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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Contents

1. 소개
2. 별명
3. 스타일
4. 프로 선수 시절
4.1. 해태~KIA 타이거즈 시절
4.2. LG 트윈스 시절
4.3.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컴백, 그리고 2009 시즌
4.4. 2010 시즌
4.5. 2011 시즌
4.6. 2012 시즌
4.7. 2013 시즌
4.8. 2014 시즌
4.9. 2015 시즌
4.10. 2016 시즌
5. 의혹


김상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홈런 친 뒤 방망이를 던지는 모습.


kt 위즈 No.19
김상현(金相賢)
생년월일 1980년 11월 12일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대불대
포지션 3루수 → 외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2번, 해태)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2000~2002.7.29)
LG 트윈스 (2002.7.30~2009.4.19)
KIA 타이거즈 (2009.4.20~2013.5.5)
SK 와이번스 (2013.5.6~2014)
kt 위즈 (2015~)
응원가 LG시절 : 동요 '모두다 뛰놀자'[2]
KIA시절 : 신해철 '안녕'[3], 이루마 'Kiss the Rain'[4]
SK시절 : 신해철 '안녕'[5]
현재 : 신해철 '안녕'[6], Ray Parker Jr. 'Ghostbusters'[7]

2009년 한국프로야구 MVP
김광현(SK 와이번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09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동주(두산 베어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09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김현수(두산 베어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2010~12 수상자 없음
박병호(넥센 히어로즈)[8]

2009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김태균(한화 이글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6번
김상현 (2000~2002) 방동민 (2002~2005)
LG 트윈스 등번호 59번
방동민 (2002) 김상현 (2003~2005) 정성훈 (2009~2010)
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재현 (1994~2004) 김상현 (2007~2008) 김광삼 (2009)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장문석(1997~2006) 김상현 (2009) 강철민(2009~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
강철민(2002~2009) 김상현 (2009~2013) 신승현(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이호준(2002~2012)
백인식 (2013)
김상현(2013~2014) 결번
kt 위즈 등번호 19번
이광근(2014) 김상현 (2015~2016) 현역


1. 소개

kt 위즈의 前 외야수. 3루수로 데뷔하였으나 수비 미숙 및 주전경쟁 등을 이유로 외야수로 전업하였으며 가끔 1루수 수비도 가능하다.

등번호는 KIA 타이거즈 입단 초기에는 46번 - LG 트윈스 이적 후 59번 - 상무 제대 후 7번 - 2009시즌 개막 후 26번 - KIA 타이거즈로 이적 후 SK로 팀을 옮긴 후에도 27번을 계속 사용했다.[9][10]

2. 별명

"곤조, 곤잘레스 김, 김곤조" - 라티뇨스런 얼굴 모양에서 기인. 반짝 성적으로 야갤에서는 약상현으로 불린다. 2009년 KIA로 이적한 뒤에는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이미지로 '김상사', 이후 기적과 같은 미라클 타이거즈를 이끌면서 '해결사'라는 이미지가 굳혀졌다. 다만 SK로 이적한 뒤 스포테인먼트 정신에 입각한 구단에서는 '해결사'라는 닉네임보다는 '김상사' 이미지를 더 밀고 가려는 듯하다.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약상현도 약하다면서 씹곤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SK 와이번스 갤러리 사람들은 칰상현라고 부른다.

kt 위즈 20인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자 3사의 팀을 다 겪어본다는 이유로 "야구계의 언락폰"이라 불리고 있다(...)

3. 스타일

파워가 상당히 좋아서 앉은 자세, 그러니까 자세가 무너져 무릎이 땅에 닿은 상태에서파워 무릎샷! 타격을 했는 데도 잠실 구장을 넘길 정도로 파워 하나만큼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은 타자다. 야구 방망이가 부러졌는데 공이 담장을 넘어가버린 적도 있었다. LG 트윈스 시절 최훈의 LG 트윈스 전지훈련 카툰을 보면 김상현의 배팅파워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장타력이 있는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좌투수 상대로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11]

