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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last modified: 2015-12-10 17:53:0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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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소개
2. 주요 경력
3. 행적
3.1. 성장기
3.2. 대학 시절
3.3. 대학원 시절
3.4. 교수 임용 후
4. 성격 및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5. 도올의 외국어 실력
5.1. 번역가로서의 도올
5.2. 도올의 영어실력
6. 사상가로서의 그의 모습
6.1. 정치적·사회적 발언
7. 비판
8. 가족 관계


1. 소개

도올 김용옥. (1948년 6월 14일 생.)

대한민국의 고전학자, 사상가. 일부에서는 기존의 어령을 대신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문학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어령의 대외 활동이 크게 줄어든 탓도 크고, 어차피 두 사람은 연령대도 다르다. 다만 이것은 국내에만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어령이라면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일어로 발표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덕분에 일본의 대학교수 정도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이어령의 이름 석자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김용옥은 외국에선 완벽하게 무명에 가깝다. 애초에 그의 유명도는 활발한 TV출연에 기인한 것이 크다. 고전학 외에도 한의학, 연극, 시나리오, 칼럼니스트, 기자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되는 대로 건드린 건 아니고, 공부의 일환으로써 자신이 직접 각 분야에 참여해 경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철학 제2원리가 "인간의 모든 진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호는 도올(檮杌). 도올은 중국 고대 악수(惡獸)의 하나로 성질이 사나와서 싸우면 물러나지 않는다고도 하고, 또는 가르쳐도 못 알아먹고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멍청이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도올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기본적인 의미는 '돌대가리'의 '돌(石)'이지만 굳이 원전을 찾는다면 맹자라고 했다. 맹자의 말에 진나라의 역사서는 승(乘)이라 하고 노나라의 역사서는 춘추(春秋)라 하며 초나라의 역사서는 도올(檮杌)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머리를 빡빡 깎은 이유는 매일 아침 방을 쓸 때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게 귀찮아서였다고 한다.[1] 공식적인 자리에 한복을 입고 나오는 이유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고려대학교 학생 때부터 한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2. 주요 경력

1953.4~1959.3: 천안 제 3 국민학교
1959.4~1965.2 : 보성 중·고등학교 (55회)
1965.3~1967.2: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생물학과 (중퇴)
1967.3~1968.2: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중퇴)

1968.3~1972.2: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졸업
학사논문: 문학사. 버트런드 러셀의 논리원자주의

1972.3~1972.8: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대학원

1972.9~1974.6: 타이완 국립타이완대학 철학연구소
석사논문: 노자 '자연'철학 중 '무위(無爲)'의 기능(功能)

1974.9~1975.3: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정식 학생이 아니라 연구생 신분)

1975.4~1977.2 :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졸업
석사논문: 왕선산의 동론 (王船山의 動論)

1977.2~1977.7: 미국 실베니아 대학 동방학과 대학원

1977.9~1982.6: 미국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 박사 졸업
박사논문: 왕부지의 철학(The philosophy of Wang Fu)

1982~1986 :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1982년 부교수로 임용, 1985년 정교수 승진)

1990.3~1996.2: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졸업

1996~1998 : 대학로에서 도올한의원 운영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교수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유도학과 교수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 담당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
미국 뉴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 철학분과위원장
중앙대학교 석좌교수
순천대학교 석좌교수
세명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신학대학교 석좌교수

3. 행적

3.1. 성장기

유복한 기독교 예수교장로회 가정의 여섯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2]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산부인과 의사였다.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집이 부유했기 때문에 수많은 목사와 장로가 다녀갔으며, 영모함석헌을 직접 보며 자랐다고 한다. 도올의 부모는 전 재산을 교회에 헌금하고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상속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그는 중고생 때는 양아치여서 공부보다는 무술연마에 힘썼고, 등교열차에서 패싸움에 참여하거나, 학교 땡땡이치고 영화를 보러가거나, 상당한 당구 실력, 대학생 때도 술 먹고 여자기숙사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전형적인 학교 양아치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학문에도 뜻을 품었는지 이마누엘 칸트나 노자 등의 책을 독파하고, 영어공부에도 매진하여 당시 토플 성적이 전국 1위였다고 한다.

3.2. 대학 시절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고려대 생물학과를 중퇴하고 다시 목사가 되기 위해 한국신학대학(한신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의 성향상 전제가 확실한 학문인 신학보다는 무전제의 학문인 철학이 어울린다"는 은사의 말을 듣고 한신대를 또다시 중퇴하게 된다. #

중고생 때 운동을 과도하게 하다가 대학생 시절 끔찍한 관절염에 시달렸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으며 군대는 면제되었다. 지금도 건강이 악화되면 관절염이나 치주염 등에 시달린다고 한다. 당시 한의사 권도원[3]의 치료로 몸이 회복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철학체계를 수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쳐 나중에는 원광대 한의과를 졸업하고 한의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4] 그러니까 철학 때문에 한의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한의학 때문에 철학체계가 잡혔다는 뜻. 순서가 바꼈다. 위에 있는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도올이 한의대에 입학한것은 이미 철학교수로 명성이 높고 난 이후의 일이다.



3.3. 대학원 시절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외국 유학에 나서는데,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석사, 도쿄대학에서 석사,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었다. 그의 하버드 유학시절 분석철학의 거장 콰인은 학위수집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조크를 던졌던 일도 있다. 학위수집(?)에 대해 그 자신는 "학벌 때문에" "콤플렉스 때문에"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학벌이 없으면 학계에 명함도 못 내밀기 때문에 라는 뜻이지, 정치하려고 학위수입하는 사람들하고는 경우가 다른 이야기다. 도올 曰: "우리나라 하버드 나온 새끼들 중에 나라에 보탬이 된 새끼가 몇이나 있어!" 이 발언으로 순식간에 공중파에서 퇴출됐다. 다른 걸 떠나서 도올이 한국의 학벌주의를 이용해서 장사해 먹을 인물이었다면 광고도 몇 개 찍고, 대학총장도 하고, 교육부 같은 관료자리도 기웃거리고, 정치인들이랑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대선후보 캠프도 들락거리고, 국고지원 받아서 무슨 연구소 소장도 앉아보고 하는 전형적인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실제는 그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왠만한건 하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는 위치다. 이렇게 대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흠을 잡을 방법은 많다. 하지만 도올은 한국의 학연, 지연, 혈연 문화를 끔찍히 싫어하기 때문에 각종 동창회에도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타이완 유학 시절에는 타이완으로 유학 온 정통 유대인과 붙어 다녔는데, 이 친구를 통해서 유대교와 유대인의 문화를 철저하게 느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예루살렘 성전 폐허에도 가까이 안 간다고 한다. 옛 지성소 터에 들어가면 야훼에게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 유대인 전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도올이 한국기독교의 구약적 성향을 지독하게 비판하는 것.

