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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한국)

last modified: 2015-03-22 19:01:1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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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노동당(勞動黨)
영문명칭 The Labor Party
(LP)
설립일 2008년 3월 16일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대 표 나경채
부대표 최승현 권태훈 문미정 김윤희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0석 / 300석
0석 / 17석
1석 / 762석
0석 / 273석
6석 / 2,888석
웹사이트 홈페이지[1]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진보신당 (2008년~2013년)
2.1.1.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2.1.2. 진보정당 대통합과 총선
2.1.3. 2010년 지방선거 전후
2.1.4. 위태로운 당과 백가쟁명
2.1.5. 통합 논의 실패와 재분당
2.1.6. 잔류파의 총선과 재창당
2.2. 노동당 (2013년~)
2.2.1. 2013년, 재창당, 노동당으로 당명개정
2.2.2.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2.3.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2.4. 제 6기 대표단 선거
3. 정치성향
4. 평가와 트리비아
5. 역대 지도부
5.1. 진보신당
5.2. 노동당
6. 역대 선거결과
6.1. 진보신당
6.2. 노동당

1. 개요

위기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을 요구한다. 노동당은 대전환을 실현할 정치적 무기가 되기 위해 탄생했다. 노동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성별위계 구조와 생태 파괴 문명에 맞서 싸우며,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우리의 궁극 목표는 모든 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발전을 통해 만인의 발전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며, 이를 위해 평등 ‧ 생태 ‧ 평화 ‧ 연대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 과제다.
- 2013년 6월 23일 제정〈노동당 선언〉중


대한민국의 원외정당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중민주(PD) 성향을 가진 당원들이 탈당해, 그해 3월 16일 진보신당 연대회의로 창당했다. 이후 혼란 속에 국민의 지지를 잃어 2012년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2% 득표에 미치지 못해 등록이 취소되었다가, 진보신당 연대회의 창당준비위원회(진보신당 창준위)를 거친뒤 2012년 10월 22일로 재등록했다. 이후 사회당과 통합하고 2013년에는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정치 성향은 녹동맹, 즉 사민주의생태주의를 지향한다. 여성주의, 진보주의 정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회당과 통합한 후 총선을 치르고 해산된 뒤, 재창당했다.

2. 역사

2.1. 진보신당 (2008년~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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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2006년의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의 주류 세력인 NL(자주파, 민족자주)계통의 종북주의와 부패가 심화되어, 이를 비판'한다며 PD(평등파, 민중민주)계열이 따로 독립해 나와 창당한 당으로 당의 대표 정치인은 회찬, 심상정 등. 17대 대선의 경선 후보로 나왔던 3명인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중 2명이 이 당에 들어갈 만큼 완전히 민노당이 두 쪽이 났다.

분당에는 표면상으로는 NL계통의 종북주의 논란과 패권주의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근 10년동안 NL과 PD의 기싸움이 곯은 대로 곯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NL은 2000년대 초반 이후 당에 대거 입다하면서 지역위원회 선거에서 위원장 선거에 나가려는 PD를 물 먹이거나 가장 나중에 들어와 머릿수로 PD가 있던 위원회를 차지하여[2] 위원회를 자신의 정치 지배 수단으로 삼고 제대로 된 논쟁이 아닌 머릿수로 주요 정책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통과시키려 하는 스탈린주의적 방식을 추구한 바 있다. 이런 방식이 2007년 대선후보 선출 때 결국 NL이 지지했던 권영길이 간발의 차로 당선되는 걸로 이어지자, PD쪽에서 슬슬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분당 직후 당 대의원회의 때, NL계는 자신들의 패권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자가반성도 해야 할 판국인데, PD의 종북 언급만 가지고 억울해했다는 평도 있다. 반면 PD 역시 자신들의 계파가 우세인 지역에서 다른 좌파들이 뭔가 하려 하면 머릿수로 견제하고 막았던 유사 행위를 하기도 했으며, 이것은 중앙당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됐다.

위의 같은 표면적 현상이 일어나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는 이념에 따른 구조의 차이이다. NL의 경우 지도자 일인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한다. 강력한 집권층에게 선거로 권력을 위임하고 일단 위임했으면 끝까지 밀어주는 것이 NL의 방식.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당연히 지도부가 거의 모든 권력을 누리게 하므로 많은 병폐를 낳았다. 반면 진보신당 및 다수의 PD계파는 지도부를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며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인물보다는 정책이 중요하여 인물이 정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정책이 우선시된다. 이런 성격상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으나 의견 하나 내는 데 시간을 다 잡아 먹는 안습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이 당에는 진중권도 당원으로 활동하며, 실제 당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 외 유명인은 언론인 홍세화, 영화감독 박찬욱, 영화배우 문소리 등. 참고로 이들은 모두 이전부터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으나 분당 과정을 거치며 이적(?)한 케이스.

2.1.2. 진보정당 대통합과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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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진보신당 시절 로고의 람개비평등(빨간색), 평화(파란색), (초록색), 연대(노란색)를 나타내며, 정당 색깔은 퓨처 레드. 즉 빨간색으로, 새누리당과 겹쳐 논란이 있었다.

당의 4년 역사를 통틀어 한국사회당과 노선이 비슷해서 합당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당이 창당될 때도 한국 사회당을 참여시키려고 했었다가 무산되었다. #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국사회당은 0.2%를 얻었는데 합당을 했다면 3%를 넘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후 한국사회당은 등록이 취소되었지만 사회당으로 다시 창당하였고, 다시 합당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민주노동당 측에서 합당을 꺼내들 때마다 "사회당과도 합당 못했다"식으로 계속 나오는 떡밥.

