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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last modified: 2019-04-05 19:45:01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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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위치
공식명칭 남아프리카 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
(Nasionale lied van Suid-Afrika)
모토 !ke e: ǀxarra ǁke(다양성 속의 통일)
면적 1억 2,190만 9천 ㏊[1]
인구 5,806만 5,097 명[2]
수도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
사법 수도: 블룸폰테인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
정치체제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국가 원수 대통령 마타메라 시릴 라마포사
(Matamela Cyril Ramaphosa)
정부 수반
GDP[3]
(명목 기준)
전체: 3,766억 7,900만 달러
1인당: 6,560 달러
GDP[4]
(구매력 기준)
전체: 7,655억 6700만 달러
1인당: 1만 3,498 달러
공용어 아프리칸스어 외 10개
화폐단위 랜드
대한수교현황 ROK: 1992년 / DPRK: 1998년
ccTLD .za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사회
4.1. 인종 차별
4.2. 치안
4.3. 정리
5. 정치
5.1. 군사
6. 문화
6.1. 스포츠
7. 외교 관계
7.1. 한국과의 관계
8. 국기와 국가
8.1. 국기
8.2. 국가
8.2.1. 가사
8.2.2. 한국어 해석
9. 창작물에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10. 출신 인물


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약칭 남아공(南阿共)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이다. 이집트와 같이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는 국가인지도가 높은 나라이다.

수도가 프리토리아(행정), 블룸폰테인(사법), 케이프타운(입법) 세군데로 나뉘어 있는 나라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청와대, 대법원, 국회의사당이 서로 다른 도시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5] 최다인구 도시는 요하네스버그다. 요하네스버그 인구는 약 390만명.

남아공 지도를 보면 가운데에서 약간 동쪽으로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것과 동쪽 끝이 뭔가 쥐파먹은 듯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두 구멍의 장본국은 레소토(서)와 스와질란드(동)이다.
나미비아는 남아공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가 되었다. 참고로 두 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는 에리트레아), 제일 늦게 독립한 국가는 남수단 공화국 이다.[6]

세계에서 호주와 더불어서 이 넘쳐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도화된 산업국. 남아프리카 지역이나 블랙 아프리카에서는 우월한 강국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아프리카 연합의 실질적인 수장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內 국호 표기[7]
영어 Republic of South Africa
아프리칸스어 Republiek van Suid-Afrika
줄루어 iRiphabhuliki yaseNingizimu Afrika
남 은데벨레어 iRiphabliki yeSewula Afrika
코사어 Riphabliki yomZantsi Afrika
스와지어 iRiphabhulikhi yeNingizimu Afrika
북 소토어 Repabliki ya Afrika-Borwa
남 소토어 Rephaboliki ya Afrika Borwa
츠와나어 Rephaboliki ya Aforika Borwa
총가어 Riphabliki ra Afrika Dzonga
벤다어 Riphabuḽiki ya Afurika Tshipembe

2. 역사

가장 처음으로 인류가 거주한 지역 중 하나였으며, 매우 오래 전부터 코이코이족이나 산족이 살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수렵이나 채집을 하던 민족으로 특별한 역사 기록을 남기진 않았다. 이후 반투족이 남아공 일대로 남하해 와서 1,500년 전쯤 남아공 지역에 도착했으며, 이후 서쪽에선 코이코이족과 산족이 수렵으로 살아갔고 동쪽에선 반투 종족들이 농경과 목축을 영위했으며, 동북쪽 짐바브웨 근처에선 마풍구브웨 같은 왕국도 있었다.

이 지역은 1488년 희망봉의 발견으로 유럽인에게 처음 알려졌으나 처음에는 유럽인들은 이 지역에 썩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들은 17세기 얀 반 리벡을 따라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와의 무역에 있어 중간보급항 차원에서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케이프타운의 혹독한 기후와[8] 좀처럼 늘지 않는 인구 때문에 식민지 경영에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식민지 통치자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위그노들의 합류[9]로 식민지의 규모는 점점 커지게 된다. 또한, 지역 흑인들을 이용해 금과 다이아몬드 등의 귀금속 채취로 많은 수익을 올린다.[10] 그러나 점차 영국인들 또한 영국군을 앞세워 정착하기 시작하여 이들을 피해 점점 내륙으로 들어가는 Great Trek이라 불린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 중에 토착 흑인 부족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교류도 하면서 점차 자신들을 독립된 민족적 주체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보어인, 혹은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이게 또 19세기 초반에 샤카 대왕의 지도 아래 동북부에서 줄루족이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펼치면서 19세기 중엽 무렵에는 케이프 타운 일대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중부에는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라녜 자유국을 필두로 한 아프리카너 국가들, 그리고 동부에는 줄루 왕국이 삼파전을 벌이는 형세가 되었다.

