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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last modified: 2019-02-08 01:07:58 Contributors




거 눈빛 부담스럽네......

두산 베어스 No.8
권혁(權奕)
생년월일 1983년 11월 6일
신체 192cm, 100kg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대구수창초-성광중-포철공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2~2014)
한화 이글스(2015~2018)
두산 베어스(201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최재호(1996~2001) 권혁(2002~2014) 최민구(2015~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7번
윤근영(2012~2014) 권혁(2015~ ) 현역

2009년 한국프로야구 홀드왕
정우람(SK 와이번스) 권혁(삼성 라이온즈) 정재훈(두산 베어스)

Contents

1. 선수 소개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1. 데뷔 후 2009년 시즌까지
2.2.2. 2010년 시즌
2.2.2.1. 2010 포스트시즌에서의 최악의 부진
2.2.3. 2011년 시즌
2.2.4. 2012년 시즌
2.2.5. 2013년 시즌
2.2.6. 2014년 시즌
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5년 시즌
2.3.2. 2018 시즌
2.4. 두산 베어스 시절
2.4.1. 2019 시즌
3. 투구 스타일
4. 이야깃거리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선수 소개

산 베어스스투수.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18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철공고 야구부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현 SK 와이번스)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1. 데뷔 후 2009년 시즌까지

선동열이 수석코치로 부임한 2004년부터 잠재력을 폭발시켰으며, 토미 존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2006년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아 권오준, 권오원과 함께 '권트리오'라 불리며 팀에서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08년까지 보통 삼성의 승리의 공식은, 어떻게든 선발 투수로 5회까지 리드를 잡는다 -> 권혁 1이닝 -> 정현욱 2이닝 -> 오승환 세이브(...)[1]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에 등판해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여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오승환이 뻗어버려서[2] 정현욱과 번갈아가면 마무리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인지 갈수록 성적이 처참해져서 시즌 후반에는 심심하면 털리는 투수가 되어 버렸다. 지못미. 그래도 어찌어찌 21홀드를 기록함으로서 홀드왕 타이틀은 차지하였다.

2.2.2. 2010년 시즌

2009년의 심각한 혹사 여파로 2010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40km/h대를 못 찍을때가 많아졌다. 반면 구속이 줄면서 2009년까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컨트롤이 상당히 개선되어, 예전만큼 끔찍한 강속구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를 통한 코너웍을 이용해 타자를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다. 오히려 안정감만큼은 지난 시즌 이상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결국 ERA 2.09에 7승 1패 4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며[3] 파이어볼러에서 완성형 투수로 변신. 안지만, 정현욱과 함께 삼성의 무적 불펜의 한 축을 이끌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삼성의 필승 불펜조를 선수들의 앞글자만 따서 '안정권'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위의 2명과 권혁. 문자 그대로 그들이 올라서면 안정권에 접어들수 있게 된다는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덕분에 실제로도 선동열 감독도 2010 포스트시즌에 그런 그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2.2.2.1. 2010 포스트시즌에서의 최악의 부진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스트라이크1볼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4]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타자 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상대하여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
플레이오프 4, 5차전 : 등판 못함[5].

권혁은 마구마구 201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⅔이닝 1홀드 2피안타 4볼넷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 27.0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내어 순조롭게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권혁은 마구마구 2010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⅔이닝 1패 1피안타 2볼넷 1피홈런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27.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권혁은 마구마구 201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1⅓이닝 1홀드 1패 3피안타 6볼넷 1피홈런 1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27.00[6], 1패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사나 선동렬 감독등의 인터뷰를 볼 때 '권혁을 비롯한 불펜의 부진'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좋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한마디로 한 것도 없이 망쳐만 놓고 아무것도 못했다. 기록상의 평가로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지경.

2.2.3. 2011년 시즌

그 이후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 2011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10년 포스트시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오죽했으면 충격으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체중이 6kg나 빠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4월 16일 1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까라인[7] 안정권KO라는 라인이 완성되었다. [8]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 1피홈런 15K/17BB 1HBP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9]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특이한 건, 좌우 상대 전적이 괴랄하게 밸런스가 안 맞았다. 좌타자 상대 14피안타(2루타1개. BAA .241) 5K/11BB, 우타자 상대 9피안타(2루타 3개 홈런 1개. BAA .191) 10K/6BB 1HBP(…). 이건 LOOGY가 LOOGY가 아니다. 아무래도 좌타 상대로는 그라운드 볼을 유도하여 맞춰잡는 전략인 듯한데, 그게 잘 안 되는 듯했다.

