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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last modified: 2017-12-28 17:00:58 Contributors

Contents

1.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1. 개요
1.2. 생애
1.3. 비판과 반박
1.4. 총평
1.5. 여담
2. 이나즈마 일레븐의 등장인물

1.1. 개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과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지냈으며 1986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에는 IOC 부위원장에 당선되었고 1993년 2월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으나 2005년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가석방되어서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다. 월간 중앙이 가석방 전에 그의 가석방을 예언하는(?) 기사를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이사항으론 태권도 10단이다. 태권도는 유도의 승단체계를 받아들여[1] 9단이 끝이지만 태권도협회 회장이면서 IOC 위원으로 태권도 세계 보급에 힘쓴 공로[2]로 명예 10단이 수여됐다.[3] 이 부분에 대해 "실제로는 태권도를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주장이 있지만, 2000년대 중반 대구은행장을 지낸 이화언 9단 등 젊었을 때 김운용 씨에게 태권도를 배웠다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박정희 대통령 때 김운용이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김운용은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실력과 수완을 겸비한 무술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2. 생애

원래는 군인 출신으로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대 학생이었던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각종 외국어에 능통해 제11대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전속부관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외교관이 되었다.

이후 국내 태권도계의 대부인 최홍희가 해외망명 후 친북성향으로 기울자 대안으로 태권도협회 회장이 되면서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후 최홍희의 국제태권도연맹에 맞서서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여 회장이 되고, 정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전세계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해서[4] 명성을 쌓았다. 국내 유일의 IOC위원이던 박종규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1986년 IOC위원이 되고,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후광을 등에 업고 1992년 IOC부위원장까지 올랐다. 이런 국제 스포츠계의 명성을 등에 업고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장까지 되면서 국내체육계를 대표한다. 이러면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게 하고, 많은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절 그의 직책은 국기원장, 대한태권도협회장, 세계태권도연맹총재,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장,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국민의 정부 때는 국회의원[5]까지 겸하게 된다.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6] 특유의 친화력과 인맥 쌓기로 스포츠 외교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크게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설'이 나왔으며, 특히 2003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모호한 태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후 "동계올림픽 유치 포기 조건으로 IOC 부위원장직 확보", "기자회견 방해", "뇌물수수" 등등 각종 구설수에 올라, 언론 및 인터넷으로 연일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국내의 모든 직책을 사임하고, IOC 위원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IOC에서는 위원장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집권 후기 무렵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으며, 특히 사마란치의 후계자로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자크 로게 前 위원장과는[7]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결국 자크 로게 측이 IOC의 권력을 거머쥔 2001년을 기점으로 김운용 세력은 점점 위축되었으며, 특히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대회를 전후로 김운용 인맥이 상당 부분 IOC에서 쇠퇴, 이듬해인 2003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는 본인까지 몰락하게 되었던 것. 이 때의 충격으로 IOC 부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투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3. 비판과 반박

김운용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첫째, IOC 위원에 국제스포츠계의 실력자이면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8]
둘째, 특히 2010 동계올림픽 유치전 당시에는 투표 전날까지 집요하게 2014년을 노리자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고 갔다.
셋째, 부정부패로 사법처리를 받았으며, 이어서 IOC의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어 이미지를 구겼다.
넷째, 안톤 오노의 금메달 강탈로 전국민적인 분노가 치솟던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이 문제를 그냥 유야무야 덮어버렸다.
즉,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30년 동안 그의 인맥을 보고서 수많은 문제를 덮어주다가 더 이상 어찌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까발려 버렸다는 것.

