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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그룹

last modified: 2015-03-24 12:22:33 Contributors


▲ 서울 용산의 옛 국제빌딩 (현 LS용산타워)

Contents

1. 개관
2. 참조

1. 개관

대한민국에 존재했 재벌 중 하나.[1]

1949년 정미소를 경영하던 양태진 사장과 아들 양정모 상무가 부산에 설립한 국제고무라는 회사에서 왕자표 고무신 제조 사업을 모태로 성장시킨 기업집단이다.[2] 지주회사격의 기업은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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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그룹은 1980년대 초반까지 재계순위 6위에 등극하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이었음은 물론이거니와[3] 부산 제1의 향토기업이었다.[4] 위의 사진은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설치된 국제그룹 전시관의 전경으로, 전시관 규모가 이웃한 롯데그룹 전시관들과 비교해도 더 큰 규모였을 정도고,[5][6] 현대그룹 전시관의 규모와 비슷했을 정도로 재계에서의 위상이 대단했다. 1984년에는 서울특별시 구도심의 노른자땅인 용산구 한강로2가에 20층이 넘는 규모로 독특한 외양으로 잘 알려진 용산의 국제빌딩(현 LS용산타워)을 완공하였으며, 과거 국제그룹이 단독 사용하던 본사 건물이었다. 화학, 섬유, 건설, 종합상사 등 알짜배기 분야에 진출해 있었고, 프로스펙스 등의 유명 브랜드까지 보유했다.

하지만 양정모 회장이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자 29만원의 전설로 유명한 전두환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갖다바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승승장구하던 그룹의 운명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한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순직자 유자녀를 위한 장학재단이라고 쓰고 비자금 확보용으로 설립된 일해재단의 연간 운영비용조로 당시 돈 100억원(3년에 걸쳐 30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청와대에서는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에게 자발적으로 모금이라고 쓰고 삥뜯기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이 때 현대그룹삼성그룹이 15억을, 럭키금성그룹 등이 12억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는데 사실상 이들 다음으로 거대한 기업 규모를 가진 국제그룹의 오너인 양정모 회장이 자기가 수십년 동안 고무신을 팔면서 본 피같은 돈을 내놓으라는 날강도들에게 분노하여 5억으로 퉁칠려고 하자 일해재단 초대 이사장인 최순달[7]지랄면박[8]을 준다.

드라마의 묘사에 따르면 그로부터 몇 달 전 새마을 성금을 기부할 때도 달랑 3억으로 때우면서 이미 가카의 눈총을 받은 상태였다.[9] 후계자로 내정된 사위인 김덕영 부회장은 이 때 꺼림칙했던 것도 있고 회사의 규모에 비해 모금액으로 5억은 눈치가 보인다며 10억원 정도로 맞추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하기도 했지만 결국 양정모 회장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눈치보이는 모금액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되어 각하의 미움을 사면서[10] 사망 플래그가 서고 만다.

이 때문에 당시 기업체들이 정치자금 제공에 다소 적극적이지 못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전두환은 본보기로 국제그룹을 타겟으로 놓고 조지기 시작한다.난 한놈만 두들겨패!! 우선 재무부 장관에게 국제그룹에 대한 금융지원을 축소할 것을 지시해서 국제그룹을 잠시 헬게이트로 몰아넣는다.

그 후 청와대에서 삥뜯기에 적극 참여할 것을 강요할 목적으로 재벌 총수들을 소집해서 만찬을 여는데 이 자리에 양정모 회장이 사고가 생겨 늦게 도착하고 만다. 부산에서 스케줄에 맞추어 서울행 항공편에 탑승했는데, 기상악화로 인해 항공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늦었다고 한다.[11] 국제그룹 출신 사이에 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양정모 회장에게는 7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유학 중이던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양정모 회장이 즉시 미국으로 갔는데, 하필이면 이 때 전두환이 재벌들을 소집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은 5공화국 후반의 권력 장악을 위해 1985년 2월 총선에서의 압승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김영삼의 텃밭인 부산 지역이 선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수였는데, 이 부산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전두환은 국제그룹의 기반인 부산으로 직접 내려가 양정모에게 선거를 위해 힘을 쓸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이 때 양정모 회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제사를 위해 각하를 만난 다음날 바로 부산을 뜨게 되고 이 일로 전두환은 "대통령인 내가 부산에 있는데 멋대로 여길 뜨다니!"라며 또 한 번 분노한다. 이게 대통령인지 조폭인지, 조폭 맞지 뭐.

