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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준

last modified: 2014-07-12 11:40:08 Contributors

  • 걸그룹 투아이즈의 막내 김연준을 찾아왔다면 해당 항목으로.

金連俊
1914.2.20 ~ 2008.1.7

한국의 전 교육자이자 작곡가이다.

1914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남(白南)이다.[1] 1939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다. 1948년 동아공과학원의 후신인 한양공과대학의 초대 총장이 되었다. 1959년 한양공과대학을 종합대학인 한양대학교로 확대하였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한양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1980년부터는 한양대학교 재단이사장을 지냈다.

이외에 양여자대학 등의 학교를 설립하였다.

작곡가로도 활약하여 교육분야 외에도 음악계에서 꽤 유명하다. 김연준 가곡 1600곡집성가곡집 등 총 16집을 출간하였으며, 2001년에는 자신이 곡을 붙여 이미 가곡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 시 80여 편을 실은 시집 청산에 살리라를 펴냈다. 더불어, 가수 조영남을 음악의 길로 이끌어 준 은인이기도 하다.# 조영남이 고등학교 2학년때 한양대 주최 전국 음악 콩쿠르에 출전했지만 입상에 실패했는데, 조영남을 눈여겨 본 김연준이 어려운 가정형편을 알고서 장학금과 함께 성악 레슨을 전담하는 교수를 붙여 주어 조영남이 성악가의 길을 갈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것이다. 당연히 조영남은 고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 성악과로 진학하였으나, 사생활 문제로 인해 거의 쫒겨나다 시피 한양대학교를 중퇴 하고 당시 성악과가 신설되었던 서울대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된다.

흑역사로는 민간인 신분으로 1973년 윤필용 사건에 연루된 점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그는 구속되었고 그가 운영하던 대한일보는 폐간되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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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의 호를 딴 백남빌딩이 서울시청 앞에 있다. 프레지던트 호텔이 사용한다. 재단법인 한양학원 소유. 그래서 과거 재단 관련 데모를 할 때 백남빌딩 앞에서 데모를 했던 일도 있다.
  • [2] 이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었고 매우 고생을 했다. 당시 그는 한양대학교에 대하여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 국내 유수의 종합대학으로 키웠고 한양대학교는 한양공대라는 명칭처럼 공대가 강세 서울공대 다음 한양공대 였지만 문과는 공대만큼 강하지는 않았고 그런지라 한양대 출신 법조계 인맥은 적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법대 출신 정,관계 인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출소 이후 법대, 무엇보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 증가에 집중투구하게 된다. 고시반, 전용 기숙사를 설치함은 물론, 1차에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는 사법시험 합격자 수에서 성균관대학교와 엎치락뒤치락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