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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야구)

last modified: 2015-10-25 16:12:5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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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52
김0균(金泰均)
생년월일 1982년 5월 2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시
출신학교 천안남산초-천안북중-북일고-대전대-대전대학교 대학원
신체 185cm, 110kg, AB형
가족 배우자 김석류, 딸 김효린
취미 영화감상
포지션 1루수 , 3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한화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1~2009)
치바 롯데 마린즈 (2010~2011)
한화 이글스 (2012~ )
응원가 등장곡 : 장미하관 '오빠라고 불러다오'
응원가 : 패티김 '서울의 모정'[2]
Ricky Astley 'Together Forever'[3]
술게임 노래 '마셔라 마셔라 쭉쭉쭉쭉'(...)[4][5]

2001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이승호(SK 와이번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조용준(현대 유니콘스)

2005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08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한화 이글스) 최희섭(KIA 타이거즈)

2008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김태균(한화 이글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전상렬(두산 베어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2005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김기태(SK 와이번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상
박용택(LG 트윈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조성환(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오주상(1999~2000) 김태균(2001) 조현수(2002)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김승권(1995~2001) 김태균(2002) 조현수(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조현수(2002) 김태균(2003~2009) 김강(2010~2011)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52번
헤이우치 히사오(2000~2009) 김태균(2010~2011) 마스다 나오야(2012~ )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김강(2010~2011) 김태균(2012~ ) 현역

한화 이글스 역대 주장
한상훈(2011~2012) 김태균(2013) 고동진(2014)
고동진(2014) 김태균(2015~ ) 현역

보유 기록
한 경기 최다 볼넷 6회 이호준과 타이 기록[6]

Contents

1. 선수 소개
2. 데뷔와 초창기(2001~2005)
3. 까임의 시기(2006~2007)
4. 포풍같은 스타 등극(2008~2009)
4.1. 2008년
4.2. 2009년
5. 일본 진출(2010 ~ 2011)
5.1. 일본 진출 첫 해(2010년)
5.2. 충격의 중도퇴단 (2011년)
6. 복귀 이후: 까임의 시기 2
6.1. 2012년
6.2. 2013년
6.3. 2014년
6.4. 2015년
7. 평가
7.1. 이대호와의 평행이론
7.2.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8. 기타사항
8.1. 리그베다 위키에서의 영향력?
8.2. 김별명
9. 연도별 주요 성적


1. 선수 소개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 장종훈의 뒤를 잇는 이글스의 4번 타자. 그리고 KBO, 아니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별명 아이콘인 김별명. 한화의 영광의 시기와 암흑기를 모두 함께 하고 있는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 배번은 52번.[7] 2년차 때 10번으로 바꾼 적이 있으나 쫄딱 망하고 나서 다시 52번으로 돌아왔다.

2. 데뷔와 초창기(2001~2005)

북일고 시절 김태균누구세요?

명문 천안 북일고의 3루수 김태균은 1학년부터 팀의 중심타선에 들어간 초고교급 선수였다. 흔히 말하는 천재. 타치바나 히데오 생각하면 될듯 (...), 지금 꼴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얼굴까지 잘 생긴 미래의 슈퍼스타였다. 3학년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한화 이글스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김태균을 1차 지명했다. 2001 시즌 초반엔 1군에 자리가 없어 2군에 머물렀으나 5월에 승격 후 주로 대타로 기용되며 날카로운 타격을 보였고, 곧 대선배 강석천의 3루를 빼앗아 버렸다. 김태균의 놀라운 활약에 고무된 이광환 감독은 김태균을 4번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연소 4번타자였다. 시즌 내내 기복없는 활약을 보여주며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4강에도 올려놓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4번으로 출장,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홈런포를 뽑아내며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믿었던 송진우 등 베테량들이 부진하며 2패로 스윕당해 광탈했지만 10대 4번 타자 김태균의 흔들림 없는 활약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종료 후 성적은 타율 3할3푼5리와 20홈런, 이것이 대타 출장을 포함하여 1군 88경기 출장으로 이뤄낸 기록이었다. 이 압도적인 활약에 준수한 성적으로 풀 타임을 소화한 삼성의 박한이는 김태균에 밀려 신인왕 투표에서 2위에 그치게 된다. 데뷔 시즌의 20홈런은 풀타임 기준으로는 절반을 약간 웃도는 245타수에서 기록된 것으로, 풀타임을 뛸 경우 40홈런을 칠 거포로 다들 기대했다. 3루 수비는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원래 3루수였던 강석천의 수비가 과히 좋지 않았고, 마땅한 대안도 없어서 한동안 주로 3루를 맡았다.

그렇게 기대감 속에서 등번호를 10번으로 바꾸고 2002 시즌을 맞이하였으나, 소포모어 징크스로 거하게 말아먹어 모든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본인 말로는 시즌전에 한 라식수술이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3년차이던 2003년에는 데뷔 시즌에 버금가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40홈런을 넘기지 못했다는 것. 더군다나 2001년부터 2003년 사이는 어느 괴수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홈런을 날리는 시대였다. 이승엽일본으로 떠난 뒤에는 투고타저시대가 찾아옴과 동시에 프로야구의 흥행이 저조했고, 무엇보다도 김태균 본인이 한결같이 괜찮긴 하지만 리그를 씹어먹는 수준은 아닌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대중과 언론의 관심 밖에 있어야만 했다.[8] 또한 이 당시 팀의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던데다 전통의 비인기 구단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한편 한화 구단은 그렇잖아도 장종훈이 2000년대에 들어와 부진하던 차에 김태균이 등장하여 착착 성장해가자 장종훈을 은퇴시키기로 한다. 결국 03년 이후 장종훈은 출장횟수가 크게 줄었으며 매년 구단의 은퇴 권유를 받게 되었다. 결국 05년도에 장종훈이 은퇴하게 되었으며, 구단은 최대한 모양새 좋게 보이도록 언론 홍보작업을 하였다.[9] 뭐 장종훈 본인은, 시간이 지난 뒤 농담 섞어 아내는 몇 년 동안 TV에서 김태균을 볼 때마다 채널을 돌렸다는 얘기를 했다만...어쨌든 이후로 김태균에게는 "포스트 장종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되었다. 팬들 역시 김태균을 장종훈의 후계자로 여기며 전성기 장종훈 만큼의 임팩트 있는 성적을 기대했지만...

