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다비드 비야

last modified: 2015-04-12 20:01:58 Contributors

dv7.jpg
[JPG image (Unknown)]
뉴욕 시티 FC No.7
다비드 비야 산체스 (David Villa Sánchez)
생년월일 1981년 12월 3일
국적 스페인
출신지 아스투리아스
포지션 포워드, 윙어
신체조건 175cm, 69kg
프로 입단 1999년 스포르팅 히혼 입단
소속 팀 스포르팅 히혼 B (1999~2001)
스포르팅 히혼 (2001~2003)
레알 사라고사 (2003~2005)
발렌시아 C.F. (2005~2010)
FC 바르셀로나 (2010~201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2014)
뉴욕 시티 FC (2014~)
멜버른 시티 FC (임대) (2014)
국가대표 97경기 59골

"다비드 비야는 공격수로써 패널티박스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뒤쪽으로 이동하여 연계를 해줄 수 있는 좋은 스트라이커다."
- 요한 크루이프

"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카카보다 다비드 비야를 원한다."
- 비센테 델 보스케 이래놓고 2014 월드컵에선 비야의 A매치 고별경기도 몰랐다.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커리어
4. 클럽
4.1. 국가 대표
5. 기타
6. 기록
6.1. 대회 실적
6.2. 개인 수상
6.3. 득점 기록


1. 개요

스페인 출신의 축구 선수로 현재 뉴욕 시티 FC 소속이다. 데이비드 빌라가 되었다

스페인 국가대표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무적함대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끈 공격수
스페인 국가대표로 뛴 경기 승률 80%

클럽에서의 활약상을 놓고 보면 라울 곤살레스가 개인 기록상으로나 커리어상으로나 우위에 있으나 국가 대항전에서의 활약과 성적을 놓고 말하자면 단연 비야의 우위.[1] 유로 2008 우승을 기점으로 시작된 스페인 황금기를 이끌었던 공격수로서, 비록 자신의 첫 월드컵이었던 2006 월드컵은 아쉽게 16강에서 탈락했으나 2년 뒤 유로 2008에서는 눈부신 활약으로 우승을 이끌었다.[2] 그리고 특히 2010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이 이겼던 6번의 경기 중 총 4번에 걸쳐 결승골을 넣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원해낸 구세주이자 스페인에게 월드컵을 안긴 주역이었다. 다만 유로 2012의 경우에는 아쉽게도 부상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

"El Guaje('엘 구아헤'라 발음하며 어린이, 소년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9살 때 대퇴부 골절로 인해 축구 선수로서의 생활이 힘들어질 뻔했으나 특별한 합병증 없이 완벽히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때 오른발을 다쳤는데, 아버지가 왼발을 연습하라고 한 덕에 오른발이 낫자 그는 양발잡이가 되었다.[3]

2. 플레이 스타일

정통 스트라이커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스타일을 많이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도 그의 장점이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교묘하게 깨는 솜씨도 일품이고, 순간 주력 역시 훌륭해 스트라이커로서도 뛰어나지만 윙 포워드로서도 뛰어나고,[4] [5] 조금 처져서 뛰는 세컨 탑으로도 솜씨가 좋다. 아이마르가 떠났고 다비드 실바가 아직 애송이인 데다가 심심하면 병원으로 출장가서 이렇다 할 플레이 메이커가 없었던 2006/07 시즌의 발렌시아에서 혼자 공격 전개 과정을 주도하다시피 하며 리가에서만 16골 12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이나 좌측 윙 포워드에 가깝게 뛰며 유로 2008 지역 예선부터 대회 본선까지 스페인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한 당시의 활약은 그 백미.

