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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last modified: 2018-07-23 01:57:59 Contributors

기업개요
로고
kia_motors_log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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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기아자동차주식회사
영문명칭 KIA MOTORS CORPORATION
설립일 1944년 12월 11일[1]
창업자 김철호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상장여부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1973년 ~ 현재)
편입지수 코스피
KRX100
KOSPI200
주식코드 000270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1997년 부도
3. 특색
4. 현재
4.1. 디자인 경영
5. 사명(社名)에 관하여
6. 비판
7. 여담
7.1. 스폰서십
8. 생산차량
8.1. 경차
8.2. 소형
8.3. 준중형
8.4. 중형
8.5. 준대형
8.6. 대형
8.7. 스포츠카
8.8. SUV/CUV/MPV/승합
8.9. 상용차/대형승합차
8.10. 군용차량
8.11. 삼륜
9. 그 외


The Power to Surprise

1. 개요

위의 영상에서 1987년 출시되는 Y카는 다름아닌 기아 프라이드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과 자전거 산업의 역사를 이끌고 지켜봐 온 회사

국내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생산한 기아자동차는 1944년 12월 11일 '경성정공'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어[2]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다들 아시는 그 삼천리자전거의 기원이 된다)[3]하고 1952년 2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주)로 변경하였다.[4][5]

1962년에 일본 마쯔다와의 기술제휴로 생산한 배기량 356cc의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였으며, 1974년 마쓰다자동차의 '파밀리아'의 차체를 바탕으로 최초의 국산 승용차 브리사를 제작하였다. 브리사는 당시 현대포니새한자동차제미니와 격돌해 한때는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막강했던 차량.

1976년, 아시아자동차를 인수,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현재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및 특수차량 공장.[6] 2012년 현재도 모든 상업차, 대형승합차, 버스, 군용차 및 일부 SUV는 광주공장과 특수차량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업합리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아 위기를 맞았으나, 같은해 10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로 트럭을 개조해 내놓은 소형승합차 봉고를 출시하면서 오히려 기업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고 프라이드, 콩코드로 부활, 이후 1992년에 세피아를 출시하고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을 지으면서 확실하게 그룹을 키워갔다.

1994년 지금과 같은 로고로 변경한다. 바뀐 이유는 그 전 로고의 굴뚝이 환경오염을 연상하게 해서 바꿨다는 설이 있다.

현대차 인수 뒤에는 차량 외부에 원형의 다른 로고를 붙였지만 인지도가 낮고 BMW의 로고와 비슷한지라 "어차피 현대나 기아나 타원 모양의 로고이니 통일감 있게 예전 그대로 하자" 해서 지금으로 돌아왔다.[7]

1997년 경영의 악화로 부도를 맞고, 1999년 3월 현대 자동차아시아자동차와 함께 인수되어 현대그룹에 편입되었다.

2000년 현대차를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서 분가하면서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정통성을 강화한 기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 지못미.

유명 테니스 선수인 라파엘 나달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2. 1997년 부도

기아그룹은 1997년 기아차를 중심으로 28개 계열사에 직원 5만5천명. 96년 자동차 수출 30억달러. 재계 순위 8위의 거대 그룹이 되었다.특히 특정 일가의 소유가 아닌 소유 분산이 잘 이루어져 있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는 모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8] 하지만 이러한 소유구조 때문에 강력한 재벌들 사이에서 매우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1993년 자동차 산업 진출을 노리던 삼성이 대량 주식 매입에 나서면서 삼성그룹과 기아그룹이 충돌하기도 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삼성이 지분 일부를 다시 매각하지만 삼성의 기아인수설은 끊임없이 제기된다.[9]

이후 기아는 국제 경쟁의 격화와 경기침체,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등으로 1997년 봄부터 위기설에 휩싸이다가 결국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된다. 이후 28개 계열사를 14개로 줄이고, 기아차노조가 무분규,임금동결 선언을[10]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결국 10월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김선홍 회장 등 경영진은 완전 퇴진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지만 결국 1998년 10월 국제입찰을 통해서 현대자동차에 매각된다.