이렇게 각하에게 찍힐대로 찍힌 상황에서 2월 총선 직전 김대중이 갑자기 귀국하자 막판 선거 유세가 치열해졌고 결국 청와대측이 우려한대로 총선에서 김영삼을 비롯한 야당 세력이 승리를 거둔다. 특히 부산 지역에서는 모든 선거구에서 신민당 의원이 당선되면서 선거의 판세를 뒤집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것이 각하의 심기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결정타가 되어 버린다. 시기를 볼 때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잠시의 지체도 없이 국제그룹을 해체해 버리기로 결정한 듯하다. 이제 국제를 날려버려야겠어!!

국제그룹의 부도는 자금난에 빠진 이 그룹에 대해 제2금융권에서 2,000억원이 넘는 여신을 회수한 게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이미 그룹 해체 결정 2개월 전인 1984년 12월 정부가 국제그룹에 대한 금융지원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가 있어 정부의 눈 밖에 났다는 사실이 잘 알려진 상황이었으므로 어느정도는 예고된 위기였다. 국제그룹은 당시 유동성이 부족해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고, 부채비중이 900%를 넘어 당시 재벌로는 부채비중이 높은 편이었다.[12] 부채비중이 조금 높은것을 빼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었고 당시 은행감독원과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전두환에게 찍혀 버리는 바람에 결국 1985년 2월 부실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그룹의 전면 해체 결정이 발표되며,[13] 그 해 7월부터 21개 계열사들이 모두 청산되어 다른 기업들로 합병되며 정리되게 된다. 2월 총선 결과가 나오고 나서부터 청와대 측에서 국제 그룹에 은행 채권단을 보내는 등의 직접적인 액션을 취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일, 그리고 국제그룹 완전 해체가 발표될 때까지는 고작 1주가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각하가 선거에 지고 나서 분풀이로 국제그룹을 때려눕혔음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다.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자금난에 빠진 국제그룹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국제그룹 정상화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린 뒤 제일은행은 계열사 처분 위임권까지 확보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국제그룹을 순식간에 처분해 버렸다. 특히 국제그룹은 부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알짜배기 계열사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동안 정치자금을 잘 갖다바쳐온 회사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불하가 이루어졌다. 신발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국제상사를 비롯해 하얏트 호텔 등의 알짜배기 부동산들은 한일그룹[14]에, 건설부문은 극동건설에 넘어가는 등 쓸 만한 계열사들이 해체와 동시에 순식간에 모두 매각됐는데 특히 전두환에게 잘 보였던 한일합섬이 이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를 받으며 재계순위 5위로 껑충 뛰게 된다.[15]

결국 공권력에 의해 탄탄한 그룹 하나가 공중 분해된 결과가 됐고, 그렇게 된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당시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이 전두환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16] 당시 국제그룹의 수많은 인재들도 인수합병에 따른 강제이직을 거부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특히나 부산의 다른 신발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스카웃 했다고 한다. 국제그룹이 해체되는 날 양정모 회장은 이게 다 자신탓이다. 운명을 받아들이자 라고 했다고 한다. 안습...[17][18]

2003년에서야 양정모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국제그룹이 해체당한 것이 강압에 의한 것이다"라고 인정받게 되었으나, 당시 강탈당한 그룹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지 너무 오래 되어[19] 다시 소유권을 반환하는 것은 무리라는 취지의 판결을 받게 된다. 결국 국제그룹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허상으로 남게 되었고, 양정모 회장도 결국 실의에 빠진 채 2009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거의 같은 케이스로 같은 부산을 중심으로 성장한 세계1위목재회사였던동명목재성그룹도 있다.

정치권력이 돈에 환장하면 기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비운의 사례이며, 이 이후로 재벌들이 5공세력의 기선제압에 몸사리기로 일관하며 정치자금을 성실히 바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본격 대통령이 손수 뜯던 시절 실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88년 5공청산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국제그룹 해체를 보고서 정치자금 액수를 두배로 올렸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노태우 정권을 거쳐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출범했음에도 국제그룹의 후폭풍인 기업들의 납죽 엎드림은 꽤나 계속되었다. 문민정부는 어느정도 구색을 갖춘 민주주의 정권이라고 자부할 정도는 되었지만 여전히 정치문화는 행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가능했고, 삼당합당으로 인해 5공의 인력풀의 일부가 문민정부로 계승되었기에 기업들은 국제그룹의 멸망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청와대에서 김영삼이 기업 총수들에게 "칼국수[20]좀 먹읍시다"라고 말만 꺼내면, 총수들은 다른 일은 다 팽개치고 달려갔다. 이것이 세간에서 불리는 칼국수 오찬 혹은 칼국수 회동.

