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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last modified: 2019-06-10 11:39:13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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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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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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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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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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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 힐먼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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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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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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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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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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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kt 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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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감독 취임 기자회견 중인 김성근

한화 이글스 No.38
김성근(金星根)
생년월일 1942년 12월 1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일본 교토
학력 가쓰라고 - 동아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소속팀 교통부 (1961)
기업은행 (1962~1969)
지도자 마산상업고등학교 감독 (1969)
중소기업은행 투수코치 (1970)
중소기업은행 감독 (1971~1975)
충암고등학교 감독 (1976~1979)
신일고등학교 감독 (1979~1981)
OB 베어스 투수코치 (1982~1983)
OB 베어스 감독 (1984~1988)
태평양 돌핀스 감독 (1989~1990)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1~1992)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 (1994~1995)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1996~1999)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00)
LG 트윈스 수석코치 (2001)
LG 트윈스 감독 (2001~2002)
치바 롯데 마린즈 1•2군 순회코치 (2006)
SK 와이번스 감독 (2007~2011)
고양 원더스 감독 (2012~2014)
한화 이글스 감독 (2015~2017.5.23)
응원가 라나 에 로스포 '사랑해'[1]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84 OB 베어스 100 58 41 1 3위 -
1985 110 51 57 2 4위 -
1986 108 56 48 4 4위 -
1987 108 55 52 1 4위 -
1988 108 54 52 2 5위 -
통산 534 274 250 10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89 태평양 돌핀스 120 62 54 4 3위 3위
1990 120 58 59 3 5위 -
통산 240 120 113 7 ­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91 삼성 라이온즈 126 70 55 1 3위 3위
1992 126 67 57 2 4위 4위
통산 252 137 112 3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96 쌍방울 레이더스 126 70 54 2 2위 3위[2]
1997 126 71 53 2 3위 3위[3]
1998 126 58 66 2 6위 -
1999 81 17 59 5 -
통산 459 216 232 11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1 LG 트윈스 98 49 42 7 6위 -
2002 133 66 61 6 4위 준우승
통산 231 115 103 13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7 SK 와이번스 126 73 48 5 1위 우승
2008 126 83 43 0 1위 우승
2009 133 80 47 6 2위 준우승
2010 133 84 47 2 1위 우승
2011 93 52 41 0 3위[4]
통산 611 372 232 13 ­
연도 소속팀 경기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2015 한화 이글스
총계 2327 1234 1036 57 ­

2007년, 2008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김성근(SK 와이번스) 조범현(KIA 타이거즈)
2010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조범현(KIA 타이거즈) 김성근(SK 와이번스)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OB/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김영덕(1982~1983) 김성근(1983.10.25~1988.09.08) 이광환(1989~1990)
태평양 돌핀스[5] 역대 감독
강태정(1987~1988)[6] 김성근(1988.09.12~1990.10.16) 박영길(1991)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정동진(1989~1990) 김성근(1990.11.02~1992.10.05) 우용득(1993~1995)
쌍방울 레이더스 역대 감독
한동화(1994~1995) 김성근(1995.10.20~1999.07.15)[7] 김준환(1999)[8]
LG 트윈스 역대 감독
이광은(2000~2001) 김성근(2001.05.17~2002.11.23) [9] 이광환(2003)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조범현(2003~2006) 김성근(2006.10.15~2011.08.18)[10] 이만수(2012~2014)
고양 원더스 역대 감독
팀 창단 김성근(2012~2014) 팀 해체
한화 이글스 역대 감독
김응용(2012.10.08~2014.10.17) 김성근(2014.10.28~2017.5.23) 이상군 감독대행(2017.5.23~)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안영명(2014) 김성근(2015~2017) -

Contents

1. 현역 시절
2. 지도자 생활
2.1. 2016 시즌
2.2. 2017 시즌, 그리고 경질
3. 야인(野人) 김성근
3.1. 아웃사이더 김성근
3.2. 지도자 김성근
4. 구설수/논란
5. 경기 운영 스타일
6. 발음
7. 사제 관계
7.1. 제자 사랑
7.2. 반대 사례
8. 별명들
8.1. 야구의 신
8.2. 인천예수
8.3. 그 외
9. 기타
10. 관련항목


1. 현역 시절

일본 교토 가쓰라고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되어 뛰다가 언어불통[11]에 기인한 향수병과 동아대학교 측의 냉대에 실망한 탓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돌아가 사회인 야구 팀에서 뛰었다.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실패했고, 재일교포 야구 선발팀에 발탁된 후 대한민국에서 모국 방문 경기대회를 치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가대표에 뽑히면서 대한민국으로 욘주 영구귀국한다.

홀어머니와 친척, 친구를 모두 떠나 홀로 대한민국에 영구귀국할 때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야구로 인정받아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로 눈물을 달랬다고.[12] 그 뒤로 실업야구리그에서 활약하였으며, 기업은행의 창단멤버중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김응용, 백인천 등과 함께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될 만큼 맹활약했다.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일도 있다.

투구폼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던 좌완 정통파 투수였으며[13] 한국에서 실력으로 손꼽히는 선수였다. MBC스포츠의 재일교포 야구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한국에서 최초로 싱커를 던진 투수'라는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선 프로지명도 못 받았지만, 그 정도 변화구로 한국 실업야구에선 에이스였다고 한다.[14] 그러나 9경기 연속 완투라는 세계 신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친 혹사와 잘못된 관리[15]로 인하여 5년도 버티지 못하고 투수를 포기하게 된다. 이후 야수로 전향하여 기업은행 4번타자를 맡기도 했지만 결국 선수생활을 일찍 중단하게 된다.

2.1. 2016 시즌

올해도 목표는 우승이라는 등의 언플을 동원해가며 자신감을 표출하였으나 앞서 이적시장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더니 2016시즌에서도 과도한 퀵후크로 불펜 과부하를 유발시키고는 그것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등 혜안은 없고 고집만 남은 야구를 하다 5월에는 허리 수술 문제로 입원하여 감독직 수행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국 2년동안 온갖 무리수를 두며 거액을 허비하고도 2016 시즌을 7위로 마감한다.

시즌 종료 후, 엠스플뉴스에서 김성근 감독의 전횡에 대한 폭로 기사를 잇달아 쏟아냈다. 아주 작심하고 쏟아내는 이글스의 현재 실상에 팬들은 경악조차 못하고 정신줄을 놓을 지경.


2.2. 2017 시즌, 그리고 경질

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 결국 한화그룹에서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박종훈 전 LG 감독을 영입하여 한화 이글스 단장에 임명, 김성근 감독이 2군에 간섭하는 것을 통제하는 등 점차 입지가 작아져 갔고, 이를 용납하기 힘든 김성근 감독은 이내 박종훈 단장과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2년동안 팀을 착실하게 갈아먹은(...) 후유증으로 구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등 투자를 해 주었음에도 시즌 초반부터 팀이 하위권을 전전했고, 그러던 차에 5월 21일에 삼성과의 경기 도중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 사건으로 인해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가 결국 더는 김성근 감독의 지위를 보전해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의 체면을 생각해 대외적으로는 사의 표명으로 발표되었지만, 어쨌든 이로서 김성근 감독은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을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짓고 만다.

3. 야인(野人) 김성근

3.1. 아웃사이더 김성근

2000년대 이전까지는 완벽한 아웃사이더 기믹.[16] 재일교포 2세로 아무런 연줄 없이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감독을 하게 되었고, 약팀으로 돌풍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일으키면서도 토사구팽마냥 구단으로부터 버려지며, 그럼에도 다른 팀에서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내며 재기하는 등의 경력을 반복해왔다.

우선 아웃사이더의 제 1 원인으로 출신이 꼽힌다. 한국으로 영구귀국한 이후 그를 끝없이 따라다니던 단어는 쪽바리로,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반일감정이 얽힌 재일교포 문제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고 한국말이 어눌하다는 이유와 이런저런 차별로 인해 체육계에서 배척받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17] 현역 선수 은퇴 이후에는 어눌한 일본 억양의 해설로 항의를 받고 물러나는 등 김성근이 현장 외적인 일로 언론에 비치면 좋은 말이 나오는 법이 없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독고다이스러운 야구철학이 꼽힌다. 시청자들이 알지 못하는 규정 등에 대해 현장에서 항의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모습이 자주 비치고 거침없는 독설들이 시시때때로 기사로 나오곤 했다. 김성근이 부임하지 않은 다른 구단들에게는 씹어야 제맛인 인물의 포지션. 본인의 고집스러운 징크스 준수라든가 팬 관리 차원의 적절한 립서비스가 부족한 면, 그리고 늘 뚱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모습에 어눌한 말투가 최소한 쌍방울 시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이미지로 보이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야구판에 자기 편 하나 없는 고집스러운 '야저씨'와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스타성이 뛰어나지 않은 편이라 자신의 편에 서 줄 팬이 많지 않았던 것도 큰 몫을 해왔다. 하지만 SK는 달랐다

김성근이 프로야구계에 다시 복귀한 지금은 KBO의 주요 감독과 심판들이 거의 다 본인의 제자 혹은 제자의 제자세대인지라 2000년대 초반까지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는 곱게 희석되었다. 물론 나이도 많고 경력이 원체 어마어마하게 축적된 인물인지라 악감정이 남은 일부 삼성 라이온즈[18] 야구 팬을 제외하면 대놓고 싫다고 티를 낼 수 있는 야구인 자체가 없어진 상황이라…. 그리고, 까던 팬들도 정작 자기 팀 성적 막장이면 성큰옹 찾기 바빴다. 한화 감독으로 오면서 설쳐댄 김성근의 팬들 때문에 각 팀팬들에게 안티가 증가하였다.

