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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last modified: 2015-02-17 16:00:17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2.삼성 라이온즈 의 투수
2.1. 연도별 성적
3. 정치인

1.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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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파트너인 박주봉과 함께 세계 배드민턴 남자 복식을 평정한 선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역대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초대 금메달 리스트.

1963년 12월 29일 생이다. 부산동고와 원광대학교를 나왔다. 청소년 시절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1983년 알바 월드컵 대회에서 영혼의 동반자인 박주봉과 함께 우승을 따내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박주봉-김문수 콤비는 국내 대회에서 103연승을 기록하고, 국제 대회에서 적수가 없는 깡패로 군림했다. 거의 나가는 대회마다 모조리 우승을 석권.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유럽 및 아시아의 강호들 상대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거의 박주봉과 짝을 이뤄 복식에 출전했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성한국과도 짝을 이루기도 했고, 정소영, 황혜영 등과도 짝을 이뤄 혼합복식에도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위력적이었던 것은 박주봉과의 파트너십.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28차례의 국제 대회를 석권한 그들의 마지막 무대는 바로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 대회에서 그간의 무적의 포스가 허명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입증하면서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 조를 세트스코어 2:0으로 완파하고 올림픽 역사에 초대 남자 배드민턴 복식조 우승자로 남게 되었다. 박주봉-김문수 조 입장에서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배드민턴이 너무 늦게 채택된 것이 아쉬울 뿐. 왜냐면 이 둘이 우승했을 당시 이미 그들은 30줄에 접어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한국 배드민턴은 그 뒤 김동문-하태권, 이동수-유용성이 등장하는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 복식에서 암흑기를 경험해야 했다.

왼손잡이로 네트 플레이에 능하고, 절묘한 서브로 상대를 공략했다. 오른손잡이로 후위에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친 박주봉과 완벽한 상호 보완을 이뤘다. 특히 체력이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했던 박주봉을 보좌하는데 가장 이상적이었던 선수. 스포트라이트는 아무래도 좀 더 주공에 가까웠던 박주봉에게 돌아갔지만, 김문수의 공헌이 아니었다면, 박주봉이 배드민턴의 황제로 군림하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 중평.

같은 배드민턴 선수인 유상희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2012년 현재 삼성전기 배드민턴 팀의 기술 고문. 2002년 세계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간간히 올림픽마다 방송 해설로도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벌어진 져주기 게임에 연루되어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 4년간 국가대표 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2. 삼성 라이온즈 의 투수



이름 김문수(金文洙)
생년월일 1979년 9월 30일
출신지 경상북도 경주시
학력 월성초-경주중-경주고-계명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3년 2차 3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3~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9번(2003~2004)
매니 마르티네스(2001) 김문수(2003~2004) 김현중(2005~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7번(2007~2009)
임창용(2002~2006) 김문수(2007~2009) 곽동훈(2010~2011)

삼성 라이온즈 우완 사이드암 투수.

경주고 시절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계명대 시절에도 팀의 주축 투수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 모두 소속팀이 약체팀이어서 그리 주목받지는 못했다. 2003년 삼성의 1차 지명 후보 중 1명이었으나 포철공고 좌완투수 김형근[1]에게 밀려 1차 지명을 받지는 못했고 2차 지명에서 3라운드에서야 삼성에 지명됐다.

입단 당시에는 삼성 계투진이 좋은 편이라서 2군에서 머물다 시즌 후반에나 잠깐 1군에 올라올 수 있었고, 그 때문에 2004년 시즌 후 비슷한 처지였던 권오원과 함께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에서 중간계투로서 활약하면서 2년 동안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7년 삼성에 복귀하면서 삼성에서는 상무에서 마찬가지로 맹활약한 권오원과 함께 1군 계투진에서 1자리를 맡아주기를 기대했다. 특히 시즌 초반 권오준이 구위 난조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삼성에 사이드암 투수는 김문수 혼자였다. 그럼에도 기회를 못 살리면서 1군에서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08년 7월 19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뒤 팀 타선의 도움으로 한국 나이로 30살에 프로 첫 승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실전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고,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삼성에서 방출됐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삼성 라이온즈 2 2⅓ 0 0 0 0 15.43 9 1 1
2004 1 0⅔ 0 0 0 0 0.00 0 3 0
2005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
2007 11 12 0 1 0 0 2.25 8 5 5
2008 8 6⅔ 1 0 0 0 8.10 11 2 3
통산 22 21⅔ 1 1 0 0 5.40 28 11 9

3. 정치인

동명이인이 있는 정치인이므로 기본 사항만 서술합니다.

전 국회의원이자 경기도지사이며, 국회의원은 15대부터 17대까지 지냈고, 경기도지사는 32, 33회를 지냈다.

서브컬쳐계에선 철덕으로 알려져있다.

화성시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 시연식에서 스턴트맨이 떨어지면서 총격전도 하고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오토바이 타다가 떨어지고 하는 등의 액션을 선보였다. 당시에 꽤 호응이 있었고 인기도 있었다. 주말에 사람들도 많이 와서 누군가는 30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사건사고를 찾기 위해 왔다면 도지삽니다 항목으로 이동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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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김형근은 1군에 못 올라왔다. 삼성 1차 지명 흑역사 중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