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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야구선수)

last modified: 2015-04-14 09:47:48 Contributors


1990년대 최고의 포수였던 LG 트윈스시절 권용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한 히어로즈시절



다시 입게 된 LG 유니폼

LG 트윈스 No.80
김동수(金東洙)
생년월일 1968년 10월 2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화곡초-강남중-서울고-한양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1차 지명[1]
소속팀 LG 트윈스(1990~1999)
삼성 라이온즈(2000~2001)
SK 와이번스(2002)
현대 유니콘스(2003~2007)
히어로즈(2008~2009)[2]
응원가(LG시절) Queen - We Will Rock you[3]

1990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박정현(태평양 돌핀스) 김동수(LG 트윈스) 조규제(쌍방울 레이더스)

1990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유승안(빙그레 이글스) 김동수(LG 트윈스) 장채근(해태 타이거즈)
1993 ~ 1995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장채근(해태 타이거즈) 김동수(LG 트윈스) 박경완(쌍방울 레이더스)
1997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경완(쌍방울 레이더스) 김동수(LG 트윈스) 박경완(현대 유니콘스)
1999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경완(현대 유니콘스) 김동수(삼성 라이온즈) 박경완(현대 유니콘스)
2003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진갑용(삼성 라이온즈) 김동수(현대 유니콘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등번호 12번(1990~1991)
김진우(1989) 김동수(1990~1991) 나진균(1992)
LG 트윈스 등번호 2번(1992~1999)
백인천(1990~1991) 김동수(1992~1999) 장재중(2001~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2000~2001)
진갑용(1999) 김동수(2000~2001) 임재철(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번(2002)
김동수(200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번(2003~2007)
김필중(1998~2002) 김동수(2003~2008)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번(2008~2010)
팀 창단 김동수(2008~2010) 조재호(201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0번(2010~2014)
강병철(2008) 김동수(2010~2014) 손혁 (2015~ )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김무관(2012~2014) 김동수(2015~ ) 현역


3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호성(2001) 김동수(2005) 이종범(2006~2007)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2.1. LG 트윈스 시절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3. SK 와이번스 시절
2.4. 현대 유니콘스 ~ 히어로즈 시절
2.5. 여담
3. 지도자 시절
3.1. 넥센 히어로즈 코치
3.2. LG 트윈스 2군 감독
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한국프로야구 선수. 2009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으며, 2010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배터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이만수, 박경완과 더불어 3대 포수로 불릴 정도로 꾸준했고, 좋은 성적을 기록한 포수. 1980년대는 이만수, 1990년대는 김동수, 2000년대는 박경완의 시대라 불렸다. 2010년대는 번저강의 시대?등번호는 백인천이 감독으로 있었던 1990~1991년까지는 12번, 1992년 이후로는 어느 팀을 가더라도 계속 2번.

최고의 투수 리드로 정평이 나 있었고 타격도 수준급이었으며, 넓고 깊은 잠실 야구장 덕에 홈런왕을 다투지는 못했지만 팀내 홈런왕에 오른게 4차례일 정도로 장타력이 출중했다.

소속 팀의 우승과 인연이 깊다. 서울고 - 한양대 시절에도 각종 아마 대회에서 밥먹듯이 우승을 했고 프로에 데뷔한 첫해였던 1990년부터 신인왕과 함께 소속팀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후 1994년에 다시 LG의 우승, 현대에 이적하고 다시 2003, 2004년 2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주도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2.1. LG 트윈스 시절



1990년 1차 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1990년 데뷔 시즌에 심재원, 효인 등 쟁쟁했던 선배들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포수 출신, 우승 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신인왕을 수상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이에 LG는 MBC 청룡 시절부터 팀의 핵심 포수였던 심재원을 은퇴시키며 김동수 원탑 체제로 개편을 단행하였으나 정작 김동수는 1991년 시즌에 2년차 징크스와 허리 부상까지 겹쳐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1991년 시즌 종료 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1992년 시즌 20홈런을 때려내며 부활, 1993년 시즌 역시 투고타저시대에 비해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2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4], 이 때 부터 이만수, 장채근, 김동기 등을 제치고 최고의 포수 반열에 오른다. 1994년 시즌은 방위 복무로 인해 홈 경기와 인근 수도권 원정 경기밖에 출전[5]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두번째 우승반지와 3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된다. 저 때의 골글은 김동기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는데, 단 2표 차이로 결과가 갈렸다.

