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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삼국지)

last modified: 2016-04-29 19:52:03 Contributors

Contents

1. 魯肅
1.1. 개요
1.2. 미디어 믹스
2. 魯淑


1. 魯肅

의 대도독
주유 노숙 여몽 육손 주연 제갈각 손준 손침 주적 육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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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생몰 172 ~ 217

1.1. 개요

魯肅. 후한나라의 인물로 삼국지의 등장인물. 생몰년도 172~217년. 는 자경(子敬)으로, 주유여몽, 육손 등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도독 중 한 사람이다.
적벽대전을 승리로이끈 주유, 관우를 책략으로 죽인데다 본인이 맹장이었던 먼치킨 여몽,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관광보낸 육손에 비하면 포스가 조금은 떨어져보이나 그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 등의 영향으로 인해 문사(文士)의 이미지가 강하다. 심지어 삼국지의 대표적 빠가(...)라는 말도 안되는 이미지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노숙은 무관과 관련된 관직에 종사했었고, 주유 사후 이 되어 전군을 통솔했다. 오서에서는 관직을 준다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원술에게서 도망칠 때 노숙이 활을 쏘아 방패를 관통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육전은 노숙이 뛰어나다며 노숙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나 노숙이 도독이 되어 관우와 대치하는 등의 무관의 모습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그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은 없는 반면에 촉나라와의 외교와 관련된 일에서 주로 활약하기 때문에 문관으로 오해되어 왔다.

임회군 동성현 사람으로, 재산이 많은 유력자였다. 주유가 군량미 지원을 요청하자 한 번에 자신이 갖고 있던 쌀의 50%를 증여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일화는 훗날 '친구에게 분연히 돈을 빌려준다.'라는 뜻을 가진 지균상증(指囷相贈)이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됬다. 이뿐만 아니라 노숙은 자신이 소유한 농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였다. 이러한 재산이 많으나 이에 얽매이지 않는 노숙의 넓은 아량과 높은 인품은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노숙과 친분을 쌓았다.

유엽 역시 노숙과 친분을 갖고 있던 인망높은 인사였다. 어느 날, 유엽이 정보(鄭寶)라는 사람을 섬기자고 권유했는데,- 정작 유엽은 훗날 이 정보를 베어 죽인다.- 노숙은 이에 동조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 위해 - 그는 원술에게서 도망칠 때 모친을 곡아에다가 모셨는데, 이후 조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인 동성현으로 돌아가야 했다.- 강동을 들렸다. 강동에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주유가 노숙을 찾아 그에게 손권을 섬길 것을 권유하였다. 노숙은 주유의 권유를 받아들여 손권에게 출사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다. 주유가 노숙에게 손권을 섬길 것을 권유하였을 때, 노숙은 유연과의 약속을 털어놓으며 주유의 권유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주유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지금은 신하가 주인을 선택할 때라며 유엽의 말을 무시해도 된다며 노숙을 설득했다. 이는 정확히는 복파장군 마원의 말을 인용한하여 노숙을 설득한 것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든 지금으로든 꽤나 혁신적인 생각이다.

노숙과 손권이 처음 서로를 대면하던 날에 손권이 노숙에게 나는 어떻게 나를 보좌할 것이냐고 묻자, 노숙은 '조조라는 항우가 있기 때문에 손권은 제환공이나 진문공이 될 수 없다'며, "강동을 차지하고 형주를 병합하여 제왕을 칭하고 천하통일을 꾀하는 한고조의 사업"이 손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갓 계승하여 위태로운 손권에게 황제가 되어라는 것이다. 손권은 한왕실을 보좌하기만을 원한다면서 이를 합당하지 않다고 물리쳤지만, 내심 기뻤을 것이 뻔하다. (후술하겠지만 이 일로써 후일 손권은 노숙을 후한의 개국공신인 와 비기게 된다.) 다만 장소는 노숙이 겸손하지 않고 불만스러워하며 나이가 어리고 거칠어서 임용할 수 없다며 손권에게 상소를 올렸다 한다. 이러한 노숙과 장소의 악연은 적벽대전까지 계속된다.