수비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 3루수를 보던 시절에도 수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외야로 전향한 후로도 마찬가지. 파이팅이 넘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안불안하다. 다만 어깨는 강한 편이어서 종종 인상적인 보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4. 프로 선수 시절

4.1. 해태~KIA 타이거즈 시절

군산상고 출신으로 원래는 이진영과 동기동창이었다. 트레이드 전에 잠깐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허나 당시 키가 작다는 이유[12]로 1년 유급하여 이승호, 이대수와 같이 졸업하게 되었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2차 6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초기에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고 주로 대타 요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찾아오게 된다. 2002년 7월 29일, 잠실 LG전 9회초 무사 1루 상황. 기아는 1-3으로 뒤지고 있었고 마운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마무리 이상훈. 게임이 끝나겠거니 하는 와중에 김성한 감독은 대타로 김상현을 지목했고 김상현은 이상훈의 초구를 공략,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겨버리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 경기 후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팀에 김상현의 영입을 요청, 마침 좌투수가 부족하고 3루에 정성훈이 있어 포지션이 중복된[13] KIA 타이거즈의 사정이 맞아떨어져 양팀은 좌투수 방동민과 김상현을 맞교환하게 된다.[14]

당시 그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김상현은 상심한 나머지 밤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김성한 감독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제발 타이거즈에 남게 해주세요"라고 읍소했다(…).

4.2. LG 트윈스 시절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LG 트윈스3루수로 뛰었다. 전반기에는 확실히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5월 22일 잠실 현대전에서 내야 뜬공을 놓치는 연예인야구급 수비 에러를 범해 다 이긴 경기를 놓치게 되자, 당시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아직 관중들이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코치들을 시켜 펑고 연습을 시켰다.[15][16] 여튼 그렇게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이 부러져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04년에도 100게임 넘게 출장했지만, 파워에 비해 정교함이 없고 수비력도 좋지 못해 그저 그런 성적을 내는 데 그쳤다. 결국 2004시즌 종료 후 상무 입대.

상무 입대 후에는 2군리그에서 양민학살을 하며 2군리그 홈런왕을 차지하며 2007년 제대했다. 2007년에도 시즌 초반 최다 2루타 기록은 물론 장타율 5위권 내에 드는 등 좋은 활약을 하며 LG팬들을 기대하게끔 했으나, 시즌 중반부터 꼴아박으며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본격 김재박이 싫어하는 김상현[17]이를 보고 김상현이 LG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네, 감독이 나쁘네등 김상현을 옹호하는 여론이 강했으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당시 김상현은 LG의 주전3루수였다. 지금이야 선수층이 나름 두터워진 LG이지만 저당시에는 이효봉의 연고지 팜 박살의 후유증으로 휘청거리던 때였고, 선수층은 2010년대의 한화나 KIA못지않게 얇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타격면에서는 포텐셜이 있었기에 좋던 싫던 김상현에게는 주전으로써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숱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공갈포였으며[18] 수비면에서도 전혀 개선점이 없었다[19]. 이런 선수를 어떤 감독이 좋아하겠는가?

2008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있다가 2009년에는 달고있던 번호 7번마저 뺏기고 말았다.(...) 이후 LG의 7번은 작은 이병규가 다시 가져갔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주전 3루수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KIA로 간 이후에 인터뷰에서 LG에선 기회가 적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LG팬들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트레이드 후 4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안 좋아서 쥐갤에서 한 갤러는 정재복 사인을 받았음 받았지 X곤조 사인은 안 받는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정재복은 왜...

4.3.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컴백, 그리고 2009 시즌


드라마틱하였지만 우주의 기운을 받은 희대의 플루크 시즌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2009년 4월 19일,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LG 트윈스에서 투수를 얻기 위해 사이버투수 강철민을 받아오는 대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박기남과 묶여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다시 보내진 것. 친정팀 기아로 오자마자 5번 3루수로[20] 붙박이 출장하며 심적 안정을 찾아서인지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수비야 뭐 실책 하나 하면 타점 하나 올리면 된다는 마인드로 나서고 있으니까... 결국 엘빠 만화가인 최훈이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별명을 추가시켰다.[21]

특히 4월 26일 만루홈런, 28일 결승타 30일 만루홈런으로 그리고 5월 7일 또 만루홈런을 쳐서 야구팬들을 집중시켰다. KIA팬들은 이용규에 이어 다시 한번 사랑해요 LG를 외치고 있다(...)[22] 그 이후 부진(?)하다가 계속 홈런을 날리며 5월 15일에 5, 6호 홈런을 날렸다. 한 시즌 만루홈런 4개로 박재홍이 1999년에 기록했던 기록과 타이를 기록했다.

