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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다시 가기

last modified: 2015-04-15 05:30:24 Contributors

이 문서는 재입대, 한군두로도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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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의 인물어느 전쟁 참전병(...)미 육군 근무복이랑 생긴 게 다름을 알아채고 사기꾼이라 생각해 응하지 않았을지도

Contents

1. 개요
2. 일어나는 이유
2.1. 간부사관
2.2. 간부에서 간부로
2.3. 공중보건의의 경우
2.4. 군법무관의 경우
2.5. 군종장교의 경우
3. 실제 사례
4. 기타
5. 같이 보기(?)


1. 개요

말 그대로 군대에 다시 가는 것. 재입대를 의미한다.

한만두에서 파생된 말로는 한군두라고도 한다. 한인생 군대두번 명이 대를 번 가기 의 머릿글자.

말년 병장+갓 예비역들이 꾸는 최고의 악몽이자 민방위가 끝난 사람들도 이런 꿈을 꾸게 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그것. 그런데 정말 드문 일이지만, 정보화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과거에는 행정착오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정말 이런 사태에 처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1]

2. 일어나는 이유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행정의 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이런 경우가 많았으며, 돈 많은 집에서 자기네 집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기 위해 뇌물을 먹여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군두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아예 돈 받고 대신 군대 가주는 걸로 먹고 산 사람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 판례에 보면 형제끼리 대신 군대 가주다가 걸려서 재판받은 레알 훈훈한 형제애를 보여준 경우도 있다. 다행히 대신 군대에 가준 형은 무죄.[2]

한국전쟁 참전 용사 중 당시 나라 상황이 당나라 뺨치는 개판이라 군필+참전용사라는 입증이 안돼서 휴전+전역 후 또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안습.

21세기 진입을 딱 1년 남겨둔 1999년에는, Y2K 문제로 인해 이미 군대를 전역한 20대의 남성들을 모두 미필자로 분류해버려서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미필자가 쏟아지는 상황으로 인한 한군두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도 나왔다. 다행히 2000년이 되어도 이들의 한군두 사태는 터지지 않았다. 아니 해당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당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2008년 이후로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자의로 군대를 다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심지어는 장교로 전역해서 부사관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군 부사관이 부사관으로 재입대하는 일은 자주 있지만, 장기진급 문제 등으로 인해 여군 장교들도 전역 후 하사나 중사로 재입대 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 사실 직업군인은 안정적이고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돈이 잘 쌓이는 데다가, 이런저런 혜택도 많아서 생각 외로 괜찮은 직업이다.

간혹 공익 소집해제자, 조기전역자나 상병 만기전역자(…)가 병장 만기전역 타이틀을 얻고자 으로의 재입대를 희망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는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래서 아예 부사관이나 학사장교로 재입대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참고로 전쟁이 나면 전역한 예비군들 전부 다 강제로 한군두행이다.

2.1. 간부사관

병 전역자가 간부로 지원해서 군대를 2번 이상 갈 수 있긴 하다. 병 경력도 경력으로 치기 때문에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근데 이 경우 예비군도 다시 받아야 한다(법원판례). 게다가 동원훈련, 즉 2박 3일(28시간) 입영[3]하는 훈련이 병은 4년인 반면 간부는 6년이다.[4]

2.2. 간부에서 간부로

대위 전역 후 부사관으로 재입대할 경우 바로 중사부터 시작하며, 부사관 전역 후 재입대자들의 경우 다음 해에 중사로 바로 진급 가능하다. 다만 요새는 장기 부사관은 지원자가 많아 경쟁이 심하다. 장기 부사관의 숫자는 연대별로 그 수가 정해지는데, 심한 곳은 20:1까지 가는 곳도 있다.

부사관을 지원했다가 장교로 다시 입대한 후 장기지원에 실패하여 다시 한 번 더 부사관을 지원, 즉 3번이나 군대 다시 가기를 선택한 용자가 신문에 난 적이 있다. 한군두가 아니라 한군세가 되겠다. 중사 진급에 실패하여 하사만 3번한 부사관도 있다.

