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김성모

last modified: 2015-04-10 16:45:54 Contributors


근성 있게 생기신 화백의 존안.
류승룡? 뒤에 있는 글자가 신경 쓰이면 지는 거다.

根性 하나로 설명이 다 되는 한국원조 약쟁이 만화가 혹은 극사실주의# 만화가. 1969년 8월 16일생. 일부 팬들 사이에선 '근성모' 혹은 김화백이라고도 불린다.

Contents

1. 개요
2. 김화백
3. 작품 성향
4. 만화 공장장으로서의 김성모
5. 성인극화 시장에서의 김성모
6. 대인배
7. 주요 작품 및 유행어
8. 관련 항목
9. 기타

1. 개요

데뷔 전에는 스토리 작가로 고행석 화백 밑에서 일했다. 구영탄과 개고기 육포에 관련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스토리를 짜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는 것에 성공. 각 화실에서 그를 데려가려고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1]

데뷔작은 1993년 5월 보물섬에 실린 단편 '약속' 으로, 군전역후 보물섬 담당기자를 소개 받고 원고 준비하다가 데뷔한 것이라고 한다. 소년 가장인 형과 동생이 주인공으로 형은 그레이트 캡짱의 강건마 얼굴이고 동생은 그 쇼타판(마계대전 극초반의 타이건을 생각하면 된다).

약간의 도벽이 있는 동생이 주인공인데 초기 김성모의 작품 대다수의 주인공 이름인 '강건마' 는 이때 처음 등장한다.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형과 약속했으나 어느 날 동생이 사과봉지를 가지고 가는 것을 형이 본다. 형은 강건마에게 사과가 어디서 났느냐고 묻지만 동생은 제대로 말을 못하고 이를 훔친 것으로 판단한 형이 동생을 때리면서 사과가 바닥에 굴러떨어지는데 썩은 사과뿐이다. 동생은 울면서 훔친 게 아니라 썩어서 버리려는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형은 동생을 끌어안고 우리는 거지가 아니라며 함께 운다. 여튼 마무리는 동생인 강건마가 형과의 약속을 지키자 형이 초콜릿을 사주고 끝나는 훈훈한 내용.

이후 1994년 보물섬에서 '그레이트 캡짱' 이라는 황당한 제목의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다.[2] 그레이트 캡짱은 꽤 인기를 거뒀고 이때까지만 해도 소년만화 위주의 가벼운 소년만화가 같은 이미지였다.

그 뒤 소년 챔프에서 허리케인 이라는 짧은 만화를 연재한 뒤[3] 마계대전과 그 후속으로 학원물인 럭키짱을 연재하면서 그의 유명세가 시작되는데 가공할 연재 속도로 뽑아내는 어마어마한 분량과 상황에 맞지 않는 황당한 대사들, 갑자기 뭔가 이상해지는 그림체(예를 들면 마사오의 얼굴), 말끝이 마침표 대신 물음표로 끝나는 특유의 말투인 근성체 등 이 두 작품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김화백의 기초를 쌓은 만화들이 됐다?

이후 엄재경 스토리작가가 회상하길 김성모는 잡지 만화 때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그 특유의 센스를 끝까지 밀어붙여 이제는 나름 모두가 인정하는 어떤 경지에 오른 듯 해 인정한다고. 한번은 김성모가 인기순위에서 까꿍을 이기자 이충호화백이 까꿍을 합체시키자고 해서 말리느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그림체면에서는 '럭키짱' 이나 '마계대전' 류의 날카로운 그림체가 전기.

'빵' 이나 '빵 아웃사이더', 숨겨진 역작(...) '쾌산고' 에서는 약간 순화된 그림체를 보여준 중기.

마지막으로 일본의 유명 극화작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털 시리즈나 기타 성인만화인 후기로 나뉜다.

