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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1969년생)

last modified: 2019-05-17 02:44:58 Contributors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올스타 베스트10
선동열
(투수)
이만수
(포수)
장종훈
(1루수)
박정태
(2루수)
김재박
(유격수)
한대화
(3루수)
양준혁, 이순철, 장효조
(외야수)
김기태
(지명타자)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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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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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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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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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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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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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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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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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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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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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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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돌격대의 해결사, 왼손의 신사, 좌타거포 계보의 계승자
LG 트윈스 감독 시절: 포기태, 숲기태, 사신기태, 김검지, 김기태왕사신기, 김기태티서
2014년 감독 사퇴 이후: 런기태, 런명보, 닷지태, 동님, 김도망,런닝맨
2016년: 비밀번호 해독 전문 감독. LG에 이어서 KIA의 4년 암흑기도 끝냈다.

LG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서 그만큼 많은 실망을 안겨 줬던 감독. LG팬으로 알려진 만화가 최훈은 아예 자기 프로야구 카툰에서 2014년 시즌 중 일방적 감독직 사퇴 후 완전히 극렬안티로 돌아섰는지 그가 등장하는 카툰에서 혹독하게 깐다.


KIA 타이거즈 No.77
김기태(金杞泰)
생년월일 1969년 5월 2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광주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인하대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1], 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신생팀 특별우선지명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삼성 라이온즈 (1999~2001)
SK 와이번스 (2002~2005)
지도자 SK 와이번스 타격코치 (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2군 감독 (2007~2009)
LG 트윈스 수석코치/2군 감독 (2010~2011)
LG 트윈스 감독 (2012~2014)
KIA 타이거즈 감독 (2015~2019.5.16)

1992년~1994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김기태(쌍방울 레이더스) 김형석(OB 베어스)
2004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동주(두산 베어스) 김기태(SK 와이번스) 김재현(SK 와이번스)

2004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최기문(롯데 자이언츠) 김기태(SK 와이번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1994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김성래(삼성 라이온즈) 김기태(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OB 베어스)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0번(1994~1998)
김기태(1994~1998) 이진영(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1999)
양준혁(1993~1998) 김기태(1999) 김주찬(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2000~2001)
전병호(1996~1999) 김기태(2000~2001) 이정호(2002~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10번(2002~2005)
이진영(2000~2001) 김기태(2002~2005) 오타니 가즈히코(200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류중일 김기태(2000) 김태균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박계원 김기태(2003) 조원우
LG 트윈스 역대 감독
박종훈 김기태(2011~2014) 양상문(2014~)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선동열 김기태(2015~) 현역
한국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 지명타자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최종 순위
2012 LG 트윈스 133 57 72 4 7위 -
2013 128 74 54 0 2위 3위
2014[2] 17 4 12 1 9위 -
총계 278 135 138 5 ­

Contents

1. 소개
2. 현역 선수 시절
2.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3. SK 와이번스 시절
3. 코치 시절
3.1. 한신 타이거스 시절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3.3. LG 트윈스
4. 감독
4.1. 2012 시즌
4.2. 2013 시즌
4.3. 2014 시즌
4.4. 2015 시즌
4.5. 2016 시즌
4.6. 사퇴
5. 리더십
5.1. 긍정론
5.2. 부정론
5.3. 총평
6. 기타
7.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국의 前 야구선수. 前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LG 트윈스 코치 & 감독이자 現 KIA 타이거즈 감독.

2. 현역 선수 시절

2.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옆의 김기태보다 더 몸 좋은 분은 장훈 선생.

1991년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첫 시즌부터 타율 0.262, 27홈런을 쳤으나 아쉽게도 신인왕은 팀 동료였던 좌완투수 조규제가 차지한다. 이후 이승엽 이전까지 좌타 최다 홈런(31홈런, 1992년)[3], 3년 연속 골든 글러브(1992~1994)[4] 수상으로 가난한 쌍방울의 핵심 선수이자 타선의 해결사로 자리잡는다. 특히 박경완심성보가 같은 팀 동료로 있던 1997 시즌 쌍방울 레이더스의 타선은 공포 그 자체였다.