그런데 한군두를 지원하게 될 경우 잘 생각해야 한다. 예비역 병이 장교부사관을 지원하면, 또는 예비역 부사관이 장교를 지원하면 군적이 2개로 증가하지만 반대로 예비역 장교가 부사관을 지원하면 장교로서의 군적은 말소된다. 같은 한군두이지만 높은 쪽 신분을 먼저 복무할 경우 먼저 복무한 쪽 군적이 삭제된다. 이유는 이게 남아있으면 해당 인원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령 예비역 중위부사관이 되었을 때 행정보급관이 이 인원을 통제하려고 할 때 장교로서의 군적을 내세워서 명령을 거부하면 골치 아파지게 된다.만약 그런다면, 재미있겠다. 아니면 장교시절 입었던 군복입고 와서, 개기면 되겠네...그런데 영창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사관, 장교의 경우로 병으로 다시 가라고 하면 그걸 자의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병으로의 재입대는 불가능하다. 이는 현역병 뿐만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등 대체복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도 마찬가지. 군필자가 병무청 사이트에서 현역병 입영을 신청하면 '현역 입영 대상이 아닙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차단되어 버린다.

부사관 장기지원이나 소령 이상 진급에 성공해서 계급 정년까지 버티고 전역하면 자신이 원할 경우 예비군에 편성되기도 한다. 이 경우 부사관 장기지원자는 행정보급관, 소령전역자는 부대대장의 보직을 받는다. 물론 원치 않을 경우 퇴역 처리된다. 다만 예비군 훈련을 원할 경우 예비역 진급심사를 할 수 있다.

사관학교를 갔다가 퇴교하면 병역의무를 다시 이행해야 한다. 단, 사관학교 입교시 예비생도 과정이 기초군사훈련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기초군사훈련은 면제되므로 보충대에서 바로 자대로 보내진다. 입학 전인 예비생도과정에서 퇴교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퇴교 시점이 3학년 이상이었다면 부사관으로 의무복무를 채울 수 있다.

2.3. 공중보건의의 경우

공중보건의사의 경우 근무 도중 결격사유[5]가 발생하면 이전까지의 복무기간이 무효가 되고 병으로 재입대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공중보건의사의 복무 기간이 3년[6]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드문 일이긴 하나 실제로 2년 정도 복무한 공중보건의사현역으로 재입대 당한 경우가 있다. 참고로 공중보건의사는 봉급만 소위~대위급으로 받고(전문의 등에 따라 달라짐) 서류상으로는 보충역으로 소집해제시 예비역 육군 보병이병(소총수)이다.

2.4. 군법무관의 경우

장기군법무관의 경우도 '한군두'의 사례가 많다. 과거 장기 군법무관 시험은 사법시험과 똑같은 과목과 동일한 시험 방식으로 군법무관을 뽑았으며, 10년 장기근무를 마치면 변호사 자격을 주었다. 사실상 10년 군검찰에서 근무 후 변호사 자격이 생기는 셈이므로 사법시험과 같은 효과가 있는 반면, 합격선은 사법시험 보다 낮은 수준이라 지원자가 많았다. 단, 사법 시험은 법원/검찰 근무 여부 상관없이 연수원 졸업 후 바로 변호사 자격 획득이 가능하므로 같은 값이면 당연히 사법 시험이 우위.

군법무관 시험은 군복무를 마친 사람도 응시가 가능했는데, S대 법대가 아닌 경우 대부분 군필 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므로 지원자의 80% 이상이 군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격할 경우 9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바로 중위로 임관하여 군법무관 시보 생활을 한 후 대위로 정식 군법무관이 된다. 군필자의 경우 9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제외하면 군법무관 지위의 특성상 사실상 군대 같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지원하며, 군생활에 예비군 까지 이미 마스터한 경우가 많아 9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시시하게 받아 들인다.

단, 군법무관 특성상 기본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기초군사훈련을 수행하지 못할 신체상태가 되면 합격이 취소된다. 현역으로 전역한 합격자가 고시 합격의 기쁨으로 술김에 2층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는데, 이로 인해 기초군사훈련 입소 후 귀가 조치를 받아 합격이 취소된 경우가 있다.이런 경우는 입대 전에도 몸사리자

지금은 장기군법무관 시험이 폐지되었고 로스쿨 졸업 및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장기군법무관을 모집하는데, 예전과 달리 이미 변호사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군법무관을 모집함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자격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되어서인지 일정한 경쟁률은 유지하고 있으며, 역시 군필자도 모집대상에 들어간다.

