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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last modified: 2015-03-29 08:04:1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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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쭉하다.오른쪽은 1962년 12월 12일까지 쓰인 국기. 표정에 불만이 가득하다

면적 147,181km²
수도 카트만두
인구 2,933만 1,000명(2010)
인구밀도 km²당 199명
통화 루피
국가원수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
1인당 GDP PPP 1,270$, 명목 562$(2010)
시간대 UTC +5:45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자연
5. 외교 관계
6. 정치
7. 스포츠
8. 한국과 네팔
9. 해당 국적의 캐릭터

1. 개요

히말라야 산맥, 인도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위치한 나라. 정식 국명은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सङ्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이다. 수도는 카트만두(काठमाडौं). 공용어는 팔어이다. 교육받은 경우에는 영어도 할 줄 아는 경우도 있다.

네팔(नेपाल)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에 있는 음식점에는 누군가 Never Ending Peace And Love 라고 나름 적절한 풀이를 적어놓았다고.

민족구성을 보자면 인도계가 대략 70%이상이고 나머지가 티베트계 민족이다.

2. 역사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유명한 룸비니(लुम्बिनी)가 네팔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네팔인들은 석가모니를 인도인이 아니라 네팔인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걸 두고 항상 인도랑 티격태격한다. 예전에 네팔에서 석가모니가 인도인이라는 설정을 한 인도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바로 상영관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전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고, 불교 신자는 10% 정도. 이슬람교 신자도 소수 있다. 다만 원래 힌두교는 다신교로써 여러가지 신을 포괄한다. 당연히 석가모니는 힌두교에서 주로 모시는 신 중 하나이고 심지어 특이한 경우 예수까지도 자신의 신으로써 모시는 힌두교 사원도 있다.

여러 작은 부족국가들이 나눠어져 인도나 티베트의 지배를 받으며 지내다가 1768년 12월 21일에 통일 왕정국가가 되었다.1814년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구르카를 필두로 저항하여 영국과 종전협정을 맺게된다. 이 와중에 영토 일부를 영국에게 줬으나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와 밀접한 연관이 큰 라나(राणा, Rana) 가문으로부터 100여년에 이르는 섭정으로 인한 허수아비 왕조로 전락했고, 1850년대부터 섭정직을 독차지한 라나 가문이 카스트 제도를 들이는 통에 혼란만 더 일으켜왔다.

시크족과 싱할라족 다음으로 세계 최강의 용병으로 꼽히는 구르카족이 바로 네팔의 3대 수입원 중 하나라는 말이 있다. 구르카의 명성과 역사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미(美)의회 도서관 자료실 정보에 따르면 군사력 총합으로 세계 54위이다(...) http://www.globalfirepower.com/ 참고.
1950년대에서야 비로소 구르카계 샤(शाह, Shah) 왕조가 절대 왕정을 이루지만, 그마저도 왕비 및 여러 기득권에 라나 집안 후손들이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런 가운데 1972년에 즉위하여 1990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비렌드라 국왕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반대로 왕비인 아이슈와랴는 라나 집안 사람이었고, 절대왕정 보수파를 대변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는 아주 최악이었다. 1998년 왕과 왕비 내외가 거리 탐방을 나갈 때조차 사람들은 왕비에게만 돌을 집중으로 던져 왕비가 큼직한 돌에 이마를 맞고 피멍까지 들기도 했다. 그 정도로 네팔 민중들이나 진보파, 좌익으로부터는 공적 1호로 왕비가 모든 미움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해도, 150년 가까이 네팔 기득권을 누려온 라나 집안 및 귀족들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기에 네팔 경제 다수 부는 소수층만 가져갔고, 결국 모택동주의자(마오이스트)를 비롯한 저항세력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인도가 절대적 영향을 누리는 네팔에선 중국이 친모택동주의를 받드는 마오이스트들을 이용해 배후조종한다고 비난하자, 중국은 이들을 견제하고 네팔군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인도군이나 부탄군까지도 마오이스트들을 견제하고 적으로 삼았기에 이들 세력은 극히 미미했다. 지금은 사라진 월간잡지 지오에서 90년대 후반, 네팔까지 가서 마오이스트들 기지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몽둥이나 농기구와 화살까지 들고 훈련받으며, 실전에 쓰는 총기조차도 자기들이 만든 1발짜리 권총이 휴대무기일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해 안 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취재하러 올때는 차원이 달라졌는데, Ak-47로 무장한 군인들 투성이에 로켓포, 수류탄같이 네팔 정부군급으로 무장이 달라졌다. 때문에 네팔 왕실은 중국이 지원한 것이라고 여겨서 중국이 이를 달래고자 중국 무기들까지 지원했었다...그런데 막상 마오이스트들이 합법적 정권을 열자 중국이 더 환영하는 걸 보면...

