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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last modified: 2015-03-29 04:28:13 Contributors



니카라과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 니카라과 공화국(República de Nicaragua)
면적 130,373㎢
인구 5,891,199(2010)
종족구성 메스티소 69%, 백인 17%, 흑인 9%, 아메리카 원주민 5%
종교 가톨릭 50%, 개신교 40%, 기타 종교 4%
수도 마나과
정치체제 공화제
국가원수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 대통령
명목 GDP GDP 70억 5000만 달러(2011)
1인당 GDP 1,197$(2011)
GDP(PPP) GDP 185억 3300만 달러(2011)
1인당 GDP 3,147$(2011)
지니계수 0.401(2007)
공용어 스페인어
화폐단위 코르도바(Córdoba)
국가 니카라과 만세(Salva e ti, Nicaragua)
모토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En Dios Confiamos)

니콰가라 하와이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마나과(Managua).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국토면적 13만㎢로 중미에서 가장 크며[1], 인구는 약 600만 명.

Contents

1. 역사
2. 경제
3. 사회
4. 스포츠
4.1. 야구
4.2. 축구
5. 문화
6. 외교
7. 창작물
8. 여행


1. 역사

원래 메소아메리카 계통의 니카라오 족, 초로테가 족, 미스키토 족 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6세기 에스파냐의 침략으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웃나라처럼 대농장주들이 원주민을 부려먹어 그 생산물을 수출하는 형태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니카라과와 제3국의 무역을 금지하자 농장주들은 이에 반발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에스파냐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미 연방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중미 연방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고용한 미국인 백인 용병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황제 노릇을 한적이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쫓겨났고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니카라과에서 커피 산업과 바나나 산업이 나타났는데, 이들 신흥 소지주들이 감히 대지주들 땅을 뺏을 순 없었으니 원주민 땅을 뜯어갔다. 그러자 염료와 목축을 하던 대지주들도 커피와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1890년대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정부는 교회의 땅을 뺏어 커피 농장으로 만들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은 20세기 들어 다시 집권해 자유주의자들을 누르고자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세사르 산디노가 이에 저항해 게릴라 활동을 했으나 1934년 잡혀 처형되었지만, 이는 나중에 나올 산디니스타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이 무렵 국방군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으며 그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들 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연달아 니카라과의 권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 결성되었다. 소모사 족벌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기존의 기득권층은 위협을 느꼈고 소모사가 1972년 대지진 때 받은 지원금을 횡령하여 자신의 배를 치우자 소모사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그리고 1978년 소모사가 자신에 반대하던 유력지 «라 프렌사»의 페드로 차모로를 살해하자 반 소모사 운동은 더욱 강해졌고, 1979년 마침내 소모사 일당은 쫓겨났다.

산디니스타 혁명정권은 국방군을 해체하고 토지 개혁과 국유화 등을 시도하였다. GDP의 41%에 달했던 소모사 일당의 소유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에 반발해 1982년 제재 조치를 취해 세계 최대 바나나 회사가 니카라과를 떠나 큰 타격을 주었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콘트라 사건이라 불리우는 뻘짓을 감행했는데 산디니스타를 엎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밀수출해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면서 콘트라 반군이 현지에서 현물세로 걷은 코카인까지 맡아준 것이다.[2] 내전과 경제 제재로 니카라과의 경제는 막장이 되어 1989년 1인당 GDP는 1960년 수준까지 추락했고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환율이 1달러당 25,000,000 코르도바까지 갔다.

1990년 선거에서 막장이 된 국가 상황에서 인기를 잃은 산디니스타는 패배했고, 우파가 집권해 산디니스타가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산디니스타 장교 몇 명이 체포되었다. 그래도 민주화 등이 진행되었으며, 2006년 산디니스타가 선거를 통해 다시 집권하기도 했다.

