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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동

last modified: 2018-02-15 19:12:46 Contributors


2007년 두산 베어스의 초청으로 시구자로 나온 김유동.

이름 김유동
생년월일 1954년 4월 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동대문상고-한양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1982~1983)
삼미 슈퍼스타즈(1984)
청보 핀토스(1985)

1982년 한국시리즈 MVP
김유동(OB 베어스) 김봉연(해태 타이거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은퇴 후

1. 소개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정치인.
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등번호는 8번을 달았다.

2. 선수 시절

동대문상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서 뛰다가 1980년 현역 은퇴. 이후 가업인 건축회사 에서 일하던 중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1년 6개월만에 OB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원년 성적은 타율 0.245, 6홈런, 23타점으로 평범 하였다.

정작 그의 이름이 유명하게 된 계기는 1982년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주로 5번 타자로 나온 김유동은 시리즈 6차전까지 줄곧 맹타를 퍼부으며 25타수 10안타, 3홈런, 12타점으로 OB 타선을 이끌었고, 6차전에선 4-3으로 박빙의 리드를 잡은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등장, 이선희의 초구를 잡아당겨 좌월 만루포를 날리며 그 경기에서만 혼자 6타점을 쓸어담았다. OB의 원년 우승 최대의 공로자인 그는 당연히 초대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1]

이듬해 허리부상과 구단과의 마찰로 인하여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허리부상이 악화되면서 198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야구선수를 은퇴했다.

3. 은퇴 후

가락시장에서 채소도매상을 한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며 다시한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후 인천에 고기집을 차려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6년 정치판에 뛰어들어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나섰으나 낙선크리를 먹었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갔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민련으로 되돌아가기 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식당 운영으로 번 돈을 대부분 날렸다 카더라. 18대에는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며, 19대에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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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는 그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전 낮잠을 자다 꿈을 꿨는데 친구 4명과 함께 상가집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오늘 만루홈런의 예지몽 이었는듯?" 하고 소감을 밝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