기아그룹 부도의 원인으론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첫번째는 잘못된 예측에 바탕한 무리한 사업 확장
기아그룹은 1990년대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산(건설) 등에 전폭적인 투자를 했으나 아시아의 트럭과 기아특수강의 철강은 수요예측이 잘못돼서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었고, 주택건설에 뛰어든 기산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엄청난 자금이 묶이고 말았다. 이 3개 계열사의 적자때문에 기아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것.생사 갈림길 선 기아그룹 패인 분석 특히 전문경영인에 불과한 김선홍 회장이 프라이드의 성공이후 자만심에 취해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만 하는 등 여타 재벌을 흉내내는 오너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기아사태와 경제민주화

두번째는 갑작스런 자금 경색에 따른 일시적 위기
기아그룹이 계열사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전 한국재벌들은 대부분 만성적자 상태에서 은행빚 돌려막기로 수십년째 운영중이었다. 1997년 3월 삼미그룹 부도로 인한 금융시장의 경색에 유탄을 맞은 것뿐이라는 주장이다.[11] 더구나 기아그룹은 주력사인 기아차는 흑자였기 때문에 방만한 몇 개 계열사만 정리하면 충분히 자력회생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당시 기아 임직원들 사이에선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곁들여진게 일명 삼성 음모론이다. 삼성이 삼성생명과 제2금융권을 통해 기아의 자금 경색을 유도하고 정부를 압박해 기아 경영진 퇴진을 이끌어 냈다는 것. 이후에 기아차를 인수할려 했으나, 자동차 산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인수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실제 삼성은 1997년 초에 '기아차 성장 한계 봉착' '자동차 업계 대대적인 구조조정 필요' 등의 보고서를 공개해서 기아를 흔들기도 했다. 삼성자동차 보고서 파문 부도유예협약 직후인 8월에는 '쌍용.기아차 인수가 필요하다'는 삼성내부 보고서가 유출되기도 했다.
1999년 외환위기 청문회 당시 김선홍 회장은 "삼성이 이를 바탕으로 금융계열사 등을 통해 빌려줬던 5000억원대의 자금을 거둬들였고, 결국 기아가 파산에 봉착했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했고,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삼성그룹이 정관계에 기아차 인수를 위해서 모종의 로비를 한 정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은 저너머에... 보도기사1보도기사2보도기사3


3. 특색

현대가 안정적인 쪽을 선호한다면 이쪽은 모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쪽을 선택했다.
'기술의 기아'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보를 보였었는데, 예를 들자면 국내최초로 차체(Underbody, "섀시(chassis)"라고도 함)를 독자 개발한 세피아라든지, 로터스 사에서 생산 라인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긴 하지만 한국 최초의 로드스터인 엘란, 세계최초의 온로드 중심 소형 SUV인 스포티지[13][14], 그리고 한국 대형버스 최초로 자체 디자인을 적용하여 GD마크를 획득한 그랜버드 등이 있다. 게다가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미 부품면에서 90% 이상의 국산화를 이루어낸 브리사까지 포함하는 등 기아의 기술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엔진에 있어서도 연비위주의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성능위주의 세팅을 하였으며, 후에 자체 개발한 엔진인 T8D엔진 역시 성능위주의 세팅으로 나왔다. 이 엔진은 엘란의 생산분과 크레도스등에 쓰였는데 성능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당시의 한국엔진 중 가장 스포티했다.
부도 전에는 사실상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던 회사로 엔지니어 마인드가 국내 자동차 업체 중 최강이었다고 봐도 할 말이 없는 회사. 창업주부터가 애시당초 일본에서 기계공업에 종사해서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엔진 특성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마쯔다의 터보엔진을 당시 국내 실정에 맞게 자연 흡기로 개조하고 출시한 엔진이 많고, 전체적으로 회전수가 높게 잘 돌아가고 압축비도 높은 편. 비슷한 자연흡기용 엔진과는 다르게 전부동식 피스톤핀이나 피스톤 쿨링용 오일제트를 장착하는등 약간 오버스펙인 면이 있다. 터보용 엔진에 어울리는 부분이지만, 자연 흡기로 고치면서도 다운그레이드 하지 않은 부분 부분이 남아있는 편.[15]
실내는 현대자동차처럼 깔끔한 상품화시키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어서 약간 촌스럽다거나 거친 느낌을 주는 차량들이 많고, 스위치의 질감이나 배치에서 약간 값싼 느낌이 나는 점은 단점이었다.현대는 팔아먹을 차를 만들고, 기아는 엔지니어들이 타고 싶은 차를 만들고, 대우는 왜 차를 만드는지 모르겠고, 쌍용은 차를 만드는지도 모르겠고, 삼성은 뭐하는지 모르겠고

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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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표가 아니다, 하나의 표다
르노삼성 망했어요, 한국지엠 망했어요, 쌍용 망했어요, 수입차는 아예 관심이 없다.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국내시장점유율 2위(현재도 2위이다)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현대자동차에게는 매번 판매량에서 밀렸으며, 그나마 현대자동차보다 우위를 점한 차종은 시장에 먼저 진입한 SUV와 봉고를 위시한 트럭, 승합차, 카렌스, 카니발, 카스타의 미니밴이다(하지만 이 차종들은 승용 세단에 비해 판매량이 현저히 적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국내 내수 점유율이 상승했으나 현대차와의 판매 간섭현상으로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이 조금 줄었다. 다만 기아의 내수 점유율 상승분이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 감수분보다 많아 현대기아의 내수 점유율 합은 더늘었다.