근데 웃기는건 사실 한국사회당과 정통 PD, 즉 민노당 시절의 PD는 2000년대 초반까지 서로 열불나게 싸우던 입장이었다는 것. (또 이건 가히 다함께와 일반 PD간의 관계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사회당은 여러차례의 지도부 교체에 따라 세가 약해지고 사민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고 의석을 중시하는 인물들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특히 20대 당원들의 지지기반이 여러 공동행동과 사건을 계기로 비슷해지면서 이런 분위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 이전에는 존재감이 흐릿했지만 이 당에서 운영하는 아프리카 개인방송인 라TV로 점점 존재감을 알리고 동시에 인터넷 상에서 세력 확장을 어느 정도는 하였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두자릿수 지지율과 비례대표 6번까지 당선, 진보 세력의 결집이라는 목표로 선거에 임했지만, 노회찬, 심상정이 여론조사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낙선하고, 정당 득표율이 3%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 명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2009년 3월에 당원이었던 프랑스의 목수정이 정명훈과의 사건에서 많은 논란을 사기도 했다. 항목 참조. 2009년 4월의 보궐선거에서 울산의 조승수 의원의 당선으로 처음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하였다. 물론 겨우 1명으로 정치적 발언력은 민주노동당에 못미치는 수준. 이러다보니 묻혀가는 경향이 강했다. 지지율은 2009년 5월 19일 기준 2.1%. 전월대비 1%가량 하락하긴 했지만 그나마 창조한국당드디어 추월했다. 두 자릿수는 여전히 아득하다. 근데 원인은 사실 창조한국당 국현 대표의 갈짓자 행보에 따른 것이다.

2010년 평도 포격사건에서 대북규탄성명에서 민노당은 기권한 반면, 조승수만 "취지는 찬성하나.."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정도의 존재감을 가졌다. 2011년에 대뷔한 선동 의원이 이름대로 최루탄을 국회에 날리는 등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에 비하면 훨씬 약한 이미지.

2.1.3. 2010년 지방선거 전후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등에서 각종 통합 떡밥이 나돌았지만 전반적으로 정서가 곱지 못했다. 제대로 싸워 이혼한 부부보고 재결합하라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나 할까. 자신들과 기치가 다른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한 각 당의 갈등도 있는 상황에서 서로간의 모든 잘잘못을 덮고 서로가 불리하게 통합을 하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특히 진보신당 입장에선 사실상 합병당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에서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단독 후보 발의안이 부정되고 선거시 진보대통합을 추진하기로 결정되었고, 이 상황에서 노회찬 대표가 2009년 12월 16일, 통합정당은 선거 이후에 논의하더라도 선거연합은 "민주당은 뺀 진보대연합"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크게 반발했다. 근데 훗날 시점에선 결국 그렇게 됐잖아? PD 계통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없는 제대로 된 진보연합을 하라고 박수를 보냈다. 반면 민주노동당에서는 이 쪽에서도 통합정당 논의를 왜 선거 이후로 하냐고 노회찬을 까고 있다. 결국 노회찬은 민주계와 민노계 양쪽 모두에게 비판받게 되었고, 5당 + 4시민단체의 회의의 파행 끝에 선거연대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당 대표인 노회찬이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행사에 참석해 와인을 마시고 조선일보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서 대차게 까였다. "품질이 좋다"라는 등의 평이었다. [3] 하지만 그 때 진보신당 당원들은 정작 그 문제보다 5+4 합의문을 당원 토론 없이 작성한 점에 대해 성토하고 있었다. 후에 최종합의문이 아니라 중간합의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일부 지역후보들을 제외하고는 선거연대가 실패한 상황에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22명을 배출했다. 하지만 경기도 지사로 출마했던 심상정 후보는 선거 하루 전에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하였으며, 서울 시장으로 출마했던 노회찬 후보는 선거를 완주하기는 했으나 3.3%의 저조한 득표를 했을 뿐이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표론 등으로 인해 한명숙 후보로 빠진 표를 감안해야겠지만. 울산, 경남, 광주 등에서도 표의 분열에 따라 민주노동당 후보는 낙선하고, 진보신당 후보는 대패하는 현상들이 보여졌다.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예상밖의 선전으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를 거의 따라잡았으나 단일화를 거부한 노회찬 때문에 오세훈의 재선을 막지 못했다며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전에 단일화를 제안한적도 없으면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진보신당에게 돌리려는 무책임한 행동이었고 실제로 진보신당 홈페이지나 노회찬의 싸이월드에는 엄청난 수의 악플들이 달렸다. 사실 이 자체는 병크에 가까웠던 것이나 민주진영이 그렇게 비판하는 조중동 프레임처럼 논리보다는 쪽수로 밀어붙이는 여론몰이에 진보신당의 여론악화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6.2 지방선거를 마지막으로 당은 개판 5분전이 되었다. 노회찬은 퇴임 직전 민주노동당+민주당+국민참여당과 함께 '개혁연대'라는 경남도의회 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새로 당선된 김두관 경남지사를 격려하는 도정질문을 한 당 소속 경남도의원 2인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하여 야권연대론자들의 비판을 받은 반면 반면, 심상정은 독자생존파들에게 사쿠라라는 야유를 들었다. 그리고 조승수 후임대표는 '진보대통합'과 독자노선을 사이로 줄타기 중이었다.