결국 2011년에는 평균자책점 1~2점대를 유지하는 좌완 릴리버라는 점만으로도 이래저래 팀에 유용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평균자책점과 WHIP을 보면 알지만, 본인이 볼질하고 내려갔다가 안지만, 정현욱 같은 흠좀무한 불펜이 전부 막아준 경우가 꽤 많았다. (승계주자 실점률 등의 수치는 능력자의 추가바람.) 그렇지만 삼성이 권혁 없던 시즌 초중반에 심하게 헤매던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삼성에서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릴리버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불펜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페이스를 좀 되찾은 모양인지 왠일로 호투하면서 살아나는가 했더니, 8월 24일 청주 한화전에서 8회 3대 2로 앞선 상황에서 나와 미친듯이 처맞고 1사 만루에서 강판, 바로 교체한 안지만이 그의 뒷처리를 하려다 오히려 역전을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타선 침체로 인해 3연패에 빠져 있었던 팀을 오히려 4연패로 몰아넣고... 결국 이날 안일하게 경기 운영하다 경기를 내준 류중일,9회말 흔들리던 바티스타를 상대로 영웅스윙을 시전하다 폭풍삼진당한 채태인과 함께 삼성 팬들에게 개같이 까였다.[10] 역시 이놈은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차 8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또 왠일로 호투하면서 2연승의 밑거름을 다져놓았다. 좀 들쑥날쑥해도 두산에게만큼은 강한 점도 있었는데다가 무엇보다 이날은 구속이 어느정도 돌아와서 고무적이었다. 올시즌 내내 원래 부족한 제구에 구속까지 안나와서 고전하던 차에 나온 이날 호투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11]
권혁이 이렇게 부진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2.4. 2012년 시즌

해당 항목으로.

2.2.5. 2013년 시즌

해당 항목 참조.

2.2.6. 2014년 시즌

나름대로 부활은 한 듯하다. 대신 기회를 안 줘서 그렇지...

2013년 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 차원으로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시범경기에도 출장했고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고, 결국 3월 31일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

복귀 후 모습은 비교적 성공적. 4월 25일 넥센전에는 점수차가 큰 상황이긴 했으나 2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5월 4일 NC전에는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갔으나 5월 7일 SK전에는 4: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하여 제구는 불안했으나 1이닝을 막았다. 그리고 9회에 팀이 SK의 필승조를 탈탈 털며 뜬금없이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 첫 승자 2012년 7월 12일 이후 664일만의 승.

6월 4일 허리 통증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는데, 권혁은 5월 20일 이후로는 등판하지를 않았다(...) 대신 백정현이 올라왔다. 6월 27일 김현우와 1군에 복귀했다. 이후 7월 5일 두산전에 등판하여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줬다.

7월 24일 경기에서도 등판하였는데, 2이닝동안 전성기수준의 피칭을 보여 삼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비핵화? 유일하게 맞은 안타 하나가 전준우의 홈런인것도 고무적, 그리고 7회초, 메가라이온즈포가 터지며 홀드 아니고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팬들은 이러한 활약에 후반기 삼성 불펜의 핵으로 재강림하기를 기대하는 중.

7월 25일 대구 NC전에서 10:6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해 삼진 1개 포함 삼자범퇴를 기록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속구 최고구속은 149km/h. 7월 27일에는 1:1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1안타와 1볼넷을 기록했으나 삼진만 2개를 잡았다. 삼진 : 볼넷 비율이 4를 왔다갔다 할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 차우찬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좌우놀이를 사랑하는 감독 특성상 왼손 투수로 필승조에 포함될 듯 하다.

8월 6일 한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8월 8일 롯데전에선 한 타자도 못잡고 1자책을 허용했으나, 끝내기 홈런은 임창용의 블론 이후 나온 것이라 삼성팬들은 임창용을 까기 바빴고, 롯데전에선 좌우놀이에 휘말려 1타자를 출루시킨 뒤 심창민의 깔끔한 분식으로 실점한 것이라 권혁에겐 비판의 화살이 거의 없었다. 8월 11일 넥센전에선 이택근에게 2루타를 맞았으나 두 타자를 무사히 잡아내고 팀의 역전승을 견인했다.

