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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그

last modified: 2015-12-02 18:41:37 Contributors

Гулаг
Gulag, 제정~소비에트 러시아의 노동교화수용소 혹은 정치범수용소 절대 구로구가 아니다!(...)굴라시와도 헷갈리지 말자.

Contents

1. 탄생
2. 수감자
3. 노동과 생활
4. 석방?
5. 변화
6. 서방의 반응
6.1. 현실의 굴라그
6.2. 게임에서의 굴라그
6.3. 소설 및 만화 매체에서의 굴라그
6.4. 영화에서의 굴라그


1. 탄생


1923년부터 1961년까지 소련에서 운영되었던 굴라그들. 즉 스탈린과 역사를 함께 한 수용소들이다. Воркута라는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지명도 표기되어 있다.

본래 시베리아 식민지와 불모지대의 개척을 위해 제정러시아에서 정치범들을 대거 동원해 척박한 땅에서 귤을 까거나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도시 기반을 닦는다거나 운하를 파는 일을 맡긴 곳이었다. 다만 시베리아 이외의 지방에도 굴라그는 있었으므로 굴라그에 간다고 꼭 시베리아 유배는 아니지만 죄질이 나쁘면 높은 확률로 시베리아 당첨.

제정러시아부터 시작했지만 제정러시아 시절이 그냥 커피라면 소련 정권 시절은 TOP. 흔히 스탈린 시대를 기원으로 보지만 사실 적백내전 때부터 체제가 운영되었고 조직적이고 정교한 탄압은 스탈린 정권시기로 보면 된다.

여담으로 북한 수용소의 원조는 바로 굴라그다.

2. 수감자[1]

한마디로 스탈린 빼고 나머지 전부가 예비 수감자 신세. 스탈린시대에 "그 후 아무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즉결처형을 당했거나 이곳에 끌려온 거다.

  • 정치범 - 정말로 체제 비판자일수도 있고 높으신 분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분 내지는 그의 가족들로 보면 된다. 대숙청항목에서 보면 알듯이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은 수감자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2] 이런 저런 일로 외국에 갔다가 오는 경우도 간첩 혐의로 몰려서 가는 일이 빈번했고.[3] 심지어 대독전쟁에서 취득한 독일군의 장비나 훈장을 개인적인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가 들켜서 난데없이 반동분자가 되어 굴라그로 향한 예도 있다. 굴라그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2차 대전중 영국해군에 연락장교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여 전후 영국 해군 제독에게 기념품과 편지를 받은 소련 해군장교도 굴라그로 간 이야기가 나온다.[4]

  • 전쟁 포로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에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사람들은 일단 비겁내지는 간첩 혐의로 거의 전원 굴라그로 직행했다. 심지어 포로 수용소를 탈출해서 전선에 복귀한 사람도 간첩혐의로 25년 굴라그 수감을 언도받는다.[5][6] 포로가 되느니 그냥 죽자

  • 외국인들 - 전쟁후 독일과 일본군 포로들이 굴라그에 수용된다. 이중 소련체제에 협조적인 사람들은 50년대에 석방되지만 많은 경우 당사국이 소련과 외교관계를 수립 할때까지 억류된다. 독일의 소련점령지구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체포된 독일과 프랑스인들이나 냉전 시기 소련 정찰중 실종된 조종사들[7]이 여기에 수용되었다. 소련에서 스파이 혐의로 실종된 미국인들[8]이나 스페인 내전중 소련으로 건너간 스페인 공산당원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9]

    • 한국인 -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전후 상당히 많은 고려인들이 굴라그에 이송되었다. 김단야, 조명희 같은 재소련 반일 독립운동가들도 이런 식으로 숙청되었다.[10] 80년대 번역된 수용소 군도 완역판에서도 한국인들이 수용된 이야기가 버젓이 실릴 정도였다. 해방 이후 소련군정에 반대한 인사들중 상당수가 굴라그로 이송되었는데, 이들은 스탈린 사후 북한 이송과 소련 잔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소련에 잔류한 사람들의 수용소 기록이 90년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후 관동군에 복무하던 한국인 장병들 역시 굴라그로 이송되었는데, 이들은 식민지 출신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았고 대부분 40~50년대 본국으로 귀환하게 된다.[11] 남한에서 활동중인 삭풍회라는 단체가 바로 구 일본군 출신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전우회이다.

