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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타자)

last modified: 2017-11-23 02:55:53 Contributors


입단식에서 코할배와 함께
이젠 코사장도 삼성에 없고 이 때의 블레오도 다시 볼 수 없다


도산초등학교 재학 시절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No.7
김상수(金相洙)
생년월일 1990년 3월 23일
신체 175cm, 68kg
출신지 서울특별시[1]
학력 옥산초[2]-경복중-경북고
포지션 내야수(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9~ )
응원가 노라조《슈퍼맨》[3] [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2009~2010)
손주인(2008) 김상수(2009~2010) 김동명(2011~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2011~)
박진만(2005~2010) 김상수(2011~) 현역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2009 시즌
2.2. 2010 시즌
2.3. 2011 시즌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2.6. 2014 시즌
2.7. 2015 시즌
3. 평가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5. 연도별 성적
6. 기타

1. 소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 동생인 김상우가 야읽남에서 밝히길, 류상수는 아버지가 여러 명이라고[5]

경북고 시절에는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며 안치홍, 이학주, 허경민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 라인[6]을 형성하였고, 그들과 함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을 합작하였다.[7]

공수주에서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언론들은 제 2의 이종범삼종범,종범丙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신인 시절 달았던 등번호 2번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데릭 지터의 등번호를 따온 것. 그런데 2010시즌 후 박진만이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다음에 SK 와이번스로 가는 바람에 그 틈을 타서! 등번호 7번을 이어 받았다.

막 데뷔했을 시절엔 타상수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동명의 투수와 구분을 위해 붙은 것이다. 투상수가 넥센으로 이적한 후로는 별다른 별명이 없다가, 류중일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류상수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또 김저기, 김짜증, 김발렸네 등 경기가 아닌 다른 걸로 별명이 생기고 있다 또 2013 시즌 중 홈런 개수가 김태균보다 더 많았고 이승엽보다 페이스가 더 좋아서 "김거포"라는 별명도 새로 생겼다. 2011년 이대호가 3홈런을 몰아쳤으나 3:3 무승부로 끝났던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생활 평생동안 칠 홈런개수를 하루만에 몰아친다"며 감탄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 수준.

2. 선수 생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김상수는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로써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언플을 받았는데, 특히 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했던 김응용 전 삼성라이온즈 사장으로부터 (고교 시절의) 이종범보다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여담으로, 김상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엠엘비파크의 한 유저가 박진만 이후의 삼성의 차기 주전 유격수가 김상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허황된 소리라고 일축했었으나[8] 결국 사실이 됐다.

빠른 발과 괜찮은 출루 능력으로 테이블 세터 역할도 할 수 있는 유격수다.

2.1. 2009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김상수를 1번 타자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시범경기서 타율 0.348(2위). 안타 16개(공동 1위). 도루 8개(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본 시즌에서는 4월 초반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빠른 발과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2루타 머신, 제 2의 이종범 등의 수식어를 들으며 맹활약하였다.

하지만 5월 들어서 몸쪽 변화구의 약점이 드러나고 또한 체력 문제까지 겹치는 등 신인의 한계가 드러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김상수 입단 전 원래의 2루수 주전으로, 성적이 영 시원치않아서 영원한 1할타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신명철은 포텐셜이 폭발하며 3할대 타율을 찍기 시작, 시즌 시작 전 김상수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주전 2루수와 1번타자 모두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6월 중순,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자, 신명철도 다시 1할을 찍기 시작.(…) 다행히 7월 김상수가 복귀하자 신명철의 타율은 3할으로 복구되었고, 김상수는 박진만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 주전 유격수로 그냥저냥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성적은 타율 0.244 OPS 0.631 59안타 17타점 18도루.

시즌 초반에는 맹활약으로 신인왕이 무난할꺼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A형 간염에 걸린 후 경기감이 떨어지며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신인왕은 세이브타이틀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이용찬이 가져갔다.

일각에선 김상수의 1군 엔트리 등재 여부에 따라 신명철의 활약도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김상수의 팀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명철의 부스터 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명 상수로이드.

