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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관

last modified: 2016-09-20 22:46:18 Contributors


한화 이글스 No.13
권용관(權容寬)
생년월일 1976년 11월 1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봉천초-강남중-성남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고졸신인 지명
소속팀 LG 트윈스 (1995~2010.7.27)
SK 와이번스(2010.7.28~2012)
LG 트윈스(2013~2014)
한화 이글스(2015~ )

LG 트윈스 등번호 58번
권용관 (1995~2006) 팀 하리칼라 (2007)
LG 트윈스 등번호 10번
이일의 (2002~2006) 권용관 (2007~2010) 김태완(2011~2012)
SK 와이번스 등번호 5번
최윤석(2010) 권용관(2011~2012) 홍명찬(2013~ )
LG 트윈스 등번호 10번
김태완(2011~2012) 권용관(2013~2014)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3번
안승민(2010~2014) 권용관(2015~ ) 현역

Contents

1. 개요
2. 선수 커리어
2.1. LG 트윈스 1기
2.2. SK 와이번스 시절
2.3. LG 트윈스 2기
2.3.1. 2013년
2.3.2. 2014년
2.4. 한화 이글스 시절
2.4.1. 2015년
2.4.2. 2016년

1. 개요

NTS 국장이자[1] 한화 이글스의 前 야구선수로 주요 포지션은 내야수.[2]

성남고등학교를 졸업[3]하고 1995년 LG에 입단했다.

2. 선수 커리어

2.1. LG 트윈스 1기


흔한 백업 요원으로 별다른 활약이 없었지만 2001년 김성근 감독 취임 후 김성근 감독 특유의 1대1 펑고로 수비력이 향상되어 대수비요원으로 급부상, 2002년 시즌 유지현의 부상으로 공석이 된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여 유지현이 없는 LG 내야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고 이후 2003년부터 꾸준히 1군 유격수로 출장하며 사실상 LG의 간판 내야수가 되었다.

권용관의 최대 장점은 빠른 발을 살린 유격 수비로, 무릎 부상 이후 수비범위가 줄어들고 있던 박진만과 다르게 권용관은 빠른 발로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서 건져내어 아웃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2002~2004년 한창이었을 때는 수비만큼은 박진만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어깨도 수준급이라 어려운 포구 자세에서 허리를 쓰지 않고 어깨만으로 무리없이 1루로 송구가 가능했었다.

단점은 타격이 너무 떨어졌다는 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주전 자리를 잡을 듯하다 잡지 못했던 이유는 수비는 확실하지만 타격이 너무나 떨어졌기 때문. 2007년 전반기에 한때 2할 후반대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면서 기다림에 보답하나 싶었지만 후반기에 급하락하여 .241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수비를 중시하는 당시 LG 트윈스 김재박 감독의 성향으로 권용관은 타격 성적에 관계없이 주전으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시즌, 내야 수비 도중 불규칙 바운드에 튄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코뼈와 광대 일부가 함몰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 사고 이후 공에 대한 공포증으로 바운드성 타구 처리 능력이 크게 떨어지며 수비 불안을 노출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시즌에는 자신의 최다경기 출장(126경기)과 자신의 커리어하이 타율 .247을 기록하며 꽃을 피웠으나 2008년 당했던 안면 부상으로 인한 바운드성 타구의 처리 문제와 노쇠화로 인한 수비력 저하로 인한 실책성 플레이가 급격하게 늘어났고[4], 아이러니하게도 데뷔 이래 최고의 활약을 보인 이 해에 그는 신임을 잃게 된다.

2010년 시즌, LG는 유격수로서 환갑[5]에 가까운 권용관을 2진급으로 밀어내고 오지환을 주전 유격수로 쓸 계획을 잡았으며, 이에 권용관은 주전 자리에서 물러나고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2010년 5월 중순부터 박경수, 정성훈의 부상과 오지환의 수비불안으로 인해 내야진에 구멍이 뚫리자 2군에서 콜업되어 2루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별명인 K-ROD는 권씨의 K + A-ROD를 합성한 것으로 일부 팬 사이에서만 쓰이던 별명이었으나 2007년, 오마이뉴스 야구기사에 저 별명을 타이틀로 한 권용관의 기사가 각 포탈에 실리면서 퍼진 것으로 타팀팬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다른 별명으로는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특이한 케이스로, 그로 인해 '권병장'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사실 이 별명이 제1별명(?)이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SK에 트레이드 되었을 때 당시 사진

2010년 7월 28일자로 SK에 트레이드 되었다. LG와 SK의 4:3 트레이드로, 권용관, 최동수, 안치용, 이재영윤요섭, 박모씨, 김선규가 유니폼을 바꿔입게 되었다.

참고로 SK 이적 후 박홍구 응원단장이 만든 응원가는 일명 용관타령(…)으로 불렸다. 구슬프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병맛으로 솩갤에선 심심할 때마다 글에 첨부되어 올라왔다.