그러나 2001년 6월 1일 갑자기 비렌드라 국왕의 장남인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궁 파티석상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 국왕과 왕비, 누이 등 왕족 9명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디펜드라 왕세자는 혼수상태에서 3일 후 숨졌다. 그래서 이 3일간은 디펜드라가 왕위를 자동 승계하여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왕세자가 결혼에 반대하는 국왕 부부에게 불만을 품고 저지른 소행으로 발표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왕비가 왕세자가 35세 이전에 결혼하면 요절할 것이란 점성사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으며, 피살된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왕위 찬탈을 노리고 배후에 개입하였을 거라 의심하고 있다. 갸넨드라는 현장에 없었으며, 갸넨드라의 아내와 아들은 현장에 있었으나 모두 살아남았다. 또한 국왕과 왕세자 등 왕족 10명이 숨진 중대한 참사인데도, 속전속결로 장례가 치러진 점도 의심을 샀다. 왕정 폐지 후 네팔 정부는 이를 재수사하기로 했다. 디펜드라가 자살한 게 맞느냐는 의혹까지 있다.

갖가지 의혹 속에 국가평의회는 형식적으로 디펜드라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다음에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 샤를 섭정으로 지명했고 갸넨드라는 곧 왕위에 올랐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왕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데다가, 이전부터 선왕과 달리 갸넨드라 왕은 상류 보수층들만 끼고 놀았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못받았다. 더욱이 뒤를 이을 게 뻔할 파라스 왕자도 네팔에서 인기가 최악이었다. 이 왕자는 술 먹고 깽판 부리기로 악명을 떨쳤다. 심지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무고한 사람까지 치어 죽였는데, 피해자가 네팔에서 인기 많은 대중음악가였고, 이걸 덮으려고 하다가 들통나면서 더더욱 욕먹었다. 그런 왕자가 왕이 된다면... 네팔 사람들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네팔 왕실에 등을 돌리면서 최악이던 마오이스트(마오쩌둥 주의자)들은 졸지에 무시못할 세력으로 커져갔다.

이후로 네팔 정부군 상당수까지도 왕실에 등을 돌리고 이들이 마오이스트들에 넘어오면서, 열악한 게릴라전을 벌이던 이들이 전문적 군인들이 훈련시키고 무장 수준도 장난 아니게 달라져서 네팔 정부군이 고전하게 된다. 그러자 미국까지도 네팔군을 지원하고 나섰지만, 민심이 등을 돌린 정부군보다도 마오이스트 세력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러다 보니, 내전은 이전과 너무나도 다를 정도로 장난이 아니게 달라졌고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도 커져가며 경제등급 악화에서부터 네팔 경제와 외교 여러 모로 타격이 컸다.

게다가, 이런 혼란을 수습해야 할 갸넨드라 왕은 되려 2005년 절대왕정을 부활시키면서 민심만 폭발시키게 만들었고 이 혼란을 틈타 마오이스트들이 대도시 부근까지 진격해 전투를 벌였으며, 이런 혼란을 막겠다고 벌인 선거조차도 야당을 탄압하면서 왕당파들이 절대적 압승을 거두자 더더욱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린 꼴이 되었고, 야당 전 세력에서부터 진보, 좌익, 심지어 우익온건파들조차도 이들과 손잡고 왕정 타파를 주장한다. 결국 이런 절대왕정 부활 2년도 안가 왕은 모든 권력을 이양한다고 물러나야 했고, 2007년 12월 25일 마오이스트와 정부가 사실상 왕정폐지에 합의했으며 5월 29일의 선거에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압승하면서 239년만에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되었다.