장거리 드리블을 즐기지는 않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수비수 한두 명은 여유롭게 제친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킥의 정확도와, 양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으면 어디에 있든 위협적인 슛을 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페널티 에어리어의 지배자. 발렌시아 시절 리가에서는 항상 슛 대비 득점률이 리가 탑급이었는데 이는 놀라운 것이다. 당시 거의 혼자 공격을 주도하다시피 한 시기도 길었는데, 이런 경우 선수는 어떻게든 공격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한 슛도 많이 때리게 되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결정력을 뽐냈다는 것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시즌이 끝나갈수록 나타나는 뒷심부족.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인 듯 한데 프리메라리가시절 항상 초중반에 무서운 기세로 골을 때려 박다가 시즌이 말미에 접어들면 리그 초중반의 페이스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뒷심부족이 번번히 득점왕을 물먹이곤 했었다.

4. 클럽

지역 클럽이자 남자의 팀으로 유명한 스포르팅 히혼에서 00/01 시즌에 프로로 데뷔했다. 01/02 시즌부터 1군에서 뛰면서 리가 18골을 기록했고, 02/03 시즌에는 20골을 넣었다. 3시즌 동안 스포르팅에서 50골 이상 넣으며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고 03/04 시즌 1부 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하게 된다.

사라고사에서 맞이한 첫 시즌에서 17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보였고, 2004년 코파 델 레이 우승 당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PK골을 넣기도 했다. 2005년 국가 대표로 데뷔하기도 했다.

2005년 여름, 사라고사는 자금 문제로 비야를 발렌시아에 1,200만 유로에 팔게 된다. 발렌시아에서 첫 해에 25골을 넣었는데, 에투(바르셀로나)에 단 한 골이 뒤져 득점왕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였다. 05/06 시즌에는 5분 만에 세 골을 기록하며 생애 첫 해트트릭을 달성한다.[7] 06/07 시즌에 리버풀로부터 영입된 파트너,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함께 40골 이상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07/08 시즌 쿠만 감독의 삽질로 팀이 반 병신이 돼 버리고, 메스타야 구장 부지 판매 건으로 인해 자금난이 발생하자 많은 빅 클럽들이 비야를 노리게 된다. 하지만 비야 본인은 발렌시아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그다지 이적에 대해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거기에 최근 발렌시아가 다시 회생하면서 비야의 이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발렌시아 재정이 상당히 흔들리는 상태라는 것은 사실인 만큼, 최근 구단과 발렌시아 감독인 에메리는 비야의 대체자만 찾으면 충분히 이적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결국 2010년 5월 19일, 현지 시간으로 1시 30분 경 바르셀로나로 이적이 완료되었다. 이번만은 소문이 아닌 레알이다. 40m 유로(대략 34m 파운드)에 합의.

그리고 입단식까지 거치면서 완벽하게 바르셀로나행이 결정되었다.

10/11 시즌에서는 첫 경기에서 데뷔 골을 터뜨렸지만 이후 활약이 지지부진하다. 먹튀니 오발탄이니 해도, 즐라탄이 떠난 이후로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대놓고 밀집 수비를 펼치고 있고, 스피드와 공간 침투를 활용하는 비야는 역습 전략의 발렌시아에서와는 달리 바르셀로나에서는 그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월드컵 이후에 골 결정력도 떨어져서... 바르사의 원 톱 자리에는 에투의 저주가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세비야전 이후로 헤타페전에서 연속 골을 성공시키며 슬슬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대에서 여러 번 뛰어 봤던 다른 선수들보다도, 처음 호흡을 맞추는 메시와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는 좀 주춤했고 알메리아전에서 바르샤가 8:0으로 이길 때도 무득점이라 다시 주춤하나 했더니,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의 킬 패스 2번을 모두 성공시키며 2골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라이벌 에스파뇰전에서도 메시와 사비의 어시스트를 골로 연결하며 드디어 인간 중에서 득점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여담으로 바르사로 이적한 후 비야의 거품이 빠졌다든지, 이게 비야의 현실이라든지 등 여러 까들의 비판이 많은데 절때 비야가 못하는 게 아니다. 팀에서 씹사기 메시가 너무 잘해서 그럴 뿐, 실제로 비야는 바르사로 이적한 후 출전 시간 대비 득점력이 더 늘었다.