이후 줄루 왕국은 치열한 전쟁끝에 1879년, 영국에 정복되었고 보어인들은 트란스발 공화국, 오라녜 자유국 등을 건국했지만, 남아프리카 지역의 귀금속 채굴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갈등을 일으킨 끝에 1899년 보어전쟁이 발생한다. 보어인들은 게릴라전과 독일의 물밑지원에 힘입어 영국군을 무던히도 괴롭혔지만[11] 결국 엄청난 병력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1902년 트란스발, 오라녜 연합군이 영국에 패전하면서 영국령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보어인의 강력한 저항에 진절머리난 영국군 역시 무자비한 강경책으로 나서 보어인 마을들을 초토화시키고, 강제수용소에다가 보어인들을 수용시켰는데, 2만 8천 명에 가까운 여성과 어린이들이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학대로 죽어 영국 내에서도 비난을 받았다. 역사학자 골드윈 스미스는 영국이 백년전쟁에서 잔 다르크를 화형시켜 죽인 이래 이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비탄하기도. 아편전쟁을 비롯한 아시아와 다른 아프리카 지역 침탈은 왜 빼놓았을까 아마 백인 외의 인종은 사람으로 안 봤던 것일까

남아프리카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영국은 이미 노예제도를 폐지한 나라였으나, 네덜란드는 그렇지 않았다. 영국이 남아공을 식민화한 뒤에도 현지의 반발로 인해 법률을 존중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타 영연방국가와 남아공의 법률체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1910년 이후에는 입법에 관련해서는 영국과 타 영연방의 간섭을 받지 않는 주권국이 되었으며 1948년 국민당이 집권하면서[12]부터 완전히 막나가기 시작해 1952년 의회에서 법원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이로서 사실상 대법원으로 상고하여 결정을 뒤엎을 수 있는 방법 자체를 원천 차단했다.(...) 당시 남아공의 대법원은 영국 본토에 위치한 추밀원이었다. 영국과의 관계는 아예 틀어졌는데, 일단 영국 본토 정부에서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마음에 들지 않아한 데다 1960년 영국 수상이 남아공을 방문해 대놓고 '변화의 바람'이란 연설을 해버렸다.

해롤드 맥밀런은 어느 때에도 침착 냉정하기로 유명했지만, 그런 맥밀런마저도 남아프리카 수상의 초청을 받자 흥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페르부르트 박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종교처럼 숭배하고 "만사에 오직 나만이 옳다"는 신념을 가진 "끔찍한 생각"의 소유자였다. 이날 맥밀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 앞에서 아프리카나 정권에 도전하는 연설을 했다. 긴장한 나머지 연설 직전에 몸이 아플 정도였다. 연설 자체는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아프리카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민족적 자각은 정책상 고려해야 할 정치적인 사실이었다.

그는 아프리카나 민족주의를 아프리카 최초의 민족주의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계속해서 불평등을 감내해야 한다면 흑인들은 공산주의로 돌아설 것이었다. 맥밀런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영국의 정책은 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들에게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00219
페르부르트는 당시 남아프리카 연합의 수상으로, 이를 기점으로 영국계 주민의 평균 연령이 더 높고 젋은 연령층이 적은 것을 고려해 투표연령을 18세로 내리고, 독일령이었고 독일계와 네덜란드계 보어인들이 대다수였던 나미비아까지 본토의 일부로 포함시켜 투표해 5% 차이로 영국에서 독립을 이뤘다. 다만 국기의 유니언 플래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가 후 1994년 국기변경 이후로 사라졌다.

영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었고, 나머지 강대국들이 멀고 먼 남아프리카까지 군사개입을 할 리가 없었던 걸 아는 남아공 정부는 대놓고 인종차별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도시에는 고용된 경우가 아니면 입장을 하지 못했으며, 입장을 했다 하더라도 케이프타운이나 더반의 해변가, 공원내 벤치, 공중화장실 등의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일단 그 전 1950년대에 유색인들은 의회 진출 금지, 또한 색이 다른 민족들 간의 성관계도 당연히 금지법들이 통과돼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섭하다.[13]

이 때문에 1954년부터 FIFA로부터 제명당해 월드컵 예선조차 나가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갖은 왕따를 당한다.[14] 넬슨 만델라 등은 지속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저항하였고, 결국 1990년 감옥에 갇혀 있던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공식적으로 철폐되고, 1994년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이후로 표면적인 인종차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다. 이걸 고치겠다고 흑인들의 경제력 신장을 대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던 'Black Empowerment Plan'을 시행했는데 1995년에 백인들과 흑인들의 소득차는 4:1이었던 것이 아파르트헤이드 종결 6년 이후인 2000년의 호구조사에서는 6:1로 오히려 벌어졌다. 21세기의 첫 10년간 흑인 중산층(일명 블랙 다이아몬드)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백인과 흑인간의 빈부격차가 심한 상태. 2011년 남아프리카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8천 달러인데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25%가 하루 1.25달러 아래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으로 치면 한국 국민의 25%가 하루에 4000원도 못 쓰는 수준.

그런데 의외로 남아공은 전세계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국제 노동조합 연맹 항목 참고.[15]

3. 경제

4. 사회


2001년 기준 남아공의 인종 분포. 빨간색이 흑인, 청록색이 컬러드, 연노랑색이 백인이다.

현재 남아공의 총 주민수는 4천 9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중 흑인이 약 80%이고 백인이 약 10%이며 나머지 10%는 컬러드(Coloured)[16]와 아시아인[17]이라고 한다.

