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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

last modified: 2015-04-09 17:15:29 Contributors



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 (아르메니아어, 레르나인 가라바그)
Dağlıq Qarabağ (아제르바이잔어, 다글르그 가라바그)
Нагорно Карабах (노어, 나고르노 카라바흐)

이란러시아 사이, 캅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 임시 수도는 스테파나케르트(Ստեփանակերտ, Xankəndi). 면적 4,400㎢[1], 인구는 약 14만 1천명(2010). 카라바흐 고원 지대(Нагорный Карабах)라고도 부르며, 역사적인 지명인 아르차흐(Արցախ)로도 불린다.

Contents

1. 역사
1.1. 소련 붕괴 이전
1.2.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1.3. 휴전 이후
2. 주민
3. 현황과 전망
4. 기타

1. 역사

1.1. 소련 붕괴 이전

원래 인구 대다수가 아르메니아인인 아제르바이잔 령의 영토로,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멋대로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줌으로써 불씨를 만들었다. 이는 주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우호적 조치를 통해 신생 터키 공화국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정치적 고려 및 매우 강경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결정이었고[2], 1923년에 자치지역이 성립되었다.

1.2.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1988년 2월 20일부터 1994년 5월 16일 사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간에 일어났던 전쟁.

1988년 2월 20일, 카라바흐 고원 지방의 아르메니아계 인민대표들이 아르메니아 귀속 동의를 천명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폐지해 공화국의 직할 통치하에 두었고, 숨가이으트(Sumqayıt)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일어났다.[3]

1989년 12월 1일, 아르메니아 최고소비에트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에 합병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서 17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아제르바이잔에선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추방되었다.

1991년 소련의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공화국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지자, 9월 2일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독립 선언을 한다. 11월 4일,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경제 봉쇄로 대응했다.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서는 카라바흐 고원 지대의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예레반에서 수 차례 터졌다.

소련이 붕괴한 뒤인 1992년에는 드디어 전쟁이 폭발하였고, 그 와중에 2월 25일에는 호잘르(Xocalı) 시에서 아르메니아인 과격파와 소련 군대가 아제르바이잔인을 학살한 호잘르 학살사건(Xocalı soyqırımı)이 벌어졌다.

1993년, 아르메니아 군대가 침공해 캘배재르(Kəlbəcər), 아그담(Ağdam), 퓌줄리(Füzuli), 재브라이을(Cəbrayıl), 잰길란(Zəngilan) 같은 아제르바이잔 남서부 주요 도시를 연달아 무력 장악했으며, 카라바흐 고원만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국경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 영토도 점령했다. 이 때 점령한 영토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20%에 이르렀다.

미승인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NKR)의 영역

체첸 반군과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까지 아제르바이잔 편에서 싸웠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전쟁에서 잇달아 패배했고, 그 바람에 대통령이 계속 바뀌었다.[4] 막판에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했던 것처럼, 16세 이상은 무조건 동원하는 인해전술까지 펴기 시작했다[5].

이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크게 열세를 보인 이유는 미국과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란은 자국 북부 아제르바이잔인의 분리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르메니아편에 가까운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은 실상 고립된 상태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아주 잠깐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으로도 진격한 적이 있었는데, 터키 국경과 맞닿아있는 곳이다보니 아제르바이잔의 혈맹인 터키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서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터키가 아르메니아와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 경고하며 터키군을 아르메니아 국경으로 이동시키자 바로 철수했다. 그래서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은 이 전쟁의 포화에서 별 영향이 없었던 것. 나흐치반 자치공확구은 터키의 개입으로 전쟁의 포화는 면했지만, 대신 실상 아르메니아편에 선 중립국 이란 덕분에 본국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동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94년, 러시아와 프랑스가 중재에 나섰다. 로베르트 코차리얀이 아르메니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5월 5일 비슈케크 조약으로 정전(停戰)하였다. 전쟁은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승리라는 게 중평(重評). 동원된 총병력은 아르메니아측 2만(아르메니아군 8000, 나고르노카라바흐군 1만) 대 아제르바이잔측 4만2천(아프간, 체첸 의용병, 터키 장교 등 1500~2500명 제외)으로 아제르바이잔이 훨씬 많았는데도 전사자는 아르메니아측 4,592명에 아제르바이잔측 2만5천~3만 명이었다. 민간인 피해는 아르메니아인 1500명 가량 사망에 아제르베이잔 700명 가량 사망. 아르메니아 난민은 50만 가까이였고 아제르바이잔 난민은 70만 정도였다.[6]