3. 까임의 시기(2006~2007)

2006년 WBC 덕분에 프로야구가 갑자기 다시 흥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때 한화의 감독은 김인식. 미디어와 팬들은 한화를 주목할 수 밖에 없었고, 기대에 걸맞게 투수들을 갈아먹어서 2006년 2위, 2007년 3위라는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김태균은 커리어로우를 기록한다. 특히 2006년에는 2할9푼대와 13홈런이라는 추락으로 인해 김똑딱이라는 오명을 쓰고 미디어의 차디찬 관심을 받게 된다.[10]

2007년 시즌 성적은 사실 따지고 보면 좋은 성적이었긴 했는데, 2007 시즌 자체가 워낙 투고타저의 극을 달렸던 한해였던 탓에 다른 년도, 다른 선수들의 기록과 비교했을 때 그리 대단치 않게 보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잘하긴 잘하는데 뭔가 불만족스러운 성적. 그 오랜 기간동안 '포스트 이승엽'내지 포스트 장종훈을 꿈꿔온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신인시절 좋은 기억을 갖고있는 팬들에게 김태균 이란 타자는 3할 30홈런이 기본으로 요구되는 선수였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그런발언을 했다간 바로 키보드 배틀이 벌어질 일이었지만,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는 김태균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2005년 장종훈 은퇴 당시의 각종 언플들까지 있었으니.. 그러한 팬들의 기대를 날려버릴 정도로 2006~2007 시즌의 김태균은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여담으로 2007시즌 개막전에서 김태균은 길이길이 회자되는 몸개그를 시전했다.(...)[11] 또한 그해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 이후 후반기 성적을 대폭 깎아먹으며 오질나게 욕을 먹었다.

구단 역시 팬들과 마찬가지로 실망했었는지, 결국 2008 시즌을 앞두고 연봉을 삭감하기에 이르렀다. 팬들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 다음해는 더 잘하겠지.. 라는 기대감도 어느새 곧 10년, 김태균은 결국 저 정도의 타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김태균 본인도 결국 항복하고 도장을 찍어야 했다. 어쨌든 이 2년간의 성적도 다른 평범한 선수들에 비하면 준수한 것이긴 했다. 문제는 이 당시 크보 역사상 최고의 슈퍼루키가 같은 팀에 등장했던 탓에 언론의 관심은 김태균에게서 빗겨나 있었다는 것.

하지만 한화팬들은 그에게 주목했다. 어쨌든 팀에서 가장 중요한 타자는 김태균이었고, 한화의 성적 또한 그의 타격에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언젠가부터 '김태균은 까야만 잘한다' 라는 공감대가 한화이글스 팬 커뮤니티에서 형성되어, 홈런이나 안타를 쳐도 잘했다는 축하보다 까는 글이 더 많이 달리기 시작한 전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샌가 다들 김태균을 까기 시작했다. 겉으론 욕하지만 속으론 한방날려주길 기대하며.
결국 팬들은 김태균을 욕하고 구단을 욕하면서도, 제발 내년에는 김태균이 이승엽 내지 장종훈 정도의 대선수가 되길 기원하며 희망고문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 어쨌든 준수하지만 최고는 아니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그렇고 그런 한화표 선수의 한 명으로 남는가 했는데...

4. 포풍같은 스타 등극(2008~2009)

2008년 시즌에 들어서, 갑자기 SK 와이번스를 넘어 최고의 스포테인먼트를 몸소 실천하는 야갤의 대스타이자 별명 제조기가 되어버렸다.
성 뒤에 뭐든지 갖다붙이면 별명이 되는 사나이.[12] 결국에는 별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별명이 되어버린 무시무시한 사나이. 그 수많은 베리에이션은 김태균의 별명 참조.
본인은 김고자(...)라는 별명을 가장 싫어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김질주와 김국민이라고[13]. 하여간 저 덕분에 한 시즌 타점보다 한 시즌 생산되는 별명이 더 많았으며 성적은 늘어나는 별명과 반비례하면서 하락세를 달렸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팀의 주축선수였기 때문에 집중적인 팀의 홍보대상이었고, 그만큼 인터넷에 쌓인 자료가 많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성적 자체는 좋긴한데 최고는 분명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놀림거리가 됐던 것. (...) 그런데, 2008년 갑자기 관심 받은 만큼의 성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이것이 단순한 놀림거리가 아닌 하나의 팬덤현상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동갑내기 친한 친구라는 점과 맞물려 어느새 이대호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 리그를 이끌어가는 두 명의 타자 중 한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일본 진출 전까지는 통산 성적이 이대호보다 우위에 있었으나 지금은 김태균이 일본에서 한 삽질과 더불어 2010 ~ 2011년 시즌 이대호의 뛰어난 성적 때문에 이대호 쪽이 앞선다. 또 이대호의 리그 사상 2번째의 타자 트리플 크라운 기록 때문에 여론의 주목을 이대호보다 조금 덜 받았었다. 재밌는 것은 커리어 전체를 봐도 꼭 이대호와 김태균은 어느 한 쪽이 잘나가면 어느 한 쪽이 정체되는 시기가 많았다는 것. 해당 항목 참조.

4.1. 2008년

2007년 시즌 종료 후 연봉 파동 때문인지, 혹은 '종훈매직'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2008 시즌에는 남다른 타격감을 선보여 부상에도 불구하고 맹타를 휘둘러, 결국 자신의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인 31홈런을 기록함으로서 자신과 치열하게 홈런 경쟁을 하던 롯데 자이언츠카림 가르시아를 제치고 2008 시즌 홈런왕을 확정지었다. 데뷔 8년만에 드디어 홈런왕 등극. 데뷔 첫해 포스트 이승엽 소리를 듣고, 그 이후 기나긴 시간을 김태균이 최고의 타자가 되리라 기대하며 기다려웠던 올드팬들에겐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일.

사실 김태균이 그 동안 성장하지 못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끊임없는 잔부상 때문이었는데, 2008년에는 잔부상 - 복귀후 맹타 - 잔부상 - 복귀 후 맹타의 사이클로 드디어 부상과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약한 부상 때보다 부상이 조금 회복된 후에 더 나은 타격 감각과 홈런 생산력을 보여주었고, 하필 팀도 치열한 중위권 싸움을 하면서 팬들은 그의 컨디션에 일희일비해야 했다.

4.2. 2009년

2009 WBC 예선 한일전(승자전)에서 그야말로 눈물나는 14:2 콜드게임 패배때 유일하게 투런 홈런(1회)을 때려 2점을 가져온 사나이. 그리고 3월 9일 있었던 재대결(순위결정전)에선 귀중한 1타점 결승타로 한국에 승리를 가져다줬고 이후에도 홈런을 뻥뻥 터뜨리면서 제2의 국민타자가 되어버렸다. 김승엽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은 건 옵션. 2009 WBC의 활약에 힘입어 이대호로 기울던 여론을 순식간에 자신으로 넘어오게 했다. 반쯤 공식적으로 '김해결'이라는 별명 추가.