사실상 젊은 시절을 해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생활과 사고의 방식이 한국인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나는 면이 있다.

3.4. 교수 임용 후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고려대 철학과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이때 학생들과 함께 최루탄을 많이 마셨고, 사실상 시위를 위해 조직되는 각종 학생모임의 지도교수를 여러 개 겸직했다고 한다. 이후 1986년 직선제 개헌, 언론 사상 표현 자유등을 요구하는 고려대 교수들의 시국 선언문에 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비난을 받은 후[5] '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교수직을 버렸다.[6] 그런데 이때부터 고려대와는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린 듯하다. 정교수 시절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했고, 모교인 고려대를 사랑해 헌시도 몇 수 지었건만, 자기가 교수 직함을 버리고 나왔는데도 그가 걱정되어 격려차원에서 고려대 측에서 와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복귀는 커녕 초청 특강의 형태로도 아예 고려대에 발도 못 들여놓게 하려고 했다는 것.[7] 거기다 한의학을 배워보려 경희대 한의학과를 지망했으나 양심선언한 것이 걸려 대학 측에서 난색을 표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래서 다음 서열의 한의대인 원광대학교 한의학과에 진학했다. 최근까지도 고려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2011년에 드디어 고려대에서 강연초청을 받아 한 차례 강연을 했다.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용인대학교, 뉴잉글랜드복잡계연구소 철학분과위원회, 중앙대학교, 순천대학교, 원광대학교 등에서 교수 등으로 활동하였고, 문화일보중앙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들 중에도 보수우파적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자직도 그런 친구들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 당시 신문기사는 중앙일보 편집장이 식겁할 내용이 많았다. 조중동과 반대 성향에서 일하는 몇몇 언론인들이 도올을 욕하다가 도올이 쓴 기사를 보고는 침묵했다고 한다.

2011년에는 한국신학대학교에서 명예학사졸업장을 받고40년만에 졸업, 석좌교수로서 동양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목사가 될 학생들이기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업의 시작과 끝에는 열렬한 기도(…)를 한다고 한다.

4. 성격 및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도올의 등장은 한국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애초에 도올은 외국에서 공부하다 왔기 때문에 국내에서 선후배 관계 같은 것이 별로 없었고, 본인도 그딴 거에 신경 안 쓰는 편이라, 사정없이 말을 갈기다가 여기저기서 상당히 욕을 먹었다. 특히 상당수의 한국학자들을 순식간에 일본학자 짝퉁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과거 한국학계는 일본의 연구성과를 표절한 경우가 많았다.[8] 애초의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실력 있는 학자들이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게 싫어서 당시에 강의 초청이 들어와도 수백 명의 청중과 당시 돈으로 거금인 100만 원 정도의 초청료가 없으면 초청을 안 받는다고 공표한 적도 있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젊었을 때는 자신을 깔아뭉개려는 자들 때문에 더더욱 거칠게 맞불을 놓는 행동을 했고, 그만큼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이런 일들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고 한다. 환갑이 넘고 나니까 한국의 어디를 가든 사회적으로도 존중을 받는 위치가 되었고, 자신도 철이 들어서(?) 과거보다는 얌전하게 살 수 있게 되었고, 글도 예전보다는 정갈하게 쓰게 되었다고 한다. # 물론 얌전해졌다고는 해도 보통 학자들보다는 훨씬 발랄하다.

원래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매우 안 좋게 생각했는데, 어차피 텔레비전이 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온 이상 자신이 텔레비전에 나와버리겠다고 생각하고 TV 강의에 출연하여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강의 중 시청률이 10%가 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고 싶다면, 인문학, 특히 철학 관련 강의나 서적이 한국에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김용옥 특유의 발음과 어투를 패러디한 개그프로(KBS출신 개그맨 최형만)가 있었을 정도로 강의할 때 정말 열정적이다. TV 강의 이후로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는데, 당연한 이치지만 원래 많았던 안티가 이때 좀 더 늘었다.

노자 강의를 할 때 도올의 해석이 틀렸다면서 각지에서 한문도사(…)들이 너도나도 책을 냈으나 다 묻힌 지 오래다. 중국고전학이 얼마나 후루꾸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그리고 2007년 이후로는 인터넷 강의까지 영역을 넓혔다. 본인은 TV강의보다 인터넷 강의가 훨씬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사이트는 여기. 이 사이트에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학문을 축적해놓고 죽을 생각이라고 한다.

도올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대중적 활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도올 본인은 대중과의 소통이 없는 학문은 문명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액세서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

예를 들어 헤겔 연구가들은 헤겔철학을 완전히 분석해서 대중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언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러한 시도를 아무도 안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이 헤겔을 이해했다는 프라이드 때문에 대중들에게로 내려가려 하지 않고, 헤겔의 봉우리 위에서 대중들더러 올라오라고 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 도올 본인은 쉽게 이해되지 않은 언어는 그냥 개소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막말로 헤겔철학도 그냥 개소리라고 일갈한다. 물론 헤겔 철학의 성과는 충분히 존중하지만, 헤겔이 말을 너무 꼬아놨다는 것. 원래 독일학자들은 자기 고유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말을 복잡하게 하는 경향이 강한데, 헤겔의 경우는 그게 특히 심해서 헤겔사전(?!)이 없으면 독해가 안 될 지경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도올은 헤겔 같은 철학자보다는 쇼펜하우어,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을 더 좋아한다.

