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김대건

last modified: 2015-04-12 21:19:11 Contributors


1. 조선가톨릭 신부, 성인

金大建, 1821년 8월 21일~1846년 9월 16일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 세례명안드레아. 이름은 재복(再福). 후에 중국 마카오에서 대건으로 불리게 된다. 한국 성직자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축일은 7월 5일.

사제서품 1년 1개월 만에 순교했으니, 그가 밟아온 사제의 길을 세속적 시점에서 바라보면 매우 안습하다.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했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사제로서의 삶뿐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일말의 기회조차 오지 않았던 것이다.

군함이 상륙하는 데 도움이 될 해안지도를 프랑스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잡혔던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김대건 신부가 전달한 것은 조선전도이고 이미 전달하고 돌아온 도중에 잡힌 것이며 "프랑스 영사가 중국 황제에게 신부들을 죽이는데 대한 잘못을 설득시키고, 또 황제가 조선 왕에게 프랑스인들을 그렇게 쉽게 깔보고 죽이지 말며, 신자들에게 자유를 주도록 명하게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대단히 좋을 것이다. 만일 중국 황제가 조선 왕에게 명한다면 조선 왕은 따를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평화로운 방법을 중시하였지 황사영마냥 군사적으로 천주교를 전파하려던 건 전혀 잘못된 내용이다. 실제로 조선에서도 김대건 신부를 간첩이 아닌 천주교 신자로서 처형한 것이 대표적인 증거.[1] 딱히 군사적으로 유용하다고 보기도 힘들었고 저 지도로 인해 프랑스의 침략 계획에 딱히 영향이 가지도 않았다. 빼도 박도 못하고 이적질하다가 처형당한 황사영과는 전혀 케이스가 다르다.

그가 순교하기 이틀 전, 조선 조정이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배교나 추방 중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거부하자 전원 처형했다. 이후 왜 자국민을 죽이냐고 따지러 프랑스 함대가 나타났는데, 당시 조정은 힘에서 밀릴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대건 신부를 통하여 프랑스와의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건 신부는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엘리트였고 당시 조선 팔도 통틀어 이런 인재는 전무한 수준이었기에 국가적으로도 상당히 쓸모있는 인재였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가 조정 관리들 앞에서 깃털 펜으로 가늘고 꼬부랑대는 서양어 필기체를 능숙하게 써 보이자, 조정 관리들이 마술 보듯 신기하게 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관리들 대부분은 철펜이나 깃털 펜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으로 그 가늘고 꼬부랑거리는 서양어를 쓰는 능력자들의 집합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조정 내 몇몇 대신도 그 능력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하여, 천주교만 버리면 살려줄 뿐 아니라 벼슬도 내리고 후한 보상을 하겠다면서 설득해 보았지만 그가 결사코 거부했다. 다만 배교는 거부해도 조정에서 프랑스와의 협상을 요청해 오면 그 일은 협조할 생각이었는데, 천주교 사제 신분으로 조선 정부를 대신하여 프랑스와 협상을 좋게 이끌어 내는데 성공만 한다면 천주교 공인까지는 몰라도 천주교의 이미지가 올라갈 건 확실하니 김대건 신부로서도 해 볼 만한 일이었던 셈. 그러나 프랑스 함대가 자신들의 입장이 담긴 종이 쪼가리만 휙 던져주고 사라져버려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조선 정부도 어쩔 수 없었는지 배교를 다시 권했으나 거부하자 결국 사형 판결이 내려져 김대건 신부는 새남터 형장에서 다른 신자들처럼 참수를 당하며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후에는 강화도 조약 체결 전까지 흥선 대원군이 다시 한 번 쇄국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에 그치지 않고, 한국 천주교회사에 한 획을 그었을 만큼 업적이 뛰어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건 신부와 동기이자 동시대 사람이며 친구이자 한국의 2번째 신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최양업 신부는, 그 입지가 김대건 신부보다 업적은 많을지언정 인지도에서는 미비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김대건 신부를 피의 증거자라고 부르고 최양업 신부를 땀의 증거자라고 부르는데, 최양업 신부가 김대건 신부 몫까지 도맡아 하느라 결국 과로로 운명을 달리 해버린 걸 보면(…) 땀의 증거자라는 말이 그냥 붙은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신부 수업을 받으러 중국 마카오에 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았고, 김대건과 같이 사제 공부를 하러 간 최양업, 최방제는 중국에서 같이 사제 공부를 하다가 최방제가 그만 지병인 천식말라리아가 겹쳐 유명을 달리하고 최양업은 사제가 되기에는 나이가 부족하단 이유로 중국에 남겨졌다.

1857년 교황 비오 9세가 가경자로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 때문에 그의 이름 전체를 다시 세례명으로 쓸 수 있다. 이 경우 본명인 '대건'과 세례명인 '안드레아'를 모두 합쳐 세례명으로 쓰기 때문에 홍길동이란 사람이 이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교적홍길동 대건 안드레아라는 식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것은 본명을 갖고 있는 한국 출신 성인의 경우엔 모두 마찬가지.