4.1. 인종 차별

남아공하면 역시 소수의 네덜란드,영국계 백인들과 다수 토착 흑인 사이의 인종차별과 갈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백인들의 권력독점으로 인해 백인에 대한 우대와 혜택 그리고 독식 등이 늘어나게 되면서 어느 분야 가릴 것도 없이 흑인과 차별화되었을 정도. 학교에서도 백인 출신만을 입학허가해주는 대학교도 있는가하면 화장실이나 목욕탕 등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으로 나뉘어있는 등 생활면에서까지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편이었다. 미국의 N-word에 대응하는 남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멸칭으로 kaffir[18]라는 고유의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지구상 의회제 국가 중 20세기에도 삼원제 의회를 가졌던 국가이기도 하였는데 1980년대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되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조금 완화했는데 이때 백인들만 참여할수 있었던 의회[19]를 백인의회, 컬러드(흑인-백인 혼혈) 의회, 아시아인 의회로 나눈것. 다만 컬러드 의회와 아시아인 의회는 권한이 미약해서[20] [21] 삼원제가 시행했을 당시엔 컬러드와 아시아인들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 어쨌거나 80년대 후반-90년대 들어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흑인 의회도 추가해 사원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협상끝에 양원제로 전환되었다.

현재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회 내 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남아공의 지니계수는 세계은행에 의하면 2008년 기준 소득 기준으로 0.7, 소비 기준으로 0.63에 달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8%를 장악하고 있는 수준. 인종별로 뜯어보면 인구의 9%에 불과한 백인과 79.2%인 흑인이 각각 소득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흑인의 56%가 빈곤층이었지만 백인 중 빈곤층은 2% 정도였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2008년 기준으로 남아공의 대학 진학률은 6명당 1명 수준이었지만 취업 연령대 흑인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은 1.4%에 불과했다.[22]

그밖의 내용은 아파르트헤이트 참조.

4.2. 치안

현실판 GTA를 꼭 하고 싶다면 여길 가면 된다. 단 요금은 목숨이며, 물론 게임상 확률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즉 게임에 참여는 할 수 있되, 최종 스코어는 저승 가서 확인해야 하는 곳.

백인의 정치 권력 독점이 철폐되고, 흑인에 대한 법적인 규제도 철폐되면서 수천만 명의 흑인 노동력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져나왔으나, 제대로된 직업 교육을 받은 흑인이 적었던데다가 애초에 5백만명 정도을 부양했던 남아공의 경제력이 하루 아침에 4천만의 인구를 부양하게 만들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다수의 흑인들이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빈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수 밖에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남긴 최악의 유산이 바로 이거다.

거기다가 사회 혼란 속에서 AIDS 발병자도 늘어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타보 음베키(1999년-2008년 재임) 대통령과 그 치하의 높으신 분들무능하게 대처[23][24]하는 바람에 HIV가 남아공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는걸 막지못해[25] 2008년에는 남아공 인구의 10%, 특히 임산부의 28%가 HIV 감염자였다. 비공식 통계도 아니고 공식 통계가 이 모양이다. 그나마 만델라가 열심히 에이즈 퇴치하려고 발벗고 나섰고 주마 대통령 [26] 시기 들어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하는 정책[27] 덕분에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건 마찬가지, 이 때문에 남아공은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겨우 50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는 1인당 GDP가 남아공의 1/5 정도밖에 안 되는 베트남보다 20년이나 짧다.[28]

게다가 이곳은 아프리카 중에서 가장 경제력이 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29] 각종 범죄들이 소말리아 수준으로 일어난다. 특히 총기 난사 사고 문제는 너무도 심각해서, 남아공에 비하면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들은 그나마 훨씬 건전해 보이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보일 정도다. 그야말로 GTA 저리가라 할 정도로 헬게이트라 할 수 있다. 만델라 정권이 출범한 1994년 살인사건인 월평균 1,400건이었는데, 이는 통상 하루에 47명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한국과 비교하면 얼마나 막장인지 알 수 있다. 살인 외에도 침입 강도는 월 6,000건, 노상강도는 월 12,000여 건, 강간은 월 2,500건, 차량도난은 월 8,000건이 일어나며 경찰 살해도 월 평균 15건이나 된다. 흠좀무 2001년에는 1년 동안 살인 21,553건, 강도 228,442건, 강간 52,425건이 일어났고 흉악범죄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고.

그런데 상기된 대로 절대 수치는 얼마 안 줄었지만 범죄은 훨씬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령 콰줄루-나탈 주의 살인율은 1994년 10만 명당 95에서 2011년 35로 줄었고, 남아공 전체로 볼 때는 동기간 67에서 32로 감소했다. 17년 동안 살인율이 반 가까이 줄었는데 절대 건수가 크게 줄지 않았으면 인구는 얼마나 증가한 거야?[30]
리얼 헬게이트

이런 판국에 남아공 정부는 강력범죄에 대응하는 플라잉 스쿼드(Flying Squad)[31]의 장비나 인력 충원을 위한 지원도 전혀 하지 않고 있어 막장 상태를 개선할 의지조차 별로 없다는 것을 드러냈었다가, 주마정부 들어서 대도시 지역의 치안은 어느정도 개선되었다. 월드컵 치러지는데 치안불안정으로 망신당할수는 없으니까 [32]

물론 개선되었다고는해도 하네스버그나 그 근교도시에 사는 부유층들은 남녀 할것없이 돌격소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등 중무장이 일상이며, 교관의 지도하에 사격술 교습을 받으며 사실상 백인 인구 전체가 민병대화 되어있는 상황이다. 자세한 사항은 요하네스버그 가이드라인의 실제사례 항목부터 참조.