홈런타자 이미지가 강했으나, 1997년에는 타격왕(.344)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홈런왕과 타격왕을 모두 수상해 본 선수는 김기태를 제외하면 이만수이대호, 김태균뿐. 쌍방울에서 김기태를 제외하면 그리 큰 타자가 없었던 관계로 그는 항상 집중 견제의 대상이었는데, 15시즌동안 사사구 975개[5]를 얻어낸 것도 이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1996~1998년까지[6]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쌍방울의 주장을 맡으며 뛰어난 리더쉽을 보였다. 오죽하면 당시 김성근 감독이 "구단이 아무리 어려워도 김기태만은 절대 팔지 말아달라", "김기태는 미래의 감독감"이라 했을까.. 훗날 2002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 주최를 주도한 두 제자가 바로 김기태와 연수[7] 였으니 쌍방울 시절의 인연이 보통 인연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러나 IMF 파동으로 모기업이 부도난 쌍방울은 결국 핵심 선수인 조규제, 박경완(현대) 김현욱, 김기태(삼성)을 팔아치워 구단 운영비를 대야만 했다. 특히, 김기태의 경우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쌍방울이 IMF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선수단에서 가장 힘이 되었던 선수가 김기태였고, 쌍방울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1998년 시즌 끝난 뒤 팔려 나갔으니...[8] 1998년 겨울 임창용과의 3:1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에 팔려간 양준혁 대신 삼성에 들어와 이적한 첫해에 수비 포지션을 좌익수로 옮기는 등의 대란에도 불구하고[9] 괜찮은 활약을 보여 줬고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으로 뽑힐 정도였었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과의 마찰과 선수협 당시 이승엽을 불참시켰다는 이유로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 먹이는 바람에 삼성 팬들에게 실망만 남겼으며, 이후 이적하기 전의 팀이 하필이면 IMF 크리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였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언급이 잘 안되는 편이다. 특히 2009년 삼성이 그를 타격코치로 영입을 추진하려고 했었지만... 만없이지만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선수이다. 1990년대 초중반 이종범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그의 타력으로 인해 더욱 독주하는, 해태가 80승을 거두는 시즌이 많아지고, 4연패를 넘어서는 7연패도 가능한, 재미없는 야구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선수협 관련 활동이 있던 이 시기에 선수협을 주도했던 동갑내기 좌타자 양준혁과는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10] 그렇긴한데, 사실 김기태도 선수협 창단에 우호적이였다. 그런데 양준혁이 원한건 선수노조이고, 김기태가 원한건 그게 아닌, 구단에게 인정을 받는 조직이라는 것. 아니 다른건 둘째치고 선수협 참가 선수들과 팬들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대치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선수협 오적 중에서도 수위권에 든다는 평가. 물론 무노조 원칙을 주로 했던 삼성이라는 환경, 그리고 삼성 입단 직후인 불안한 입지를 생각할때 그가 어느정도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선수협에서도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선수는 선수협에 호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프로야구 레전드 10에 출연한 김기태는 부자구단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모든것이 우월한 환경인데도 선수들은 불평불만을 하더라라고 언급한바 있다. 간접적으로 선수협을 디스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야구 시켜주는 데 감사할줄 모르니 구단편에 선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볼수도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 알아서.

사실 김기태는 은퇴 후 아이 러브 베이스볼과의 인터뷰에서 쌍방울은 계속 이길 수 없는 팀이 었는데 반해 삼성의 경우 계속 이길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서 이적했다고 한다. 허나 애초에 쌍방울의 자금 사정 문제와 양준혁 처리 문제 때문에 의도치 않게 억지로 팀을 옮긴 거라 새 팀인 삼성에서의 적응은 순탄치 않았다. 김응용 감독도 그다지 원치 않던 영입이며 포지션이 겹쳤던 이승엽 때문에 지명타자, 외야수로 뛰면서 하락세가 시작되었고, 좌익수로 뛰던시절 그의 수비는 폭탄수준이었다.오죽하면 어설퍼보이는 장성호의 수비가 준수해 보일 정도로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와 롯데에서 이적해 온 마해영에 밀려 결국 김기태는 주전급 기량은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세를 지게 된다.

비록 선수협 5적 파동과 김응용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이미지가 흠집이 생기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고 이승엽과 한솥밥을 먹었을 당시에도 맏형 이미지가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이승엽은 대놓고 그를 보스라 칭하였다고(한국프로야구 레전드 10인 인터뷰 중). 포지션이 경쟁에서 이승엽에게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투수가 아닌 타자로 뛰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승엽에게 '너같이 재능있는 타자가 방망이를 놓는 건 한국프로야구계의 큰 손실이다'라며 달래던 것이 김기태였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과도 큰 마찰은 없었다는 듯.

2.3. SK 와이번스 시절


결국 2001 시즌 후 6:2 현금 트레이드로 신생 팀이지만 사실상 쌍방울의 선수단을 인계했던 SK로 다시 팔려간다. 2004년 SK에서 126경기에 출장, 3할에 복귀[11]하며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그러나 2005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1군 54경기에 그쳤고, 타율 또한 2할 5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은퇴한다.

여담으로 마지막 시즌 중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 몸 상태 체크를 위해 당시 같은 팀 소속이었던 신승현과 라이브 배팅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시 김원형과 선발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신승현의 강속구를 받아쳐 좌익선상으로 날아가는 빨래줄 안타를 쳤는데, 이로 인해 복귀를 서두르다 일주일 만에 부상을 당하면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 은퇴의 단초가 되었다 회고한 바 있다.# [12]그러나 김기태가 고른 신승현은 LG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2군에서만 맴돌았고, 김기태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2014 시즌을 앞두고 야심차게 데려온 김선우와 임재철도 팀에서 빅똥만 싼채 둘다 2014 시즌 종료후 방출되었다.