도올은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편이다. 사실 인터넷 댓글전쟁이 왜 일어나는지를 생각해보면 매우 현명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안 듣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궁금한 게 있으면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직접 강의 중에 질문을 하면 다 듣고 답해준다. 도올의 저서를 보면 누구한테 이런 내용을 배웠다, 누구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외국에 이런 학자가 있다, 좋은 학자가 있는데 책 사서 읽어 줘라는 등의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고, 언론에서 시끌벅적한 부분만 알려지고 있는 것.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괜히 인기를 끌고 있는 도올을 그냥 욕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도올 본인은 이쪽 방면으로는 내성이 강해서 끄떡 없는 듯. 인터넷 강의 중에도 "나는 리플을 안 읽으니, 악플로 아무리 지랄해도 소용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과격한 발언 중에는 자기 자랑을 하는 부분도 꽤 많고, 고매한 이야기를 너무 간단하게 툭 말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문의 영역의 경우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말을 원래는 이 말은 이렇게 쉬운 뜻임 식으로 해설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悟性)'이라는 표현은 그냥 이해력이나 비슷한 개념을 의미하는 'understanding'을 번역한 것인데, 이때 번역하는 놈들이 괜히 있어 보이려고 오성이랍시고 번역했다는 것. '깨달을 오(悟)'자라는 것만 생각해도 답은 나온다.[9]

오성이라는 번역은 19세기 일본 학자들의 번역으로서, 당시 동양학자들은 서양사상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그럴싸해 보이는 용어로 번역하려고 했고, 오성과 같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번역어가 남발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냥 오성이 대단한 건가 보다하고 착각하는 학자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아 그런 거였구나" 하고 듣지만, 해당 분야에 있던 학자들은 "잠깐!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뭐가 되냐?"가 돼버린다.[10]

그러나 저렇게 발끈하며 거품 무는 사람들은 도올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을 띠껍게 여기는 경우고, 학계나 문화계, 종교계 등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는 도올을 가지고 뭐라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도올이 나이를 먹으면서 원로격이 된 후로는 아예 자잘한 태클들은 거의 사라졌고 학계에서도 그를 대접해주는 분위기인데다, 도올이 대학이나 개인적으로 가르친 제자들도 여기저기 많기 때문에 도올 자신도 예전처럼 식겁할 만할 발언은 안 하는 편이다.

예전 신학 논쟁 때도 도올을 불쾌하게 생각한 신학자들은 도올의 말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며, 일도양단으로 자신이 최종결론을 지었다는 듯한 태도는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도올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비판한 일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비판한 사람은 소수이고 # 나머지는 글도 제대로 안 읽어보고 대충 꼬투리만 잡아 쌍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도올은 교회중심의 기독교를 비판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도올의 말을 들으면 결과적으로 헌금이 줄어들게 된다. 이국헌 목사의 비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답변을 했다. # 한신대가 진보적 입장이기는 해도, 한신대학교 석좌교수가 된 것만 봐도 그가 신학계에서 배척만 받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보수교단에서는 그런거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기독교집안에서 집안망신 시킨다고 까기만 한다

5. 도올의 외국어 실력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강연을 할 수 있으며 여러 차례 강연을 했다. 도쿄대학의 경우는 일본어 배운 지 4달 만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 외에 철학자의 기본(?)과도 같은 독일어도 원서를 읽을 정도가 된다. 철학 고전 텍스트와 용어들이 독일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서양철학을 전문적으로 학위 단위 이상으로 공부한 사람이면 독일어 원전에 대한 번역은 어느 정도 이상은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철학과 학부과정에서도 독일어 원전 해석이 보통 텍스트 강독 관련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11] 고전학자답게 고대 그리스어도 사전을 보면서 읽으면 원전 독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성서 번역도 원전 어학실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요한복음 강해'에서 희랍어 원전과 영어 RSV(Revised Standard Version) 성경 판본을 토대로 이를 국문 번역하고 주석을 달은 바 있다.
또 고대 인도산스크리트어도 사전을 보면서 읽으면 원전 독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도올은 그의 저서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에서 산스크리트어 시대의 지역어인 팔리어 삼장을 원전 관련 주석으로 활용했다.

5.1. 번역가로서의 도올

그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번역이었다. 국내 학계에서는 확실히 번역을 제대로 안 쳐준다. 오죽하면 번밀레라는 속어까지 있겠는가.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어학실력부터 길러야 하고 지리한 번역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실속은 없으니, 기존학계에서는 그냥 초짜들이나 하는 짓 정도로 생각하고 대부분 논문만 써내는 실태다. 도올은 한국에 귀국했을 때부터 주요 고전이나 국내 과거 문헌들을 전부 한국어로 번역해야 국학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저서의 상당수는 고전 번역이며, 현재 주력하고 있는 일도 13경 등의 동방경전을 역주하는 작업이다. 그의 번역은 두루뭉술하지 않고 명료하다.

도올이 한창 TV강의로 유명해졌을 때, 도올의 번역이 일본학자의 번역을 표절했다던가, 번역이 틀렸다면서 책을 내놓은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현재는 전부 묻혔다.

5.2. 도올의 영어실력

도올의 집이 워낙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한국에 봉사활동하러 온 미국 대학생이 도올의 집에 머물었는데, 이때 원어민과 몇 년을 함께 살면서 자주 영어로 대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프니까 꼼짝없이 집에서 미국 대학생 앞에 앉혀 놓고 원어민강사와 회화공부만 한 셈.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공부 자체는 그 전부터 토플 1등이었다. 미국유학 때는 일기도 영어로 쓸 정도로 모든 책을 영어로 쓸 생각을 한 적도 있었으나, 하버드 박사 학위 취득 후 "이제는 한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어로 글을 써봐야 영어에 보탬되는 일이므로 철저하게 한국어로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도올은 스스로 "한국에서 나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한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한다"는 직설적인 발언을 몇 번 했다. 도올이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의사소통을 가장 잘 한다'는 말이 아니라 '외국어에 담겨 있는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가, 외국인이 전혀 이질감 없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쓸 수 있나'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도올이 영어로 대화하는 게 보고 싶다면 이 동영상을 보라. # 주한 미국대사와 1시간 동안 5.18 등 매우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통역 없이 공식적으로 대담한 것이다.[12][13]

도올이 영어로 저술한 문헌은 거의 없으므로 도올 본인의 영어 작문 실력은 정확히 알 수 없다.[14]

6. 사상가로서의 그의 모습

도올 본인은 자기 사상의 기본은 도가철학과 중용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물론 동양철학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서양철학이나 인도철학 등도 열심히 공부했으며, 모태신앙인 기독교의 신학 역시 공부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나눠서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폭넓게 여러 사상을 종합하는 입장이다. 그의 동전고전번역을 봐도 니체, 라캉, 하이데거, 데리다, 촘스키 같은 인물들이 인용된다.

