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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히토

last modified: 2019-05-30 15:40:4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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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高円宮 憲仁親王) 노리히토 친왕의 문장
(다카마도노미야 궁가의 문장)
  • 생몰년 : 1954년 12월 29일 - 2002년 11월 21일

Contents

1. 개요
2. 출생과 성장
3. 결혼
4. 자녀
5. 황태자 부부와의 친분
6. 한국 방문
7. 죽음과 가문 단절

1. 개요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동생. 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三笠宮崇仁) 친왕, 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생전에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황족 중 한 명이었다.

2. 출생과 성장

1954년 12월 29일[1], 다카히토 친왕과 유리코(百合子) 비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큰형 토모히토 친왕과 작은형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이 있으며, 시집간 큰누나 고노에 야스코(近衛寗子)와 작은누나 센 마사코(千容子)가 있다.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 가쿠슈인 중등과와 가쿠슈인 고등과를 거쳐 1978년 가쿠슈인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캐나다퀸즈 대학교에 유학하였고, 1981년 귀국한 후에는 국제교류기금에 입사하여 일반 직원들과 똑같이 일하기도 했다. 이때 노리히토 친왕은 항의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묵묵히 불평불만을 다 듣고서 정중하게 사과하였다고 한다. 전화를 걸었던 사람[2]은 나중에야 자신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 황족이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당황했다고. 의원님!! 그 전화, 왕자님이 받으셨다는데요??[3]

취미스포츠, 사진, 예술 등이었으며, 이들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3. 결혼

1984년 4월 23일, 노리히토 친왕은 캐나다 대사관에서 열린 연회에 참가했다가 돗토리 히사코(鳥取久子)를 알게 되었다. 히사코는 실업가 돗토리 시게지로(鳥取滋治郞)의 딸로 노리히토 친왕보다 1년 연상인 1953년생이며, 세이신 여학원[4] 초등과와 중등과를 졸업한 후 영국으로 이민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인류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유학파이기도 했다.

만난 지 1달 만에 노리히토 친왕은 히사코에게 "Will you marry me??"라며 영어로 청혼했고, 같은 해 12월 6일 결혼했다. 결혼하여 가장이 된 조카 노리히토 친왕에게 큰아버지 히로히토 덴노는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라는 새로운 궁호를 하사,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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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의 결혼사진.

4. 자녀

히사코 비와의 사이에서 공주 3명을 낳았다.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인 이 공주들은, 1947년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라 여왕이라는 지위를 얻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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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모습. 노리히토 친왕, 히사코 비, 장녀 쓰구코 공주, 차녀 노리코 공주, 3녀 아야코 공주.

  • 장녀 쓰구코 여왕(承子女王): 1986년 3월 8일생. 말썽꾼으로 이런저런 구설수에 올랐던 흑역사가 있다. 가쿠슈인 여자대학과 영국 에든버러(Edinburgh) 대학을 중퇴,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를 졸업했다.

  • 차녀 노리코 여왕(典子女王): 1988년 7월 22일생.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심리학과를 졸업했고,[6] 2014년 5월 27일 약혼을 발표, 10월에 결혼하여 황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이 되었다. 신랑이 된 센게 구니마로(千家國麿)는 노리코 공주보다 15살이나 연상인 1973년생으로, 이즈모타이샤라는 신사의 제관이다.

  • 3녀 아야코 여왕(絢子女王): 1990년 9월 15일생. 가쿠슈인에서 여자 고등과까지 졸업한 후, 죠사이(城西) 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로 진학했다. 큰언니 쓰구코 공주에 이어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학교로 진학한 2번째 사례. 졸업 후로 죠사이 국제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를 얻었다. 2018년에 평민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황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이 되었다.

5. 황태자 부부와의 친분

나루히토 황태자는 5촌 당숙인 노리히토 친왕과 친했다. 당숙이라지만 고작 6년 차이여서, 당숙님이라기보다는 형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나루히토 황태자가 한창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를 사모하며 그녀와 결혼하려고 애쓰던 시절, 노리히토 친왕은 두 남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만남과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해 주기도 하였다.

한편 마사코 황태자비의 아랫동서 키코 비가 1994년 둘째 카코 공주임신하였을 때, 히사코 비는 "큰며느리인 황태자비가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 작은며느리가 계속 임신을 하다니, 황실의 서열을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라고 쓴 소리를 하기도 하였다. 황실로 시집온 지 고작 1년, 황실 안팎으로부터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기대를 받으며 부담스러울 마사코 황태자비를 우려하여 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키코 비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6. 한국 방문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 명예회장으로서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 내외는 개막식에 참석하였으며, 경기도 관전하였다(총 19개). 경주를 방문하여 신라의 문화유산들을 감상하고, 서울남대문시장부산자갈치시장 등을 구경하였으며, 다양한 한국인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또한 이방자 여사가 생전에 간여했던 장애인 복지시설도 방문했다.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는 한국을 둘러보며 사진도 많이 찍고 기행문도 남겼는데, 이를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도중에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하는 바람에 마무리는 히사코 비가 하였으며, 이를 《다카마도노미야 전하가 본 한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7. 죽음과 가문 단절

2002년 11월 21일, 노리히토 친왕은 도쿄에 있는 주일캐나다대사관에서 한창 운동(스쿼시)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만 47세의 나이로 급사하고 말았다. 2003년에 일본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미망인 히사코 비를 위문했다고 한다.

노리히토 친왕이 딸만 3명을 두고 사망했기 때문에, 현행 황실전범에 따르면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절손(絶孫)될 예정이다. 또한 노리히토 친왕의 큰형 토모히토 친왕도 두 딸 아키코(彬子) 여왕과 요코(瑤子) 여왕만을 남기고 사망하였고, 작은형 요시히토 친왕은 독신으로 사망, 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2016년에 사망해 미카사노미야 가문은 절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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