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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츠

last modified: 2015-04-09 15:19:59 Contributors

MLB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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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Atlanta Br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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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말린스
(Miami Mar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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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츠
(New York M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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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내셔널스
(Washington Natio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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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Philadelphia Phil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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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모자 로고 구단 로고
뉴욕 메츠
New York Mets
창단 1962년
연고지 뉴욕 퀸스
구단 연고지 변천 뉴욕 퀸스 (1962~)
구단명 변천 뉴욕 메츠 (New York Mets) (1962~)
홈 구장 폴로 그라운드 (Polo Grounds) (1962~1963)
셰이 스타디움 (Shea Stadium) (1963~2008)
시티 필드 (Citi Field) (2009~)
구단주 프레드 윌폰 (Fred Wilpon)
사장 사울 카츠 (Saul Katz)
단장 샌디 앨더슨 (Sandy Alderson)
감독 테리 콜린스 (Terry Collins)
월드 시리즈
우승(2회)
1969, 1986
내셔널리그 우승
(4회)
1969, 1973, 1986, 2000
지구 우승
(5회)
1969, 1973, 1986, 2006
와일드카드 획득
(2회)
1999, 2000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창단
2.2. 어메이징 메츠의 기원, 1969.
2.3. 1986년 두 번째 우승
2.4. 1990년대와 서브웨이 시리즈
2.5. 어메이징 메츠
2.5.1. 2001년 ~ 2004년
2.5.2. 2005년
2.5.3. 2006년
2.5.4. 2007년
2.5.5. 2008년
2.5.6. 2009년
2.5.7. 2010년
2.5.8. 2011년
2.5.9. 2012년
2.5.10. 2013년
2.6. 2014년~ : 끝나가는 리빌딩
2.6.1. 2014년
2.6.2. 2015년
3. 이모저모
3.1. 라이벌
3.2. 홈구장 : 시티 필드
3.3. 그 밖에
4. 영구 결번
5.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5.1. 트리플 A
5.2. 더블 A
5.3. 싱글 A
5.4. 루키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뉴욕 퀸스. 1969년과 1986년 두 차례 월드시리즈를 차지하였다. 같은 동네에 위치한 뉴욕 양키스의 위세가 워낙 센 탓에 일단 뉴욕의 No.2 정도 위치.


기적같은 두번의 우승 이후 2000년의 서브웨이 시리즈까지는 전체적으로 약팀이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는 팀이었지만, 그 이후는 대대적인 투자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2006년 한 번에 그친 데다 2007, 2008년에는 9월에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등 고비용 저효율 팀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2011년부터는 리빌딩을 진행하는 중. 그래서 이 팀은 전성기 때나 침체기 때나 어메이징 메츠로 통한다. 그 때문에 한때 이 항목은 엔하 버전 한정[1]으로 어메이징만 쳐도 검색 목록을 거쳐 들어올 수 있었다(...).

2. 역사

2.1. 창단

1962년 뉴욕에서 창단되었다. 당초 뉴욕에는 뉴욕 양키스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 모두 세팀의 야구팀이 존재했으나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50년대에 서부로 떠나버렸고 뉴욕엔 양키스 혼자 남게된다. 미국을 상징하는 뉴욕같은 대도시에 유서깊은 내셔널 리그[2] 팀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한다고 생각한 인사들이 팀 창단을 계획했다. 이 때 팀 창단에 앞장선 사람이 윌리엄 셰이라는 변호사로 메츠가 창단되고, 새 구장을 갖게 되자 홈 구장 이름을 셰이 스타디움이라 명명하는 것으로 그의 공적을 기렸다.


셰이 스타디움 (Shea Stadium)

1960년대 브랜치 리키가 주도한 제3의 리그인 컨티넨탈 리그의 출범 계획에 뉴욕의 신생팀 창단이 있었지만, 이 새 리그 출범은 메이저리그의 저지로 무산된다. 하지만, 새 구단에 대한 수요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행된 1962년의 메이저리그 확장드래프트에서 LA 애인절스, 제2기 워싱턴 세네터즈,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와 더불어 프랜차이즈를 획득, 창단하게 되었다.

팀 명은 '대도시 사람들'이라는 뜻의 'Metropolitans'에서 줄여서 Mets로 결정.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뉴욕을 대표하던 두 내셔널리그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팀의 상징색은 자이언츠의 주황색과 다저스의 파란색으로 결정. 대체적인 분위기나 역사 의식은 다저스에 가까운 편이다. 브루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저스 팬들은 다저스 대신에 메츠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도 브루클린 옆에 퀸즈가 있어 찾아가기도 쉽다.

창단 초창기 최약체였던 전력이였지만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3] 명감독 이시 스텐젤을 영입해서 차근차근 팀을 강화해 나가는것이 목표였으나.... 스텐젤 감독은 너무 늙은데다가 팀에는 너무 어리고 경험없고 실력미달인 선수들만 가득했다. 뉴욕 언론들은 메츠를 '스텐젤의 유치원'이라고 불렀고 스텐겔 감독의 메츠는 4시즌 연속 꼴찌[4]를 차지했다. 단, 흥행은 정말 대단했다. 그 형편없는 성적에도 꾸준히 관중들이 찾아줬다고. 이유는 하나. 양키스를 진짜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메츠를 응원했다. 메츠 창단 전에는 아예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했을 정도였으니[5].

2.2. 어메이징 메츠의 기원, 1969.