3.2. 지도자 김성근

여러 팀을 거치는 동안 선수들과의 원만한 관계와는 달리 구단 고위층과 불화가 많았다. 김성근은 프런트가 현장에의 선을 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선수단 운용에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을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구단 사장인 신영철의 막걸리 야구 드립은 이러한 불화를 내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성근 감독의 발언이나 팀 운영 양상이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은 이유 또한 프런트가 김성근 감독에게 불리한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하여 '월급 받아먹으면서 언론플레이도 못하고 언론으로부터 감독을 보호해 주지도 못 하는 능력 제로의 프런트'를 지탄하는 팬들 또한 존재했다.

그랬던 전례 때문인지 김성근 감독의 전 소속팀였던 고양 원더스의 프런트에서는 최대한 김성근 감독의 요구에 맞게 선수단 육성 전권을 부여하였고 비교적 마찰 없이 김성근 감독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있다. 물론 프로야구단이 아닌 독립야구단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결과 김성근 감독은 감독 계약 2년 연장에 사인하였다. 고양 원더스와의 최초 계약에는 '언제든 프로팀이 부르면 조건 없이 떠나보낸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열심히 믿고 따라준 선수들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그리고 새 계약에서는 위 조항마저 삭제함으로써 사실상 2014년까지 고양 원더스를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사 그리고 고양 원더스가 해체될 때까지 그는 원더스를 책임졌다.

4. 구설수/논란

김성근/구설수 항목을 참조.

5. 경기 운영 스타일

불펜 투수들을 가능한 한 많이 돌려가며 상대팀 타자들을 막는 스타일의 벌떼야구로 유명했다. 이는 김성근 감독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굳어졌을 정도. 하지만 이러한 운영은 정말 불펜야구를 선호해서라기보다는 제대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가 없고 구위 좋은 중계투수도 부족했던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측면이 있다. [19][20]SK의 예를 들면 처음 부임했을 당시 이승호채병용은 거듭된 혹사로 몸이 망가져 있었고 신승현, 엄정욱, 윤길현 등 젊은 투수들도 전임 조범현 감독의 관리 소홀로 구위를 상실한 상태였다. 반례로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3명의 선발투수를 확실한 주축으로 삼았으며 타자가 벌떼였다. 또한 2009년 SK 와이번스의 경기당 투입한 투수 수는 3.9명으로 8개팀 중 6위였고[21] 2010년에는 무려 8개팀 중 7위로 하위권이었다. 이 당시 김성근 감독의 성향은 선발이 길게 못 가더라도 불펜 투수 한사람 한사람의 이닝소화율을 높여 선발의 부담을 더는 것이었지 잦은 불펜 교체가 아니였다. 이마저도 단순한 불펜 교체가 아닌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운영을 했는데, SK와이번스 재임시절 당시 더그아웃에서 김성근 감독의 가까운 자리에는 경기 내용을 기록하는 구단 기록원 안교훈씨가 함께 했는데 기본 임무는 경기 내용 기록과 야구규약의 확인, 투수교체와 관계 있는 타임의 횟수, 그리고 투구수의 확인이며, 투구수는 감독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표시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양 팀 라인업 카드에 투수들의 최근 3경기 투구수가 색깔별로 다르게 적힌다. 2경기 전 투구수는 빨간색,직전 경기 투구수는 파란색이다.
이 방식을 채택한 것은 감독이 투수 교체를 고려할 때 보다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경기 전 김성근 감독 자리에는 또 하나의 투구수표가 자리잡는데,투수들이 불펜에서 공을 던진 횟수와 투구수가 포함된 숫자가 경기별로 적혀 감독은 이들 숫자들을 바탕으로 마운드를 운용한다.
관련 기사

KBO의 트렌드가 된 매우 타이트한 불펜 운용을 처음 시작했다. 그 때문에 혹사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정우람, 전병두, 이승호 등 김성근 감독 시절 SK의 주축 중간투수들은 타 팀의 계투보다 평균 10이닝 이상을 더 소화했다. 그럼에도 부임시에는 굴리는 데 비해서 이상할 정도로 퍼지는 선수가 잘 없었던 편인데, 이는 김성근 본인의 기준에 맞춰 철저하게 관리하는 까닭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임 후에는 대부분 혹사로 인한 부상과 부진의 늪에 빠진다. 관리를 안 해주면 망가지는 상태로 투수를 육성하고 운용하는 것. 심지어 외과 의학서적까지 공부하고 의료진과 교섭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직접 투수 어깨를 관리한다고 한다. 물론 투수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이만큼 습득할 때까지 망가진 투수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22] 김성근의 팬들은 그의 부임하는 동안 시즌아웃당하는 투수가 거의 없어 혹사가 아니라 주장하지만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소모된다는 초크 이론과 100년 이상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취하는 운영방식을 봤을 때 김성근의 불펜 운용은 충분히 혹사로 볼 수 있다. 다만 혹사 후의 관리 노하우가 뛰어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23] 김성근 감독 본인도 혹사로 망가져 선수 생활이 끝장난 사람이었기에 선수의 몸의 한계를 속속들이 알고 기똥차게 관리할 수 있지만, 역으로 비인간적이라 표현할 단계를 훌쩍 벗어난 잔인한 선수 혹사가 일반적이었던 시절 사람이라서 자신 같은 최고급 관리자가 관리 안해주면 바로 망가질 만큼 선수들을 빡세게 굴리는 데 별 문제점을 못 느낀다는 얘기도 된다. 대신, 본인의 혜안과 관리능력으로 오히려 혹사당해 망가져 가거나 삼류 선수 취급받는 선수들을 재활시켜서 S급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써먹을 만한 A급, B급 선까지 끌어올린 역사가 많다. 고효준같은 선수는 만년 삼류 취급을 받기도 그렇고, 먹고 살아야 하니 차라리 다른 팀에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걸 보고 너 정도로 절실하면 뭐든 할 수 있다라며 부활시켰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김성근 감독은 '이기고 싶지만 선수를 망가트리면서까지 이기고 싶지 않다'는 말을 썼다.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김성근 감독은 KIA 타이거즈에 강한 김광현을 선발 라인업에 올리라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올리지 않았다. 당시 김광현은 2009년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타구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기에 시즌 아웃상태였다. 때문에 김성근감독은 우승보다도 선수 보호를 택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SK가 리그 정상급의 선발진을 보유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불펜 소화이닝이 굉장히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투수의 컨디션을 잘 파악하고 한계 직전까지 끌어가는 데는 독보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리그의 경기 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여기고 있다. 선수들의 부상이 잦았던 2009년에는 총 경기수가 너무 많다거나 월요일에 경기를 하면 문제가 있다는 등의 의사를 밝혔고 언론에 의해 전해지면서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프로 경력 초창기부터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김성길, 태평양 돌핀스 시절의 박정현,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의 박노준[24], LG 트윈스 시절의 이동현,장문석신윤호, SK 와이번스 시절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채병용, 2010 시즌의 박경완, 전병두가 혹사를 당한 예. 그러나 김성근 본인은 혹사를 부인하고, 선수들도 혹사당했다고 분개하기보다는 중용해준 것을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다.[25] 한편 혹사한 선수들에게 적절히 휴식을 부여하면서 시즌 내내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며 무엇보다 선수 재활에 뛰어난 감독이다. 타격 자세와 투구폼 교정, 투수 재활 등 살리고 고치는 데 매우 뛰어나다. 이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던져도 적절한 휴식 부여와 재활, 교정 등을 통해 부상까지 가지는 않게 만들었다.

공격시에는 주전경쟁을 만들기 위한 플래툰 기용을 즐겨 했고, 번트를 자주 이용해 한 점씩 쌓아가는 스몰볼을 하였는데 이것도 처음 SK 감독 부임 당시 스타플레이어, 확실한 4번타자가 없고 전체적으로 타격이 약한 팀이었기 때문에 작전 야구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김기태가 있던 쌍방울이나 이만수가 있던 삼성 호화타선을 거느리고도 작전야구 성향이었고 부임 당시의 SK 또한 수비의 약점을 무시하면 이호준, 김재현, 박재홍이 포진했었던 등 클린업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어쨌건에 본인은 만약 타격이 강한 팀의 감독을 맡았다면 작전이 아닌 그냥 강공 야구로 간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롯데의 타선[26]이 있다면 작전 따윈 안 썼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실여부는 확인바람.사실 그 시절 SK의 투수진에 롯데의 타선이 합쳐졌으면 작전이 필요나 할까.

한편 선수의 정신력을 강조하는 편이라 태평양 감독 시절에는 겨울에 선수단을 이끌고 눈 덮힌 산에 올라가 얼음장을 깨고 찬물에 들어가게 하는 등 극기훈련을 실시한 적도 있다. 과거 학생들을 지도하던 시절에 썼던 방법이라고. 서로간에 감정이 있거나 친하지 않은 선수들도 흙밭에서 뒹굴며 훈련하거나 산에 올라가며 서로 손 잡아서 이끌어주는 등의 행동을 며칠 하면 자연스레 친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지독할 만큼 노력을 중요하는 감독이라서 스타급 고참 선수나 재능을 과신하는 천재형 선수들도 본인이 보기에 게을리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라인업에서 빼버리는 등 엄하게 다루며, 결국 뒷끝이 좋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잦다. 한대화 같은 유명 케이스는 물론, 김재현도 (지금은 평범한 사제지간이지만) 한때는 기용을 두고 마찰이 생겨 굉장히 껄끄러운 관계였다고 하며, 김광현이나 최정같은 재능형 신예들에게도 굉장히 엄하게 대하는 편.