참고로 대털에서부터 갑자기 사람이 바뀐 듯 엄청나게 발전된 그림체를 보여줬는데 이는 김성모 또는 그의 문하생의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대만에서 그림쟁이 2명을 거금으로 구입(?)해서 작화를 시켰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현세 밑에서 어시스턴트를 하던 사람들을 대량으로 영입하여 그림 퀄리티를 높였다는 소문도 있다. 대털 이전작이나 이후작이나 대털 초반대의 그림체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보면 아예 낭설만은 아닌 듯도 싶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작중에 등장하는 지식이 어처구니 없이 비상식적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지만 그런 선입견에 비해 생각보다 멀쩡한 상식도 많이 알고 있다. 작중에 나온 과장된 표현으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만화적인 표현" 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과도하게 비난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일본 만화에서도 김성모와 별 차이 없는 수준의 과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플러 바키라든가

김성모의 일명 '만화 공장' 시스템의 경우 그는 "한국 만화계가 살아나려면 우선 작품이 많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일단 만화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제공하고 그 후 차근차근 만화계를 바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대털 등 자신의 만화의 컷을 싸그리 재활용 및 재편집하여 따로 만들어낸 만화 '기계깡패', '건달IQ삼국지' 같은 작품을 보면 왠지 진심이 아니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털 1부, 혐일류 등의 만화를 보면 또 나름대로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 수긍하게 되기도 하고... 작품 간에 일종의 차등을 둘 가능성이 있다.[4][5]

작품성, 만화에 대한 평가를 제외해놓고 단순히 인간적으로만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어려웠던 시절 동생이 그를 도와줬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동생이 몰락하자 동생을 만화가로 데뷔시켰고 그의 만화 짤방에 대한 저작권조차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6]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김성모 본인부터가 표절작으로 출세한 작가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걸 대인배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7]

그리고 2012년 3월 7일, 마침내 네이버 웹툰에서 돌아온 럭키짱으로 웹툰작가로 데뷔하였다!!그리고 망했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보러가기[8]

2012년 4월 12일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 #

2012년 5월 30일에 한 근성갤러와 웹툰에 대해 인터뷰 한 것이 근성갤에 올라왔다! 자신감이 넘치는 김화백의 답변에 근성갤에서는 "폭룡스러운 인터뷰" 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

2013년 1월 24일 네이버캐스트에 인터뷰가 올라왔다.진지한데 웃긴 김화백

이제는 LOL 만화까지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부턴 오로지 백도어 뿐이야 그리고 정말 롤만화가 나왔다.

이 만화를 그리는데 김성모는 라이선스를 획득한 뒤에 그리는 게 아니라 일단 그려놓고 라이선스를 획득하려고 라이엇에 갔다. 그리고 획득하지 못하자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캐릭터 이름을 바꿨다. 리신은 리심, 신짜오는 진짜오, 베인은 배인, 마스터이는 미스터이, 자르반은 자루반, 가렌은 가렘, 티모는 타모 등...그나마 저작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지만 라이선스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만화를 그려놓은 것도 만만찮은 병크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팬아트를 무단 도용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도용당한 사람들이 따로 연락을 했으나 무시당했고 돌아온 럭키짱 댓글란엔 김성모가 무단으로 팬아트 도용한것이 베댓이 되었다. 링크 다른 도용 의심 사례
드래곤볼도 트레이싱한듯하다. 링크

하지만 다른 사람의 팬아트를 무단 도용한 것은 뎃셍 아티스트의 실수로 밝혀졌다. 작가에 말에 따르면 한달에 60회 가량 마감을
하기 때문에 감시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폈었다고. 링크 그럼 드래곤볼은 대체

인터뷰에 의하면 한달에 하는 마감 횟수가 45회 정도라고 한다. 흠좀무. 하루에 2번 이상 마감을 하는 경우도 꽤 흔하다는 소리인데 이건 완전히 미친 속도로 마감하는 것이다. 물론 마감이 무작정 빠르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돌아온 럭키짱 연재 이후 평이 좋지 않다. 김성모 본인이 과거의 영광에 취했는지는 몰라도 롤짱 관련 인터뷰에서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다.' '모든 플랫폼에서 짱먹은 작가다' '나는 인터넷에서 말하는 병맛이나 짤방들 때문에 뜬 작가가 아니다'등의 주옥같은 헛소리를 늘어놔서 구설수에 오르..진 않고 그냥 묻히는가 싶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의 만화에서 병맛스러움을 빼면 뭐가 남는다고 저런 말을 늘어놨는지.. 돌아온 럭키짱의 별점이 떨어지고 있을 때 댓글에서 등장해 조악한 만화 때문에 화난 독자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10첩 반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는 꼴마초스러운 발언은 덤.인터뷰 전문.