메츠에게도 서광이 비추기 시작하였으니 바로 1967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이자 훗날 311승을 올리게 되면서 98.8%라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최고 득표율 선수가 되는 톰 시버의 등장이 바로 그것. 1966년에는 또다른 대투수 놀란 라이언도 19세의 나이로 데뷔하지만....놀란 라이언은 메츠에서는 별 특출난것 없는 투수에 불과했고 그가 대투수의 반열에 오르는것은 1972 시즌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하면서부터이니 일단 논외. 아무튼 톰 시버는 22살인 데뷔시즌에 251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 13패 2.76의 평균자책점이라는 신인치고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찍어주면서 혜성과도 같이 등장했다. 투수 친화적인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의 특성을 감안하여 팀도 톰 시버를 주축으로 좋은 투수들 위주로 팀 전력을 강화한다는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1969년, 주전 야수들 전원이 20대이고 투수진에서도 두명빼고 죄다 20대라는 엄청나게 젊고 역동적인 선수들을 앞세운 메츠는 창단최초의 100승이자 창단최초의 지구우승을 차지하면서 창단이후 최초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간단히 스윕하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가 만난 팀은 훗날 586개의 홈런을 치게되는 프랭크 로빈슨, 역사상 최고의 공수겸장 3루수 브룩스 로빈슨, 23승과 20승을 올린 원투펀치 마이크 쿨러 - 대이브 맥날리를 앞세운 당대 최강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 모두들 볼티모어의 우세를 점쳤지만[6] 메츠는 의외로 간단히 볼티모어를 4승 1패로 꺾고 1969년 창단후 7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쾌거와 동시에 어메이징 메츠라는 명칭을 얻는다.

첫 우승 이후에도 꾸준한 투자와 선수들의 분발이 있었으나 이상하리만큼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다. 1973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한 번 차지한 것 외에는 전부 중하위권에서 맴돌았다. 에이스인 톰 시버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 평균 274이닝씩을 소화하며 제일 적게 던진게 236이닝이라는 진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무시무시한 이닝을 소화하면서 그야말로 팔이 빠져라 던져댔지만 팀 성적은 신통찮았고 결국 1977 시즌 도중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당연히 팀성적도 스타도 별 볼것없는 팀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후 톰 시버는 1983 시즌 다시 메츠로 돌아와 한 시즌 소화하지만 231이닝 3.55라는 준수한 이닝과 평균자책점에도 팀 타선이 워낙 막장이라 9승밖에 못챙긴다. 한 시즌만 뛰고 다시 메츠를 떠나야 했고 이후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은퇴한다.

여담으로, 영화 프리퀀시에서 주인공과 30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무전기 대화의 매개체가 된다.

2.3. 1986년 두 번째 우승

하지만 1983년과 1984년, 기나긴 침체의 터널에서 헤매던 메츠에게도 드디어 또 한 번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으니 바로 1983년 신인왕인 외야수 대릴 스트로베리[7]와 1984년 19세의 나이로 17승 9패 2.60평균자책점 276삼진을 기록하면서 사이영 2위와 신인왕을 석권한 닥터 K 드와이트 구든의 등장이 바로 그것. 메츠는 1984년과 85년 2년 연속 지구 2위를 기록하면서 그동안의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1986년 드디어 108승으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 실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메츠에서 데뷔했었고 기나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39세의 나이로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훼이크다 이 야구팬들아 앞으로 7년 더 뜀놀란 라이언과 이해에 인생투를 보여준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 스플리터의 장인이자 1986년 사이 영 상 수상자였던 마이크 스캇을 앞세운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승 2패로 격파.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팀은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밤비노 영감탱이의 망령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잡은 보스턴 레드삭스. 게다가 당시 레드삭스에는 41세의 톰 시버가 있었다!

시리즈는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5차전까지 3승 2패로 보스턴 우세.

6차전은 3:3 동점상황에서 연장전으로 돌입하였고 연장 10회초에서 2점을 뽑아낸 보스턴이 드디어 지긋지긋한 밤비노 영감탱이의 망령에서 벗어나나 싶었다. 1점을 내줘 5-4로 따라붙었으나 경기는 보스턴쪽으로 기울고 무키 윌슨이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매우 어메이징한 상황이 일어났으니...


이 역사적인 알까기이후 빌 버크너는 펜웨이파크로 돌아가는데 19년이 걸렸다. 이어진 7차전에서도 메츠는 보스턴을 8-5로 꺾고 두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 보스턴 레드삭스팬들 입장에서 2004년 이전까지 최고로 통탄할 순간이라면 바로 저때[8] .

2.4. 1990년대와 서브웨이 시리즈

1988 시즌에도 다시한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LA 다저스와 접전끝에 챔피언쉽시리즈에서 4승 3패로 석패. 이후 또다시 메츠는 팀 전통대로 기나긴 침체의 늪에 빠진다. 투타의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대릴 스트로베리는 각각 지나친 혹사와 마약으로 인해 젊은시절의 그 엄청났던 재능을 다 연소하지 못하고 일찍 시들어버린다.

이후 1997 시즌 이 때만 해도 명장 바비 발렌타인을 감독으로 임명하고 LA 다저스의 역대 최강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를 영입하는 등 전력을 꾸준히 보강하면서 1999년 와일드카드로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 디비전 시리즈에서 당시 최고승률팀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꺾고 챔피언쉽 시리즈에 오르지만 지구 라이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패배한다. 이어진 2000 시즌에는 전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22승을 올린 좌완 마이크 햄튼을 영입하여 햄튼- 라이터 원투펀치를 구축하고 드디어 투수진에 확실한 에이스카드를 장착하면서 다시 한번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디비전 시리즈에서 당시 최고승률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잡아내고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잡아내면서 드디어 뉴욕의 터줏대감 뉴욕 양키스와 월드 시리즈에서 대결 '서브웨이 시리즈'를 성사시켰으나 1승 4패로 장렬하게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특히 마무리 르만도 베니테스의 불쑈가 백미.