그러나 2009년 두산과의 경기중 포수 최승환과 부딪힌 후 헬멧이 벗겨진 상태로 뒤통수를 땅에 박아서 뇌진탕 후유증으로 부진중. 이 후유증으로 인해 당분간 경기를 출전하지 못하게 되어, 별명도 추가되려면 좀 시간이 걸릴듯 했다. 결국 시즌 말 부활은 했지만.. 시즌은 다 끝났고 한화는 8위인데 뭐(……).

어쨌든 2008년에 드디어 재능을 만개했다는 점, 2009년 WBC에서의 맹활약, 젊은 나이라는 점 때문에 리그 최고의 타자로 대접받았다. 무엇보다도 시즌 종료 후 FA 신분을 획득한다는 점 때문에 시즌 내내 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아야 했다.

5. 일본 진출(2010 ~ 2011)

2009시즌 종료후, 결국 한화를 떠나 치바 롯데 마린즈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본인이 워낙 일본행을 원했던데다가 치바 롯데 마린즈의 신임 감독인 니시무라 감독이 우타 거포 보충을 요청하였고, 무엇보다 구단주인 동빈씨가 직접 데려오라고 지시를 해서 그 덕분에 프론트가 재빨리 움직여 우선 협상이 바로 끝나자마자 계약을 해버렸다. 한화에서도 엄청난 양의 금액을 제시했지만 결국 꿈+돈을 쫓아서 간 셈이니….[14]

5.1. 일본 진출 첫 해(2010년)


모자에 간바로 닛폰이 붙어있는걸 보니 2010년이 아닌게 분명하다.

일본 진출 첫 시즌 시범경기에서는 .342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희망을 알렸지만 정작 시즌 개막 경기 세이부전에서는 52년만에 4타수 4삼진이란 굴욕을 겪었다. 본인은 크개 개의치 않는다고 했지만 다음날 호아시 가즈유키의 팜볼에 농락당하여(30% 이상 구사하니 주종이다. 왼손 스리쿼터에 슬라이더처럼 휘면서 떨어지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꼈을 것이다.) 6연타석 삼진에 이어 1사 1,2루 득점찬스에서 폭풍 병살. 마지막 타석에서는 그나마 중견수 플라이. 공이 외야로 나갔다. 9타수 0안타 6삼진. 미스터 제로. 그리고 더욱 양산되는 별명...

그런데 이후 연속 홈런을 치는 등, 5월이 오자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본 롯데리아김태균김치버거(…)라는 메뉴도 있는걸 보면 현지에서의 인기도 대단한 듯. 덧붙여, 김태균의 홈런 영상을 보면 공이 넘어감과 동시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문 밖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김태균이 홈런을 치면 저 김태균김치버거를 선착순 몇명 한정으로 52엔에 팔기 때문이다. 배번이 1번이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치바롯데에는 자기이름걸고 음식내면 부상 혹은 부진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같은 시기에 임창용도 올스타에 선발되었지만 임창용과 김태균은 서로 상대 팀. 홈런레이스에서는 한국인 최초 1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던 2010년 8월 2일, 돌연 김석류 아나운서와의 결혼을 발표하였다. 2010 시즌 후반기 부진속에 갑작스런 발표와 슬럼프 시기와 김석류 아나운서의 일본체류시기가 겹쳐서 야갤에서는 온갖 개드립 양산했다.야구계의 연정훈 결혼 발표후 4경기 연속 무안타였다가 8월 7일에야 19호 홈런을 때려냈다. 이때 한 말이 석류 덕분이다.라고….

하지만 일본에서 맞이한 첫시즌인 10 시즌 김태균의 성적은 타율 0.268에 21홈런 92타점으로 일견 괜찮은 성적(특히 타점은 리그 6위다.)으로 보이나 득점권 타율 0.236로 사실상 꼴지에 랭크되어 있고, 병살이 24개로 단연 선두에 랭크되어 있다. 삼진 역시 1위에 7개 뒤진 140개로 2위. 리그 최고 테이블 세터진의 롯데에서 4번을 치면서 타점이 92개밖에 되지않는 이유가 이거다. 게다가 1루수이면서 실책이 8개나 된다. 치바 롯데 팬들이 김태균을 깔 만하다…. 물론 진출 1년차니 이 정도의 성적도 완전히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몇몇 무개념 팬들이 김태균 타점, 홈런 스탯만 들고와서 마치 리그 최상급 클린업인듯 우기는게 문제. 첫 시즌 김태균은 김득병, 김삼진, 김찬물이었지 김홈런, 김영양이 아니였다.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렸는데 하필 김석류와의 결혼발표 이후로 눈을 썩게 만드는 성적이 나와서 김석류는 더불어 까이게 되었다.(…)

다만 일본시리즈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했다. 7경기 모두 선발 출장해 29타수 10안타 타율 .345 2타점. 장타는 단 한개도 없었으나 똑딱질은 열심히 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못한 우승의 한을 일본에서 풀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만전에 출전, 1타수 무안타 4볼넷(…)을 기록했다. 당연히 '김볼넷'이라는 별명이 추가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후 지독한 부진으로 팀 타선의 구멍으로 자리매김했다. 결승전까지 4번으로 출장하며 테이블세터진과 추신수가 만든 팀의 찬스를 전부 날려먹었다. wiKi:"추신수" 신수정호야 너희도 군대가. 최종 타율은 9푼…. po조범현 안목wer!!

2011년 KIA로 국내 복귀한 이범호의 행보 때문에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김태균이 국내에 복귀할 때 반드시 한화로 돌아와주길 바라는 여론이 강했다.