2. 김화백

원래 만화가들에게 화백이라는 별칭은 뛰어난 업적과 오랜 작품 생활을 해온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이나 김성모는 그런 뜻이 아니라 대사는 거의 없고 그냥 그림만 그린다며 조롱하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화백은 대부분의 그림은 직접 안 그리고 스토리와 콘티만 짜서 어시한테 넘겨준다. 그럼 그림도 안 그리고 대사도 거의 없고 도대체 뭐한거냐? 호옹이?

하지만 대인배로 거듭난 지금은 찬양과 조롱의 두 가지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참고로 그 그림마저 똑같은 구도나 장면, 다른 만화에 같은 캐릭터를 남발하는 바람에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도장을 찍어낸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실상은 수십명의 어시스턴트들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 결정체의 퀄리티가 문제긴 하지만

3. 작품 성향

근성을 강조한다. 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김성모 작품에서는 배틀물이라도 평범한 소년만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최강자에 등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흔히 김성모의 주인공은 평균보다는 강하지만 진정한 최강자 그룹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열등한 역량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 근성으로 마침내 이겨낸다.

이는 작가 김성모 자신의 페르소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모 자신은 한국 만화계의 기준으로 볼 때 결코 뛰어난 화력이나 미려한 그림체를 가진 작가는 아니며 자신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주인공의 근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싸워서 이겨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강한 자와 싸우더라도 항상 정의의 편에 서고 항상 옳은 말을 해주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수동적이고 매우 잉여롭게 나오며, 이와 대조적으로 주인공 남성은 똥폼을 잡으며 남자다움에 대해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를 읽어봐도 김성모는 '남자다움'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며 그것을 자기 만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아무래도 정작 화백님께서는 많은 독자들이 그런 부분에서 병맛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작가의 개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작품을 까내려서는 안되겠지만, 구시대적인 성역할이 김성모 작품의 기반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그래서 10첩 반상을 안 차려주면 밥도 안 먹는다는 꼴마초스러운 인터뷰를 한건가?

그리고 김성모의 만화에는 유난히 일본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럭키짱에선 산케와 마사오, 그리고 야차단 등의 일본인들이 등장해 야차단과 산케가 한국의 강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체인빡은 일본이 배경인 만화이다. 성인극화에서도 역시 일본은 자주 등장하는데 빨판에선 주인공 이석기가 야쿠자와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고 돈빨에서 역시 야쿠자와 관련 있는 일본 사채업의 대부가 등장하고 주인공 계윤성과 손을 잡는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그의 만화에선 대사를 하는 등장인물들 태반이 입을 다물고 있다.입 다물고 근성으로 말한다?

4. 만화 공장장으로서의 김성모

김성모 만화의 대다수는 김성모의 경우 기본적으로 스토리만 쓰고 작화는 여러 명의 문하생들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이른바 '만화 공장' 방식으로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을 그릴 수 있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문하생들이 1,000명이 넘었다(!) 카더라도 있지만 지금은 5명 정도. 전성기 때는 문하생이 100명을 넘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찍는 양 대비 퀄리티는 비교적 괜찮은 편.

"우리가 지금 김성모의 만화를 읽는 속도보다 김화백이 그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라는 농담이 돌았을 정도로 연재속도가 빨랐으며 출판사[9]가 자신의 연재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아예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버렸다(...) 출판사 이름은 소유한 빌딩(다음 로드뷰) 이름을 그대로 따서 '자유구역' 으로 지었으며 이때가 럭키짱을 연재하던 시절이다.[10]

김성모의 만화 공장에 대해서 비난하는 경우도 많으나 현실적으로 김성모 이상으로 거대한 공장을 돌리는 국내 작가들이 많이 있는 현실에서 김성모만을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당시까지 한국 만화계에서 거물이라 불릴 만한 작가들은 모두 만화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거나 지금도 운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박봉성 같은 경우 작가 본인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만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공장의 만화와 비교하자면 기획력이나 만화의 질적인 면에서 김성모 공장이 그렇게 혹평을 들을 수준은 아니다. 아니 실제로는 공장 만화 중에선 뛰어난 축에 속한다. 인터넷 세대 대부분은 공장제 만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선동된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만화 공장이 잘하는 짓이라는 건 아니다. 대여점 시스템에 기대서 만화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트려 만화의 뿌리를 말려죽였다는 비판에선 김성모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만화책을 사서 보지 않는 독자들의 인식 수준 역시 문제가 있고 김성모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자세한 관련 내용은 대여점 책임론 참고.

