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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last modified: 2015-04-08 00:35:26 Contributors

대한민국의 제5대 국새. 손잡이가 봉황 두 마리가 무궁화를 감싸고 있다. 청와대의 대통령기에서 본딴 듯.

Contents

1. 개요
2. 대한민국 역대 국새
2.1. 1대 국새
2.2. 2대 국새
2.3. 3대 국새
2.4. 4대 국새
2.5. 5대 국새
3. 논란
3.1. 국새실종사건
3.2. 국새사기사건
3.3. 서체 문제
4. 각국의 국새
5. 관련 항목

1. 개요

國璽.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

주로 아시아권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목적으로 제조된 도장을 말하며,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조약문을 체결하는 등의 중대사에 사용하는 물건.

보통 전문 장인에게 부탁하여 제작하며, 제작할 때 '일정한 재료를 얼마만큼 사용하라'는 제약이 붙는다. 만일 그 내용을 준수하지 못하면, 그 도장 장인은 코렁탕 파면되고 그 국새는 폐기되며, 다른 장인을 불러 국새를 다시 제작한다. 국새의 규격과 형태, 재질에 관한 관련규정은 이곳을 참고.

조선시대까지는 왕의 인장(옥새)이 국새로 간주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새는 대한제국에서 주조한 대한국새(大韓國璽)라고 할 수 있다.


2. 대한민국 역대 국새

2.1. 1대 국새

1대국새.jpg
[JPG image (Unknown)]

  • 사용기간: 1949년 5월 ~ 1962년 12월 31일

인뉴[1]는 용 혹은 삽살개 모양. 재질은 은이며 크기는 인면[2] 부분이 정사각형으로 한 면이 2치(약 6 cm)이다. 인면에는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고 전서체로 새겼다. 국가기록원[3]이 보관한 기록에는 1948년에 서울 충무로에 있는 천상당(天賞堂)이라는 곳에서 제작했다고 돼 있다.

현재 분실 중이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국새실종사건' 항목 참고.

2.2. 2대 국새

2대국새.gif
[GIF image (Unknown)]

  • 사용기간: 1963년 1월 1일 ~ 1999년 1월 31일

인뉴는 거북이. 재질은 은이며 크기는 인면 부분이 7 * 7 cm이다. 인면에는 한글 전서체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다. 30년이 넘게 사용하면서 인면이 닳기도 했고 몇 가지 비판받는 점이 있어 3대 국새를 제작하기로 했다. 2대 국새는 인뉴가 거북이 모양인데, 거북이는 제후국 옥새에 사용하기 때문에 격이 떨어진다는 점, 인면에 새긴 글씨가 한글 전서체인데, 한글을 한문 전서체와 비슷하게 디자인하려고 억지로 획을 구부리고 왜곡시켰다는 점이 비판받았다 재질이 은이라는 점도 비판대상이었는데, 금보다 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이유였다.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다.

2.3. 3대 국새

3대국새.jpg
[JPG image (Unknown)]

  • 사용기간
    • 1999년 2월 1일 ~ 2008년 2월 21일
    • 2010년 12월 1일 ~ 2011년 10월 3일 (5대 국새를 제작하는 동안 임시로 사용)

인뉴는 봉황[4]. 재질은 금과 아연 등을 섞은 합금이다. 인면에는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다. 크기는 인면이 10.1*10.1 cm이다.

3대 국새 제작은 KIST에서 맡았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제작기간이 단축되고 예산도 삭감되었다.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도정만 박사는 3대 국새 제작이 부실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5] 사용 도중 금이 가서 폐기하고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게 되었다.

4대 국새와 관련된 사단이 일어나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제작하기로 하자, 제작하는 동안 임시로 3대 국새를 보강하여 사용하였다. 현재는 원래대로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

2.4. 4대 국새


  • 사용기간: 2008년 2월 22일 ~ 2010년 11월 30일

인뉴는 역시 봉황. 재질은 금 합금이며 크기는 인면이 10.1*10.1 cm. 그리고 아래 사건으로 폐기. 이 4대 국새는 인면이 닳거나 금이 가는 등 손상이 없었는데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4대 국새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다.