하지만, 네팔에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인도 측은 마오이스트 정권을 안 좋게 여겼다. 인도 동부 차티스가르 주 및 웨스트벵골 주 여러 주에도 낙살라이트 Naxalite라고 불리는 마오이스트 반군이 있는데 이들도 장난이 아니다. 2009년만 해도 이들 테러에 민간인과 경찰을 합쳐 인도에서 906명이 죽었다. 참고로 화약고인 잠무 카슈미르에서 그 해 사망자가 민간인, 군인 합쳐서 132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내전급이다. 이런 상황때문에 인도는 네팔에 여러 혼란이 계속되는 것도 두고보고 있다. 마오이스트 측은 중국에게 더 매달리지만, 이걸 환영하면서 중국도 정작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마오이스트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던 미국이나 인도 눈치 때문에, 왕정복고 어쩌고 하는 뻘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갸넨드라 국왕 일가는 폐위되어 카트만두 근교 별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뭐 권력으로 밀려나서 좌절할지 모르지만, 모아둔 돈과 인도 및 여러 상류층과 협약으로 여전히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 민심이란 것도 묘한 듯. 이웃나라와는 참 대조적이다.

3. 경제

4. 자연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가 이 나라에 위치하고 있다. 평균 고도가 1,350m일 정도로 높은 산이 많은지라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했다가는 "저런 건 네팔에선 앞동산이라고 하는 거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당장 내가 서있는 곳이 3,000m인데 그런거 산이라고 치기는 커녕 보이지도 않는다 허영만이나 서나래의 만화에 따르면, 대충 7,000m 이하의 산들은 이름도 안 붙여 준다고 한다(…). 산지를 안내하는 셰르파들도 굉장히 번창했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이 중에 8개가 네팔에 있다. 1위 에베레스트(8,848m), 3위 칸첸중가(8,586m), 4위 로체(8,516m), 5위 마칼루(8,463m), 6위 초오유(8,201m), 7위 다울라기리 1(8,167m), 8위 마나슬루(8,156m), 10위 안나푸르나(8,091m) 가 네팔에 있으며 2위 k2(8,611m), 9위 낭가파르바트(8,126m), 11위 가셔브룸 1(8,080m), 12위 브로드피크(8,047m), 13위 가셔브룸 2(8,035m)는 파키스탄에 있고 14위 시샤팡마(8,027m)는 중국에 있다. 하지만 14좌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봉우리이다. 네팔과 파키스탄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중국과 경계에 있다.

여러가지 기술 미흡 및 자본 문제와 건기에 보충할 전력 보충 문제로 정전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의외로 수도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이게 당연한 건데 해마다 눈이 갈수록 많이 녹는다고 환경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는 네팔 환경을 봐도 짐작할 수 있으며 거기라도 물이 언제나 가득한 곳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황무지같은 곳도 많다. 그래서 마을마다 공동 수도(우물)가 있고 개인수도가 없는 곳이 많다.

아닐 것 같지만 악어코뿔소코끼리도 산다. 네팔에도 밀림과 초원이 있다. 오죽하면 네팔 여행사 대표가 한국에서 홍보하면서 "네팔에는 에베레스트와 산만 있는 게 아닙니다"라며 밀림과 코끼리와 늪지도 있다는 열변을 토한 바 있다. 네팔의 이 밀림지대는 치트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5. 외교 관계

외교적으로는 이웃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더불어 절대적으로 인도에 의존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임에도 인도 귀족들이 와서 네팔 정계와 경제를 삼켰고, 2000년대까지도 네팔 경제 대부분을 인도계가 쥐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 상당수가 인도가서 일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인도에서 받는 대우는 아주 최악이다. 엄청 낮은 월급에, 그마저도 안주는 것. 게다가 구타와 폭력, 사기에 휘말리는 게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다른 나라도 해당사항이 많을듯.