노숙은 손권 진영의 대표적인 친유비파였다. 조조가 남하하여 오를 노리자, 주전파의 선봉에 서서 파양에 나가있는 주유를 부르고- 흔히 알려져 있듯 오국태가 생각난 손권이 주유를 부른 것이 아니다. 정사의 오국태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 망인이었다.- 유비와의 동맹을 이끌어 내고, 제갈량과 함께 미적거리는 손권을 설득해내- 배송지는 여기서 주유전과 제갈량전을 아주 신랄하게 까고있다. 보면 알겠지만 참 적나라하다...- 적벽대전에서 참군교위(참모장)를 맡아 조조군을 궤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상 유표가 죽을 때부터 빠르게 손을 써 유비와 손을 잡은 것도, 그를 바탕으로 (연의에는 제갈량의 공로로 되어있는) 손권과 주유를 설득한 것도[1], 이후 전쟁을 이끌어나간 것도 모두 노숙의 공이었다. 해당사항의 자세한 내용은 적벽대전 항목 참조하길 바란다.

적벽에 대승으로 기쁜 손권이 개선하는 노숙에게 "장졸과 군신들 앞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 직접 말에서 내리도록 하면 그대의 공에 보답할 수 있을까?" 라고 묻자 "아닙니다. 전하께서 천하를 얻으시고 천자의 신분으로 절 맞이하여 주신다면 그때 만족하겠습니다."[2]라고 말하며 함께 웃는다.

연의에서는 주유가 제갈량을 죽이려 들 때마다 힘써 말리기도 하는데, 적벽대전이 일어날 무렵엔 왠지 주유와 제갈량의 머리 싸움 사이에 끼인 다소 불안한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실제로 그렇게 줏대없이 우왕좌왕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가 능력이 그저 그랬다면 주유가 죽으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그를 천거했을 리도 없고, 설령 천거를 받았다 한들 손권이 선뜻 그를 요직에 앉혔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연의에서는 상당히 어리숙하고 그러면서 순진하여 제갈량에게 이용당하는 인물로 그려지나, 그건 노숙의 조조에 대항하기 위한 신뢰 중심의 친유비 정책으로 덕을 본 유비측의 입장이다. 실제로 그의 인품은 외유내강에 걸맞게 냉철한 사람이였고, 후에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도 약속대로 형주를 내놓지 않자, 무력행사를 하여 장사, , 군을 빼앗음으로 하여 익양대치가 발발하게 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날카로움을 보여준 뒤 형주를 다스리던 관우를 불러 서로 칼 한자루씩만을 가지고 회담을 하였는데, 이를 두고 "단도부회(칼 하나만 가지고 회장에 참석함)"(혹은 단도부회)라고 하여 대장부의 용기(패기?)를 나타내는 고사성어가 생겼다.[3] 그 자리에서 도리와 이치를 설명하며 따져 물어 관우가 할 말 없게 만들었다.[4]

결국 유비는 형주 3군을 오에 할양하게 된다. 하지만 노숙은 언변이라든가 외교적인 측면에서 능숙한 인물이었던 반면 관우는 반평생을 장수로서 보낸 순수한 무관이었기에 회담에서의 대화는 당연히 노숙이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었다.[5]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그래도 관우가 반론을 펴긴 한다. 간단하지만 "우리 형님이 평생 고생하다가 겨우 마련한 땅인데 뺏어가기냐?" 정도. 물론 반론은 이걸로 끝이고, 노숙에게 신나게 까이지만(…)

이때 나름대로 반박한다고 한 이름이 없는 장수가 '천하는 덕있는 사람의 땅인데 언제부터 형주 전체가 손권의 땅이었소?'[6]라고 반박했다는 말도 나와있는데 누구든지 정복할 수 있다는 의미니 손권이 익양대치 때 정복한 땅을 인정해 버린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결국 관우도 "이것은 국가의 일인데, 이 사람이 어찌 알겠소!"라고 하고 짐짓 무시하며 대화를 끝내려고 하는데, 역시 관우가 할말 없음을 잘 드러낸다. 이 사람을 내쫓아 버리고 회의가 파탄 난 후 조조가 한중으로 오자 둘은 어쩔 수 없이 화친하고 상수로 형주를 분할한다.