  • 사보타주 - 정말로 사보타주일 수도 있지만 상습 지각[12] , 근무중 졸기, 집단 농장 기물파손, 예산 낭비[13]등의 혐의가 붙으면 굴라그행이었다.

  • 일반 죄수 - 그야말로 살인, 강도, 강간등의 천하의 개쌍놈들이다. 문제는 이런 타입의 인간들은 수용소에서도 내부 조직을 만들어서 잘먹고 잘살고 간수들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지내고 있다. 위에 설명한 혐의로 들어온 일반인들은 이들의 밥, 그야말로 물건이나 목숨, 혹은 정조까지도 뺏기게 된다. 수용소 당국보다 가장 무서운 쪽이 바로 이런 죄수들이었다.[14]

  • 경찰의 할당량때문에 끌려온 사람 - 대숙청, 형벌 부대 참고[15]

3. 노동과 생활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백해 운하가 다 굴라그에서 나온 성과이며, TSR노선의 건설, 2차대전 중 산업이 대부분 여기에서 나온 성과였다...

노동 수용소에 수용된 죄수들에게서 뭐 뽑아낼 게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소비에트 러시아가 굴러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했다. 특히 스탈린 시절은 굴라그가 대규모로 확대되고 생산량도 폭증했던 시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업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책임졌으며, 단순노동에만 투입됐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엘리트 두뇌들도 상당수 굴라그에 투옥돼 무기 개발과 개량을 책임졌다. 개발이 성공했을 경우의 인센티브는 주로 형량 감경. 어찌 보면 가장 확실한 인센티브라고 할 수 있을지도. 스탈린 시절 소비에트 러시아는 문자 그대로 '수용소에서 공돌이가 갈려들어가는' 나라였다.[16]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따르면, 시베리아답게 영하 30도 정도는 따뜻한 날씨이며, 작업장의 난로는 수감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산품이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음식은 한끼 200그램 정도의 빵과 너무 오래 끓여서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국[17][18]이다. 강도 높은 처벌을 위해 '중영창'이라는 곳이 있는데 15일도 살아남기 힘들고 살아남더라도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 회복하기 힘들다고 한다. 수용소에 따라서는 외부로부터의 소포도 허용된 모양. 뇌물로 쓰인다.

과학자들이 주로 수용된 노동 수용소를 '샤라쉬카'라고 부르며, 유명한 과학자들도 상당수 저 곳에 투옥돼서 갈려들어갔었다. 러시아 우주개발의 아버지 격인 세르게이 코롤료프, 로켓엔진 설계자인 발렌틴 글루슈코, 항공기 설계자인 안드레이 투폴레프와[19] 페틀랴코프, 미야시시체프, 폴리카르포프 등.

굴라그에서의 생활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용소 군도'에서 잘 표현돼 있다. 솔제니친이 훌륭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가 그러한 곳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 솔제니친 자신이 그러한 수용소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이다.[20]
또한 예수회 신부 터 취제크의 자서전인 '시아에서 그분과 함께(With God In Russia)'에서도 굴라그의 생활과 출소 후의 소련 생활에 대해서 잘 묘사되어 있다.[21]

소련의 굴라그는 정말 최악의 장소라고 생각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고 굳이 비유하자면 소말리아를 능가하는 모 국에 설치된 지상 최악의 생지옥이나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츠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다.[22][23] 논픽션 굴락의 저자 애플바움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구 소련의 그곳과 가장 근접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에 따르면 간수가 똥을 먹인다던가 하는 일도 있다.

현재의 북한 수용소는 굴라그를 능가했다. 최소한 굴라그는 처형만 면한다면 버티기는 너무나도 힘들어도 일단은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강제낙태 그딴 건 없었고 임신했다고 살해 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이는 소련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지만 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윗동네는 김씨 일가 빼고 나라 전체가 굴라그잖아.