도올은 자신의 철학체계를 기(氣)철학 또는 몸철학이라고 부르는데, 도올의 여러 서적에 기철학이 무엇인지 설명되어 있고,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라도 그의 사상경향이 어떠한지는 그의 책을 읽어보면 대강 알 수 있다. 80년대에 기철학의 2가지 원리를 말하고 있으니,

1. 인간의 모든 진리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몸)에 구현되어 있다.
2. 인간의 모든 진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2012년에 나온 "사랑하지 말자"라는 저서에 그의 사상이 압축적으로 다 나와 있다. 도올의 사상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독파해 보면 대강 알 수 있다.

서양철학에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정신과 육체, 본체와 현상의 문제의 경우 기철학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氣)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체와 현상처럼 근원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중세 기독교신학 등은 철저히 거부되고, 사실상 서양철학 전반에 신화적인 요소가 깔려있다고 본다.

간단하게 그의 학문적 성향을 요약하자면, 유교불교크리스트교든 제도화되고 권위가 붙기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를 중시하는 편이다. 유교에서는 송나라 이후에 성립된 성리학 체계를 따르지 않고, 불교도 원시불교와 제도권과는 거리가 먼 불교를 중시하며, 크리스트교 역시 크리스트교 이전의 예수운동을 존숭하며,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이른바 정통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다양한 크리스트교의 사조[15]들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편이다.

또한 도올이 한국 역사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 실학과 관련된 문제였다. 한마디로 실학이라는 개념은 허구적 개념이라는 것. 성리학=전근대의 도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근대로 이행되기 위해 전근대적 학문을 극복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 도식에 끼워맞추려고 실학이라는 허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실학자라고 표현되는 조선후기학자들도 알고 보면 성리학의 틀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

애초에 도올은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성리학=전근대학문이라는 생각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굳이 근대적 학문을 말한다고 해도, 왜 성리학이 근대적 학문이 못 된다는 거냐?라고 반문할 정도. 2012년에 나온 도올의 책 '사랑하지 말자'를 보면 인류의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칸트는 이황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칸트의 선험적 선의지라는 것이 퇴계의 이발(理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모더니즘)라고 하는 것의 종착점은 양대 세계대전이었고, 서양은 근대의 오류를 고치기 위해 제3의 대안을 내놓았는데 그게 나치즘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는 섣부르게 대안을 내놓지 않고 그냥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변형만 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런 서양의 조류를 따라갈 게 아니라 그냥 원래 우리 밑천인 우리 전통을 제대로 배워서 재해석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일단 확실한 건 그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다는 것과 자신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상당한 논란이 되었던 요한복음, 도마복음만 해도 이미 세계적으로는 활발하게 연구되는 주제인데, 한국교회의 보수성으로 말미암아 쉬쉬하며 넘어갔던 것을 도올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국내 일부 신학계에서는 논의되고 있었으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도올이 처음.

성서무오설을 비판한다든지, 태권도 발전과 형성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태권도가 원래 가라데에서 출발한 것이었음을 입증한다든지[16] 하는 내용도 학계에서 다들 알면서 쉬쉬하던 걸 도올이 까발린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다보니 각종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는 운명. 몇 번 테러를 당할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등과 친분이 깊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논어강의 때 출연한 적이 있고, 법정 스님은 도올의 금강경 강해의 서문을 써준 적이 있다. 숭산 스님과도 친구 먹은 적이 있고, 요한복음강해 이후로 김경재 교수와 교류하고 있으며, 80년대부터 불교사전을 만들어오고 있는 지관스님과도 친분이 있다. 여담으로 지관 스님이 불교대백과사전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내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도올은 방송에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여러번 안타까워했다. 이게 국내 학계의 현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의 라틴 - 한글 사전도 창덕 신부가 몇 십 년을 작업하시다 결과물을 못 보고 돌아가시고 후학들이 완성했다. 사전은 학문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에 도올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와 만나 대담을 나눈 적도 있다[17].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청와대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대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하고는 동창이며 그래서인지 나이차가 있음에도 서로 반말하더라. 흠좀무[18]

국악의 경우도 고려대 철학교수 재직시설 농악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또한 대충 국악계 인사들과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19] 빈민가 월세집에 살고 있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 명인들을 직접 방문해서 음악을 배우거나 그들의 생계를 도와주거나 하면서 정말 구체적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그 명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

알게 모르게 제자들도 상당히 많다. 대학교에서 가르친 경우도 있고, 과거 도올서원을 운영하면서 가르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오항녕, 원더풀 데이즈의 음악감독 원일[20], "8체질 의학의 원리"를 쓴 현재 주원장한의원 원장 주석원 등.

지금까지 그가 저술과 방송강의를 통하여 던져놓은 논설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도덕경은 개인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21]
  • 국불교는 지배권력과 결탁한 불순한 전통일 뿐이다.
  • 조선후기의 실학이라는 개념은 완벽한 픽션에 불과하다.
  • 서양근대를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 우리가 서양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과학, 민주주의, 자본주의 3가지 뿐이다.
  • 성리학은 충분히 근대적 학문이라 부를 수 있다. 단지 자연과학이 부재했을 뿐이다.
  • 조선말의 혜강 한기, 수운 최제우는 사상은 서양의 근대사상에 필적한다.
  • 우리민족은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었다. 우리민족의 비극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다.
  • 분단된 나라는 독립할 수 없다.[22] 독립운동사는 현재진행형이다.
  • 예수는 인간이며, 야훼를 거부했으며,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는 지혜로운 (랍비)일 뿐이다.


진중권이 예전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도올이 주체사상과 관련하여 한 말에 대해 심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23] 진중권이 대중만을 선동하여 지식권력을 획책하려 든다고 "미시적 파시즘"이라고 도올을 까내리는 한편, 도올에게 있어서 진중권은 듣보잡(…)이다. 진중권이 누군지도 모르는 모양. 하긴 인터넷을 안 하니까…[24] 물론 도올이 주체사상을 완전하게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스탠스는 2007년 10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성자립과의 대화에서 대략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아래 내용 참고.