2.5. 5대 국새


  • 사용기간: 2011년 10월 4일 ~ (현재 사용 중)

인뉴는 역시 봉황이지만 이전 국새 인뉴와 달리 봉황 두 마리가 큰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재질은 금, 은, 구리, 아연에 3대 국새처럼 균열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이리듐을 추가로 첨가했다. 크기는 인면이 10.4*10.4 cm. 제작은 3대 때와 마찬가지로 KIST에서 맡았다. 3대 국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도정만 박사가 제작단장이다. 인뉴와 인면을 따로 제작하여 붙이지 않고, 처음부터 일체형으로 제작했다. 제작비는 2억 1500만 원 상당.

3. 논란

3.1. 국새실종사건

2005년 감사원 감사 결과 1대 국새가 분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국새뿐만 아니라 제헌헌법 원문도 분실하여 국가기록물 관리가 그동안 개판이었음이 드러났다.

1대 국새와 관련해서는 이상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사진에는 1대 국새의 인뉴가 삽살개 모양이다. 하지만 1대 국새를 실제로 다루었던 당시 공무원은 인뉴가 삽살개가 아니라 용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각장 정기호 선생[6]은 생전에 자기가 1대 국새를 만들었다면서 도면을 남겼는데, 이 도면에도 인뉴가 용 모양이다. 국새는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인 만큼 인뉴 모양으로 특별히 상서로운 상징을 고르는 법이다. 비록 삽살개가 민간에서 영험한 동물로 여긴다 하나, 나라를 상징하기에는 격이 너무 떨어진다. 또한 위 사진에도 보이듯이 삽살개가 인면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다. 인면에 새기는 글자와 평행하게 똑바로 있음이 통례인 만큼, 삽살개의 이런 자세는 여간 이상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잘 쓰던 1대 국새를 왜 폐기하고 2대 국새를 새로 제작했는지도 전혀 기록이 남아있질 않다. 이 때문에 누군가 고위층이 1대 국새를 작정하고 빼돌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겼다. 국가기록원에서 현상금을 걸어 수배했으나 1년이 넘도록 행방을 알 수 없었다.

3.2. 국새사기사건

2010년 4대 국새에 관련된 조사에서 4대 국새 제작단장 민홍규가 횡령[7] 및 사기[8] 행위로 도마에 올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새에 본인 이름을 새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뉴에 있는 봉황 부리 밑에 자신의 성인 '閔'을 새겼으며 대한민홍규국 도장 인면에 새긴 '대한민국' 글자 중 '대'자의 ㄷ자 안쪽에 閔弘圭作 二千七年(민홍규 작 2007년)이라고 한자로 새겨넣었다. 이스터 에그 그 외에도 봉황 꼬리에 太平年(태평년), 萬歲璽(만세새)[9]라는 글자를, 인뉴 받침대에는 太平萬年(태평만년)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원래 이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금 횡령 사실이 불거지면서 확인차 국새를 살피던 중에 발견되었다. 한편 이 양반은 이전에 '갑골문 천부경'을 소지한 바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환빠들의 입지는 다시 한번 좁아졌다. 언제는 있었느냐만은.

4대 국새 관련으로 불거진 문제는 아래와 같다.

  1. 국새 제작 이후 남는 금을 반환하지 않았다.
  2. 민홍규는 4대 국새를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제작하기로 계약하였으나, 실제로는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몰라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들었다.[10]
  3. 국새에 새기기로 계약한 '대한민국' 이외의 엉뚱한 글자를 비밀리에 추가로 새겨넣었다. 게다가 그 엉뚱한 글자가 민홍규 자신의 이름자라 더욱 문제가 되었다.

민홍규는 그동안 스스로를 전각장 석불 정기호 선생의 수제자로 자처해 왔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석불 정기호 선생 생전에 두어 번 찾아왔을 뿐,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거니와 주물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실제로 4대 국새 제작 때에도 주물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시켰다고. 4대 국새 제작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기였던 것. 이러한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산청군에 민홍규를 중심으로 국새문화원을 세우기로 하고 산청군이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산청군에서는 관광명소로 만들 생각으로 예산을 지원해왔는데 민홍규가 잡혀들어가면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게 되었다.

4대 국새 제작단장으로 선정되려고 언론사에 로비를 했다고 한다. 이름 값을 높여서 제작단장으로 선정되기 쉽게 하려고 한 것. 횡령한 금으로 도장을 만들어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들에게 로비 용도로 제공했다는 혐의도 있었으나, 금 도장 로비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고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았다. 처음 횡령 사실이 알려졌을 때 민홍규는 찾아온 신문기자에게 "국새를 제작하고 남는 금은 사용하면 이롭지 않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고 금을 태워 없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이 태워서 없앨 수 있는 물질이었던가?