2.1.4. 위태로운 당과 백가쟁명

2011년 3월 27일에 열릴 당대회를 앞두고 1월 9일, 지도부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진보신당 당원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지도부를 식겁하게 만들었다. 독자생존론을 부르짖는 여론이 많을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회당과의 통합(진보소통합)에 18.2%, 사회당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진보대통합)에 26.6%, 사회당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비민주 야권통합)과의 통합에 24.2%가 찬성했으며 심지어는 사회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에 민주당과의 통합(야권대통합)에 16.8%가 찬성한다고 나왔을 정도였으며 독자생존론은 10.1%에 불과했다.

사회당이나 민주노동당과는 그렇다 쳐도 그간 인터넷 여론에서 줄창 비판하던 국민참여당은 물론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불리는 민주당과의 진보정당 수립참여의 여론이 독자생존론보다 높다는 점에서 지도부가 경악한 것. [4]

이를 계기로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현직 대표등은 통합노선으로 선회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2011년 실제 당대회 결과는 민주노동당과의 합당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애초에 대의원 선거에서 통합찬성 당원들은 대부분 출마하지 않은 반면, 통합반대 당원들은 당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대거 출마했기 때문이 크다.

한편 박용진 부대표를 중심으로 한 소위 통합파는 민노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 및 민주노동당, 민주당 개혁세력까지 포괄하는 통합을 주장하는 모임을 결성하기로 해서 2012년 19대 총선,18대 대선을 앞두고 단일정당에 대한 논의는 진보신당 내에서도 백가쟁명 했다.

2.1.5. 통합 논의 실패와 재분당


(재분당 시절을 상징하는 '노심조' 3명.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5월 27일 1차적으로 종북문제를 이유로 협상이 결렬되었으나#, 6월 1일 새벽까지 계속된 재협상 끝에 합의안이 통과#되었고, 그리고 진보신당 게시판에는 헬게이트가 열리고 말았다. 당원들은 소위 독자파, 통합파 2축으로 나뉘어 제대로 분열해 버린것.

심지어는 진보신당내 독자파 정파 중 하나인 '진보작당'의 이근선 대표는 통합을 반대한다며 데일리안뉴라이트논객의 글까지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렸다.# 결국 9월 당대회에서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지도부가 총사퇴를 한다는 시각이 관측되었다.

6월 19일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책 당대회에서 조승수 대표가 지난 분당 과정에서의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사과를 기초로한 축사를 발표하였다. 22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도 17대 대선과 분당과정에 대해서 사과를 함으로써 이제 남은 건 26일 임시 당대회에서 합의안이 통과 '되느냐 마느냐'였다.

결국, 2011년 9월 4일 오후 서울 삼전동 송파구민회관에서 당대회를 열어 진보정당 통합 합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재석 대의원 410명중 찬성 222명, 반대 188명. 찬성이 정족수인 274명(66.6%.3분의 2)을 넘지못해 통합합의안은 당 대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최종 부결됐다.

앞서 말하듯 대의원에서는 통합반대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과반이 통합찬성으로 나온것은 노,심,조로 대표되는 기존 대표들의 끊임 없는 설득과 회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부적 환경도 진보정당의 생존을 위해서 뭉쳐야한다는 여론이 제법 유리한 형국이었고, 무엇보다 국참당을 배제한다는 것에 어느정도 옮겨간 인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분당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9월 5일 지도부는 사퇴했고, 새지도부를 뽑기 전인 11월 1일, 결국 조승수 전 대표와,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와 윤난실 전 부대표, 지방의원 다수가 주축이 된 통합파가 주축이 되어 새진보 통합연대를 결성하고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결국 또 갈라져버린 셈(...) 이미 탈당전에도 새진보 통합연대는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10월 26일)에서 박원순 후보의 야권통합 선대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2.1.6. 잔류파의 총선과 재창당

통합파가 갈라져 나간 가운데 남은 통합 반대파들은 독자적으로 새 지도부 구성을 추진했으며, 11월 26일 세화한겨레 기획위원이 대표 후보로 독자 출마해 찬반형식을 거쳐 당선되었다. 부대표는 김종철, 심재옥, 김선아, 강상구.

홍세화 후보는 야권 통합에 부정적임을 드러내면서 필요하다면 사안에 따라 연대는 하겠지만 통합은 부정적이라고 천명했다. 반면 사회당, 녹색당과는 통합을 추진할것을 시사했다. 녹색당은 연대는 되지만 합당은 안된다는 논지였고, 2012년 3월 사회당과는 합당에 성공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지역구 후보 23명, 비례대표 후보 7명을 입후보시키고 경상남도 거제시의 김한주 후보의 당선과 비례대표 3% 돌파에 사활을 걸었다. 학력사회 반대의 논지로 출마자들의 학력을 표기하지 않았고, 비례대표 명단에는 박노자도 있었다. 산과학대의 청소노동자였던 김순자씨가 1번, 홍세화 대표가 2번으로 3%를 넘길시 당선권이었다.

그러나 4월 11일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망했어요. 비례대표 정당투표 1.13% 를 얻는데 그쳤으며, 기대했던 거제시 김한주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를 제치고 33.0%(30,457표)의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했으나 무소속 김한표 후보에 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막판 희망고문으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 총수의 2% 이상을 얻지 못한 정당은 등록을 말소한다.'는 정당법 규정에 의해, 등록취소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물론 당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전당대회를 거쳐 제2창당을 하게 되는 듯. 하지만 재창당을 하더라도 이전의 정당 이름은 쓰지 못하게 되므로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서는 끝이다. 진보신당은 일단 진보신당 연대회의 창당준비위원회로 창당 준비위원회를 등록하였다.