2. 경제

본래 이 나라에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운하가 파질 예정이었지만 파나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6월 13일, 니카라과 의회가 중국 회사에 의한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함에 따라 니카라과에도 운하가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11년간 400억 달러(45조 원)를 투입해 길이 286㎞에 달하는 수로를 뚫는다는 계획.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중미 지역의 반미감정, 니카라과 자신의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신속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 찬반여론이 비등하고 있긴 하다. 이 기사이 기사 참조 운하 건설과 운영권 유지 기간이 백 년이라, 운하만 완공된다면 미국이 파나마에 대해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듯이, 중국도 합법적으로 니카라과에 군대를 주둔시킬 명분이 세워져 미국의 턱밑에 갑자기 중국군 기지가 건설되는 흠좀무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이 군 기지 건설까지 내다보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설령 군사기지가 세워지지 않더라도 미국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못한 상황일 듯.

2014년 1월 11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중국 기업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투자공사(HKND)과 12월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하기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전년 6월 운하 건설에 대한 잠정 합의 후 뚜렷한 움직임이 없어 연내 착공이 불투명하다는 기존 예상을 깨트리는 것이다. 이 운하의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중남미에 자국에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거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관련 기사

12월 22일, 마침내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의 주도하에 니카라과 대통령도 참석한 착공식을 시작으로 500억 달러(약 55조 원)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개시됐다. 총 길이는 약 280㎞. 컨테이너 25,000개를 실은 대형 화물선 한 척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수로 폭이 넓고 수심이 깊다. 예상 공사기간은 5년으로 2019년 말 완공, 2020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운하가 완공되면 HKND는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하 건설·관리·개발 권리를 갖게 된다.본격 미국 따라하기 HKND는 운하 인근에 도로, 항구뿐 아니라 공항,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그 분이 끝내 못다 이룬 대운하 계획이 지구 반대편에서 마침내 실현된다! GDP가 고작 4,500달러(약 496만 원)에 불과한 니카라과 정부는 운하 건설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지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여론은 거세다. 환경단체들은 운하가 지나는 니카라과 호수의 오염을 경고하고 있다. 니카라과 호(湖)는 국민들의 주요 식수원이다. 또 운하가 통과하게 되는 지역 주민 3만여 명도 운하 건설 및 개발의 여파로 삶의 터전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 북중미 나라가 그러듯이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이런 사정으로 불참한 6개국 중 하나이다. 또한, 주변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커피산업이 매우 영세한 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커피 농가들을 서포트하여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니카라과 커피는 수세식 커피로서 다른 나라 것보다 커피콩의 크기가 크고 독특한 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고유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상기했듯이 2014년 말 드디어 운하 건설이 시작되어 앙골라잠비아 같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니카라과도 운하 건설을 계기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3]

주요 수출품은 면화(25%), 쇠고기(7%), 커피(13%) 등 1차 산업이 주류를 이룬다.

3. 사회

중미에서는 그나마 치안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수도인 마나과에서도 절강도,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시내버스 승차시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차량으로 이동시는 차문을 잠그며 야간 외출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4. 스포츠

4.1. 야구

야구 인기가 많은 나라로 1891년에 Managua Base-Ball Club이란 야구팀이 창단될 정도이다.인구 600만이 안되는 나라에 야구팀이 4500개, 야구선수로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등록되어 있다.1905년 Boer란 팀이 창단되었는데 2012년에도 활동 중이다. 68년에는 자국 리그를 창설했으며 7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때 나타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데이빗 그린, 알 윌리엄스, 포피리오 알타미라노 그리고 '엘 프레지덴테' 가카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80년대에 들어선 윈터리그 형식으로 시즌이 끝난 메이저리거나 마이너리거들을 끌어들여 리그의 인기를 높였다.

니카라과가 낳은 최고의 선수는 바로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데니스는 74년에 데뷔하여 97년까지 23시즌 동안 커터와 싱커를 앞세워 통산 245승을 올렸고 올스타 4회에 선정되었으며, 1981년 다승 1위, 1991년 방어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마운드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였다. 마르티네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인 1991년 7월 2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역사상 13번째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니카라과의 전설이 되었으며 1996년에는 실제로 니카라과의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자신이 거절하였다. 데니스는 "El Presidente"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던 해에는 임시 공휴일이 선포되고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다.[4]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니카라과와 무관하지만 72년 11월 니카라과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돈으로 각종 구호물품을 싣고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이로 인해 클레멘테는 니카라과에서도 영웅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도 생겼다.