5.2. 충격의 중도퇴단 (2011년)

이전 해인 2010년 아주 좋지는 않지만 썩 괜찮은 성적을 올린 관계로 2011년은 보다 적응한 모습으로 더 나은 성적을 올릴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데뷔 초창기 내년엔 더 잘할 거야..하던 때와 같은 모습 그러나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늘어난 낮경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손목 부상까지 겹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몇경기 만에 1군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던 중 7월 27일, 김태균이 부상 장기화와 지진의 여파로 인한 심리적 충격 등을 이유로 치바 롯데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FA 자격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 8월 7일 야구장에 방문하신 회장님이 복귀를 인증하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김태균의 복귀를 비난했다.김지진 김도망 김비겁 일본언론은 당연히 김태균을 비꼬면서 맹비판했고"김태균, 한류 아이돌보다도 나약했다"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 등지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이미지가 덤으로 안 좋아졌다. 국내에서도 역시 김태균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김성근 감독은 김태균의 정신력이 너무 나약하다며 비판했고,# 심지어 장훈은 김태균의 복귀를 보며“한국 남자로서 부끄러웠다.”라고 까지 말했다. 가네다 마사이치 역시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조금 아프면 아프다고 빠지고, 뭐가 무섭다고 가 버리고라고 디스했다.

김태균의 복귀로 인해 일본 야구계에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아진 것이 향후 일본 진출을 고려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임창용의 경우 싼 값에 활약을 했더니 야쿠르트에서는 단지 좌완이면서 특이한 폼을 가졌을 뿐인 이혜천을 영입한 경우도 있었다.

그의 중도포기로 인해, 부진의 늪에 빠졌음에도 어떻게든 2004년 이후 일본생활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이승엽이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김태균 김구라되다[15][16]

구단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시즌 도중 퇴단했다고 하지만 본인은 구단과 좋게 헤어졌다고 하니 너무 강도높은 비난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것이다. 당해년도 계약금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구단에서 그냥 다 줬다고. 이후 김태균은 "팀도 동료도 없었다… 난 한낱 용병이었을 뿐" 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미 2010년에 일본 야구의 분위기에 절반쯤 마음이 떠났던 모양.

2011년 11월 28일 한화가 김태균에 베팅한 금액이 최소 연 10억에 육박할 것으로 보도되었다. 12월 12일 한화에서는 기존 매체들에 알려진 것과 달리 10억+a가 아닌 계약기간 1년에 옵션 없이 순수연봉만으로 15억 계약을 했다. 연봉 15억은 국내 스포츠 선수 사상 최고액이다. 팬들은 계약금 없이 1년 15억이기 때문에 FA로 따지면 4년 60억이라 크게 비싸지 않다는 의견과 그래도 일본에서 죽 쑤고 왔는데 15억은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다. 보통은 이면계약으로 옵션처리하는 금액을 이렇게 한꺼번에 줘버리는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아마도 박경완의 금지된 이면 다년계약 파문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17][18]
하지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상황에서 김태균과 비슷하기라도 한 클래스가 한화에 존재하지 않으며, 2013년 이후의 FA 몸값이 폭등한 상황에서 2015년 후 김태균 FA시 타팀에서 김태균을 데려가려면 2년치 연봉(30억)+보상선수 또는 3년치 연봉(45억)을 한화에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타당한 계약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김노예

12일 입단식에서 자신에게 15억은 과분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으며, 야왕의 해결사 별명을 갖고 싶다고 했다. 김해결

그리고 치바 롯데 퇴단에 대한 의혹을 담은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으나 수많은 김컴백입단식의 기사에 묻혔다.#

김승연 회장이 시즌 중 영입을 천명했을 정도로 모그룹 차원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태균의 친정팀 복귀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그에 따른 기대 또한 대단하다.(한화 재단의 천안북일고 출신 스타가 아니던가.) 노재덕 단장은 김태균을 믿기 때문에 처음부터 옵션계약은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정승진 사장은 언젠가는 김태균의 등번호도 영구결번이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할 정도.#

국내 입국 시 '팀에서 동료인 니시오카 츠요시 선수가 자신에게 다가와 둘이 있을 때 자신이 한국계임을 고백했다'는 말을 해 까였다.[19] 12월 26일 조선일보에 퇴단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지진과 방사능 문제 때문이며 서로 좋게 헤어졌다는 이전 기사와는 달리 팀에 제대로 적응을 못해 그만뒀다고 제 입으로 밝혔다. 성적만을 요구하는 팀에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당연히 폭풍처럼 까이고 있는 중. 김태균의 해명을 반박할수 있는 내용이 들어간 기사도 나왔다.여기 니시오카는 정말 김태균 한대 패고 싶어할지도

6. 복귀 이후: 까임의 시기 2

6.1. 2012년

비난과 싸늘한 반응 속에서 시즌이 시작되었다.

2012시즌 개막전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5타수 2안타(2루타1) 1타점을 기록. 그 다음날엔 3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으나 4회말 1사 1, 3루에서 손아섭의 평범한 1루 땅볼자세히보면 손아섭은 당연히 아웃될 줄 알고 조깅 중을 1루 베이스도 밟지 않고 2루로, 그것도 악송구를 하는 안드로메다로 가출시킨 수비를 작렬시키며 한화팬들을 멘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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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명품수비

이후 선발이었던 안승민은 와르르 무너져내렸고 4회에만 7실점, 결국 팀의 5:10 패배로 이어졌다. 한화 팬덤에서는 그따위로 할거면 15억 도로 토해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경기 이후 한대화 감독이 인터뷰에서 "잠깐 귀신이 씌여 그랬을 것"이라며 감싸 안아주시며 친히 김귀신, 김빙의, 샤먼킴 별명을 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4월 13일에는 테이블세터의 부진으로 타점을 챙기지 못했으나 14일에는 4타수 4안타로 시즌 초이긴 하지만 6할을 찍었으며 칠못쓰? 통산 1100 안타를 달성했다.

4월 22일 삼성전에서 드디어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다! 무려 50타석만에 터진 귀중한 홈런. 그리고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최진행삼진 하나 추가

4월 29일 넥센전에서 브랜든 나이트를 상대로 동점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1:1 동점을 만드는 값진 홈런.

팀이 막장이 되어버린 것과 일본 복귀 때 저지른 만행 탓인지 팬들의 관심은 싸늘했다. 일부 팬들은 김태균의 역대 전적을 고려해볼때 6월 이후 반드시 DTD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해마다 찾아오는 잔부상이 어김없이 또 찾아왔다. 타격 시에 손가락이 울리며 통증이 오는 상황이라고. 이로 인해 6월 후반기부터 결장이 잦아졌다. 대타로 출장해보기도 했지만 되려 타율만 갉아먹고 어느샌가 타율이 4할 밑으로 추락한 상태. 허나 중요한 것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팀은 막장이고 김태균 본인에게는 아무도 별 관심을 안 가진다는 것.(...)

