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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last modified: 2017-09-18 14:53:59 Contributors

이름 김윤석(金允錫)
출생 1967년 1월 21일[1] , 충청북도 단양군[2]
신체 178~180cm, 68kg
학력 아미초-경남중-혜광고-동의대 독어독문학
데뷔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가족 배우자 방주란
소속 심엔터테인먼트
취미 여행, 낚시
사이트 홈페이지
미니홈피
뭔놈의 애국심이 4년에 한번씩 돌아와. - 남쪽으로 튀어 중

Contents

1. 소개
2. 여담
3. 필모그래피
3.1. 영화
3.2. 드라마
3.3. 연극
4. 수상

1. 소개

대한민국 최고의 성격파 배우. 소름 돋는 악역 연기의 최강자. 필모그래피 중 어둡고 쎈 역할을 한 작품이 많아서 심각한 역할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살펴 보면 그에 못지 않은 편안한 생활 연기도 역시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요 몇 년 간 충무로의 대표 트로이카(설경구, 송강호, 최민식)의 사이를 무섭게 비집고 치고 올라온 배우 중 한 명이다.

동의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연극회에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전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연극하던 시절에는 배우 외에도 여러 가지 역할을 다 해봤다고 한다. 특히 어느 정도 극회의 선배 위치가 되고 나서는 아예 연출, 조명, 음향, 무대까지 다 본인이 총괄로 맡아 공연을 만든적도 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연극에 푹 빠져 친구들로부터 "너 연극영화과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3]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서울 대학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상경하여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꽤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연극 무대에 오르던 당시 송강호 등의 배우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정작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 건 꽤 나중의 일(…)[4]. 연우무대에 소속되어 서울에서의 연기 인생을 시작할 당시를 본인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지방과 달리 다 모여서 작업을 하니까 외롭지도 않고 또 쉴새없이 작업이 올라가니까 그것도 좋았다고 하고, 종종 밤늦게 연습하다가 차가 끊겨서 공중전화박스에서 졸면서도 신바람이 났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동갑내기 친구 송강호와 이 시기에 자취방에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각주에 나온대로 송강호가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어 이후 지금까지도 막역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연우무대에서 활동하다가 '산울림'이나 '극단76' 등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서울에서 연극을 하다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연극을 하지?'라는 회의가 들어[5] 1990년대 후반에 연극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가 대학 극회시절 알던 지인의 소개로 라이브 재즈 까페를 운영하기도 했다.[6] 이 시기에 송강호 등 친한 배우들이 설득하여 2000년부터 다시 상경하여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윤석은 자기 연기 인생에 대해 말할 때, 종종 송강호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친 적이 꽤 있는데, 그 이후에 영화배우가 되고 나서도 송강호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어떤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는, 그 영화 프로듀서가 송강호와 아는 사이라 그가 자신에 대해 좋게 얘기해 준 적이 있을 거라 그 덕도 봤을 것 같다고.

다시 연극 활동을 재개한 김윤석은 극단 학전에서 '의형제'라는 연극을 하게 되고, 그때 함께 공연하던 여배우와 결혼할 연인 사이였던 영화감독 윤수를 알게 되어 그의 영화 '베사메무쵸'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첫 영화 출연을 시작하게 되고, 이후로 '울랄라 시스터즈' 같은 영화에도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평소 연극무대에서 배우 김윤석을 눈여겨 보던 최동훈 감독은 그가 처음으로 비중있는 조연을 맡은 영화인 2004년작 범죄의 재구성에 출연을 제안했다. 그래서 맡은 역할이 반장 천호진 주위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 형사'. 경찰서 복도에서 이문식이 그의 바지가랭이를 붙잡을 때 나오는 욕지거리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하우스 일망타진작전에서도 적절한 애드립("야 너 주머니에 손 빼 임마!")을 구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워낙 화려한 배우들로 무장했기에 이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약간 다른 얘기가 있는데 씨네타운 나인틴에서 패널 중 한 명인 이승훈 PD의 말에 의하면 원래 감독이 김윤석을 눈여겨보고 있던 건 맞지만 정작 영화 찍을 땐 까먹고 캐스팅을 안 했고 김윤석은 그냥 자기가 오디션 보고 역할을 따냈다고 한다. 나중에 김윤석이 그때 자기가 점찍은 배우였던 걸 안 감독은 굉장히 미안해하며 다음엔 큰 배역을 약속했다나? 그러나 김윤석은 그 영화 촬영 당시 최동훈이 촬영 첫날 자신의 연기를 보고 이후로 자신이 애드리브하는 걸 많이 허용해 주었고, 영화에도 그것들이 꽤 나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7] 또한 이 영화에서부터 얼굴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해 영화와 TV 모두에서 조금씩 더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2005년 KBS 드라마 부활에서 엄태웅의 복수를 뒤에서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등장하는 씬은 별로 없지만 나올 때마다 나름대로의 포스를 풍기면서 눈에 띄게 됐는데(강냉이를 즐겨드시는 '천사장' 역) 그 다음해 2006년 MBC 아침드라마 을 때 잘해에서 자신은 불륜을 저질러서 이혼해놓고 전처(배우 하희라)가 다른 남자와 사귀자 훼방놓는 남편으로 등장했고, 20%의 넘는 시청률을 올리고 아줌마들 사이에서 "나쁜 놈"으로 인식되며 인지도를 높여 갔다.[8]