이후로 잠시 부진하는 듯했으나, 8월 27일에 열린 롯데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6:4로 뒤진 5회초 2사부터 등판하여 타자 넷을 4타수 3탈삼진으로 잡아내며 초전부터 장작 포텐을 터뜨린 어느 용병과 이후 등판하여 장렬한 퐈이아를 시전한 수건이 부진한 가운데 제 역할을 했다. 다만 팀이 스코어 11:4로 탈탈 털린 것은 흠.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여 서건창을 초구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배영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리고 이 등판이 유일한 한국시리즈 등판이 되면서 공 1개만 던지고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고효율 야구

2014년 11월 26일, 삼성과의 FA 우선협상이 결렬되었다. 자신과 구단이 제시한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나섰다고 밝혔다. 보통 FA선수가 기회 운운하며 협상이 결렬되면 대부분의 경우 기회=돈으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인데, 권혁의 경우 좋은 공을 던짐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삼성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권혁과의 협상 결렬에 매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11월 28일, 한화 이글스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4년 총액 32억 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4억 5,000만 원, 옵션 4억 원)으로, 거품이 가득 낀 FA 시장 상황에서 세간의 예상보단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다. 정말 돈보다는 필승조나 마무리를 보장받길 원한 듯하였다.[12]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위즈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13] 좌완 불펜이 태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시즌 개막 후 기회가 너무 넘쳐 이적 첫 해에 팔 아작날까봐 팬들이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14]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15]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편 권혁의 FA 보상선수로는 상무 입대를 앞두고 있는 포수 김민수가 지명되어, 김민수는 상무 제대 후 고향 팀에서 뛰게 됬다.

2.3.1. 2015년 시즌

해당 항목으로.

2.3.2. 2018 시즌

2017 시즌 초에 만악의 근원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사퇴한 뒤에도 2군에서 회복에 전념하다가 2018 시즌 후반기에 오랜 재활을 마치고 마운드에 복귀했다. 평균자책점은 다소 높았으나, 투수진의 소진으로 후반기 한계에 봉착했던 한화에서 가뭄 끝에 단비 같은 활약을 해 주었다.

2.4. 두산 베어스 시절

2.4.1. 2019 시즌

후반기 활약으로 인해 2019 시즌에도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었으나, 한용덕 감독이 작년 시즌 송은범과 마찬가지로 2군에서 시작하에 몸을 좀 더 만든 뒤 활용하기로 하자 자신이 '전력외'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한 권혁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권혁의 뜻이 완강함을 알게 된 한화는 그를 방출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불펜 보강이 필요했던 두산 베어스에서 그를 영입, 두산 선수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2월에 방출된 탓에 신고선수로 등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시즌 등판은 5월 이후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3. 투구 스타일

가공할 만한 공 회전력, 평균구속 140km/h를 웃도는 공을 가진 좌완에선 보기 힘든 파이어볼러이다. 서승화와 함께 한국프로야구 좌완 공인 최고 구속(156km/h) 기록의 보유자.[16] 기본적으로 상체 중심의 피칭을 하고, 제구는 상당히 불안한 편. 던지는 구종도 직구-슬라이더로 단조롭다.

기본적으로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지만 빠른 구속과 묵직한 구위로 찍어눌러도 타자들이 맥을 못 췄기에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사실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적을 냈다. 허나 2010년 이후부터는[17] 혹사 누적으로 이전보다 팔스윙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공의 무브먼트나 구위도 저하되며 삼성 철벽 불펜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그나마 삼성 불펜진이 굳이 권혁이 빠지더라도 워낙 막강이라 그냥 묻어가는 모양새였다.[18] 그리고 2013년, 불펜진에 균열이 생기면서 본격 까임의 대상으로 등극. 하지만 권혁 이외에는 쓸만한 삼성 왼손 불펜이 1, 2군 통틀어 전무한지라 삼성 불펜진의 아픈 손가락이자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차우찬은 원 포인트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백정현, 조현근은 1군으로 올리기도 영 애매하다

공교롭게도 그가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과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삼성의 본래 팀 컬러와 영 맞지 않았던 모 감독의 재임기와 사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 팬덤에서는 배영수, 권오준 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후반 멍게강점기 삼성 투수진 혹사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하고 있다.

박재홍 해설 위원에 따르면 SK 와이번스 분석팀에게 투구폼이 읽혔다고 한다. 그래서 박재홍 위원은 권혁이 나오면 좋아했다고.

4. 이야깃거리

힙합보이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떡대까지 겹쳐셔 별명이 강백호였으나 금방 묻혔고(...), 오히려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넥이 별명으로 쓰였을 정도. 그러던 와중 2012시즌에 채르노빌, 최형우라늄, 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을 맡았다.[19]

중학교 재학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키가 작았으며,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이유로 야구를 잠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키가 부쩍 자라 포철공고로 전학가며 계속 야구를 하게 되었다.
프로필상 키는 187cm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입단 당시의 키. 프로 입단 후에도 키가 커 지금은 190cm 이상이다. 2014년 192cm로 공식 프로필이 수정되었다.