5월 30일에서야 규정 타석을 살짝 넘겼음에도 클리프 브룸바, 로베르토 페타지니에 이어 타점 3위에 랭크되었다. 최희섭의 우산 효과도 있지만, 최희섭을 거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자신의 각오가 큰 위력을 발휘한 셈. 시즌 후반부에는 오히려 최희섭이 김상현의 덕을 보기도 했다. 말 그대로 CK포가 서로를 받쳐준 것. 그 후로도 침체기에 빠진 최희섭을 대신해서 팀을 짊어지며 잘 나갔고, 이 때부터 한대화급의 해결사 이미지를 굳혀갔다.

8월 8일, SK전에서 3연타석 홈런으로 5타점을 올리며 홈런 순위 공동 2위, 타점 순위 단독 1위에 올랐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 투런 홈런을 쏘아올리며 브룸바와 홈런 공동 1위 등극!!
8월 21일, SK전에서 홈런 2방을 꽂아넣으며 드디어 홈런 단독 1위에 오르게 되었다.
8월 26일, 한화 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추가, 99경기만에 100타점을 넘겼고 쓰리런 장외 홈런을 날리며 홈런 레이스에서 선두를 굳게 지켜나갔다.
8월 28일, 두산전에서 홈런 2방을 치면서 드디어 30홈런을 달성했다!
9월 18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5호 홈런을 때리며 해태-KIA 국내선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홍현우의 34개.[23]

수비도 가끔 에러가 터지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평가. 하지만 그래도 09시즌 에러 1위다.(...)[24]

KIA 타이거즈 2009년 우승의 일등공신. 압도적인 표 차이[25]로 2009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되었으며, 역시 압도적인 표 차이로 골든글러브도 차지하였다.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 선수가 MVP를 차지한 건 역대 최초.

2009년 연봉이 5,400만 원이었는데 연말에 벌어들인 상금만 최소 6천만 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뭐야 이거(...)

2009시즌의 최종 성적은 121경기 출전 448타수 141안타로 타율 0.315(리그 7위), 홈런 36(리그 1위), 타점 127(리그 1위), OPS 1.011(리그 5위)를 기록. 해태 시절 홍현우가 기록한 국내 선수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인 34홈런과 111타점을 넘어섰다. 팀 내에서는 타율도 1위다. 장타율(0.632)와 득점권 타율(0.403)이 특히 높지만, 출루율과 비득점권 타율은 타율/OPS에 비하면 의외로 낮은 편. 그래서 4번 타자보다는 한방을 쳐줄 수 있는 5번 타자감으로 더 적당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4.4. 2010 시즌

엄청난 연봉 인상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지만 무릎 통증으로 인해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사실 LG 트윈스에 있을 때부터 무릎 통증이 조금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난 시즌 KIA로 트레이드되고 나서부터 풀타임을 뛰면서 피로가 급격히 누적된데다 하필이면 홈구장이 국내 야구장 중에선 소말리아급이라는 무등야구장이라...
결국 무릎 통증을 안고 뛰며 4월 26일까지 타율 .198 5홈런 18타점 25삼진을 기록하며 부진하다가 2군으로 강등, 무릎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후 지명타자로 뛰며 홈런 3개를 추가했는데, 6월 25일 잠실 두산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발목을 접질려 또 부상을 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패중이던 팀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며 해태 시절을 포함하여 최다연패인 16연패를 당했고, 결국 또 한 달이 지나서야 복귀했다.

