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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last modified: 2017-01-29 22:16:56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가수 이외의 활동
2.1. 라디오DJ
2.2. 연기


(김창완밴드의 멤버들과 함께한 김창완)

한국 연예계에 다시 없을 천재


1. 소개

형제들로 구성된 전설적인 가족 밴드산울림의 맏형으로 기타와 보컬, 작곡을 담당했다. 특유의 실험적인 가사와 사운드, 독특한 발성법 등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것으로 커버 곡 위주의 활동을 하던 당대의 다른 밴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그의 음악세계에 대해서는 미 8군에서 흘러나오는 곡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의 포크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다 등등 여러 이론이 존재하지만 그 무엇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그야말로 파격적인 데뷔. 1집 데뷔 이전에 이미 세자리 수의 곡을 집안 구석에서 작곡했다고 한다. 후덜덜. 그의 스타일은 장기하를 비롯한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척박했던 한국 음악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한 손에 꼽히는 인물. 자세한 내용은 산울림 항목을 참조할 것.

산울림으로 활동하는 것과 별개로 본인 이름으로 솔로 앨범도 자주 냈는데, 산울림 스타일과는 달리 조용하고 잔잔한 발라드나 포크송을 불렀다. 당장 '너의 의미'만 봐도 답이 나온다!.또 아이들을 소재로 한 노래나 동요에도 관심이 있어서, 동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늘날 잘 알려진 <개구쟁이>나 <안녕>("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이 김창완의 곡이다. 공연장에서 김창완밴드의 <개구쟁이>("우리 같이 놀아요, 뜀을 뛰며 공을 차며 놀아요")와 <산할아버지>의 라이브는 정말 일품이다. 동요에 맞춰서 뛰어노는 어른들... 그 외에도 MBC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이크는 멋쟁이의 주제곡의 작사, 작곡, 노래까지 담당했고, 어린이 드라마 5학년 3반 청개구리의 곡도 담당했다. 드라마 주제가도 불렀는데, 한시대를 풍미한 미니 시리즈 한지붕 세가족의 오프닝이나 순풍산부인과의 노래들도 김창완의 곡이다. 8,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알게모르게 김창완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

앨범과 앨범 사이에 공백기가 길긴 했어도 최근까지도 활동했으나 동생이자 산울림에서 드럼을 담당하던 막내 창익 씨의 사고사를 당했다. 김창완밴드의 《The Happiest》 앨범의 5번째 트랙인 <Forklift>가 김창익 씨의 추모곡이다. 김창익씨의 죽음으로 결국 사실상 산울림은 해체되고,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김창완밴드를 이끌고 있다.

이와 관련 인터뷰를 보면

김창완 :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 있었고(산울림의 막내인 동생 김창익씨의 죽음), 그 원통함을 어떤 걸로도 풀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부르지 않지만 Forklift 라는 저의 동생을 빼앗아간 지게차라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 지게차라는 노래를 만들기 전에 '동생을 위한 노래가 한 곡만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 노래가 나와주면 위로를 받을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캐나다에 갔다와서 며칠 사이에 동생을 빼앗아간 눈이 며칠 사이에 사라져 버린거예요. 이렇게 며칠 사이면 사라질 눈이 왜 동생을 데려갔을까... 이게 너무 원통해서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다가 노래 한 곡만 나와주면 좋겠다.. 그러면서 제가 속으로 바람을 갖기를 슬픈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런생각을 했어요. 근데 뭐 노래라는게 뭘 만들겠다고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인연같이 다가왔어요. 의외로 그 노래를 자꾸 부르면서 제가 위로를 받았어요. 근데 여러분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뭐 이렇게 아주 슬프게 들리거나 듣기에 따라서 그러지만.. 아주 담담하게 나왔어요. 얼마나 제가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렇게 크게 위로를 받고 다시 음악만이 내게 위로를 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한 반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 김창완밴드가 앨범에 박차를 가하고 이렇게(웃음) 또 산울림 30년은 그냥 보내기에 아까운 유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산울림 30년 레퍼토리들도 있고, 열심히 해서 김창완밴드의 좋은 곡을도 갖게 되었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시더라고 용기를 가지면 어디서든지 위로를 받으실 수 있어으니깐요. 얼마나 지금 행복한 밴드입니까.(웃음)

또한 잘 알려져 있듯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잠사학과[1] 출신인 엘리트다.(고등학교는 중앙고) 그런데 손석희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나와서 말하길 그냥 담임이 원서 넣는대로 간 거라고 한다. 본인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다고. 그래서 실제로 등교하고 실망했다고 한다. 본인이 잠사학과에 붙었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전해듣고 잠수복을 사러 남대문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그래도 서울대이다(...) 잠사학과는 누에와 섬유를 다루는 학과로 잠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튼 본인은 원래 음대나 미대를 가고 싶어했지만 실기가 필요한지도 몰랐고, 아무튼 그땐 학사 상담이고 뭐고 없는 시대라... 하지만 김창완, 김창훈 등의 인터뷰에선 종종 집이 가난했었다,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다는 말들이 언급된다.