'범죄의 재구성'에서 조연출을 했던 김승용 감독이 대본을 보내 준 인연으로 출연하게 된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는 알콜 중독인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했는데, 성정체성으로 힘들어 하는 아들을 패는 막장인생 아버지지만 아들의 뚝심있는 꿈 앞에서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라는 말밖에 못하고 떠나는 슬픈 부정을 리얼하게 연기해서 호평을 받았다.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는 여러 상황에서 나오지만 매번 말할 때의 감정이 달라서 의미가 있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명대사 중 하나로도 평가받는다. 김윤석은 그 대사를 할 때 주인공 류덕환이 진짜 친아들처럼 느껴져서 연기하다가 눈물이 왈칵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은 적이 꽤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그의 벌겋던 눈은 진짜 감정에서 우러나온 눈이었다고..[9]

2006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라는 작품에서 아귀역을 맡게 된다. 비록 다섯씬밖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악역으로 소름끼치는 무서운 연기를 선보여 대중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충청도 출신인 김윤석이 전라도 사투리를 매끄럽게 구사한 것도 당시엔 화제였다.[10]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어 '즐거운 인생'을 통해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그의 첫 주연작인 추격자에서 전직 형사이자 윤락업소 사장 '엄중호' 역할을 맡아 선굵고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명실상부 충무로 연기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이 작품으로 그해 각종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휩쓸었다. 무엇보다도 주옥 같은 명대사를 하나 남겼다("야! 4885. 너지?").

이후 개봉한 '거북이 달린다'에서 (영화 자체는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지만) 김윤석 자신의 존재감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충청도 지방 형사의 느물거리는 생활 연기로 기존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최동훈 감독의 3번째 영화 전우치에서 화담역을 맡아 또 다시 악역으로서 열연을 펼쳤다. 이 작품으로 드디어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했다.

나홍진 감독의 2번째 작품 황해에 ('추격자'때와 마찬가지로) 하정우와 함께 출연했다. 조선족 살인청부업자 면정학역으로 타짜의 '아귀', 추격자의 '엄중호'에 이어 여기서도 어둡고 쎈 역할. 족발뼈로 사람을 패고, 칼을 맞은 상태에서도 상대를 공격하여 죽이는 장면은 무시무시한 포스를 자아내서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 이 작품에서 능숙하게 조선족 말투를 소화했다.[11]. 또한 연변에서 현지촬영을 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촬영을 구경하던 조선족 노인들이 김윤석을 보고 조선족 출신인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겨울 배경 영화인데 워낙 촬영 일정이 중간에 심하게 늘어나, 4계절 내내 겨울설정으로 더울 때도 겨울옷을 입고 연기를 한 데다가 촬영 순서가 영화 순서와 무관하게 짜여 있어서 감정선까지 맞추느라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고생을 한 배우인 하정우[12]가 있어서..

이후 완득이에선 쎄고 어두운 연기에서 잠시 벗어나, 껄렁하고 능글 맞으나 훈훈하고 인정 많은 담임 동주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 역시 500만을 넘겨 흥행을 기록했다.

이어 2012년 최동훈 감독의 4번째 작품인 도둑들에 출연하여 전지현, 김혜수, 이정재 등을 비롯해 다수의 주연 배우들과 열연했다. 마카오중국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역할(마카오 박)이기에 이번엔 중국어를 구사했다. 영화에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극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은 바로 마카오 박이다. 영화 후반부엔 와이어를 매고 아파트 외벽을 타고 날아다니는 등 꽤나 강도 높은 액션 씬을 선보인다. 도둑들은 개봉 이후 1,290만 명의 스코어를 기록하여 마침내 김윤석도 천만 배우의 명단에도 오르게 되었다.

참고로 백윤식, 김상호, 주진모[13]와 함께 최동훈 감독의 영화(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에 모두 참여한 배우였다.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단역이었으나, 타짜, 전우치에서는 주연으로 나서 악역 연기를 했다. 공교롭게도 세 영화에서 백윤식과는 배역이 모두 적대적인 관계였다. 도둑들에 백윤식과 김상호가 출연하지 않은 관계로 지금은 주진모와 함께 유일한 배우.