6. 발음

김성근을 싫어하는 이들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발음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엔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국에 몇십 년 살았는데도 왜 일본식 발음을 고수하느냐며 까는 경우도 있었고 김응용 감독도 비슷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재일교포 출신이다 보니 어렸을 적 일본어 어투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발음이 부정확한 가장 큰 이유는 고교 야구부 감독시절 제자 뒤에 서 있다가 제자가 휘두른 방망이에 맞아 앞니가 모두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27]. 때문에 일본어 발음 역시 다소 부정확하다고 한다. 과거 SK 와이번스의 동계훈련을 일본의 어느 TV가 취재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일본어로 말하는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 부분도 자막 처리했다고 하니. 근데 이건 문제가 아닌게 일본 방송사들은 자막처리 엄청 자주 한다.(...) 멀쩡한 일본어 발음에도 자막 처리가 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게다가 김성근은 교토 출신이라 더 그렇다.한국도 그러잖아

말빨 하면 야구계에선 김동엽과 함께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야구에 대해서 말할 것도 없이 해박한 인물인지라 한때 방송국에서 해설가로 와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고 실제로 1970년대 후반 해설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불분명한 발음이 문제가 된 데다 중계 도중 일본어 표현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야구 팬들의 항의를 받고 달랑 한 경기 만에 하차한 아픔을 겪은 적도 있다.[28]

7. 사제 관계

7.1. 제자 사랑

세간에 알려진 무자비한 호랑이 선생님 이미지와는 영 다르게 제자들을 매우 아끼는 지도자이다. 이제껏 그가 가르쳤던 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으며 김성근을 만난 후 프로 세계에서 눈을 뜬 선수들이 많아 그가 이끌었던 수많은 선수들 중에는 그를 대 스승으로 모시는 선수들이 많다. 그 면면을 보면 박철순, 양준혁, 이승엽, 이상훈, 김재현, 최동수, 이진영, 정대현, 윤재국, 류택현, 신윤호, 임창용, 배영수 등...[29] 심지어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선수생활을 한 적이 없는 마해영도 김성근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히 언급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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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등학교 감독 시절 김성근. 오른쪽은 당시 고교선수로 뛰었던 조범현KT 위즈 감독.

충암고 시절에는 제자의 타격을 봐 주다가 배트에 맞아서 이가 부러졌는데 제자가 부담을 가질까봐 재치를 발휘하여 '내가 집중을 안해서 이렇게 부상당했으니 너희도 조심해라'라고 말하며 오히려 부상으로 가르침을 주었다. 야인이었을 때도 전국 각지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인스트럭터 일을 하였고 한때는 박찬호김병현을 일대일로 지도한 적도 있다.

LG 트윈스 시절에는 이병규가 아주 호되게 혼나서 '넌 야구를 할 자격 없으니 집으로 가버려라!'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그 이후로 김성근에게 깍듯하며 멀리서도 보고 달려와서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병규가 김성근 감독을 보고 달려와 백허그를 한다고. 반면 이상훈의 트레이드 마크인 장발과 수염은 당시 김성근 감독이 매우 싫어하던 스타일이였으나 태도가 바르고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훈고양 원더스로 오면서 광속 삭제 혹사 논란이 있는 이동현 또한 인터뷰에서 수술 후 가장 걱정을 많이 해준 분이라며 고마움을 밝혔다. LG 이동현 ① "김성근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 뿐"[30]

임창용 또한 19세 해태 신인 시절, 자율훈련을 하지 않고 놀러 다니자 불러 집에나 가라고 했다고 한다. 임창용이 찾아가 빌자 완고할 것만 같았던 김성근은 '나와 1년만 열심히 하자'며 자신을 만들어 줬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에이전트를 통해 칭찬을 하자 과분한 말씀이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강동우도 의외로 김성근 감독을 은사로 꼽는데, 그 이유가 쌍방울 감독 때 언더핸드 선수를 자주 내주는 덕에 신인이었던 자신이 플래툰으로 나갈수 있었다고... 이후 강동우는 큰 부상을 당하고 재활 중 삼성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재회하게 되며, 자신의 타구에 맞은 동료 선수를 본체만체했다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에 불호령을 듣고 크게 반성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31]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구단에 의해 은퇴하려는 선수를 보호하다가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적도 었고, 프런트와 신경전을 벌이다 짤린 적도 많다.[32] 또한 선수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 선수협의 노조 전환을 긍정적으로 본 거의 유일한 현직 야구인이다. 당시 한화 감독이던 김인식 감독이 '선수협의 노조 전환은 시기 상조이며 전환을 해도 바뀔 것은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랍고도 대단한 사람이다.

2010년 12월에는 인터뷰 선수협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통해 선수협에게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9.10구단 창설에 가장 긍정적이어야 할 선수협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가. 현행 FA제도는 강자들만을 위한 제도이다. 선수협에 이에 대해 이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연봉 별로 못 받는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선수협의 몫인데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가.' 등등... 선수 연합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협의 비시즌 휴식기간 훈련금지 주장에 대해서도 훈련지상주의자라 마뜩찮은 감정을 보여왔으나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연봉 낮은 사람들과 높은 사람들 간 차별을 통해 낮은 사람들은 훈련하고 높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등의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관심을 표했다.

2012년 6월 10구단 창단이 유보되자 '10구단 반대하려면 NC는 왜 승인했나'는 등의 발언도 하고 선수협 10구단 창단지지 서명운동을 할 때 직접 서명운동을 하는 등 선수협이나 선수 권익 활동에 협조하였다.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은 김성근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태클을 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SBS 야구 프로그램 야구본색에서 나온 전 쌍방울 레이더스 외야수이자 현 성균관대학교 야구부 감독 연수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을 거쳐간 제자들이 한 명 한 명 무엇을 하고 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제자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회갑연을 열어 주었던 것으로 보아 많은 제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33]

현재 프로야구팀 감독중에 5명이 김성근 감독의 제자이다. 김경문(NC 다이노스), 조범현(KT 위즈), 양상문(LG 트윈스), 김기태(KIA 타이거즈), 김태형(두산 베어스)감독이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시절에 야구를 배웠다.

7.2. 반대 사례

한번 자신의 눈 밖에 난 선수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한대화는 OB 시절 개인훈련 중 약수터 바가지로 인해 간염에 걸려 팀 훈련을 체력적으로 따라갈 수가 없었는데, 김성근 감독은 이를 태만이라고 판단하여 한대화를 팀에서 배제하다가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시켰다. 이 때 한대화는 해태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고향팀인 빙그레 이글스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며 대둔산으로 잠적 홀로 개인훈련을 하나, 임의탈퇴 단계로까지 몰리게 된다.[34] 이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1997년 해태에서 LG를 거쳐 쌍방울로 오게 된 한대화는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이던 김성근과 다시 만나게 된다. 김성근은 한대화에게 3루수 출장을 원했으나 한대화는 노쇠화에 따른 기량 저하와 체력 부담 등으로 고사, 김성근 감독이 바라는 포지션도 훈련량도 소화 할 수 없자 다시 눈 밖에 났고 결국 한대화는 벤치와 2군을 전전하다 그 해 그대로 은퇴한다. 쌍방울 구단에서는 한대화가 나름대로 대선수이고 스타였음을 감안하여 은퇴식을 치뤄주고자 했으나 감독인 김성근이 두 번이나 반대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히 악연이라 할 만하다.

한화 이글스의 유격수 이대수 또한 SK 와이번스 1기 시절 오버스로로 송구하지 않고 사이드암으로 송구한다는 이유로 찍혀[35]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시키기도 했다.[36]

또한 특유의 벌떼식 기용과 자유자재 플래툰이 더 많은 이닝/타석에 들어서고자 하는 선수들과 충돌하는 경우도 잦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이만수, 김성래, 류중일, 강기웅 등 당시 삼성의 주축 선수들과 이런 이유로 갈등관계를 형성했다. 특히 이만수와는 80년대에는 팔뚝 힘줄 때문에 사인이 다 보인다는 근거없는 비난사람 눈으로 그게 가능한가는 둘째치고에 이어 90년대 삼성 감독으로 와서는 자기 제자들 중용한답시고 이만수를 포수 자리에서 밀어내 버리려고 했는데다가 2000년대에는 성적이야 어쨌든 원래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이만수를 밀어내고 생각보다 오랜 기간 감독을 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팀에서 쳐내려고까지 하는 30년에 걸친 악연이 있다.

SK 와이번스에서도 이진영, 김재현, 박재홍 등의 선수와 포지션 변경이나 플래툰 기용 때문에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진영은 FA로 이적했을 때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악화로 인한 것이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단, 이는 그 전해 부상으로 연봉을 백지위임했다가 일방적으로 2천만원 삭감#을 당한 영향도 있다. 이진영은 데뷔 시절 쌍방울에서 계약금이 없어 붕 뜰 뻔한 상황을 김성근 감독과 코칭스탭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계약금을 지급한 적도 있는 은사이며, FA이적 당일 밤에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해서 FA이적을 상담할 정도로 좋은 관계였다. 이진영의 말에 의하면 FA 우선협상 기간 내내 SK는 적은 금액을 제시하였으며 시장에 나가 평가받아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선협상 기간이 끝나자마자 LG가 접근, 훨씬 많은 돈을 제시하였고 이에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보장액부터 10억 이상 차이 났으며, 김성근 감독은 그 말을 듣자 야구선수가 FA하기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박재홍은 김성근 감독 경질 직전에 '나는 땜빵'이라는 말을 덕아웃에서 했다가 본보기로 2군행을 당했다.

