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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last modified: 2015-02-24 22:12:5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단기 원년의 진실
3. 현실의 용례


1. 개요

단군기원
檀君紀元

대한민국에서 정부 수립 때부터 쓰던 연호. 단군원호(檀君元號)라고도 한다. 단군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1]을 단기 1년으로 헤아리는 방법이다. 서기 연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2] 반대로 단기연도(2334 이상)를 서기연도로 바꿀 때는 단기연도에 2333을 빼면 된다.예를 들면 서기 2015년은 단기 4348년이다.

2. 단기 원년의 진실

하지만 사실 2333년이라는 추산 자체가 100년간 즉위했다는 중국 전설상의 인물 요임금의 즉위년을 가지고 때려맞춘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주장이다. 즉, 이걸 가지고 반만 년 역사 운운하는 것부터가 불확실한 주장이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도가 나오게 된 이유는 미묘한데, 요임금의 즉위년 ~ 단군의 즉위년 사이의 기간과 명나라 건국 ~ 조선 건국 사이의 기간이 일치한다. 즉, 명과 조선의 건국이 요와 단군의 즉위와 똑같은 주기를 가지는 것을 보니 조선의 건국도 천명의 조화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 국가 정통성을 위한 끼워 맞추기의 예.

세간에는 기원전 2333년이 단군 즉위 연도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게 알려져 있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진짜 사실이라고는 절대 명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근대의 단군기원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중국에 못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는 명분 중 하나로서 의미를 가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민족의 상징적인 시점으로 여전히 의미는 크다.

3. 현실의 용례

고려 공민왕 때 백문보가 처음으로 단기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백문보는 고조선 건국년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백문보가 주장한 단기는 우리가 말하는 단기와 기준연도가 달랐다. 하지만 백문보의 주장은 논의만 됐을 뿐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후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1909년에 홍암 나철이 창교한 대종교에서 단기 사용을 적극 주장하면서 다시 발굴됐다. 이후 꼭 대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민족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종종 단기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적으로 일본 연호를 따라 썼기 때문이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새 정부의 연호로 단기를 채택함에 따라 처음으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기를 연호로 쓰게 되었다. 이때 이승만을 포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3.1 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을 1년으로 헤아리는 '대한민국' 연호[3]를 쓰자고 주장한 반면,[4] 국회에서는 단기 연호를 쓰자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연호는 임시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한 연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단기를 새 나라의 연호로 채택했다. 이 시기 법률문서나 반민특위 관련 문서를 보면 연호가 단기로 작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기인 1961년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62년부터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를 채택하여 현재에 이른다. 공문서 같이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서기가 쓰이지만 단기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고 부수적으로 단기를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단기는 불교 달력불기와 같이 나오거나, 신문의 날짜란에 서기와 같이 나오는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름에 단군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환빠들이 가끔씩 좋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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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연도는 기록에 따라 다르다. 기원전 2333년은 조선 때 서거정이 쓴 '동국통감'에서 처음 주장한 연대이다.
  • [2] 단, 서기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기원전을 단기로 헤아릴 때는 2334를 더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기원전까지 헤아릴 때 기원전 1년을 0년으로, 기원전 2년을 -1년으로 간주하고 계산한다.
  • [3] 김구백범일지 같은 임정 요인들의 기록물에서 "대한민국 XX년"이라는 식으로 자주 쓰였다.
  • [4] 이에 따라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