2012년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바로 감독에 대한 편집권 및 지나친 간섭으로 인하여 물의를 빚었다. '남쪽으로 튀어' 촬영 당시 임순례 감독에게 감독의 편집권에 대한 월권 및 기타 행위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거고 실제로는 제작자 vs. 감독 이라는 주장도 있다. 링크.
정리하자면 김윤석을 너무 신뢰해 김윤석이 추천한 스태프를 기용한 제작자와 그렇지 않은 감독간의 알력 문제라고. 김윤석은 오히려 감독이 떠나자 난감해했다고 한다. 사실 원래 극단에 있을 때도 연출을 맡았던 적이 있어서 현장에서 연기 지도나 연출 쪽에서 의견을 많이 제시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은근히 감독들하고 의견 충돌이 있는 편이라고 한다. 영화계 뒷얘기 중에는 김윤석이 어떤 집단에서든 어느 정도의 보스기질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영역은 다르지만 사와시로 미유키랑 비슷한 케이스인 듯.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독도 여성이고 제작자도 여성이었는데 둘다 한성깔하는 인물이었다는 점.

2015년 2월 현재, 김윤석의 흥행 페이스는 전성기 시절이 무색하게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2년 도둑들로 정점을 찍은 뒤에 2013년 남쪽으로 튀어가 구설수 속에 흥행에 실패하고, 화이는 손익분기를 간신히 넘겼다. 그리고 2013년 기대작인 해무가 200만도 돌파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데다가 분량은 적지만 주연 타이틀이 올라간 쎄시봉 역시 CJ와 CGV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개봉 11일만에 100만을 간신히 돌파하였지만 느린 흥행페이스로 스크린수도 갈수록 적어져 손익분기인 300만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끝날것이 예상되기 때문. 2월 27일 기준으로 박스오피스 10위를 기록하였고 16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나 스크린 수가 날이 지날수록 100개 단위로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등은 힘든 것은 물론 170만명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이다.

2. 여담

  • 젊었을 땐 대학로에서 훈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본인도 영화배우로써도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있다고 한다.

  • 최동훈 감독의 꿈이 "송강호와 김윤석을 동시에 주연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찍는 것"이라고 하자 김윤석은 "(자신이) 송강호를 반 죽이는 역할, 송강호는 자기에게 형! 형! 하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영화가 좋다' 인터뷰

  • 최동훈 감독과의 인연은 상당히 각별한데 그의 페르소나의 위치를 꿰차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유일하게 김윤석을 컨트롤 할수있는 몇 안 되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오히려 나홍진 감독과의 사이는 썩 좋지 않다고 알려져있다. 추격자 때도 그랬지만 황해에서 여러 번 충돌이 있던지라 웬만해서 둘이 함께하는 작품은 다시 보기 힘들 거라고.[14] [15]

3. 필모그래피

3.1. 영화

연도제목활동관객수흥행
2015검은 사제들주연
2015극비수사주연
2015쎄시봉주연[16]166만명실패
2014타짜 : 신의 손조연
2014해무주연146만명실패
2013화이주연240만명손익분기
2013남쪽으로 튀어주연83만명실패
2012도둑들주연1,298만명성공
2011완득이주연531만명성공
2010황해주연216만명실패
2009전우치주연613만명성공
2009거북이 달린다주연305만명성공
2008추격자주연507만명성공
2007즐거운 인생주연126만명실패
2006타짜조연680만명성공
2006천하장사 마돈나조연
2005야수조연
2005파랑주의보조연
2005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조연
2004시실리 2km조연
2004범죄의 재구성조연
2002울랄라 씨스터즈단역
2001베사메무초단역
1994어린 연인단역

3.2. 드라마

연도제목활동
2006있을 때 잘해주연
2006인생이여 고마워요주연
2005부활조연
2005러브홀릭조연
2005드라마시티 - 주택 개보수 작업일지주연
2004드라마시티 - 제주도 푸른 밤조연
2004드라마시티 - 아나그램주연

3.3. 연극

연도제목
2006가을날의 꿈
2002밤으로의 긴 여로
2002울랄라 씨스터즈
2001지하철1호선
2001오이디푸스의 이름
2000의형제
2000아싸나체
1998모스키토
1998에쿠우스
1994생일파티
1994고도를 기다리며
1994자전거
1994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1994지젤
1993여성반란
1993국물있사옵니다
1988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4. 수상