당시(최소한 2차대전 이후) 소련에게는 노동자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경쟁시키는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관련 포상중에 기묘한 것이 있었다. 우수한 실적을 올린 노동자는 여자 죄수 수용소에 위로휴가를 갈 수 있었다. 임신을 하면 3년을 감형시키는 소련 법률 때문에 여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검열삭제를 원했고 강간도 횡행했다고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간수에게 뇌물을 주면 원하는 여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다.

4. 석방?

스탈린 시대에는 최고 수감형인 25년형을 만렙 마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그런거 없다. 대신 미개척지이거나 소외지인 중앙아시아에 평생 유형생활을 한다. 이곳은 비록 강제노동이나 수감, 고문 이런건 없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감시받는[24] 시민으로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25]

그나마 유형생활 도중에 체포되거나 집에 다시 갔다가 체포돼서 20년형을 받는 일도 많아졌는데...스탈린 사후에는 이런 악습은 사라졌고 유형을 받은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집으로 돌려보내졌다.[26]

5. 변화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신나게 까던 시절쯤에는 굴라그 강제노동의 나름대로 비중도 줄었고 석방 뒤에 재투옥 제도가 없어졌으며 유형 생활자도 석방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브레즈네프 연간에 다시 강화되었지만 이때는 서방에서도 어느 정도 굴라그의 실태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굴라그에 주요 정치범이 수용되었다는 소식이 서방에 알려지면 서방에서 지속적인 석방요구와 생존 사실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27]

소련의 붕괴 후 러시아에서는 굴라그의 시설을 이용하여 연쇄살인범과 같은 흉악범을 가두는 교도소로 사용 중에 있는데 NGC의 최악의 러시아 교도소라는 프로그램에서 교도소 내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6. 서방의 반응

2차 대전 이전에는 소련의 굴라그 체제는 그야말로 도시전설이었다. 자유 폴란드군이 결성되면서 폴란드 전쟁 포로 출신의 병사들이 인도나 팔레스타인을 통해서 귀환하고 서유럽에 정착하면서 그들이 수용된 굴라그의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의 경우는 그것을 운영한 체제가 완전히 사라졌고 심판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진상이 공개된 것이지만 소련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었고, 2차 대전 당시 까지만 해도 서방과의 동맹체제 때문에 오히려 굴라그에 대한 이야기를 서방에서는 모른체한 면이 있다. 심지어 카틴학살조차도 여러 증거로 봐서 소련의 소행임이 분명함에도 미국측에서 동맹을 의식해 그 사실을 독일의 소행으로 발표했다.

1940년대 말 들어 냉전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고 동유럽에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거 들어서자 이에 발 맞쳐 굴라그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기시작했다. 하지만 소련측에서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리가 없었기 때문에 실체가 드러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소련이 해빙기를 맞게되면서 글라그의 실상이 상당부분 드러났고 흐루쇼프가 쫓겨나고 보수화 된 브레즈네프 체제하에서부터는 서방도 고위 반체제 인사나 유명한 운동권 대학생의 굴라그 수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국가적인 항의를 하게 되었다. 80년대 유형생활을 한 핵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가 대표적인 케이스.

굴라그에 대한 고발을 넘어서 체계적인 연구는 솔제니친의 르포 용소 군도가 최초였고[28] 소련 붕괴후 여러 자료들을 모아 집필한 애플바움의 역작 굴락이 출간되었는데, 번역본은 불쏘시개다.[29]

6.1. 현실의 굴라그

6.2. 게임에서의 굴라그

  • 모던워페어2에서의 미션 "The Gulag"
  • 블랙 옵스에서 등장한 보르쿠타 수용소
  • 트로피코4의 Labor Camp : 기존의 들어가서 5년만 썩고 나오는 교도소와 달리 이쪽은 진짜 굴라그다. 죄수들은 프레지덴테가 석방해주고 싶으실 때까지 수용되어 그 안에서만 먹고 자며 강제노동으로 농사를 짓는다. 이 건물이 생기고 나서 교도소는 안 짓고 이것만 짓는데, 수용인원도 훨씬 많고 영원히 가둬둘 수 있고 식량도 얻기 때문. 나이 20에 들어와서 90에 석방될 수도 있다. 뭐 최소한 춥진 않을 것 같다(...)
  • 팀 포트리스 2 :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그냥 설정상으로만 등장한다. 코믹스에서 헤비가 굴라그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했었다고 언급되었다.