치안 관련해서 자세한 것은 남아공 괴담 항목 참조.

4.3. 정리

정리하자면, 흑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종차별이 명목상으라도 없어진 건 좋은 일인데, 문제는 압도적인 쪽수로 인해 언제나 흑인 후보가 백인 후보에게 승리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33][34]

흑인 후보와 그가 임명하는 각료와 공무원들에게 정치적인 권력이 집중되고, 이로 인해 무능하고 뇌물을 밝혀대는 노멘클라투라 계급이 형성되고 과거 국가 기간을 지탱한 백인 관료층이 축출되면서 [35] 그간 유지되던 사회구조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사실 이는 선거제도가 영향을 준 것도 있는데 남아공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지역현안에 크게 신경을 안써도 앞 번호만 받으면 당선이 되기쉽고 이 때문에 유권자들과의 스킨십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역관리에 소흘해지고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흘해지기 때문에 인프라가 제때 확충되지 않는 결과가 나와서 빈민층들이 시위하는 일이 꽤 자주있다.[36] 어쨌거나 남아공의 백인들 중에는 경제력이 좀 되는 상류층이 아닌 이상 날씨가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37] 다만 2000년대 중반 들어 백인인구가 다시 증가세를 타고있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미국. 호주등지에서 신규창출되는 일자리수가 줄어들면서 백인 인구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는 중(물론 80-90년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중.)

게다가 남아공에서 백인들을 견제해서 건전한 흑인 소유의 기업이 많이 탄생하면 그나마 안심이 될텐데, 이 기회로 부자가 된 흑인 기업가들은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돼지들이란게 문제며, 그나마 무능하기까지 하다. 남아공 정부의 끝발이 미치지 못 하는 해외에선 진짜 진출하는 족족 털려서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오는 추태를 보인다. 즉 제대로 기업을 운영할 수 없는 사람이 정부의 미친듯한 지원으로 엄청난 부를 축재한 셈이며, 그리고 그나마도 국력을 축낸다고 볼 수 있는 광산업등에서 밖에 성공하지 못 하고 서비스업같은 데선 정말 죽을 쑤고 있다. 더욱이 흑인 중에서 성공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빈부격차가 해소된 게 아니라 그냥 흑인 집단 안에서의 빈부격차만 커졌다. 그래서 시위도 간간히 일어나곤 한다고.

백인 소유 회사들은 이에 대항하여 다국적 기업에 편입되거나 하는 식으로 살아남거나 아니면 미친듯한 정경유착으로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고 있다. 남아공 백인중에서 3백년째 남아공에서 가문 대대로 살며 광산업을 하던 백인 억만장자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 너무나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아서 회사를 처분한 다음에 호주로 이민가고, 아예 남아공 시민권을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사람은 그나마 인종차별을 안 하던 광산회사 소유주였는데, 정경유착을 하지 않다가 훅간 케이스며, 흑인들을 심각하게 부려먹던 다이아몬드 회사 드 비어스는 정경유착에 성공하고 회사의 본사를 유럽으로 옮겨서 아직도 쌩쌩하다[38]. 남아프리카의 경제를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채찍으로 때리던 사람만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뀐 셈인 총체적 난국이다.

백인 빈민을 white squatter라 부르는데 이들은 아파르트헤르트 하에서도 가난했지만 그때는 백인이라서 기본 생계는 백인정부가 책임졌다. 물론 현 남아공 정부에선 25%에 달하는(물론 취업포기자는 제외하고) 흑인 실업자들 취직시키기도 바쁘다. 헌데 그럴수밖에 없는게 백인들 실업률은 5%대인데 반해 흑인 실업률은 40%나 달한다.(...) 그리고 이들이 가난하다해도 여전히 상당수 흑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것도 있긴 하다.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설명에 의하면 남아공 백인들은 호주, 뉴질랜드 뿐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 비슷한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심지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스페인 등으로 이민간 사람들도 있다.[39]

게다가 2009년 취임한 대통령인 이콥 주마는 넬슨 만델라가 백인들의 경제 지배를 인정하는 멍청한 짓을 해버려서 대다수 흑인들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일갈하면서 백인들의 기득권과 경제권을 흑인이 되찾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백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주마는 만델라 정권 시절부터 백인들을 추방하고 경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에 백인들의 견제를 받았으나, 그 덕에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오고 있었다.

더불어 주마는 줄루족 출신이라서 줄루족이 많은 남아공에서 그 지지도[40]가 엄청나다. 참고로 만델라와 그 후임이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코시족이었기에 줄루족에서 주마를 더더욱 밀어주었다.[41] 하지만 정작 주마도 집권 뒤엔 별다른 정책수정없이 빈부격차 문제에 눈을 감으면서 현지에선 완전히 맛이 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제1야당인 DA(민주동맹)가 주로 백인이나 컬러드(흑-백 혼혈)층의 지지를 받는 정당인데다가[42] 인타카 자유당은 나탈줄루주 지역정당[43], 경제자유투사당은 아예 백인토지 무상몰수를 주장하는 당인지라 흑백갈등이 엄청나게 날걸로 예상되고,(그래도 젊은 흑인 실업자층에서의 지지율은 높았다.) 그 이외 정당은 아예 듣보잡 Of 듭보잡인지라 딱히 다른 대안도 마뜩치 않은 덕분에[44] 2014년 총선에서도 ANC가 예상보다 조금 높은 득표율로 집권했다.