1995년 시즌 중 방위병 소집 해제로 복귀하였고 이상훈-김기범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팀을 전반기 1위로 이끄나 8월부터 시작된 OB 베어스의 대약진과 당시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의 전략미스[6]등의 악재가 겹치며 시즌을 2위로 마감, 이어진 포스트 시즌에서 공포의 소총부대를 구성한 롯데 자이언츠에 플레이오프에서 패퇴하며 2연속 우승의 꿈을 접어야만 했고 김동수는 4번째 골든 글러브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1996년에는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득점권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8월 초에 50타점을 기록하며 전체 타점 순위 상위권에 들었을 정도였으나 8월 초반 이후 시즌 종료까지 타점을 기록하지 못하는 엄청난 부진을 보였고 팀은 7위[7]에, 골든글러브 역시 포도대장으로 불리며 주가를 올린 박경완에게 빼앗기며 체면을 구겼다.

1997년에는 임선동, 승남, 손혁 등 신인급들이 많은 투수진을 훌륭하게 리드하고 시즌 초반 심재학의 부상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 주는 타격까지 선보이며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며[8]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1996년에 박경완에게 빼앗겼던 골든글러브를 다시 탈환하며 5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타격은 타율은 닞았지만 17홈런을 때리며 맹활약

1998년 역시, 공수양면에서 활약하였는데, 7월 25일 경기에서는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였던 정민철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뽑아내어 대기록 작성을 저지하기도 하였다. 타율 2할 8푼, 홈런 20개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누수가 많았던 투수진을 잘 이끌어 코리안 시리즈 진출까지 시키는 등의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골든글러브의 영광은 당시 제1차 현대왕조를 세운 박경완에게 밀려 연속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1998년 이후 김동수가 신인 시절 때 선배 포수 심재원 등을 밀어냈던 것처럼 당시 신인이었던 조인성을 차기 주전 포수로 밀어주려는 LG 구단과 김동수 간의 신경전이 펼쳐지게 된다. 이 때 틀어졌던 양자간의 관계는 1999년 시즌 중 트레이드 문제가 터지면서 끝장이 나게 되는데, 이런 어수선한 상황과 팀에서 의도적으로 출전을 줄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동수는 1999년 6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9년 시즌 종료 후 첫 FA 제도가 시작되었고 조인성을 밀어주긴 하되, 안정된 베테랑 백업으로서 당장은 김동수가 필요했던 LG는 김동수와 계약을 맺기 위해 그에게 연락하였으나 김동수는 우선협상 기간 동안 하와이로 출국하여 연락을 끊고 만다. 이에 당황한 LG구단은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KBO 이사회를 소집하여 FA제도의 폐지를 시도하였으나 나머지 구단의 반발로 무산되고 LG구단은 이 자리에서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 구단에서 김동수와 계약하기 위해 일부러 김동수에게 잠적을 권유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삼성 구단과 언쟁을 벌이게 된다.[9][10] 이런 논란 속에 원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이 끝나자마자 김동수와 삼성과의 계약이 발표되었다. 이때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LG 팬들에게는 배신자의 이미지가 남게 되었고, LG 프런트는 보복으로 투수 김상엽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하지만 김상엽은 부상 악화로 2경기 등판 후 2001년에 은퇴했다.