6월 24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선 류현진이 3이닝 4실점으로 조기 강판된 상황에서, 상대 선발투수인 니퍼트를 상대로 추격의 불을 당기는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이 홈런으로 니퍼트는 그대로 강판되었고, 팀은 기어코 8회말 역전에 성공하며 시리즈를 스윕하는가 싶었는데.. 9회초 박정진이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단 두개를 남겨둔 상황에서 폭투로 주자를 불러들이는 바람에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결국 연장 승부 끝에 7:8로 경기를 내 주고 말았다.

7월 7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시즌 10호 홈런과 더불어 결승타[20]를 기록하며 팀의 연패를 끊는데 일조했다.

다음날 열린 7월 8일 SK 와이번스 전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200홈런(역대 18번째)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 통산 600득점과 2000루타를 동시에 달성했다. 집중력을 발휘해 연이틀 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타율도 0.398까지 끌어올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개인 기록 달성도 기쁘지만 무엇보다도 팀이 연패를 끊은 것과 더불어 류현진에게 승을 챙겨줄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며, 4할 타율에 대한 것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2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 참가하여 예선에서 홈런 14개[21]를 쏘아올려 1위로 결선에 출전하였고, 결선에서 예선 2위를 차지했던 박용택을 6-3으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개인적으로 3번째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기록으로, 이는 양준혁, 박재홍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이후 체력탓인지 점차 부진하면서 4할에서 한참 떨어진 0.363으로 시즌을 마감했다[22].

6.2. 2013년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던 12시즌과는 달리, 2013년에는 장타력 없이 영양가 없는 똑딱질만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다가,[23] 야구 내외적으로 구설수를 만들어 내어 한화 이글스 팬들은 물론이고 타팀팬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고있다. 심한 경우는 암흑기인 팀에 도움이 안된다며 LG 트윈스 시절의 조인성(...)과 비교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9월 중반에 부상에서 돌아오더니 3개의 홈런을 치며 두 자릿수 홈런타자가 없었던 팀에 유일한 두 자릿수 홈런타자가 된다.[24] 그러나 김태균은 2002년, 2006년에 이어 세 번째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기록한다.

시즌 최종성적은 101경기 .319 110안타 52타점 10홈런(...) 73볼넷 67삼진 1실책 .444(출루율 1위) .475 .920인데... 2013시즌 한화타선이 기대와는 다르게 08 김기아(...) 뺨치는 소총타선이 되어버렸다하더라도 누적 스탯이 참...

전반적으로 15억기대보다 못한, 그것도 스탯관리만 주구장창한 시즌으로 평가된다. 3할 1푼치고 욕먹는 김태균 다만 이게 정말 까일 스탯인지는 다소 논란이다. 자세한 건 항목을 참조.

6.3. 2014년


2008년 커리어하이에 버금가는 성적을 기록한 해. 타율이 3할 6푼이 넘지만 200안타를 친 서건창덕분에 타격왕 달성에는 실패하고 출루왕 타이틀을 가져가는데 만족해야했다. 그리고 한국 복귀 이후 최다 홈런(18홈런), 최다 타점(84타점)을 기록했지만 극악의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한다면 4번타자로서 뭔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 성적으로도 까이는 김까임 그리고 병살 1위

6.4. 2015년

7. 평가

01년부터 14년까지(일본시절 제외) 12시즌 동안 그의 통산 비율 기록은 타율 .320 출루율 .423 장타율 .529.. 이게 얼마나 훌륭한 성적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320의 타율과 .951의 OPS는 모두 2014년 현재 KBO 통산 2위의 대기록이다.[25]

특히 출루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12시즌 동안 출루율 4할 미만을 기록한 시즌이 딱 한 번 밖에 없다.[26]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심지어 일본에서 복귀한 이후에는 파워를 제물로 출루율이 더욱더 대폭발하여 2012년 0.474, 2013년 0.444, 2014년 0.463이라는 그야말로 정신나간 출루율을 기록했다. 3년 연속 출루왕 타이틀은 덤.

2001년부터 2009년의 기간만 한정하자면, 이 기간 동안 타율 4위, 출루율 5위, 장타율 2위, 최다안타 4위, 총루타 1위, 홈런 2위, 타점 1위를 기록했다. 각 부문에서 그보다 뛰어난 성적을 낸 선수들, 예를 들면 타율의 김동주나 홈런의 심정수가 있지만, 김태균처럼 타격 각 부문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그런데도 실력에 비해 무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그 놈의 홈런 순위. 같은 기간, 김태균의 단일 시즌 별 홈런 순위는 2001년 16위, 2002년 순위 밖(…), 2003년 6위, 2004년 6위, 2005년 6위, 2007년 6위... 로 6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당연히 관심을 못 받을 수 밖에.. 같은 기간 동안 한화 팬들조차 이런 김태균에게 상당히 불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장종훈 이후로 김태균만한 거포 1루수가 없었던 관계로 한화팬들은 2014년 현재까지도 팀내 홈런타자 = 김태균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일본 진출이후 해가 갈수록 장타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투고타저의 성격이 강했던 2012/2013년에도 5할, 4할 후반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는 등 장타면에서는 그렇게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홈런이 2년동안 10개 중반[27]을 찍는데 불과한 2루타 머신에 불과하였다. 물론 리그에는 이만한 성적을 못내는 선수도 많고, 김태균의 성적은 이대호도 없어서 리그 순위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김태균이 찍고 있는 성적은 옵션 없이 연봉만 15억인 타자에게 기대한 성적이 아닌만큼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첫째, 신인 첫해 김태균은 12.25타수 당 1홈런을 기록했는데, 그 이후 단 한번도 이것을 넘어서는 홈런 생산성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 홈런 1위를 차지한 08년조차 13.23타수 당 1홈런이었다.
  • 둘째, 홈구장이 한밭야구장이니 당연히 홈런이 빵빵 터져야 한다는 인식. 하지만 이젠 잠실 만큼 커서...
  • 셋째, 같은 기간 동안 다른 팀의 어느 짐승남눈이 먼 사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넷째,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처럼 혼자 집중견제당하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 그의 앞 뒤엔 데이비스, 이범호가 늘 붙어있었다.

이 의문과 불만에 대해 팬들은 열심히 안 하는 돼지라서라는 결론을 유추. 그렇게 그는 김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증거는 데뷔 이후 해가 갈수록 점점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28] 초창기 김태균 데뷔 때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꽤나 용모가 괜찮았다. 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2015년 현재 김성근이 감독으로 왔으니 다시 초창기처럼 살이 빠지고있다



신인 때에 비해 몸이 불긴 했지만 그나마 좀 괜찮았던 2005~6년경 김태균 리즈짤들 (아래 사진은 200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날 찍은 셀카.)