3. 코치 시절

3.1.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은퇴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나, 2006년 8연패에 빠진 SK 와이번스의 사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의 요청으로 중도 귀국하여 타격 보조 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팀은 결국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조범현 감독이 물러난 후 그도 코치에서 물러나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No.84
김기태(金杞泰)


2006 시즌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김종훈, 김한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친 후 코치 생활을 했다. 2008년 시즌 중에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와 계약하면서 한국인 코치 1명을 데려갈수 있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 조항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요미우리에서 솔선수범하여 이승엽만을 위한 보조코치에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팀의 정식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당시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평이 굉장히 좋아 후에 국내 복귀 뒤에도 여러 일본 구단이 탐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3.3. LG 트윈스

LG 트윈스 No.71
김기태(金杞泰)


박종훈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됬으며, 김기태 차기 감독 내정설을 불러 일으켰다. 2011 시즌 말미에는 1군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박종훈 감독 퇴임 후 후임 감독으로 수많은 카더라가 난무하던 가운데 유일한 내부승격 후보였다. 이때 2군 선수단을 본인의 유명한 카리스마로 휘잡으면서 '사신기태'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4. 감독

LG 트윈스 No.91
김기태(金杞泰)


교신중 ET?


선수들을 직접 지휘하는 현역 최연소 감독



직접 타격 케이지 안에서 타격시범을 보이는 김기태 감독[13]

결국 모든 LG 트윈스 팬의 기대를 저버린 채 16대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http://bit.ly/pxfV8V 많은 LG 트윈스 팬들은 패닉 상태. 김거김(김성근 거르고 김기태) 어느 모 팬은 이걸보고 아이폰5를 기다렸는데 삐삐를 주네 라며 엘지 프런트들을 비아냥 거렸다. 전반적으로 프런트에 아부하고 충성했던 결과로 감독직을 맡았다는 평가가 많고, 전임 감독들 처럼 LG 프런트의 총알받이가 될 거라는 시각도 많다.[14]

분노한 LG 팬들이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인 쌍둥이마당에 항의글을 쏟아내자 쌍둥이마당만 폐쇄시켜놓고 "관리자가 휴가 갔는데요"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놓고 그런데 같은 시간에 올라온 뉴스들과 이벤트는 뭐니 뉴스로는 지지하는 팬이 없는데 기대하는 팬이 많다는 소설성 기사만 올라오자 팬들 사이에서 프런트의 개 취급을 받으며 죽도록 까이고 있다. 취임되자마자 이미 순페이 시즌 2를 넘어 이순철보다 더 심한 놈 취급 확정. 흑역사 예정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런트에서는 팬들의 분노 여론만 더 높이는 병크만 저지르고 있다가 옐로우카드 방영 이후 일부 프런트의 술수로 감독이 된 김기태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LG 팬들한테도 배트 휘두르시게?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애초에 김성근 감독이 온다는 루머 자체가 LG 트윈스 갤러리 낚시글에서 부터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루머가 계속 커져서 SBS 뉴스까지 나왔을 때에도 구단 그 누구도 김성근 감독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애초에 구단에서는 김기태 감독의 2군 장악 능력을 높게 사서 일찌감치 내부승진을 결정해놓았는데 계속되는 비밀번호 성적에 분개한 팬들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한 격.

감독직을 수락한 후에는 초보감독으로서 부족한 면이 있으나,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선수단에 문제가 있었던 LG 트윈스가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로는 잡음이 사라진것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선수단 장악에는 합격점.

그리고 2013 시즌, 본인의 형님리더쉽을 앞세워 부임 2년차만에 6668587667의 비밀번호를 깨트리고 11년만의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그러나 2014 시즌에 수틀리자 구단을 내팽겨쳐놓고 바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였다(...) 극과 극의 결과

4.3. 2014 시즌

기태런
도망맛 쿠키

4월 13일 현재, 팀 성적 3승 1무 7패 승률 0.300으로 9위를 마크하며 엄청나게 까였다. 특히 13일 잠실 NC전에서 출루율이 거의 7할에 육박하는 박용택에게 무사 1루에서 번트를 지시하는 등 정신나간 운용으로 예전의 돌기태 소리를 다시 들었다. 또 설상가상으로 연장 12회말까지 가는 소모전에서 결국 패배하며 NC 다이노스에게 시즌 첫 스윕을 헌납하고 말았다.

4월 19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작년에 이어 또다시 문선재를 포수로 기용하는 무리수를 감행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문선재는 포수로 나오자마자 대주자 김경언의 도루를 저지해 냈지만, 다음 이닝에서 이용규의 도루 시도를 아예 보지도 못하고 두눈 뜨고 2루로 보내주고 말았고, 결국 고동진의 끝내기 안타 때 도루 성공한 2루 주자 이용규가 아주 편하게 득점하며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더 웃긴 건 끝내기 패배를 당할 때 외야수의 쉬운 송구조차 문선재는 포구하지 못하고 놓쳐버렸다. 어차피 끝내기 득점을 당해서 졌지만

4월 20일 정찬헌정근우 몸에 맞는 공으로 인한 벤치 클리어링 사건 후의 모습들 때문에 비판받았다. 2012년과 2013년에도 이런 비슷한 모습들로 비판받은 적이 있지만.