다만 역대 총선사상 최저 득표율로 위상이 다소 악화될걸로 보인다. 어쨌거나 주마가 한 동안이나마 인기를 얻으면서 남아공이 짐바브웨 꼴 나는 거 아닌가 우려도 있긴했지만, 주마도 바보는 아닌지라(물론 부패하긴 하다.) 빤히 코 앞에서 짐바브웨가 당하는 꼴을 다 보고서 똑같은 일을 남아공에서 저지를 정도는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집권 뒤에 상당히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취했다. 오히려 짐바브웨의 실업자들이 남아공으로 몰리는지라 하지만 짐바브웨 대다수 사람들도 로버트 무가베가 백인들이 부당하게 얻은 재산을 몰수한 것만은 좋게 여긴다는 점을 기억하자. 아프리카 대다수 돈되는 곳, 경제권을 백인들이 지금도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게 아프리카 여러 곳으로 퍼질까봐 유달리 백인 언론이 악의적으로 보도한다는 반응도 있었다.[45] 여하튼 주마가 재집권한 뒤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부정부패는 시정되지않고 실업률도 30%대로 올라가서 주마의 지지율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2014년 4월 주마는 재선에 성공하지만 야당인 DA와 ANC의 극좌세력인 줄리어스 말레마가 탈당 해 만든 EFF 가 상당히 위협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주마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또 주마의 퇴임 후 사저인 은칸들라 에 관련해 여러 비리와 국고를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ANC의 독세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

5. 정치

남아공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43 점 2012년, 세계69위[46]
언론자유지수 24.56 2013년, 세계52위[47]

5.1. 군사

6. 문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는 곳이었다. 높이는 무려 216m. 하지만 마카오 타워가 233m로 제껴버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로는 영어, 아프리칸스어, 줄루어가 있다. 특히 영어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영국식 발음과 철자법을 쓰고 있지만 약간의 억양 차이가 난다. 특히 사회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상류층과 공식 석상에서 쓰이며 RP와 발음이 거의 비슷한 Cultivated
  • 중간 계층이 쓰는 General
  • 아프리칸스어 화자 및 노동자 계층이 쓰는 독특한 발음인 Broad

셋 모두 전반적으로 아프리칸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ɪ발음이 'ə에 가깝게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자음의 기식이 적어 된소리처럼 들리는 말이 많다는 것, 또 화자에 따라 r이 스페인어의 r처럼 혀를 떠는 발음이 되곤 한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남아공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디스트릭트9의 주인공 비커스 반 데 메르베가 이 영어를 구사한다.

6.1. 스포츠

축구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축구 항목 참고할 것. 더불어 크리켓이나 럭비도 상당히 인기가 많지만 인종적으로 경제적 여유 때문에 축구는 흑인층에서 크리켓이나 럭비는 백인층에서 더 많이 한다. 과거 인종차별이 극에 달할 당시에 흑인들에겐 축구와 권투가 인기 많았다. 하여튼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프리카에서 유일무이한 크리켓 및 그 여파로 야구도 그나마 하는 나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참고로 1995년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오랫동안 국제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남아공은 월드컵 1년 전만하더라도 잉글랜드에 쳐발릴 정도로 약체였지만 만델라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감동 드라마를 이룩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에 잘 나와있다.

7. 외교 관계

2010 G20 서울 정상회의의 참가국이며, 브릭스의 제5의 멤버다.

7.1. 한국과의 관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50년 한국전쟁UN군으로 참전하여 당시 남아공 공군대대가 파병되어 사상자를 내었고 국제사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공식적인 수교는 이루워지지 않았고 1976년 남아공 정부에서 소웨토 항쟁을 강경진압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도 거세지자 한국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남아공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단절했다. 그래서 1988년에 서울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서는 IOC로부터 흑백 인종차별 문제로 등으로 인해 1964년 일본에서 열렸던 도쿄 하계올림픽 때부터 참가 및 출전이 정지되어 불참하였다가[48] 1992년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고 나서야 수교를 했다. 1995년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1998년에는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1974년 복싱 챔피언이자 당시 육군 일병 신분이었던 홍수환이 더반에서 챔피언을 획득한 기적과 영광을 일으켰고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때에는 같은 도시에서 한국이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며 1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으로 유치가 확정되기도 하여 특히 더반과 인연이 깊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영어강사가 될수있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중하나이다. 적지 않은수의 남아프리카인들이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8. 국기와 국가

8.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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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네덜란드 국기와 같은 귤색, 하얀색, 파랑색에 국기문장이 들어간 3색기였으나# 1994년 넬슨 만델라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전의 3색기에 아프리카민족회의 깃발을 결합한 것으로 Y자 모양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린 무늬의 3색기로 바뀌었고 귤색이었던 것이 빨강으로 바뀌었다. 빨간색은 남아공의 독립과 흑인들의 희생과 열정, 초록색은 남아공의 농업, 삼림, 농촌, 국토를 뜻하며 노란색은 남아공의 주산물인 금을 비롯한 광물과 광업을 상징하고 파랑은 열린 하늘과 인도양대서양을 상징하며 검정과 하얀색은 남아공에 사는 백인과 흑인을 Y자는 화합을 상징하며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그 외 부족과 종족들, 남아공 지방정부의 화합을 나타낸다.