도올의 글은 보통 서론이 길다. 특히 번역의 경우 서론이 길어진다. 꼼꼼하게 배경설명, 판본문제, 역대 해석의 문제 등등을 설명하다보니 그렇게 되는데, 서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논문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다. 예전 책에는 각주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각주나 미주 없이 그냥 본문으로 다 풀어서 설명하는 스타일로 변했다. 인용한 책은 뒷부분에 인용목록으로 제시하고, 간략하게 그 책에 대한 설명하는 식. "주석서라는 서물의 성격상 일일이 주 달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라고 말하는 거 보면 도올 자신도 일일이 각주를 달지 않은 것에 대해 선학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

어차피 오늘날 한국은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옛날처럼 고고하게 책만 쓴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독서가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기 때문에 칸트 같은 사람이 책을 쓰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읽혔다. 게다가 구한말의 동무 이제마도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이 조선의 병폐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은…

앞서 언급했듯이 도올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리 고매한 학문이라도 문명의 악세사리로 그치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도올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스스로를 대중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신도 너무 저술을 대중적으로 하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현재는 예전보다 전문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편이다. 일단 책이 두껍고 비싸졌다.

이외에도 연극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임권택의 《[25], 《장군의 아들》, 《화선》이 그의 시나리오. 홍상수른 나라에서에서도 출연한다. 연극에도 관심이 깊어, 극단 미추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제작비를 지원하기도 했다.[26] 심지어 전인권, 한대수록 콘서트까지 했다. 흠좀무. 한대수와의 콘서트에서 발표한 노래 제목은 청춘과 록. 모티프는 한대수의 《호찌민》. 한번은 안성기와 함께 패션쇼에 사진이 나왔다. 그런데 시선이…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음악 애호가이기도 해서 대학로에 있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재즈피아노과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종종 자신의 철학 세계와 재즈음악을 연관시켜 강의하기도 한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6.1. 정치적·사회적 발언

상당한 중대사에 대해서도 그냥 자신의 생각을 내질러서 파문을 일으킨 적이 많다.

우선 이승만의 경우는 아주 악랄한 인물로 평가한다. 이승만은 무슨 조직에 들어가기만 하면 분열을 획책하며 조직의 지도자 자리만 차지하려 들었고, 결국 이런 식으로 대통령까지 해먹었다는 것. 도올은 20세기 한국의 대통령들을 왕조시대 군주의 연장으로 해석한다. 북쪽은 말할 것도 없고

김일성의 경우도 독립운동은 열심히 했고, 젊은 개혁자의 이미지도 있었으나, 결국 자기 야욕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만 남긴 인물로 평가한다. 도올은 한국전쟁을 단순히 남침이다 북침이다로 따지지 않고, 이승만과 김일성의 콤비플레이(…)로 설명한다. 결국 전쟁 결과 이승만도 살고 김일성도 살고 박정희도 살고, 사람들만 죽어났다는 것.

박정희는 20세기 한국사의 모든 왜곡이 한 몸에 구현된 인물로 평가한다. 그냥 독재자다, 경제발전 잘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냉전질서, 산업화, 민주화 등을 거치면서 일어난 추저분한 한국의 역사가 박정희라는 개인으로 상징된다는 것. 물론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정신이 제대로 됐다면 만주에 가서 독립군에 들어가야지 어떻게 한 자리 해 먹겠다고 일본군이 된단 말이냐"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전두환은 거의 쌍욕 수준으로 비난한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처형을 언급하면서, "서양에서 민주주의는 왕의 모가지를 짜르면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찰스 1세, 프랑스루이 16세[27] 하지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아직도 군주국이다?

노태우가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칭송(?)하는 글#을 썼는데, 가만 보면 실상은 "당신 친구 금남로에 데려다 놓고, 자식 잃은 할머니가 초리로 피떡이 되도록 때리게 한 뒤, 당신도 그 회초리에 뒈지게 맞아라.", "민중의 신의를 배반하지 마라."라는 글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고문으로, 분신으로 스러져간 민주투사의 눈에서 본다면야 얼마나 하찮은 용기로 보이랴마는'이라는 문구도 나온다.

김영삼은 언급도 안 한다.

김대중의 당선에 대해서는 사실상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한국에서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것이 김대중 개인을 긍정적으로 평한 것은 아니다. 임기말 아들들의 비리가 드러나자, 티비 강의 중 "아들 관리를 못했다"고 질책했고, 대통령으로서 민주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이 당선되었을 때도 그를 칭찬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으나, 이후 그가 "대통령 못 해먹겠다" 발언을 하자, "대통령 노릇 못 해먹겠다고? 우리도 국민 노릇 못 해먹겠다!"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고#, 새만금을 막았을 때는 욕설을 퍼부으며 "영원히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했다. 노무현이 탄핵당했을 때는 당연히 탄핵을 획책한 무리들을 욕했지만, 도올은 전반적으로 노무현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국민들이 진보적 열망을 가지고 그를 뽑아준 것인데 그 스스로 그런 열망들을 좌절시켰다는 것. 그의 저서 《사랑하지 말자》에서 "자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CIA한테 총 맞을 각오는 왜 못 했나?"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실패가 이명박 정권을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CIA 음모론에 가까운 발언에서 보듯 미국 등 서구를 악의 축으로 매도하고 반미주의를 외치기도 했는데, 자식들은 모두 미국 유학 보냈다고 비판 받기도 했다. 정확히는 그의 언변 가운데 자극적인 부분들이다. 자기도 유학갔는데, 반미와 미국 유학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이오?