김재현의 경우는 LG 트윈스 시절의 관계도 있고 하여 표면적인 관계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2007년에는 이재원과의 플래툰 기용에 대하여 다소 불만을 품고 부진까지 겹쳐서 은퇴까지 고려했다. 이는 은퇴 이후 2012년에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김성근 감독에게 직접 트레이드를 요청했을 정도로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본인이 확언한 이야기. 그러나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대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2009년에는 주장도 맡고 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조언으로 은퇴 후 진로를 변경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회복하며 2014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 코치로 부임하였다.

SK의 전 투수 조영민은 그 날 팀사정상 120구를 던지고 손가락 물집과 야수 등록으로 2군에 내려갔으나 이걸 벌투했다고 날조하고 그 이후 2군에 처박고 한 번도 안 쓴 거처럼 날조하고 있는데 실상은 2008년 38경기를 나왔으며, 바로 그 사건이 있고 1군 엔트리 제한인 10일 후 바로 1군 엔트리에 진입하여 그 해를 1군에서 뛰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입대 이후 2011년 복귀했다가 2012년 방출되어 LG에 입단했다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이만수 때 방출된건 덤 실제로 조영민은 지금도 김성근과 잘 지내고 있다고 기사도 올라왔었다.
http://m.ppomppu.co.kr/new/bbs_view.php?id=baseball&no=441284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629685

오히려 조영민과의 사이가 나쁜건 김인식으로, 한화 시절에 조영민이 김인식에 대해서 불만을 품자, 괘씸죄로 SK에 조원우를 상대로 트레이드 시켰다.

또한 눈 밖에 났다고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2015년 4월 12일에 이동걸에게 빈볼을 지시하여,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동걸의 출장 정지 징계는 오직 1군에 등록되어 있을때만 일수가 줄어들며, 기간동안 2군 출전마저 불가능하다. 즉 김감독이 이동걸을 1군에 등록시켜서 일수를 줄여줘야 하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부분.

제자였거나 제자뻘인 감독들과도 사이가 안 좋다. 위에 언급된 류중일, 이만수, 한대화부터 시작해서 윗 문단에 언급된 김경문[37], 김재박[38][39], 김시진[40], 이종운[41], 김용희[42] 등이 대표적으로 김성근과 사이가 안 좋은 감독. 익명의 감독은 대놓고 더러운 야구한다고 까기도 했다.

8. 별명들

8.1. 야구의 신

'야구의 신' 혹은 줄여서 '야신'이라는 별칭은 2002년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우승소감 중 "LG 김성근 감독이 워낙 잘했어요 '신이 아닌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라는 발언에서 유래. 김성근 감독 본인은 이 발언에 대해 '내가 신이면 나를 이긴 자기는 뭐가 되는 것이냐'라며 웃어넘겼지만, 당시 삼성과 LG의 전력차는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급의 격차였으며 시리즈 스코어는 4:2였지만 마지막 6차전에서 시리즈 내내 삽을 푸던 이승엽이 동점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지 못했더라면 향후 분위기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응용 감독의 소감은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김응용 감독이 이런 식의 언론 플레이의 대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김성근 감독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실제로 김응용의 말에는 항상 반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자기가 강하면 비하하고, 약하면 과장하는 등. 실제로 야신 발언은 우승한 다음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상대를 띄워서 자신을 더 높인 화술이라고 보는 의견도 상당하다. 물론 이 경우는 김성근 감독 역시 이걸 간파한 것이 되므로, 만만치 않은 화술의 소유자가 된다.

KBS N sports의 '한국야구 레전드'에서 김응용 감독이 회상하기를 '신도 여러가지 신이 있다'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표정으로는 아마 병...신 링크

사실, 김성근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김응용 감독과 맞붙어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김성근이 97년까지 해태 감독이었으면 10번 넘게도 우승했을거다' 내지는 '우승 많이 했다고 뛰어난 감독이면 김재박이 김성근보다 뛰어난 감독이냐', 심지어는 '약팀에 간 적 없는 김재박에 불과한 주제에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등의 비아냥이 다수. 이러한 비아냥은 대개 김응용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는데다 모기업이 작살나고 선수들이 팔려가고 하는 꼴 보고 빡쳐서 감독부터 태업을 해버렸던 1998~2000년의 해태 성적에서 기인한다. 마침 김성근이 쌍방울 레이더스를 이끌고 돌풍을 일으켜서 하위팀에 기적을 가져오는 명장 이미지를 굳힌 시기가 90년대 중반이기 때문에 시기가 미묘하게 이어져서 대비된 효과도 있다.

김응용의 1983년 해태 타이거즈 우승을 예로 들며 그도 하위 팀을 재건한 경력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가 14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던 것은 1983년이 아니라 1982년 원년이었으며, 그 선수단을 갖고도 팀홈런 1위를 기록하고 홈런왕인 김봉연, 도루왕인 김일권을 보유했던 재능 자체는 흘러넘쳤던 팀이었다. 1983년 우승을 노릴 만큼의 저력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 1983년의 선수단은 20명 이었다. 상대였던 MBC 청룡의 내분도 있었고. 그 뒤 두 시즌동안 잠수탔다가 선동렬 등 호화멤버가 들어오는 1986년부터 2차 전성기를 맞았는데, 이는 호남 지역 아마야구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지 딱히 김응용의 리빌딩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슈퍼스타들을 다루는 능력이야 인정할 수 있지만. 애시당초 지역 연고 지명에 FA제도도 없었던 1980년대에는 리빌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43]

80년대 해태는 빼놓고도 쌍방울에 대해서도 무지한 소리다. 83해태에 김봉연김일권이 있는 걸로 따지면 쌍방울에는 김기태부터 박경완, 심성보, 조규제 등 김성근 감독 부임 전부터 해태보다는 좋은 전력이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김기태와 조규제는 그렇다 치지만 박경완은 1991년 입단 당시만 해도 친구 따라 강남 온 신고선수에 불과하였다. 그 이후의 성적 또한 홈런은 두 자릿수 이상 쳤지만 타율은 2할 중반도 칠까말까 하는 수준이었으며, 박경완을 예로 드는 것은 지금의 모습으로 당시를 생각하는 잘못된 시선이다. 포수로서의 가치는 분명 조범현의 조련으로 충분한 가치를 보유하였다.

그러나 타격 부분에서는 1997년 정도를 제외하면 딱 그 정도 선수였지, 지금과 같은 레전드의 반열로 볼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또 박경완이 김성근 시기에 딱히 성적이 올라갔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순위와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것은 박경완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김성근 감독의 능력이 출중하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쌍방울 시절이나 LG 시절 김성근 감독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그의 부임 전이나 후나 성적 차이가 그렇게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에 있다. 즉 기존 선수가 예전의 그 능력 정도를 발휘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것을 뛰어난 운용으로 메워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근데 그런 거면 한화 좀 불안한데...

심성보는 포텐은 있었으나 95년 김성근 감독 부임 전 타율이 2할 3푼 수준밖에 안 되는 별볼일 없는 타자였다. 게다가 그리고 80년대 초반에 쓸만한 선수 한둘이 미치는 영향과 90년 중반에 쓸만한 선수 한둘이 미치는 영향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1982년 OB의 박철순이나 1984년 롯데의 최동원, 특히 1983년 삼미의 장명부를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해태의 선수진 중 김봉연과 김일권이 대표적이었던 것이지, 이미 당시 해태는 원년부터 타자로는 김봉연을 포함하여 김성한, 김종모, 김준환으로 이어지는 K포 라인이 건재하였다. 특히 김종모는 좌효조, 우종모라고 불리는 최고의 교타자였고, 여기에 전술한 초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1번 타자 김일권까지 있었으니 당대 최고의 강타선 중 하나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실업야구를 호령하며 검증된 타자들이었다. 투수로는 해태 초기의 에이스 이상윤이 원년에는 부상으로 부진하였지만, 83년에는 20승을 거두며 다승 2위에 올랐다. 애초에 82년도 부진이 특수 상황이었던 것이고, 하나 가지고 게임을 매조지하던 당시에 이런 든든한 에이스 하나 있다는 건 투수진 구성이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던 시절이다. 여기에 김응용 감독이 들어오면서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이 입단하며 안방을 튼튼히 하였다. 같이 들어온 투수 주동식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83년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며 해태의 우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잘 살펴보면 이들 선수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선수들이었고, 83년 김응용 감독이 '키웠다'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사실상 없다. 이런 든든한 배경을 이미 갖춘 상태에서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순철, 이종범 등이 하나둘 새로이 들어오며 역사를 이어간 것이지, 리빌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감독의 주 덕목이 선수 육성은 아니다. 많은 팬들이 감독의 주 덕목이 선수 육성으로 착각하는데 실제 감독이 가져야할 가장 큰 덕목은 선수단 관리, 선수단 장악, 전력 구상과 같은 '시즌 운용'이다. 선수단 관리를 전적으로 프런트에 맡기는 단장 야구를 구사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감독이 선수 육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드문데 감독이 선수단 관리까지 도맡아하는 한국에서 감독이 직접 선수를 육성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 또한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감독론에서 할 논의이고, 실제로 김성근 감독이 맡은 팀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선수가 성장해서 나오는 반면 김응용 감독은 처음부터 좋다고 평가받던 선수를 뽑아서 기용하고 하는 케이스가 주로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감독으로서 김응용 감독이 이 부분 때문에 욕먹을 것은 아니지만, 김성근 감독에 비해 그러한 분야에서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최고 수준의 감독들 사이에서 원래 감독이 해야 할 능력은 어느 정도 다 그 이상으로 갖췄으므로 이러한 부분의 차이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순전히 김성근 감독의 비정상적인 성향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김성근 감독에 비해 김응용 감독이 약팀에는 맞지 않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1994년까지 해태가 2군조차 없었음에도 이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호남팜의 튼튼한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만큼 성장해서 오는데 구단에서 따로 키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차 지명조차 필요 없었다. 1차 지명에서 S급 선수 하나둘 잡아오면 그 선수가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5년 1차 지명 이순철과 선동열, 1988년 조계현, 1989년 이강철, 1992년 박재홍, 1993년 이종범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고 해태 타이거즈를 상징하던 선수들이 하나 같이 1차 지명에서 이미 지명되었다. 물론 호남은 경상도나 서울에 비해 야구가 늦게 시작되었던 만큼 그 인재 풀 자체가 두텁지는 않았으나, 광주일고, 군산상고 등 야구 명문들을 중심으로 초고교 수준의 선수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당시 호남팜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김응용 감독 시절 해태 타이거즈는 이미 탄탄하게 구성된 스타 선수진을 김응용 감독이 잘 두들겨패서 꾸려가면서, 탁월한 안목으로 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들을 뽑거나 트레이드하여 왕조의 역사를 이어갔다고 보는 쪽이 맞다.