당내에서는 "진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이었으며, 통합진보당과 후의 진보정의당의 탄생으로 서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5]

18대 대선에서는 독자후보 가능성을 논하다가 김순자씨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이 당내 갈등속에 무산되었고, 당에서는 공식적으로 무소속이며 사노위 등 좌파단위가 모인 '변혁모임'의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면서 갈등 속에 대선을 치렀다. 이 때 구사회당계의 당원 일부가 김순자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함으로서 당내 의사결정을 불복 했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잘못의 소재를 떠나 당 내 지도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참세상의 기사[6] 진상조사위 기사 결국 김순자 후보는 46,017표(0.15%), 김소연 후보는 16,687표(0.05%)로 합쳐서 6만여표를 조금 넘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다.

이후 5기 지도부 선거가 열렸고 당 대표의 후보로는 녹색사회주의연대의 이용길 후보, 구사회당계의 금민 후보, 녹색사회주의연대에서 활동하다가 탈퇴하고 특별한 계파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김현우 후보가 출마하여 당 역사상 최초로 지도부 선거가 경선으로 치뤄지게 되었다. 당 내 최대 정파라고 평가받는 녹사연의 후보인데다가 '하나로'등 다른 정파의 지원을 받은 이용길 후보가 당 내 소수정파에 불과한 사회당계의 금민 후보나 특정 정파의 지원을 받지 않는 김현우 후보 보다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고, 역시 2월 1일 전당대회에서 총 투표 3,987표 중 1,718표(43.8%)의 지지를 받은 이용길 후보가 당선되었다. 김현우 후보는 1,134표(28.9%), 금민 후보는 1,070표(득표율 27.3%). 예상대로의 결과이지만 김현우 후보가 상당히 선전했고 금민 후보 역시 3위로 밀리기는 했지만 선전했다는 평가.

2013년 2월 현재 "진보신당 창준위"란 당명은 여러 논의속에 아직 개정되지 않은 상태다. 3월 전국위를 필두로 계획안을 마련하고 있다. 단,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그것을 어떻게 수습할지가 관건이다.

2.2. 노동당 (2013년~)


2.2.1. 2013년, 재창당, 노동당으로 당명개정

진보신당 5기 지도부는 2012년 총선패배와 더불어 2012년 12월의 제18대 대선정국에서의 난맥상과 분당으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재창당을 선언했다. 당의 강령과 전략, 전술을 일신해 가설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겠다는 것. 그러나 수년간 분당 후유증과 노선갈등이 상존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당명을 교체할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2013년 6월중에 당원 전수조사를 통해 새로운 당명을 공모했다. 사회민주당, 노동당, 좌파당, 녹색사회노동당 등 여러가지 안이 있었지만, 전국위원회(타 정당의 중앙위원회) 심의를 통해 녹색사회노동당, 노동당, 좌파당이 선정됐다. 특이한 것은 사회민주당이라는 당명이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전국위에서 기각되었는데, 이는 진보신당의 이념적 현 주소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어찌됐건 당명개정이 논란이 되자, 다시한번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녹색사회노동당'이 최종안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당내 세력은 '무지개사회당'이라는 안을 현장발의 하기로 해 논란이 야기됐다. 하지만 6월 23일에 열린 당 대회에서는 녹색사회노동당, 무지개사회당 모두 부결되어버렸다. 이념이 기타 보수정당들에 비해 중요한 진보정당의 특성상, 당명 개정안 부결은 꽤나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 어찌됐건 당명개정안 부결과, 앞선 전국위원회에서의 장기전략성장안의 부결로 인해 진보신당엔 헬게이트가 열렸다. 다만 당헌은 통과됐는데, 당헌을 뒷받침할 전략과 전술이 부재한 가운데 다시금 진보신당이 격랑에 빠져드는 듯한 상황이다.

일단 2013년 7월 21일 다시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당명개정건을 재투표에 부치기로 했다.기사

새 당명은 다시 공모한 결과 노동당[7]과 무지개 사회당 등 몇가지가 대결하였다. 이 당명들은 '노동중심성'을 둔 진보신당 내 입장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진보정당운동의 여러 양태 중에서 노동운동의 헤게모니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라는 것. 결국 노동당이 선정되어 90년대 초반에 이어 두번째로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정당이 되었다. 다만 당명결정 과정에서 보였던 계파간 갈등은 추후 이를 어떻게 봉합해야 하는가란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서 체포동의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당내 갈등이 선명화된 정의당과는 달리 비교적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8][9] 그리고 대법원 최종판결에 대해서도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비판하면서도 내란선동죄 인정은 부당하다는 논평을 내어 정의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6월에 진행된 임시당대회에서 부정투표 사건으로 논란이 있었고, 11월 중앙당기위를 통해 부정투표에 연루된 4명의 당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중앙당기위 결정문 그 중 직접적으로 연루되었던 당원 2명은 제명처리되었고, 경고처리된 당원은 이후 관련 지역 대의원대회를 통해 당직을 상실하였다. 참고로 해당 문제는 대표단이 직접 당기위에 제소한 케이스이다
11월 서울시당 당직자 선거 후 주로 서울시당과 마찰을 빚어온 강서당협운영위원회 위원들이 부정투표를 언급하며 전원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다. 강서당협운영위원회 입장문