2002년 대선 시즌 도중 "차떼기 사건"이 벌어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기업이 정당에 기부하지 못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더 이상 정치자금을 댈 수 없게 된다.표면적으론

드라마 자이언트에서도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기업들 이름 적혀있고 거기서 부실기업 아니면 이름을 지우는 칠판에 잘 살펴보면 국제그룹의 이름이 적혀있다! 드라마에는 나오진 않았지만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아마 부실기업으로 정리됐을 듯.근데 칠판 또 자세히 살펴보면 한진그룹도 있다!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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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땅크 각하29만원 조성에 소극적으로 굴지만 않았다면 현재까지도 한끝발 날리는 재벌 기업집단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재벌을 맘에 들지 않는다고 순식간에 때려부쉈다는 점에서 제5공화국이 얼마나 부패의 온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 [2]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면 국제그룹이 해체되자 양정모 회장이 낡은 고무신을 꺼내 신고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이 때문.
  • [3] 최근의 재계순위로 환산해 본다면 롯데그룹과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 [4] 이 포지션 또한 현재로 치면 롯데와 유사하다.
  • [5]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설치된 재벌그룹 독립전시관은 딱 10개만 허용했다. 그 안에 들었다는 것.
  • [6] 오늘날 롯데그룹은 과거 국제그룹의 위상과 비슷한 수준의 재벌이 되었지만, 국제그룹이 잘나가던 1980년대 초 당시만 해도 롯데그룹은 재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중견 재벌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에 참가할 당시 롯데그룹의 재계 랭킹은 49위였다고 한다.
  • [7] 전두환과 대구공고 동기이며, 유명한 과학자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발사를 주도한 인물.
  • [8] 아들은 미국 유학 가서 외제차 끌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나라를 위한 일에는 야박하다고 비아냥조로 면박을 준다.
  • [9] 이 때 만찬 자리에서 전두환은 새마을 성금과 새세대 심장재단에 총 30억을 기부한 동국제강과 비교하면서 고작 3억을 낸 양정모 회장에게 대놓고 면박을 준다.
  • [10] 보통 어음은 위치가 낮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이니...
  • [11] 드라마에서 이 때 전두환의 대사가 가관이다. "우리 국제 양회장님은, 어디 국제 여행이라도 가셨나?"(...)
  • [12] 당시 평균이 500%대라고 한다. 참고로 부실공기업이라며 온갖 비난을 다 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2011년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이 550% 정도다.
  • [13] 주거래 은행이자 채권단 대표 은행인 제일은행조차도 해체 결정 발표 전날에 통보를 받았을 정도로 국제그룹 해체 결정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14] 모기업이 한일합섬이었는데, 마산에 있었던 그 한일합섬이 맞다.
  • [15]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전두환이 재무부장관에게 인수 과정에서 그룹 내 대부분의 쓸만한 기업들을 모두 한일그룹으로 넘기라고 특별히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일그룹도 결국 이런 무리한 확장의 결과 IMF로 인해 1998년에 해체된다. 자업자득
  • [16] 하지만 1989년 국회청문회 증언에서, 전두환은 재무부장관의 국제그룹 해체안을 보고 받고 재가한 사실은 있으나, 부실기업 정리라는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며 항간의 소문에 대해 부정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뻔뻔스럽게 우기는 사람 말을 누가 믿을까...
  • [17] 이 때문에 양정모회장의 동생인 KPX그룹(구 국제홀딩스)회장 양규모회장이 전두환과 최순달을 처절하게 증오한다고 아니 혐오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전두환이 권력을 잃고 나락에 떨어질때 가장 고소해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 [18] 그래도 불쌍하게 생각한건지 아니면 놀릴려고 했는 건지 몰라도 국제 홀딩스 하나만 남겨두었다.놀리는 거 아냐?
  • [19] 게다가 인수 후 외환위기때 부도가 나서 사라진 계열사도 있었다
  • [20] 김영삼은 정기 모임, 국빈 대접, 특별 회동 자리에서 칼국수를 즐겨먹곤 했는데, 실제로 칼국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소탈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