김성모가 이렇게까지 혹평을 듣게 된 이유는 만화가들의 절규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얘기가 있다.

도서대여점 논쟁을 주도한 신인 만화가들이 김성모를 집중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는 매우 큰 효과를 내었으며 이때부터 김성모는 악명으로 매우 유명해지게 되었고 만화를 도장으로 찍어낸다라는 악의 섞인 조롱까지 받으며 대표적인 쓰레기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굳이 김성모가 타겟으로 설정된 이유는 원래부터 대본소 만화를 그리던 작가가 아니라 소년만화판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떨치다가 대본소형 만화로 전향한 소수의 작가들 중 가장 인기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김성모를 제외한 한국의 여러 대본소 작가들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작가는 유일하게 김성모 뿐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11]

다만 그 시절에도 만화 공장에 대한 비판은 계속 나오던 시기였고 몇몇 작가들은 본인들도 공장식 제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슬그머니 복귀하곤 했다. 이런 비판이 존재하고 있던 시기에 김성모는 악명높던 만화방용 공장 체제를 대여점에 도입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 점에 대해선 자유롭지 못한게 사실이다. 다른 작가들도 공장을 돌렸다는 사실은 김성모의 공장식 제조와는 별개의 이야기다.그러니까 같이 까라

물론 공장식 제조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이 아니라 김성모의 만화들이 하나같이 퀄리티가 영 좋지 않다는 것도 그가 까이는 큰 이유중 하나였다. 사실상 김성모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워낙 막장도가 쩔어서 뜬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에 더해서 마계대전, 럭키짱의 표절논란, 김성모 본인이 보여주는 근자감등의 이유로 까이게 된거지 단순히 공장을 돌렸기 때문에 까인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때까지만 해도 김성모는 여전히 소년만화 위주의 작품들을 그리고 있었다. 럭키짱의 캐릭터를 재활용한 권투만화 '토네이도', 북두의 권과 유사한 세기말 권법물인 '걸푸', 마계대전의 후속작인 '신 마계대전', 무협만화인 '쾌검', 재일교포 학생과 일본 폭력배, 야쿠자 등의 투쟁을 그린 '체인빡' 등을 양산했다.

5. 성인극화 시장에서의 김성모

하지만 일본 만화가 대거 진출하면서 한국 소년 만화에서 점차 경쟁력이 떨어져가자 김성모는 성인극화 시장에 도전하기로 결정, 매춘업으로 유명한 사창가인 용주골에서 한 달 이상 숙박하면서 취재하는 열정(...)을 보이면서 '용주골 시리즈' 등의 성인극화 시리즈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성모의 그림체는 아예 다른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일례로 이 시기를 전후해서 달라지는 주인공 캐릭터인 럭키짱의 강건마(이 시기 전)와 대털의 교강용(이 시기 이후)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강건마이지만 럭키짱의 강건마와 돌아온 럭키짱의 강건마는 그림체가 완전히 딴판이다.

참고로 용주골을 그릴 당시 세 번의 취재를 갔는데 처음에는 달밤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다가 조폭들에게 "한 번만 더 오면 뱃속에 바람을 확 불어넣어버리겠다" 고 협박받았고 이 경험을 살려 두번째 취재 때는 택시 안에서 카메라로 찍었으며(3명인지 4명인지 확실치 않음) 몇 명이 같이 가서 방을 3번씩 스케치해왔다.[12] 그리고 마지막 3번째 취재에는 포주 한 명을 섭외해 포주의 동생으로 위장하고 30분에 6만원씩 총 300만원을 들여 실제 일하는 여자들을 인터뷰했다. 돌아왔을 때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뭐 했을지는 당연하잖(...)[13]

성인극화 쪽에서는 주로 조폭물을 많이 그려서 그런지 나중에는 조폭들하고 친해져서 식사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고 사무실에 건달들이 쳐들어와서 엄포를 놓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사채업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 위해 직접 5천만원 가량의 사채를 쓰고 일부러 안갚았다.(...) 6개월간 정말 별의 별 꼴을 다 당하다가 상황을 설명해준 뒤 돈을 갚고는 친구 먹었다고 한다.