연도수상작품
2012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대상완득이
2012제3회 한국영화기자협회 올해의 영화상 남우주연상완득이
2008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29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17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9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16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45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추격자
2008제45회 대종상 인기상추격자
2008제44회 대종상 남우조연상타짜
2008제1회 대한민국 영화연기대상타짜
2008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타짜
2007MBC 연기대상 남자우수상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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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위의 프로필과 달리, 실제 태생은 그냥 1966년생으로 추측되고 있다. 과거 김윤석이 연극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던 인터뷰를 보면 서울에 올라와서 연극할 때 만났던 배우들과의 기억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는데, 빠른 67년생인 송강호에 대해서는 '강호는 동갑인데 생일이 1월이라는 이유로 형이라고 불러줘서 고맙기도 했다.'고 했고, 역시 연극하던 시절에 만난 1966년생 유오성을 '오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빠른 1967년생을 본인은 동갑이라 생각하지만, 형으로 대우 받은, 빠르지 않은 그냥 1966년생 말띠로 보인다.아 뭐야 이거 복잡하게
  • [2] 2009년 6월 1일 '거북이 달린다' 기자간담회에서 고향이 단양군이라고 밝혔다. 단 네이버 프로필에는 부산 출생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 출신학교에서도 볼 수 있듯 소년시절부터 상당기간을 부산에서 보내긴 했다.
  • [3] 원래 전공은 독어독문학과다. 심지어 그가 다니던 동의대학교에는 연극영화과 자체가 없었다고... 부산에서는 경대에 연영과가 있다.
  • [4]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도 30대 중반의 일이고,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비중있는 조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 [5] 그의 말에 따르면, 배우는 누구나 살다보면 그런 배우로서의 삶 자체가 너무 퍽퍽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회의를 잠깐씩 느낄 때가 있는데 30대 초반이던 그때는 유독 그런 게 심했던 것 같다고 한다.
  • [6] 카페를 운영하다가 다시 연기를 한 걸 보고 운영이 잘 안 되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꽤 잘 운영되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배고픈 생활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한다.뭐지? 연기해도 잘되고, 장사해도 잘 되고.. 인생의 위너? 연기를 다시 시작한 건 오히려 '무대에 대한 배고픔'과 연극하던 지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 [7] 반면 '시실리 2km' 출연 당시에는 자신의 애드리브가 많이 편집되었다고 한다.
  • [8] 그런데 일부에서는 분명 욕해야 할 나쁜 놈인데도 더 끌린다는 반응도 있었다. 큰 키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중년에도 나쁜남자 컨셉이 기가 막히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
  • [9] 실제로 스무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서 조선시대라면아버지와 아들뻘 나이차이인 건 사실이다.
  • [10] 하지만 이후 김윤석은 이후 충청도 사투리(거북이 달린다), 연변 사투리(황해) 등을 다양하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 [11] 한국에 유학 온 조선족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 [12] 당시 하정우의 촬영 분량은 심하게 나눠져 있어서 심지어 영화상 같은 장소로 나오는 한 씬을 절반은 늦겨울에 야외에서 찍다가, 절반은 3~4개월 뒤 초여름에 세트에서 찍기도 했다고 한다. 차라리 잘못 찍어서 다시 새로 찍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계획해서 나눠서 찍은 것이라 배우는 더 힘들 수 밖에 없다. 몇 개월 전의 외모로 관리해야 하는데다가 감정선까지 다 맞춰야 하니..세트를 똑같이 꾸미려면 스태프들은 더 죽는다.
  • [13] 타짜의 짝귀 역. 1958년생 동명이인.
  • [14] 물론 의견 충돌은 있었다고 하지만 소위 '원수진다'거나 몸싸움을 했다거나 한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본인들도 부인했을 뿐더러 그 정도로 심했다면 정황상 실제로 다시 안 봐야 하지만, 황해 DVD 제작시에도 김윤석은 나홍진, 하정우와 함께 대화하며 코멘터리도 녹음했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홍진 감독과의 불화설에 대한 질문에 의견충돌 정도는 몇번 있었지만 큰 감정싸움으로 번지거나 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홍진 역시 황해 이후 '김윤석 선배는 영화연출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그가 연출하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도 했다. 물론 두 사람이 촬영 중 말다툼은 했을 수도 있고, 지금도 서로에게 가치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만족을 가진다거나 앞으로 함께 영화를 안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은 '사이가 나빠서, 원수라서'라기보다는 '성향이 안 맞아서'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 [15] 나홍진 감독은 황해 촬영 당시 배우들보다 오히려 스태프들과의 문제가 꽤 있었다는 뒷소문이 많다. 물론 폭력에 관련된 소문도 있지만 그런 건 입소문의 특성상 증폭될 가능성도 있는건데, 뒷소문에서 그보다 실제로 가장 컸던 문제는 촬영 일정을 수개월씩 늘리고 변경하기도 하면서 그로 인한 스태프들의 임금 증가 문제처리를 온당하게 안 했다는 이유원래 줄 거보다 조금 줬나?로 몇몇 스태프들이 도중에 그만두거나 심한 불만을 가졌다는 등의 뒷소문들이다.
  • [16] 배우 정우와 2인 1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