2.5. 어메이징 메츠

2000년대도 이 단어로 표현 가능하다. 안 좋은 쪽으로. 바로 아래에 있는 틀을 보고서도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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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2001년부터, 투자에 비해 결과가 심히 좋지 않고, 선수들의 부상도 자주 일어나며 결정적인 순간에 운도 안 따라주는 팀이다. 2001년부터 10년간 그들은 총연봉 전체 2위에서 6위 사이를 왔다갔다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은 한 번밖에 못 했고 5번은 5할도 못 넘었다. 같은 기간동안 부진했던 다른 팀들은 돈이라도 조금 썼지 메츠는 먹튀들 좋은 일만 시켜줬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탬파베이 레이스로 대표되는 저비용 고효율 팀과 달리, 어메이징 메츠는 고비용 저효율 팀의 상징처럼 되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팀으로 단장대인배였던 모 팀이 있다 [9]

2.5.1. 2001년 ~ 2004년

준우승 직후 시즌인 2001년 82승 80패로 뭔가 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자 프런트진은 다시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다. 당시 투타 FA 대어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박찬호 영입에도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그들은 트레이드를 중심으로 전력을 보강한다. 로베르토 알로마, 모 본, 제로미 버니츠 등 강타자들을 잇따라 영입하여 투수친화 구장인 셰이 스타디움빨을 등에 업은 투수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계획을 세웠다.[10] 그런데 저 선수들이 다 망했다. 처절하게. 2002년 75승으로 무너졌고, 모 본을 보낸 너하임 앤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고마워요 메츠 어메이징

2003년에는 바비 발렌타인 대신 오클랜드 감독으로 활약하던 아트 하우를 새로 감독으로 앉히고, 애틀랜타 선발 3인방 중 하나인 톰 글래빈도 모셔오면서 투자를 강화했지만 66승으로 더 부진했고, 2004년에는 오클랜드에서 데려오라는 단장은 안 데려오고 선발 3인방을 키워낸, 릭 피터슨 투수코치도 영입하고 일본에서 MLB에 제일 잘 적응할 선수로 평가받던 마쓰이 가즈오를 데려온다. 하지만 릭 피터슨은 제구 난조를 보이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빅터 잠브라노를 '10분이면 고친다'면서 영입하고 유망주 투수를 내준다. 그는 스캇 카즈미어.[11] 마쓰이도 공수에서 삽을 들었다. 71승. 메츠는 결국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동안 정말 처절한 성적을 보여준다. 2003 시즌 중반 서재응이 혜성처럼 등장해 투수진에 힘을 보탰지만 역시 별 무소용. 이때쯤 활성화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메츠답다','셰이 스타디움엔 수맥이 흐른다'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역시 어메이징

2.5.2. 2005년

아트 하우 감독하에서 처절한 성적만 올리자 팀은 2005 시즌을 앞두고 오마 미나야를 단장으로, 윌리 랜돌프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미나야는 히스패닉 팬들을 공략하기 위해 당시 FA 투타 최대어였던 카를로스 벨트란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영입, 2005년 83승 79패로 드디어 괜찮은 성적을 올린다. 벨트란은 첫해에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게다가 메츠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나긴 침체기끝에 등장하는 혜성과도 같은 신인이 드디어 등장하는데 바로 데이비드 라이트호세 레이에스.

2.5.3. 2006년

이같은 성적에 고무된 프런트는 다시 현질타임 거금을 들여 카를로스 델가도, 빌리 와그너, 등등 이름값있는 선수들은 죄다 끌어모아서 반격을 노리게 되고 2006년, 팀은 시즌 내내 에이스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부상이외에는 이렇다할 마이너스요소없이, 게다가 첫 해 부진했던 벨트란마저 다음해 완벽히 부활하면서 순풍에 돛단듯 시즌내내 잘나가면서, 97승으로 넉넉한 격차로 내셔널리그 승률 1위를 했다. 당시 내셔널 리그 최강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6년만에 서브웨이 시리즈를 재현하는가 하는 기대감을 품게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메이징

하지만 저쪽에서 일단 뉴욕 양키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나가떨어지고, 메츠는 83승으로 플레이오프에 간신히 올라온 세인트루이스와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맞닥뜨린다. 하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철벽 마무리 빌리 와그너가 일본인 대수비요원 다구치 소[12]에게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넉아웃. 7차전에서는 스캇 롤렌의 홈런성 타구를 엔디 차베즈가 잡아내고 스캇 롤렌의 에러로 만루 상황을 만들면서 뭔가 되는 팀은 다 되는 것처럼 흐르다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결국 9회초 포수 야디어 몰리나에게 2점 홈런을 맞았고, 9회말에도 2사 만루 상황에서 웨인라이트가 벨트란을 커브로 루킹 삼진으로 잡아내며 시리즈를 내주었다. 역시 어메이징 서브웨이 시리즈 그런거는 우리한테는 있을수가 없어. 덕분에 웨인라이트와 야디어 몰리나는 메츠 홈경기만 가면 야유 받는다.