사실 대본소 성인극화는 90% 이상이 조폭 얘기지만 김성모가 그만큼 특출난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성인극화를 그리다가 일간 신문에도 진출.[14] "200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려놓고 연재한다!" 고 장담하는 기사가 뜨면서 실제로 유명했던 도둑 김강용을 모델로 하여(이때도 김강용에게 사식을 넣어주며 경험담을 듣는 등의 취재를 했다고 한다) 시작한 대털은 당시 럭키짱 등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알려진 김성모 비난 풍조 때문에 "어디 어떻게 그리나 한 번 보자!" 라는 시선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대털은 퀄리티가 나름대로 괜찮은 데다가 그동안 유명해진 김화백 테이스트가 적당히 녹아들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것에 성공했다.

ExCF에서는 대털이 연재되던 시절 매일 '오늘자 대털' 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와서 회원들이 함께 보며 감상평을 달았으며 대털의 연재가 끝났을 때는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복창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 또한 디시인사이드 초기 시절에도 수햏만화 '햏자의 역습' 이란 제목으로 대사만 바꾼 패러디물이 올라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는 지금도 '득햏의 길' 이라는 게시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재도 활발하게 성인극화 쪽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 10월 말 오랜만에 학원물로 '드라군 파이터' 를 냈으나 별다른 반향은 얻지 못했다. 참고로 드라군 파이터는 유행하던 드라군 놀이에 맞춰 드라군이라는 주인공이 나왔다(...)

물론 럭키짱과 마계대전에서 보여줬던 김화백만의 개성(?)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 만화계에서 자신만의 색을 매우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디시인사이드에 김성모의 팬사이트인지 안티사이트인지 알 수 없는 갤러리인 '김성모 갤러리' 가 있으며 흔히 줄여서 '근성갤' 이라고 부른다.

작품군 중에서 특이한 점 중 하나로는 대본소 만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협만화가 김성모 만화들 중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성모가 무협에 도전한 최초의 작품인 '쾌검' 이 보통 당시 50권을 넘어가던 김성모 만화 중에서 12권으로 짧게 마무리된 것으로 볼 때 아마 쾌검은 흥행에 실패했고 김성모는 무협물은 잠시 미뤄두기로 결심한 것 같다. 이후 대본소 만화로 '귀신귀검' 이라는 무협만화를 출판했다.

일간 스포츠에서 대털 2.0을 끝내고 이원호 원작의 소설 '강안남자' 를 만화화해서 연재 후 2010년 말~2012년 초까지 4인조라는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었다. 2012년 10월 현재 강안남자 시즌4와 '각유전자' 두개를 연재했다가 2014년 1월에는 강안남자만 연재하고 있다.

6. 대인배

악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만화를 제작하여 결국에는 대털로 대히트를 치게 된 김성모의 이미지는 이후 대인배로 굳어지게 되며 초기에는 조롱의 뜻으로 쓰이던 김화백이라는 표현이 존경의 의미를 담은 뜻으로 바뀌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만화들이 스캔되어 짤방으로 돌아다니고 스캔본 파일들이 난무하는 상황임에도 본인은 그것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그 덕분에 근성을 찾는 사람들은 저작권에 신경 쓰지 않고 그의 근성짤방들을 계속 쓸 수 있게 되었다.

저작권법의 특성상 원작자 자신이 직접 저작권을 요구해야 효력이 있는 법인데 김성모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저작권법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법인 솔로몬 사건이 난 뒤 김성모 본인은 다른 만화가들과는 달리 저작권에 신경을 쓰진 않으나 법적 절차에 따라 법무법인에 의도치 않게 권한 이양을 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를 했다.

또한 김성모 싸이월드 방명록에 글을 남긴 사람들에게 일일히 친절한 인사를 해주었다.[15] 역시 그는 천하의 대인배다. 일촌 신청하면 일촌도 흔쾌히 받아주시니 근성 있는 자는 시도해보자.