8월에는 홈런 10개를 몰아치며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으나, 그 이후 다시 부진하면서 최희섭의 별명 중 하나인 농부에 빗대어 어부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15 21홈런 53타점. 전형적인 공갈포 스탯을 찍었다. 세부 스탯은 더 안습이어서, 79경기 출장해서 볼넷을 33개 얻었는데 반해 삼진은 85개나 당했고, 그러다 보니 출루율도 막장이어서 3할을 가까스로 넘기는 정도에 불과했다.[26] 그나마 위안거리로 생각되던 장타율도 딱히 나은 건 아니어서 4할 5푼대를 기록하였다. 이러다 보니 2009년의 활약이 단지 플루크가 아니냐며 까도 할 말이 없는 모양새였다.

시즌 후 수비 부담을 덜기 위해 코치진에서 외야 전향을 시켰다. 본인은 3루를 고집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범호가 입단하게 되면서 11시즌부터는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5. 2011 시즌

헬을 예상했던 외야수비는 그럭저럭 해주고 있지만 가끔씩 머리 너머로 날아가는 타구가 나올 때마다 TV앞이나 야구장에 있는 팬들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하는 똥줄수비를 보여줬다. 그래도 전반적인 평가는 괜찮은 편.

4월 말까지 타율 0.164로 극심한 타격부진을 겪으면서 LG 시절 모습으로 돌아온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수비요정'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4월 30일 광주 롯데전에서 배장호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방망이가 부활할 것인가? 5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금민철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뽑아냈다.

그리고 잠깐 방망이가 주춤했으나, 6월 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점 쐐기 홈런, 6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의 맹활약을 했다. 게다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성 안타와 박재홍의 홈런성 타구를 온몸을 던져 잡는 등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타율은 0.226으로 굉장히 저조하나 타점은 28점으로 오히려 최희섭보다 높으며 홈런도 6개나 되는 등 천천히 타격감이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병신같은 삼진만 안 당하면 된다 6월 23일에는 KIA킬러김광현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결승타, 그리고 이어진 타석에서 연타석 쓰리런까지 터트리면서 혼자 6타점을 쓸어담아 기아팬들을 다시 설레게 하였다. 6월 28일 송승준을 상대로 역전 2타점 2루타를 날렸으며 6월 29일 라이언 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6월 말의 기록은 0.235 9홈런 46타점 삼진 64 안타 54! 타점 수랑 안타 수 차이가 8개... 변태 같은 스탯을 찍긴 했지만 확실히 방망이가 살아났다.

7월 10일 LG전에서 선취 타점과 솔로 홈런을 때려내면서 개인 통산 100홈런 기록을 세웠다.

헌데 7월 29일 넥센과의 경기 도중 김상수의 142km 포심을 머리에 맞아 앰뷸런스에 실려갔는데, 왼쪽 광대뼈 부상이라고 한다.[27] 남은 잔여 경기를 생각할 때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웠다.

그런데 괴물같은 회복력으로 8월 25일 1군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27일 SK전에서 이영욱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이후로는 장타는 줄었지만 17경기 연속 출루, 4경기 연속 타점 등을 기록하며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55 14홈런 64타점.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5안타 3볼넷 타율 .385,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여담으로 2011 한국 최고의 스포츠 사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사진이 영...[28]

4.6. 2012 시즌

4월 7일 개막전에서 스윙을 하다 왼쪽 손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교체. 왼쪽 손바닥 골절로 3달 결장 판정을 받았다.(...) 이범호도 없고 김상현도 없고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이후 계속 재활에만 매진하였다. 본인은 타격 빼고는 모두 OK라고 한다.
6월 22일부터 2군에 출전하며 타격감을 찾아갔다. 26일 2군에서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6월 말 팀이 다시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라, 팬들은 득점권에 강한 김상현의 복귀만을 기다렸다.

7월 12일 신종길 대신 1군에 등록되었으며, 예상보다 일찍 복귀를 했기 때문에 우선은 대타로 출장을 하게되며 몸 상태를 살펴보면서 선발 출장을 고려한다고 한다.

