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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

last modified: 2019-09-22 21:51:3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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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반다이와의 합병
3. 남코와 닌텐도 관계
4. NAMCOT
5. 대중적인 8비트 폰트의 보급 - 아타리/남코 폰트
6. 애니메이션
7. 관련항목
8. 주요 작품

1. 개요


일본게임회사 중 하나.

이름인 NAMCO는 NAkamura Manufacturing COrporation 의 약자라고 한다.

삼성이 영어권에선 샘성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남코도 영어권에선 냄코로 불린다고 한다.

원래 목마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였다. 당연하지만 연방그거는 아니었는데, 그거 만드는 회사합병되면서 어떻게 보면 맞는말이 되기도 하였다. 굴지의 게임회사로 성장한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창립 초기에는 회사의 사무실이 빌딩 옥상(!)에 있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안습의 역사.

게임쪽 산업의 경우는 초기 아타리의 일본 수입원으로 시작했으나, 지-비[1]의 제작을 시작으로 아케이드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후 팩맨, 갤러그, 제비우스 등의 게임이 빅 히트를 치면서 훗날 남코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80년대 초반의 게임 시장에서 부등의 강자로 활약한다. 특히 팩맨의 뛰어난 게임성과 내부의 기술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지금도 교과서처럼 숭배되고 있으며, 대중에게도 일본 뿐만이 아닌 미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문화현상,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3년 크리스마스 무렵, 남코의 베테랑 제작진들이 집단으로 퇴사한 사건이 발생하고[2]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80년대 초반의 모습과는 반대로 망작 게임들을 주로 만들었다. 특히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이 경합을 벌이던 16비트 전쟁시대에는 원평토마전, 왈큐레의 전설, 원더 모모와 같은 훗날 게이머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외에는 모두 흑역사에 가까운 졸작들을 많이 내놓았다.

위의 세 게임 외에는 그나마 대중들에게 남코 황금기 시절의 저력을 보여준 게임으로는 패밀리 스타디움(패미스타) 정도. 후에 슈퍼패미컴으로 갈아타면서 퍼 패미스타를 내게 되지만 후발주자로 나온 코나미가 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 밀려 버로우당하게 된다. 특히 닌텐도64로 나온 미스타 64는 한마디로 흑역사. 그냥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쿠소게라고 봐야 한다.

그 후 90년대 중반, CD게임과 3D게임들의 시대가 오면서 릿지 레이서(1993), 철권(1994) 등의 명작 3D게임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1993년 봄 차세대 아케이드 기판에 대한 개발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와중 소니의 쿠다라기 켄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소니가 게임기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소니 역시 자사기에 좋은 소프트웨어를 공급해 줄 훌륭한 서드파티가 필요했기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고, 그로 인해 PS와 완전 호환인 기판인 SYSTEM 11의 개발로 남코를 적극 후원했다. 물론 철권 1 시절에는 버추어 파이터의 아류작이란 오명을 벗지 못했지만, 시리즈가 점차 진행되면서 독자의 노선을 확보하여 지금은 그렇게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PS2시기까지 남코와 소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철권만큼은 PS독점이라는 공식이 계속 성립되었으나, 철권 6은 XBOX360으로의 이식을 발표한 상태.

92년도에는 원더에그라는 게임테마의 테마파크 사업에도 진출하였다. 그중 잘 알려진 어트랙션은 관객참여 극장형 스페이스 건슈팅게임인 갤럭시안 스퀘어[3], 그리고 모션캡쳐 철권 2(...) 등이 있다. 이 원더에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세계토픽 TV 프로그램인 계는 지금에 소개된적도 있어서 앞서 말한 두가지 어트랙션이 나온다.[4] 참고로 철권 3~철권 TT에서의 샤오유 배경스테이지는 이 원더에그가 모티브인것으로 추정된다.

96년 슈퍼패미콤 말기에 울프팀에 하청을 의뢰하여 발매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를 통해서 RPG 장르에도 뛰어들었고 이후 테일즈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2. 반다이와의 합병

2005년 5월 반다이와의 경영 통합을 발표하고, 이후 두 회사는 한지붕 두가족시대를 열다가 2006년 3월 31일 최종적으로 합병되어 '반다이 남코 게임스'가 된 상태.

합병 이후 기존 남코의 브랜드는 대형 오락실 브랜드인 남코 랜드의 운영만 남게 되고 전부 반다이 남코 게임스로 이동되었다.

합병 이후의 개발 행적에 대해서는 반다이 남코 게임스의 항목을 참조.

