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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last modified: 2019-05-16 21:15:5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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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름 난중일기
영어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프랑스어 : Le journal intime de guerre de l'Amiral Yi Sun-sin
국가·소장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 현충사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13년
제작시기 1592~1598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Contents

1. 개요
2. 내용
2.1. 사료적 가치
2.2. 인간 이순신
3. 세계기록유산

1. 개요

亂中日記
술을 정말 자주 드신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후로 매일매일의 일기를 세세히 기록한 일지.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한 면모로서 많이 언급된다. 한때 청소년들을 위한 필수 도서 중 하나로서 많은 청소년들이 읽...었나?(…). 하여간 필수도서이지만, 학생들에 따라선 교과서 공부하느라 책볼 시간이 어딨냐 하며 넘겨짚기도 많았다.

읽어보면 재밌다

2. 내용

2.1. 사료적 가치

흔히 알고 있는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강직하고 올바른 군인상을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원본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꼼꼼한 성격 탓에 굉장히 사사롭고 별거 아닌 일까지도 세세하게 적혀 있다. 그 덕에 당시 시대상과 역사, 삶의 모습까지 짚어볼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다. 이 시기를 다룬 역사사료로서는 징비록과 함께 실록 바로 다음가는 위치.

사족을 붙이자면, 영국대영박물관 등에 가보면 대항해시대 때 말단 영국해군 수병이 고향에 주고받은 편지라든지 식료품 가게의 음식 목록 따위의 굉장히 사소하고 세세한 기록들까지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히 파악하게 해주는 기록들로서 가치가 크다. 한국의 경우는 이런 종류의 기록이 매우 드문 편인데다[1], 유명인물들의 경우 자기 좋은 소리만 남기려고 자기한테 나빴던 일이나 껄끄러운 이야기는 숨기려고 하는 편인데 이순신 장군은 그런 것조차 숨기지 않고 남기고 있다.[2]

설사병이 너무 심해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아무 것도 못했다든지, 어느 병사가 나이가 너무 많아 전역시키면서 병사들끼리 여는 간단한 축하식에 어울리며 돼지고기를 같이 먹는데 몇점 집어먹었다든지 하는 이야기까지 적혀 있다. 건강에 관한 부분은 특히 툭하면 탈이 난다든지, 병이 난다든지 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강건한 무골로 묘사되곤 했던 충무공이 사실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그런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전장에 섰다는 점도 알 수 있다.그러니까 3대 취미 중에 음주는 그만하시지요. 통제공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순신 장군은 약골 아니다. 당시엔 이미 쉰에 가까운 나이여서(임진왜란 발발년인 1592년 기준으로 48세)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짧은 당시로서는 노장 소리를 들을 연령대였다. 백의종군 이후엔 고문에 시달리면서 급격히 신체가 약화. 그 외에도 수군통제사로서의 격무까지 처리했으니 몸이 망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순신의 약골설은 이우혁의 왜란종결자에서 기인한 바가 있다. 다만 백의종군 전에도 며칠에 걸쳐 아팠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 전엔 심하게 아픈 적 없다"고 하는 것도 무리. 여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 때는 쉰 살 전후의 나이였다.

또한 몇 쪽만 넘겨보아도 창고를 검열했더니 장부에는 수백 발이 있다던 화살이 알고보니 죄다 습기먹거나 썩어서 못쓰게 됐다거나, 배를 보러 갔더니 역시 물에 뜨지도 못하는 배가 있다거나 해서 허구한 날 관련자들이 줄빠따를 맞는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 등 조선군의 실태를 낱낱히 알 수 있다.

2.2. 인간 이순신

내가 일찍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니 어머니를 그리워해서 밤낮으로 애쓰고 지성으로 슬퍼했음이 사람을 감동시킬 만했다. - 다산 정약용, 경세유표

또한, 한편으론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충무공의 고뇌나 약한 모습들도 간간히 나오는데 백의종군 이후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여 몰락한 수군의 꼴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아무도 없는 구석의 잘 안보이는 곳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부터 뭘 어째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는 이야기[3]나, 그 이후 출전하자 수군들이 전부 두려워서 따라가질 않는 바람에 이순신 장군 혼자 적진영으로 뛰어드는 꼴이 되자 부하들에게 빨리 뒤따라 오라고 마구 고함치는 장면 등도 있다.