7월 18일 무등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팀이 0:4로 앞선 2회말 첫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비 때문에 경기취소가 될 우려가 있었지만 5회초가 끝나며 정식 경기로 인정이 되면서 김첨지 신세를 면했다 활약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팀은 4:7로 강우콜드승.

7월 19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팀이 0:4로 리드하던 5회말 우익수 쪽 펜스 맞는 2루타를 때려내며 장타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최희섭의 2점 쐐기 홈런까지 더해지며 팀은 0:6으로 승리. 후반기 CK포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다.

7월 24일 무등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회말 좌중간을 가르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으나 팀은 5:1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더불어 이 날 기아 타선에서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김상현과 최희섭, CK포 둘뿐. 대포가 작동하니까 이번엔 소총이 말썽이다

이후 7월 29일 홈런을 기록하였고, 8월 들어 삽질을 하다가 8월 8일 우익수 수비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또 무릎 부상을 당하였다.(...) 이래저래 유리몸 때문에 고생이 많은 상황.
8월 14일 수술에 들어갔다. 재활은 6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18일부터 2군에서 다시 몸을 가다듬기 시작. 2군 복귀 첫 경기만에 멀티히트 유리멘탈인 어떤 선수들과는 다르게 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팬들은 김상현의 복귀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9월 21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으며, 6회말 1타점 적시 2루타를 쳐내며 팀의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적절히 끊어주었다.

10월 1일 군산 월명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팀이 0:4로 크게 이기던 2회말 2사 만루에서 신인 투수 이경우를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최종 성적은 32경기 출전 타율 .259 4홈런 17타점 17득점. 그놈의 부상이 원수다.

4.7. 2013 시즌


선동열에게 전해,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5월 7일 트레이드 후 SK 소속으로 첫 출장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그러나 그 후...

시즌 중 2:2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상현/2013년에서.

4.8. 2014 시즌

2월 16일 스프링캠프 기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때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고 팀은 요미우리와 3-3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쳐내며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3월 30일 넥센전에서는 먼거리를 달려와 파울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이후 계속 2군에만 있다가 4월 24일 1군에 복귀하였으며 4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오랜만에 좋은 활약을 하였다.

5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대타로 출장해서 김승회를 상대로 마수걸이 투런홈런을 때리며 경기를 1점차까지 좁혀놓았다. 그러나 뒷타자들이 맥없이 물러나며 경기는 패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계속 부진했으며 5월 8일 이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1군으로 콜업되지 못하는 중. 본인이 내년 시즌을 위해 콜업을 거부했다고 한다.

7월쯤 콜업,홈런도 치고 4년만에 3루타도 치는 등 올라온 뒤 2경기 까지는 잘 하고 있다.

9월 7일 추석 원정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는등, 4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이날의 MVP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42경기 87타석 80타수 21안타 5홈런 20타점 8득점 1도루 6사사구 타율 0.262.

11월 28일, kt의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2009년 당시 KIA의 감독이였던 조범현과 타격코치 황병일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김상현은 세 개의 통신사 에서 선수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것도 수도권(서울/경기/인천)팀까지 선수생활한거 한몫을 한 셈이지. 그래서 이런 드립도 나왔다. 댓글 참조통신사 저니맨

KT 이적후 "야구장 펜스만 보면 (홈런을 쳐서) 넘기고 싶다."라는 포부를 드러냈는데, 평소에도 여러 구설수가 많았던지라[29]이를 듣고 타팀팬들은 "더 약빨게?"라며 조롱하기도 하였다.

4.9. 2015 시즌

해당 항목으로.

4.10. 2016 시즌

시즌 초부터 삽을 푸면서 부진에 빠져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하던 중에, 6월 16일에 공연음란행위[30]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결국 kt 구단에서는 김상현을 임의탈퇴시키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의 나이라던가 성적을 생각하면 사실상 불명예 은퇴. 다만, 일각에서는 앞서 물의를 일으킨 장성우 등 선수들에 비해 중징계를 받은 것을 두고 구단 이미지 제고는 명분일 뿐, 실제로는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 중 가장 쓸모가 없는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5. 의혹