배신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지만, LG 시절 김동수의 전성기는 이만수의 뒤를 이은 유일무이한 포수 본좌였다. 그의 독주체제가 구축된 1993년을 기점으로 이만수, 장채근, 김동기는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임수혁이도형은 잠시 반짝하다가 주저앉았다. 1990년대 말에 두각을 나타낸 박경완이나 진갑용은 전성기가 2000년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 최고의 포수는 김동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11] 또한 2013년 현재까지 LG의 우타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올린 타자 중 한명으로, 그를 능가할 만한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0년 시즌, 의욕적으로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하게 되나 타율 0.205, 11홈런 30타점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며 FA로 영입된 포수였음에도 진갑용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된다.

2001년 역시 다를게 없어서 서브 포수로 완전히 전락하고 말았으며, 같은 FA 선수였던 홍현우, 이강철, 김기태 등도 함께 부진하면서 한때 FA 무용론까지 일었을 정도였다. 진갑용이 시즌 후반 부상을 당하며 한국시리즈에 주전 포수로 출장하였지만,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한국시리즈 패배를 막지 못했다. 결국 시즌 후 6:2 현금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2.3. SK 와이번스 시절

SK에서도 주전포수가 아닌 강성우, 양용모와 같이 돌려막는 서브 포수에 불과했으며, 성적도 역시 백업포수의 성적을 기록하며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난 후 취임한 조범현 감독은 FA 최대어인 박경완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하여 김동수를 방출하였다.

박경완의 FA 이적으로 포수진에 공백이 생긴 현대 유니콘스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고, 곧바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다. 결과적으로 박경완과 팀을 맞바꾼 셈.

2.4. 현대 유니콘스 ~ 히어로즈 시절


2003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에서는 박경완의 공백을 강귀태와 대학리그 포수 최대어였던 이택근으로 메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김동수는 백업포수, 그리고 대타 요원으로 쓰여질 계획이었고, 실제로 시범경기와 시즌 시작 후 4월까지 김동수는 벤치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주전 포수였던 강귀태가 개막 후 2경기만에 부상을 당하고 이택근의 포수 수비가 시망 수준으로 드러나자, 바로 주전 포수로 복귀했다. 5월부터 안정된 수비는 물론 높은 타율을 기록하면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을 방출한 SK를 상대로 활약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3번째 우승을 견인하였다. 유일하게 3할을 친 것과 마지막으로 골든글러브를 받은 것도 이 시즌의 일.

2004년 시즌 역시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공헌하였다. 타석 수에 시합 수가 적었던 것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강귀태와 7:3 비율로 출장하였기 때문.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FA 권리를 행사하여 2번째 FA가 되었다. 원소속팀 현대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2년 10억을 요구하였으나 현대 쪽에서는 김동수의 나이를 고려하여 2년 계약을 거부, 우선협상이 결렬되어 시장이 나가게 되었다. 당시 포수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쪽에서 김동수 영입에 나설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롯데 측에서도 김동수의 나이와 영입 시 보상 선수를 내줘야하는 점에 부담을 느껴 영입을 포기했다. 1월 중순까지 팀을 찾지 못하며 FA 미아가 되어버렸고 결국 현대와의 기나긴 협상 끝에 2년 6억의 조건으로 FA계약을 마친다.

2005년 시즌 안정된 수비와 5월 22일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죽지 않은 장타력을 과시하였으나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이탈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2006년 시즌에선 작년의 부진을 만회하며 작년 7위였던 팀을 2위로 이끄는데 공헌하였고, 07년 시즌 역시 구단 매각설로 팀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에도 동요없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다.

히어로즈로 팀명이 바뀐 이후 2008년 9월 23일에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이자 포수로는 최초로 2,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으며, 2009 시즌부터는 플레잉코치가 된다. 2009년엔 한 때 4할을 치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 후 타격감이 좀 떨어졌고 노쇠화와 더불어 선수로 뛰기는 하지만 사실상 코치와 다름없는 플레잉코치라는 자리에 있다는 점 등 출장 자체가 많지 않았다.[12] 2010년부터는 선수 생활을 접고 코치로 완전히 전향. 5월 30일 목동 LG 트윈스(!)전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은퇴식을 가졌다.