4월 22일 경기에서도 삼성 라이온즈에게 참패를 당하며 단독 9위의 4승 1무 12패의 패가 승의 3배나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였음에도, 태평하게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다음 날 선발은 임지섭으로 예고하는등 모든 상황을 모험주의적인 도박에만 거는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4월 23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이 날은 조계현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경기가 진행되었고, 구단 측에서는 개인 사정이라 해명했으나 구단에서 소환했다는 둥, 자진 사퇴라는 둥, 경질이라는 둥 루머가 빠르게 증폭되었고 급기야 경기 도중 사퇴 기사가 올라왔다. 이 후, 기사가 뜬금없이 알펜시아 기사로 바뀌는 것으로 보아 엠바고를 지키지 않고 기사를 내보낸 듯하다.[15] 원본으로 추정되는 캡쳐본

그리고 사퇴 확정 멘트가 엠스플에 LG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방송되었고, 경기 종료 후 결국 사퇴 기사가 정식적으로 나왔다. 김기태씨 도망가고 있습니다!

사퇴 이후의 기사로는 LG의 고질병인 프런트와의 갈등이 문제가 되었다는 기사들이 뜨고 있는 중, 용병관련으로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은거야 이미 팬들도 알고 있는 문제였고 특히 김기태 감독의 오른팔격인 차명석 투수코치가 병으로 인해 사퇴한 것도 알려진 것과 달리 잔류군으로 가게 되었을 때 프런트가 계약하지 않았고 이에 김기태 감독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다가 재임시 여러가지 구설수로 팀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이에 대해서는 프런트를 욕하는 반응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시즌 초에 너무 무책임하다며 김기태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4월 24일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 나타나 있고, 또 5월 3일자에서도 다시 한번 깠다.

놀랍게도 이를 예견한 듯한 박동희의 기사가 발굴되어 성지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박동희를 까는 해당 기사의 베댓들은 얼마나 쪽팔릴까

몇몇 호사가들은 이번 사퇴가 이병규 등 고참 선수들과의 갈등 및 통제불능이 가장 큰 원인일 거라고 추측하며 댓글을 달았다. 실제로 그런 댓글이 네이버에 도배가 되고, 많은 추천수를 얻는 등 많은 호응을 받았지만, 상당수의 LG 팬들은 이병규 등 고참들이 김기태를 얼마나 따랐는데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선수는 감독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 1군 엔트리 편성과 선수 기용의 전권을 쥔 자리가 감독직이고 껄끄러운 선수가 있다면 감독은 그 선수를 안 쓰면 그만이다. LG만 해도 금지어 시절에 이상훈의 트레이드와 유지현의 은퇴가 이런 과정을 통해 일어났고 양준혁박경완도 결국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독에 의해 은퇴했다. 선수가 정말 감독을 몰아내고자 한다면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 정도는 일으켜야 하는데 그 후폭풍이 어땠는지는 해당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이후 김기태 감독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 주로 떠나기 전에 4월 26일 선수단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기태는 "이병규랑 사이 안 좋은 거 절대 아닙니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이라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이 자리에서 윤요섭이 "감독님. 언제 돌아오십니까?"라고 말했는데 그만큼 LG 트윈스 선수단 사이에서 김기태 감독의 인망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장면일 듯.#

선수들과의 사이가 좋던 좋지 않던 점점 여론은 김기태에게 호의적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사퇴 초반부터 드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통적으로 김기태는 자기만 쏙 빠져나가고 팀과 선수들은 나 몰라라 무책임하게 내팽개친 감독으로 서서히 비춰지는 중. 팀 상황은 2001년 시즌 초반 있었던 이광은 감독의 경질과 유사하지만, 그 때는 2군 감독으로 있다가 수석코치로 올라왔던 김성근이란 대안이 있었으나 2014년의 김기태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튀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또한 2011년의 김경문같이 망가지는 팀을 나와 다른 팀 감독 자리를 노리려는 의중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고, 몇몇 LG 팬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는 프런트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구단은 사퇴를 정식으로 수리하지 않은 가운데 여전히 김기태 감독이 선수 등록현황에 올라와 있고 조계현 수석코치가 감독대행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계속 팀을 이끌어가고 있다가 5월 11일자로 양상문이 새 감독으로 오게 되었다.