참고로 김창완이 학교에 일찍 들어간 이유를 김창훈에게 묻자, 형은 워낙 수재라서 집에서 일찍 보냈다는 대답을 한 적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쯤에 아침 프로그램에 나와서 김창완이 밝힌 바로는 어릴 때 동네에 나이가 한두 살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학교갈 나이가 되어서 학교에 다니게 되자 김창완도 친구들을 따라 학교에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창완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보니 1학년 과정이 친구들을 따라서 학교에 갔을 때 이미 다 배운 내용이라 울고불고 해가지고 2학년으로 올려줬다 한다. 아마도 김창완이 빠른 생일이라 7살 때 입학하러 갔는데 저 사건으로 인해서 6살에 입학한 것과 동등하게 처리된 것 같다. 이 방송이 김창완 공식사이트#에 올려져있었는데 지금은 잘려서 볼 수 없다. 사실 어렸을때 잘 살았지만, 김창완의 아버지가 퇴직금 전부를 어떤 영화에 투자했다가 거하게 말아먹어서 집이 가난해졌다고 '이제야 보이네'에서 언급한다.

저서로 '이제야 보이네'와 '사일런트 머신 길자'가 있다.

후배 뮤지션들의 언급이나 '이제야 보이네'를 읽어보면 보기와는 다르게 을 매우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전엔 인터뷰에서 일주일에 7일을 마시고 오전 라디오 생방만 끝나면 마신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나, 이후 연세때문인지 많이 줄인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대책으로 자전거 통근을 하여 체력증진, 음주에 버티는 수단으로... 2009년 장기하와 얼굴들크라잉 넛과 함께 '대규모공연'(실제 이름이다!)을 열었을 때도 술로 의기투합했다고. 또한 나가수2에서 신대철의 말로는 "고등학교때 자다가 시끄러워서 깨보니 거실에서 김창완 선배님과 아버지(신중현)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라고 말한바 있다.


2. 가수 이외의 활동

2.1. 라디오DJ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래 라디오 DJ 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MBC라디오의 젊음은 가슴마다를 맡았었고.
1988년 CBS라디오의 꿈과 음악사이에를 맡았다. 이때 애청자중에 민초희라는 16세인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불치병에 걸렸지만 둘째언니를 통해 자신이 쓴 편지를 애청자엽서로 방송국에 보내 자신의 사연을 전하고 노래를 신청하는 일이 꾸준히 이어졌다. 그때의 민초희가 보낸 편지와 김창완등의 이야기가 묶어져 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과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후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 입니다(아침 9시~11시)의 DJ로 1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MBC 표준FM 김창완의 내일로 가는 밤(밤 12시~2시)을 3년 간 진행했다. 그 이후 시간은 고스타임.

2.2. 연기

1980년대에 어린이 드라마에 주역을 맡으면서 연기에 처음 발을 들였고 그후 간간히 연기자로 활동하는 정도였다가, 황인뢰 PD의 드라마였던 1995년작 연애의 기초에서 주연 중 하나로 호연하면서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줬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연기자로서의 활동이 더 늘어났는데, 연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웬만한 중견 연기자들보다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초기에는 특유의 어수룩하면서도 순박한 모습 덕분에 그에 맞는 인물을 연기하다가, 이후 연기변신을 시도하여 하얀거탑, 일지매, 마의 등에서 능구렁이스러운 악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흑화 요즈음은 악역 연기자로서 거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닥터에서도 싸이코패스 성형외과 의사인 주연을 맡게 되었다. 근데 영화는 개망. 그리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에서 선조 역할을 맡아 일지매에서의 인조와 비슷한 연기를 구현했다. 최근에는 굿 닥터에서 최종보스로 짐작되는 비밀스러운 의사 연기를 한다. 산울림 음반들의 순수와 퇴폐를 동시에 구현해내는 모습이 그대로 연기에도 드러난다. ㅎㄷㄷ 은근히 의사 역할을 많이 맡는다.그리고 2013년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의 조력자인 변호사 역할로 나온다. 2014년엔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노론의 영수인 '김택'을 연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울림의 음악을 제대로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연기자로서의 김창완에 더 익숙한 편이다.요정 컴미 나왔던 명태 아빠 했던 아저씨가 가수였어?! 같은. 어쩐지 그때 기타들고있더라...며 납득. 또한 작중 에피소드에서도 가수로 데뷔하겠다고 음반 냈다가 다 말아먹는 에피소드가 있다(...) 외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김창완이 나온 영상에 "맙소사! 도민준의 아빠 아니야?!" 이런 댓글이 많이 보인다(...) 유튜브의 아이유의 너의 의미 리메이크 버전 뮤비의 영어 코멘트 중간중간에 도민준 아빠가 노래해서 놀랐다는 댓글이 보인다. 거기에 친절하게 원래 유명 가수라고 설명해주는 한국인들의 댓글은 덤. 그래도 이후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라든가 밑에 서술되어 있는 대규모 공연, 특히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쌈싸페 이 세개의 락페스티벌에는 김창완 밴드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울림빠와 덕후가 되는 거야

김창완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연기와 음악 활동에 관해, 둘 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음악은 돈을 주고서라도 하고 싶은 것이고, 연기는 돈도 받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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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바이오소재공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