11월, 노동당 부대표이자 대변인인 박은지가 "김일성주의(주체사상)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상"이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박은지 부대표가 직접 해명글을 올려 "댓글을 통한 인터뷰가 이뤄지는 썰타임이란 사이트에서 "아무래도 진보 계열에 오래 몸을 담그고 계셨으니... 말씀하시는 "김일성주의자"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요...대체 그 "주의"의 매력이 뭡니까? 무엇 때문에 일반인들한테는 참 바보 같은 그 사상이 나름 뭐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히는 걸까요?"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남한 내 김일성주의 세력이 김일성주의에 대해 매료되는 지에 대한 답변을 매력적이란 단어를 써서 답변했던 것이라고 당게를 통해 해명했다. 박은지 부대표의 해명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첫 작성자인 주현우씨가 노동당원이라 반짝 화제가 되기도 했다.[10] 그런데 이를 들어 주현우씨를 까는 조선일보의 기사에는 주씨를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언급했고, 부관참시 심지어는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노동당 당원들에게는 대중에게 잊혀진 자신들의 현 상황이 영 씁쓸하기만 할 듯.

2014년 3월 8일 박은지 부대표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11]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평소 우울증이 있었다는 지인의 증언으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된다. 이에 진보 각계에서는 애도의 뜻을 비쳤고, 현재 노동당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안그래도 줄어드는 입지와 그나마 기사희생에 기회인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일꾼을 잃는 너무나 큰 타격이라 할 수 있겠다.

2.2.2.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서는 원외정당 중에서는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정당이다. 정식 후보자 등록을 마친 5월 17일 현재 광역단체장 2명, 기초단체장 1명, 광역의원 69명, 기초의원 25명, 광역의원 비례대표 13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2명, 이렇게 모두 112명의 후보가 나서는데, 이는 원외 정당 중에서 출마자 수 2위인 새정치국민의당이 모두 합쳐 36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원외정당으로서 이정도 규모는 상당히 큰 것이다.

이는 노동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의한 것인데, 노동당의 제6회 지방선거 전략은 1. 집중전략과 2. 당선전략이다. 집중전략이란 지역구 광역의원을 다수 출마시켜 지역구 광역의원 합산 득표율 2% 달성을 노리는 것이며 당선전략이란 당선 가능한 기초 및 광역의원 후보 최대 당선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중 당선 가능한 기초 및 광역의원을 당선시키는 전략이야 당연하니 핵심은 광역의원을 다수 출마시킨다는 집중전략에 있다. 이러한 전략의 배경은 지방선거에서 열리며 정당이 참여할 수 있는 선거 중에 어떤 것이라도 전국 득표율 2%를 넘기면 국고보조금 지급 대상이 된다는 것이며, 그 외에도 당명을 바꾼 뒤 얼마 안되어 적어진 당 인지도를 적극적인 선거대응을 통해 올리겠다는 의도나,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지방선거를 통해 젊은 인재들을 정치에 진출시킨다는 의도도 있는 듯 하다.(장석준 부대표의 인터뷰#) 이런 방침을 통해 가능한 최대 다수를 출마시켜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2% 득표는 어려운 실정이고 대전, 대구, 제주, 세종시에서는 광역의원 비례대표 출마를 못 하는 등 여러모로 당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광역의원 1명, 기초의원 6명의 당선자를 냈다. 원외정당으로서는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겠지만, 전력했던 광역의원에서 단 1명의 당선자에 그친 것[12]은 다소 아쉬운 결과라 하겠다.

본래 목표였던 지역구 광역의원 합산 득표율 2%를 받으려면 투표율에 따라 40만표에서 50만표 정도를 받아야 했지만 지역구 광역의원의 표를 합산한 결과 212,908표밖에 받지 못했다. 총 투표수가 23,464,573표이므로 이는 0.91%에 해당하는 결과. 오히려 광역비례투표에서 선전해서 총 투표 23,464,573표 중 265,034표(1.13%)[13]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국고보조금 대상인 2%에는 턱없이 모자란 결과. 4개 지역[14]에 광역의원 비례대표를 내지 않은 것 치고 1.14%의 득표율은 꽤 많은 것이지만, 광역의원 비례대표 투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투표에 비해 소수정당에게 관대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좋은 성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듯 하다. 종합하자면 국고보조금 지급대상도 되지 못했고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도 조금밖에 당선시키지 못한 참담한 결과다.[15] 뛰어난 의정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현역 광역의원들과 기초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것도 아쉬운 대목.

특이한 점은 진보신당 시절부터 울산을 제외하면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었던 서울[16] 에서 고작 30,679표(0.63%)를 받았다는 점. 이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아니다)이 받은 35,488(0.73%)보다도 낮은 것이다. 실수로 인한 투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정당에게도 밀린 셈. 또한 서울과 같은 수도권인 경기도에서도 29,555표(0.58%)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다만, 울산과 영남 지역에서는 지지율이 올라갔으며, 특히 울산은 정의당보다 득표율이 높았던 것이 특징.

2.2.3.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김종철 전 부대표가 동작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선언을 했다.[17] 김종철 전 부대표는 19대 총선 때 동작구을에서 5.14%의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동작구을에는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는데[18], 만약 출마를 한다면 노동당과 정의당의 비슷한 성향 상 단일화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김종철 전 부대표는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노회찬 전 의원과의 단일화에 대해 묻는 질문에 "원칙적으로는 출마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말씀드리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밝혔다. 또한 세월호 추모 만민공동회를 주도했다가 구속된 정진우 부대표도 수원 영통에 옥중 출마를 선언했다...가 옥중 출마가 아니게 되었다.#

동작을에 출마한 김종철 부대표는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와 단일화를 했으나[19],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의 사퇴를 통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로의 단일화에 양자구도가 굳어지면서 1,076표(1.4%)의 저조한 득표에 그친다. 기동민 후보로 단일화가 되었으면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를 기대할 수도 있었겠으나 유명한 진보적 정치인인 노회찬 후보로의 단일화였기 때문에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까지 다 노회찬에게 흡수되었다는 분석.[20] 또한 수원정에 출마한 정진우 부대표도 510표(0.68%)의 저조한 득표에 그친다. 이는 후보가 지역 운동을 하지도 않았던 곳에 옥중출마의 상징성을 노리고 출마한 것이고, 통합진보당 후보와 표가 갈렸기 때문에 애초에 예견되었던 결과.