감독에서 은퇴하고 삼성구단 사장에 취임한 김응용은 인터뷰에서 아직 현역으로 2연패를 이룬 김성근과 김응용 본인의 감독 현역 시절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자신이 소속팀을 10번 우승시키는 동안 김성근은 우승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즉 야신 발언은 승자의 관용이자 호적수에 대한 립서비스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김응용은 라이벌 의식이 있는 기업인 삼성LG한국시리즈에서 진 감독은 대부분 경질되는 것을 잘 알기에 김성근이 시리즈 후 경질될 것이고 나이가 60이 넘은 그가 다시 프로야구 1군 감독으로 복귀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44] 따라서 젊어서부터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경쟁해오며 40년 세월 야구계에서 함께 지냈었던 동년배 경쟁자에게 진심어린 마지막 예우를 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그의 입에서도 적장을 '야구의 신'이라 부르는 최고의 예우가 나왔을 것이다. 보통 김성근을 지지하는 이들은 인천야구팬, 쌍방울, SK, LG 팬들인 경우가 많고 김응용을 지지하는 이들은 해태팬, 삼성팬들이 많기 때문에 이 문서와 김응용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의 지지자들은 사이가 매우 나쁘지만, 정작 본인들의 사이는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며 프로야구판의 이슈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김성근은 다시는 프로야구 감독을 못 맡으리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2006년 SK와이번스 감독으로 복귀하고 야신의 명성을 굳혀나가게 된다.

야신이라는 명칭 때문에 야신상의 모델이자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과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다. 2회 WBC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김인식을 어떻게든 도와주겠다는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감독이 같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도중에 야신이 김인식을 도와준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프레이즈가 등장했었다. 그러자 왜 축구 선수가 우리 김인식 감독을 도와주냐는 질문이 나와서 인터뷰 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김성근도 웃으면서 이러니까 야신이라고 좀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러나 SK를 맡은 뒤 보여준 엄청난 성과와 나이를 초월한 김성근의 언행 덕분에, 야신이라는 별명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김성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만큼 김성근을 상징하는 별칭으로 굳어졌다.

여담으로 야신의 유래를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백종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이 2014년 11월 3일 스포탈코리아에 쓴 '(야구는 구라다2) 야신의 평생 열등감 - 김응용'에 나와 있다. 기사 말미 '에필로그 - 야신의 유래'를 보면 김응룡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야신이라고 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하도 작전이 많고, 변화가 심하니까 못마땅해서 비꼬아 한 소리라고 한다. 다만 그 칼럼의 전반적 내용은 김성근 감독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므로 백종인 칼럼니스트가 김성근 감독을 격하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스포탈코리아

8.2. 인천예수

야신이라는 별명 외에도 김성근에게는 인천예수라는 별명이 있는데, 사실 호의적인 뜻에서 시작된 별명은 아니다. SK갤러들이 김성근 감독에 대한 비판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를 혐오하는 타팀 팬들이 SK 와이번스 갤러리를 중세갤이라 부르고 김성근 감독을 예수라며 비꼬면서 생긴 별명이었던 것. 애당초 인천예수라는 말을 처음 만든 것도 SK갤러들과 싸우던 두산 팬이다.

그러나 태평양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 인천팬들에게는 김성근이라는 인물 자체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예수라는 별명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컸고, 최근에는 오히려 SK 팬들이 앞장서서 인천예수라는 말을 사용하며 김성근 감독 팬질부흥의 새 역사를 쓰고 있으니 아이러니.

김광현의 결혼식 때 한 말이 많은 칭송을 받았다. 그가 한 말은,
포기하지 마라. 이 위기를 넘겨야 진짜 강해지는 것이다. 괴로워하지 말라. 나중에 그들이 무릎꿇게 만들면 된다.

정말 제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지도자의 말이다.

8.3. 그 외

  • 김성근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잠자리 눈깔이라고 한다.#[45] 다방면으로, 다각적으로 모든 정황 및 상황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 한다.

  • SK 갤러들은 송도큰형이라는 별명을 많이 쓴다.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인천 할아버지'[46]는 별명이 어떠냐 묻자, '인천 사는 건 맞는데, 할아버지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본인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손자도 없는데 할아버지, 노인 이런 말 싫다고. 감독으로서의 자기 철학과도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오냐오냐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훈육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선수들은 자기 자식들과 다름없는 존재이기에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47] 이에 이기광이 '인천 큰형'이라고 하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이기광 너이ㅆ...

  • KBS에서 SK 2군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때 후드티청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 예미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사적인 자리에서의 패션을 보면 일흔을 앞둔 나이라고는 볼 수 없을만큼 젊은 패션감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 타팀 팬들은 비하적인 의미로 성큰, 슼상님[48]이라 부른다.

  • LG 트윈스의 경우는 위의 인천예수에서 파생된 쥐쟈스[49], 잠실예수라고 부른다.

  •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시범경기내내 부진한 성적과 자극적인 오랄질 언론플레이 때문에 생긴 반감으로 김일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게다가 老동당, 종큰 등으로 모자라 아들 김정준과 양아들 송은범까지도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엄청난(...)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시즌에 들어가니 달라진 한화를 보여준다 그런가? 수령니뮤ㅠㅠ

  • 훈련을 매우 중시하고 지도자/선수 가릴것 없이 모두다 열심히 활동하는걸 선호해서 식초영감이라고 할수 있다.

  • 한화에서 와서 100kg가 넘는 한화 선수들의 살을 엄청나게 뺐고 새로 트레이드한 허도환에 대해서도 곧바로 체중 감량을 지시해 야구계의 숀리(...), 긴숀근(...)이라는 드립이 터져나왔다.

9. 기타

  • 선호하는 등번호 38번은 절친한 사이였던 김동엽감독의 번호이다. 김동엽 감독은 지금 김성근 감독의 아내인 오효순을 소개시켜줬을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 김동엽 감독이 별세하고 추모의 의미로 달았는데, 38광땡이 연상되는 번호라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징크스로 계속 달게 되었다고.[50]

  • 일본 시절 이름은 가네바야시 세이콘(金林星根)이다.[51] 일본에서 살던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워낙 을 좋아해서 항상 만취 상태로 집에 오기 일쑤였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지나쳐야 했던 넓은 기차 선로에서 그만 열차에 치이는 변을 당했고 시신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이 중 1때의 일이었고 이걸 직접 보기까지 했는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마치고 상대 선발투수였던 다니엘 리오스에 대해 '정상이 아니다. 9회까지 150㎞의 공을 던진다는 게 믿을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기사를 읽은 두산 팬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야구 팬들은 노망이 났다는 둥 비난 일색이었고 기자도 말하기가 껄끄러웠는지 단순한 흔들기 발언으로 치부하고 말았는데, 그 뒤에 리오스는 일본으로 진출한 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이미 시즌 중반, SK와의 경기에서 아버지 장례 때문에 미국에 출국한 이후 당일 오전 바로 귀국해 완봉승을 거뒀기 때문에 이 모습이 각인된 김성근 감독으로선 결국 약물복용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당시 야구팬들은 장시간의 비행에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은 리오스의 책임 정신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기량에 혀를 내둘렀다[52]. 어디까지나 리오스가 적발되었으니 나오게 된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약물의혹 뿐만 아니라 시즌중 리오스의 투구폼에서도 보크 의혹을 제기한 적도 있다.

  • 코나미컵, 아시안시리즈, 한일 프로야구 최강전 등을 출전하며 일본을 꺾고 우승해 아시아 최강팀이 되겠다고 우승의지를 불태웠지만 3번 다 좌절됐다. 그 와중에 2008년 대만의 퉁이 라이온스에 대패한 것은 흑역사.