중고 비율이 꽤나 높았으나 현대에 인수된 후로는 별 차이가 없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 현대가 기아의 가능성을 보고 이것저것 기아라는 브랜드로 모험을 시키는 형편.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동급의 현대차보다는 달리기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요즘에는 유럽 전용 판매모델인 씨드(Cee'd)시리즈로 해외에서도 톡톡히 돈 잘 벌고 있는 중. 현재는 시장에서의 동일계열사간 동일 차급에서의 판매 간섭을 최소화하기위해 주력하는 차종을 서서히 나눠가는 추세이다.

참고로 무개조급이기는 하지만 WRC 우승기록이 있는 무시무시한 회사다.(1995년 박정룡 선수가 세피아를 몰고 호주 랠리에 참전) 게다가 해외 지사의 출격이긴 하지만 다카르 랠리 완주 경험도 있다.[16][17]K5를 시점으로 차명을 통일하기 위해 현대처럼 독자적인 차명 체계를 잡아가는데 하필이면 그 앞자가 놀랍게도 'K'이다. 그 첫 대상은 K7. K7을 시작으로 파워트레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독자적으로 차량 개발 체계를 구축하려는듯. 동급 차종의 경우 한세대에서 반 세대 전의 현대자동차 플랫폼을 가져와서 쓰던 것을 아예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쓸 요량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차를 닮아간다고 옵션 장난질 한다고 같이 욕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기술 개발에 한해서만은 현대자동차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회사. 앞날이 기대되는 회사이다. 사실 기아자동차는 연구개발 조직이 디자인을 제외하면 없다. 때문에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개발을 하며 후에 기아자동차 법인에서 현대자동차 법인으로 연구개발비를 정산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뭐 어차피 같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니 상관없겠지만서도.. 물론 현대 기아 두 브랜드의 성격이 다르므로 주행감각같은 세팅은 차이가 난다.

K시리즈 이후로 2008년에 주가가 바닥까지 쳐서 주당 5000원 대였던 이후로 K5, K7의 연이은 히트로 인해 2011년 1월 20일 3년만에 6만원대까지 10배가 넘게 올라갔다. 그 때 기아차주를 샀어야 하는 건데!

4.1. 디자인 경영

2005년, 디자인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정의선 전 대표이사(현대자동차그룹 승계자로 내정되어 있다)취임 후 빠른 변화와 발전을 보여오고 있는 중이다. 취임 직후 아우디/폭스바겐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해 와서 '직선의 단순화'를 모토로 자동차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슈라이어 부임 이후 나오는 자동차 디자인은 멀리서 봐도 기아차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통일된 패밀리 룩으로 가는 중이며, 그릴 모양은 Tiger Nose (호랑이 코)라는 고유의 모양으로 가고 있다. (아래 사진 참고)