통산 성적은 2,309경기 6,940타석 5,915타수 1,556안타 202홈런 871타점 56도루 타율 .263 출루율 .346 장타율 .423이다. 공수 양면에서 수준급의 기량을 지녔고 삼성 시절의 부진을 제외하면 수비부담이 큰 포수 치고는 상당히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역대 최고의 포수를 꼽을 때면 빠짐 없이 거론된다.

2.5. 여담

  • 드라마 부활 14회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동 드라마에 출연하였던 탤런트 함석훈과 친분이 있어 촬영하게 되었다고.

  • 2011년 1월 25일 방송된 MBC라디오의 장수 프로그램, 싱글벙글쇼의 청취자참여 문제의 답을 맞춰냈다.


  • 2006년 벤치클리어링 유망주에게 분노의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다. 안영명이 김동수의 등짝으로 날아가는 공을 2연속으로 던졌다.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2번째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가니 진실은 던진 당사자만이 알겠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던 상황. 그리고 마운드로 달려나가던 김동수는 너무 흥분했는지 도중에 넘어져서(...) 더 격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벤치에 있던 회장님에게 플라잉 니킥을 등짝에 맞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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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 팀을 대표하던 최고참선수 둘이 가장 뜨거운 파이팅을 선보인 장면이 인상적.

  • 이병훈 해설위원이 사사구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MBC, LG 시절에 함께 선수생활을 했을때의 일화로 일년에 홈런을 한자릿수밖에 치지 못했지만[14], 그게 전부다 잠실구장 XX존[15]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결승타, 결승득점 등으로 받는 보너스를 가장 많이 받은 선수도 김동수라고(…)

3. 지도자 시절

3.1. 넥센 히어로즈 코치


허도환 때문에 속이 탄다.
2010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1군 배터리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선수시절 현대-히어로즈 선수시절의 인기와는 다르게 그의 은퇴 이후 그를 대체하고 있는 포수들의 성장세가 부진하자 히어로즈 팬들은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표하였다. 2010년 이후 주전포수로 거론되던 강귀태, 허준, 유선정, 박동원이 모조리 폭망... 다만 강귀태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노쇠화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김동수 코치와 연관시키는 건 무리라는 주장도 있었다. 근데 이제는 강커태는 넥센이 아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때 배터리코치로 참가하기도 했다.

2014년 비니 로티노의 포수 훈련을 도와주어 포수로 선발 출전해 호성적을 거두게 하였고, 김동수가 공들여 육성했던 박동원이 7월부터 놀랍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간 넥센 포수들의 부진이 김동수 코치 때문이 아니라 선수들의 재능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던가 하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최형우가 사인을 알고 쳤다고 발언하여, 욕을 먹었다. 그래도 그 시작점을 만든 선수보단 덜 먹었지만.

3.2. LG 트윈스 2군 감독



2014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2014년 11월 12일 친정 팀인 LG의 2군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당초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었다고 보도되었으나, 조계현이 떠나서 공백이 생긴 2군 감독으로 최종 보직이 결정됬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1990 LG 트윈스 110 352 .290 102 20 1 13 62 46 15 45 .379 .463
1991 90 255 .196 50 8 3 5 24 29 5 26 .288 .310
1992 121 381 .257 98 15 4 20 69 47 3 45 .343 .475
1993 115 372 .274 102 16 3 16
(4위)
56 47 7 41 .351 .462
(5위)
1994 95 316 .288 91 20 3 6 42 45 4 43 .381 .427
1995 108 334 .260 87 15 2 10 35 40 4 40 .343 .407
1996 108 330 .245 81 11 0 12 50 43 0 33 .330 .388
1997 121 394 .236 93 26 0 17 66 54 2 54 .335 .431
1998 118 408 .284 116 28 2 20 66 67 2 44 .362 .510
1999 104 334 .287 96 22 1 16 65 55 1 39 .376 .503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0 삼성 라이온즈 90 200 .205 41 9 1 11 30 23 0 31 .319 .425
2001 89 181 .276 50 11 0 5 30 18 0 22 .360 .42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2 SK 와이번스 95 251 .243 61 10 2 11 32 28 1 22 .323 .43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3 현대 유니콘스 117 367 .308 113 15 1 16 68 48 3 45 .390 .485
2004 113 311 .251 78 13 1 2 31 38 2 32 .342 .318
2005 96 274 .219 60 4 2 10 30 24 2 20 .283 .358
2006 115 333 .279 93 12 0 5 40 38 3 29 .348 .360
2007 111 306 .278 85 18 0 4 39 22 2 26 .329 .37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8 우리 히어로즈 94 159 .239 38 7 2 1 23 15 0 15 .305 .327
2009 히어로즈 29 57 .368 21 6 0 2 13 14 0 9 .456 .579
통산 20시즌 2039
(4위)
5915 .263 1556 286 28 202 871 741 56 661 .346 .423