8.2. 국가



이전에는 남아프리카 연방의 국가였던 "남아프리카의 외침"(아프리칸스어)를 사용했으나 1994년 넬슨 만델라 정부의 수립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자주 불리는 민중가요(?)였던 "주여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코사어, 줄루어, 소토어)도 공동 국가로 지정되었다. 1997년 이 두 노래를 섞어서 편곡, 개사한 "남아프리카 찬가"를 유일한 국가로 지정했다.

국가가 무려 5개 언어(5개 버전이 아니라 파트별로 언어가 다르다!)로 구성되어 있다.[49][50]

8.2.1. 가사

(코사어) Nkosi sikelel' iAfrika
Maluphakanyisw' uphondo lwayo,
(줄루어)Yizwa imithandazo yethu,
Nkosi sikelela, thina lusapho lwayo.

(소토어)Morena boloka setjhaba sa heso,
O fedise dintwa le matshwenyeho,
O se boloke, O se boloke setjhaba sa heso,
Setjhaba sa, South Afrika — South Afrika.[51]

(아프리칸스어)Uit die blou van onse hemel,
Uit die diepte van ons see,
Oor ons ewige gebergtes,
Waar die kranse antwoord gee.

(영어)Sounds the call to come together,
And united we shall stand,
Let us live and strive for freedom,
In South Africa our land.

8.2.2. 한국어 해석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사
영광을 높이 올리소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사
주여, 그대의 아들인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여, 그대가 우리나라를 지켜 주사
모든 분쟁을 끝내주소서.
지켜주소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
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켜 주소서.

우리의 깊은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리라,
높은 산 위에서 바위산 끝까지
우리의 메아리가 울리리라.

화합의 외침이 울리네,
그리고 우리는 단결하여 일어서리,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리,
우리의 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9. 창작물에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화 디스트릭트 9의 주무대로 등장한다. 감독 출신이 남아공 출신이며, 디스트릭트 9의 원형이 Alive in joburg(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였으니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기존 남아공 인종갈등 구조에서 외계인이 개입되어있는 색다른 구도로 화제가 되었다.
2012에서는 생존인류가 문명 재건을 위해서 정착할 예정인 곳으로 설정되었기도 하다.
웨스트우드 비브라토에서는 케이프 타운에 주인공의 악기 수리점 'WESTWOOD VIBRATO'이 있다.
채피의 배경은 요하네스버그이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서는 Nod가 공략하는 아프리카 주둔 GDI 최후의 기지가 남아공에 있는데[52], 임무선택 지도화면에서 볼수있는 공격의 방향으로 봤을때 희망봉에서 배수의 진을 친듯..

메탈슬러그 3 미션 3의 배경이 메탈슬러그 디펜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한다.