물론 디자인도 많이 좋아져서 기아 쏘울, 신형 스포티지등은 해외에서 신선한 디자인으로 호평받고 있으며, 그외 여러 모델들이 해외 디자인상을 받거나 한다. 또, K5는 라이벌인 현대 쏘나타보다 더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높다. (국내외에서 쏘나타를 제끼고 여러 디자인 상을 수상) 최근 현대차 디자인이 전통적인 세단형을 버리고, 4 door coupe 스타일로 가는 것이나, 스타트렉에서 볼 것 같은 Fluidic sculpture라는, 너무 급진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가는 반면, 이 쪽은 '무난함+오래봐도 질리지 않음+세련됨 추구' 스타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슈라이어 부임 후 나온 기아의 모델들은 은근히 아우디/폭스바겐 쪽 모양 비슷하다 피터 슈라이어는 인터뷰에서 "It's not fancy and has a timeless design. It looks natural."("팬시하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유행을 타지 않으며 자연스럽다") 라고 하였다.[18]
그런 반면,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로 독자 개발은 거의 못하고, 현대자동차에서 개발된 플랫폼과 엔진을 기반으로 차량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기술개발등 엔지니어링을 현대에게만 맡기고, 디자인에만 집중한다고 할 수 있는데,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보면 효율적이나, 현대에 너무 종속돼서 나중에 현대에 위기가 닥치면 같이 망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특히 엔지니어링을 전적으로 현대에 맡겨버려서, 현대가 잘 나갈때는 동반 상승하나, 만약 현대에 '토요타 사태'같은 품질 위기가 닥치면 같이 위험할 수 있다라는 문제가 있다.[19] 또 현대를 배슁하는 세력은 기아도 묶어서 같이 깐다. 해외에서는 기아를 현대의 Division[20] 취급하는 경향도 있는데, 엄연하게 말하면 디비전이 아닌 독립 회사이며, 현대는 기아의 40% 미만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연구 개발만 같이 할 뿐이다. 그러니까 기아자동차가 연구개발을 현대에 위탁하는 형국이다. 나머지 부분, 즉 판매나 마케팅, A/S 등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경쟁관계에 있다. 그래서 제너럴 모터스크라이슬러같은 체제라기보다는 시트로엥/푸조의 연합체인 PSA그룹과 비슷하다고 할 만하다.

5. 사명(社名)에 관하여

일어날 기(起) + 버금 아(亞)를 쓰는 기아라는 사명은 영어로는 "Rising Out of Asia"라도 번역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뜻을 생각하고 사명을 지었다기 보다는, 영어의 기어(Gear)를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명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일단 기아에서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GIA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한국어로 기아에는 飢餓(굶주림)라든가 棄兒(갖다버린 아이)같은 부정적인 뜻이 있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많았다.

미국에서도 KIA가 Killed In Action (작전 중 사망, 전사자)를 뜻하기 때문에 군사용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놀림의 대상 과 구매시 거부감을 주며 잦은 사고나 낮은 안전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K.I.A(케이 아이 에이)라고 약자로 읽어야하므로 그냥 키아 라고 읽으면 문제 없긴 하지만, 사실 한국차가 미국 진출 초창기에는 싼 맛에 타는 그저 그런 차라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팔릴 차도 안 팔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6. 비판

현대자동차/비판 참고할 것.?!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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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씨티은행쪽의 주문실수로 주식시장에 상장 주식 수보다 많은 5억주 매수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다. 기사

향토기업 출신이 아니고 딱히 지역색을 띤 것도 아니지만 종종 호남 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 기아자동차의 자회사였다가 합병된 아시아자동차광주광역시를 거점으로 활동했었고,[21] 이를 모체로 하여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현대에도 광주권 지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아자동차의 창업주 김철호도 경상북도 칠곡군 태생이고 사업 시작도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중간에 인수한 아시아자동차의 사정을 제외하면 기아자동차는 호남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기아자동차의 기반은 주력 생산공장인 화성공장과 소하리 공장, 그리고 과거에 소재했던 시흥 공장의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 서울 및 경기도를 기반으로 하며, 오히려 타 생산업체보다도 수도권에 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기아자동차 서비스 센터와 홈플러스가 있는 자리가 원래 기아자동차 시흥공장 자리였다.

일각에선 KIA 타이거즈의 구단주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미지 면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크게 관련이 없는 편이다. KIA 타이거즈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를 IMF로 부도가 난 해태그룹으로 부터 그대로 인수받아 운영하는 것에 불과하며, 구단 인수 시점도 2001년이라 기아자동차현대자동차 그룹으로의 인수 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단 인수는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입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는게 맞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프로축구 구단으로 호남 지역에 연고를 두는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에는 한국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부산광역시에 연고를 둔 구단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직접 창단하기도 했었다. 구단 운영정책과 지역색을 연관지어 보자면 같은 영남 지역이기 때문에 이쪽이 조금 더 신빙성이 높다. 따라서 스포츠 구단 운영 정책과 호남 지역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공장은 경기도 광명시, 경기도 화성시, 광주광역시에 있으며[22] 미국 조지아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있다. 이중 광주공장은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광주광역시 시가지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광주공장의 전신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섰을 때만 해도 광주 시가지의 바깥쪽이었지만 상무지구를 개발하고 동구 대인동에 있던 버스터미널이 이곳으로 이전했다.] 등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시가지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

여담이지만 기아차의 미국법인은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로 매우 유명하다 기아 쏘울햄스터 광고도 이들의 작품이며 이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 센스는 슈퍼볼 광고에서 절정에 달한다. 보자

7.1. 스폰서십

직영중인 기아 타이거즈 외에도, 글로벌 이미지 제고를 위해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활발한 스폰서십을 제공중이다. [23]

8. 생산차량

차명(프로젝트명)으로 표시

8.1. 경차

모닝과 레이는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동희오토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한다.

