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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last modified: 2018-06-27 01:14:12 Contributors

金海 金氏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국내에서 본관이 김해인데다가 김씨 성을 가진 씨족은 둘이다.

Contents

1. 가야계 김해 김씨
1.1. 개요
1.2. 동성동본
1.3. 유명인
1.3.1. 가야
1.3.2. 신라
1.3.3. 고려
1.3.4. 조선
1.3.5. 대한민국
2. 사성 김해 김씨
3. 신라계 김해 김씨(김렴계 김해 김씨)


1. 가야계 김해 김씨

1.1. 개요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13세손인 신라 김유신 장군을 중시조로 하는 한국 최대의 씨족집단. 한국의 성씨 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김씨의 절반, 한국 인구의 10%[1] 육박한다. 하지만 김해 김씨 선원계보에 등록된 파만 해도 무려 300개가 넘고, 거기에 조선후기 행해졌던 족보위조와 근현대에 성이 없던 사람들이 김씨 성을 칭하면서 본관을 김해로 정한 영향 등으로 씨족집단간의 연대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해 김씨의 직계공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3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이래저래 계보가 복잡하기 때문에 파가 다르면 본관이 같고 시조가 같다는 것 빼면 동류성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또한 김해라는 곳도 고려 충선왕 전까지 다양한 지명으로 불렸기 때문에 옛 가야의 지방 출신 김씨들을 가락 김씨라고 통틀어 부르기도 했었다. 충선왕 대에 와서야 김해부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김해 김씨라는 틀이 확립이 되었고 위에 서술된 직계공파도 그 시기에 갈라지기 시작한다.

김해 김씨끼리 분파한 경우 외에도 김해 허씨쪽으로 분성한 경우가 있다. 이는 허씨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참고. 허씨까지 포함하면 그 인구는 약 390만까지 올라간다. 물론 이는 허씨로 분성하지 않고 김해 김씨로 남았을 때의 가정이다.

한국 내 단일 성씨 중에서는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서울 시내에서 돌을 던지면 십중 팔구는 김해 김씨에게 적중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성씨가 고르게 분포했다는 전제 하에 열에 한 번 정도 맞는다.

속설로 김해 김씨 남자는 생식기에 점이 있다는 말이 있다. 꽤 유명한 이야기. 그래야 진짜 김해 김씨라지만 속설. 그런데 강릉 김씨 남자도 있다? 강릉 김씨는 경주 김씨 계열인데 엄마가 김해 김씨인가?김해 김씨한테 있댔지 김해 김씨한테만 있댔냐

1.2. 동성동본

김수로왕의 아내가 허씨였기 때문에 후손 중 김수로왕의 아내의 성을 따라서 김씨에서 갈라져 나온 허씨[2]와 김해 김씨는 동성 동본관계가 되어 서로 혼인을 금한다는 옛 통념이 있었다. 여기에 김해 허씨 말고도 양천 허씨[3]나, 같은 계열 성씨인 태인 허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 이씨 등 갈라져나온 성씨가 꽤 많아서 옛 통념상 동성동본이 되어 혼인을 금하는 성씨들이 제법 된다.

1.3. 유명인

1.3.2. 신라

  • 김유신
  • 김무력 : 김유신의 할아버지. 가야와 신라의 무관. 이름값 하네 삼국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
  • 김서현

1.3.3. 고려

고려 무신정변 이후, 말기까지 고등문관이 다수 있었다. 조선 개국시 절의를 지켜 벼슬길을 사양한 김익경의 손자 김진문이 유명하다.

1.3.4. 조선

  • : 조선 초기의 문신. 세종때 집현전 수찬(修撰)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할 때 장영실과 함께 간의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한다.
  • 김일손
  • 극희 : 조선 중기의 무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한산도 대첩에서 전사했다.
  • 김완
  • : 김완의 아우. 조선 중기의 무신. 병자호란때 벽동성(碧潼城)을 사수했던 명장(名將)으로 이름이 높았다.
  • 여준 : 김우의 아들. 김어준이 아니다 병자호란 직후 볼모로 잡혀가는 소현세자와 인평대군을 호종(護從)한 18장사(壯士)의 한 사람으로 심양에 갔을 때 옥하관(玉河關)에서 세자를 소리내어 울렸다는 <월명비안(月明飛雁)>의 노래를 읊어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용력에 힘을 뽐내며 목숨을 건 결투를 신청해 온 청나라 장수 우가(禹巨)의 코를 문질러 이김으로써 병자호란의 굴욕과 인질로 잡혀가는 세자를 호종하는 비애 등 백성들의 원한을 풀었다고 한다.
  • 우항(1649~1723) : 조선시대 우의정. 김해김씨 중 조선시대 최고 관직에 오른 인물. 경파(京派)후손. 김해김씨 출신으로서는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4]
  • 천택 : 조선 후기의 시인. 평민 출신으로서 <해동가요(海東歌謠)>를 남기고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한 인물.
  • 김홍도
  • 김대건