2005년 7월 9일 문학 SK전에서 1루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질을 날린 전과[6]가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권법규'라고 불린 그가 SK로 온 것에 대해 많은 SK 팬들이 트레이드 당일 어느 정도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적한 그 날, 하필이면 SK 대 LG 경기가 이루어졌고…LG의 청백전 혹은 01 LG덱 vs 10 LG덱으로 보였던, 이날의 막장경기에서 권용관은 10회초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스킬을 사용하나 싶었지만…10회말 끝내기 실책을 지지르며 그동안의 친정에 대한 사랑을 담은 보은을 실천하셨다! 알고보니 박종훈의 트로이 목마?! [7]

이 이후 몇차례 1군 경기에 나온 뒤 1군과 2군을 오가면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주전 유격수 나주환의 군입대 확정으로 2011년 시즌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였으나, 오프시즌에 FA를 위해 LG시절부터 미뤄왔던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며 스프링캠프까지 완전 불참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 사이에 새로 영입된 박진만, 이미 내야유틸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김연훈, 타격이 심각하지만 수비는 봐줄만한 유망주 최윤석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권용관은 11년 시즌 역시 레귤러 출장은 하지 못한채 2군에서 출발하였다.

2011년 8월 6일 KIA전에서 2루수로 선발 출장, 시즌 첫 안타도 기록을 하였고, 8월 14일 넥센전에서 시즌 첫 홈런이자 만루홈런을 때렸다. 그리고 권용관 타령도 나왔다 근데 상대가 하필이면 심수창.일찍 탈쥐해서 탈쥐효과를 더 세게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터뷰에서는 "수창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후엔 별다른 활약없이 1군 경기에 출장한 후 포스트 시즌 멤버에선 제외되어 2011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에 들어와서도 개막전 선발로스터에도 진입을 못하고 2군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첫 1군 콜업은 6월 22일에나 이루어졌다. 이날 대타로 출전하여 한기주에게 안타를 뽑아내어 4:2에서 6:4로 역전하는 발판을 놓는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유격수 핵심으로 자리잡은 박진만과 최윤석, 그리고 김성현의 벽을 넘지 못하며 2012년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으며 2군에서도 1~2할대의 타격을 보여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는 듯했다.

2.3. LG 트윈스 2기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무적선수가 되었다가 2년 5개월만에 친정팀 LG로 복귀했다#.

2.3.1. 2013년

2013년 5월 18일, 1군 엔트리에 등록 되었다. 9회말 대타로 경기에 나섰지만,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5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3루수로 출장했는데, 2회 초 장원삼의 초구를 공략하여 시즌 첫 안타를 마수걸이 홈런으로 장식했다. 이날 경기에서 권용관은 4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 1볼넷을 기록하였다.

5월 23일 삼성전에서는 6회말 2사 1, 3루 상황에서 포수 이지영이 투수 윤성환에게 공을 천천히 송구하는 틈을 타서 홈스틸을 해내며 역전에 성공하였다! # 공식적으로는 홈스틸이 아닌 야수선택으로 기록되었다.[8] 시즌 후 LG 팬들 중에서는 이 날 권용관의 홈스틸이 LG의 2013시즌 운명을 바꿨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 실제로 LG는 이 날 승리로 삼성과의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가져간 이래, 7월 넥센과의 3연전 직전까지 무려 10연속 위닝시리즈라는 대 상승세를 이어가게 된다.

5월 29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4회말 이태양의 초구를 받아쳐 2호 솔로 홈런을 날렸다. 이 날 경기는 스코어 7:1로 LG의 압승.

이후로도 큰 활약은 없으나 쏠쏠하게 경기 후반 내야 멀티로써 중용되었으며, 복잡한 LG 내야 상황에서[9] 1루를 제외한 나머지 내야수비를 모두 소화 가능한 권용관은 손주인과 함께 빈자리를 요소요소 메워주며 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8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9회초 2:2동점 2아웃 상황에 나와 홍상삼의 초구를 때려 역전 솔로홈런을 때려냈고, 이 솔로홈런이 결승타가 되어 LG가 스코어 3:2로 승리했다.
"이제 권용관... 왼쪼오옥~ 떠갑니다아아~ 넘어갔어요~!!!! 역전~ 다시 재역전! 솔로 홈런을 뽑아내는 권용관~!!" - 8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역전 솔로홈런을 때려냈을때 한명재 캐스터의 홈런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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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성적은 68경기 104타수 24안타 4홈런 13타점 1도루 타율 0.231 출루율 0.316 장타율 0.404로 OPS 0.720을 기록했다. 수비에서 멀티플레이어로 주전들의 체력을 세이브해줄 수 있는 탄탄한 백업 역할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생각치도 못한 주루플레이, 일발장타 등을 터뜨리며 2013시즌 LG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활약을 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은 대수비,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2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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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 때문에 신청을 하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FA 신청을 했고 11월 16일 1년 1억 원에 계약하였다. 2013시즌 후 FA 시장 과열로 인한 화폐 개혁으로 SSC에 이어 새로운 화폐로 등극했다(1용관=1억).
일련번호가 0523810인데 아무래도 그가 홈스틸과 9회 2아웃 홈런을 기록한 날에서 비롯된 듯. 위쪽 서술 참고.
"LG에 남고 싶었다" 는 그의 발언으로 볼 때 2차 드래프트로 인한 타 팀 이적을 피하기 위해서 FA 신청한 듯하다.