  •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한 덕에[53], 후배 지도자들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고 한국 야구 전반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인터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꽤 좋은 소스 제공자(...)

  • 충암고 감독을 그만둔 후인 1979년에 동양방송에서 야구해설을 맡기도 했는데, 해설 중에 일본어가 튀어나온다는 이유로 금방 짤렸다... 승승장구에 출연해 당시 일화를 말했는데, 투수가 던진 공이 몸쪽으로 꽉차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보고는 이빠이(가득 차서) 들어왔어요!라고 말하고 다음 날 잘렸다고 한다. 결국 그 빈자리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하일성. 근데 백골프는 시도 때도 없이 요시! 그러던데?[54]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방송의 해설위원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 칼같이 정확한 예상으로 또 화제가 되었다. 정확한 해설덕분인지 야구를 좀 좋아하는 사람들(속칭 야빠)은 SBS로 놓고 보기도. 탁월한 야구 식견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특유의 웅얼거리는 말투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은 그의 해설을 듣기 난감했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간혹 야갤에서 볼 수 있는 말투인 마, ~~~하면 되지 시프요... 따위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 2013년 5월 17일 SBS ESPN에서 아들인 김정준 해설위원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LG경기에 대한 부자(父子) 해설을 진행하였다. 1년 뒤 6월 7일에도 똑같은 구장에서 동일한 팀의 경기의 객원해설을 하기도 했다..[55]

  • 2008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의 결과를 정확히 맞춰 작두 탔다는 소리를 들었다. 롯데와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야구계의 전반적인 예상이 기세가 단단히 오르고 불꽃타선을 자랑하던 롯데 자이언츠의 승리를 예상하는 가운데 김성근 혼자서 단기전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승리를 예상했었고, 결론이 삼성의 3연승으로 나왔다. 플레이오프 때도 6~7차전까지의 접전후에 두산 베어스의 승리를 예상하였고 결론적으로 맞아들었다. 2009년 3월 도쿄돔에서의 한일 2차전 후, 'WBC 결승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예언은 그대로 실현.

  • 2010년 포스트시즌이 시작될 때 많은 전문가들이 롯데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김성근 감독은 두산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 2009년 10월 22일 KIA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 5차전 때 경기 도중 선수단을 철수시킨 것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감독 퇴장 1호(...)라는 흑역사를 기록했다. 이것은 2009시즌부터 신설된 '스피드업 규정'에 의한 것으로, 선수단 일부 혹은 전부 철수 시 감독은 즉시 퇴장당하게 되어 있다.

  • 한국시리즈 역사상 2번 있었던, 시리즈를 끝내는 9회말 홈런의 희생양이다. 2002년 LG 감독 당시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 2009년 SK 감독 당시 나지완의 결승 솔로포...

  • 자서전도 있다. 《야신 김성근, 꼴찌에서 일등으로》,《9회말 리더십》,《김성근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자전적인 에세이. 중간중간 자기자랑을 하는 부분도 없지 않기에 살짝 거슬릴 수 있다.

  • 2010년 10월 30일,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동재 KIA 수비코치를 돕기 위한 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자선시합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무려 41년만의 등판. 포수석에서는 영혼의 호구 배터리 김경문 두산 감독이 그의 공을 받아 줬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 타자만 잡고 안타 3개를 맞은 뒤[56] 2점을 주고 자진해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2010년 11월 9일 승승장구에 출연, 그의 야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초대손님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하일성... 김성근 감독은 중간중간 '이 사람 왜 불렀어?'라고 농조로 툴툴거렸다.[57] 한편 이날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한국 신문에 최초로 연속사진을 도입하게끔 한 인물이라고 설명했으며, 선수시절로 돌아가면 이대호와 가장 붙어보고 싶다고도 밝혔다. 그 외 탐나는 선수로는 류현진봉중근을 꼽았다. 또한 자기가 이대호와 류현진을 맡게 되면 그들의 살을 뺄 것이라고(...).이대호는 좀 뺄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한다 2014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는 베이스볼S 김성근의 돌직구에 출연하여 한화로 이적한 조인성의 살을 빼주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며...

  • 2010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스포츠 부문을 수상하였다. 스포츠 지도자로서는 최초라고 한다.

  • 2009년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이 각각 박종훈한대화로 바뀌고, 2010년 시즌 종료 후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물러나고 양승호가 지휘봉을 잡고,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 대신 류중일이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감독이 여섯 명에 달했다(김경문, 박종훈, 양승호, 류중일, 조범현, 한대화). 참고로 김성근과 전혀 연관되지 않은 단 한 명은 바로 김시진. 2012년 시즌 본인이 물러나고 이만수가 감독을 하면서 이제 그의 밑에서 선수생활을 한 감독은 8개구단 중 7명이 되었다(...) 그리고 김성근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인물은 여전히 김시진(...)
  • 2008년 9월 3일 김응용에 이어 2번째로 한국 프로야구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10일 김응용에 이어 2번째로 한국 프로야구 감독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뒤이어 2011년 5월 4일, 대전 한화전에서 7대 4로 이기면서 또 김응용에 이어 역대 감독 중 두 번째로 1200승을 달성하였다.

  • 2011년 8월 들어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2011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기습 인터뷰를 했다. 1121을 찍은 감독이 제발로 뛰쳐나가는 데에서 야구팬들은 응원팀을 불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SK 팬들은 한마디로 패닉에 빠졌다. 배은망덕은 프런트 종특이라느니, 인천예수를 고다 언덕으로 내몰았다느니, 신생 NC 다이노스 1기 팬 모집이니 뭐니 허탈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이 와중에 엉뚱하게 쌍마에서 더 난리인 건 넘어가자. 그러자 SK 프런트는 인터뷰 발표 바로 다음날인 8월 18일자로 김성근을 경질했다.스크 몰락의 시작

  • 2011년 8월 19일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났다. 이를 두고 팬들은 크게 두 가지 견해를 보였다. 하나는 원래 일본 쪽에 인맥이 많은 만큼 휴식 차원의 외유에 불과하며 시즌 종료 후 스토브리그불타는 감독 시장(...)에 나온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실상 국내에선 감독 경력이 끝났고 아마도 일본쪽 오퍼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것.

  • 2011년 8월 28일, 이미 지난 26일에 귀국해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떴다. 미국으로 떠났던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이 잠시 귀국했다 재차 떠난 일도 있고, NC 다이노스의 창단과 관련된 움직임이 아니냐는 설레발추측이 있었다. 덧붙여서 LG 혹은 두산의 영입설도 나왔다. 그러나 LG는 2002년 시즌 이후 결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에 몇몇 야구팬은 '구본준이 무릎 꿇고 빌지 않는한 김성근은 LG에 안 온다'고 호언장담할 정도이고, 두산의 경우 2012년 감독 선임은 경력보다는 인품을 기준으로 뽑겠다며 은근슬쩍 김성근을 배제하는 듯한 인터뷰를 한 터라...

  • 2011년 9월 15일, 감기 때문에 수원 장안구 Y모 동네병원에 온 것이 포착되었다. 간호사님께 관광타는 모습이 예상 외로 매우 큐트했다고 한다.(...) 근데 선수 출신답게 덩치가 커서[58] 사람들이 사인 받을 엄두를 못 냈다고.

  • 나중에 난 기사에 따르면 성균관대 야구부 인스트럭터로 부임했다고 한다. 10월 4일에는 성균관대에서 강연도 예정되어 있어 성대 야빠들은 다들 설레고 있다.

  • 김성근이 감독을 사퇴한 팀들은 얼마간 암흑기를 겪거나 거의 망해 버렸다. 김성근의 저주 참조.
    - OB 베어스 : 1989년 ~ 1994년 암흑기
    - 삼성 라이온즈 : 1994년~1996년 5-5-6 암흑기 예끼 이게 무슨 암흑기야
    - 쌍방울 레이더스 : 해체SK 와이번스가 창단하여 자리를 대체함
    - LG 트윈스 : 6668587667
    - SK 와이번스 : 팬들의 반발, 그리고 2012년 한 때 진행되었고 2013년 확실해진 DTD

  • 2011년 10월 4일 성균관대 강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강연을 들은 이들은 발음 때문에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내용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는 평. 넷상에 발췌록 등이 돌고 있다. 원래 막말쓴소리를 아끼는 타입이 아닌 만큼 프로야구판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는데, 누리꾼 사이에선 DTD의 법칙과 맞물려 요시 LG는 잡았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 2011년 11월, 동서식품의 초코 미떼 CF에 출연했다. 야구시즌이 끝나 을씨년스러운 야구장[59] 관중석에서 보온병에 가져온 핫초코를 꼬마와 나누어 마시면서 '야구하고 싶다'는 꼬마의 말에 '나도요'라고 답하는 김성근 감독의 대사가 어째 서글프게 들린다는 평도 있었다. 솩빠들이 포풍눈물 흘렸을듯(...) 이 때 꼬마가 "할아버지 야구 잘하세요?" 라고 묻자 김성근은 "쪼끔" 이라고 답했는데... 이 꼬꼬마 녀석아 이분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명감독 이시란다 크리에이터가 솩빠여서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자마자 가서 매달렸는데 계속 고사하는 것을 3달 동안 삼고초려해서 섭외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60]

  •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장난을 좋아하는지 SK 감독 시절 올스타전에서 몸무게 순으로 라인업을 짜곤 했다. 그 결과 통산 도루 9개인 이대호가 1번 타자 출장... 그리고 이대호는 기대에 부응(?)하여 출루한 후 도루를 시도하다 도루사를 당했다...