2.5.4. 2007년

하지만 전력만큼은 여전히 내셔널리그 최강이라 2007 시즌에도 역시 시즌내내 순항하는데... 9월 12일에 7경기차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앞서던 그들은 이후 5승 12패...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엄청나게 내달리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만 남겨둔 상태에서 결국 동률. 이 마지막 한경기에서 필리스는 이기고 메츠는 선발인 톰 글래빈이 1회에 떡실신 당하면서 결국 필리스에게 통한의 역전 지구우승을 내주게 된다. 2011년 보스턴 레드삭스 못지 않은 추락이었다. 161경기동안 1위하다가 1경기 2위해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역시 어메이징

2.5.5. 2008년

전년도의 충격을 딛고 2008년에는 AL 사이영상 2회에 빛나는 제2의 외계인 요한 산타나까지 데려와 시즌내내 순항하지만... 또다시 9월 들어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내달리고 메츠는 또 가라앉으면서 2년연속 대역전(...) 언론은 또다시 이런 제목을 뽑는다. 어메이징 메츠. 역시 어메이징 참,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2.5.6. 2009년

2009 시즌을 앞두고 정든 셰이 스타디움을 떠나 새 구장인 시티 필드로 옮겼다. 시티 필드가 개장할 즈음에 시티금융그룹정부지원을 받고 있던,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구장명 사용권을 철회하겠다고 얘기했다가 결국 철회는 없었던 일로 넘어가는 등 시즌 개막도 하기 전부터 뒤숭숭하더니, 어떻게 팀을 꾸리나 싶을 정도의 참담한 부상행렬[13] 때문에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70승 92패로 동부지구 4위로 마감했다. 게다가 시즌도중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이 무려 7억달러짜리 사기도 당했다. 묵념(...) 그리고 2009 시즌 최고로 어메이징한 장면은 다름 아니라 이것과 이것[14]이었다. 물론 두 경기 다 패배 어메이징

2.5.7. 2010년

2009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은후 오프시즌에 FA시장 타자 최대어인 제이슨 베이를 영입하는 등 이번에도 어김없이 투자에 의욕적으로 덤벼들었다. 2010년엔 요한 산타나가 부활했고, 호세 레예스데이빗 라이트,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등 주축급 선수들이 제몫을 해줬지만 정작 중심타자인 카를로스 벨트란은 부상으로 말아먹었고 FA로 영입한 강타자 제이슨 베이가 똑딱이로 변신하는 안습의 시즌을 보냈다. 게다가 시즌 하반기엔 K-로드가 장인 폭행건으로 인해 출장정지 징계를 먹었고 요한 산타나는 시즌 아웃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역시 어메이징

결국 2010 시즌은 워싱턴 바로 위...그 선수들을 가지고 플로리다보다 못했다. 그나마 단장 미나야를 국제 스카우트 쪽 일로 돌려서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하나. 그나마 신인인 아이크 데이비스와 니스, 너클볼러 R.A. 디키가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야말로 리빌딩 상태. 2011 시즌을 앞두고 마 미나야를 해고하고 빌리 빈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디 앨더슨을 단장으로, 콩단장의 오른팔이였던 디포데스타를 부단장으로 데려왔다.

오마 미나야의 히스패닉 팬층 공략은 백인 팬들의 외면을 불러왔고, 영입한 히스패닉 선수들도 부상으로 골골대서 미나야의 한계를 드러냈다. 미나야가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에 적은 돈으로도 괜찮은 성적을 냈다는 것을 감안하고 메츠에서 다시 데려왔는데 결과론적으론 실패였다. 미나야 입장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월드 시리즈 우승 한번 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팀을 운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메츠 입장에선 돈은 돈대로 쓰고 우승을 못했으니 비판받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15]

2.5.8. 2011년

2011년에는 요한 산타나가 어깨 부상으로 1년 내내 결장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고, 결국 워싱턴 내셔널스에도 밀리며 지구 4위로 마감했다. 리빌딩과 샐러리 덤핑 차원에서 밀워키 브루어스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팔았고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연봉조정신청이 불가능하여 보호 픽을 잃을 위기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의 트레이드에 성공했다. 호세 레예스가 타격왕에 오르며 맹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점철된 시즌을 보낸데다 마지막 날의 졸렬한 타율관리로 인해 명성에 흠집이 간채 FA가 되었다. 결국 레예스도 마이애미 말린스와 6년 $106M의 계약을 맺고 떠나고 말았다. 아아 메츠 망했어요.

2.5.9. 2012년

2012 시즌은 팀 전반적으로 말이 필요없는 수준의 막장 팀이었다. 6월까지는 워싱턴, 애틀랜타와 지구 우승을 겨루는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로 나락에 빠지더니 7월 중순부터는 호흡기가 끊어지며 아예 망해버린 것이다. 이 기간에 거둔 성적은 눈 뜨고 못봐줄 수준인 1승 12패. 메츠의 타선은 근래 몇 년돋안 리그 최악의 타선을 자랑했다. 특히 2010년대 넘어선 이후로, 홈 구장을 시티 필드로 옮긴 후에는 장타력이 급감하며 미네소타 트윈스 수준이 되었다. 이 문제를 고쳐보겠다고 펜스를 당겨서 효과를 보긴 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팀 홈런 개수는 11위, 가뜩이나 팀 순위도 낮은 데 두 자리수 홈런 타자는 딱 4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타율 3할 달성 타자는 데이비드 라이트 한 명 뿐. 팀 타율로 10위로 저조했고 공격 부문 각종 지표에선 10위권 내에 드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라이트를 중심으로 루벤 테하다, 다니엘 머피, 아이크 데이비스, 스캇 헤어스톤 등이 힘을 쓰긴 했지만 2% 부족했다. 아이크는 30개가 넘는 홈런을 쳐냈지만 개공갈이었고, 헤어스톤은 출루율이 너무 낮았으며 머피는 장타력이 부족한 똑딱이였다.