2014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싸인회를 열었는데 30분, 1시간이 아닌 3시간을 해줬다. 그것도 행사 내내!!! [16] 진정한 근성가이.

7. 주요 작품 및 유행어

9. 기타

김성모 설화

한나라 시대 한 마을에 성모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뼛속까지 아픈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강건마(强健馬)를 탄 채 20근이 넘는 속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나 이르기를

"당신은 전사독(電死毒)에 중독되었소, 머지않아 뼈와 살이 분리되어
죽을 것이오" 라 하더라?

이에 성모가 황급히 놀라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단 말이오."
물으니 사내가 대답하기를

"이곳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지대호(地大湖)라는 맑은 호수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만 피어나는 애로사화(涯露社花)라는 꽃의 뿌리를 캐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의 물과 함께 잘 섞으면 '약약강강강약강중약(藥)'
이라는 신비한 약이 만들어질 것이오. 그 약을 108일 동안 복용하면 살 수 있을것이오."

그 말을 들은 성모 노인은 앓아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앗싸~ 좋구나' 하고 덩실거리며 약을 구하러 뛰어가더라?
하지만 안타깝게 똥 싸느라 약을 늦게 먹는 바람에 결국 성모 노인은 뼈와
살이 분리되어 저승에 가서 럭키짱이나 실컷 보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 새로운 문체를 창조해 내셨다? 근성체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 본격 만화가 데뷔 직전에 이야기인데 엄청난 근성으로 앉아서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이 짓을 몇 달이나 계속하여 나중엔 산발이 된 머리가 등을 자꾸 찔러 고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근성!

  • 일간스포츠의 만화가 열전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한창 때의 김성모는 1km를 1분 50초대에 주파했다고 한다(그런데 세계신기록은 현재 2분 11초 96...). 더 놀라운 것은 화실에서 상금을 걸고 달리기 시합을 했을 때 김성모가 페이스 오버하는 바람에 꼴찌를 했다는 것. 김성모 화실 사람들은 괴물들만 모였단 말인가!

  • 김성모의 작업실 입구에는 '세계정복' 이라는 액자 혹은 족자가 걸려있다고 한다.

  • 작품 중 형제 사이의 우애를 강조하는 면이 많다. 예를 들어 대털 1부의 황산은 그 동생인 황표가 개나리 씨박새끼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병신이 되자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고 배신과 배신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작품 세계에서 형제만큼은 별로 배반하지 않는다. 이는 동생인 야맹장과의 일화 때문인 듯.

  • 시 쓰는 것을 좋아하는 듯. 가끔 작중에 (詩)가 등장한다. 대표작은 마계대전에 나온 폭룡의 시와 대털에서 나온 황산이 죽을 때 나오는 시(이건 딱히 제목이 없다).

  • 과일로는 풋 사과를 선호하는 것 같다. (반드시 풋과 사과를 띄울 것)

  • 근성갤에 남긴 그의 족적-근성갤에 친히 글을 올렸다. 근성갤러들을 비롯한 추종자들은 김성모를 추대하는 무한 근성 계단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근데 현재 삭제된 상태(...)

  • 럭키짱에 오너캐가 등장한다. 영화감독같이 생겼는데 럭키짱의 등장인물들을 막 부려먹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너캐가 등장인물들에게 쓰는 호칭은 만화 배우. 몇 권에 등장하는지는 추가바람. 단행본 해당권의 맨 마지막에 딱 한번 나왔다. 오너캐가 가장 험하게 부려먹는 인물은 풍호와 마사오.

  • 그의 스타크래프트 만화는 스타크래프트 2의 테란 시나리오를 무려 10년 전에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레알 돋는다. 덕분에 김스트라다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19] 근데 다른 많화의 내용중에서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 몇몇 있다! 타임로드인가

  • 김화백의 만화를 연재하는 일일 앱스토어 앱이 출시 하루만에 1위를 차지했다.#

  • 김화백의 만화에서 명대사, 명장면을 주제로 한 색칠공부 앱인 김성모 색칠공부가 출시되어 구글 플레이티스토어에 각각 등록되었다. 색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에 저장까지 된다. 색칠공부의 배경은 업데이트 될 예정이므로 전부 색 칠해봤다고 지우지 말라는 내용이 구글 플레이에 있다. 그런데 막상 설치해보면 앱 이름이 근성색칠공부다.[20]

  • 화백님의 개그를 교과서처럼 배울 수 있는 만화. 자동브금에 주의하자.