참수된 후 신자들이 수습한 김대건 신부의 두개골은 으로 방부처리한 후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계에서는 이 두개골의 측정치를 이용하여 생전 모습을 3번에 걸쳐 복원하였는데, 흔히 알려진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갸름한 서양형 얼굴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전국에 있는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들은 바로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학교이다. (인천광역시, 논산시, 대구광역시 등에 있다.) 당연히 천주교 계열 미션스쿨. 그 외에도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학교에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딴 김대건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몇몇 미션스쿨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2. 대한민국의 전(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메카닉 테란의 아버지. 또한 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의 밸런스 담당으로도 유명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프로게이머 시절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 소속: 골드뱅크
  • 출생: 1979년 12월 27일
  • 주종목: 테란
  • ID: St. eagle
  • 특기: 세계 최고 테란 플레이어중 한명으로 침착하게 상황 판단을 하여 정석적인 플레이를 한다.[2]
  • 경력: KPGL 제5회 외환카드배 대회 우승, APGL 아시아 대회 우승[3], 2001년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기억에 남을만큼 화려한 커리어는 아니지만 당시 외면받고 있던 메카닉 테란을 완성시키고 그 전술을 확립시켰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받는다.

프로게이머 시절 저그 상대로도 메카닉을 사용한 선구자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왜냐면 바이오닉이 너무 안 돼서 자기가 잘하는 메카닉으로는 뭐가 좀 될까 싶어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 말~2001년 초 쯤에 임요환과 교류하면서 임요환바이오닉을 김대건에게 가르쳐주고 김대건은 메카닉임요환에게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요환메카닉을 훌륭히 소화했고 김대건은 바이오닉을 자기 것으로 하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둘 다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

그의 메카닉 운영 능력은 테란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서, 한때 임요환의 저그전과 김대건의 토스전을 합친 임대건이라는 유저가 활약하는 환상의 테란이라는 소설이 연재되기도 하였다.

토스전은 벌쳐 조종사의 멱살을 잡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극강이었고[4] 테란전도 잘했지만 그놈의 바이오닉(…)이 발목을 항상 잡았다. 올드 게이머로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001년 온게임넷 스카이 스타리그에 8강까지 올라갔으나 김동수의 몰래로보틱스 전술에 걸려서 아쉽게 4강문턱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군문제 등등으로 인해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던전 앤 파이터의 밸런스 담당으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예나 지금이나 개판이지만[5] 당시 던파 막장밸런스 운영의 상징으로서 하루가 멀다하고 욕을 먹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밸런스 담당이 김대건이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당시 안습일로를 걷고 있던 거너 유저들의 집중적인 비난이 쏟아졌지만, 거너 개편을 통해 이런 비난은 좀 줄어들었다. 특히 메카닉을 지금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메카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림에 따라 '과연 메카닉의 아버지'라는 찬사 아닌 찬사도 들었지만, 이후 거듭되는 너프로 메카닉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자 그냥 '자기 하는 직업 강하게 만든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이후 던파에서 나온 뒤 사이퍼즈를 거쳐 최강의 군단으로 이적했다.

----
  • [1] 임금이 말하기를, "김대건(金大建)의 일은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하자, 권돈인이 말하기를, "김대건의 일은 한 시각이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사교(邪敎)에 의탁하여 인심을 속여 현혹하였으니, 그 한 짓을 밝혀 보면 오로지 의혹하여 현혹시키고 선동하여 어지럽히려는 계책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술뿐만 아니라 그는 본래 조선인으로서 본국을 배반하여 다른 나라 지경을 범하였고, 스스로 사학(邪學)을 칭하였으며, 그가 말한 것은 마치 공동(恐動)하는 것이 있는 듯하니, 생각하면 모르는 사이에 뼈가 오싹하고 쓸개가 흔들립니다. 이를 안법(按法)하여 주벌(誅罰)하지 않으면 구실을 찾는 단서가 되기에 알맞고, 또 약함을 보이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는 <헌종실록> 김대건 신부의 죄목은 '혹세무민'과 '청나라로 밀입국'만이 언급되었다.
  • [2] 그러나 스카웃 2기에 패배한 것때문에 두고두고 조롱을 받았다.
  • [3] 이 당시 우승상금의 3만달러로 굉장히 큰 대회였다
  • [4] 데미소다배 스타크래프트 대회(당시엔 협회 같은 것도 없었으니 비공식 대회) 결승전에서 벌처 3대로 상대방 기지로 침투해 드라군 3기 사이에다 마인 3개를 박아 다 잡아낸 플레이는 백미.
  • [5] 사실 김대건이 있던 시절의 던파와 2014년 시점의 던파의 직업 간의 격차의 수준은 상당히 다르다. 예전 던파가 적정 레벨 일반 던전 노멀 ~ 익스퍼트에서도 골골거리는 직업 ~ 당시 최고 난이도의 던전이었던 고대 던전까지 파괴하고 다니던 직업이었다면, 지금의 던파는 일반 던전 하드까지는 어떻게든 돌 수 있는 직업 ~ 졸라짱쎈 OP직업 정도의 차이로 상향평준화되었다. 물론 당시에 비해 하위 던전과 상위 던전의 난이도가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다 유저들의 장비 수준도 거듭된 파워 인플레이션으로 상당히 올라갔기에 직업간 성능 격차는 오히려 지금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