주유 사후에는 도독의 자리를 계승하여 전반적으로 친유비적 성향의 노선을 걸었으나 익양대치 등 두 세력 간 위험한 움직임은 계속 보였고 결국 노숙 사후엔 형주 공방전이릉대전 크리. 결국 전쟁광 섬기느라 고생하는 것은 두 아랫사람

이후 병들어 죽었는데,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관로의 예언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다.[7] 노숙의 죽음과 관련해서 유명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손권이 어느 날 병에 걸렸는데 무당이 와서 말하길 비단 두건을 쓴 귀신이 나타났기에 물러나라고 소리쳤으나 궁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날 밤 손권은 죽은 노숙의 귀신을 봤다고 한다. 그의 사후 여몽이 군권을 이어받음으로써 과 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노숙이 손권의 권유로 학문을 익히기 전의 여몽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약간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훗날, 손권은 육손과 대화하던 중에 주유, 노숙, 여몽을 평하며, "주유가 짱임. 근데 주유가 노숙도 보내줬지. 첫째로 제왕 되라고 해서 기뻤어. 둘째로 장소랑이 조조한테 항복하라 하는데 주유 불러서 싸우라 해서 좋았어. 근데 형주 빌려줬잖아? 넌 안될거야 아마 게다가 관우 이길 방법도 없었으면서 허세부리고. 그렇지만 여몽이가 관우 잡았잖아. 언변은 주유보다 딸려도 형주건은 노숙보다 위임. 그래도 노숙이 행정하거나 애들 다스리는거 잘 하긴 했어. 군대는 금령이랑 잘 지키고, 백성은 땅에 떨어진 물건도 안 줍고. 왠지 옆 나라 모 승상과 비슷하다?[8]" 정도로 평한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지방의 유력한 호적들의 힘이 강하여 중앙정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정책의 방향도 수성을 빙자한 유지에 급급했던 오나라에서 주유와 함께 국가가 진취적으로 성장해야 할 비전을 제시한 마지막 인재라 할것이다. 노숙의 사후를 기점으로 오나라는 촉한과의 동맹 관계를 깨고 형주를 점거하고 이 때문에 강력한 위나라를 옆에 두고 두 약소국이 소모전을 벌이는 병크를 걷게 된다.

장기적인 국가적인 전략의 관점에서 두 약소국이 힘을 합쳐 강대국 하나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개념이라는 관점에서 이후 촉한과 관계과 회복된 이후에도 이전과 동일하게 합비도 넘지 못하는 안습한 상황이 이어지고 촉한에게 탈취한 형주를 이용해 북상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나라의 대외정책은 노숙의 사후를 기점으로 전후로 나뉘어야 할만하다. 무리수가 많이 따르지만 관우의 번성공략 당시 노숙이 살아 있어서 공격의 방향을 촉한이 아니라 위로 향했다면 아마도 역사의 흐름도 많이 변했을 거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관우는 이미 노숙 시절부터 오나라를 위협했잖아? 손유동맹은 안될거야 아마

그러나 정사에서 관우가 보였던 행보를 생각해보자면, 노숙의 이러한 계획은 이미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관우는 노숙 생전부터 이미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이미 노숙 시기에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일도 있었다. 강의 상류를 차지하면서도 오나라에 매우 적대적인 관우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손유간의 관계는 해결이 불가능했는데, 손권의 말마따나 노숙은 관우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노숙 사후엔 빼도박도 못하게 쌀까지 털어먹었다 손유동맹에 있어서는 오나라에 적대적인 관우마저 포용하고 갈 수 있었던 능력과 명분이 있던 노숙 정도나 가능한 것이었고, 그렇게 노숙이 죽자 결국 두 세력은 커다란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여범전을 보면 손권 황제 이후 엄준[9] 등이 노숙을 등우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자, "등우는 광무제에게 의 대업을 부활시키도록 부하 중에서 처음으로 권하였는데, 자경은 능력도 있었던 데다가 노숙이 맨 처음 말했던 것이 지금 이렇게 이뤄졌으니 등우랑 닮은 것이다"며 변호한다.[10]