1.3. 휴전 이후

양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2년 이래 러시아, 미국, 프랑스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틀 안에서 회합을 거듭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양쪽 모두 정당한 요구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설정되어 있던 자국 영토의 온전성 회복을, 아르메니아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아르메니아 민족의 통일성 회복을 요구했기에 이 두 가지 요구가 평행선을 달려 타협이 불가능했다.

전쟁 때 아제리인 주민이 난민이 되어 도망간 아그담(Ağdam) 같은 도시는 여전히 유령도시로 있다.

2014년 8월, 이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충돌이 다시 시작했다.#

2. 주민

2010년 현재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방의 인구는 약 14만 1천 명으로, 수도 테파나케르트의 인구는 그 중 5만 3천 명이다. 민족별 구성은 소련 붕괴 이전에는 인구의 약 74%가 아르메니아인, 25%가 아제리(아제르바이잔)인으로 집계되었으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이 지역의 아제리인은 모두 난민이 되어 떠나고, 지금은 아르메니아인 95%, 기타(쿠르드인, 아시리아인) 5%이다.

3.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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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독립국이나,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추진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격렬한 반대와 지역의 질서 붕괴를 우려하는 이웃 국가 및 강대국들의 염려 때문에 현상 유지 중이다. 최악의 가능성은 아제르바이잔이 카라바흐 고원의 무력 탈취에 나서는 것이고,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언젠가 무력으로 되찾을 것임을 천명한다. 그러나 러시아가[7][8] 아르메니아에 군대까지 주둔시키니 진짜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르메니아로선 나히체반을 비롯하여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여러 곳에 자국 영토 주장을 하기에 되려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게 전쟁을 걸 가능성까지 있다. 물론 이것도 러시아가 반발할 가능성이 커서 못하겠지만.

하지만 국제적인 미승인국으로서 러시아도, 아르메니아도 이 나라를 인정하지 않으며[9], 아르메니아 영토라고 못 인정하는 상황에서 아르메니아에게 전적으로 모든 걸 의존한다. 아르메니아에 붙어있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덤으로 점령(그리고 이 땅들은 1994년의 정전 협정에 의해 지금까지 나고르노카라바흐 측이 점유중)하기 전에는 영토가 아제르바이잔 안에 있어서 모든 걸 비행기를 통한 수송으로만 풀어야만 했다. 육상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강력하게 막았기 때문. 아르메니아로 통하는 길을 뚫은 덕에 육로로 맞닿았지만, 전쟁 중에 수도 스테파나케르트 인근의 공항이 부서져 이제는 오히려 비행기로 진입할 수가 없다. 현재 복구공사를 하나, 아제르바이잔 측에서는 이 지역에 민간공항이 개장하면 그곳을 비행하는 항공기를 격추하겠다라고 위협해서 과연 언제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미승인국이라서 세계은행의 투자도 막혀있기에 제대로인 공업시설이나 여러가지를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는 더불어 보복으로 원유 및 가스 파이프관 및 철도선을 일부러 아르메니아를 비켜가고 조지아를 통하여 빙 돌아서 연결하게 하면서 아르메니아는 막대한 이득을 날려버렸다. 끝내 아르메니아에게 모든 것으로 경제적 의존에 매달리는데, 러시아도 승인하지 않고 원유국인 아제르바이잔 눈치도 생각하면서 지원을 일절 않고 있다. 알다시피 아르메니아가 그다지 자원도 없고 해외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이 해주는 경제적 이득에 많이 기대는 상황이다. 아르메니아로선 좀 더 경제적으로 해외 투자를 늘리고 싶어도 더 시장이 엄청난 유라시아 튀르크계 나라들의 형님 격인 터키 때문에 힘들다. 그 덕에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독이 든 빵이자 애물단지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전쟁을 도운 댓가로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을 장기간 주둔시켰으며 아르메니아는 더더욱 러시아에게 군사적,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아졌다. 노골적인 친러정책 강요에 아르메니아에서도 2012년 반러 시위가 벌어졌으나 여긴 유로마이단같이 대놓고 갈 수도 없거니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둘러싼 상황(조지아도 두 나라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기대는 터라 아르메니아에게 선을 긋고 있다)에 처하니 러시아가 '그래, 우리 나가면 너희들 어서 홀로 잘해봐라'로 여유로우니 아르메니아로선 나날이 압박해가는 러시아의 간섭에 뭐라고도 못한다. 여기도 친러적인 아르메니아 정치 세력에 불만이 거세나 뭐라고 말 못하는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무안단물석유가 있고 아르메니아는 항구도 지하자원도 없는 데다가 사방이 적국인, 그야말로 암울한 상황이니 문제다.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미국 가서 성공한 아르메니아인 동포들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그 근면성으로 성공을 이루어냈고 부유한 걸로 유명하지만, 그 분야 선배인 유대인들과 경쟁하는 사이이고, 아르메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은 별로 사이가 안 좋다. 산유국과 그지 깽깽이 나라와의 군비경쟁은 도저히 못 성립하므로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운명이 그닥 밝지만은 않다...

