전남 신안군에 있는 병원

  • 부산 대우 로얄즈 - K리그를 대표하는 잘나가던 팀이었으나 그룹 해체후 대산업개발에 인수되어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가 됐다. 김우중이 축빠로 유명했으니 잘나갈수 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은...

  • 천 대우 제우스 - 대우증권에서 운영하던 KBL 프로농구팀이었으나 그룹 해체후 신세기통신, SK를 거쳐 전자랜드에 인수되어 현재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됐다. 대우시절 당시 뛰던 선수가 대표적으로 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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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업의 마크는 5대양 6대주를 상징한다. 다만 1974년에 이 로고를 쓸 때부터 표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like.jpg
    [JPG image (Unknown)]
    왼쪽은 미놀타 로고, 오른쪽 빨강 로고는 과거 미국 컨티넨탈 항공 로고로 대우 로고랑 똑같다.(...)
  • [2] 당시엔 현대그룹, 삼성그룹, 대우그룹. LG그룹도 제법 크긴 했지만.
  • [3] 예를 들어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현)대우조선해양, 한국기계공업→대우중공업→(현)두산인프라코어.
  • [4] 이 광고를 보아 완전한 해체는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 [5] 마티즈비라의 아이디어를 낸 곳이다.
  • [6] 원래는 삼성그룹이 2위였지만 삼성그룹이 이 시기에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잠깐 3위로 밀려났었다. 물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위 자리를 회복했고, 현대그룹이 산산조각나고 삼성전자가 미친듯한 성장세를 보이며 1위 재벌이 되었다.
  • [7] 당시 보철강, 아시아자동차, 기아자동차, 아건설 등 총 4개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규모가 6조원 가까이 됐는데, 대우그룹 혼자서 10조원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사실 아시아자동차는 기아자동차가 속한 기아그룹 산하여서, 어떻게 보면 3개 대기업이지만.............
  • [8] 이 와중에도 쌍용자동차 인수를 그대로 질렀다. 흠좀무..
  • [9] 당시 버스 정류장 명칭은 "서울역앞,대우"이였으나, 그 후에 "서울역.대우건설"로 변경, 현재는 "서울역 버스 환승센터"로 변경되었다.
  • [10] 현대그룹은 김대중 정부가 대북사업에 직접나서기 이전인 1980년대 말부터 대북사업을 추진했다.
  • [11] 고 박세경 변호사의 아들.
  • [12] 남포는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북한의 수도, 핵심부인 평양의 위성도시이자 서해로 나가는 관문이다. 남포공단을 조성하고 남한기업을 대규모로 유치하겠다는 결정은 남한으로 치면 인천을 통채로 북에 개방한 것과 마찬가지다.
  • [13] 이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대북사업은 대우에 밀리고, 전자는 LG그룹에 밀리고, 매출액은 현대그룹에 밀린다'면서 대단한 위기의식을 표출했고, 이런 위기감이 바로 다음해에 소위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는 폭탄선언, 혁신경영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14] 김우중은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해외를 떠돌던 2000년대에도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는 등 대북사업에는 대단한 열의를 보인 인물이다.
  • [15] 주로 극우언론들이 이런설을 재생산하고 있다.
  • [16] 푸르지오는 대우건설의 아파트 브랜드다.
  • [17] '딤채' 김치냉장고와 '위니아 에어컨' 등의 제품이 유명하다.
  • [18] 당연히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전이다.
  • [19] 참고로 이 회사는 대우그룹에서 발간한 책자나 카탈로그가 아니면 대우마크를 안쓰고 독자적인 마크를 썼었다.
  • [20] 당시 거제군 장승포읍에는 초등학교라고는 국민학교 등 열악한 시골학교 밖에 없어 노동자들이 이주를 꺼리는 상황이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투자로 대우국민학교를 건립했다
  • [21] 실제로, 1980년대초에는 한반의 인원이 23명 수준. 국내 최초의 국민학교 트부드부가 있었다
  • [22]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의 사립학교. 덕분에 학교의 틀버스 이외에도 대우조선해양의 모든 버스가 셔틀버스로 운영된다. 말만 잘하면, 지나가는 대우조선의 버스를 붙잡고 타도 된다
  • [23] 이를테면 "대우초등학교 애들은 다들 부잣집 애들이라서 텃세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심하다더라" 라든가, "대우초등학교 애들은 돈이 많아서 다른학교 리코더 배울때 플룻을 배운다더라"는 등의 카더라통신.
  • [24] 학교법인 세영학원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