2.2.4. 제 6기 대표단 선거


8월 29일, 노동당 당 게시판에 "당력을 모아 진보정치 통일과 재편에 나서야"라는 글이 19명의 당원 연명으로 올라왔다.[21]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이 표면으로 올라온 것. 이 글에서는 당력을 모아 진보정치의 통일과 재편에 나서길 주문하고 있으며, "북한문제와 패권주의에 대한 근본적 자기성찰이 없는 통합진보당과는 구별정립하여 대중정당·현실정당"을 만들기를 주문하고 있어 사실상 정의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 내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

진보결집에 대한 노선은 2015년 제 6기 대표단 선거로 판가름나게 되었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총 세 명으로 진보결집을 주장하는 진보재편그룹의 나경채, 당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당의미래 그룹의 윤현식, 녹색신좌파를 주장하는 신좌파모임의 나도원이다. 당 내 정파가 헤쳐모여식으로 재편된 가운데 진보재편그룹은 관악파, 녹사연 주류, 하나로 등 당내 의사결정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대다수가 참가했다. 조직에서 앞서는 나경채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 중요한 선거이니만큼 당 게시판에서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22]

결국 2015년 1월 19일에서 1월 23일까지 진행된 당 대표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총 투표자 수 3,494명(투표율 62.9%) 중 1,385표(40.2%)를 얻은 나경채의 승리. 단 과반수를 얻지 못해 결선투표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도원 후보는 1,106표(32.1%)를 얻어 마찬가지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지난 대표단 선거에서 같은 신좌파모임의 금민 후보가 1,070표를 얻었던 것을 그대로 승계한 결과. 조직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윤현식 후보에 비해 사회당 계열이 주축이 된 신좌파모임 조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도원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현식 후보는 956표(27.7%)를 얻었다. 조직이 약했음을 감안하면 꽤 선전했다는 평가. 부대표 여성명부 선거에서는 진보재편그룹의 김윤희 후보(찬성득표율 82.2%, 찬성 2,585명 반대 559명)와 신좌파모임의 문미정 후보(찬성득표율 86.9%, 찬성 2,554명 반대 386명)가 당선되었다. 관심을 모았던 일반명부에서는 1,187표로 34.5%를 득표한 신좌파모임의 최승현 후보와 1,145표로 33.3%를 득표한 진보재편그룹의 권태훈 후보가 1,108표로 32.2%를 득표한 당의미래 그룹의 김한울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여러모로 당의미래 그룹에게는 아쉬운 결과.[23]. 한편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62.9%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당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였기 때문에 투표 참여가 많았다는 평가다. 결선투표에서는 역시 조직에서 앞서는 나경채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통합-독자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경우 나도원 후보도 꽤 선전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1월 26일부터 1월 30일까지 진행된 결선투표에서는 나경채 후보가 1.724표(53.4%), 나도원 후보가 1,505표(46.6%)를 얻어 나경채 후보가 제6기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이는 예상보다 상당히 근소한 차이로 나도원 후보가 통합-독자 양자구도의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경채 후보가 당선은 되었으나 통합으로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 당직선거에서는 신좌파모임계열 후보가 많이 당선되었는데 이들은 녹색좌파노선을 견지하고 있어 국민모임이나 정의당과의 통합에 비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진보재편파는 핵심공약이었던 진보재편에 대한 당원총투표를 통해 이 상황을 타개할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3. 정치성향

사회주의와 생태주의를 지향한다. 당헌과 당규에 이를 명시해놨으며, 2014년에 존재하는 정당 중에서는 녹색당과 함께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낙태에 찬성하는 당원이 많다. [24] 남성지배체제 해체를 가치로 삼고 있으며, 주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내세우는 편이다. 실제로 낙태의 비범죄화를 공약하였다. 이에 대해서 당내에서도 '여성이 태아를 지배하자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었다. 다만, 2011년 통합 문제와 더불어 게시판에서 있었던 낙태논쟁에서 낙태 반대론자들이 무분별하게 태아 시체 사진을 게시하고,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실명공개 및 신상털기를 시전하고 악의적으로 악플.여론 호도를 하다 2012년 제명당한 사례가 있다. 반대로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인민재판식 낙인찍기와 그들만의 리그놀이를 하기도 하였으며 당 내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도 과거 민노당 때[25]와는 달리 점점 여론화되고 있는 편. 2009년에는 김수환추기경이 낙태에 반대했다고 진보신당 당원들이, 추기경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비난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26]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적극 찬성한다.

4. 평가와 트리비아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이러한 평가가 "정책"이나 소속 의원/자치단체장의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에 명심하자. 즉 이념적인 차이나, 과거에 맺힌 원한에 대한 감정 표현에 불과. 정당의 본령이 정책이고,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 의정 활동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아래의 평가들은 한 마디로 키배 수준의 평가다. 양쪽 모두

민노당 지지자들은 진보세력을 분열시켰다며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으며, 민노당에 가담하지 않은 NL 진영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종북'이라는 금기어까지 꺼낸 마당에.