  • 머피 : 타율 .291, 홈런 6개, 타점 65점, 도루 10개, 출루율 .332, 장타율 .403
  • 헤어스톤 : 타율 .263, 홈런 20개, 타점 57점, 출루율 .299, 장타율 .504
  • 데이비스 : 타율 .227, 홈런 32개, 타점 90점, 출루율 .308, 장타율 .462

투수진은 더 심각해서 R.A.디키와 존 니스를 뺀 선발진은 모두 나가 떨어졌다. 요한 산타나는 초반엔 진짜 산타나 복귀를 보여주며 노히트노런까지 보여주더니, 필립 험버마냥 그걸 천운으로 다 썼는지 그 이후로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2012년에도 가짜 산타나가 되어 버렸고, 크리스 영은 퇴물이었고, 딜론 지도 얼마 못 버티고 시즌아웃 해버렸다. 그래도 맷 하비가 후반부에 올라오며 좋은 모습을 보여줘 메츠 팬들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59.1이닝, 3승 5패, 평균자책점 2.73) 이렇게 선발이 망했으면 불펜이라도 버텨야 하는데 마무리인 프랭크 프란시스코는 란시스코였고 (42.1이닝, 1승 3패, 평균자책점 5.53)나머지도 그저 방화범들. 덕택에 팀 평균자책점 11위를 달성했다.

2.5.10. 2013년

오프시즌에 프랜차이즈 스타 데이비드 라이트와의 연장계약에 성공했으나 디키와의 연장계약에는 실패하며 디키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했다. 다만 이 트레이드는 전문가 팬 공히 메츠의 윈으로 평가하는 트레이드이다. 아무리 사이영 위너이고 선수생명이 긴 너클볼 피처라지만 나이 40 가까운 투수를 보내주면서 상대 팀 팜을 싹 털어먹어서 본격적 리빌딩 행보로 들어간 메츠에 힘을 실어주는 트레이드라는 평가이다. 실제로 토론토 포럼 내에서도 전력 강화는 좋은데 너무 퍼줬다는 의견이 대세이고 메츠 포럼은 3년 뒤를 기대해볼만 하다는 반응.

74승 88패 (NL 공동 10위)
타/출/장 : .237(14)/.306(13)/.366(14), 득점 11위, 도루 3위, 홈런 11위
팀 평균자책점 3.77(8위), 선발 7위, 불펜 12위
팀 수비력 6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팜 유망주 랭킹 30개 팀 중 16위 (2013년 8월 1일 기준)

여전히 리빌딩 상태였다. 하지만 선발진은 시즌 초 요한 산타나가 다시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상닿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2012년 후반에 데뷔한 맷 하비가 에이스로 거듭난 영향이 컸다. 그는 시즌 초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제대로 폭주하며 사이영 레이스에 끼어들어 메츠 팬들을 설레게 했다. 시즌 성적은 9승 5패 평균자책점 2.27. 여기에 론 지존니세 존나세 니스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카를로스 벨트란의 유산, 잭 휠러도 시즌 중반 승격되어 7승 5패 3.42의 준수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8월말에 맷 하비의 팔꿈치 인대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지친다 지쳐 처음에는 수술을 피하고 재활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10월 22일 토미 존 서저리 받았다. 2014 시즌은 재활로 날리게 되었다. 동시에 2014년도 리빌딩 확정

불펜은 클로저 바비 파넬이 8월에 부상으로 시즌을 접으면서 72년생의 라트로이 호킨스가 마무리를 봐야 했을 정도로, 노장들을 중심으로 간신히 막는 수준이었다. 타선은 여전히 라이트와 아이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니엘 머피가 분전했지만 그럭저럭 해주는 주전 2루수 이상은 아니었으며, 아이크 데이비스는 공갈포도 쳐주지 못했다. 오히려 노장 말론 버드와 존 벅의 깜짝 활약이 그나마 팀 타선을 이끌어 줬다. 시즌 후반 유망주 타자들이 상당수 메이저에 올라왔지만 유망주 포수 트래비스 다노 외에는 대활약을 할만한 선수는 많지 않은 상태였다.

현재 뉴욕 메츠시카고 컵스는 공통점이 많다. 리빌딩 중인 빅마켓 팀으로서 두 팀의 단장은 모두 머니볼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인물들. 그리고 두 팀 모두 팀 사정상 2015년이 타겟이다. 현재 컵스의 리빌딩이 타자 유망주 수집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메츠는 선발진을 젊고 우수한 선수들로 리빌딩을 거의 마쳤다. 하비-윌러-지-니스에 또다른 유망주 노아 신더가드와 올해 좋은 모습을 보인 제레미 헤프너의 복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2-3년 뒤 메츠 선발진이 NL 탑에 올라도 전혀 놀랍지 않은 수준.

반면 타선은 데이비드 라이트도 나이를 먹어가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동시에 타선을 구성하고 있는 슈퍼스타급은 아닌 젊은 선수들이 꾸준히 노력하며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불펜 역시 클로저 바비 파넬 외에는 믿을 만한 선수가 없는 상태에서 적절한 보호와 영입이 필요한 상태.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선수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올해만 해도 에이스와 중심타자, 마무리와 중간 선발이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겪었다. 시티 필드에도 수맥은 흐른다 게다가 타자 쪽 유망주가 쌓여 있는 컵스와 달리 메츠는 더이상 올라올 유망주는 많지 않은 상태. 완성 단계에 올라온 리빌딩의 마무리를 위해 단장과 감독이 공들여야 하는 상황.

2.6. 2014년~ : 끝나가는 리빌딩

2.6.1. 2014년

팀의 영건 맷 하비가 일치감치 시즌을 쉬는것이 확정된 가운데, 메츠는 오프시즌에 바톨로 콜론을 2년 20M, 커티스 그랜더슨을 4년 60M, 크리스 영(3번 항목)을 1년 7.25M에 각각 영입했는데, 하나같이 노장이거나 부진했던 선수들이라 비싸다는 평이 많다. 그럼에도 넘치는 1루수 자원은 아직 트레이드시키지 못했고 구멍인 유격수와 불펜은 강화하지 못했다. 선발진이 준수해도 성적을 내려면 타선과 불펜의 뒷받침이 필요할 텐데 현재까지의 영입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은 편.