하지만 이후 매번 피치치를 앗아간 특유의(...) 후반기 슬럼프(체력 부족으로 인한)가 찾아오는 바람에 10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엘 클라시코 4연전 기간이라 꾸레들에게 포풍 까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까이거나 말거나 이적 시즌의 대미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에게 멋진 쐐기 골을 박아 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1/12 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차전에서는 클래스를 보여주는 슈퍼 골을 넣어 팀을 패배에서 구해냈으나, 2차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파브레가스에게 마르셀루가 가한 태클에 서로 항의하던 중에 메수트 외질과 싸우고 퇴장당했다.

2011년 12월 15일, 알 사드와의 클럽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정강이뼈 골절로 시즌 아웃을 당했고, 유로 2012에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향후 바르셀로나에게 큰 문제점으로 작용했는데, 놀랍게도 메시가 공격 포인트 100개를 찍는 와중에도 중요한 경기마다 골 결정력 부족을 보이며 자멸했다는 것이다. 파브레가스와 알렉시스 산체스를 메시와 스리 톱으로 내세워 가짜 공격수(펄스 나인) 전술을 사용했으나 두 선수는 전문 공격수가 아니었기에 큰 효과를 보이지 못했으며, 이는 첼시 1차전(원정)-엘 클라시코(홈)-첼시 2차(홈)전에서 바르셀로나로 하여금 찬스를 잡지 못하는 화근으로 작용했다. 그뿐이랴? 10-11 시즌 페드로-비야-메시 중 페드로 역시 부상으로 폼이 확연하게 떨어져 시즌 내내 테요나 쿠엔카 등의 선수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페드로-비야-메시 스리 톱의 경우 득점력 면에서 메시에게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파브레가스-산체스-메시 스리 톱과 비슷하지만, 페드로와 비야는 둘 다 결정지어야 할 상황에서 확실하게 결정을 지어버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점은 향후 바르셀로나의 중요한 경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야가 비록 리오넬 메시만큼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선수는 아니더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과 큰 경기에서 득점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는데,[8] 바르셀로나는 비야가 있을 때에는 그 점을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결국 비야가 시즌 아웃을 당하자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가 메시밖에 없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했다.

다행히도 스페인은 제로 톱 전술과 네그레도-토레스 등의 선수들을 활용하여 이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이후 극단적인 공격적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바르셀로나로서는 앞으로 강팀과의 경기나 중요한 경기에서 내세울 공격수가 절실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2012-2013 시즌, 페드로와 산체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9] 여러 클럽들로의 이적설이 뜨기 시작했다. 특히 아스날이 1천만 파운드를 써서 웬 일이래 벵거가 돈을 쓰다니 영입하려고 했지만 빌라노바 감독이 거절했다. 30줄에 들어선 나이지만 다시 한 번 이적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토트넘, 아스널과 강력하게 연결된 듯했으나 뜬금없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10]

이적료는 최대 5.1m 유로(약 75억)이고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3/14 시즌 2.1m 지급, 14/15 시즌 2m 지급, 15/16 시즌까지 AT에 비야가 남을 경우 잔여 1m 지급. 추후 이적 시 바르사에 이적료의 50% 지급이다. 나이와 바르셀로나에서의 폼 때문인지 낮은 수준으로 책정된 듯하다.

2013-2014 시즌에는 아틀레티코에서 라리가 36경기 13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시즌 내내 패스 성공률이 저조했고,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중요한 순간에는 득점을 기록하며 골게터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듯. 또한 팀이 리가 우승을 거머쥐며, 개인통산 세번째 라리가 메달을 휙득했다.