5월 현재, 팀이 계속 막장 상황에 처하면서 김기태에 대한 OSEN의 LG 담당기자의 대놓고 쓰는 감성팔이 기사들의 베플은 4월에는 김기태에 대한 동정론이 대세였으나 현재에는 모두 김기태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현재 LG팬들에게 김기태는 그냥 김도망(...)취급 받고 있다. 만일 김기태가 다음 시즌에 다른 팀으로 간다면 그 팀은 LG 팬들에게 공적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5월 12일 라디오볼에 출연한 엘지팬은 본인이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한다면서 김기태를 폭풍 디스하는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선장에 빗대어 침몰하는 엘지호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이야기한다.#

 


6월 7일, SBS 스포츠에 특별 해설위원으로 참여한 김성근에게서 신랄한 디스를 당했다. 김성근 또한 김기태를 도망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해설중에 한 말들로 증명되었다.#

6월 27일, 본인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두산에서 데리고 온 임재철이 실책성 플레이로 김강민에게 2루타를 헌납하고 9회초에도 결정적인 찬스를 말아먹는등, 김기태가 데려온 김선우임재철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팀을 말아먹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기태의 유산 더욱이 7월 이후 LG가 4강권에 들자 LG 팬들 사이에서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중이며, 일찍 사퇴했어야 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으니 2011년 FC 서울을 말아먹고 짤린 황보관과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

8월 기준으로 사퇴한지 거의 3달이 지났건만 여전히 LG 팬덤, 특히 쥐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16] 게다가 후임인 양상문 감독이 부임후 5할이 넘는 승률과 현장에서 나온지 1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상당히 안정적인 선수운용을 보여줌으로서 작년 베드로 드립 나오던 게 무색할 정도로 사실상의 새로운 금지어 확정(...). 게다가 LG가 6월 이후 약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에 워낙 삽질해서 약진을 해도 겨우겨우 5~6위를 넘보고 있는 게 현실인데다가 기껏 13 시즌 후 김기태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데려왔던 임재철, 김선우, 신승현 그리고 양아들 윤요섭이 쌍욕이 나올 정도의 삽질을 거듭하였고 부임중 그렇게 탄압했던 작은 이병규가 2014년에 대폭발하자 더욱 까이고 있다.

2014년 9월 18일 기사에서 LG - 국가대표팀 연습경기에 방문을 해서 LG 선수들에게도 환대를 받았다. 헌데 이 기사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어서 곧 어느팀이 되었건 김기태의 타팀 감독 복귀가 임박한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실제로도 엠팍이나 디시의 각 구단 갤에서도 이 기사 이전에 김기태의 모 팀 감독 영입이 진행중이며 그래서 김기태가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협상이 상당부분 진척됐다는 썰쟁이들의 글이 꾸준히 올라왔는데 이 기사의 어떤 구절 때문에 9개 구단팬들은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 두 개의 후보 중 기아 타이거스는 선동렬 재계약이 발표되어 제외였는데 2경기만에중도 사임으로 다시 후보군에 오르고 롯데 감독으로 부임할 가능성도 어느정도 존재한다. 그렇긴한데, 지금 기아의 연고지인 광주에 머무르고있으며, 선수시절의 주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쉽과 타격코치 경험등으로 인하여 기아 구단에서도 동의를 할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감독 선임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고있으니....이제 철밥통 백인호만 잘리면 된다 그리고 예상대로 10월 28일 오전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2억 5천만원, 연봉 2억 5천만원 총 10억원에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4.4. 2015 시즌

4.5. 2016 시즌

KIA, 5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

비록 양파고와 마찬가지로 황당한 작전 구사 등으로 인해 팬들의 속을 터지게 했지만, 시즌 전의 다소 암울하기까지 했던 전망을 극복하여 팀을 포스트시즌 막차를 탈 수 있게 한 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아도 된다고 본다.

4.6. 사퇴

2017 시즌의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팀이 삐걱거리는 가운데 이해못할 팀 운용을 거듭하여 오랜 기간 비난을 사던 끝에 2019년 5월 17일에 감독직을 사임했다. 2019 시즌 잔여 경기는 박흥식 수석코치 대행 체재로 운영되었다.

5. 리더십

5.1. 긍정론

2013년 김기태의 리더쉽을 칭찬하는 엘레발책이 나왔을 정도다.# 제목이 묘하게 거슬리지만 신경쓰지 말자 사실 노렸다 2013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정현욱이 당시 삼성과의 FA 협상에 실패 후 다른 팀과의 계약을 알아보던 당시 김기태가 "형이랑 같이 하자"라고 말해 감동해서 LG로 왔다고 카더라[17]

또한 임찬규 물벼락 사건 때 임찬규의 불찰을 감독으로서 사과하는 모습이 조직의 수장으로서 아랫 사람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이 훌륭한 리더십의 귀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본인이 사신기태라는 별명에 대해서 자신은 한번도 화를 낸적이 없는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다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왜긴 왜야 갈았다 하면 코다니깐 사신이지 실제로 성격은 마치 큰 형처럼 선수들과 서글서글하게 지낸다고. 후술할 정현욱과의 FA 영입 일화 역시 이러한 큰 형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 게다가 전술했다시피 이승엽도 김기태를 보스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선수협때 이승엽을 가지 못하게 윽박지른 장본인인지라 사이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을텐데 저렇게 인터뷰까지 해주는 걸 보면 선수협 여부를 떠나서 선수들에게 확실히 잘해주긴 잘해준듯. 아니면 이승엽이 대인배거나..