1.3.5. 대한민국

한국에 김해김씨가 워낙 많으므로 김씨김C? 연예인 아무나 붙잡고 본관을 물어보면 김해 김씨일 가능성이 꽤 높다(…).
애초에 연예인을 아무나 붙잡을 수 있나?

2. 사성 김해 김씨

임진왜란 당시 조선로 귀화한 일본인 사야카가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를 사성받고 충선이란 이름을 받으면서 생겨난 씨족으로 시조는 김충선. 김충선이 말년에 은거하면서 사슴을 벗하며 살았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된 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우록(友鹿)[7] 김씨라고도 한다. 어쨌든 앞서 언급된 김해 김씨와는 별 관계가 없다.

축구 웹툰 작가 칼카나마가 이 성씨이다.

3. 신라계 김해 김씨(김렴계 김해 김씨)

고서적을 보면 김해 김씨가 선김, 후김으로 나누어져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선김은 1에 등장하는 가야계 김해 김씨이며, 후김은 현재의 김녕 김씨이다. 김녕이라는 지역이 후대로 내려오며 명칭이 김해로 바뀌면서 생긴 현상으로 이 때문도 당시에도 상당히 혼란스러웠는지, 선김-후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현재는 후김 쪽에서 그냥 김녕 김씨로 돌아간 상태이므로 관련 정보는 해당 항목 참조.

일부 신라 계열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로 바꾸지 않았고,[8] 그 때문에 지금도 그대로 (후) 김해 김씨라는 본을 사용하는 파도 존재한다. 이렇게 후김을 유지하는 파는 익화파(익화 김씨, 양근 김씨, 김해 김씨 북청파), 김해 김씨 종남파, 법흥파(법흥 김씨), 김해 김씨 종민파가 있다. 이 중에는 아예 경주 김씨의 일부 계통으로 옮겨 가 있는 파도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인구 센서스에서 김해 김씨로 잡히기 때문에, 덕분에 안 그래도 많은 김해 김씨의 수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들을 김렴계 김해 김씨라고도 하는데, 공통적인 뿌리를 경순왕의 손자인 김렴에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녕 김씨이기 때문에 김녕 김씨가 이름 안 바꿨으면 삼김이 전부 김해 김씨였을 거라는 어르신용 유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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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만 명. 2위인 밀양 박씨가 겨우 350만 명 정도다. 김씨 중 둘째 가는 경주 김씨가 김해 김씨의 절반도 안 된다. 그리고 전주 이씨의 약 2배.
  • [2] 거의 모든 허씨의 조상은 본관과는 상관없이 김수로왕과 허황옥이기 때문
  • [3]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은 김수로왕의 30대손으로 지금의 서울 강서구에서 살다 왕건에게 군량을 바친 공로로 양천의 본관을 얻었다.
  • [4] 고려시대 김해김씨는 정승도 여럿 배출했고 꽤 잘 나갔지만 조선시대 중후기의 김해김씨가 중앙 정계의 핵심으로 활약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몰락 테크를 탔다. 심지어 조선 후기에는 세도 정치의 득세 속에서 몰락 테크를 타버리는 바람에 족보 세탁 때도 김해김씨 족보는 거의 안 팔려서(...) 위조율이 적었다고 한다. 한편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족보 가격이 가장 싸서 평민 이하 계층에서 많이 위조했다 카더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도찐개찐
  • [5] 자신이 김유신 장군의 후손이라고 자랑했었다.
  • [6] 같은 그룹의 김태연은 나주 김씨라고 옛날에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친친에서 밝혔다.
  • [7]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이다. 이 일대에 김충선의 후손인 사성 김해 김씨들이 많이 사는 편.
  • [8] 이들은 후김이 먼저 김해 김씨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가야계는 충선왕 대에서야 나중에 본관을 김해 김씨로 바꾸는 바람에 후김 소리 듣는 것도 억울한 상황인데, 선김이 아닌 후김이 김녕 김씨라는 호칭으로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이의를 제기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