2.3.2. 2014년

성장세가 더딘 오지환을 제치고 개막전부터 주전 유격수로 나왔었지만 생각보다 신통치 않은 수비에 타격이 8경기 17타수 2안타로 타율 .118, 출루율 .158로 식물과 다름없는지라(...) 결국 4월 11일자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4. 한화 이글스 시절

2014 시즌 종료 후 보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은퇴 수순으로 가나 했는데, 한화 이글스의 오키나와 훈련장에 합류해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12월 16일 공식 입단이 확정된다. 2015 시즌에는 2002년 김성근 감독과 함께했던 김재현, 조인성, 권용관이 모두 한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4.1. 2015년


한화 스프링 캠프 자체 홍백전에서 2번타자로 출장해 이동걸을 상대로 그라운드 홈런을 쳤다. 또한 이 날 김경언의 홈런으로 득점도 기록했는데, 득점 후 나이저 모건과 함께 모건의 트레이드 마크인 T-플러시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다.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출전하고 있는데, 공수주가 다 안되는 모습을 보이며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반 노리타 성향 유저들을 포함한 야구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3월 28일 목동 개막전에 2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했지만 8회 얕은 땅볼을 더듬으며 홈승부를 하지 못해 동점 허용과 역전패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이처럼 들쭉날쭉한 기복과 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이 정말 줄기차게 기용한 탓에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2.4.2. 2016년

결국 2016 시즌에는 대부분 2군에 머물러 있다가 9월 13일에 웨이버 공시가 되어 방출됐다. 김성근 감독 말에 따르면 이미 2군에서 야구에 대한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고 하며,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고 한다. 영감님 때문에 욕먹은 셈인데 붙든다고 맘 돌릴 줄 알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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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 등장 기관 NTS의 국장 이름이 권용관이다.
  • [2] 주 포지션은 유격수지만 2루수3루수도 볼 수 있는 내야 유틸리티였다.
  • [3] 정확히는 광영고를 다니다가 야구부가 해체되기 직전에 성남고로 전학.
  • [4] 에러 수나 수비율같은 표면적인 수치로 본다면 준수한 편이나(에러 12개/수비율 .979), 에러로 기록되지 않은 타구 중에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타구가 많았으며 병살을 잡을 타이밍에 병살을 잡지 못함으로서 실점의 계기를 만든다거나, 에러 또한 클러치 상황에 자주 범하는 등 수비력 하나만으로 알아주던 야수에게 기대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 [5] 내야의 스페셜리스트였던 김재걸, 김민재도 35살 즈음부터 수비력이 크게 저하되었고 결국 이는 은퇴로 직결되었다.
  • [6] 직접적으로는 당시 상대투수였던 고효준이 예전 부상부위였던 허벅지를 맞춰서 벤치 클리어링까지 갈 뻔하다가 1루로 향했는데, 이때 1루 SK 응원석에서 야유와 욕설이 나오자 여기에 욱하는 바람에 저지른 것이다. 당시 중계방송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지를 올렸는지 검지로 삿대질을 한 것인지는 불분명한데, 권용관이 경기 다음날 사과를 한 내용을 다룬 기사에서는 검지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했다고 보도했으나, 당시 문학구장에서 직접 목격했던 적지않은 수의 SK팬들은 분명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는 증언이 있었다.
  • [7] 이 실책 또한 바운드성 타구로 2008년 부상 이후 전진수비능력과 바운드성 타구 처리 능력이 크게 떨어진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8] 기록위원은 "투구동작 때 주자가 스타트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포수의 느슨한 송구를 틈 타 홈을 파고 들었기 때문에 포수의 선택 실수에 의한 득점으로 봐야한다"고 하였다.
  • [9] 기본적으로 오지환이 유격수 붙박이에 3루 주전은 정성훈이었고, 2루는 손주인이 맡으며 1루는 김용의-문선재의 플래툰으로 돌아갔다. 다만 정성훈은 나이가 있어 3루를 보기 좀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었던데다 김용의가 3루를 볼 수 있고 문선재 역시 돌글러브 소리를 듣지만 2루를 볼 수 있었기에 내야진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경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