그런데 사실 엄밀히 볼 때 김태균은 전형적인 타입의 홈런 타자가 아니다. 정교한 선구안[29]과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정확한 타격에 힘쓰는 타입. 즉, 이대호와 같은 종류의 선수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대호는 미친듯이 홈런이 터진 적이 있어서... 본인 역시 각종 인터뷰에서 자신은 홈런보다 타율에 더 신경 쓴다고 말해왔다. 사실 홈런보다 정확하게 타격하는 게 더 효과적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애초에 한국프로야구 자체가 오랜 시간 동안 홈런보다 팀타격이 중요하다고 믿어온 리그라서, 김태균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쨌든 김태균은 무리한 선풍기질보다는 볼넷과 출루에 중시하며, 홈런보다 정확성에 힘쓰는 타자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2~30개의 홈런이 따라오는 타입. 그리고 이런 방식의 타격에 있어선 단연 최고의 타자이다. 한마디로 우타자 버전 양준혁 혹은 KBO 버전의 테드 윌리엄스, 조이 보토.[30] 단지 이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의 시선이 있고, 그냥 게을러서 이렇게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김태균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바로 주루와 수비. 해가 갈수록 저질 수비와 저질 주루를 선보이고 있다.[31] 수많은 별명을 양산시킨 각종 수비, 주루 동영상이 빼도박도 못 할 증거. 발은 느리지만 주루 플레이를 잘 하는 이승엽과 엄청 비교되는 부분이며, 최선을 다 하지 않는다는 의혹까지 받을 정도. 그리고 일본에서 국내로 도망온 후로는 갈수록 장타력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에 구장 펜스가 확장된 것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주변의 요구가 그의 멘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 위에서 언급했듯이 해가 갈수록 인간돼지화(…)가 진행되는 것도 큰 문제. 사실 초창기의 김태균은 부상이 그리 많은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2007년부터 돼지화와 함께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을지 우려의 시선이 있다. 당장 일본 진출 첫해에도 시즌이 끝나갈수록 성적이 나빠졌는데, 체력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되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의 체형 변화가 매니 라미레즈를 닮아간다고 하여 '김매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14 시즌 종료 후 체중감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2015년 현재의 체중은 그렇게 펑퍼짐하지는 않은 편.

사실 대부분의 팬들과 안티들이 지적하는 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결코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멘탈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자주 비교되는 이대호에게 확실히 밀린다는 평가에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32] 이 문제는 일본 진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더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일본 진출 이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줄곧 밝히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 점, 여기다 팀도 동료도 없었다라고 자신이 용병이라 차별받았다는 식의 발언과 니시오카 츠요시 재일 아웃팅 뒤통수 드립, 지진과 방사능이 무서워서 계약을 해지하고 도피하듯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두루두루 겹쳐 두부멘탈 인증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전만 해도 김별명이라 불리며 야갤 최고의 스타였지만, 일본 복귀 이후로 야갤 공식 비호감으로 등극(...) 멘탈문제는 한국 돌아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15억 연봉을 받는 30대 중반 고참임에도 소위 말하는 보스 기질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즉, 한팀의 중심타자로는 충분하지만 리더로는 모자란 선수라는 것.

아울러 2013년 6월, 롯데 외국인 선수 쉐인 유먼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와 공이 겹쳐 타격이 어렵다')을 가한 것이 드러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 발언은 명백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고 발표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태균은 구단 보도자료로 간접적 사과만 한 상태이며, 여태까지 유먼 선수에게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그리고 유먼이 한화로 왔다

김태균이 리즈시절을 찍은 2008년은 전체적인 비율 스탯이 최고점을 찍었고, 홈런과 타점 1위를 차지하며 리그 최고 타자에 등극. 그런데 2008년에 기록한 성적 중 본인이 예전에 기록한 성적보다 특출나게 더 뛰어난 기록은 장타율(.622)뿐이며, 다른 기록들은 사실 예전에 기록하던 것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그럼 뭐하나? 팀 성적은 망했는데... 당장 홈런을 봐도 홈런왕이 된 2008년과 만 21세 시즌인 2003년의 홈런 갯수가 31개로 같다. 이 때문에 08년 김태균이 월등히 잘했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다른 타자들이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33]

결론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보면 역대 KBO 선수들 중에서도 손 꼽힐 정도로 굉장히 훌륭한 타자. 다만 어느 한 시즌만 놓고 봤을 때 리그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타자였는가에 대해선 말하기가 애매하다는 것.

2012년 기록한 성적도 어찌보면 김태균스러운 성적인데, 높은 비율 스탯, 비율 스탯에 비해 기대보다 낮은 개수의 홈런과 타점이 그것이다. 백인천 이후 4할타자를 도전했던 과거 이종범, 이병규, 김현수 등의 선수들이 번번이 4할 문턱에서 미끄러졌지만 전반기를 마치고 8월까지도 김태균의 타율은 .398을 기록하고 있었다. 몸관리를 잘 해서 마지막까지 힘을 냈다면 31년 만에 4할타자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결국 체력 문제로 타율이 점점 내려가면서 4할타자 도전에는 실패.[34]

7.1. 이대호와의 평행이론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라이벌 구도인 김태균과 이대호가 사이클이 같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 이대호가 절정의 타격감과 장타력을 보일 때 치고 올라갈 김태균이 볼넷만 고르다가 김멀뚱이 되거나, 김태균이 알버트 푸홀스 모드 발동하여 스탯을 쌓고 있을때 이대호는 치라는 홈런은 못 치고 안타나 똑딱거린다든지…. 이는 두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

