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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남

last modified: 2015-04-07 01:40:0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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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직 조직폭력배
2.해태 타이거즈 소속 투수

1. 전직 조직폭력배


金龍男 1950~ 여기도 어째 잘 늙지를 않는다.

1987년에 일어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의 주범자. 본명은 김용남이지만 용팔이로 불린다.

조폭 두목으로, 야당 분열 공작을 획책하던 국가안전기획부장인 장세동의 사주를 받아 통일민주당 당사에 폭력배들을 이끌고 들어가 창당을 방해했다. 결국 통일민주당 창당식은 식당에서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1988년에 검거되었다. 1997년에 용팔이란 책도 썼다. 당시 높으신 분들이 찾아와서 "김동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 주셔야겠소"라며 정중한 대접을 해 주자, 자신은 그게 진짜 나라를 위하는 일인줄 알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갱생하고 새 삶을 살고 있으며, 2002년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1]의 설교에 감화받고 기독교에 귀의한 다음 전도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앙 간증 수기도 냈다고. 국민일보 기사. 주먹이 운다 시즌 2에도 출연했다.

신앙 간증과 생애는 여기를, 사회 생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 2012년 학생폭력예방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진짜 갱생하면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2013년 7월 담임목사 오정현의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불만을 품고 사랑의교회에서 석유를 뿌리는 등 방화 난동을 부리다 불구속 입건되었다. 저게 표절이 상당부분 확정적인 오정현 목사를 비판하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 오정현 목사를 응원하기 위해 한 짓이라 역시 정치깡패 어디 안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에선 이한위가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2. 해태 타이거즈 소속 투수

1958년 생. 영남에 최동원, 김시진이 있다면, 호남에는 이 투수가 유명했다. 명문 군산상고 출신으로 70년대 중반 고교야구 트로이카 중 한명. 김성한과 함께 군산상고 팀을 이끌었으며, 묵직한 구위의 직구로 이름을 날렸다.

한양대학교를 거쳐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멤버로 들어갔다. 당시 해태는 김성한이 투잡을 뛸 정도로 투수진이 안습이었던 상황에서 175이닝을 던져 9승 방어율 3.09를 기록하며 해태의 원년 에이스로 활약했다.[2] 1983년에는 20승에 방어율 2.67의 에이스 이상윤에 이어 13승에 방어율 2.83을 기록하며 2선발로 활약하여 해태의 첫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6년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다. 이후 1987년에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하여 1989년에 은퇴했는데 1990~1992년까지는 빙그레, 1993~1995년까지는 고향 팀이기도 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그 이후 프로야구계와 인연을 끊었다.

1970년대 고교야구 트로이카로 유명했지만 정작 프로에 입문해서는 최동원이나 김시진에 비해 완전히 밀렸다. 은퇴 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 투수코치를 했으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듣보잡 수준.(...)

내용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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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목사가 많은 기독교계에서도 진정한 목사로 불려지는 네임드다. 어느 정도냐면 보수교회 연합인 한기총과 진보교회 연합인 KNCC에서 모두 존경할 정도.
  • [2] 1982년은 팀당 80경기로 128경기를 뛰는 지금과 비교하면 경기 수가 2/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 해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는 이상윤은 7승 3.88로 2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