이 외에도 호세 발베르데, 마쓰자카 다이스케, 존 래넌, 카일 판스워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트레이닝에 초청하였다. 발베르데와 래넌은 개막전 로스터에 들었고 마쓰자카와 판스워스는 우선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낸 채 시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였던 바비 페넬이 1경기만에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은 토미 존 수술을 받기로 하면서 일치감치 시즌아웃되었고, 발베르데가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결국 페넬은 60일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하였고 빈 자리는 판스워스가 벤치 클리어링 리더로서 채우게 되었다.

다른 초청선수 출신이었던 래넌은 4이닝을 던지면서 7실점을 하며 15.75라는 위엄돋는 방어율을 기록한 체 4월 16일 결국 트리플A로 강등되었고 그 빈 자리를 마쓰자카가 채우게 되었다. 다만 선발투수진은 제이컵 데그롬이라는 신인을 발굴해 낸 것이 큰 수확이라 하겠다.

4월 18일에는, 1루수로서 그닥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이크 데이비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2명의 유망주를 받는 조건이며 1명은 추후지명선수인데 이 추후지명선수가 메인선수이며 2013 드래프트 출신이라는 점으로 볼 때, 추후지명선수는 2013년 피츠버그의 상위 순번에서 지명되었던 선수일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는 6월 이후에나 트레이드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6월 18일 기준으로 31승 40패로 리그 꼴지를 기록하고 있다. 기존의 영입인 호세 발베르데, 일 판 스워스, 존 래넌은 시즌 중간에 방출될 정도로 팀에 별 도움이 안되었고, 타자쪽의 영입인 크리스 영이나 커티스 그랜더슨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내고 있다. 다만 바톨로 콜론은 40이 넘은 나이에도 이닝소화 능력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고,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계투와 선발을 넘나드는 활약을 보이는 중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라이트를 포함한 주전 타자 대부분이 낮은 타율과 장타력도 별로 뛰어나지 못해 NL 하위권에 드는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것이 아직도 문제. 투수진은 타자진에 비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편[16].

79승 83패 (NL 공동 7위)
타/출/장 : .239(13)/.308(9)/.364(12), 득점 8위, 도루 7위, 홈런 9위
팀 평균자책점 3.49(6위), 선발 8위, 불펜 4위
팀 수비력 9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이 팀도 좋아지고 있다. 선발진이 강한 것이 장점인데 기존의 존니스와 딜론 지, 여기에 잭 윌러가 풀타임 선발로 첫 시즌을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도 신인 제이콥 데그롬까지 터진 게 고무적이다. 라파엘 몬테로도 시즌 끝무렵에 선발 수업을 받았고, 2015 시즌 맷 하비도 돌아오면 선발은 젊고 질과 양 모두 충분하다. 튼튼한 선발진이 예상되었던 바라면 불펜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토레스, 파밀리아, 블랙 등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무리 메히야도 선발에서 마무리로 돌아간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멤버들 다수의 경험이 적다는 것은 잠재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타력도 나아졌다. 아이크 데이비스를 보내고 주전 1루수로 낙점받은 루카스 두다가 30홈런 92타점으로 빛났고 머피는 수비가 부족하긴 해도 컨택 장타 주루 두루 갖춘 플러스 플러스 공격력의 2루수로서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수비 괴물 중견수 라가레스는 공격에서도 한단계 더 나아갔다. 새로운 주전포수 트래비스 다노 역시 새로운 공격형 포수의 등장을 알렸다. 문제점은 그랜더슨이 몸값에 비해 아쉬운 활약을 했고, 유격수 루벤 테하다가 분전했지만 역시 강팀 유격수로는 조금 아쉬우며, 좌익수 자리는 사실상 마땅한 주전감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팀의 코어인 데이빗 라이트 역시 다시금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내셔널스 외에 같은 지구 팀들이 헤매는 중이기도 하고, 맷 하비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2015 시즌 당장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좌익수는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 유격수도 보강하면 더 좋다. 이닝소화력은 아직 여전한 콜론을 트레이드하거나, 아니면 다른 선발자원을 트레이드해서 좌익수와 유격수를 보강하는 트레이드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대형 유격수와 좌익수를 보유했지만 투수진이 후달리는 어느 산동네 팀이 많이 언급되는 중.

2.6.2. 2015년

오프시즌을 비교적 조용하게 보냈다. 윌폰 구단주가 여전히 페이롤을 낮게 묶으라고 지시했다, 2014 시즌의 커티스 그랜더슨 계약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앨더슨 단장이 움직이는 데 제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인 타격을 보완하기 위해 FA에 돈을 쓰거나 넘쳐나는 선발투수 유망주를 트레이드해야 할텐데 어정쩡하게도 이클 커다이어를 2년 21M으로 영입했다. 이제 36살이 될 79년 3월생 좌익수를 얻기 위해 1라운드 유망주 픽까지 희생했다는 것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커다이어의 타격은 쿠어스 필드에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은데다 2014 시즌 부상으로 49경기밖에 못 뛴 선수에게 과다한 지출을 했다는 의견이 중론. 여기에 선발진 트레이드도 과감하게 신더가드나 잭 윌러를 포기하고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꾀하기보다는 소소하게 콜론이나 딜런 지를 내보내는 선에서 그칠 모양새.