이에 대한 반박 역시 있는데,
첫째, IOC 부위원장 자리와 대회유치 포기를 맞바꾼다는 발상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9]
둘째, 그 때 김 부위원장이 "이번에는 안 되지만 다음 유치 때는 희망이 있다"고 IOC 내부 분위기를 전했던 것을 김진선 강원지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김운용 씨를 비난하는 여론몰이를 한 것이나[10][11] 분위기에 편승한 일부 언론이 당시 경쟁국이었던 캐나다(밴쿠버) 언론의 보도까지 인용해 김운용 씨를 비난했던 것 또한 문제의 소지가 많다.
셋째, 비록 2001년 IOC 위원장 선거 후 주춤한 면이 있긴 하나, 어찌됐든 간에 30년 동안 김 씨가 쌓아올린 국제 스포츠계의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인데,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우리가 30년 공들인 것을 스스로 내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12][13]
넷째, 2002년 김동성 사태 당시, 우리 한국 선수단에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보이콧"에 나서자, 대회 운영위원회 및 IOC에서 급히 진화에 나선 적이 있다.[14] 이 때만 해도 뒤에서 받쳐줄 김운용 부위원장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에 이런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양태영(체조), 08년 야구(특히 결승전) 등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분루를 삼켰거나 위기를 겪은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김 부위원장의 부재가 아쉬운 일이다. 안 먹겠다 침 뱉어놓은 음식 다시 곱씹게 된 셈...

1.4. 총평

정몽준FIFA 부회장과 더불어 한국 스포츠계의 국제 고위간부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결국 둘 다 씁쓸하게 퇴장하였다. 하지만, 문대성 선수가 IOC 위원이 되는데 측면지원을 하는 등 아직 국제적인 영향력은 어느정도 남아있는 듯 하다[15] 그렇긴 해도 정몽준 前 부회장은 비록 실권은 없을지언정 명예부회장으로 무난한 은퇴를 한 것과 다르게, 김운용은 정적들이 거의 뿌리까지 뽑으려 드는 모양새인데다, 애써 후임자로 발탁한 문대성 선수가 국회의원 출마과정에서 오명을 뒤집어 쓰는 악재까지 겹쳤다.

외교관 출신으로 국가적 지원을 잘 받아 태권도의 성장을 이끌어내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부 태권도인은 태권도의 발전방향에 있어서 무도, 격투기적인 면보다는 운동경기 및 보급에 더 치중한 면을 비판하며 만악의 근원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운용 이후 김연택 태권도협회장 등의 후임들이 "태권도 용어 공용화 허용"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도 든다.[16] 또 한 가지 명심할 점이, 도올 김용옥이 저서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최영의라는 희대의 무술가를 통해 세계로 발돋음한 가라데와 달리, 듣보잡 국가의 듣보잡 무술에 불과했던 태권도가 가라데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심지어 세력을 역전까지 해버린 데에는 일찌감치 국기원 중심의 중앙집권화를 꾀해 태권인의 역량을 총집결했던 김운용의 수완이 결정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스포츠가 아닌 순수한 무도를 내세우는 단체 가운데 감히 태권도나 유도의 명성과 규모에 비견할만한 단체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자.

1.5. 여담

프레이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영문명은 미키 김(Mickey Kim)이다.

프레이저 보고서에서도 Mickey Kim이란 이름으로 몇 차례 언급되는 편. 보고서의 용어사전에서는 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괄호 안의 내용은 레드북에서 나온 국내 번역판의 설명이다.

Kim Un-Yong (Mickey Kim) - Former aide to Kim Jong Pil and counselor at the ROK Embassy; later became aide to Park Choung-Kyu; head of the Korean Tae Kwon Do Association as fo 1978.(김운용 (Mickey Kim) - 김종필의 전 보좌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후에 박종규의 보좌관이 됨. 1978년 현재 태권도협회장)

외교관 경력이 있다는 것은 그가 주미 한국대사관의 참사관을 맡은 것에서 나온 것이다.

2. 이나즈마 일레븐의 등장인물


(뒷줄 맨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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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キム・ウンヨンKim Woon Yong

이나즈마 일레븐 3기와 게임 3탄의 등장인물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등번호는 8번.

보라색 머리에 붉은 피부의 뚱뚱한 체형의 거인. 한국 국가대표팀 파이어 드래곤의 선수. 미도리카와 류지가 드리블을 할 때 등장한다. 결과는 라이트닝 엑셀로 뚫림

재미있는 것은 렙파가 인물 소개에는 큰 몸집으로 상대방을 막는다라고 했는데 애니를 보면 알겠지만 상대를 제대로 막은 적은 한 번도 없고 더욱이 이 녀석이 공만 잡으면 다 뺏긴다.