4.2. 축구

니카라과에서 축구는 야구에 비해 인기가 없고 성적도 좋지 않다.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은 없으며,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같은 작은 섬나라 들에게 져서 월드컵 예선을 탈락할 정도. 북중미 골드컵도 2009년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는데, 3패로 탈락했다.

2013년 7월 현재 피파랭킹은 162위.

5. 문화

니카라과에는 불세출의 시인 루벤 다리오가 있다. 그는 대륙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혁신적 문학운동인 모데르니스모(Modernismo)를 주도했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근대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될 만큼 독보적인 문학사적 위치를 점하고 라틴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일어난 신문학 세대 '1898년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니카라과는 2004년부터 매년 '그라나다 국제 시(詩) 페스티발' 개최를 통해 세계 각국과의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니카라과 요리의 주재료는 옥수수와 콩이며 마늘과 양파를 대부분의 요리에 사용한다.

6. 외교

대만의 몇 안되는 수교국 중 하나로 좌파 정권이 집권했더라도, 중국과 대만사이에서 양다리 외교중이다.

대한민국은 1962년부터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88년 서울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국 및 IOC 회원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사정으로 불참했다. 그러나 1993년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에서는 중남미공동관 국가로 참가했다.[5] 한때 주(駐) 코스타리카 한국 대사관이 겸임했으나 2007년부터 수도 마나과에 주 니카라과 한국 대사관이 설치되어 직무가 부분 이임되었다. 한편 니카라과 측에서는 아직 한국에 대사관을 열지 않았으며 현재 주 일본 니카라과 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북한은 1963년에 수교하였다.

이웃 코스타리카와 애증의 관계가 크다. 국민소득이 6배가 넘게 차이가 크다보니 코스타리카로 가서 니카라과인들이 일하는 게 많지만 코스타리카에선 니카라고 부르면서 경멸하는 게 크다. 임금도 안주고 온갖 인권 침해도 크다고 한다.

위에도 나와 있지만 이웃 온두라스코스타리카와 함께 커피가 국가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이다. 특히 2011년 코스타리카에서 커피 생산량이 감소한 후 그 대체제로 니카라과산 커피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 항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코스타리카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이 거의 니카라과인이었고 그들이 돌아와서 산업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7. 창작물

비디오 게임 블랙 옵스 2의 악역 라울 메넨데즈의 고향이기도 하다.

겁스 무한세계의 몇몇 평행계에는 이곳에 운하를 파져있기도 하다.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 등장하는 아만다와 치코가 FSLN 출신이다.

키드갱 최고의 명대사에 등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8. 여행

여행경보 1단계: 남색경보 발령! HELP!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국가/지역에 남색경보(여행유의)가 발령되어 있습니다.
해당 국가/지역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https]여행경보제도(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웹 사이트)의 내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이 국가/지역에 방문할 경우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미국 뉴욕 타임즈지가 2013년 방문해야할 이상적 여행지 46곳을 선정하였는데, 니카라과가 그 중 3위에 뽑혔다.
특히 카리브해의 콘 아일랜드는 외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소다.
주요 우범지대인 마나과 오리엔탈시장 인근지역은 출입하지 말아야한다. 대신 로베르또 우엠베스 시장에 많은 공예품 가게가 있고 농산물과 식료품 등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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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북한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이다.
  • [2] 참고로 이 사건은 국제법 판례에서 Nicaragua Case로 유명한 사건으로, 니카라과의 요청에 의한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 발동 주장을 부정했고, 미국의 반군에 대한 군사적, 준군사적 지원에 대해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 위반이라는 판시를 했다. 결국 1991년 니카라과에 친미정권이 수립되면서 제소가 취하됐다.
  • [3] 하지만 이 나라들은 자본 투자와 노동력 고용, 현장 관리까지 전부 중국인의 손으로 이루어져 자본 투자에 비해서 별다른 경제 개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해당 국가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중, 혐중(嫌中) 기운이 고조되기도 했다. 니카라과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 될지, 일단 지켜볼 일.
  • [4] 퍼펙트 게임 당시 다저스 투수인 마이크 모건도 4안타 완투했지만 수비실책으로 2실점하여 데니스 마르티네즈의 퍼펙트에 가려졌다.
  • [5] 같은 성격의 국가로 아프리카에티오피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