한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처음으로 방북한 이후로 이후 TV에서 김정일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실상 그 강연을 보면 개성을 통과하는데 《트루먼 쇼》 실사판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려고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북한사회를 매우 불편하게 보는 발언을 많이 했다. 방북 중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성자립이 주체사상을 이야기하며 당이 인민을 지도하는 리더십의 정당성이 수령에게 있다는 식으로 항변하자, "수령의 리더십의 정당성은 누가 체크합니까?"라고 반박하여 총장이 화를 냈다고 한다.A:세상은 신이 만들었어. B:그럼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A:이 ㅅㅂ놈이!? 그러나 자기가 도올 김용옥이라는 것을 밝히니 태도가 급격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관련 기사

고려대 동문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단군 이래 이런 지도자가 없었다. 연산군보다 악랄하다." 일찍이 폭력으로 국민을 해친 경우는 많았고, 이러한 폭력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정당한 항거를 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명박정권의 경우는 소송, 언론, 조세 등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을 물먹이고, 공기업과 국민의 혈세를 자기들 사유재산으로 집어삼키는 유래없는 야비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는 짓이 너무 교묘하다보니 국민들의 도덕성도 마비되었고, 뭐가 잘못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비판한다.

2010년 5월 23일 서울 봉은사에서 '코뿔소 외뿔처럼 홀로 가거라: 동서화통의 깨달음'이라는 특별강연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날 불러주는 데가 없다. 한국은 알아서 기는 놈들이 많다.", "보수를 찍어놓으면 일처리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았더니 완전 개판이다!" 등등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이 강연에서 노무현의 새만금도 언급하면서 "새만금을 막아서 대운하니 4대강이니 하는 짓도 할 수 있게 된 거다. 노무현은 무덤에서도 반성해야 된다."라고도 말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에 실망한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아줬는데 이렇게 개판을 치면 남는 건 좌절뿐." "여러분은 어디가서 이런 말 하지 마라. 잡혀간다." "나도 이러다 깜빵 가게 생겼다."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안함 피격 사태와 관련하여 '북한 소행'이라는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며 "정말 웃기는 개그"라고 정면 비판(출처 : 오마이뉴스)했다. "패잔병 새끼들이, 계급장이나 떼고 나오던가,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국민을 겁주고 있냐? 일본 사무라이였으면 할복했어야 했다." 이 발언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으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신유철 부장검사)에서 무혐의 처리되었다. 사실 표현이 과격해서 그렇지, 발표를 못 믿겠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 정부의 발표를 못 믿겠다는 것이지, 북한을 옹호하거나 찬양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봉은사에서 한 말을 곰곰히 곱씹어 보면, 자기는 어디까지나 '철학자'로서 생각하는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러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미국 개입설 이런 것들은 전부다 컴퓨터(인터넷)에서 떠드는 음모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말도 나오는 걸 고려해보면, 이 점 역시 표현이 다소 과격해서 오해를 빚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격하다지만 패잔병 운운에 사무라이처럼 할복하라는 둥 하는 소리는 매우 부적절했다. 애초에 휴전협정 체결해놓고 어뢰 쏜 북한이 죽일놈이지 정정당당하게 싸우다 침몰한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패잔병 운운에 어디 일본군도 아니고 침몰당했다고 할복을 했어야 한다는 말에는 뭐 할말이 없다. 기습공격에 침몰 당한게 잘난 일은 아니지만 진주만 터지고 미군 장군들보고 할복하라는 말 나왔던가. 일본군의 주요 패인 중 하나가 지거나 포로가 된 아군들에게 쓸데없이 가혹한 데에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서 설득 안된다고 한 것도 무슨 증거로 그런 것인지...

EBS 중용강의가 진행되는 중 돌연 EBS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방송 중단을 통보했다며 광화문에 나와 1인 시위를 했다. 이후 EBS는 도올이 계속 비속어를 사용하고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적 발언을 했다면서, 자신들은 방송중단 통보를 한 게 아니라 상의를 했던 것이라는 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실제 방송을 보면 알 수 있지만, 2011년 중용강의는 도올 강의답지 않게 비속어나 과격한 표현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자신들이 심의에서 다 걸러서 방송에 안 나간 내용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니 상식적으로 EBS의 입장이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인 게 사실. 김용옥 "미친놈들…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김용옥은 이후 나는 꼼수다 26회에 출연해 자신의 강의가 중단된 것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나는 꼼수다에서 김용옥은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며 "아니 어떻게 단군이래 이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는가" "국민들 돈 30조나 되는 돈을 강바닥에다가 처박는 미친X이 어 딨어!"라는 발언은 해 나꼼수 멤버들을 뒤집어 지게 만들고, 화려한 말빨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멤버들에게 '이빨 0호' '한국 최강의 이빨' 호칭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EBS는 끝까지 방송하겠다며 GG를 선언했다.

그 이후 다시 한 번 나는 꼼수다 호외9에 출현, 2012년 18대 대선에 대해 말했다. 박근혜가 사실상 대선의 승리자라고 언급하면서도, "적당히 이미지만 잘 꾸미면서 자기 당의 선거만 도왔을 뿐이지 나라를 위해 정의로운 발언을 제대로 한 번도 안 했다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느냐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선 때는 대운하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면서 이명박 정권 내내 4대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했고, 그냥 가만히 이미지 관리만 하면서 대권을 받아먹었다는 것. 박근혜가 당선되면 결국 박근혜 주위에 몰려든 무리들이 적당히 해먹는 환관정치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세월호이후 박근혜를 규탄하는 기고를 적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5544.html?_fr=mt1r

민주통합당의 여러 대선후보들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문재인은 사람은 맑으나 노무현이라는 틀에 갇혀있다 평했고, 손학규는 콘텐츠가 강하지만 열정이 부족한 편이라고 평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서로 격려하며 분위기를 올려나가야 하는데 그런 식의 단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에 대해서는 대선의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으며, 안철수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라는 게임의 룰을 바꾸려고 하는 처절한 열망에서 나온 현상으로 평했다. 안철수가 당선되는 편이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오면서 정치판이 근본적으로 개혁될 수 있기 때문에 안철수 쪽으로 단일화되는 것이 낫다고 보지만, 민주당의 후보로 단일화되려면 안철수를 포용할 만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그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 광고 그리고 중간중간에 가카를 신랄하게 디스. 게다가 방송말미에는 마이클 샌델은 자기랑 게임도 안 되는 놈인데 책만 잘 팔았다고 깔때기를 대셨다.(…)

이외에도 미국식 대통령제가 오히려 거대한 국가권력을 효율적으로 장악하여 말도 안 되는 전횡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식으로 현행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낼 때도 많다. 물론 현재 민주주의 체제 말고 다른 대안이 딱히 없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제도를 발전시켰는데도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제도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것.