5.2. 부정론

위와 같은 포용적 리더십은 팀과 상관없이 인정받는 대한민국 야구 팬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자기 팀에만 적용된다고 보여진다는 점에서 타팀에서는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김기태 부임 이후 벤치 클리어링이 없어지다시피 했다는 벤치 클리어링에서의 설명과는 별개로 야구계 전체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비판의 대상. 특히 자기 팀만을 포용하고, 타 팀에 대한 피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야구계의 선배로써 옳은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다.애초에 선수협 5적 중 한명에게 뭘 기대하겠냐마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레다메스 리즈 배영섭 사구사건 때 리즈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론이나, 정찬헌 정근우 사구 사건 때의 정근우에 대한 보복 사구[18]라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야구계 선배인 이만수 감독에게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쓰는 결례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대 벤치가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등의 어이없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한 점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벤치 클리어링이나 상대 팀을 공격하는 것으로써 자팀의 결속력을 다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타 팀 팬들의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19]

한편, KIA 감독으로 부임한 뒤 이대형kt 위즈가 데려가도록 하는 바람에 이대형과 악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다시금 나오고 있다. 본인은 외야 자원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팬들 입장에선 현재 기아에서 이대형 자리를 메꿀 정도의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5.3. 총평

자기 팀을 최대한 리더로써 감싸면서, 상대 팀과는 좀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인 관계를 가져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는 유형의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가장 비슷한 감독의 예로 주제 무리뉴를 들 수 있지만, 무리뉴에 비교하면 독설은 훨씬 적은 편이었다. 문제는 대한민국 정서상 지나치게 승부욕을 갖고 타 팀과의 배타적 경쟁체제로 몰아가는 유형의 팀은 매우 비난받는다는 것. 특히 기업의 홍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단 입장에서 선수나 감독 등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으로 인한 잦은 구설수를 좋게 볼리가 없다.[20]

또한 농구팀인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 문경은과 비교되곤 하는데, 10년간의 긴 암흑기를 끊어내고 호성적을 냈고 모래알 팀워크를 강력한 조직력으로 바꿔놓은 점이 닮았다고 했지만 김기태가 2014 시즌 초반 사퇴를 강행하여 나 몰라라 팽개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경은과 비교하는 건 문경은에 대한 실례가 됐다.

그러나 2013 시즌 벤자민 주키치를 끝내 교체하지 않은 LG 프런트의 이해못할 무브부터 시작해서 2014년의 말많은 용병선발 등등 엠팍과 디시 등지에서도 프런트가 김기태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대로 지원 안해준거 아니냐는 썰도 공공연히 돌고 있었던 터라 김기태 감독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 좋지 않게 보는 가장 큰 이유가 시즌초에 팀을 버리고 나갔다는 것인데 물론 그 자체가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건 사실이지만 2014년 9월 18일 LG - 국가대표 야구단 연습경기에서도 LG 선수들과 반갑게 해후하는 모습도 나온 터라 김기태의 중도 사퇴가 프론트측의 개입이 있던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냥 이유 없에 무책임하게 팀을 버리고 나갔다면 LG 선수들의 표정이 좋았을리가 없었을테고.

6. 기타

  • 홈런왕+타격왕을 달성한 한국프로야구 선수 4명 중 하나.[21] 그러나 14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97년에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이승엽이 170안타를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 그는 최다 안타와는 인연이 없다.

  •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우승이 없기로 유명하다. 2003년 한국시리즈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해 콩라인에 가입되었다. 커리어 기준으로도 번번이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에 밀린 안습한 2인자 인생. 1994년에 홈런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절친한 동생인 이종범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최다 홈런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홈런왕이 되지 못하고 나중에 홈런왕을 기록하긴 했지만 MVP를 차지하지 못했던 심정수와 비슷한 케이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직전에 LG의 2군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탈퇴하지 못했다. 그래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창립을 결사 반대했던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 이호성과 함께 선수협 오적으로 불리우는데 63빌딩 창립총회 당시 뒤늦게 들어와 TV 방송 카메라들이 뻔히 중계하고 있는 자리임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을 거친 말과 행동을 위협해 모두 끌고 나갔고 자신의 행동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 K 선배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출처

  • 마구마구 관련 고정글 중 해기태와 비기태에 대한 비교글이 있다.보러가기 첨언하자면, 꼭 쌍방울 올스타를 하지 않을바에야 파워-컨택 모두 나은 비기태가 잡덱에서도 많이 쓰이며, 저 글에서는 7렙을 찍는다는 가정하에 해기태>비기태 드립을 치는 것이다. 낚이지 말자(...). 게다가 해가 뜨면 99 샌더스 or 스미스를 쓰지 김기태를 쓰면 바보다

  • 김길태랑 혼동하지 말도록. 그런데 이게 별명이 돼버렸다.