그러나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며 네팔에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네팔 마오이즘 반군이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으면서 친중국 성향으로 가고 있다. 굳이 이 기사 말고도 '네팔 중국 티베트'라고 세 검색어를 넣어서 뉴스 검색해보면 네팔이 얼마나 친중국화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네팔 민중들은 별로 중국에 대하여 친근함을 가지지 않는데 중국인 이민자들이 네팔에 와서 장사하는 게 조금씩 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네팔은 산업화된 경제가 아니라 실업자가 굉장히 많은 나라이니 외국인이 와서 장사하는 걸 아니꼽게 볼 수밖에. 안 그래도 티베트 망명자들도 차별많이 당하는 곳인데 이젠 중국인 숫자가 늘어나는 걸 더더욱 신경쓰는 분위기라고 한다. 중국인 말고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백인들도 와서 식당이나 이민도 오고 그러지만 보통 자국인 위주로 장사하는 게 대부분이며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네팔 정부가 친중국 자세인 것도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가시적인 경제성장이 별로 없는 게 아무래도 여기도 윗 정치인들이 참 썩은 모양. 더불어 중국에게 경제적 지원 받은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좋게 돌아간다는 경우가 얼마나 있더라?

6. 정치

마오이스트 정부도 네팔에선 잠깐 인기를 끌었다 뿐이지, 언제라도 전복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동안 왕정에 대한 반발이 거셋지만 동시에 마오이스트가 벌인 횡포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에서도 봐도 알겠지만 외국 나가서 고생해 돈을 많이 벌어왔다면 집에 몰려가 돈을 내놓으라며 온갖 협박에 심지어 납치, 약탈까지 벌이던 사건들이 꽤 많았다. 이에 대해 마오이스트 수뇌부는 일부 드립 및 가짜 마오이스트라고 했지만 고위간부들도 연루된 상황이다.

임현담의 <가르왈 히말라야>라는 책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도 나온다.

"인도에서 네팔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마오이스트들의 약탈로 재산을 잃고 인도로 달아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네팔인은 해외에서 10년 넘게 죽어라 일하면서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벌어오자 절반을 내놓으라며 집으로 찾아와 기르던 소를 쏴죽이는 마오이스트들 때문에 고생하다가 한 마오이스트 병사에게 장작을 던져 화상을 입히고 죽어라 달아난 끝에 겨우 인도로 피했다는 사람이나 반대로 돈도 없음에도 마오이스트에게 징발로 아이들을 짐꾼으로 빼앗긴 이들 같은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마오이스트들은 이전부터 파업 같은 반정부 활동을 강제로 참여하게 하여 파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나 문을 연 가게들을 상대로 무력을 벌이는 일에서부터 셰르파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이란 명목을 마구 돈을 뜯었던 일도 벌였기에 마오이스트에 대한 불신감도 적지 않다. 선거에서 이겼으나 마오이스트 정권도 경제정책에서 무능하기는 마찬가지고 사람들은 이건 왕정이나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이 쌓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로 친중 정책이 오래 지속될지는 의문. 뭐 마오이스트가 독재정권이라면 계속 이어지겠지만 과반수를 확보한 상황은 아닌지라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반대파(국민의회당, 공산당 마르크스-레닌연합 등등)가 득세할 건 뻔하다. 중국으로서도 이웃 나라인 네팔을 계속 친중으로 묶어두고 싶지만 마오이스트 정권의 뻘짓으로 불안한 걸 두고 봐야 하는데 반대파들이 친인도나 친러, 친미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으로서 국회의원이 된 골체 사르키는 마오이스트조차도 고위 카스트들이 간부로 이뤄져서 왕정주의자랑 차이가 없는 모순주의자로 비난했는데 불가촉천민들에겐 마오이스트나 왕정파나 차이가 없다고 뜻을 같이했다. 2011년 한국여행자가 네팔 현지인들에게 물어본 마오이스트 정권 인기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또 다른 대안을 주장하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제2의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도 시도 때도 없이 정권이 바뀌는 불안정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7. 스포츠