리그가 막내린지 얼마안돼 5월 31일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팀으로 창단되는 뉴욕 시티 FC 멤버로 뛴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참고로 이 팀은 리얼부 구단주 만수르가진돈을 주체하지 못해 1조원짜리 경기장을 일시불로 질러버린 뉴욕 양키즈가 합작해서 만든 팀이다. 2015시즌부터 뉴욕 양키즈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다만 지분은 맨체스터 시티가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다.

2014년 6월 1일부로 뉴욕시티 FC의 첫 번째 선수가 되어졌고 뒤 이어 프랭크 램파드 역시 뉴욕 시티 FC에 영입이 되었다. 팀에 영입이 되었지만 뉴욕시티는 당시 준비과정에 있는 팀이었고 선수선발을 위한 MLS 드래프트는 2014 시즌이 끝난 뒤에야 진행이 되기 때문에 선수는 다비드 비야와 프랑크 램파드 두 명만 있는 상황이고 팀의 트레이닝 캠프는 15년 1월에, 시즌은 15년 3월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경기를 뛰기 위해, 그리고 같은 시티 풋볼 그룹 산하인 A리그멜버른 시티 FC의 홍보를 위해 멜버른 시티로 임대 가게 되었다. 다비드 비야가 먼저 임대를 가고 프랑크 램파드가 뒤 따라 가기로 되었으나 멜버른 시티의 임대 제한 조항에 걸려 프랑크 램파드는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가게 되었다.

A리그는 10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멜버른 시티의 트레이닝 캠프부터 참가 하게 되었고 10월 11일 A리그 데뷔경기에서 시드니 FC를 상대로 63분에 득점하여 데뷔경기에 데뷔득점을 기록했다. 10월 19일 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하고 있는 가운데 87분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그 뒤 10월 25일에 멜버른 빅토리, 10월 31일에 애들레이드과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MLS 개막과 뉴욕시티의 트레이닝 캠프 일정에 맞춰 최소 10경기는 출전하여 2014년은 멜버른 시티에서 보낼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0월 31일 애들레이드 경기를 끝으로 뉴욕 시티로 복귀하였다.

15년 1월 시작되자마자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 간 프랭크 램파드의 이적 파동으로 시끄러워졌고 프랑크 램파드는 뉴욕 시티 FC가 아닌, 시티 풋볼 그룹과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프랑크 램파드의 뉴욕 시티행은 위장 전입과 다름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때문에 다비드 비야 역시 맨체스터 시티의 위장 영입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나왔으나 현재 뉴욕 시티의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하고 있고 별 다른 소식이 없기 때문에 다비드 비야는 프랑크 램파드와 다르게 애초부터 뉴욕 시티에서 영입한것으로 추정된다.

15년 2월 11일, 영국 멘체스터에서 펼쳐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클럽 세인트 미렌과의 친선경기에서 첫 득점을 기록했다. 뉴욕 시티의 역대 첫 번째 등록선수이면서 뉴욕 시티의 역대 첫 번째 득점을 기록한 것. 다만 2월 17일 덴마크의 브뢴비와의 경기에서는 묻혔다(...).