즉 부자에다가 성품 좋고 활 잘쏘고 외교도 잘하고 더불어 융중대를 세운 대전략가. 중국에서는 노숙의 진언을 탑상책(침대 위에서의 계책. 노숙이 손권에게 침대맡에서 진언을 했다는 데에서 유래. ANG?)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먼치킨

소설에서 보이는 온화하고 유순한 성격을 반영하듯 삼국지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딱봐도 선한 인상의 배우들이 노숙 역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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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묘

중국 후난성 웨양현(호남성 악양현)에는 노숙의 묘가 남아있는데 [11] 묘 높이가 8m에 전체 면적이 약 800여㎡나 된다고 한다;; 삼국에서 노숙묘[12]랑은 완전 딴판이다 묘에 있는 패방[13]에는 <扶帝燭曹奸 (부제촉조간), 所見在荀彧上 (소견재순욱상). 侍吳亲漢胄 (시오친한주), 此心與武侯同 (차심여무후동)> 이라 적혀있는데, 대충 해석해 보자면 '황제를 도와 조조가 간웅임을 밝히었으니, 그것을 보면 순욱의 모습이 있으며, 오를 받들어 한의 혈통과 친하게 지내니, 이 마음은 무후와 같도다'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관도전에서 원소와 싸울것을 도와주던 순욱의 모습과 촉오동맹을 위해 여러모로 힘쓰던 제갈량의 모습을 노숙에게 비유한 듯. 괜히 노숙이 죽었을 때 촉과 오 모두가 슬퍼하고, 제갈량이 조의를 표한 게 아니다.

1.2. 미디어 믹스

2. 魯淑

생몰년 217? 또는 218? ~ 274년.
동명이인. 삼국시대 의 장군이자 노숙의 아들로 유복자.노숙자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데다가 훨씬 능력이 출중한 아버지에 이름이 가려진 케이스로 열전 자체도 아버지인 노숙의 열전에 딸린 형식으로 아주 짧게 남아있다.

노숙이 장성하면서 유수도독 장승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계자로 주목받아 장승이 그를 훗날 당연히 이 곳으로 와서 유수독이 될 거라고 했다. 유수독은 아니지만 도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영안 연간[14]에 소무장군 도정후 무창독에 임명되었다.

건형 연간[15]에는 부절을 받아 하구독으로 승진했으며, 임지에서는 항상 엄정한 통치를 실시했다. 진나라의 공격 때문에 오나라에서 진나라로 투항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273년에 설영과 함께 군사 10만이라 칭하고 서진으로 출병했는데, 그 때 병사들 다수가 휴가를 나갔기 때문에 왕혼에게는 그 당시에는 일족의 병사들 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오군의 허를 찌르면서 익양 전투에서 왕혼에게 격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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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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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역대 시리즈 대대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마이너버전. 아버지의 무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를 10-15정도 칼질하면 아들 노숙의 능력치가 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4/52/71/78의 아버지의 마이너 능력치. 무력 제외 능력치가 90대 였던 아버지에 비해 무력 제외 능력치가 70대. 연사, 누선, 혼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0/55/76/77/73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후기장수중에선 그래도 쏠쏠한 편. 그런데 왠지 모르게 208년생이다.

삼국지 11에서는 출생지를 임회군 동성현이라 기록했다. 특기는 조타로 능력치 자체는 무력이 평범한 것을 빼고 대부분의 능력치는 준수한 편이다.