PD계열에서의 평가도 엇갈린다. 일단 기존에 민주노동당에 참가했던 PD계열 조직/인력은 대부분 진보신당으로 결집하였으나 평등연대 등 독자노선을 외치며 진보신당에 미가담한 이들도 존재하며, 이들은 민주노동당 잔류파 이상으로 진보신당의 분열 책임을 묻는 편이다. 그 외 원래부터 민주노동당에 일정거리를 두고 있던 기타 단체/조직들의 경우에도 역시 진보신당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지율이 부진한건 대한민국 특유의 정치지형과 국민의 정치색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당장 진보신당 강령만 봐도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니... 애초에 인터넷 상의 인지도와 달리, 조직(서울 외 지역이나 대학교 등에서는 특히 더)은 민노당에 비해 상당히 부실해서 유명무실이란 비판도 종종 있다.

당대표나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다소 덜하지만, 당원 게시판에 상주하는 당원들 중 상당수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표출한다. 물론 한나라당에 대한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도입과 같은 보수적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혐오한다. '그 놈이 그 놈'이란 논리인데,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당내 친노 세력이 홈페이지에 애도하는 글을 달자 이를 두고 반발, 애도글을 쓴 당원에게 탈당 압력이 가해졌다. 물론 이를 두고 고인드립은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당내의 비판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10년 6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글루스에서는 진보신당 지지자와 민주당, 국민참여당 지지자와의 대정치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육두문자만 없었을 뿐이지 분위기 자체는 상당히 살벌한 편이다.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서로의 주장이 극단을 달리는 정치 환경을 나타내는듯 하다. 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 평가와 정당 연대에 대한 논쟁인데, 서로 트랙백까지 걸어 가면서 논쟁을 하지만 결국 결론은 나질 않는다. 대표적인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다를 바가 없다는 '노명박'론. 현피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한 포스팅도 있었으니...

2010년 7월엔 비슷한 소재로 이른바 "진보신당 내 자유주의자"를 비판한 규항진중권의 논쟁이 일어났다. (다만 김규항은 진보신당 당원은 아니다.) 결국 진중권은 (변희재 등과의) 각종 소송 때문에 당에 누를 끼칠 수 없다며 탈당하였고, 이후 진보신당 잔류파를 "좌파 동아리"라 비판하였다. 다만 2012년 총선에서는 정이 남아있었는지 진보신당을 찍어달라고 했기는 했지만.

당내의 일부 진보신당 당원들 조차 진보신당 게시판을 '진보계의 정사갤'이라 농담처럼 이야기 하고있었다. 최후의 분당과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2012년 2월 6일 교과부가 학교 폭력 근절 대책 중 하나로 게임 및 인터넷 관련 규제안을 발표하자 진보신당 정책위원회가 이를 게임용어로 비판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진보신당은 교과부가 이러한 수준 낮은 패치로 국민을 우롱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레이드 공대를 전멸시키는 입시던전 교육 체계 자체를 뜯어 고치고, 인간적인 삶에 대해 고뇌할 수 있는 아제로스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라는 부분을 볼 때 정책위원회에 와우저가 있는 모양.

트위터를 중심으로 '진신류'라는 약칭으로 조롱을 받기도했으나 2013년 7월 21일 재창당 작업에 따라 노동당으로 당명 변경함에 따라 조만간 이 명칭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당시 시위대가 민주화운동과 집회시위의 선배격인 노동당에게 시위 방식 등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5. 역대 지도부

5.1. 진보신당

  • 1기 대표단(2008.3 ~ 2009.3)
    • 상임대표 : 노회찬, 심상정
    • 공동대표 : 박김영희, 이덕우, 김석준

  • 2기 대표단(2009.3 ~ 2010.9)
    • 대표 : 노회찬
    • 부대표 : 정종권, 이용길, 박김영희, 윤난실

  • 3기 대표단(2010.9 ~ 2011.9)
    • 대표 : 조승수(중도사퇴)
    • 부대표 : 김은주(권한대행), 윤난실, 김정진, 박용진[27]

  • 비상대책위원회(2011.9 ~ 2011.11)[28]
    • 위원장 : 김혜경
    • 비상대책위원 : 김윤기, 이건수, 허윤영, 박육남, 이근선, 전원배, 정상천

  • 4기 대표단(2011.11 ~ 2013.1)
    • 상임대표 : 홍세화[29]
    • 공동대표 : 안효상[30]
    • 부대표 : 강상구, 김종철(권한대행), 심재옥, 김선아

  • 5기 대표단(2013.2 ~ 2015.1)
    • 대표 : 이용길
    • 부대표 : 정진우, 장석준, 이봉화, 박은지[31]