역대수상
연도 수상내용
1990년 최우수 신인상 수상,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1993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1994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1995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1997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1999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연도 수상내용
2003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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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해에는 팀마다 2명씩 1차지명을 했다. LG트윈스의 1차지명은 김동수와 이병훈이었다.
  • [2] 2010시즌 부터는 배터리코치로 승격
  • [3] (we will we will rock you부분에 맞춰)동~수~동~수~ 김동수! 김동수! 동~수~동~수~ 김동수! 김동수! 이 응원가는 양준혁을 거쳐 최동수에게 이어지게 된다.
  • [4] 어느 정도였냐면 팀내 최고 ops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 중 최다 홈런(16개)을 기록한다.
  • [5] 방위병이 홈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95년의 일이며, 장거리 원정을 나가지 못했던 김동수의 공백은 김정민이 메웠다.
  • [6] 8월에 너무 낙관을 한 나머지 1.5군급 라인업으로 자주 게임을 치루거나 이해못할 배치를 많이 하였으며 이 때문에 8월 성적이 좋지 못하였다.
  • [7] 진갑용에 대한 쟁탈을 위한 의도적인 져주기였다. 김동수 역시 9월 이후부터는 출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작 꼴찌를 한 팀은 OB였지만...
  • [8] 다만 타격 부분은 7월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 [9] 이 사건으로 원래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던 LG와 삼성 구단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어 트레이드 논의는 커녕 사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이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겨우 해빙되었고, 2012년 말 LG가 FA 시장에 나온 투수 정현욱을 영입하고 3-3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완전히 풀렸다.
  • [10] FA제도 도입 자체가 우승에 목말라 있던 삼성이 전력보강을 위해서 밀어붙인 결과였다.
  • [11] 마구마구에서 김동수의 레전드 카드가 현대-히어로즈가 아닌 LG로 나온것은 1990년대 그의 업적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14년 듀얼 레전드가 적용되면서 현대 버전 카드도 나왔다.
  • [12] 2009 시즌이 끝나고 LG 트윈스의 1군 배터리 코치 제의를 받았고 사실상 영입 분위기까지 갔는데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이 송별회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동수는 김시진 감독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결국 히어로즈에 남았다. 물론 LG 트윈스를 떠날 당시 LG구단과 불화가 생겨 좋지않게 떠난것도 작용했지만.
  • [13] 정확하게는 김동수가 회장님의 니킥에 맞은게 아니라 한화 이글스에서도 뛰었던 송지만과 포수 심광호가 희생자. 송지만은 그것도 말리러 나왔다(...) 졸지에 봉변 당해서 송지만이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훗날 송회장님이 회고한 바에 의하면 안영명 고의사구를 지시한 주범이 바로 구대성.
  • [14] 이 부분은 이병훈의 오류. 김동수는 LG시절 부상이 있었던 91년과 방위출전으로 잠실구장에서만 출장하였던 94년을 제외하고 모두 두자릿수 홈런을 때린 대표적인 슬러거 포수였다. 간혹 LG 타선이 물타선이 되면 동수 옹이 친히 4번을 맡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 [15] 당시엔 외야에 XX존이 있어서 이쪽으로 홈런을 치면 LG전자제품을 제공하거나 상금을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