  • 2001년
    한해 먼저 데뷔한 김태균이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이대호는 아예 나오지도 못했다.
  • 2002년
    김태균이 소포모어 징크스로 타율이 .255까지 떨어지며 허우적댈 동안 이대호는 어떻게든 나와서 .278에 8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 2003~2005년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떨 백골프때문에 이대호가 2할 5푼대의 빈타와 부상에 허덕이는 동안 김태균은 3년 연속 타율 3할대, 출루율 4할대, 장타율 5할대에 각각 31, 23, 23홈런으로 맹활약했다. 그야말로 이대호의 흑역사이자 두 라이벌간 격차가 극명했던 3년.
  • 2006~2007년
    독하게 단련하고 나타난 이대호가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포함해 3할 3푼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김태균은 2할 9푼으로 타율이 떨어지고 홈런도 반토막이 났다. 본격적인 이대호 역전시기. 그러나 이 시기가 역대급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 조정스탯으로 비교할 경우 김태균은 이 시기 평소보다 부진하지 않았다. wRC+ 수치로 보면 김태균은 한국리그 커리어 평균 155.6에 비해 2006년 161.1, 2007년 159로 오히려 평균보다 더 잘한 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2006년 191.8, 2007년 194.7을 기록한 이대호가 미쳤을 뿐.
  • 2008년
    초반 타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여름부터 축 처진 이대호에 비해 김태균은 도루, 최다안타 빼고 다 5위 안에 들어갈 맹활약으로 다시금 이대호를 제꼈다. 그러나 중요 이벤트였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장타율 0.760의 맹타를 휘두를 동안 김태균은 집에 있었다(…).
  • 2009년
    이대호가 제리 로이스터감독의 지시로 3루에 들어가면서 수비로 고생하고 손바닥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3할을 못 치는 동안 김태균은 2008년 겨울 푹 쉬고 FA로이드까지 마시며 3할 3푼의 맹똑딱질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김태균은 뇌진탕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그리고 팀도 망해버렸다
  • 2010~2011년
    이대호가 한국에서 돼마왕이 된 동안 김태균은 김지진이 되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 2012년
    반대로 이대호가 일본에서 투신타병에 고생하는 동안 김태균은 4할 5푼을 쳤다(…). 그러나 6월, 이대호가 타점 1위에 등극하는 등 날아다니는 동안 김태균은 부상과 극악의 빠따질로 타율과 출장경기 수가 같이 떨어졌다(…). 과학으로 증명될 일만 남은 듯 또 이대호가 잘하다가 8월 극심한 부진에 빠지는 동안 김태균은 4할을 유지하며 4할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대호가 부활하자 김태균의 타율은 .365까지 내려갔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수준. 그러나 2012년 이대호는 일본리그 타점왕을, 김태균은 한국리그 타격왕을 차지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즌으로 볼 수 있겠다. 더불어 2013년에는 김태균도 이대호도 둘 다 2012년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간만에 사이클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14년도에는 비록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이대호가 기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김태균은 다소 부진한 편이라 평행이론은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증명했다(...). 시즌 중반 김태균은 펄펄 날기 시작하지만 이대호는 타격감이 부진하기 시작...

7.2.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이하 내용은 2013년 WBC대회를 대비해서 라이언 사도스키가 네덜란드 대표팀 뮬렌 감독에 제공한[35] 한국 대표팀 분석 보고서 중에 김태균 부분이다. 전문은 이곳에서

  • 덩치 큰 오른손타자. 수비는 별로지만 빼어난 타자다. 지난 시즌 석 달 동안 4할 타율에 근접했고 3할 6푼대로 시즌을 마쳤다. 타율이 올라가면서 장타력이 떨어졌는데 이건 일본 프로야구 생활의 영향일 수 있다. 중견수가 우중간 쪽으로 몇 발 옮겨야 한다. 뜬 공이 그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벤지 몰리나 만큼 느리기 때문에 내야수들은 어깨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깊숙이 위치를 잡아야 한다. 내 경우엔 속구를 낮은 쪽으로 집중적으로 던졌고 변화구는 유인구로만 썼다. 브레이킹볼에도 매우 강하다. 수비 때는 움직임이 둔하다. 푸시 번트를 고려해볼 만 하다.

  • 내야수들은 송구가 가능한 한도 안에서 최대한 깊이 서야 한다. 2루수는 1-2루간으로 치우쳐야 한다. 유격수의 어깨가 좋다면 깊은 3-유간으로 옮겨도 된다. 발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3루수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좌익수는 좌중간으로 조금 옮긴다. 중견수와 우익수는 우중간을 좁힌다.

8. 기타사항

8.1. 리그베다 위키에서의 영향력?

리그베다 위키에서의 김태균의 영향력이라 하면, 2회 WBC 이후로 김태균의 별명 항목의 조회수가 미친 듯이 늘어나서 SUSPENDED가 죽어라고 떴다는 것. 그리고 이 엄청난 조회수는 블루호스트가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어 쫓겨나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이에 별도의 리그베다 위키 한정 별명을 만들어 이를 기리고 있다(...). 심지어 NC포수 김태군김벌멍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8.2. 김별명

원래는 별명이 많은 타자였지만,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엔 김도망이나 김지진이라는 별명만 사용되고 있고 야갤에서는 2012년 연봉에서 따온 15억짜리 시리즈[36]를 사용해서 2012년부턴 그다지 다양한 별명이 사용되고 있지않다. 2012년부턴 별명택에게 별명제조능력이 점점 밀리는 것 같다. 근데 2013년 인종차별 사건 이후로는 다시 별명이 늘어나고 있다(...). 2014년에는 FA 시장의 거품으로 인해 연봉 15억이 오히려 적은 거 아니냐며 재평가 받으면서 김저렴 시리즈가 유행했다.