7. 비판

  • 김용옥이 철학이라는 학문적 영역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업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서 대해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TV에 많이 출연하고 베스트셀러도 내서 유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학문적 업적이 무엇인지를 논하기 시작하면 무척 애매해진다. 일단 그가 자신의 철학체계로 내세우는 소위 '기철학'의 학문적인 토대를 놓을 만한 서적이 하나도 없다. 고작 대중 서적에 자신의 기철학에 관한 아이디어를 적어놓은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까 그의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연구 논문을 쓰는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김용옥의 철학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논문이 실질적으로 전무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이다. 아니, 각종 논문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강단을 뛰쳐나와서 '철학의 대중화'에는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기철학이 가미된 '한의사' 도올에게 진료받았다는 기사를 보면, "폐는 곧 금(金)이야. 넌' 폐가 쎄니까 금(金) 기운이 승하단 얘기야. 그럼 쇠붙이가 좋겠어, 안 좋겠어?"라며 시계나 벨트에 있는 쇠붙이도 다 몸에서 떼라고 했다는데, 과연 의학과 결합된 그의 기철학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잘못 진맥해서 위중한 상태에 빠졌던 일을 공개강좌에서 밝힌 적도 있는 걸 보면 한의사로서의 실력은 좀 불안한 듯. 단 이 항목에서 중점적으로 논하는 것은 한의사로서의 김용옥이 아니므로 부차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 나이가 들면서 점점 대중을 선동하는 언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원래 그는 자극적인 수사법을 애용하며 그것이 또 대중에게 어필하는 면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제 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과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위의 천안함 피격사건에 관한 것만 해도 결국 북한이 한 게 맞는 지금은 개그니 0.0001%도 설득이 안되느니 철학 같은거를 전공했으니 파괴역학등 공학으로 분석한 보고서 이해능력이 전혀 없는거 아닌가? 만만한게 북한이니 하는 말이 굉장히 우습게 되었고 최근 세월호 침몰사건때도 많은 국민들이 정권에 실망하고 등을 돌린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대통령은 하야하라!"라는 마치 난세의 격문같은 글을 쓰는 지식인은 김용옥 한명뿐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그가 정작 1987년 6월 항쟁때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침묵을 지켰으며, 고려대의 동료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할 때에도 그는 끝내 참여를 거부했다는 점이다.(그것이 그가 고려대를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허나 주체철학의 논리적 모양새만 가지고 말한다면 그것은 20세기 인류가 탄생시킨 가장 합리적이고 아름잡고 잘생긴 철학체계 중의 하나라고 자부하며 그러한 철학을 만들어 나간 조선 인민의 슬기에 나는 경외감을 표한다."란 발언을 한 것은 여러모로 흑역사. 위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진중권은 그가 파시스트의 면모를 보인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 마광수 교수는 도올이 박학다식하지만 매우 권위지향적이며 대단히 수구적인 보수주의자요, 조선조 양반문화의 향수병에 걸려 있는 ‘복고적이고 회색적인 지식인’이라고 크게 비판했다.