2.5. 군종장교의 경우

한국 천주교에서는 군종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군두' 를 반드시 하도록 아예 규칙으로 못 박아놓았다. 이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대한민국남자라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신학생들이 특별한 제도로 입대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는 발언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끝나고 매주 성당에서 글을 싣는 의정부교구의 주보에서 김 추기경의 일대기와 생전에 하신 여러가지 말씀들이 실렸는데, 위의 내용도 같이 언급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신학생 때 병으로 군필 → 군종신부로 복무해야 한다. 만약 4급·5급 같은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경우라면 한군두는 회피가 가능하나 대신 군 복무기간만큼 천주교 봉사시설에서 숙박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대부분 꽃동네 같은 곳이라 정상적인 사회복무요원보다 훨씬 빡세다는 게 정평. 물론 5급 군면제자, 즉 제2국민역도 얄짤없다. 그래서 군 경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천주교의 군종신부는 대위로 임관하고 타 종교는 중위로 임관한다.

3. 실제 사례


한군두와 한만두의 역사적 만남[7]
인생을 제물로 바쳐서 우리의 안전을 지키시는분들도 보인다
  • 싸이(박재상) :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를 마쳤으나 대체복무 중 콘서트를 여는 등 제대로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재입대했다. 억울하게 2번 간 게 아니라 갈 만해서 2번 간 케이스. 훈련소는 확실히 2차례 갔다. 병역 이행 기간을 다 합치면 무려 55개월. 이로 인해 싸이는 한군두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전에 받은 비군 훈련도 무효. 즉, 2010년에 예비군 1년차부터 다시 시작했다. 괜히 꾀 부리지 말자. 이렇게 된다. 다만 싸이는 군말없이 판결에 따라 재입대를 하였기 때문에, 산업기능요원시절 저지른 복무부실문제 대한 죄값을 확실히 받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에서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덕분에 연예인 생활 전반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

    다만 방송복귀하고 군대 2번 간 걸 자주 써먹었는데 자신이 꾀 부리다가 철퇴를 맞은 것이라 군대 2번 갔다고 방송에서 드립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오해가 있는 게 잘 보면 싸이 본인은 군대 얘기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주변에서 2번 갔네, 중사 전역이네 드립을 쳤다. 라디오 스타에서도 윤종신의 중사 전역 드립에 본인이 "훈련소만 2번일 뿐" 이라면서 정정했다. 그리고 항상 끝인사 때 이 방송을 마지막으로 방송에서 군대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다음 방송에서 또 불려나오는 화수분 레파토리 지은 죄가 있으니 싫은 소리 듣는 게 어쩔 수 없겠지만, 군대 얘기 팔아 음반 판다느니 하는 얘기 들으면 억울하긴 할 듯.

  • 학사장교 학력위조 사건 : 해외대학 졸업예정인 것처럼 학력을 꾸며 학사장교로 3년간 복무했던 최모씨(2012년 당시 30세)가 뒤늦게 위조혐의에 걸려들어 장교 복무가 무효화되고 현역병으로 군대에 다시 끌려가게 된 사건. 최씨는 고교 졸업 후 유학 등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하다 외국 신학대학 재학증명서와 졸업예정증명서 등을 제출하면서 학사사관후보생 선발시험에 지원하여 합격했고, 학사장교로 3년 복무 후 2006년 제대했다. 그러나 2007년 국방부는 최씨가 현역입대를 피하려고 학력을 위조한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현역병입영통지에 따르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에 따라 장교임용을 무효로 하는 인사명령을 내린 뒤 현역병입영통지서를 발송했다. 이후 최모씨는 국방부의 처벌이 부당하다며 항소심을 제기했으나 기각당함으로서 3년간 학사장교 복무는 완전 리셋되고 현역병으로 다시 끌려갔다(…).쌤통이다

  • 일제강점기 때 징병되어 끌려갔다가 광복 이후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다시 군대를 간 사람들. 대표적으로 박금석이 있다. 박금석은 군 소속이 4번(일본군 → 중공군 → 인민군 → 국군)이나 바뀌면서 14년 복무를 했다. 기사. 이쪽은 시대적 소용돌이가 만든 경우. 제2차 세계대전국공내전, 6.25가 낳은 진정한 시대의 아픔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사학자들도 신빙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 가톨릭 군종 신부. 한국 가톨릭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을 일률적으로 군대에 보낸다. 그리고 전역한 후 다시 군종장교로 임관하여 군 복무. 나중에 군종장교로 갈 사람을 골라서 병 복무는 빼준다던가 그런 거 없다. 자세한 것은 '군종장교' 항목을 참조.

  • 김도인 : 육군 대위로 전역한 뒤 육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중사로 임관했다. 장기복무 되기가 빡세다보니 실제로 이런 경우가 드문 게 아니다.