8.2. 소형

소형차는 광명시 소하동(옛 명칭은 소하리) 공장에서 생산한다.[24]

8.3. 준중형

캐피탈, 세피아 생산 초기를 제외하고 화성 공장에서 생산.
지역특화모델인 씨드는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공장에서 직접생산,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CKD형태로 하청 생산한다.

8.4. 중형

크레도스 이후 화성공장에서 생산이 이뤄졌다. 콩코드는 생산 도중에 이전.

8.5. 준대형

두 차량 모두 화성공장에서 생산

8.6. 대형

소하리에서 생산. 오피러스는 첫 출시 이후 2009년까지 화성에서 생산했으나 후기에는 소하리로 옮겼다.[26]

8.7. 스포츠카

8.8. SUV/CUV/MPV/승합

초기에는 소하리에서 이뤄졌지만 현재 카니발은 소하리에서 생산되며 카렌스, 쏘울, 스포티지는 광주공장, 나머지는 화성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봉고 승합은 소하리 → 광주.

8.9. 상용차/대형승합차

전 차량 광주공장 생산. 다만, 그랜버드는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특수차량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8.10. 군용차량

기아자동차 특수차량 공장은 현재 방위산업체로 지정되어있다. 즉, 이하의 장비들은 모두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특수차량 공장에서 생산 중.

8.11. 삼륜

6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 70년대까지 생산. 현재 전부 단종. 마쯔다 기술재휴로 생산했지만 마쯔다의 삼륜차 부품을 들여와서 생산.