6.3. 소설 및 만화 매체에서의 굴라그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DC 코믹스킹덤 컴 - 슈퍼맨이 빌런들을 가둬놓고 교화시키기 위해 만든 시설
  • 동명의 영화 - 1985년작 영화로 KBS 방영제목은 수용소 군도 굴락, 미국인 미식축구 선수가 여자를 잘못 만나서 소련의 계략으로 수용소에 수감돼서 겪는 일, 비중있는 조연으로 맬컴 맥다월이 영국인 스파이로 나온다.
  • 싸이베리아 게임방 - 원제는 LOST IN SIBERIA, 영국인 고고학자가 이란에서 체포돼서[30] 고통받는 이야기. 한국에서는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잔인한 장면은 없어도 구질구질하고 비참한 장면의 연속이라 보는 내내 고문을 받는 듯한 작품, 실제 수용소에서 10년을 보낸 감독의 경험이 녹아있다. 결말은 주인공이 이란의 의 도움으로 석방돼서 돌아간다고 하는데 잘 보면 이 부분은 주인공이 죽기전에 꾼 환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31] 깐느 출품작
  • Comming out of the ice - 1920년대 포드사 공장 건설 때문에 소련으로 이주한 미국공산당원을 부모로 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사람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소련에서 낙하산 시범이나 노력영웅으로 성공했지만 굴라그에 수용된다. 결국 1970년대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안정효의 책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반공특선으로 TV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 웨이백 -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피터 위어 감독의 최신작. 한국에도 소개된바 있는 폴란드 전쟁포로가 굴라그를 탈출해서 티벳과 인도를 거쳐 귀환하는 이야기이다.[32]
  • 마지막 한 걸음까지 - 알래스카를 마주 본 굴라그에 수감된 독일 장교가 탈출해서 이란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역시 실제 경험담을 소재로 했다.
  • 시베리아 14수용소 - 나찌 일사 시리즈 4편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백야의 연인 - 원제 Ice Runner. CIA 요원인 주인공은 높으신 분들의 사정상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도 석방이 되지 않고 시베리아로 이송중 같이 타고 있다 사고로 죽게 된 범죄자와 신분을 바꾸게 된다. 이후 그 범죄자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둘이 사랑하게 되는데...공산주의가 붕괴되고 그의 정체가 탄로나서 석방될 기회가 생기지만 공산주의에 투철한 소장은 주인공을 알래스카 근방의 북극권 수용소로 이송하고 그는 말 그대로 설원을 달려서 에스키모 마을로 탈출에 성공한다. KBS에서 방영된바 있다.
  • 북극권의 탈출 - 원제 Born American. 핀란드 영화로 휴가를 맞아 핀란드에 사냥을 떠난 미국인 청년들이 술김에 국경을 넘어 난리를 치다가 소련군에 체포돼서 시베리아 굴라그로 이송된다.[33] 이후 하나는 살해 당하고 하나는 미처버리고 나머지 주인공은 굴라그의 지하 지도자인 제독[34]을 통해 러시아 여인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게 된다.[35] 핀란드 영화중에 당시로서는 제작비가 많이 들었던 작품이고[36] 척 노리스가 주연을 맡을 뻔했으나 아들인 마이크 노리스가 주연했다. 굴라그 수용소장 목이 꺾일 기세