난중일기 곳곳에서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하는 구절도 많은데 특히 '어머니께서 무탈하시니 다행이다'라는 서술은 난중일기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표현. 1593년 6월 12일 일기를 보면 충무공이 흰머리를 뽑았다고 기록한 일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적었을 정도였다.[4] 충무공의 어머니도 강인한 여성이었는지 1594년 1월 12일 일기를 보면 어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공무를 보러 나가자 어머니가 아들 이순신에게 조금도 슬픈 낯을 보이지 않고 "잘 가거라. 나라의 치욕을 반드시 씻어야 한다."고 격려한 적도 있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었을 때의 심정 역시 일기에 절절하게 적고 있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 '어찌 하랴, 어찌 하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서 죽느니만 못하구나'(1597년 4월 19일)라는 표현이나 아들 이면이 죽었을 때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건만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1597년 10월 14일),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지 나흘이 되는 날인데도 마음놓고 울어보지도 못했다'''.'(1597년 10월 16일)라는 표현을 보면 읽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

더불어 화날 때는 이 분도 엄청나게 무서운 분임을 알 수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 왜군 포로를 잡았는데 그들이 척 봐도 엉터리 정보를 보여주거나 조선을 아주 우습게 보는 투로 대꾸하자 가차없이 베어버렸으며, 포로를 능지처참한 적도 2번이나 있다. 하긴 곳곳에 조국을 불바다로 만든 것이 왜군이니. 그에 대한 증오를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 더욱이 정유년(1597년)에 셋째아들 이면이 왜군에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왜군은 나라와 백성의 원수 뿐만 아니라 장군 개인의 원수이기도 한 셈.[5]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제일 길게 적은 일기는 정유년(1597년) 9월 16일의 일기다. 다름 아닌 명량 해전을 치르던 날의 일기. 명량 해전은 장군 역시 일생에서 가장 길었고, 긴박한 시간으로 느꼈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장군 역시 이날 일기 마지막에 '실로 천행한 일이었다'고 덧붙였을 정도이니. 난중일기 곳곳에 장군의 감정이나 생각이 잘 드러나는 편이지만 무엇보다 감정이 제일 잘 드러나는 일기는 정유년 일기다. 이 해에 워낙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시나 독후감, 활쏘기, 음주, 승경도 같은 취미활동을 부하들과 즐기는 장면, 꿈을 꾼 이야기나 꿈에 대한 장군 나름대로의 해석, 어떤 일을 두고 점을 치는 장면, 말아먹을(은) 원균을 두고두고 욕하는 내용 등 이순신의 여러 가지 인간적인 면모가 일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3. 세계기록유산

문화재청에서는 난중일기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하고 2012년에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 이후 2013년 6월 18일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최종 심사를 거쳐 새마을운동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로써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기록물은 11개가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독보적인 1위이며 세계구급으로도 상당히 많은 편.(공동 5위) 기록덕후 국가의 위엄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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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은 기록이 있기는 많이 있지만, 대부분 한자로 쓰여진 바람에 번역이 안되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생활상에 대한 기록들도 번역되는 일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 [2]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여진이란 여인도 난중일기에 아주 짤막하게 나와있다.그러나 이는 오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 [3] 이 시기의 상황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니 엄청나게 비범한 명장이라도 두손두발 다 들고 포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막장이었다는건, 국사에 대해서 약간만 관심이 있어도 알 수 있다. 어찌나 막장상황이었던지 조정에서 일시적으로 수군 해산시켜 육군으로 편입하지고 결정했을 정도. 물론 이순신 장군은 그 상황에서도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전선이 있으니, 사력을 다해 싸우면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란 기개 넘치는 장계를 올려 수군 폐지를 철회시켰다.원균 개객기 해봐.
  • [4] 아들이 늙은 것을 보고 어머니 마음이 상할까봐 그랬다는 의미다.
  • [5] 포로한테만 이러는게 아니라 아군이라도 군율을 어기거나 직무에 태만한 것을 발견하면 가차없이 처벌했다.원균은 급이 같으니 어떻게 처벌할 수도 없고 난중일기에 실컷 디스를 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