3. 남코와 닌텐도 관계

시기는 닌텐도가 패미컴을 출시하고 인기를 크게 얻기 시작하는 80년대 중반이다. 1983년 7월 패미컴이 처음 출시한 당시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은 세가의 SG-1000과 맞먹을 정도로 여타 경쟁기들에 비해서 걸출한데 마땅한 킬러 소프트가 없었다. 이 때는 슈퍼 마리오도 젤다의 전설도 없던 그 시절이라 그런 패미컴을 살린 구세주가 바로 남코였는데, 자사의 인기 아케이드 게임들을 패미컴으로 이식하여 하드웨어의 판매량을 견인했었다.

1984년 패미컴에 첫 진출했던 초창기에는 남코와 닌텐도 사이에 매우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다. 남코는 아케이드 시장과 따로 가정용 게임기라는 시장에서 돈을 벌게 되었고, 닌텐도는 남코의 우량 게임들로 하드웨어 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닌텐도는 남코를 거의 '퍼스트 파티' 혹은 '사업상 파트너'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었는데, 단적으로 패미컴에 게임을 발매할때 거두어들이는 라이센스비도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남코만 유리하게 별도로 계약되어 있는데다가 남코의 자체제작 소프트는 자체적으로 롬팩을 생산 가능하게 하는 특혜[5]를 줄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

허나 남코는 아케이드 시장에서 쫒겨난 명예를 패미컴에서 되찾겠다고 결심.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곧장 닌텐도의 특혜를 악용하여 닌텐도 몰래 편법으로 자사제작이 아닌 게임들을 자사제품이라고 속여 발매한 전적을 저지렀으나 몇년만인 1988년에 발각되어서 결국 중단했지만 닌텐도가 특별대우를 해주던 당시 게임기를 몰래 개발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골이 깊어지고 처음 발각된 1988년으로부터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난 1차 5년 계약이 끝나는 시점인 1989년 서드파티로 격하된다.

이때 남코는 80년대 초반의 빛을 잃어버리고,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어 회사 내부적으로도 조금 힘든 시기였는데 그런 상황에 닌텐도가 재계약 시점에서 확실하게 보복한것이 바로 계약 사항 변경. 남코의 대우가 일종의 강등마냥 다른 서드 파티들하고 같아져 버렸으니 이미 닌텐도의 패미컴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시점이라 닌텐도는 굉장히 우월한 지위에 있었고, 남코는 난처한 상황일때 양자택일 밖에 없었다.

당시 특별취급이 당연했다고 여겼던 남코는 결별하고 싶어도 예전에 한짓도 있고 거기에 내놓으면 적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 시장을 포기하고 손가락만 빨거나,[6] 지금처럼 3자 구도는 커녕 2강 체제도 아니었던 당시. 남코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 계약 사항을 수용하여 계약을 갱신할 수밖에 없었다. 몇년이 지난 후 인터뷰한 내용에서도 이 얘기를 하면서 관계자가 잠시 침묵했다고 한다. 해커 인터내셔널 역시 남코와 함께 닌텐도를 과독점위반으로 고소했으나 둘이 사이좋게 패소하자, 해커 인터내셔널은 PC엔진으로 도주한다.

이 원한 때문인지 후에 닌텐도 기종으로 나오는 게임들(특히 테일즈시리즈)을 소니 게임기에서 완전판을 내놓고 남코에서 개발했던 마리오카트AC와 스타폭스어썰트의 퀄리티를 최악으로 냈다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

그러다가 2014년이 되면서는 마리오 카트 8보조 작업을 맡거나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for Nintendo 3DS / Wii U 개발에 참여하는 등 친 닌텐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팩맨 참전 트레일러 마지막에는 닌텐도의 미스터 게임&워치와 서로 같은 1980년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난투 이외에도 폿권을 아케이드로 개발할 것을 발표하며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다. 태고의 달인 시리즈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계열로는 나오지 않고, 닌텐도 플랫폼 위주로 주로 출시하고 있다. NTR

4. NAMCOT

가끔 구작중에 사명이 NAMCOT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남코의 도쿄지부[7] 혹은 NAMCO가 PS1 참여 이전까지 닌텐도에서 제조한 콘솔 이외의 기기에 자사의 게임을 이식할때 사용한 브랜드이다.

사실 NAMCO가 멀쩡한 NAMCO를 놔두고 굳이 NAMCOT을 사용한 이유는 닌텐도 패미컴의 서드파티 계약 내용에 타사의 콘솔로는 게임을 발매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계약 사항이 존재했는데, 이게 남코의 발목을 잡아서 NAMCOT같은 브랜드도 만들어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남코말고도 미국에서 세가의 제네시스(메가드라이브)가 SNES(슈퍼 패미컴)을 앞지르기 시작하자 코나미, 캡콤 등도 재빨리 메가드라이브용 게임을 내놓은지 몇년이 지난 후였다.