  • 참고로 김기태의 주변인맥이 깨는데, 먼저 이종범과는 어린 시절 친한 동네 형-동생 사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기태가 이종범의 집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종범아~ 자전거 타자~라고 자주 불러내서 놀았다고... 선수 시절에도 이종범이 배트를 거리낌없이 가져갈 정도였다.그런데 1994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또한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인 염경엽과는 광주 충장중-광주일고 동기동창으로 서로 절친이라고 한다.[22]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던 김기태를 박종훈의 요청을 받아 LG 트윈스로 데려온 장본인이 염경엽이었고, 김기태가 감독에 선임되었을 때 염경엽을 수석코치로 기용하려고 했지만 염경엽 본인이 거절[23]하고 넥센 히어로즈로 옮기는 바람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서 투수코치로 같이했던 조계현을 수석코치로 기용한다. 이후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된 후에도 조계현을 수석코치로 데려왔으며, 김기태가 LG에서 물러난 후 조계현은 "나는 김기태의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담으로 염경엽 감독에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야타족’ 출신 감독”이라고 놀리기도 했다.[24]

    김기태와 같이 쌍방울 레이더스에 잠깐 있었던 그의 광주일고 1년 후배 한성에 의하면 생활이 어려운 편이었다고 한다. 글에 의하면 이종범의 집이 김기태 감독의 두집 건너 이웃이었다 하니.... 뭐...

  •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하면서 3개월만에 왼손잡이로 전향했다. 우투좌타 스타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동네 동생인 이종범은 그 반대로 왼손잡이이지만 우투우타라는 것.

  • 해태-KIA 타이거즈 연고인 광주광역시 출신이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은 이후로 고향 연고인 타이거즈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25] 이 때문에 좌타 잔혹사에 시달렸던 타이거즈에서 뛰어봤었음 하면 어땠을까 하는 많이 아쉬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23년 후 그 김기태를 감독으로써 KIA 타이거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만 골든 글러브도 지명타자로써 2번을 받기도 했고 경기 출장도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우가 많아 엄밀히 말하면 전문 지명타자에 가깝다. 사실 뛰어난 타격에 비해 수비에는 약점이 많기도 해서 지명타자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26] 찰스 스미스에 밀려 좌익수 수비를 하지 못했다면 말 다한 것.[27] 오오 그렇다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지명타자 출신 감독!

  • 거포 이미지와는 달리 주루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이상이었다. 남들은 한번도 하기 힘든 러닝 홈런을 2차례나 성공했고, 두 자릿수 도루도 네 차례나 기록했다. 거기다가 빵사마도 못해본 11년 연속 3루타 기록까지...하늘이 밸런스 붕괴를 우려해 돌글러브 속성을 준 듯

  • 2012년 5월,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유동닉 갤러에 의해 발굴된 것이,


원조 김꽈당이 따로 있었다
정작 본인에게는 잊을 수가 없는 흑역사이지만, 워낙 오래 된 일이다보니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안도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러 손을 건넸다가 저걸 본 타자(심성보 추정) 기분은 어땠을 런지…. 다행스럽게도(?) 해당 게시글은 전혀 뜨지 못하여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모른다는 것. 참고로 저 영상은 네이버 스포츠에 올라온 한국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동영상 김기태 편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여기 올라와있잖아...?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홈런 칠때는 조용하더니 넘어지니까 관중들이 환호하는 건 대체 뭐지?