-게임 프로필: 중학생으로 프로게이머. 대회 메달은 셀 수가 없을 정도.

산속성으로 자력 필살기는 나락 떨구기改, 플레임 베일, 게으름(skill), 지옥바퀴이다. 이 중에서 게으름은 자기는 경험치를 덜 받는 대신 다른 사람의 경험치를 10% 더 주는 스킬이다. 인심이 후한 좋은 친구 프로게이머로 메달을 많이 땄다는 점에서 생긴 거에 비해 머리가 비상하고 경기운용능력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능력치는 보디와 가드에 많이 있는데 박백영과 같이 골키퍼나 수비수에 갖다 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스피드와 스태미너는 미드필더로서는 영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철탑의 왼쪽으로 공을 뺏는 게임을 하는데 반드시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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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는 유도의 승단체계를 수용한 가라테의 체계를 받아들인 것이지만
  • [2] 명예 10단 수여 당시는 이미 태권도 수련 인구가 5천만을 훨씬 상회한 상태였다. 2006년 기준, 전 세계 1억 5천만 추정.
  • [3] 이 외에 에스파냐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 명예 10단 칭호를 받았으며, 1994년 IOC 총회에서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큰 몫을 한 안토니오 사마란치 前 IOC 위원장도 명예 10단이다. 특히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전 국왕은 본인의 실력으로 초단(1단) 입단한 진정한(?) 유단자.
  • [4] 친북성향의 최홍희가 캐나다에 국제태권도연맹 본부를 두고 전세계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자,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는 태권도 보급을 남북간의 체제경쟁으로 인식하였다.
  • [5]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수 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을 회고하면서 "세간의 시선과는 다르게 보수적인 인물들이 주변에 많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남북관계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자 같은 면모가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 [6]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 [7] 2013년 9월부로 마스 바흐 위원장이 후임으로 취임
  • [8] IOC 부위원장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동계 올림픽 유치를 포기했다는 루머가 끈질기게 돌았다
  • [9] 해외, 특히 서구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다. 김운용이 그 정도로 구태를 버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면, 아무리 수완이 좋다한들 30년 동안 해외 무대에서 버티기 힘들다.
  • [10]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둔 것은 당초 2010년 평창군 유치전이 실패하면 2014년 유치전에는 무주군을 밀어주기로 약속이 됐던 것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03년 유치전 실패 후 부각된 '김운용 뒷거래 스캔들'로 "다시 한 번 평창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며, 무주 유치전 얘기는 쏙 들어가다시피 했다.
  • [11] 아울러 정부에서 사실상 유치전 참가 자격을 잃어버린 무주 주민들을 달래고자 본래 경주시로 갈 분위기였던 태권도 공원을 무주에 유치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 [12]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경쟁도시 뮌헨(독일)을 38표, 안시(프랑스)를 56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1차 투표만에 개최지 선정을 종결시켜버린 압승을 거두고도, 김진선 강원지사가 부각되지 못하고, 발표자였던 나승연 씨나 김연아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과연 김 지사의 '겸양' 때문이었을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김 지사는 자신의 추측만으로 우리나라가 30년 가까이 쌓아올린 스포츠 외교 기반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죄를 지은 것이다.
  • [13] 참고로 1996년,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이때부터 대선에 나설 수도 있는 '잠룡'으로 평가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박세직자유민주연합 부총재 또한 여당 내외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이 있는 유력인물로 주목받기도 했다.
  • [14] 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피겨)가 금메달을 강탈당했는데도, "차기 개최국이 논란을 일으킬 수는 없다"는 명분으로 아무 말 못하는 대한빙상연맹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의 기사(댓글까지)를 참조해보시기 바란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40222054404705
  • [15] 문 선수 본인의 처신도 훌륭했지만, 김운용 씨가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을 만나고 예전 '지인'들에게도 지지를 부탁하는 등의 배후에서 힘을 써준 점도 무시 못한다(국회의원 출마를 고사했더라면 문도리코까지는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 [16] IOC 위원 중 그 누구도 용어 공용화를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는데 알아서 긴 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