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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last modified: 2015-04-08 05:07:0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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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金佐鎭, 1889.12.16[1] ~ 1930.01.24)

조선 말 ~ 일제강점기의 교육인, 군인, 독립운동가이다.

Contents

1. 생애
2. 김좌진은 왜 암살되었나?
3. 작품에서 김좌진
3.1. 황야
3.2. 일송정 푸른 솔은
3.3. 야인시대
3.4. 북만벌, 칼을 가는 나근네 - 백야 김좌진 장군

1. 생애

본명은 김좌진, 본관은 (신)안동김씨,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

명문 양반가의 3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3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넉넉한 재산으로 경제적으로 문제는 없었으나 모친의 엄한 교육으로 성장했다. 첫째 김경진이 서울에 양자로 가면서 차남인 김좌진이 장남 역할을 했다. 나이 15세에 노비들을 해방시키며 전답을 나눠주고 자신의 집에 학교[2]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도 활발히 펼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사례로 꼽힌다.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1907년 학교를 열고 자기집의 노비를 해방해 전답을 나누어주었다.

1911년 친척뻘되는 인물에게 자금받으러 갔다가 변절한 친척뻘의 뒤통수로 미리 잠입한 일본 경찰로부터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 6개월을 수감했다.

1918년 만주에 망명해 한 광복회 부사령을 맡았다. 대한 광복회의 와해 이후 북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로 군정서군을 이끌었으며, 이후 독립 운동사에서 이름을 길이 남긴 청산리 전투(1920년)에서 독립군 연합 부대를 이끌었다. 이후 밀산을 거쳐 북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왔다. 이 때 북으로 간 군대들은 자유시 참변(1921년)에 휘말려 무척 큰 피해를 입은 탓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 이후 1920년대 중후반 북만주 지역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자유시 참변으로 반공노선으로 전향한 김좌진은 참변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만주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방앗간 등으로 동포들에게 인심을 얻으면서 한족총연합회 주석 등에 만주의 독립운동에 지도자로 활약했다.

1925년 민부(초기엔 한족연합회), 1929년 한족총연합회 등을 창설하고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면서 항렬이 같은 아우뻘인 아나키스트 종진[3] 등 아나키스트들도 받아들이면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위협을 느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1930년 마흔한살의 젊은 나이에 피살됐다. 유언으로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아내 오숙근이 3년 뒤에 만주로 잠입해 수습한 후, 홍성에 가명으로 밀장되었다가 1957년에 전답을 노비들에게 나눠주면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남겨진 선산 보령에 김두한에 의해 안장되었다. 1999년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여러 교육사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두한의 친부이자 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을동의 친조부이다. 배우 송일국이 외증손자가 되는 셈.그리고 삼둥이가 외고손자가 되는 셈 고만해 미친놈아

2013년 8월, 대한민국 해군 손원일급 잠수함 4번함이 김좌진함으로 명명되었다.

2. 김좌진은 왜 암살되었나?

지금까지 김좌진의 암살은 단순히 공산주의자들의 암살로 여겨졌으나 암살 사건을 연구한 학자들은 그 뒤에 꽤 복잡한 배경이 있다고 보고있다.

박상실은 김좌진이 운영하던 방앗간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는데 김좌진을 암살한뒤에 도망쳤다. 김좌진의 장례식에서 밝혀진 바로는 박상실은 고려공산청년회의 회원이자 재중 한인청년동맹원으로 알려졌다. 김좌진의 측근들은 박상실이 혼자서 김좌진을 암살했을리가 없고 그 뒤에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그 배후로 지목된 인물은 김봉환으로, 그는 한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던 탓에 북괴의 괴수 김일성이 김좌진 암살의 배후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러나 이후 연구를 통해 김봉환과 김일성은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다.

중국 자료가 공개되면서 박상실의 정체도 드러났는데 박상실은 가명이며 진짜 이름은 공도진, 혹은 이복림이라고 한다. 이복림과 박상실이 동일인물인지를 밝히는 명확한 증거는 없으나 연변대 교수 김동화는 두 사람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이 김좌진을 암살한데 대해서는 김좌진이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아나키스트들을 받아들이면서 만주내 한인들에게 영향력을 높여가자 공산주의 전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를 제거했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계 생존자 일각에서 김좌진이 일본과 내통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일본에 팔아넘겼고 이 때문에 김좌진을 암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ML파의 일원이었던 지희겸은 "김좌진이 하얼빈 총영사관 경찰국장 마츠시다와 밀담을 나눈후 공산당원들을 많이 잡아 가둬죽였기 때문에 암살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산주의계 생존자들의 주장들은 잘못된 소문에 근거한 것이라는게 일반적이다. 당시 일본은 중국 군벌들에게 압력을 가해 김좌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실제로는 김봉환이 일본과 밀통했다라고 보고 있다. 즉, 지희겸이 주장한 김좌진과 마츠시다의 밀담 운운은 실제로는 김좌진이 아니라 김봉환이 그랬다는 것. 학자들은 김봉환이 일본과 밀통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김봉환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들을 일본에 팔아넘긴걸 김좌진에게 떠넘겼고 김봉환의 주장을 그대로 믿은 조선공산당은 박상실(공도진)을 보내 김좌진의 방앗간에서 일하게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그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장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문제는 있다.

동료 독립운동가들의 공을 가로채어 원한을 샀다는 가로채기 설도 있다.

신용하 교수는 기단의 배후설을 주장한다. 신용하 교수 기사

3. 작품에서 김좌진

3.1. 황야

김영수 극작가의 1947년 연극인 '황야'가 극화되었다. 배우 일성이 김좌진 역을 연기하였다.

3.2. 일송정 푸른 솔은

장호 감독의 1983년작 영화 '일송정 푸른 솔은'은 청산리 전투를 다룬 영화로 배우 김기주가 김좌진 역을 연기하였다. 청산리 전투 참전자 마지막 생존자였던 이우석의 영상으로 마무리 된다.

3.3. 야인시대

야인시대에서 최동준이 연기하였다.

3.4. 북만벌, 칼을 가는 나근네 - 백야 김좌진 장군

2011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 2부작 드라마로 기획되어 야인시대 연출를 맡았던 형일 감독이 연출하였고, 배우 일재가 김좌진 역을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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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음력으로는 11월 24일. 인터넷상에서는 음력인지 양력인지 구분하지 않고 날짜만 적어서 혼돈케 하는 경우가 많다.
  • [2] 지금의 홍성고등학교, 중학교의 자리인 구 호명학교 터가 김좌진의 자택이다.
  • [3] 김종진도 1년 후에 공산주의자들에게 피살되었고, 김좌진을 중심으로 한명씩 피살되면서 와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