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김일권

last modified: 2015-01-28 18:09:32 Contributors


군산상고 vs 경남고 레전드 리매치 미디어 데이 때

이름 김일권
생년월일 1956년 9월 20일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상고-한양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멤버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1982~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0)
LG 트윈스(1991)
지도자 경력 쌍방울 레이더스 주루코치(1994~1995)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1996~1997)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1998)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2003~2004)

1989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김일권(태평양 돌핀스)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Contents

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4. 지도자 시절
5. 연도별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한국 프로야구역사에서 전준호, 정수근 등 대도라 불리운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김일권이야 말로 원조 대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 원년 멤버이자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1번 타자이다. 1982년 원년 도루왕이자, 프로 통산 5번의 도루왕을 차지했다. 프로통산 363개의 도루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도루뿐만 아니라 일발 장타력도 있었는데 1977년 야구 월드컵에서는 3번 김봉연에 뒤이어 4번을 맡는 일조차 있었다. 이때 5번이 장효조였다. 프로야구에서 1회초 초구 홈런 기록도 여러개 가지고 있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1972년 군산상고황금사자기에서 부산고에 9회말 역전승을 거두는데, 이 때의 주축 멤버 중의 하나였다. 이영민 타격상을 이 때 수상. 졸업후 실업 야구 팀 상업은행에 갔으나, 대학에 가고 싶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만에 한양대에 들어가는 기행을 펼쳤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출중한 활약을 펼쳤으나 1학기만 마친 채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다시 실업야구로 돌아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한양대로 복귀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1] 무적(無籍)선수가 되었다. 그래도 워낙 실력이 출중해서 대표팀에는 계속 뽑혔다. 이때부터 독특한 성격은 눈에 띄었고...

결국 1981년 2학기에 한양대학교에 복학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첫해였던 82시즌 주전외야수로 기용되며 무려 53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원년 도루왕이 되었고, 당대 제일의 1번타자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48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2년연속으로 도루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해태 타이거즈의 첫 우승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우승을 차지한 해태 타이거즈는 우승축하연을 했는데, 이때 연봉에 인색한 구단주와의 회식에서 선수들이 불고기를 안 먹고 불판에 그대로 올려놓은 채로 태워버리는 소위 불고기 화형식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김일권이 주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2], 야구판에서 각종 기행을 일삼아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탓인지 어찌됐건 그 주동자로 찍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구단 관계자들은 크게 화를 냈고 김응용 감독에게도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다, 이 사건때문에 구단에 찍힌 김일권은 84시즌 초반 트레이드 대상에 올라 팀에서 쫓겨날 위기까지 처했지만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야구를 그만두겠다" 라는 각서를 구단에 제출하고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지금은 선수들의 인권과 권익이 많이 신장되었지만 저 당시엔 "감히" 아랫것이 윗사람에게 대든 큰 사건이었다. 관련기사 : 트레이드 대상 金一權(김일권) 벌금·각서쓰고 팀합류

우여곡절끝에 맞이한 84시즌엔 0.241의 낮은 타율에도 4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3연패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85시즌에는 무려 50번의 도루를 성공시킨 MBC 청룡김재박에게 타이틀을 내주며 4연패에는 실패하였다.(39개 기록)

86시즌 해태에는 국가대표 3루수 한대화가 트레이드 되어 들어오는데, 이 트레이드가 입지를 흔들게 되었다. 기존 해태의 3루수는 이순철이었는데, 이순철이 외야 포지션에서도 무리없이 활약할것이라 생각한 김응룡감독은 이순철을 중견수로 전환시켰다. 이에 기존 중견수였던 김일권에게도 불똥이 튀어 코너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바뀐 포지션에서 변함없는 활약을 했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포지션 전환 후 성적이 크게 떨어져버렸다. 그나마 2할 중후반 쳐주던 타율은 1할대까지 떨어졌고 도루는 20개 정도로 반토막이 나버렸다. 87시즌엔 겨우 63경기에 나와 타율 0.229를 기록하고 말았다, 부진이 2년동안 이어지자 결국 트레이드 매물로 오르게 되었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다년간 맹활약해준 프렌차이즈 스타를 트레이드 시킨다는 것은 당시 팬들에게 너무한 처사로 비춰졌다. 하지만 직설적 성격의 김일권이 예전부터 눈엣가시였으며, 젊은 이순철이 1번타자 중견수로 성장할것이라 계산한 구단은 결국 태평양 돌핀스로의 현금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88시즌 절치부심한 김일권은 이적 첫 시즌 생애 첫 3할타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1989년 시즌엔 무려6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도루왕 타이틀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 타이틀은 김일권을 밀어낸것이나 다름없던 이순철과 경쟁하며 따낸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 이듬해에도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치며 48개의 도루를 기록하였고 통산 다섯번째 도루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불꽃이 되었다. 1991년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타율 0.151로 매우 부진하였다. 결국 36세의 김일권은 두번째엔 부활을 이뤄내지 못하고 은퇴하였다.

4. 지도자 시절

쌍방울 레이더스해태 타이거즈 코치를 거쳐 이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팀 동료였던 김재박 밑에서 코치를 하다가,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 1년만에 그만뒀다.

원래 야구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개인주의적이고(이 점에서는 장호연과 비슷) 팀 케미스트리에 해가 되는 스타일이라서 야구계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설이 많다. 도루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2003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3]를 맡다가 당뇨로 인해 2004년 9월에 자진 사임한 이후로는 다시 야구계에 못 돌아오고 있는 처지이다.

2012년 olleh TV에서 KIA 타이거즈 측의 편파해설을 맡기도 했다.



현재 아이케이코스모스라는 판촉물업체의 사장이 되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해태 타이거즈 75 282 .270 76 12 1 11 36 48 53
(1위)
45 .436 .370
1983 96 374 .275 103 13 1 6 26 45 48
(1위)
41 .364 .347
1984 62 245 .241 59 9 0 2 17 29 41
(1위)
24 .302 .309
1985 92 316 .278 88 11 4 4 38 38 39
(2위)
36 .377 .352
1986 96 258 .186 48 6 1 1 20 32 22
(5위)
26 .229 .259
1987 63 175 .229 40 6 0 0 10 20 16 17 .263 .29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8 쌍방울 레이더스 89 309 .301 93 11 5
(1위)
3 34 35 26
(2위)
19 .398 .337
1989 113 383 .261 100 23
(5위)
1 1 28 48 62
(1위)
37 .334 .324
1990 98 336 .253 85 9 1 0 27 48 48
(1위)
33 .286 .319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LG 트윈스 58 139 .151 21 1 2 0 7 21 8 11 .187 .212
통산 10시즌 842 2817 .253 713 101 16 28 243 364 363
(6위)
289 .330 .321
----
  • [1] 당시 한양대를 지휘했던 김동엽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 [2] 야구본색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김봉연김준환이 사전계획을 짜고 김일권에게 할것인가를 물어보고 김일권이 "형들이 하는데 나도 해야지" 라고 하자, 결국 실현되었다.
  • [3] 이 때에는 살이 좀 찌긴 했었다. 지금은 나이에 맞지 않게 동안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