리빌딩도 마무리 지어가는 추세인것 같으니 이제는 성적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인데...만에 하나 이번 시즌에도 하위권에 머물러야 한다면 윌폰 구단주는 까야 제맛 항목에 입성할 채비를 해 둬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이후 벌써 30년이 가까운 세월을 우승을 못했으니만큼 이제는 "가을야구 좀 하자!!"라는 얘기가 팬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이 문제.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맷 하비가 시범경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기대를 높였으나 좌완 불펜 요원 조시 에진, 그리고잭 휠러까지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다.

한국시간으로 4월 7일에 일제히 시작된 2015년 개막전에서 선발 바톨로 콜론을 내세워 워싱턴 내셔널스에 3대 1 역전승을 일궈내 시즌 첫 승으로 162경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3. 이모저모

3.1. 라이벌


라이벌은 역시 뉴욕을 같이쓰는 뉴욕 양키스.......라고 하기엔 메츠가 커리어적인 요소에서 너무 딸린다. 당장 우승횟수만 해도 27 vs 2(...) 하지만 뉴욕빨 때문에 라이벌로 인정해주는 편. 양키스가 자리잡은 브롱스는 뉴욕 시에서도 중산층이 사는 곳이지만 메츠가 자리잡은 플러싱과 퀸즈는 서민층 혹은 동아시아계 이민자가 거주하는 곳이라 두 팀의 팬덤 형성이 다르다. 당장 2000년 월드시리즈만해도 1956년 양키스와 다저스와의 서브웨이 시리즈 이후 44년만에 서브웨이 시리즈여서 뉴욕 전체가 난리였다.

또한 90년대 내내 메츠의 앞길을 막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라이벌[17][18]이고 2007년과 2008년의 대참사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급격히 주적으로 떠오르고 있다.[19] 그런데 수많은 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천지를 찾아 서부로 떠난 과거 하며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도시인 뉴욕 vs 로스앤젤레스라는 구도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는 그다지 라이벌 플래그가 서 있지 않은 것도 신기하다.[20] 오히려 브루클린 시절의 다저스의 역사를 놓고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대립하기 보다는 상호 보완하면서 협력하는 관계. 그리고 전통적으로도 두 팀의 선수 트레이드가 잘 이뤄지는 편이다.

3.2. 홈구장 : 시티 필드


3.3. 그 밖에

최초로 미국이외의 지역에서 개막전을 한 두팀 중 한팀이다. 나머지 한팀이야 당연히 그 개막전 상대팀(...)인 시카고 컵스. 2000시즌 개막전을 일본 도쿄돔에서 했다. 이후 2003년 뉴욕 양키즈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도쿄돔에서 다시한번 개막전을 했고 2012년 시애틀 매리너스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도쿄돔에서 개막전을 치렀다.

4. 영구 결번

팀의 영구결번은 4명이며 다음과 같다.

14. 길 호지스 (Gil Hodges): 선수로는 메츠에서 딱 1년 뛰었을 뿐이고, 감독으로 더 명성을 얻었다. 1969년 첫 우승 당시 감독.

37. 케이시 스텐젤 (Casey Stengel) : 사실 뉴욕 양키스에서 더 명성을 얻은 감독이지만, 창단 초기의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인 듯. 양키스에서도 영구결번되었다. 별명은 노교수님.(Old Professor)

41. 톰 시버 (Tom Seaver): 통산 311승을 자랑하는 메츠 최고의 스타. 별명도 그래서 더 프랜차이저. 메츠 첫 우승의 주역이며, 2011년까지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유일한 인물. 명예의 전당 입성 당시 기록한 최고 득표율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42. 재키 로빈슨 : 전구단 영구결번. 여담으로 생전의 로빈슨은 다저스의 연고이전을 강력하게 반대했던지라 다저스를 이은 메츠와는 이런저런 소소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사후에도 여러가지로 소소하게 엮여있다.

그 외 팀의 창단에 공헌한 윌리엄 셰이(William Shea)도 따로 기리고 있다. 2008년까지 쓰던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의 셰이가 바로 그것이다. 시티 필드 이전 후에는 따로 Shea라는 로고를 영구결번 옆에 붙여두고 있다.

한편 2012 시즌 한정으로 2011-12 오프시즌에 운명을 달리한 게리 카터의 8번과 그의 별명인 'KID'가 새긴 홈플레이트 모양의 패치를 외야 펜스와 선수 유니폼에 붙여 기리고 있다.

5.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5.1. 트리플 A

라스베가스 피프티원즈
Las Vegas 51s
창단 1919년
계약년도 2013년
소속 리그/지구 퍼시픽 코스트 리그/퍼시픽 컨퍼런스/남부지구
연고지 네바다라스베가스
홈구장 캐시맨 필드

5.2. 더블 A

빙햄턴 메츠
Binghamton Mets
창단 1962년
계약년도 1992년
소속 리그/지구 이스턴 리그/동부지구
연고지 뉴욕 주 빙햄턴
홈구장 NYSEG 스타디움

5.3. 싱글 A

세인트루시 메츠
St. Lucie Mets
창단 1988년
계약년도 1988년
소속 리그/지구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플로리다 주 포트 세인트루시
홈구장 트레디에이션 필드

서배너 샌드네츠
Savannah Sand Gnats
창단 1984년
계약년도 2007년
소속 리그/지구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조지아 주 서배너
홈구장 그레이슨 스타디움

브루클린 사이클론스
Brooklyn Cyclones
창단 1986년
계약년도 2001년
소속 리그/지구 뉴욕 펜 리그/맥나마라지구
연고지 뉴욕루클린
홈구장 MCU 파크