  • 김재경 :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공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다. 여군이다.[8]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장교로 제대했다가 시베리아 유형을 간 다음 병으로 재입대 당했다(…).

  • 손신애 :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육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다. 여군이다.

  • 서경석: 1990년도 육군사관학교 50기 사관생도 선발에서 수석합격하여 입교하였다가 1달 만에 자퇴[9]하고 2001년 만 29세의 늦은 나이에 병으로 재입대하여 2003년 만기전역했다.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군대 3연타??

  • 교황 요한 23세 : 신학생 시절 징집되어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치고 병장 전역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다시 징집, 병장으로 의무대에서 복무하다가 이탈리아군이 복무 중인 모든 사제를 군종장교로 임명함에 따라 중위로 진급하고 전쟁이 끝나며 다시 전역했다.

  • 이무철 : 해병대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가서 외인부대에 입대한 후 얼마 있다가 제대한 뒤, 후에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 이지현 : 특전사 복무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여군이다.

  • 이재진 : 젝스키스 전 멤버. 이쪽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항목 참조.

  • 전미화 :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공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다. 여군이다.[10]

  • 정영수 : 육군 대위로 만기전역한 뒤 부사관을 지원해서 중사로 임관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대위로 전역한 인원이 부사관을 지원하면 중사로 임관시키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 조민기 : 영화배우. 1986년 9월에 입대했다가 90년 9월에 부친이 이민 결정을 내려 일병 2호봉에'국외 이주 전역이라는 특별 전역을 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아버지를 설득하여 이민 계획을 취소시켰다. 그리고 전역한지 2년만에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로 재입대했다. 과거 일병 시절 각 잡고 긴장하고 있던 이등병 후임이 병장이 되어 화들짝 놀라 조민기를 맞이했다고. 그런데 군번은 첫 입대 시 받았던 군번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조민기를 모르는 상병 고참들은 자기보다 군번이 높은 사람이 후임이 된 것을 고깝게 생각했는지 해코지를 많이 했다고 한다.

  • 테드 윌리엄스: 1943~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다음 1952~1953년 한국전쟁에 또 참전했다. 도합 5시즌을 참전으로 날려먹고도 MLB의 레전드가 되었다.

  • 피우진 : 이쪽도 여군. 신체적 장애로 인해 강제로 퇴역을 당했다가 재입대를 한 특이한 경우. 유방암 절제 수술 후 군 복무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자신도 계속 복무를 원했으나 2006년 강제 퇴역되었다. 당시 계급은 중령.[11]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퇴역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에서 승소하여 2년만인 2008년에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서류상으로만 복귀 → 만기전역이므로 한군두라고 보긴 힘들다. 2008년에 복귀하고 몇 개월 있다가 그냥 만기전역했다. 즉, 피우진이 승소한 이유는 어차피 그냥 냅둬도 만기전역할 사람을 굳이 일부러 현역부적합심의에 회부해야 되냐는 논지에서였다. 서류상으로만 군대 다시 가기이다. 복귀 후 담당한 임무랄 게 없었기 때문.[12]

  • 휴 다우딩 영국 본토 방공전 당시 영국 공군 전투기 사령부 사령관. 영국 본토 방공전 종료 이후인 1940년 11월 제대했으나 얼마 후 다시 소집되어 항공기 생산 관련 업무를 보다가 1942년 제대했다.

  • 2012년 9월 20일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국외영주권자 김수환 훈련병미 해병대에서 7년간 복무한 뒤 다시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 기사참고 2010년 군번 ROTC 4200명 중 2명이 예비역 병장출신이다. ROTC 사회에선 매우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병사 호봉 다 쳐주고 가점도 상당하며 일선 소대에서 끗발도 세울 수 있다(?).

  • 2번도 많은데 3번씩이나 갔다 온 사람이 등장했다! 이 경우는 장기복무 선발에 탈락한 부사관이 많다.

  • 3년 군복무 했는데 국방부 착오로 또 입대하라는 일도 있다.

  • 군입대 2번 한 사람이 국가로부터 위자료 받게 된 일도 있다.

  • 군대 2번은 아니지만 26년간의 군복무가 무효가 되어버린 일도 있다. 결국 이 사람은 문제가 해결돼서 군복무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 부사관 복무 중 결격 사유가 드러나 임용이 취소되었는데 이를 불명예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가 6년 뒤 사회복무요원으로 재복무하게 된 사례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군대를 다시 간 건 아니니 한군두는 아니지만. 그나마 이건 불행 중 다행이다.