또한, 시즌 시작 전 선동열 감독의 인터뷰로 김상수의 주전 등극이 예상되자,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측에서는 만년 쩌리 백업선수(…)강봉규의 응원가를 용도변경하여 김상수의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강봉규도 신명철이랑 함께 포텐이 터졌다!

2.2. 2010 시즌

시즌 극초반 대주자로 나와 도루를 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실질적인 1군 합류는 5월 초반부터였다. 하지만 합류하자마자 박진만의 급격한 노쇠와 부상으로 공백이 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수비에 있어서는 민첩함과 센스를 갖춘데다가 어린 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어 삼빠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배영수만 선발로 나오면 폭풍실책 타격은 기대치에 비해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타격 센스는 나쁘지 않으나, 작은 체구의 문제로 장타력이 떨어져 안타가 될 타구도 땅볼이 되는게 문제. 하지만 2009 시즌에 비해 출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여전히 기복이 심해서 못할 때는 정말 바닥까지 칠정도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잘할 때는 루키시즌에 겪었던 몸쪽 변화구 약점같은 것도 전혀 문제가 안될정도로 잘하는 모습을 보이며 뭇 삼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있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몇몇 타자들에게 특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 일주일간의 김상수의 성적은 끝내기 안타를 포함하여 참 아름다웠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OPS 0.634 69안타 22타점 30도루.

2010 포스트 시즌 들어서 미친 듯한 활약을 펴기 시작했는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임에도, 안정적인 수비[9]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포텐이 터진듯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 팀의 시리즈 3승 2패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MVP는 1, 4차전에서 결승타를 쳐 MVP를 차지한 박한이에게 돌아갔으나, 많은 야구 관계자들 및 팬들이 김상수를 숨은 MVP로 꼽았다.

김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9안타 2볼넷 2사구(死球) 1도루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474, 출루율 .565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대활약으로 벌써부터 삼빠들은 류중일-박진만을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급 삼성 유격수 라인으로 김상수를 올리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레발을 떨었고, 관계자들도 꽤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들어서자, SK 와이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타선의 중심이었던, 김상수와 박한이를 봉쇄하는데 주력하였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077로 완전히 봉쇄당하며 부진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4패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난 뒤, 준우승 트로피 시상을 해야하는데, 갑작스럽게 트로피를 김상수 혼자 나와서 받자 팬들은, 고참들이 지들이 쪽팔리니까 팀 막내한테 모든 걸 다 떠맡긴다면서 분노하기도 하였다.

종합하면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死球) 타율&장타율 .077, 출루율 .200을 기록했고,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10안타 3볼넷 3사구(死球)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313, 출루율 .421를 기록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팀을 떠나자, 등번호 7번을 차지했다.

2.3. 2011 시즌

개막 이후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중이다. 수비 능력은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지만(황재균과 함께 실책이 리그 탑급), 타력이 낮아 걱정하는 팬이 많다. 5월 3일 기준으로 .224 .277 .290의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으며 홈런은 0개, 도루는 1개다. 조동찬이 극심한 부진을 겪다가 부상으로 2군에 갔기 때문에 한동안 유격수 자리를 빼앗길 이유는 전혀 없지만, 타격이 적어도 2010 시즌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타자로서의 기대는 포기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경기를 많이 치룬 상황이 아니고 그나마 타율이 1할대에서 오르고 있는 중이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

5월 8일 대구 對LG전에서 선발 박모씨를 상대로 2회말에 데뷔 홈런을 터뜨렸다. 가운데로 몰린 슬라이더를 때려 펜스를 넘겼는데, 통산 228경기 610타수만의(…) 홈런. 채상병의 투런 홈런 직후에 나온 백투백 홈런이었는데, 정작 던진 투수 박모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이 광경을 본 후 삼갤 반응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덤으로 KBO 최초 팀 3,500홈런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재산과 손목을 날리게 된 브콜돼 지못미#

6월 14일 對LG전에서 또다시 선발 박모씨를 상대로 3회말 원아웃, 스코어 0:0 상황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통산 홈런이 단 2개인데 모두가 박모씨를 상대로 쳐낸 것. 그리고 그 투수는 다음에도 수비 실책 등으로 연달아 5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날의 홈런으로 특이한 기록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올해 박모씨에게 홈런을 가장 많이 뽑아낸 선수가 바로 이 김상수(!)라는 것. 박모씨 때문에 알고 보면 정의구현 홈런?