  • 2012년 11월 22일, MBC 새 프로그램인 <스타로드토크 명사십리>에 첫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시작부터 예미넴 스타일로 등장. 초대 손님으로 장미란, 김재현, 마해영이 나왔으며 야구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 고양 원더스의 구단주 허민이 김 감독의 생일선물로 벤츠 S클래스를 선물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원더스를 이끌어준 '''전문가''의 고마움과 함께 차 안에서 편안히 야구에 대해 전념하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근데 김성근 감독은 운전면허가 없다. 야구 외에 다른 일로는 시간을 좀처럼 쓰질 않아서 그렇다고.. LG 감독 시절에도 지하철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 2011시즌 종료 후 스토브리그 때 한 LG 트윈스 팬이 김성근 감독의 LG 복귀한다고 터트린 거짓 루머때문에 야구 팬덤 한정 '포도주스'라는 은어가 생겼다. 자세한 것은 포도주스 항목 참조.

  • 징크스가 몇 가지 있는데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엔 팀 성적이 좋을 땐 속옷을 안 갈아 입었고, LG 트윈스 시절 연승 중에는 저녁식사를 꼭 삼각김밥으로 했다고 한다. 2008년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때는 SK 와이번스의 원정 유니폼을 입었는데 두산과의 경기에선 원정 경기 승률이 좋았기 때문. 그리고 경기 중에는 화장실을 절대 안 가는데 화장실에 가는 순간 상대팀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는 일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61] 2010년 4월 14일 한화전부터는 '수염을 깎지 않으면 시합을 이긴다'는 징크스를 의식하기 시작해서 승리하는 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있는데 2010년 5월 4일까지 SK가 16연승을 하는 바람에 무려 20일간 수염을 깎지 못했다. 이 수염을 깎게 만든 팀은 다름아닌 넥센 히어로즈. 또한 각 구장별로 가는 화장실 위치를 정해놓고 꼭 그 화장실만 갔다고 한다. 왜 이렇게 징크스를 지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본인의 설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만 지더라도 후회가 없다' 라는 것.

  • 연습량이 어마어마한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감독의 입에서 "너는 그만 연습해도 된다"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악바리였던 선수가 최동수였다. 일례로 최동수는 하룻밤에 스윙을 5,000개씩 했고, 스윙이 끝나고 나면 배트를 쥔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남이 손가락들을 펴 줘야 배트를 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도 손수 최동수의 손을 펴 주었으며, 이에 최동수는 2001년부터 김성근 감독을 통해 프로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게 된다. 최동수 본인의 말에 의하면 매일 화장실 변기를 붙들고 피를 토하던 시절이었다고. 2010년 최동수가 LG에서 SK에 트레이드되었을 때 오히려 최동수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하기도 했다. 이진영 역시 신인 시절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공을 받았다는 사례도 잘 알려져 있다. 류택현은 김성근 감독을 통해 커브를 전수받아 2001년부터 중간계투로 뒤늦게나마 두각을 드러냈다.

  • 2013년 7월 18일 SBS ESPN 베이스볼 S돌직구라는 코너에 출연해서 9개 구단을 평가하였다.

  • 2013년 9월 23일에 시카고 컵스에 있는 임창용김성근 감독을 회고하는 기사를 올렸다.[62]

  •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김정준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가 잘생겼다' 였으며 자뻑? 본인의 자서전에서도 본인의 젊은 시절 외모가 상당했다는 내용이 꽤 자주 언급된다. 물론 젊은시절 사진이 꽤 남자다운 매력이 있는데다 당시에는 180cm가 넘는 장신은 드문 편이었으니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자서전에선 자신의 아내와 딸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예쁘다고 언급하는데(과거 결혼사진을 보면 김성근 감독의 아내는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미인이다) 가족들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듯. 근데 김정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잘생겼단 언급을 한적이 없다

  • 최훈이 김성근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 김성근의 야구관에 대한 최훈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카툰. 다만 예전에는 정우람 혹사 문제로 글과 카툰을 올렸다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논란의 발단이 된 카툰 12 카툰 2. 이쪽은 논란이 가라앉은 다음에 올라왔다. 최근 경질사태 이후에는 삼국전투기삼국전투기 외전에서 SK 프론트를 비꼬고 김성근 감독이 직언을 하나 쫒겨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http://blog.cyworld.com/happiest_pharmacy/3578995

  • 2014년 10월 19일 밤부터 이틀동안 김성근 감독의 이름이 특별한 이유없이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기아 감독이 확정되었지만 팬들의 비난에 안치홍 임의탈퇴 병크로 인해 자진사퇴고 SK 감독에 김용희가 내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는(SK는 확정이 나지 않았다고 부인했었지만 며칠 뒤 임명)마당에 김성근 감독이 과연 어디에 갈까 하는 팬들의 관심이 반영되어 일어난 현상.

  • SK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여러팀의 차기 감독후보로 떠오른다. 특히 최근 그가 몸담았던 고양 원더스가 해체를 발표하면서 김성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언론에서 각 팀의 차기 감독후보로 거론될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두산은 1988년에 안좋게 헤어진지라... 게다가 이전 프런트에서 김진욱 이후 자신들이 생각하는 감독 후보를 말할 때 은유적으로 김성근 감독을 배제한 듯한 표현을 쓴 적이 있다. SK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고... 한화는 프런트에서 이상학 기자를 통해 한용덕 또는 이정훈 같은 내부인사를 감독으로 정하겠다는 의중을 비친 바 있고, 롯데는 프런트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KIA는 충격과 공포의 말도 안 되는 호사방마저 소식을 듣고 분노한 선동열 감독 유임으로 결정. 이렇게 보면 언론의 설레발과는 달리 김성근 감독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하지만 한화 팬들은 위대했다

  •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사실상 최초로 팬들의 강력요구에 의해서 임명된 감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원래 한화 이글스 프런트는 김성근 감독을 임명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프런트의 의중을 알게 된 팬들은 이에 반발. 아고라에 청원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하고, 팬들이 단체로 한화 이글스 홍보팀에 수백통의 전화를 걸고, 심지어 한화 본사에까지 전화를 걸어 그 전화가 회장 비서실까지 닿았다고 할 정도였다. 본사 1인 시위는 덤. 평소 신문을 보는 다이너마이트 김김승연 한화 구단주가 이를 모를리 없었고, 결국 구단 프런트에 김 감독 임명을 지시했다고 한다. 흑역사가 좀 많아서 그렇지 화끈하긴 하다

  •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의 광고를 찍었다. 팀명을 '펑고마비' 로 짓고 게임을 하면서 소파에 누워 어딘지 모를 귀여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백미.

  • 2004년 이치로를 예로 들며 이승엽 및 메이저리그 진출자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 #

  • 김성근이 한미일 야구를 비교하는 인터뷰 #

  • 2015년 4월 2일에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그린 울볼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된다.