삼국지12에서는 능력치가 더 올라가 모든 능력치가 꽤나 괜찮고 특기도 꽤나 많이 가지고 있으며, 군사 특기도 있어 비책도 쓸 수 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병기나 공성 특기도 가지고 있고, 전법도 전군원사로 쓸만하다. 즉, 아버지의 마이너 버전. 특기가 진정인 아버지보다 전법 면에서는 훨씬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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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모두가 조조에게 직접 문안을 나가라고 할 때 노숙은 말하지 않다가 독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까 사람들(항복파)의 의논한 바를 살펴보았는데,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할 뿐 장군을 그르치게 하려는 것이니, 더불어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조조를 맞이할 수 있지만, 장군 같아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지금 제가 조조를 맞이한다면, 조조는 응당 저를 향당(鄕黨)으로 돌려보내어 명성과 지위를 품평(品評)하는데, 오히려 하조종사(下曹從事; 군현의 하급직)의 직은 잃지 않을 것이고 소가 끄는 수레를 타며, 관졸들이 시종하며, 사림들과 교유하고, 관력이 쌓여 주군(의 장관급 직책이 , 정도)은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조조를 맞이한다면 어찌 돌아가고자 할 곳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대계(大計)를 일찍 정하시고, 저 사람들의 의견은 쓰지 마십시오." 연의에서 제갈량이 오의 문사에게 하던 말이다.
  • [2]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제왕의 업을 이루신 뒤, 죽백(역사책)에 제 이름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라고 달리 표현했다. 이 쪽은 후대에까지 이름을 날리게 해주세요라고 더욱 알랑방귀를 뀌는 셈.
  • [3] 연의와는 달리 정사에서는 노숙의 부하들이 노숙에게 위험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만류했지만 노숙은 유비가 나라의 일을 맡았으면서 시비도 제대로 못가렸는데 어찌 관우가 이 명령을 어기겠냐며, 서로 뱃속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무시한다. 오오 노숙 오오
  • [4] 연의의 경우는 이 반대로, 이 회담은 관우를 암살시켜 형주를 빼앗으려는 노숙의 책략으로 나온다. 물론 주창의 연기와 관우의 술주정을 빙자한 인질극으로 빠져나오게 되어, 연의 한정으로 노숙 안습(...)의 길을 다시금 보여주게 된다. 여담으로 연의/정사/신삼국에서 모두 다르게 등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5] 사실 노숙이 우위일 수밖에 없는게, 더부살이하게 해주고, 자기네 형 억류시키려는 계획도 무산시켜주고, 강릉도 할양해줬는데 관우가 할 말이 있으면 더 이상한 것.
  • [6] 이 일화를 각색하여 만들어진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이 주창이다.
  • [7] 조조좌자에게 농락당해 있을 때 관로가 그의 병을 치료해 주었는데(관로 항목 참고), 조조가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동오와 촉한에 대해 점을 쳐 주시오."라고 하자 관로는 점을 치고는 "오나라는 장수 한 명을 잃을 것이며, 촉한에서는 경계를 침범해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노숙 사망.
  • [8] 실제로 노숙과 제갈량을 비교하는 인물은 많다. 물론 제갈량-순욱에 비하면 인지도상에서 밀리지만
  • [9] 노숙 사후 대도독 추천을 받았던 인물이었으나, 당시 모두가 맡고 싶어하는 직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양하고 학문에 열중한 인물이다. 더불어 연의에서는 제갈량과의 키배에 참가하기도 했다.
  • [10] 사실 등우도 적미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적이 있다. 손권은 노숙의 말을 따라 형주를 빌려준 것을 크게 후회했는데, 이를 등우의 실책과 비교한 것이다. 그러나 노숙의 형주대여는 역사학자들마다 의견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걸러들을 필요도 있다.
  • [11] 이 웨양현에는 노숙묘 외에도 감로사라든지, 태사자묘라든지 여러 삼국지 유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 [12] 이릉대전 당시 오가 탈탈 털리는데 나서는 장수가 아무도 없자 노숙의 묘 앞에서 심란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적벽에서의 노숙의 중요성과, 그만큼 삼국 내에서의 노숙과 손권의 유대감을 나타내는 표현.
  • [13] 뛰어난 인물을 기리기 위해 묘 앞에 세운 일종의 문짝 없는 문
  • [14] 258 ~ 264년이다.
  • [15] 269 ~ 27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