4.1. 국가 대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파트너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3골을 넣어,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한다. 유로 2008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고, 대회 유일의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또한 4골을 넣으면서 골든 부츠를 수상하였다. 명실상부 현존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지옥에서 구해내며 우승에 기여했다.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는 몸 개그하는 토레스와 함께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온두라스와의 2차전에서는 두 골 다 본인이 만들다시피 하며 그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한 골 추가. 곤살로 이과인과 함께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며 유력한 득점왕 후보로 올랐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역시 16강에서 한 골씩을 추가한 이과인과 비텍 (하지만 이쪽은 16강 탈락)과 함께 공동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8강에서 또 결승골을 넣으며 탈락한 이과인과 추격하는 클로제 등을 따돌리고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도 5골로 올라서고 4강에서 득점을 하지 못함에 따라 결승전에서 골 넣는 쪽이 아디다스 골든 볼(MVP), 득점왕, 우승이라는 삼관왕을 가져가는지라 혈투가 예상되었다. 결승전에서 비야의 스페인이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스네이더르와 비야 둘 다 한 골도 못 넣으면서 득점왕은 토마스 뮐러, 골든 볼은 디에고 포를란이 차지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에 승선했다. 세월이 많이 흐름에 따라 폼도 많이 죽었고, 클럽팀 동료인 디에고 코스타의 스페인 귀화로 선발로의 입지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가 없는 스페인이 초반 조별리그 2경기에서 충격의 2연패를 당하면서 탈락을 확정지은 이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호주전에서 왼쪽 윙으로 선발출장하였다.초반부터 경쾌한 움직을 보여주며 호주의 수비진을 괴롭히다 전반전 37분경에 후안 프란의 크로스를 백힐로 재치있게 밀어넣으며 월드컵 통산 아홉번째 골을 득점했다. 이날은 그가 치르는 국가대표로써의 마지막 경기 였으며, 월드컵에서도 사실상의 마지막 경기였다. 후반들어서 델 보스케 감독이 이른 시간에 마타와 교체시켰는데, 이후의 인터뷰에서 대표팀 은퇴경기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경기 후에 MOM으로 선정되며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5. 기타

'사커걸'이라는 카페의 한 회원이[11] 비야에게 선물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보낸 선물 박스를 비야가 가지고 있는 게 사진으로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쭈구리 군단 FC 바르셀로나에서 외모가 가장 뛰어난 선수로도 종종 꼽다. 페르난도 토레스, 이케르 카시야스 등 미남 선수들이 많은 데다가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우승으로 여자 팬이 늘어난 스페인 국가 대표팀에서도 잘생긴 축에 드는 선수라 유명세를 탔다. 그렇지만 매우 가정적이며, 아내 패트리샤와 딸 사이다,[12] 올라야를 매우 챙긴다고 한다. 특히 토레스 부부와도 사이가 좋아, 둘째 딸 올라야의 이름은 토레스의 부인 올라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었다고 한다.[13]

이적 시즌만 되면 항상 폭풍의 진원지가 되는 선수이기도 했었다.[14] 그만큼 비야를 노리는 팀이 많고, 비야 이적은 축구 팬들에게 엄청난 관심이 되는 터라 이적 소문을 남발하는 언론 기사들의 목표가 된다. 칼카나마가 이런 상황을 신랄하게 깠다.

기레기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떡밥이에 맞먹는(?) 떡밥으론 바이에른의 리베리 떡밥,[15] 불프르부르크의 제코 떡밥,[16] 모스크바의 아킨페프 떡밥, 모스크바의 혼다 떡밥 등이 있다. 이래저래 스포츠 신문들만 살판나는 떡밥들이다.

6. 기록

6.1. 대회 실적


  • 레알 사라고사 (2003/04 - 2004/05)
  • 발렌시아 C.F (2005/06 - 2009/10)
    • Copa Del Lay (1) : 2007/08

  • FC 바르셀로나 (2010/11 - 2012/13)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14)
    • La Liga (1) : 2013/14
    • UEFA Champions League Runner-Up (1) : 2013/14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6.2. 개인 수상


  • 2005-2006 올해의 스페인 선수
  • 2005-2006 프리메라리가 Zarra Trophy
  • 2006-2007 프리메라 리가 최다 어시스트 선수(!)
  • 2006-2007 프리메라 리가 Zarra Trophy
  • 2008-2009 프리메라 리가 Zarra Trophy
  • 2009-2010 프리메라 리가 Zarra Trophy
  • 2008 UEFA 유로 2008 골든 부츠
  • 2008 UEFA 유로 2008 Team of the Tournament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브론즈 슈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Team of the Tournament
  • 2010 FIFA 월드컵 실버 슈
  • 2010 FIFA 월드컵 브론즈 볼