시즌 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5월 말부터 김상수는 타격에 관하여 각성하게 된다.마치 2009년의 강봉규처럼 6월에 들어서는 타격이 일취월장하여 월간 타율이 4할대를 넘어서기에 이르러 7월 1일엔 타율 .288을 기록, 3할을 바라보고 있다.(!)[10]

다만 유격수 치고 7월까지의 실책이 20개로 좀 많은 편인데[11], 안타성인 타구를 처리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에러를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넓은 수비범위를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011년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을 기록하였다. 2010년과는 다르게 공격에서도 충분한 활약을 한 셈.

결국 실책 22개로 2011년을 마감, 실책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성근 감독의 칭찬에 무색하게 삼성팬들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공격 측면에서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4. 2012 시즌

항목 참조.

2.5. 2013 시즌

항목 참조.캐발렸네??

2.6. 2014 시즌

53도루로 개인 최초 50도루 돌파와 함께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도루를 기록하고 최초의 도루왕이 되었으며, 유격수로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거기에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출전과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까지 확정.

해당 항목 참조.

2.7. 2015 시즌

LG 트윈스와의 3연전에서 중요할 때마다 실책을 범하며 루징 시리즈의 역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3. 평가

경북고 출신 프랜차이즈에, 1차 지명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고 있지만 내외적인 문제로 지명 당시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선수. 매년 주전 유격수로 풀타임을 소화하고, 공격력 수비력 가릴 것 없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선수지만 야구 외적으로 많은 논란[12]을 일으키고 있다.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기 시작한 2009년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풀 타임을 뛰면서 데뷔년도인 2009년의 두배에 가까운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타율은 유지하면서 도루와 출루율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2011년에는 비율스탯이 각각 3푼/2푼/5푼이나 증가한데다 도루개수는 전년과 별 차이없는 29개를 기록, 또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 했으며 2012년에는 초반의 부진 탓에 득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13] 2013 시즌에 다시 회복하다 못해 안타 2개차로 3할을 놓치는 좋은 성적을 보였다. 2010년 이후 도루 개수가 매년 줄어드는 점만 빼면 타격은 일취월장하고 있으며, 도루 갯수가 줄어드는 것 역시 2014년 김평호 코치의 효과로 본인의 한 시즌 최다 도루를 경신하고 구단 역사 최초의 도루왕을 거머쥐면서 옛말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멘도사 라인이 아닌 프로 6년차 선수가 매년마다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고 있는 셈.