더 많은 별명들의 목록을 보고 싶다면 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

9.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한화 이글스 88 245 .335 82 13 2 20 54 51 2 40 4 .649 .436
2002 105 298 .255 76 11 0 7 34 25 2 41 2 .362 .347
2003 133 479 .319 153 24 2 31 95 67 3 79
(4위)
9 .572
(5위)
.424
(4위)
2004 129 473 .323
(4위)
153 26 1 23 106
(2위)
76 2 70 6 .529 .412
2005 124 461 .317
(3위)
146
(2위)
33
(2위)
2 23 100
(2위)
73 3 60 6 .547
(2위)
.401
(5위)
2006 124 423 .291 123 27
(3위)
0 13 73 66 2 82
(4위)
2 .447 .405
(5위)
2007 118 393 .290 114 13 0 21 85
(4위)
62 2 90
(3위)
2 .483 .420
2008 115 410 .324
(5위)
133 27
(2위)
1 31
(1위)
92
(4위)
81
(5위)
2 64
(4위)
5 .622
(1위)
.417
(3위)
2009 95 336 .330 111 15 0 19 62 63 0 45 6 .545 .416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치바 롯데 마린즈 141 527 .268 141 22 0 21 92 68 0 74 4 .429 .357
2011 31 104 .250 26 5 0 1 14 7 0 12 2 .336 .327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한화 이글스 126 416 .363
(1위)
151
(3위)
24 0 16 80 61 3 81
(1위)
11 .536
(4위)
.474
(1위)
2013 100 345 .319
(5위)
110 24 0 10 52 41 0 73
(2위)
8 .475 .444
(1위)
2014 118 422 .365
(2위)
154 30 0 18 84 66 0 70 11 .564 .463
(1위)
KBO 통산
(12시즌)
1376 4701 .320
(2위)
1506 267 8 232 917 732 21 795 72 .529
(6위)
.423
(2위)
NPB 통산
(2시즌)
172 631 .265 167 27 0 22 106 75 0 86 6 .412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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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신인 때에는 3루수를 봤었다.
  • [2] '김태균 홈런 날려버려라~ (x 3)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 [3] '한화의 홈런타자 김태균~ 한화의 김태균~ 한화의 홈런타자 김태균~ 워어어어어어어~' (x 2)
  • [4] 우리가 좋아하는 4번 타자 김~태균~ 응원 Start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김!태!균! 홈런치러 왔다 쭉 쭉쭉 쭉쭉 쭉 쭉쭉 쭉쭉 김!태!균!
  • [5] 치바 롯데 시절에는 다비치의 '8282'를 썼다.
  • [6] 다만 이호준은 6연타석 볼넷으로 연속 볼넷 기록도 동시에 겸하고 있는 반면, 김태균은 4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쳤기 때문에 연타석 기록엔 실패했다. 그리고 이호준은 고의사구가 포함되지 않은 모두 순수한 볼넷이었다. 김태균은 고의사구 한개 포함.
  • [7] 알다시피 박병호가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후 52번을 달고 무섭게 컸다. 오른손 강타자의 상징적인 번호?
  • [8] 타율 7~8위, 홈런 6~7위를 유지하는 성적, 심지어 개수나 비율조차도 순위권에 맞춰졌다. (...)
  • [9] 장종훈이 김태균을 격려하면서 '다음은 너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라든가, 김태균이 장종훈의 라커룸을 물려받았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 [10] 다만 2006 시즌은 1980년대와 비슷할 정도로 희대의 투고타저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홈런왕 이대호를 포함해 당해 20홈런 이상을 쏘아올린 타자는 고작 4명뿐이었고, 3할 타자도 5명에 불과했다.
  • [11] 이때 상대투수는 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
  • [12] 단 무조건 2글자, 성까지 합쳐서 3자 이내라는 조건이 붙는다. 김마리아같은 예외도 있긴 있지만….
  • [13] 2008 시즌 경기 MVP로 선정된 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당시 인터뷰어는 송지선
  • [14] 속설에 따르면 한화가 제시한 돈은 심정수의 계약금보다 훨씬 웃도는 70억 ~ 80억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김태균롯데에서 받게 되는 돈은 총 7억엔.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90억원 정도 된단다. 가히 인생의 승리자.
  • [15] 기사를 보면 동료들과 코치들이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도 않고 심지어 홈런치고 하이파이브도 안했다고 하는데... 치바 선수단 투명인간 인증샷
  • [16] 당장 거의모든 인터넷사이트에서 김태균관련 기사가 뜨면 악플뿐이 안달린다. 덤으로 까이는 김석류 지못미
  • [17]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저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선수들은 불만이 쌓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떤 선수는 김태균도 15억을 받았는데 이번 연봉협상에선 꼼꼼하게 따지겠다면서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15억이란 금액의 산정 기준이 모호한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게 김별명 탓이라고 할수는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여전히 운영중인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겠지만, 이래저래 까이는 김별명 신세는...
  • [18] 결국 한화 구단내에서 폭발의 기운이 감지되는 상황이다. 이대수골든 글러브까지 탄 유격수임에도 2010년 대비 5000만원 인상에 그치는 제안을 받았다. 아무리 김태균에게 15억을 줬어도 이건 너무하다는 평이 지배적.
  • [19] 일본 사회에서 재일 한국인이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
  • [20] 놀랍게도 올 시즌 김태균이 기록한 첫 결승타. 유독 김태균의 타석 앞에서 공격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던 팀 사정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21] 4아웃 이후 무려 12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참고로 김태균의 2012시즌 홈런 개수는 16개. 16 + 14 = 30개?
  • [22] 사실 시즌 초기가 과도하게 타율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BABIP 수치 등을 통해서 김태균의 초반 2, 3개월의 성적을 분석하면 기대성적보다 타율이 거의 1할 가량 높이 나왔다.
  • [23] 6월을 기준으로 홈런이 3개이며, 득점권 상황에서는 1할대를 기록함으로써 같은 시기 제대로 삽을 푸고 있던 이승엽 보다도 낮은 득점권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 [24] 프로야구 13번째로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걸 노린 듯...
  • [25] 3000타석 이상 타자 한정. 통산 타율 1위는 너무도 유명한 .331의 장효조. OPS 1위는 이승엽의 .975이며, 김태균의 뒤를 양준혁(.950)과 이대호(.924)가 뒤따르고 있다.
  • [26]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가 걸렸던 2002년에는 출루율이 0.347 였다. 근데 이것도 타율 0.255 보단 거의 1할 가까이 높은...
  • [27] 2012년에는 16개를, 2013년에는 겨우겨우 10개를 찍어냈다.
  • [28] 실제로 2회 WBC 때 김태균이 웃통을 벗고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야빠들은 '저런 돼지가 최고의 선수라니 야구 아무나 하네요 ㅋㅋ' 같은 댓글을 보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야 했다(..)
  • [29] 시력은 0.3으로 좋지 않지만 공을 골라내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10303
  • [30] 조이 보토의 경우 MLB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명이지만, 무리한 장타보다는 출루를 매우 중시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홈런 20~30개가 따라오는 타입이다. 이 때문에 받는 연봉에 비해 책임감이 너무 약하다고 포풍까임을 당하고 있다. 이쪽도 장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게 문제...
  • [31] 특히 1루 수비는 무난한 수준이었는데 일본에서 도망온 후 점점 저질이 되어가는 중.
  • [32] 아무래도 불우한 가정사, 투수->야수 전환, 무릎부상, 프로 초창기의 삽질 등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이대호에 비해 나름대로 순탄하게 지금의 커리어를 쌓은 김태균이 멘탈면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 [33] 아이러니하게도 동기이자 비슷한 유형의 타자인 이대호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2010년에 40홈런을 넘겨서 이런 평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 [34] 본인 스스로도 후에 밝히길 체력이 다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고..
  • [35] 뮬렌 감독은 2013시즌 사도스키가 소속돼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다. 정확히는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리그팀 소속이긴 하다.
  • [36] 김태균이 안타를 치면 15억짜리 안타, 홈런치면 15억짜리 홈런, 땅볼치면 15억짜리 땅볼, 삼진을 당하면 15억짜리 삼진,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