  • 화백님의 개그를 교과서처럼 배울 수 있는 만화 2. 역시나 자동브금에 주의하자.

  • 전설의 대작 빅장스타일러

  • 대도서관의 방송에 부천국제만화축제 홍보차 게스트로 출연했다.
----
  • [1] 나예리 저서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중 김성모의 인터뷰.
  • [2] 그 후 다른 출판사에서 그레이트 캡짱을 단행본화하여 출판했는데 이때의 이름이 '캠퍼스 캡틴'. 요즘도 간혹 오래된 대여점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 [3] 10회도 안 되는 짧은 분량으로 김성모 최대의 실패작이라고 한다.
  • [4] 참고로 대털 1부와 혐일류의 경우 애초 대본소용으로 그린 작품이 아니므로 그의 다른 공장만화들과 비교대상으로 볼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작화붕괴가 거의 없고 내용과 재미 또한 튼실하지만 대털 1부는 일간 스포츠지에 최초로 연재하는 작품이니만큼 당연히 사력을 다한 작품이고 혐일류는 처음부터 대본소가 아니라 단행본용으로 계획 후 제작된 작품이다.
  • [5] 김화백이 처음부터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기획한 리얼리즘 성인 극화들이 있다. 대털1부, 용주골 시리즈, 돈빨, 999.9 마신이 대표적인데 다만 문제는 999.9 마신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후반부에 조폭 사시미 배틀물이 되거나 용두사미 결말로 끝난다는 것(...)
  • [6]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 걱정 없이 짤방을 사용하여 짤방이 널리 퍼져 김성모의 인기에 한 몫 했다.
  • [7] 마계대전은 빼도박도 못할 휘룡전기 나가스의 표절작이다.
  • [8] 댓글에서는 김화백에 대한 환호성이 들린다 1점드릴께요 ^^
  • [9] 그 당시 출판사는 '씨알 기획'이라는 출판사였는데 이 출판사는 럭키짱을 비롯한 김성모의 작품 이외에도 전세훈, 전상영, 손태규, 이세경, 임재원 등 럭키짱이 연재되던 시기에 한 시대를 풍미하던 코믹스 만화가들이 대부분 이 출판사에서 각자의 만화 단행본을 냈다.
  • [10] 위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5층 빌딩 건물을 하나 통째로 가지고 있는데 현재 1층에는 신협이 들어서있다.
  • [11] 사실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조차도 어시스턴트를 매우 많이 두는 공장식 운영을 하였다.
  • [12] 용주골의 방은 같은 것이 없으며 일종의 테마룸 형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 테마룸까진 아니고 그냥 거기서 일(...)하는 여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꾸미는 정도다.
  • [13]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책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에서는 이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시티헌터의 하렘에 둘러싸인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예로 들고 있다...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법한 비유.
  • [14] 일간 신문은 한국 만화에서는 최고 수준의 지면이다. 잡지 시장이 전멸하다시피 한 현재에는 그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 [15] 2010년 4월 말까지는 일일히 답변해주었으나 이후 더 이상 답변이 없는 걸로 볼 때 싸이는 끊은 듯.
  • [16] 올해 비코프는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개최했다. 즉 실 싸인 시간만 15시간이다.
  • [17] 대사의 병맛성(...)으로 인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김성모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이본토 작가의 만화에서 등장한다
  • [18] 2번 항목
  • [19] 그런데 애초에 김성모의 만화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의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만화다. 만화에 근성이 담겨있어 설정이 조금 어긋난 곳이 있긴 하지만 일단 김화백도 블리자드에게 몇 가지 플롯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 [20] 최초로 업데이트 된 기본 배경은 108계단 40단 콤보, 강철팬티, 깊은 산속 옹달샘, 난 싸우고 넌 기억한다, 발로 가리키는 구룡, 거근킥, 네똥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발차기 하는 풍호, 발차기 효과음 빠방빠방, 사람이 긴 잠에 빠지는 보편적인 시간, 여자 꼬시는 병은이, 아... 너무 멋지다. 총 13개 : 럭키짱 11개, 대털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