10.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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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화의 김성근 감독님 사랑해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 한화의 김성근 감독님 사랑해
  • [2]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현대에게 지면서 3위
  • [3] 4위였던 삼성에게 졌으나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LG에 지면서 3위
  • [4] 경질 당시
  • [5] 삼미-청보-현대를 포함한다.
  • [6] 1988년 4월 해임. 대행으로 임신근.
  • [7] 1999시즌 올스타전 직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 문제는 당시 쌍방울은 주요 전력을 다 팔아먹은 상태였다는 거.
  • [8] 올스타전 직후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른 후 정식 감독 임명. 그러나 이듬해 팀이 해체하여 실제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르지는 못했다. 지못미
  • [9] 2001시즌 도중 취임. 하위권 전력으로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룬 뒤 짤렸다. 그리고 LG는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10] 2007~2008시즌 2년 계약. SK와 김성근 본인 둘 모두에게 처음인 우승을 포함하여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2연패 뒤 3년 재계약. 이후 2009시즌 준우승, 2010시즌 우승으로 4년간 한국시리즈 4회 진출,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나 2011시즌 도중 시즌 끝난 후 사퇴한다고 밝혔고 다음날 전격 경질
  • [11] 당시 그는 한국어를 거의 못 했다.
  • [12] 1970년대에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참가해 우승하면서 체육훈장까지 받았으니 그 목표를 반쯤 이룬 셈이다. 이제 진짜 WBC 감독이나 국가대표 감독만 남은 듯 하다.
  • [13] 정작 본인은 승승장구에 출연한 당시, 자신의 투구 폼 사진을 보면서 투구시 팔이 좀만 더 높았으면 선수생활을 더 오래 할 수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참고로 들고 온 사진은 대한민국 최초의 연속사진이라고 한다.
  • [14] 실제 실업야구시절 슬라이더, 싱커, 포크볼 같은 정교한 변화구를 한국에 도입한 건 김영덕, 김성근 같은 재일교포 출신들이다. 다만 정말로 김성근이 최초로 싱커를 던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역시 재일동포 출신인 신용균이 던지기 시작했다는 박영길언급이 있기 때문. 시기적으로 보면 거의 동시기.
  • [15] 당시 투수들은 경기 후 아이싱은 커녕 오히려 뜨거운 걸 어깨에 대고 있었다고 한다.
  • [16] 김응용 감독과의 한국시리즈 '야구의 신' 발언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실력으로 인정받고 프로 감독에서 물러난 지금은 원로 대우를 받으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
  • [17] 다만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무조건 까인 건 아니다. 야구계의 경우 원로들이 재일교포 출신이 많으며, 프로야구가 시작될 당시 삼성의 구단주 이건희도 일본통이었고, OB베어스의 구단주 박용곤도 일본통이었다. KBO에 재직한 최일언의 경우 코시엔에 진출한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단순히 그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반쪽바리라고 폄하당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교토출신 재일교포 김영덕도 차별받은 정황은 없다. 오히려 프로야구쪽에선 일본통이 성골대우 받는다.
  • [18] 김성근의 지도자 생활에서 최대의 흑역사가 삼성 감독 시절이다. 또한 2011년부터 시작된 삼성의 우승행보에 대해서 리그 하향 평준화 이야기를 꺼낸 것과, 류중일에 대한 숟가락 발언, 류중일과 김성근의 불화, 자서전 <꼴지를 일등으로>에서 자신이 맡았던 당시의 삼성 선수단을 '엘리트 의식에 젖어서 통제가 힘들었다'고 변명한 점, 자서전 <김성근이다>에서 삼성의 2002년 우승을 '더러운거 덮는다고 덮어지는게 아니다, 눈에는 안 보일지 몰라도 결국 속에서 썩어간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냥 승자 위주로 넘어간다. 내용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가 갈릴 뿐이지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덮어버린다. 그러니까 강자가 독식하고, 돈 많은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언급한 점 등으로 인해서 현 프로야구 팬덤 중에서 가장 강경한 反김성근 성향을 보이는 곳이 삼성 팬덤이다. 다만 의외로 2010년 한국시리즈는 오히려 선동열을 잘라줘서 고맙다며 별 악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사실 삼성을 코시에서 4대0으로 바른 팀이 SK만 있는 것도 아니고
  • [19] SBS에서 방영한 야구 프로그램인 야구본색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구질이 유리하고 어떤 투수가 그 구질을 잘 구사하는가를 철저하게 계산한 결과물이라고.
  • [20] 김 감독은 자서전에서 베이브 루스 같은 강타자와 리그 정상급 에이스 투수를 앞세운 스타플레이어 '메이저식 공격야구'를 할 수 있었다면, 아니 그런 야구를 해서 더 많이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면 주저없이 그렇게 했을 거라고 밝힌 적이 있다. 즉 SK가 주어진 자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가 벌떼야구였다는 뜻.
  • [21] 1위는 LG 트윈스, 2위는 두산 베어스
  • [22] 사실 대한민국 야구감독 중 투수혹사에서 자유로운 감독은 아무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23] 타팀이 선수 치료비에 1~2천만원을 쓸 때 자신은 8~9천만원을 아낌없이 사용했다며, 그 돈을 이의 없이 지출해 준 것은 선수 값은 그 10배 100배로 아꼈지만 구단의 공로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24] 부상중 경기출전을 강행시켜 은퇴를 앞당겼다.
  • [25] 이 부분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게, 누구나 혹사라고 인정하는 최동원, 염종석에게 강병철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때도 이들은 감독에게 인정해줘서 고맙다는 똑같은 말을 했다는 점이다.
  • [26] 정확히는 제리 로이스터 시절의 롯데 타선
  • [27] 이때 선수들을 모아놓고 '내가 한눈을 팔아 이렇게 되었으니 너희들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고 훈계를 한 뒤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 [28] 이후 김성근의 후임 해설자는 바로 하일성.
  • [29] 김성근 감독은 2009년 윤재국이 부상 재발로 은퇴했을 때 크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쌍방울 시절부터 쭉 봐 온 선수였다.
  • [30] 단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감독에게 혹사당해서 원망스럽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용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 [31] 출처 :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정철우 저, 비전코리아)' 144페이지.
  • [32] 특히 이 점 때문에 어떤 팀을 가든지 해당 팀 프런트와 엄청난 갈등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SK 프런트는 팀을 황금기로 이끌었음에도 김성근 감독을 내심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 [33] 여담이지만 회갑연의 주최를 주도했던 두 제자가 바로 김기태KIA 타이거즈 감독과 연수 성균관대 감독이다. 특히 이연수 감독은 선수 시절에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좋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김성근 감독과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 [34] 결국 동국대 시절 은사이던 김인식 당시 해태 코치의 설득으로 해태로 갔다. 이외 자세한 내용은 한대화 항목 참조
  • [35] 본인에 말에 의하면 당시 부상때문에 오버로 던지기가 힘들었다고.
  • [36] 이대수의 경우 사인거래 때문에 트레이드 되었다는 의심도 있긴하다. http://www.mlbtour.re.kr/bbs/zboard.php?id=free&no=7867 #
  • [37] 선수 시절은 김경문이 김성근의 제자인 조범현을 제치고 주전포수를 봤지만, 감독 시절에 상당히 자주 엮이며 악연이 많았다. 김성근과의 악연을 정리해 놓은 문서 그래도 서로 능력에 대해서 좋게 평가해주며, 서로 좋은 말을 해준적이 있기도 하다.
  • [38] 김성근이 봉중근을 시즌 막판 휴식을 준 것으로 인터뷰하자 내정간섭이라며 불쾌해했다.
  • [39] 아무래도 과거 쌍방울이 재정난으로 선수들을 현금트레이드 시킬때 핵심자원인 김광림+조규제+박경완을 빼앗긴 적이 있어서 돈으로 우승을 해버린 김재박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 [40] 김성근에게 주먹감자를 날린 사건으로 유명하다.
  • [41]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항목의 이동걸 - 황재균 빈볼 사건 항목 참조
  • [42] 삼성 1군 감독시절, 김성근이 2군 감독으로 있었다. 삼성의 김용희 견제차원에서 이뤄진 일인지라 사이가 좋다고 만은 볼 수 없다.
  • [43] 리빌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었다면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가 십여년 이상 꾸준히 바닥을 구르진 않았을 것이다. 꼴찌를 해도 드래프트 우선순위를 주는 것도 아니고 FA로 선수를 보강할 수도 없고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올 수도 없었던 시대이다. 특히 삼미의 경우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나오다시피 사회인 선수까지 끌어들여 구성한 외인 구단 팀이었고, 재일교포 선수들이 있다고는 하나 기초조차 안 되는 팀 체질 자체를 개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 [44] 실제로 김응용 본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다.
  • [45] 눈이 아니라 눈깔이다. 비속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김성근 감독 본인은 오히려 비속어적 표현이 자신의 가치를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양 원더스 다큐멘터리에서도 잠자리 눈이 아니라 잠자리 눈깔이라고 본인이 직접 정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46] 상술한 '인천예수'가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만큼 방송용으로 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 [47] 이 점에 있어서 또 정반대인게 김응용인데, 김응용은 기본적으로 훈육하는 아버지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의 사생활은 앞가림만 잘한다면 적당히 못 본 체하면서 뒤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타입이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타입.
  • [48] 슼+슨상님
  • [49] 엘쥐+지져스(예수)
  • [50] 참고로 쌍방울 감독 시절까지만 해도 91번 처럼 일반적으로 코치, 감독들이 다는 높은 번호를 달았었다.
  • [51] 물론 이미 영주귀국을 한 지도 오래 됐고 지금에 와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나 김성근을 반쪽바리로 까려고 일부러 이 일본 이름을 운운하는 악플러들이 있다.
  • [5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154564
  • [53] KBS에서 언제 마지막으로 피서를 갔냐는 질문에 1978년이라고 대답하면서 이제는 야구장이 피서지라고 대답했을 정도다. ㅎㄷㄷ
  • [54] 사실 1970년대와 2000년대의 반일감정 차이를 고려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70년대는 왜색이 진하다는 이유로 모든 일본 매체의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이었고, 백인천의 요시는 2000년대 이승엽이 출전하는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중계방송에서 나온다. 이건 상전벽해 레벨, 또한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도 감안하여야 한다.
  • [55] 나지완 타석 때, 자신이 감독으로 있어서 통한의 준우승을 당했던 2009년 한국시리즈 끝내기를 SBS Sports에서 틀어버렸다. 중계를 하던 야갤러들은 단체로 빵 터졌다...
  • [56] 선두타자 김창렬에게 기습번트를 맞고 출루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다른 천무단 선수들은 김창렬에게 '왜 그랬냐'고 투정을 부렸다.(……)
  • [57] 하일성이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변호하다가 타팀팬들의 비난을 들었다고는 하나 이 아자씨가 KBO 사무총장 재직시절 제2회 WBC 대표팀 감독 선임과정에서 애매한 일처리로 감독직을 고사한 김성근 감독만 잔뜩 욕먹게 한 인물이다 보니...
  • [58] 일단 키가 180이 넘고 그 나이에도 몸관리를 잘했다. 그 덕에 옷을 입을 때 몸에 잘 맞아 태가 사는데, 이것이 젊은 패션감각과 시너지 효과를 내서 나이에 비해 상당히 멋있다.
  • [59] 수원야구장 으로 추정된다.
  • [60] 한때 음치가수 컨셉으로 이름을 알렸던 이재수가 이 광고를 패러디하였는데 패러디에서 나온 꼬마 이름을 모 인천유다의 이름을 갖다붙여서 모 인천유다를 디스하였다.
  • [61] 근데 이런 습관은 건강에 좋지않다. 쌍방울 시절엔 이런 습관에 지나친 격무가 겹쳐서 신장암에 걸렸다.
  • [62] 임창용은 해태 시절에 당시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지도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