5.2. 노동당

  • 6기 대표단(2015.2~현재)
    • 대표 : 나경채
    • 부대표 : 최승현, 권태훈, 문미정, 김윤희

6. 역대 선거결과

6.1. 진보신당

6.2.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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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이트 하단에 자세히 보면 노동당, No Copyright, Just Copyleft라고 쓰여 있다.. 그 진보적 성향이 홈페이지에서도 드러나는 것
  • [2] 심지어 이 와중에 용산구등의 위장 전입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나중엔 논란도 아니게 됐지만
  • [3]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묻혔다는 비판도 있다.
  • [4] 다만, 이것은 실제 활동하는 진성당원이나 대의원의 여론고 촛불시위만 보고 대강 가입한 페이퍼당원의 인식차이긴 하다. 이 부분은 대의원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5] 통합진보당에 대한 후원과 칭찬, 비난이 (세력이 큰 당인 만큼) 오해로 진보신당으로 가는 웃지못할 사태도 있었고, 합당을 이루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 [6] 단 참세상이 변혁모임의 주축인 사노위와 관련이 있어 사회당계에게 더욱 가혹하게 쓰였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으므로 참고할 것.
  • [7] 당 주류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8] 활동하는 사람 자체가 부족한 것도 이유일 것이다.
  • [9]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정의당의 경우 당내에 동의안 찬성 입장을 주도한 참여계와,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NL계열으로서 이러한 방침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인천연합이 공존해있기 때문에 그런 트러블이 일어난 특수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 [10] 실제로 과거에는 이런저런 활동도 했지만, 최근에는 당적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 [11] 바로 위에 언급된 그 박은지 부대표다!
  • [12] 경상남도의원 창원시 제 5선거구의 여영국 당선자. 그나마 그도 새누리당 후보와 1:1이었기에 접전 끝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야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면 어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 [13] 공교롭게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에서 진보신당이 받은 득표율과 같다
  • [14] 대전, 대구, 제주, 세종
  • [15] 물론 이것은 노동당만의 실패는 아니며 진보정당이 전체적으로 패배하는 흐름 속에 있다. 오히려 노동당은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에 비해서 그나마 덜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구로의 김희서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서 진보정당 중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기초의원을 배출시켰고, 창원, 거제 등에서 강한 지지기반도 확인했다. 또한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서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도 나쁘지 않았다.
  • [16] 진보신당은 서울에서 18대 총선에서는 4.04%(전국은 2.94%), 19대 총선에서는 1.47%(전국은 1.13%)의 득표율을 얻었다.
  • [17] 원외정당 소속임에도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선언을 했는데,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배려해줬다고 한다.
  • [18] 노회찬 의원은 19대 총선때 노원병에서 당선되었으나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그 사이 노원병에서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지역구를 잃은 셈이 되었다. 또한 당 내에서 정의당의 인지도 확보를 위해 보궐선거에 인지도 높은 노회찬 의원이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 [19] 이때 통합진보당과 함께 했기 때문에 종북주의적인 정당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특히 단일화 문안 중에 "양당(통합진보당, 노동당)은 당면해서 박근혜 정권의 종북공세 일환인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와 소위 내란음모 사건 조작, 그리고 전교조 법외노조화 각종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공동행동을 해 나간다."는 부분이 들어간 것이 문제가 되었다. 또한 주체가 양후보가 아닌 양당인 것도 논란의 대상. 김종철 후보는 이에 대해 본인의 불찰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 [20] 노회찬이 노동당의 전신인 진보신당의 당대표를 맡은 경력에, PD계열의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노회찬과 김종철의 스탠스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21] 당내 정파 중 하나로, 관악파가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인다.
  • [22] 한윤형 :“당의 미래”선본에 대한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까닭#, 김종철 : 존경하는 젊은 벗들에게..# 한윤형 : 노동당, 열심히 안 했단 것이 아니라...# 김민하 : 존경하는 젊은 벗들에게 - 김종철을 믿지 마십시오#, 정의당과의 통합에 대해 : 김종철을 믿지 말라고 쓰고 나서# 강상구 : 젊은 벗들에게-김민하, 한윤형 같은 평론가들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 [23] 하지만 당의 미래 그룹은 당원이 가장 많은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김상철 후보를 당선시키기도 했다. 현직 위원장인 김일웅 후보가 진보재편그룹의 후보로 재출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결과라 할 것이다.
  • [24] 그런데 진보신당은 다른사람이 낙태를 요구하여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침해받는 상황에는 거의 해결 방법을 제시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 상황에서 타인이 낙태를 요구한 경우 실제로 낙태에 응할때는 낙태를 요구한 사람이 교사범으로 처벌되지만, 진보신당의 말대로 개정될 경우 낙태요구에 대해 처벌 근거가 완전히 사라져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호할 방법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낙태죄가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낙태를 강제로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며 협박시에는 협박죄로, 강제수술시에는 상해죄 등으로 중하게 처벌받게 되므로 저런 이유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애초에 이런 것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 [25] NL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된것처럼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도 금기시되온 것이 90년대 이후 한국 진보운동계이다.
  • [26] 사망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해도 공적인 인물의 일생동안의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도를 넘은 고인드립이 아닌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라서 추모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비판?할 자유마저 막는 것이야말로 자유사회에서 이상한 일.하지만 비난할 자유는 없다 고인드립과 비판의 구분은? 사실 노무현 사망시에도 그거 가지고 논쟁들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침을 뱉건 추모를 하건 자기 맘대로 하자고 해서 다들 데꿀멍... 근데 진중권은 일단 추모하자고 했다가 과거 자살세 드립을 친 것이 발굴되어서 한동안 곤욕을 치뤘다
  • [27] 現 민주당 대변인
  • [28] 조승수 대표 사퇴 이후 김은주 부대표가 권한대행에 취임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물러나고 비대위를 설치함
  • [29] 사회당과의 합당 이후 상임대표. 일신상의 이유로 2012년 10월 사퇴.
  • [30] 사회당과의 합당 당시 사회당 대표로 합당 이후 공동대표로 취임. 2012년 11월 김순자 대선후보 출마 문제와 관련해 사퇴.
  • [31] 위에도 서술되었듯이 임기 도중 사망
  • [32] 통합진보당-노동당 단일후보. 양당관계를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