8. 가족 관계

  • 중국어 음운학 전문가인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최영애 교수와 부부이다. 참고로 최영애 교수는 지난 2011년에 정년 퇴임했다. 타이완대학교에서 유학중이던 1973년에 대학원 선후배 사이로 만나서 첫눈에 반해 3개월 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부인이 김용옥 교수보다 2년 연상이다. 두 사람이 모두 어학 전문가인 까닭에 중국어 고전을 부부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C.K.System'이라는 중국어와 일본어 표기법 체계를 함께 고안하기도 했다.
  • 배우 김응수와 본적이 같다. 정확히는 광산 김씨 항렬 상 김용옥이 김응수의 삼촌 뻘이다.
  • 도올은 슬하에 큰 딸, 둘째 아들, 막내 딸을 두었다.
  • 도올의 막내 딸인 미루는 사진작가인데 2011년 돼지우리에서 누드돼지와 같이 사진을 찍어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다. # 원래 김미루는 예전부터 활동해 오던 작가였다. 도올은 딸이 누드로 사진을 찍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했으나 2009년에 아버지도 못 나가본 TED에서 소규모 강연회를 나가서 자신의 작업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한 것을 보고 딸의 작업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올이 직접 김미루를 소개한 글도 있다. #
  • 도올의 큰딸인 김승중은 프랑스인 천체물리학자 크리스티앙 메누(Kristen Menou)와 결혼했다. 김승중은 린스턴 대학에서 천체물리학 박사를 한 뒤, 다시 럼비아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미술을 공부했다. 2013년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교수로 임용되었다.
아들은 뭐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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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삭발 이전 사진을 보면 보통 교수들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삭발 이후 탈모가 진행되었다. 재미있는 건 나이가 70이 다 된 시점에 빠졌던 머리가 다시 자라고 있다는 점.
  • [2] 큰 형과는 21살 차이, 넷째 누이와는 11살 차이가 난다.
  • [3] 현재 한의학 최고의 대세 중 하나인 8체질 의학의 창시자. 도올의 한의학도 8체질 의학이며, 8체질 의학 이론서를 처음으로 낸 사람도 도올의 제자다.
  • [4] 1996년부터 2년간 대학로에서 도올한의원을 운영했다.
  • [5] 지금은 누구에게나 '양심의 자유'와 정치적인 문서에 서명을 안 할 자유가 있지만, 1986년 당시에는 직선제 개헌, 언론 사상 표현 자유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왜 거부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양심선언문에서 독재를 비판하고 고려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옹호하는 한편, 자신의 비서명을 해석의 자유에 따른 결정이라고 해명(?)하였다.사실은 독재정권이 무서웠겠지 이 당시의 사정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고. #
  • [6] 1.277 버전까지 이 부분이 '고려대 학내 비리사건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고 교수직을 버렸다'라고 하여 마치 김용옥이 정의로운 행동을 하다가 쫓겨난 것처럼 쓰여 있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고대 시국선언은 1987년 한국의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김용옥은 민주화 과정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
  • [7] 이 문단은 어디까지나 김용옥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고, 사회 생활을 하는 일반인 관점에서, 고려대가 다시 받아줄 거라 생각하는 게 이상할 것이다. 당신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 직장내에서 트러블이 생겨 양심선언하고 사표를 던졌다. 그럼 최소한 그 직장으로는 못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 이후 김용옥은 다시 안 받아준다고 한때 고려대를 비난하고, <노자철학 이것이다>라는 책에선 자신의 복직을 도와주지 않은 학창시절의 스승(김충렬 교수)을 원색적으로 까댔다. 판단은 읽는 이에게 맡긴다.
  • [8] 일각에선 김용옥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나 한국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로서 구체적으로 언급은 할 순 있지만 학계 전체가 흔들릴 것이 분명한 상황이니 만큼 그 이상은 자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 [9] 존 로크의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의 원어 제목은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이다.
  • [10] 다만 그렇다고 해서 오성이라는 표현이 정말로 있어보이기 위해서 계속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성이라는 표현은 이미 학계 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칭하는, 즉 의미가 명확하게 규정된, 그러면서도 널리 인정받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일상언어의 '이해'나 '이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통용된다. '오성'이라는 표현이 당장에 사라지면 학계에선 해당 개념을 지칭할 단어가 사라지고 의미상 모호하고 중복되며 또 합의되지도 않은 '이해'니 '이성'이니 하는 표현을 해당 개념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도올은 오성이란 것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한 것 뿐으로 그렇다고 해서 학계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학자들이 스노브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칸트가 '오성' 개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상 해당 개념은 현대철학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가지게 되고 특별한 표현을 부여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 [11] 이견 있음. 김용옥같이 자기 자랑이 심한 사람이 "나 독일어 잘 해"같은 말을 한다고 의심없이 믿어버리면 곤란하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독일과 관련된 적이 없다. 그렇게 쉽게 독일어를 할 수 있다면 아무도 유학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강연중에 독일어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을 보여준 적은 한번도 없다는 점만 지적해두고 싶다.
  • [12] 위 동영상에서 매끄럽지 못한 발음이나 준비된 형태의 딱딱한 질문만을 하는 것을 두고 김용옥의 영어실력이 형편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영어 발음과 영어 실력은 별 관련이 없다. 또한 대사관으로 출입하는 모든 공식, 비공식 질문과 답변은 해당 국가의 공식 의견으로 간주되므로 보도와 비보도를 망라한 모든 내용이 사전 조율을 거친다는 점에서 질문자의 극도로 정제된 질문 내용 자체를 트집 잡긴 힘들다.
  • [13] 김용옥이 하버드 유학을 다녀왔으니 일반인보다 훨씬 나은 영어를 구사함은 당연하고, 그건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공개강좌에서 여러 차례 "내 영어가 한국제일"이라는 언급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검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저 동영상에 나오는 영어는 순수 국내파를 포함해서도 한국 제일의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 [14]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에서 입학허가를 내어 주고, 졸업까지 시켜 줄 정도면 영작 실력 역시 원어민 대학생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다만 이건 대학 시절의 일이므로 현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 [15] 물론 보수/근본주의 크리스트교가 지배하는 한국교계에서는 이단이라고 도매금으로 매도받는 것들이지만 종교나 신학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론들이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사조들이다.
  • [16] 지금은 꽤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태권도 관련단체에서는 쉬쉬하고 있었다.
  • [17] 달라이 라마를 오랜기간 보좌했던 사람이 회고록을 썼는데, 그는 도올을 무례하다고 평했다. 사진을 마구 찍는 것도 그렇지만, 달라이 라마에게 대놓고 "깨달음을 얻었습니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저한테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달라이 라마 본인은 예정된 스케줄까지 취소해가며 도올과 이틀에 걸쳐 대화를 했다.
  • [18] 이명박 대통령은 41년생, 도올은 48년생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연장자. 원래 연배가 좀 있는 사람들은 대개 칼 같이 형동생을 따지지 않는 편이다.
  • [19]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장과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교수와 절친이다.
  • [20] 기자시절 인터뷰도 했다. #.
  • [21] 본문에 왕(王)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존 해석은 이것을 부차적 문제로 취급한 경향이 강했다. 노자철학을 후대의 신비주의적 도교와 일치하면서 '도피적 성향의 개인철학'으로 여겨진 것. 물론 이게 도올이 처음 한 소리는 아니고, 자기도 그런 말은 안 한다. 캐런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에도 유사한 관점이 나온다고 한다.
  • [22] 하긴 '독립'이란 말의 한자을 생각해 보면… 나는 꼼수다 26화에서 '허리가 잘린 사람이 어떻게 홀로 서느냐'라고 말했다.
  • [23] 진중권은 1980년대 반독재 학생운동 시절부터 주체사상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다. 조국(현 서울대 법대 교수), 진경(현 서울산업대 교수)와 함께 '주체사상비판'이란 저서를 출간하였고, 이후에도 주체사상에 대하여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인물에 대해선 사정없이 깔아뭉개고 있다. 주체사상 자체의 철학적 의의, 사상 자체만은 논리적 완결성과 참신함이 있는 '잘생긴 철학'이라는 도올의 옹호론과 달리, 주체사상은 의의나 논리구조는 물론 참신 할 것도 없는 파시즘 전체주의 사상이며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진보운동, 통일운동을 망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체사상은 솔직히 까여야 마땅하다
  • [24] 누가 진중권에 대해 물어보니까 김용옥이 "나 그런 사람 몰라"라는 얘기를 했다는 건데, 진중권의 이름을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했을까? 김용옥이 그 정도로 세상과 담쌓고 공부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김용옥은 '내가 진중권보다 훌륭하다'라는 말을 '그런 사람 모른다'고 돌려말한 것 뿐이다.
  • [25]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1991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5개 부문 수상.
  • [26] 이 극단 '미추'가 바로 마당놀이로 유명한 그 곳이다. 배우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을 중심으로 3000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극단의 이름 '미추'도 도올이 지은 것.
  • [27] 인터넷강의에서 "프랑스는 역시 대륙인지라 래디컬한 혁명이 일어나는데, 영국은 섬나라라서 타협을 잘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와 일본은 비슷한 성향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영국이 타협적인 면이 강하다는 거지, 도올은 현대민주주의가 영국의 대헌장에서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도올은 일본을 "혁명이 없는 나라"라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