스포츠로는 뭐 알려진 게 없다. 축구엔 마티어스 메모리얼 A 디비전 리그라는 1부리그 및 2부 리그(메모리얼 B)까지 갖추고 있긴 하지만 약체급이라서 AFC프레지던트컵에 나가지만 여기서도 뭐 내세울 성적이 없다. 게다가 재정난 및 여러 사정으로 1990~94년, 2007~08년까지 아예 리그가 열리지 못하는 열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도 초라하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예선전에서는 한국에게 0-11로 졌다. 이 경기에서 황선홍에게 8골을 내 주며, 한국 국가대표 개인 1경기 최다 골 기록을 만들어 줬다. 이 기록은 9년(...)이나 유지되다가, 2004년 아시안컵 지역예선(2003년에 치름)에서 한국에게 0-16으로 지며 한국축구 사상 최다골차 승리 기록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이건 네팔에게도 최다골차 패배 기록으로 남았다. 그래도 1986년 월드컵 예선전에선 한국과의 홈경기에서 0-2로 선전한 적도 있다. 그리고 1999년 남아시안게임 대회에서 부탄을 상대로 12:0으로 이기면서 몰디브와 더불어 90~2000년 사이엑 10점차 대패를 당한 최약체가 10점차로 다른 나라를 이긴 기록을 거둔 바 있다. 그런 네팔 리그에서 한국 선수 모집을 한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기사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한국 선수들이 인도네시아나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같은 동남아 리그에서 꽤 여럿 활약하고 있다. 다만 서남아시아 쪽으론 활약하는 한국 선수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자세한 건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개인 종목은 어느 정도 하는 듯.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 처음 나왔으나 메달을 1개도 못 받고 47년동안 불참하다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오랫만에 나와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받은 게 최고성적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 종목에서 동메달 3개를 받았으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권투에서 동메달 1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가라테에서 동메달 1개를 받았다.

8. 한국과 네팔

한국과는 1968년 영사관계로 있었다가 1974년 대사관계로 격상되어서 수도 카트만두에 주 네팔 대사관이 신설되었다.

네팔은 셰르파라든지 관광업으로 종사하는 이들도 많지만 워낙에 실업자 수가 많기에 결국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2010년 6월 16일자 네팔 히말라야 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 합법적 취업비자를 받고 가서 일하면 한 달에 보통 100만 원 정도를 버는데 이는 가까운 인도에서 버는 돈의 5배가 넘으며, 네팔에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이들 월급 3배가 넘는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말레이시아나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보다도 임금이 높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들 한국에 가려고 하면서 한국인 여행자들도 네팔 여행가서 현지인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혹시 한국에서 일할 곳을 부탁하는 요청을 자주 듣는단다.

하지만 연줄이 없으면 한국어 능력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합격해야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브로커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등, 위험부담이 크다. 때문에 비싼 수강료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위한 한국어 교육 방송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로 취업비자 발급건수가 크게 줄어들었을때 상당수의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자들이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증 유효기간(2년)이 지날까봐 두려워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사장 혹은 상사에게 구박을 받거나 물리적 폭행 등을 당해 생기는 정신적 휴유증을 안고 돌아오거나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하는 사건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일할 경우 작업조건이 열악한 3D 업종에 종사하는 데다 업체 대부분이 영세하여 안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높은 빈도로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또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여 돈을 뜯기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나마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 능력시험의 난이도가 상당한 데다가 경쟁률이 높다 보니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고.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배낭여행자 거리인 타멜거리에 가보면 한국식당도 제법 볼 수 있는데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있으며 타멜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조금은 어설픈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네팔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경험이 있는 네팔인들이다.

2014년 3월 20일 프로듀서(PD)를 비롯한 국내 방송사 직원 3명과 여행가이드 등 한국인 4명이 네팔에서 힌두사원과 군사시설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18일 체포돼 사흘째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국 대사관측에서는 이들의 촬영장비가 공중에서 전경을 촬영하는 헬리캠으로 군사장비가 아니며 불법 촬영 의도가 없었다고 현지 경찰을 설득하여 이들 4명을 풀려나게 했으나 19일 다시 경찰서로 간 뒤 20일까지 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