  • 시망인 사례가 있는데, 학사장교 3년 복무를 마친 사람의 수능 성적이 허위였음이 밝혀지면서 '수능 무효 → 대입 무효 → 학위 무효 → 학사장교 임관 무효 → 군 미필 → 그러니까 다시 현역으로 복무하라'는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20대가 싸그리 무효 여기에 부정으로 임관했으니 이때까지 받은 봉급의 일정부분 반납이라는 정말로 안습한 추가타까지…다행히 이 사람은 1년 후 항소심에서 이겨서 예비역 이등병으로 처분이 조정되었기 때문에 한군두는 면했다.
    2010년에는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는 외국 학위를 이용해 학사장교로 임관했다가 군적이 통째로 말소, 병으로 재입대하라는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위의 사례처럼 군필은 인정받아 한군두는 면했다.
    병무청이 그렇게 잔인한 곳은 아니다. 그래도 군필을 인정받는 거지 계급과 경력까지 인정받는 것은 아니어서, 이들 가운데 제일 고참에 해당되는 학사 42기의 2명은 한군두는 면한 대신 병적이 말소되고 똑같이 예비역 이등병으로 조정되었으며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었다.

  • 대한민국 국군에서 군복무하여 전역한 뒤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군에 자진 입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 이걸 예능으로 만든 진짜 사나이가 있다

  • 도민준

  • 커티스 르메이: 오하이오 주립대에 ROTC로 입학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데 미 육군이 조종사를 선발한다는 말을 듣자 선발 과정에서 우선 순위가 사관학교 다음으로 높은 주방위군 소위로 군적을 바꿨고, 이듬해에 육군항공대 소위로 또 임관하여 조종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과 석기시대에 중독되기 시작한 건 좀 이후의 일이다.


  • 존 켈리(John F. Kelly, 1950-): 미 해병대의 4성장군으로 1970년에 병으로 입대해서 1972년에 전역했다. 그 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1976년에 학군사관으로 다시 소위로 재입대하여 4성장군까지 진급한 사병 출신 장성이다. 2014년 기준으로 남부사령관이다.

  • 100% 지원병으로 구성된 해군, 해병대, 공군에 입대했다가 가입소기간 중 신체 이상이나 자의로 귀가조치 된 후 육군이나 타군으로 재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전에 입대 했다 나온 군의 가입소 기간은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싱가포르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영주권을 유지하고 싶으면 무조건 한군두를 해야 한다. 기사 이 때문에 싱가포르 사회에서 귀중한 가치인 싱가포르 영주권이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 싱가포르 교민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 일단 싱가포르는 예비군부터 1년에 4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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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50년대 병역의무자 연령대의 성인 남자나 북파공작원들. 특히 후자의 경우 임무특성상 기록을 남기지 않아 다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최강의 후임
  • [2] 대법원 1974. 7. 23, 74도1399.
  • [3] 동원미지정자라도 마찬가지. 단, 학생은 제외.
  • [4] 그러나 민방위는 사실상 면제된다. 계급 정년까지 예비군에 편성되므로(훈련은 6년 동안만 받지만) 계급 정년이 가장 낮은 하사라도 40세까지, 민방위도 40세까지므로(전시에는 45세로 연장) 민방위 훈련은 없다. 참고로 민방위 훈련도 1~4년차는 1년 1회 4시간, 5년차~40세까지는 1년 1회 1시간이다(출석만 부르고 끝남).
  • [5] 근무상의 위법이나 면허 정지, 취소 사유 등
  • [6] 그나마 훈련소에 있는 기간은 복무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3년 1개월.
  • [7] 참고로 우측에 있는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찬사를 받는 래리 킹.
  • [8] 2004년 기사로 2014년 현재 시점에선 해당 인원에 대한 근황이나 자세한 정보가 없다.
  • [9]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내막은 서경석 항목 참조.
  • [10] 여담이지만 여군 장교가 부사관으로 재입대하는 사례는 거의 없거나 매우 희귀하다.
  • [11] 그러나 임관년도(1979년 임관)가 임관년도인지라 그 당시에 피우진 본인이 중령임에도 불구하고 갓 진급한 준장(1982년 임관)이 피우진보다 후임이였다.
  • [12] 2008년 복귀 후 피우진에게 배정된 보직이 연구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