10.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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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5년 UN 식량농업기구 기준
  • [2] 2019년 UN 세계 인구전망 기준
  • [3] 2018년 국제통화기금 기준
  • [4] 2018년 4월 세계은행 기준
  • [5] 이렇게 된 건 남아프리카 연방결성(1910)시에 4개 구성국(중 세력이 큰 3개국)의 수도에다 3부 기관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트란스발의 수도 프리토리아에 행정수도, 오렌지자유국 수도 블룸폰테인에 사법수도, 케이프식민지 수도 케이프타운에 입법수도.
  • [6]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와 그 전에 독립을 선언했던 서사하라는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제외. 하지만 정작 남아공은 1976년 독립을 선언한 서사하라를 2004년부터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여기와 서사하라 항목 참조.
  • [7] 11개의 언어가 전부 공식언어다. 주로 쓰이는 언어는 영어아프리칸스어.
  • [8]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부 해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도 나타나는 등 농산물을 수확하기에는 좋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으나, 케이프타운 인근 지역은 바닷바람이 거세 농경에는 신통치 않았다.
  • [9] 루이 14세의 낭트 칙령 폐지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25만명의 위그노들이 유럽 각지로 탈출했고, 일부 위그노들이 케이프타운 식민지로 유입된다. 이들의 포도주 양조 기술 전파는 현재까지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포도주를 빚고 수출할 수 있게 된 계기이다.
  • [10] 영국이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점령하기 전, 네덜란드의 식민지는 이미 내륙의 오렌지 강을 경계로 할 정도로 확장해 있었다.
  • [11] 초기 영국 원정대 지휘관의 삽질도 한몫 했다. 자세한 것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세종서적 출판)를 참조할 것.
  • [12] 사실 당시 유권자들(물론 대다수의 유색인종을 뺀 백인과 컬러드 한정)의 다수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한건 아니었지만 선거구 조정이 제때 안되는 바람에 인구가 적은 선거구(주로 네덜란드계 유권자들이 밀집해있었던 곳이 다수였다.)에서 국민당이 우세했고 결국 집권에 성공했던 것.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의 선거제도(완전 비례대표제)하에서 선거가 치러졌더라면(물론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을 유권자 목록에서 빼도) 국민당의 집권은 어림도 없었을거고, 남아공이 막장국가화 되지도 않았을거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인종차별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기에 충돌같은건 있을수 있겠지만
  • [13] 1950년대라면 당시 기준으로 별로 이상한 건 아니였다. 미국은 소위 Jim Crow Laws 일컬어 지는 법을 각 주마다 통과시켜서 사실상 백인과 비백인의 결혼을 무효화 혹은 원천 봉쇄했으며, 학교나 공공시설도 백인, 비백인이 따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흑인보다 아시아인들(정확히는 중국인) 히스테릭컬하다고 할정도로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게 캘리포니아주로 결혼, 교육, 주거, 투표, 피선거권은 물론이요 술 사먹을 권리까지 제한했다. 주 헌법적으로 아시아(중국인)의 존재를 악한 것으로 규정했을 정도(...)
  • [14] 이는 올림픽도 마찬가지여서 IOC로 부터 1970년 제명당했다. 덕분에 서울 올림픽에도 불참
  • [15] 사실 이는 공산당과 남아공 노총이 남아공의 집권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소속되어있는 형태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실제 경제정책은 흑인경제육성정책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좌파적이진 않다.(...)
  • [16] 남아공의 컬러드라는 인종분류는 1차적 뜻은 "유색인종"이지만, 인종분류로는 백인과 다른 인종사이의 혼혈인을 가리킨다.
  • [17] 남아공의 아시아인은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 지역출신이 많으며, 동아시아를 가리키지 않는다. 아시아중에는 인도 및 그 주변국 , 즉 남아시아 출신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은 영국도 마찬가지.
  • [18] 현지 발음으로 "꺄프르" 비슷하게 들린다.
  • [19] 1950년대 초반까지는 컬러드, 아시아계도 투표권을 행사할수 있었으나 1953년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연합당의 표밭(당연히 컬러드나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는 정당인 국민당에 투표할리는 없었으니까)인 컬러드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피선거권을 없애고 몇명의 의원들(그것도 백인)만 뽑을수있게 투표권도 제한했으며 1970년대 들면서 이마저도 없애버렸다. 정확하게는 아파르트헤이트원칙에 따라 따로 의원을 뽑자고 명분을 내세우며 따로 의회를 만들었긴 했는데... 권한이 별로 없다보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 실상은 완전히 폐지된거나 다름없었다.
  • [20] 미약 할 수 밖에 없는게 인구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유색인종 의원석이 10% 겨우 되는 백인 의원석 보다 적었다.
  • [21] 1960년 샤프빌 시위와 1976년 소웨토 학생운동 같이 이 전에도 반 아파르트헤이트 시위가 있었지만 격화 된 건 80년대 였고 또 가장 큰 이유는 불평등한 삼원제 때문이었다.
  • [22] 참고
  • [23]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미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에이즈 때문에 죽은 사람을 하나도 모른다"라고 무책임한 발언을 한적도 있고 거기에다가 장관이라는 양반이 에이즈 치료책으로 홍당무와 마늘을 먹으라지 하지않나... 참고로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 만델라가 흑백화합 정책에 신경을 쓰는 동안 의료정책에 관여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 비율이 급속히 높아지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얘기도 있다.
  • [24] 사실 음베키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꽤 정상(?)적인 에이즈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상당히 궁핍한 남아공의 재정이 에이즈 약을 보급하기엔 가격이 심하게 비싸다는 점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에이즈와 HIV바이러스간의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설이 나오게 되자 이를 믿게 되었고(참고로 음베키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따냈을정도의 엘리트이기는 했다. 보건정책에 손을 대서 그렇지.), 이후에는 이하생략. 어느정도였나면 만델라도 움베키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을 상당부분 까먹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 [25] 사실 흑인들 사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위낙에 깊다보니까(아예 세균을 통해 흑인들을 절멸시킬려고까지했다.) 콘돔을 끼는걸 거부하는 비율도 상당한것도 크다.
  • [26] 이 양반도 대통령이 되기 전 에는 에이즈 예방은 관계 후 30분 내에 샤워하면 된다고 했다...
  • [27] 다만 그 이전에도 상당수 주들을 중심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은 하고있었다.
  • [28] 사실 베트남의 경우 경제력은 후달리지지만 의외로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평균수명은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물론 이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아이티 급으로 답이 없지 않은 이상 평균수명은 대개 60대 후반에서 70대를 유지한다.