6.4. 영화에서의 굴라그



  • 이 백 - 굴라드에 수용된 동유럽 출신 죄수들의 생활과 탈출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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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부분은 사실 따로 항목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많지만 간단히 표기한다.
  • [2] NKVD 같은 기관의 고위급 간부가 아닌 중하위 간부나 말단 대원의 경우는 얼마후 석방되어 수용소 간수나 경비병으로 살 수 있었다. 물론 수용소 간수나 경비병도 식량 부족 같은 걸로 고생한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에서도 초반부에 간수실을 청소하는 주인공 옆에서 간수들이 식량배급문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 [3]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에 의하면 소련 선박이 기상 악화로 스웨덴에 표착했고 어느 정도 억류생활 한 후에 승조원 전원이 굴라그로 직행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 [4] 작중에서는 나오는 부이놉스키 중령. 매우 꼿꼿한 인물로 나오는데, 실존인물이고 놀랍게도 굴라그에서 생존해서 스탈린 사후 석방되었다고 한다.
  • [5]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주인공이 바로 이 혐의였다. 다만 형량은 10년이었고 작중에선 약 8년을 보내고 2년정도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작중언급으론 형량이 개개인마다 다른게 아니라 시기별로 일괄적으로 10년을 선고하거나 25년을 선고했다고 나온다. 즉, 주인공은 일괄적으로 10년 때릴때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 [6] 물론 포로 기간 중에 자유 러시아 군단이나 이런데 자원했다면 굴라그고 뭐고 없다.
  • [7] 이 경우는 당연히 의혹 수준이고 아직도 작전중 실종으로 기록된다.
  • [8] 이들중 상당수는 경제 공황 전후에 미국에서 소련으로 이민간 미국계 공산당원과 그 가족들이다.
  • [9]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인도 국민군의 영웅 찬드라 보스 역시 시베리아 사망설이 심도있게 제기되고 있다.
  • [10] 다만 이들의 운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MBC에서 방영된 고려인 드라마에서 조명희의 경우는 굴라그 폭동에 연루돼서 사망한 것으로 그렸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재판후 처형이었다.
  • [11]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활약한 황학소의 경우도 이런 식으로 귀환한 케이스, 처음에는 북한으로 보내졌지만 북한 당국도 고향이 이남이고 본인이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면 그냥 38선 월경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
  • [12] 당시 소련은 지각시 20분당 징역 1년. 아래 할당량 항목에 해당하는 얘기인데, 지역 경찰등이 할당량을 못채운다면 근처 출근버스를 덮친다음 적당한 누명을 씌우고 또 버스를 덮치고 연행한 시간들도 지각죄로 징역을 때렸다.
  • [13] 횡령이나 이런게 아니라 기술개발 실패 등의 문제다. 안드레이 투폴레프가 바로 이 혐의로 굴라그에 갔다. 그는 1937년에 투옥되어 1944년에 석방되었다.
  • [14] 애플바움의 굴락에 의하면 50년대 두명의 미국 조종사가 굴라그에 이송된 정황이 있었는데. 한명은 모스크바로 이송되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런 일반 죄수들에게 맞아죽었다고 한다.
  • [15] 참고로 대한민국 에서도 80년대 시절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삼청교육대 참조.
  • [16] 솔제니친도 학창 시절에 수학을 대단히 잘했다는 전력 때문에 잠시 이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얼마 뒤 벽돌을 날랐다.
  • [17] 보통 생선이나 오래된 야채가 들어가는데 때때로 식량이 부족할때는 사료용 귀리, 심지어 들풀로도 국을 끓인다.
  • [18] 다른 작품에서는 '무만 넣고 끓인 맹탕같은 수프' 가 나오기도 했다. 그냥 아무거나 넣고 끓이는건가보다.
  • [19] 폭격기로 유명한 투폴레프 설계국의 수석설계자.