5.4. 루키

킹스포트 메츠
Kingsport Mets
창단 1921년
계약년도 1980년
소속 리그/지구 애팔래치안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테네시 주 킹스포트
홈구장 헌터 라이트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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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즉, 리그베다 버전에서는 불가능함.
  • [2] 내셔널 리그는 아메리칸 리그보다 20년 앞서 출범했으며 그래서 한동안 내셔널 리그가 신참인 아메리칸 리그를 깔보는 풍조가 있었다. 지금도 미국 야구 속어로 내셔널 리그는 유서깊은 고참들의 리그라는 뜻으로 시니어 서킷(Senior Circuit), 아메리칸 리그는 급작스레 모인 신입 듣보잡들이 모인 리그라는 뜻의 주니어 서킷(Junior Circuit)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 [3] 사실 양키스 역사에서 베이브 루스 영입 이후 전성기가 아닌 시점은 1960년대와 1980년대 중반, 1994년까지 밖에 없긴 하지만.
  • [4] 40승 120패, 51승 111패, 53승 109패를 세 시즌 연속 기록하고 31-64를 기록한 1965 시즌 도중 경질
  • [5] 뉴욕 주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양키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절대다수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뉴욕 역시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 존재한다. 사실 이것도 빠가 까를 만든다의 한 좋은 보기인데 월드시리즈를 무려 20회 넘게 했으면서도 월드시리즈 아니면 안된다는 일부 빠들 때문에 진저리가 나 돌아선 경우도 있고 보스턴 지역에 살다가 이주한 이주거민들도 섞여있는 터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약자에 대해 동정심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 [6] 다만 타선은 비교가 안됐지만....투수력만큼은 25승 2.21의 톰 시버와 17승 2.28의 제리 쿠즈만등을 앞세운 메츠가 좀 더 낫다는 평가였다.
  • [7] 뉴욕 메츠가 1980년 드래프트에서 미래의 올스타급 외야수라면서 확신에 차서 선택했던게 바로 대릴 스트로베리와 빌리 빈이었다. 당시 대릴 스트로베리는 1픽 그리고 빌리 빈은 23픽. 그러나 빌리 빈은 선수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 [8] 여기에 레드삭스 팬들이 고혈압을 일으킬만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빌 버크너는 경기를 뛸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버크너는 발목부상등 여러가지 부상을 당한 처지라 1루수로 데이브 스테이플튼을 기용했었는데 당시 감독이던 존 맥나매라가 통 크게 쏘시겠다고 느닷없이 버크너를 기용한 것. 이것은 맥나매라 감독이 지른 삽질중 하나다
  • [9] 단장이 갈려나간 2011년부터는 리빌딩이 시작되었으나 2011-2013년은 팀 사정이 여전히 많이 좋지 않았기에 한데 묶는다.
  • [10] 근데 정작 에이스인 마이크 햄튼은 콜로라도에 뺏겼다. 그 결과는....
  • [11] 카즈미어는 탬파베이를 나가서는 부진했지만 탬파베이에서 5년간 53승을 올린 준수한 선발이 되었다. 반면 잠브라노는 메츠에서 10승 14패. 못 고쳤다.
  • [12] 미국 진출 이전에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이치로와 함께 외야의 핵으로 뛰던 선수였다. 카즈에서는 붙박이 주전까지는 아니지만 쏠쏠한 대타, 대수비요원을 거쳐 꽤 많은 출장경기수를 보장받았고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처음 진출했을때의 기대치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 [13] 베스트 9중 데이비드 라이트를 제외한 8명과 에이스 1선발인 요한 산타나 및 마이크 펠프리 등 로테이션의 반이 '동시에' DL에 있기도 했다(...)
  • [14] 특히나 후자의 사건은 120년이 넘어가는 MLB 역사상에서도 단 세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인 끝내기 무보살 삼중살이다.
  • [15] 테오 엡스타인이 2004년 우승 청부사들 불러모아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 자신의 재량권을 가지고 레드삭스를 운영했던 예가 있다.
  • [16] 사실 투수진은 타자진에 비해 준수한 편이다. 조너선 니스, 잭 윌러, 그리고 올 시즌 무서운 신인으로 돌풍을 일으킨 재이컵 데그롬등 타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수술을 받고 재활중인 맷 하비까지 복귀하면 그야말로 남부럽지않는 선발진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불펜의 보강과 타자진 강화인데 데이비드 라이트가 노장으로 변해가는 중이라 이를 보완할 타자들의 수급이 당면과제가 될 전망이다.
  • [17] 브레이브스 팬들은 원래부터 메츠와 영 사이가 안좋았는데, 특히 2002년 오프시즌에 통탄할 일이 벌어진다. 20세기 말 애틀랜타 다이너스티 로테이션의 핵심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톰 글래빈을 메츠가 가져가서 5년 동안 굴려먹고 300승 마일스톤 달성의 순간을 메츠 유니폼을 입힌 채 치르게 했다고 통탄을 금치 못한다. 뭐 그와는 별개로 중간에 제프 프랑코어라든지 트레이드도 있긴 했다만...예외로 치퍼 존스는 셰이 스타디움의 원정경기 성적이 좋았던 나머지 득남하고 난 후 아들 이름을 '셰이'라 지었다.
  • [18] 다만 브레이브스 팬들에게는 바비 발렌타인이 2001년 경질되었다는 사실이 한으로 남아있을것이다. 예전부터 메츠가 탐 글래빈을 원했지만 거절당한 이유가 발렌타인 감독 때문이었다고 하니 뭐.
  • [19] 빌리 와그너의 필리→메츠 계약 등 2007년 이전, 아니 훨씬 옛날부터 사이가 영 꽝이다. 지미 롤린스는 허구헌날 메츠 디스질 해대고, 메츠에서 연봉 값 못한 주제에 필리스와 계약하여 월드시리즈까지 나선 외계인 때문에 메츠 팬들은 더욱 뒷목잡는다.
  • [20] 두 팀 다 기본적으로 악의 제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기고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