2006년 2월 하와이 전지 훈련때 2.5미터 깊이의 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수영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깊은데로 갔다가 빠진 경우인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서 익사직전까지 갔다가 인공호흡급처치로 살아난 케이스. 정황상 권혁은 당시 그곳이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던 것 같다. 물놀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병 선수들도 너나할 것 없이 폭포를 왕복하고 있었는데 권혁도 그렇게 하다가 빠진 것. 체격 건장한 운동선수라 물에 빠져도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데 당시 권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걸 보면 역시 물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듯. 다행이 현장에 있던 배영수와 현장에 있던 기자가 가까스로 그를 건져내서 응급조치로 살려냈다.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사진도 있음.

마해영이 방송에서 권혁이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뒤로 구속이 150km/h가 넘었다면서, 한 번 더 빠지면 160km/h가 넘을거라고 말했는데 방송에서 왜 그런걸 말했냐고 싫어한걸 보면 본인의 흑역사인 듯 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게 별로 간지넘치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또한 일반적으로도 이런 일을 겪으면 트라우마가 생기는 법이다. 숨길 것도 없지만 공중파에서 대놓고 자랑할 것도 아니다.


2009년 9월 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예정에 없던노예주제에 휴식을 생각하지 마라구원등판을 하게 되었는데, 유니폼이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다른 선수 유니폼 빌려입고 나갔겠지만 하필 이 날 김응용 사장이 참관하고 있던 터라... 최원제가 권혁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갖고 있던 팬[20]에게 부탁해서 유니폼을 빌려입었는데, 그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그나마 너무 작아 겨드랑이를 잘라낸게 저정도라고.

2009년 시즌 후에 2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2010년 12월 15일. 득녀했다! 하지만 분유버프는 없었다...

여담으로 대구 팔공산 정상에 올라가면 '삼성 라이온즈 권혁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혁이 경기에서 보이지 않던 시절에 보인 것을 보아 2012년 5월 초 쯤으로 추정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2002삼성 라이온즈 2 4 0 1 0 0 13.50 11 0 1
2003 23 39⅓ 3 2 0 2 5.26 40 21 26
2004 37 81 3 3 0 3 4.78 80 42 78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12 8 0 0 0 2 4.50 8 6 6
2007 60 77⅔ 7 1 0 19
(3위)
2.79 47 42 100
2008 43 47⅔ 6 0 0 15
(4위)
1.32 36 23 37
2009 63 80⅔ 5 7 6 21
(1위)
2.90 64 46 76
2010 60 73⅓ 7 1 4 10 2.09 54 21 73
2011 58 48⅓ 1 3 0 19
(4위)
2.79 38 24 27
2012 64 49⅓ 2 3 1 18
(5위)
3.10 48 20 38
2013 52 36⅓ 0 1 0 3 3.96 35 17 41
2014 38 34⅔ 3 2 0 1 2.86 27 11 38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2015 한화 이글스 - - - - - - - - - -
통산(13시즌) 512 580 37 24 11 113
(5위)
3.24 488 274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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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상황에 따라 정현욱과 권혁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JKO 펀치라 부르기도..
  • [2] 이는 삼성의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로 직결된다.
  • [3] 특히 삼진 개수는 유지하면서, 사사구 개수가 예전보다 월등히 줄어들었다.
  • [4]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
  • [5] 등판 못한 거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팀이 3, 4차전 모두 7명의 투수를 쏟아부었기에 4, 5차전에서 투수가 1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혁은 중심불펜 역할을 예정중이었으므로 더욱 타격이 컸다.
  • [6]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을 모두 27.00을 찍는 위엄을 달성….
  • [7] 정현욱-오승환-권-권오준-안지만의 이니셜 앞글자를 따면 JOKKA다. 자세한건 조까항목 참고. 선수들 욕하는 아니다. 타자들 조까라는 뜻
  • [8] 사실 조까보단 안정권KO가 등판순서에 더 어울린다. 그리고 2011년엔 안지만이 선발로 나오면서 진짜 안정권KO 순서대로 등판할 뻔 했다!
  • [9]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상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힙합전사가 9회에는 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
  • [10] 2011시즌 권혁의 성적은 1승 3패인데 3패가 모두 한화전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삼성은 이 시즌에 유일하게 한화에게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1승은 7월 19일 SK전.
  • [11]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 [12] 심지어 본인은 32억보다 낮게 대략 30억 정도를 불렀는데, 잘해보자는 뜻에서 한화 측에서 올려줬다는 카더라도 있다.
  • [13]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주황색 잉어킹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식의 드립이 인기를 끌었다.
  • [14]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 [15]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
  • [16] 2004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경기에서 기록.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는 157km/h를 찍기도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중이 아니라서 시즌 정식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 [17]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 보크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 [18] 특히 2011년에 그런 모습이 확연하였다. 겉보기 성적과 실제 투구내용과의 상당한 갭이 있다.
  • [19]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에겐 그런거 없고 핵폭발
  • [20] 아마 여자 팬인 듯. 크기를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