  • [20] 국가 반역죄인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다 스탈린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노땅, 꼰대류로 비하한 것이 발견되어서이다. 굴라그의 벽돌노동자부터 지식 수용소 인원, 유형지 생활까지 죽는거 제외하고는 상당한 코스를 밟았다. 솔제니친은 1970년 벨 문학상을 받았으나 소련 정부가 그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봐 두려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1974년 수용소 군도로 추방되었다. 이후 1994년까지 소련에 돌아오지 못했으며 2008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21] 이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가톨릭 신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있다가 바티칸 스파이로 지목되어 붙잡혀 1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여러 굴라그를 돌아다니며 15년간 강제노동을 했고, 풀려난 뒤에도 감시와 거주 제한이 딸린 제한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다 1963년 미국에 침입했다 잡힌 소련 첩보원 두 명과의 교환조건으로 소련에 억류된 두 명의 미국인을 풀어주는 일이 있었는데, 월터 취제크는 이 기회를 통해 23년만에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84년에 별세.
  • [22] 아우슈비츠는 당연하고 북한 수용소의 대부분은 석방이 불가능하다. 전거리나 요덕 수용소의 혁명화구역을 제외한 것이다. 물론 이 곳도 끔찍한 건 마찬가지다.
  • [23] 애초의 북한 수용소의 원조는 소련 굴라그다.
  • [24] 박헌영의 처는 딸을 모스크바에 두고서도 유형생활 때문에 가끔 방문만 허가 받았다.
  • [25] 솔제니친은 타슈켄트에서 교사일을 하는 유형 생활을 했다. 동물원에 주말에 놀러가거나 아플때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정도의 자유를 누리긴 했다. 이때의 경험이 바로 암병동이라는 소설에 나온다. 한국 군대에서는 이란 형태로 경험할 수 있다.
  • [26] 이런 케이스중에 기구한 것은 북한 정권에 반대한 혐의로 투옥된 반공인사들이다. 이들은 소련 군정에 의해서 체포돼서 굴라그에 수감되었는데 스탈린 사후 북한으로 송환되는 일을 겪는다. 물론 상당수는 중앙아시아 잔류를 택하지만...
  • [27] 스탈린 시절에는 그런거 없이 서방에서도 "설마 그런게 있겠냐"는 도시전설 수준......이었으나 굴라그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자유 폴란드군 장교들을 통해서 서방도 공식적으로 굴라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 [28] 참고로 1970년대 한국에서는 지극히 반공적인 부분인 1부만 70년대 발췌번역되었고 소련 체제를 설명한 완역본은 80년대 후반에야 나올수 있었다. 근데 2000년대 번역판도 1부 발췌역이다
  • [29] 가히 최악의 번역이라 할만하다. 애초에 번역 작업을 제대로된 번역가가 맡아서 하지 않고 GAGA통번역센터라는 번역 업체에서 했다. 각 챕터마다 고유명사의 한글표기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문과 오역이 난무한다. 읽다보면 탄식이 절로 나오는 수준. 심지어 책 첫 페이지의 '감사의 말'조차 번역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 [30] 진짜 스파이와 동명이인이었는데 KGB가 잘못을 알고도 그냥 시베리아로 보냈다.
  • [31] 실제로 환영회 장면에서 수용소 친구들이 환상속에서 갑툭튀하고 남아있던 친구들이 굴라그 이송중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고 석방되어도 아직도 마음만은 굴라그에 살고 있다는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간다.
  • [32] 다만 이 수기 부분은 이전부터 가짜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소련의 기록에 의하면 주인공은 석방돼서 자유폴란드군에 인계되었다고 한다. 2007년 또 다른 폴란드 조종사 출신 장교가 그 경험은 자신의 경험이었고 주인공은 자신의 경험을 도용했다고 주장한바 있다. 인도 주둔 영국군 기록에 의하면 실지로 굴라그를 탈출해서 인도로 망명한 사람들은 존재하긴 한다고 한다.
  • [33] 미국 대사관에서 구하려 했지만 소련 당국이 제공한 성노예를 받고 입을 씻는다.
  • [34] 놀랍게도 흑인이며 미국의 높으신 분들의 치부를 알고 있고 책으로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고위 스파이라는 암시가 있다.
  • [35] 제독은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가서 행방을 감추고 은거했다고 자막에 나온다.
  • [36] 막상 소련에 대한 비판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상영금지를 먹었다. 하지만 감독인 니 할린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