일부 야구팬들은 김상현도 심정수와 마찬가지로 약물 사용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평균 2할 4푼대의 타율에 8홈런씩 치던 타자가 갑자기 3할 1푼대의 타율에 36홈런을 때려냈고 그 직후 다시 타격성적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까지 달고 살고 있다. 2009년 KBO가 약물검사를 실시한 바 있지만 심정수와 더불어 약물 의혹이 제기되는 선수 중 한 명. 게다가 심정수는 본격적으로 홈런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도 꾸준히 2~30홈런을 쳤었지만, 김상현은 그 전까지 위에서 적었듯이 2할 4푼대의 타율에 가끔씩 뜬금포만 기록했을 뿐 1군에서 두 자릿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에 불과했다.

물론 반론의 여지도 있다. 일단 파워는 LG 시절부터 인정받아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타격폼이 무너지거나 배트가 부러졌음에도 잠실 담장을 넘긴 적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좋았으며, 상무 시절에 홈런왕을 차지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LG 팬들도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근데 하필 제대했는데 코치가 김용달[31] 2009년 KIA에서의 무시무시한 성적은 원래 가지고 있던 포텐에 고향팀 복귀[32] + 3루수 주전 확보[33]를 통한 심리적 안정 등의 효과와 최희섭과의 핵우산 시너지 등으로 나오게 된 성적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시즌이 타고투저 양상을 띠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사항.