  • [29] 사실 경제력이 강하고 약하고는 치안과 강한 상관이 없다. 물론 경제 발전이 더딘 나라가 치안도 막장인 경우가 많지만 러시아의 스킨 헤드나 브라질의 막장 도시 치안을 생각하면 경제력이 어느 정도로 강하냐는 것보다는 팽창한 경제규모를 바탕으로 한 부(富)가 얼마나 골고루 국민들에게 배분되느냐가 중요하고, 이게 제대로 안 될수록 치안도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나라를 상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전제는 붙는다.
  • [30] 백인인구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상당히 큰폭으로 하락했지만 흑인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그만큼 인구가 증가하기는 했다. 다만 앙골라나 니제르 같은곳하고는 다르게 출산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고, 2000년대 초반에는 에이즈로 나라 망하는거아니냐는 소리가 나올정도로 막장이었기 때문에 인구 폭증수준까지는 아니다.(...)
  • [31] 특별기동수사대로, 2인 1조로 운영된다. 긴급대응을 위해 시속 240km까지 달릴 수 있는 특별 순찰차에 R5 카빈으로 무장하고 있다.
  • [32] 한국과 비슷하게 과거 암울한 독재정치를 거친 적이 있어서 공권력과 경찰권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경찰이 먼저 발포도 못하게 만들었지만 월드컵이 다가오자 그 법을 바꾸고(..!) 범죄를 마구 소탕해 버렸다. 물론 그래도 이미 막장까지 간 상황이라 말 그대로 땜질수준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자 그냥 흐지부지..
  • [33]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득표율이 보통 60%초-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득표율이 떨어져가고있지만 제1야당인 민주동맹(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남아공당-연합당-진보연맹당-민주당계열)의 득표율이 20%초반(그나마도 이것도 많이 올린 편)인지라 여전히 앞도적이다. 그래도 비례대표제를 체택한 덕택에 의석점유율은 국민당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펼쳤을 시절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득표율 자체는 국민당 독재시절보다는 높은 편.(의외로 국민당이 60%대의 득표율을 확보한건 1977년 총선정도밖에 없다,)
  • [34] 사실 아파르트헤이트 자체가 워낙 길었고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910년대 부터 1994년 까지 본다.) 또 세세하게 차별을 뒀기 때문에 그때의 트라우마가 강하기에 흑인들이 무조건 ANC를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심지어 ANC가 삽질하고 걔네가 못하는 걸 인지 하면서도 다시 백인이 자신들을 억압 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단 ANC 부터 뽑는다.
  • [35] 남아공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며 가장 심각했던 사례 중 하나인 요하네스버그의 경우 80%에 달하는 관료들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 [36] 물론 그렇다고 이전에 체택했던 소선거구제가 좋다는 건 절대 아니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성립된 원인도 선거제도가 묘하게 꼬였기 때문이라는 걸 고려하자.
  • [37] 하지만 다시 남아공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종종있는데 남아공에선 흑인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가정부나 운전기사, 경비원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을수 있어 치안문제만 제외한다면 손에 물 안 묻히고 편하게(...)살수있는데 반해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우 인건비가 비싸다보니 직접 주부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라 뭐라나... 이외에도 남아공에 금융업종 관련으로 이민오는 백인들도 있다.
  • [38] 위에 언급된 억만장자가 드 비어스에 회사를 팔아버렸다.
  • [39] 여담으로 남아공 내의 일본인, 한국인들의 총각들은 남아공 출신 백인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현지 상황을 벗어나는 동시에 근면 성실하고 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동양인 남성을 선호를 하면서부터 인기가 올라 갔다. 실제로 현지 대기업 지사에 나간 한국인 미혼 남성들은 현지 여성들과의 소개팅 자리가 끓이질 않는다고 한다.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
  • [40] 1942년생으로 아내가 셋이며 2번은 이혼했다. 그리고 2012년 4월 21일 6번째 결혼을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하여 비난을 받자 일부다처제는 줄루족의 전통인데 뭐가 문제냐? 멋대로 쳐들어와 남아공에 살던 흑인을 핍박하고 지들의 전통을 강요한 백인들을 따르라는 거냐며 비난하던 자들을 역공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앙케이트를 벌였더니 능력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뭘, 백인들의 잣대에 좌우하지 말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을 만큼 주마의 지지도가 엄청났었다. 물론 이후에 지지가 크게 떨어졌지만
  • [41] 2014년 총선에서 ANC가 60%대의 지지를 얻을수 있었던 배경에는 타 지역에서 ANC 지지율이 상당폭 하락한데 반해, 나탈줄루주에서 지지가 굳건했기 때문.
  • [42] 물론 당내 주류는 국민당 정부시절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주장했던 민주당계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국민당계는 민주동맹 창당이후 얼마가지 못하고 갈라섰다가 결국 ANC로 통합되었다.) 원래 민주동맹자체가 신국민당과 민주당과의 빅딜로 탄생한 정당이기도 하고 민주동맹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한 시절에 국민당을 지지했었었던지라 흑인들 사이에서 민주동맹의 지지율은 극히 낮다. 그나마 2010년대부터는 지지세를 넗혀서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중산층들의 지지를 얻는 편.
  • [43] 한때 원내 3당을 차지했을때도 있었지만 주마가 줄루족출신인지라 2000년대 중반부터 세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 [44] 사실 30대 이상의 흑인층에서는 ANC에 대해 동질감이 크다는 점도 한 몫했다.
  • [45] 뭐 무가베가 막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짐바브웨 사람들은 로디지아시절, 인종불평등이 계속되는 것보단 좋게 여긴다.
  • [46] http://www.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 [47]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 [48]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부터 다시 참가.
  • [49] 노리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여,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 부분은 흑인의 언어인 코사어, 줄루어와 소토어로, "남아프리카의 외침" 부분은 백인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로 부른다.
  • [50] 그래서 대부분의 남아공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 부분은 대충 웅얼거리며 넘기고 자기가 아는 언어 부분만 자신있게 부르는데, 백인들이 국가를 부르면 아프리칸스어 부분부터 갑자기 소리가 두배로 커지는게 들릴 정도이다.
  • [51] 여기까지가 '주여,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의 편곡이다.
  • [52] 반대로 GDI의 타임라인에서는 맨 마지막에 Nod의 성지가 있는 사라예보를 공략하게 된다.
  • [53] 닐 블롬캠프와는 학교 동창인지라,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에 자주 출연한다.
  • [54] 모나코의 공가 항목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