9.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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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경성지방재판소(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사 설립 등기가 이뤄진 날이다.
  • [2] 1994년에 발간한 기아자동차 창업 50년사에 의하면 1944년 7월부터 창업 준비를 해왔고 그해 12월 11일, 경성지방재판소에 설립등기를마쳤다고 한다.
  • [3] 삼천리자전거는 현대그룹에 인수되기 훨씬 전인 1979년에 분사되었기 때문에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 아래에서는 옛 기아의 역사가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반면, 삼천리자전거는 아직도 기아차의 역사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삼천리자전거 항목을 참고바람.
  • [4] 기아자동차 창립 40주년 기념 책에서는 부산공장에서 만들고 처음 만든 그 해에 사명을 바꿨다고 한다.
  • [5] "아시아에서 일어선다."는 뜻의 起亞, 영어 gear (당시의 일본식 발음으로는 기아)의 두 가지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 [6] 단, 특수차량 공장은 1991년에 준공되었다.
  • [7] 두 회사 로고는 가로세로 비율이 조금 다르지만, 수출 지역에 따라 현대 기아 차종이 회사를 바꿔 투입될 때, 금형 수정 없이 엠블렘만을 바꿔 붙일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 [8] 당시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의 기아자동차 지분은 불과 1%로 소유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 [9] 삼성은 1994년 12월 자동차 산업 진출 허가를 받아서 삼성자동차를 설립힌다. 닛산에서 기술을 도입해서 차량이 생산이 시작된 건 1998년.
  • [10] 당시 기아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 강성노조로 유명했다.1995년 1월 노동법 날치기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것도 기아차 소하리 공장. 현대차 노조를 포함해서 다른 곳이 머뭇거릴때 제일 먼저 파업을 개시한 것. 이런 노조가 무분규 선언을 할 정도였다.
  • [11] 실제 당시 재벌중에는 부채비율 1000% 재계순위 10위의 한라 등 기아보다 재정상태가 엉망인 곳도 많았다. 하지만 한라, 쌍용, 대우 등 이런 그룹들은 외환위기 이후 결국 망했다
  • [12] 1998년 국제입찰 당시 삼성은 입찰제안서를 제출했으나 정작 본 입찰에는 빠지고 곧바로 삼성차도 프랑스 르노에 매각했다.
  • [13] 아울러 스포티지 생산 시 프레임에 엔진 등 대부분의 구동계를 협력업체에서 통합 조립하여 공급하는 모듈 개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모듈 공장은 당시 스포티지 프레임을 생산하던 서진산업이 기아에서 위탁받아 운영했는데 막장으로 치닫던 공장을 정상 가동시켜 놓으니 모비스에서 도로 뺏아갔다. 안습 ... 네 이놈 모비스!!!
  • [14] 사실 요 부분은 좀 논란이 있다. 기아 자동차의 팬들은 스포티지가 세계 최초의 온로드형 SUV이며 차후 주류가 된 온로드 형 SUV는 모두 이 스포티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 SUV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온로드형 SUV의 시초로 보는 차종은 차급은 다르지만 스즈키의 사이드킥이라는 차종이다.(GM에서 트랙커라는 이름으로 OEM받기도 했고, 국내에도 수입되었었다). 자동차 역사로 본다면 이미 1950년대에 라다에서 나온 온로드타입 SUV도 있고... 무엇보다 사이드킥이나 초대 스포티지 모두 프레임 설계 차종이고, 실제 모노코크 설계인 완전한 온로드형 SUV로 나온 것은 도요타의 RAV4이고,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온로드형 SUV는 이 라브4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외국쪽에서 스포티지의 평가는 '한 수 아래의 한국시장에서 웬일로 당시 시대 흐름을 잘탄 차가 하나 나왔네...'수준이지 스포티지를 외국에서 벤치마킹했네 어쩌네 하는건 다 헛소리. 기아차가 당시 비주류라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견해도 있는데, SUV계보를 보면 당시 소련이나 체코같은 비주류회사들의 SUV들도 가치가 있으면 다 소개해주고 있다. 스포티지가 시대를 앞선 차종이라는건 맞지만, 시대를 선도했다..는 건 좀 심하다.
  • [15] 대표적인것이 기아 캐피탈에 들어간 B5 DOHC 엔진으로 원래 마쯔다 파밀리아 GT라는 핫해치에 들어가던 1600cc 터보 엔진을 가지고 배기량을 국내 자동차 세금체계에 맞게 1500cc로 줄이고 터보를 떼어낸 엔진이었다.
  • [16] 2000, 2001년 스포티지, 2009, 2010년 쏘렌토
  • [17] 1988년에도 K-111을 튜닝한 로드마스터로 참전하여, 비공식이지만 국내 기업 최초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한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다카르 랠리에서는 탈락 처리 되었고, 그래서 공식이 아닌 비공식으로 국내 최초가 되어버렸지만.... 참고로 당시 드라이버 중에는 1995년에 세피아로 WRC 호주 랠리에 참전해 우승한 그 박정룡 선수가 있었다.
  • [18] http://www.caradvice.com.au/60510/interview-with-head-of-design-at-kia-peter-schreyer/
  • [19]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에서 엔지니어링, 기아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엔지어니링과 디자인 부문은 남양연구소에서 현대-기아 가리지 않고 통합하여 맡아 개발하고 있다. 디자인실도 따로 있고, 그 남양연구소가 편제상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실 직속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예산도 현대-기아 차종이 다른 회사에서 나온다.
  • [20] 토요타-렉서스, 폰티악-쉐보레, 크라이슬러-지프 등 한 회사에서 만든 다른 이름의 브랜드
  • [21] 참고로 아시아자동차의 창업주였던 이문환은 호남 출신인 사업가다.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넘어간지 오래된 현재는 그의 친척들이 아시아자동차와는 무관하게 활동 중이다.
  • [22] 광주에만 2개 공장이 있다.
  • [23] 기아는 과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니폼 스폰서(2005~2012년까지)이기도 했는데 그다지 성적이 화려하지 않아(하지만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하여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었다고) 2012년부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틀레티코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스폰서를 맡았는데 그 아틀레티코가 2013-14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통에 기아에서 안타까워했다는 후문.
  • [24] 단, 1993년에서 2000년 사이 초대 프라이드는 광주공장에서 생산했다.
  • [25] 아시아자동차 생산 차종.
  • [26] 엔터프라이즈는 출시 당시에는 화성공장에서 생산했으나 후기에는 소하리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 [27] 포드의 머큐리 브랜드로 생산되었던 대형세단. 기아차가 1~2세대 모델을 수입판매
  • [28] 포드의 머큐리 브랜드로 생산되었던 대형세단. 기아차가 1~2세대 모델을 수입판매
  • [29] 특이하게 울산에서 생산되었다. 싼타모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다.
  • [30] 팔릴 당시 카렌스2와 병행생산
  • [31] 수출용 모델로 슬로바키아에서 생산
  • [32] 양재동 사옥에 입주하기 이전에 쓰던 여의도 사옥의 현 주인이 바로 현대카드이다.
  • [33] 주역 로봇들의 자동차 형태는 기아자동차의 모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