게다가 몸이 날래고 순발력이 좋아서 수비력은 리그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류중일 감독이 수비만 놓고 보면 강정호보다도 낫다고 평가한 적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김상수의 수비를 자주 칭찬한다.수비코치 9명중 5명이 뽑은 수비로는 최고 유격수 땅볼, 플라이, 다이빙 캐치 모두 최상급. 다만 송구는 평범한 편이다. 어깨가 약하지는 않지만 강하다고도 볼 수 없는데, 자신의 어깨를 과신하는 것인지 무리하게 송구하여 도리어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몸놀림이 빨라서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빠르게 송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크게 한 번 혼나고 경험이 제법 쌓인 뒤에는 딱히 송구에 약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14] 거기다가 부상도 쉽게 안 당하는 금강불괴 속성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상술하였듯이 SNS로 인한 거대한 논란을 두 번이나 낳아, 각각의 논란에서 따온 '김짜증'과 '김발렸네'라는 별명까지 생기며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타격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복이 심한 편이라[15] 마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선수임에도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 비판하는 팬들이 많다. 팬덤에서 박석민이 실책을 저질렀을 때와 김상수가 실책을 저질렀을 때를 비교해보면 두 선수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알 수 있다. 물론 박석민도 실책이 거듭되면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팬들이나 구단에서나 염려하고 있는 것은, 박진만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이후 삼성에 제대로 된 유격수 백업이 없다는 것. 강정호처럼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닌 이상 백업 겸 주전 경쟁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젊은 나이에 주전을 꿰차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팀과 류중일 감독도 이러한 점을 늘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부임 이후 매년 유격수를 지명하고 있으나 할애한 지명권에 비해 14년까지의 소득은 미흡한 상황이다.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 수비 능력 때문에 선발됐다. 강정호와 달리 공격력은 돋보이지 않는다. 시즌 내내 9번에 배치돼 직구를 많이 상대했다.
  • 변화구가 약점. 아직 22살이고 변화구 대처능력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16][17]
  • 평균 이상의 주자로서 대주자로도 기용될 것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9삼성 라이온즈 97 242 .244 59 19 0 0 17 43 18 .308 .322
2010 101 282 .245 69 7 3 0 22 37 30 .344 .291
2011 128 406 .278 113 16 4 2 47 53 29 .362 .352
2012 129 419 .274 115 18 4
(4위)
2 36 64 25 .345 .351
2013 115 372 .298 111 17 3 7 44 57 14 .354 .417
2014 128 427 .288 123 20 8
(4위)
5 63 74 53
(1위)
.354 .407
통산 698 2148 .275 590 97 22 16 229 328 169 .347 .363

6. 기타

  • 아버지 김영범도 야구선수였는데, 현역 시절 포지션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유격수였다. 고교 졸업 직후인 1981년 농협 야구단에 입단해 1990년까지 활동하고 은퇴했다. 1989 신인 지명 때 태평양 돌핀스가 2차 4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결국 프로 입단은 하지 못했다. 1988년 10월 29일에는 한국화장품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 동생인 김상우트레인의 멤버이다.

  • 거의 풀 타임을 소화하는 붙박이 주전 유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미의 별명이 딱히 없다. 심지어 2014년에 1군에 처음 등장한 박해민도 스님 내지는 주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김상수는 흔히 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별명으로 불리진 않는다. 못하면 앞에 개가 붙고 타팀 팬이라면 류가 붙는다 대신 비하적 별명은 순식간에 붙는데, 2012년 SNS 사건 때는 답변에서 '짜증'이란 단어를 쓴 것 때문에 한동안 야갤에선 '아 짜증나'가 유행어가 되었고 김상수 본인의 별명은 김짜증이 되어 버렸으며, 2013년 WBC 이후의 SNS 사건에선 발렸네가 그대로 별명이 되었다.

  • 2012년 한국시리즈, 2013년 WBC의 대부진과 특히 WBC에서의 부적절한 SNS 사용 등으로 인해 신인 정현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정현은 지명 당시부터 프로에서 유격수로는 부적격하다는 평가가 많았고, 그 예상대로 프로 1년차 말부터 3루수로 전환했다. 그나마도 성장세가 더뎌 류 감독이 이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KT 특별지명에 대한 보호 20인서 제외되면서 정현은 KT로 갔다.