7. 연도별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쌍방울 레이더스 124 427 .262 112 15 0 27
(2위)
92
(2위)
65 7 76 .487 .370
1992 123 398 .302 120 28
(2위)
3 31
(2위)
96
(3위)
86
(8위)
5 122 .621
(2위)
.461
(1위)
1993 96 317 .240 76 17 2 9 43 36 11 74 .391 .380
(4위)
1994 108 376 .316
(5위)
119
(10위)
20
(10위)
4
(9위)
25
(1위)
79
(3위)
70
(5위)
9 76 .590
(1위)
.430
(2위)
1995 116 402 .321
(3위)
129
(10위)
34
(1위)
3 12 72
(7위)
48 12 73 .510
(3위)
.419
(2위)
1996 91 310 .297 92 17 3 12 53 47 3 54 .487 .399
1997 111 390 .344
(1위)
134
(10위)
30
(5위)
3 26
(5위)
79
(4위)
95
(4위)
10 86 .636
(1위)
.460
(1위)
1998 126 434 .309
(7위)
134 28
(9위)
4
(8위)
31
(3위)
90
(4위)
84
(5위)
10 104 .606
(3위)
.440
(2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삼성 라이온즈 130 468 .293 137 33
(5위)
2 28 88 82 5 88 .551 .403
2000 101 333 .309 103 24 1 26 80 69 5 59 .622 .410
2001 44 85 .176 15 2 1 0 9 5 0 17 .224 .31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SK 와이번스 101 284 .257 73 15 1 9 46 32 2 47 .412 .359
2003 93 236 .292 69 7 0 3 18 32 2 27 .360 .364
2004 126 403 .320
(6위)
129 24 0 10 67 60 2 57 .454 .403
2005 54 112 .205 23 4 0 0 11 5 0 15 .241 .297
KBO 통산
(15시즌)
1544 4975 .294 1465 298 27 249 923 816 83 975 .515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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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전체 커리어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가 많다.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에서 지명타자로 뽑힌 이유다.
  • [2] 시즌 중도 사퇴.
  • [3] 그 최다 홈런도 31개로 1992년과 1998년 2번을 기록했다. 이승엽이 1997 시즌 32개로 경신한 이후 1999년 54개, 2003년 56개로 한참을 넘어 버렸다!
  • [4] 1994년에는 25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도 차지하였다.
  • [5] 무려 한 시즌당 평균 65개다!
  • [6] 1998년에는 삼성으로 팔려가기 전까지 주장직을 수행하였다.
  • [7]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외야수로 선수 생활을 했고, 쌍방울에서 선수단 매니저로 일하다가 김성근 감독의 요청으로 1999년에 잠시 선수로 복귀한 바 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야구부 감독이다.
  • [8] 당시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모든게 다 끝났다.' 라고 말하며 실의에 빠졌다. 실제로 전해 6위팀의 중심타자+중심 중간계투를 빼앗긴 건 그팀에겐 사형선고였다. 김기태의 존재가 쌍방울에 있어서 매우 컸다는것을 의미한다. 쌍방울 시절 항목에 서술되었다시피 쌍방울 선수단에서 김기태는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는 데에 매우 큰 공헌을 한 선수이다.
  • [9] 당시 찰스 스미스, 이승엽과 수비 툴이 겹치고 지명타자도 자리가 없어서 결국 누군가는 좌익수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웃긴 건 찰스 스미스도 가끔 좌익수비를 봤다는 것. 체구가 이대호만 했는데도!
  • [10] 다만 주먹다짐을 하긴했는데, 상대는 양준혁이 아닌 유지현! 그 이유는 LG부터 창립총회에 들어가느냐, 삼성부터 들어가느냐인데, 그 뒤로 김기태가 말대꾸를 한다고 유지현을 나무라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김기태, 유지현은 구단파로 옮기게되고, 조경택을 제치고 선수협오적이 된다.
  • [11] 작가 김은식의 칼럼에 따르면 김기태 하면 장타력 있는 타자라는 생각으로 수비수들이 후진수비하는 것을 역이용, 컨택에 중점을 둔 간결한 스윙으로 타격을 바꾸면서 3할 복귀에 성공했다고 한다.
  • [12] 그 뒤 신승현과 마운드에서 재회하게 되는 데에는 8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13년 FA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대형의 보상 선수로 신승현이 선택되면서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된 것. SK 시절에는 선후배 관계였던 두 인물이 짧게나마 감독, 선수의 관계로써 재회하였다.
  • [13] 감독들은 대개 나이가 있다보니 직접 시범을 보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한국 프로야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
  • [14] 특히 그가 '선수협 오적'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 [15]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김기태 감독 사퇴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16]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게 사퇴한 지 2년이 넘은 박종훈, 거의 10년이 지난(...) 원조 금지어도 매일같이 까이는게 현실이다.
  • [17] 근데 필진들의 면면도 그렇고 글 대목상 농담이 아닌 진지한 대목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 [18] 지울까 하다가 반달행위가 될까봐 각주로 붙임. 김기태 감독이 정근우에 대한 사구가 보복사구였다는 얘기를 한 근거가 있다면 링크 바람.
  • [19] 실제로 김기태의 사퇴 당시 대부분의 타팀팬들은 크보 물을 더럽히는 감독따위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질릴대로 질려있던 상황이었다. 뭐 임찬규 물벼락 사건부터 해서 정근우 사구 사건까지 LG 트윈스의 도를 넘어선 물의들(비밀번호의 여파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게, 딱 김기태 감독 시절에만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 특히 이광은 감독부터 양상문 감독까지의 시기에 선수 외의 사람을 상대로 피해를 끼치거나 하는 사항은 김기태 감독 시절 말고는 없다)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본인의 대처도 문제투성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 [20] 2013년에는 성적이 잘나오니 봐줬지만 성적이 최하위인 상태에서 잘못 건들면 언제든 크게 한방 터질 여지가 있는 타팀 선수를 상대로 똑같은 수준의 막장 짓을 한 걸 본 구단 측에서 안되겠다 싶어 이미지 관리 및 징계 차원에서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 [21] 나머지 세 명은 이만수, 이대호 그리고 김태균이다.
  • [22] 염경엽 항목에도 있지만 그 염경엽과 김기태의 후배가 바로 이종범이다. 포지션은 염경엽과 이종범 모두 유격수로 동일.
  • [23] 당시 염경엽의 경우 정치설 때문에 LG에 남아 있기가 힘들었다.
  • [24]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염경엽도 대단한게 기사 내용 대로, 술 안 먹고도 잘 놀려면 애주가의 몇배 노력이 필요하기에 더욱 놀라움 그 자체.
  • [25] 참고로 절친인 염경엽도 광주 출신이나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아 타이거즈에서 뛴 전력이 없다.
  • [26] 쌍방울 입단 초기에 어깨 부상이 있어서 송구를 못 하는 상태였었고, 어깨만 완치되면 1루 수비를 나서려는 본인의 의지도 강했다.
  • [27] 몸매가 이대호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