6.3. 득점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유럽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9/00스포르팅 히혼 B세군다리가 디비전B 30 12 - - - -
2000/01스포르팅 히혼 B세군다리가 디비전B 35 13 - - - -
2000/01스포르팅 히혼 세군다리가 1 0 - - - -
2001/02스포르팅 히혼 세군다리가 40 18 4 2 - -
2002/03스포르팅 히혼 세군다리가 39 20 1 0 - -
2003/04레알 사라고사 라 리가 38 17 8 4 - -
2004/05레알 사라고사 라 리가 35 15 1 2 10 3
2005/06발렌시아 C.F. 라 리가 35 25 4 2 1 1
2006/07발렌시아 C.F. 라 리가 36 15 2 0 11 5
2007/08발렌시아 C.F. 라 리가 30 18 6 1 7 3
2008/09발렌시아 C.F. 라 리가 33 28 2 1 5 1
2009/10발렌시아 C.F. 라 리가 32 21 2 0 11 7
2010/11FC 바르셀로나 라 리가 34 18 6 1 12 4
2011/12FC 바르셀로나 라 리가 15 5 3 1 6 3
2012/13FC 바르셀로나 라 리가 28 10 5 5 7 1
2013/14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 리가 36 13 4 2 7 0
2014 멜버른 시티 FC A-리그 4 2 - - - -
2015 뉴욕 시티 FC 메이저리그 사커 - - - - - -


----
  • [1] 심지어 A매치 출장 수 대비 골 기록으로는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말그대로 훨씬 우위에있다.
  • [2] 준결승전에서의 부상으로인해 결승전에서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4골을 기록, 득점왕을 수상했다.
  • [3] 네이트 인터뷰에서 사실이라고 밝혔다.
  • [4] 특히 양발을 잘 쓰고 특유의 감아차기 솜씨가 좋기 때문에 남아공 월드컵때 당시에는 측면에서 주로 뛰었다.
  • [5] 여기서 그의 결정력과 감아차기 솜씨를 맛볼 수 있다.
  • [6] Head Coach - 감독이다.
  • [7] 80분에 첫 골, 85분에 세 번째 골.
  • [8]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10-11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등등 엄청 많다. 그 중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비야가 팀 득점 7골 중 5골이나 책임져 스페인의 비야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났다.
  • [9] 라 리가 27경기 출장이지만 16경기 선발, 11경기 교체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0경기 중 5경기 선발, 5경기 교체 출장.
  • [10] 사실 생각해 보면 가장 유력했어야 할 팀이 AT 마드리드였다. 33살의 비야로서는 피지컬을 중시하는 EPL 축구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AT 마드리드는 그 전 시즌 3위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거기다가 라다멜 팔카오도 떠난 아틀레티코는 공격수 보강이 시급했던 데다, 공격수뿐만이 아니라 양쪽 윙도 소화할 수 있는 비야는 나이와 주급 같은 문제를 제외하면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었을 것이다(물론 비야의 폼 하락이 걸리긴 했을 테지만).
  • [11] 물론 여성 회원이다.
  • [12] '비야는 비야를 낳고' 등으로 축구 선수와 닮은 꼴인 2세를 소개할 때 나오는 아이다. 짤만 보고 아들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 [13] 포포투 2010년 7월 호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14] 가끔 '다비드'라 하여 같은 클럽의 잘생기고 잘하는 선수인 다비드 실바랑 엮이기도(...) 했다. 둘다 팔릴 거라는 떡밥. 그리고 10-11 시즌을 앞두고 둘 다 팔렸다(...). 실바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 [15] 사실 리베리는 지단이 좀 끈덕지게 달라붙긴 하였다. 일단은 잔류를 선언하였지만...
  • [16] 특히 밀란과 많이 엮인다. 제코 자신이 밀란빠. 하지만 결국 현질의 제왕 맨체스터 시티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