또 2009년 이후 부진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렇게 부진했던 2010년 ~ 2012년에도 찍히면 넘어가는 장타력은 여전했다.[34] 2009년 이후 부진한 이유는 타 팀에서 김상현 선수의 약점을 분석하여 대처하기 시작했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 2011시즌 이범호의 영입으로 인한 수비 위치 변경 등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09년의 성적이 우주의 기운이 모인 플루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결론적으로 제대로 된 물증도 없이 약물 복용자로 확신하고 까대는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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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3루와 가끔 1루를 보는 코너 내야수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외야수로 뛰다 2015년 kt로 오면서 장성호와 같이 1루수로 활동하려 하였으나 본인이 1루는 못하겠다고 하여 외야수로 전업했다.
  • [2] 날려라 날려라 김상현~ (x4)
  • [3] KIA의 해결사 김상현 오오오 (x4)
  • [4] 기아의 해결사~ 기아의 김상현~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기아의 해결사~ 기아의 김상현~ 승리를 위하여 워어어어
  • [5] SK 김상현 오오오 오오오 (x4)
  • [6] KT 위즈의 김상현 오오오 (x4)
  • [7] kt 위즈 해결사 김상현 kt 위즈 김상현 (x4)
  • [8]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선수협이 비리 문제로 인해 정상적인 총회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올해의 선수 선발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가 2013년부터 해당 수상이 재개됐다.
  • [9] 참고로 타이거즈에서 27번은 김봉연전직 선수 이모씨가 사용했던 번호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유명한 번호.
  • [10] SK로 이적하면서 본래 27번을 쓰던 우완투수 백인식이 김상현에게 번호를 양보하고 본인은 송은범의 46번을 가져갔다. 그리고 백인식 이전 27번 번호의 주인은 인생의 승리자.
  • [11] 통산 vs우투 0.266 60홈런, vs좌투 0.224 21홈런. 커리어하이인 2009시즌의 기록은 더 심해서 vs.우투 0.354 32홈런, vs.좌투 0.220 4홈런. 이를 반영했는지 프로야구매니저에서 09 김상현의 교타력을 보면(노말카드 기준) 표면적인 교타력은 66이지만 히든 능력치로 보면 우교타 85, 좌교타 48이라는 아름다운 능력치를 받았다.
  • [12]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고교 졸업 당시까지만 해도 키도 작고 파워도 약한 편이었는데, 프로에 입단하면서 급성장했다고 한다.
  • [13] 하지만 정성훈은 시즌 종료 후 박재홍을 얻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로 보내진다. 대신 3루를 맡게 된 선수는 바로 이현곤.
  • [14] 문제는 김성근이 방동민의 부상을 숨겼다는 점. 때문에 이후 김성한이 야구계 선배가 이럴 수 있냐고 화를 냈다.
  • [15] 이 장면은 당시 공중파 스포츠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다. 관중들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게 인상적.
  • [16] 이 점에 대해서는 이광환 감독이 김성근 감독 재임시절 데려온 김상현을 좋지 않게 봐서 그랬다는 음모론도 존재하긴 한다. 김성근 감독과 이광환 감독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이니 섣불리 믿는 건 위험하다.
  • [17] 자세히 보면 조인성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김상현과는 하지 않고 들어간다.
  • [18] 그나마 많이 친 것도 아니었지만
  • [19] 더군다나 김재박은 역대 최고의 유격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박진만을 키워낸 인물이다
  • [20] 중간에 한 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적이 있다.
  • [21] 이 별명은 최훈이 소개하기 며칠 전부터 야구 사이트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했다.
  • [22] 2005년 KIA는 LG에 투수 이원식과 소소경을 주고 이용규를 받았다. 2004년 엘지에서 52경기 출장, 0.129의 저조한 타율을 보여주던 이용규는 기아에서의 첫 시즌인 2005년부터 30도루를 찍더니 2006년에는 타율 3위-.318 도루 38개의 몬스터 시즌을 보여주기도... 이후에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주전급 활약으로 전국구 스타로도 발돋움 했다.
  • [23]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하면 트레이시 샌더스의 40개다.
  • [24] 김상현뿐만이 아니라 내야수의 1루 송구 에러가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수비섭최희섭의 공이 크다. 그의 신체 사이즈와 포구 실력은 확실히 메이저리거 급이다.
  • [25] 김상현 79표, 김현수 7표, 박용택 3표, 김광현 1표
  • [26]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거냐면 이 해 깝깝하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인 이대형이 기록한 출루율이 0.333이다.(...)
  • [27] 이와 같은 부상을 당한 선수들로는 이종범, 심정수, 조성환 등이 있다. 조성환의 경우 39일 만에 경기에 출장했고, 심정수는 약 2달이 걸렸다.
  • [28] 제목은 '얼굴없는 강타자'로,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김상현이 두산 투수였던 페르난도 니에베의 강속구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는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어 선정되었다고 한다. 흠좀무. 근데 다들 이종범인 줄 알더라
  • [29] 특히 LG와 SK
  • [30] 차 안에서 여대생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걸렸다(...).
  • [31] 아주 농담은 아닌 것이, 김용달은 LG 시절 제대로 키워낸 장타자가 거의 없다. 박병호, 이성열 등 수준급 슬러거 유망주들이 있었음에도 김용달은 이들을 키워내기는커녕 자기 의견을 안 듣는다거나 아무리 해도 답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 [32] 심리적 안정감이 아주 설득력 없는 건 아니지만 고작 1년 잘한 걸 생각하면 큰 의미는 없다.
  • [33] 2009년에 LG에서는 새로운 3루수로 정성훈을 FA로 영입하면서 그간 3루수를 맡고 있던 김상현은 팀내 입지가 좁아졌다. 반면 당시 KIA는 내야 기근으로 골머리를 앓던 상황이었다. 당장 1군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내야수가 이현곤이나 김종국 정도밖에 없었고, 김선빈이나 안치홍은 아직 검증이 덜 되었던 신인이었다. 다만 트레이드 이전까지만 해도 김상현은 LG의 주전 3루수였다. 흔히 이때 기회가 적었다는 언플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회는 숱하게 주어졌다. 이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가 이적 후 장타력이 증가하는 경우로 해석하는 편이 옳다.
  • [34] 2010년에도 타율은 .215에 불과했으나 홈런이 21개나 되었다. 또 이 당시 부상으로 79경기밖에 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갈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당시 출루율은 이대형보다도 낮았으며, 장타율도 결코 높은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득점권에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더 쉽게 말해서 공갈이라고 까였던 2013년 이범호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게 없었다고 할 수 있다.
  • [35] 해태/KIA를 제외하면 모두 모기업이 통신업체를 갖고있는 구단들이다. LG 트윈스LG U+, SK 와이번스SK 텔레콤, kt 위즈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