이 당시 닌텐도는 패미컴슈퍼 패미컴의 연이은 성공으로 한창 자만심으로 가득차있는 상태였고 하드웨어 판매량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있는 게임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타이트한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이미 패미컴의 첫 서드파티였던 허드슨NEC와 파트너 계약을 맺어서 게임기 PC엔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도 "어차피 우리랑 상대도 안될텐데"하는 분위기로 넘어갔다고 한다. 닌텐도의 갑질이 끝난 시기는 매체가 CD로 넘어간 32비트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닌텐도에 염증을 느낀 남코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의 런칭에 전격 참여하면서도 철권 발매시 NAMCOT 브랜드를 사용한걸 보면 그래도 여차하면 닌텐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던거 같은데, 닌텐도가 이적 행위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는 초강경 자세[8]를 보이면서 결국 남코는 완전히 PS진영에 둥지를 틀게 되고 '릿지 레이서', '철권', '에이스 컴뱃' 같은 주옥같은 타이틀로 PS의 3D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대표적인 회사가 되어버린다. 참고로 새턴으로의 게임 미발매는 남코의 흑역사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때 만약 남코가 새턴으로 갔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게임계에서 도는 가장 큰 흥미거리이기도 하다. 다만 철권의 경우 소니와 함께 합작한 게임이므로 어쩌면 이 시기에 이미 반다이와의 합병은 예견되어 있었을지고 모른다.

5. 대중적인 8비트 폰트의 보급 - 아타리/남코 폰트



스샷의 위아래에 보이는 폰트들.
통칭 '남코폰트'로 알려지기도 했다. 엄밀히 기원까지 따지면 '아타리 폰트'라고 해야하는게 맞겠지만.
아타리에서 제작되고 '슈퍼 브레이크 아웃'을 필두로 쓰인 8x8 픽셀규격[* 실질적으로는 7x7 사이즈다. 왜냐하면 한쪽 모서리에 1픽셀 한줄로 여백을 두기 때문.의 8비트 게임 폰트를 일본 게임업계에 보급한것도 남코다. 상술했듯 아타리 수입책으로서 슈퍼 브레이크 아웃을 참고로 개발한 지-비에서부터 저 폰트가 사용되었고 이후 팩맨의 대히트를 매개로 8비트 시대 오락실 게임을 넘어선 비디오 게임 전반에서 저 폰트가 많이 쓰였다. 닌텐도 불세출의 히트작 동키콩,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9]에서 이 폰트를 쓴것이 해당 폰트가 8비트 게임 시대의 심볼이 된 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8x8 규격의 폰트는 특히 남코와 타이토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폰트였다. 타이토 게임의 경우 남코 다음으로 80년대 게임에서 아타리/남코 폰트를 가장 많이 써먹었던 메이커일정도. 당장 버블보블부터가 이런 폰트를 쓴 대표적인 케이스였으니...

6.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도 제작한 경력이 있는데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로봇팬과 아이돌 마스터 팬에게 동시에 외면당했고 그 전에 만든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 애니메이션판은 원작의 초반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10] 그나마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애니판도 제대로 만들면 장편일 게 뻔한 것을 달랑 4화로 만들었다. 제노사가 애니판은 달랑 13화만 만들고 끝...이정도면 마가 끼인 게 아니라 남코 쪽이 무성의할 정도.

그나마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재평가받는 중이지만 아이돌 마스터 2가 아니었다면 이런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 외의 것은 재평가가 사실상 불가능 수준이다.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지만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 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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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간단히 말해서 슈퍼 브레이크아웃(아타리 원조 벽돌깨기2)에 핀볼을 접목한 게임이다.
  • [2] 남코에서 퇴사한 직원들은 이후 캡콤에 입사하였고 캡콤은 1984년 여름 벌거스를 발매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게임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 [3] 이쪽은 1인용으로 따로 이식되어서 나온다.
  • [4] 참고로 보여주던 철권2 화면은 백두산(철권) vs 폴 피닉스 였다.
  • [5] 닌텐도는 자사 이외의 회사에서는 자사 게임기에 들어가는 롬팩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출하량 제어나 이익 면에서 닌텐도가 매우 유리해지며, 이것은 닌텐도64에서도 롬팩을 고집한 이유로 꼽힌다.
  • [6] 당시 패미컴의 황금기 시절엔 아무리 허접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게 기본이었다.
  • [7] 코나미의 KCET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쪽은 약간 복잡한 사정이 있다.
  • [8] 드라이한 교토 상인이 운영하는 회사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 [9] 닌텐도 최초의 아타리/남코 폰트 도입은 1979년작 '보안관'이라는 게임이다. 덧붙여 닌텐도 게임 및 닌텐도 하드웨어 게임의 아타리/남코폰트 상당수는 거의 같지만 숫자 8이 조금 틀린등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다.
  • [10] 게임도 스토리에 문제가 있었는데 애니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