4. 기타

이 곳에 입국해서 여권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스탬프가 찍히게 되면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평생 불가해진다고 한다. 여권을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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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명목상. 실제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레르나인 가라바기 한라페투튠)이 통치하는 영역은 11,500 km2
  • [2] 소련에서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상당히 강했으며, 소련 해체 이전까지 내부 주요 민족 문제 중 하나였다. 스탈린 시절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당연히 매우 강경하고 강력했으며, 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라라트산을 터키 영토로 인정했다.
  • [3] 그런데 이에 대하여 당연하지만 두 나라 반응은 다르다. 아제르바이잔은 아제르바이잔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아르메니아인 사망자도 많다고 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는 학살보단 아제르바이잔인들의 생쇼로 벌어진 일로 아르메니아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 다르게 주장한다...
  • [4] 외부의 눈에는 그게 그거 같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보다 인구와 영토가 2배나 큰 대국이다.
  • [5]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대대적 반격으로 퓌줄리와 호자밴드(Xocavənd) 시를 되찾기는 했다. 캘배재르 탈환 작전은 실패했지만
  • [6] 출처는 위키피디아, The Caucasian Knot: The History and Geopolitics of Nagorno-Karabagh,Gefährliche Töne의 "Frozen War" 등.
  • [7] 1995년부터 규므리(Гюмри)에 제 102기지를 설치해 5000여 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주둔하며 S-300과 MiG-29로 무장했다. 원래 25년 기한이었지만 2010년에 메드베데프의 방문 때 49년(만료기간 2044년)으로 연장했다.
  • [8] 소련 이후 아르메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은 철수했으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으로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양면 봉쇄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던 아르메니아와, 반러로 돌아선 조지아를 견제하고 CIS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보존하려던 러시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러시아를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니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러시아에의 감정이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아제르바이잔 가발라 지역의 러시아군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기지도 주둔 기한 연장을 거부받고 2012년 말 운용을 정지했다.
  • [9]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만 이 나라를 인정한다. 이곳 문제를 안는 아르메니아로서는, 이곳을 승인하지 않은 채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미승인국을 승인하면 (형평성 문제도 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압하지아, 남오세티아 등을 승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는 코소보, 압하지아, 남오세티아 등은 물론, 팔레스타인도 승인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또는 사설1(영어), 관련기사2(영어), 팔레스타인의 국제승인문제(영어위키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