  • 유격수 백업이 부족한 삼성의 특성상 팀 내서 엄청난 수비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은 류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유격수를 뽑아오고 있지만 김상수의 경쟁상대는커녕 백업 역할을 해내는 선수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데려온 정병곤이 2013년 백업 유격수 역할을 해 냈으나 2014년 토미존 수술을 받고 15년 공익 복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백업은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부실한 백업으로 김상수는 DL을 갔던 시즌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많은 경기와 수비이닝을 소화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유격수이면서도 리그 수비이닝 소화 부문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안지만목동 야구장 샤워실(화장실이라는 설도 있다)에 '팔공산 섹스머신 삼성 김상수'라는 낙서를 남겨 '팔섹머'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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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7살 때 경북 구미로 이사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로 이사갔다. 그래서 말투는 경상도 억양보다는 표준어 말투가 더 강하다.(구미사투리가 대구 사투리와도 좀 다른데 김상수가 구미사투리를 쓰는지 확인바람.) 점마 대구 안데 와 서울말 쓰노?라고 기분 나빠하는 대구 아재들이 있다면 반드시 알아두었으면 한다. 김상수는 원래 서울 출신이다. 그렇다고 대구 프랜차이즈 후보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 [2] 야구를 시작한 것은 구미 도산초등학교이며, 위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졸업 전 옥산초등학교로 전학갔다.
  • [3] 두산 베어스 시절의 이성열(하지만 2012년 넥센으로 이적하면서 야구에서의 응원가는 이제 김상수가 유일하다),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재홍과 같은 곡을 쓴다.
  • [4] 상수야~안타를 날려주세요~(김상수!) 상수야~신나게 달려주세요~(김상수!) 오늘도 달리고x4 살리고x4 날려라 삼성의 김상수!x2. 2013 시즌 들어 홈런을 치기 시작하면서 '안타'부분이 '홈런'으로 잠깐 바뀌었다.
  • [5] 물론 농담이다. 소속팀 감독인 류중일 감독과 김상수의 수비실력을 칭찬했던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아버지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류중일 감독의 젊은 시절과 지금의 김상수의 모습을 비교하면 많이 닮았다(!). 그 뿐만 아니라 야구를 시작한 곳은 대구가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 대구로 전학와서(물론 전학 온 이유는 다르다. 자세한 것은 류중일 항목 참조바람)경북고등학교 주전 유격수로 졸업한 것, 그리고 류중일 감독이 김상수의 고교시절 자신의 글러브를 선물해준 것까지..... 그야말로 류상수(?)라고 불릴 만하다.
  • [6] 여기에 이학주 대신 오지환을 넣는 이도 있다.
  • [7] 다만 이학주는 컵스와 계약했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 선발에서 제외되었다.
  • [8] 당시 삼성 라이온즈 내야진에는 만년 기대주 조동찬이 있었으니...
  • [9] 덕분에 박진만은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생애 첫 2루수 자리에 서기도 하였다.
  • [10] 해설가 허구연에 따르면 조성환의 타격 폼을 따라했으나 올 시즌 포기하였다고 한다. 근데 그러고 나서 타율이 올랐다.
  •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에서 이대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타격으로 보나 실책수로 보나 강정호김선빈에게 밀렸지만, 우승 팀 프리미엄이...
  • [12] 2014 시즌부터 김평호 코치가 부임했음에도 평코 몰래 비공개로 SNS를 여전히 하는 등 딴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프런트에서도 손을 못 쓰는 듯하다. 자세한 건 김평호 항목 참고.
  • [13] 득점이 올라간 이유는 중간에 류중일이 김상수를 테이블 세터로 기용했고, 이게 제법 성과가 좋았던 덕분이다.
  • [14] 포구가 좋지 않은 조영훈이 1루를 볼 때 송구 실책이 자주 나왔지만 수비가 좋은 채태인이 1루를 보면서 송구 실책이 눈에 띄게 줄었다.
  • [15] 2013년 .298의 커리어하이를 찍을 때도 개막전 이후 22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타고투저였던 2014년에는 잠시 3할을 뚫었다가 다시 추락하였다.
  • [16] 그런데 정작 2010년~2012년에는 직구상대 타율이 2할대 초반이고 슬라이더와 커브 상대 타율이 3할에 육박하거나 넘어섰었다. 즉 사도스키가 잘못 파악한듯하다.
  • [17] 변화구 상대 타율이 높다는 것만으로 변화구가 약점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해 볼 부분이, 변화구에 대한 약점이 도리어 빠른 볼을 상대로 한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스탯상으로 평가했다고 보면 사도스키가 잘못 평가한 것이 맞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