게다가 국새 장인 민홍규는 40억짜리 백금으로 장식된 다이아몬드 국새를 만들어서 돈벌이를 노리고 있었는데 팔리기는커녕 자기 집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말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골룸. 성분 조사결과 가짜 니켈, 황동 합금과 공업용 인조 다이아몬드[11]였다고.

결국 2011년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에서 민홍규는 가짜 국새 제작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1년 7월, 서울중앙지법 항소심에서 가짜 국새 제작 혐의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가짜 다이아몬드 국새를 판매하려 한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 형량에 6개월을 더하여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결국 다시 항소했지만, 2011년 12월 4일,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인 징역 3년을 확정하였다.

여담으로 2008년에 KBS에서는 국새 제작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당시에도 분량이 별로 없어서인지 외국 국새 얘기, 가마 부수는 이야기, 전통 기술 배웠다고 사기치는 이야기(...)가 절반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홈페이지. 지금 보면 꽤나 오그라들고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형을 다 살고 나와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었다느니, 진실은 승리한다느니 하고 있다.그렇게 자신있으면 재심이라도 청구하시지 왜?

3.3. 서체 문제

2011년 4월 29일,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12] 소장은 현행 국새의 서체가 국새규정 5조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는 조항에 맞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 동국정운에 따르면 大韓民國을 한글로 옮길때 땡ㅎ한민귁이라고 적어야 하고 지금 적은 것처럼 대한민국이라고 적으면 의미가 달라지며 특히 韓國이 아니라 漢國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이 주장 때문에 행정안전부는 '자체라는 것은 그 시절의 글자 형태를 빌린다는 것이지 표기법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는 해석을 보도자료로 내놓았다.

4. 각국의 국새


일본의 국새는 금으로 되어 있으며 전서체로 새긴 대일본국새(大日本國璽)로, 1874년 이래 사용해오고 있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국새는 청동제로 되어 있는데, 1954년에 제1차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이후 사용하지 않고 국가박물관에 1급 국가문물로 보관되어 있다.


대만의 국새인 중화민국지새(中華民國之璽). 다른 나라의 국새는 모두 금속으로 된 것과 달리 이 국새는 재질이 이다.


교황의 국새인 어부의 반지. 서양에서 자주 사용하는 반지 형태[13] 의 도장이다. 어부의 반지라고 부르는 것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관련이 있다. 예수가 어부였던 그를 제자로 삼았을 때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 반지는 역시 금으로 되어 있으며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낚는 베드로와 교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몇몇 서양 국가들에서도 국새를 사용한다. 사진은 영국의 국새(1953년)이다. 동양의 인장처럼 인주를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녹은 봉랍 위에서 누르는 형식을 취한다. 따라서 인영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부각이 되어 있다.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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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印鈕. 도장에서 손잡이 부분을 가리키는 말. 도장을 고급스럽게 만들 때 흔히 이 인뉴를 용이나 봉황 등 상서로운 상징물 형태로 만들곤 한다.
  • [2] 印面. 도장에서 글자를 새기를 부분을 말한다.
  • [3] 각종 비밀문서나 보존가치가 있는 공문서를 수집, 보관하는 공공기관. 그러나 정부수립 이후에 관리가 주먹구구식이기도 했고, 꼬투리를 잡힐까 봐 정권이 바뀌면 기록을 파기하는 불법적 관행이 지속됐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이 보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관하지 못하는 기록이 많다.
  • [4] 대통령 문장이 봉황이다. 뉴스 자료화면에 자주 나오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의자 뒤편에 새겨진 그림이 바로 봉황.
  • [5] 3대 국새 제작단장은 KIST의 故 최주 박사였다. 도정만 박사는 당시 최주 박사의 조수로 참여했으며, 5대 국새 제작단장을 맡았다.
  • [6] 鄭基浩, 1899~1989. 호는 석불(石拂).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계보를 이었다고 한다. 5대 국새 관련으로 사기를 친 민홍규는 자기는 정기호 선생의 제자라고 주장했었다. 정기호 선생의 아들이나 제자들은 민홍규의 말을 하나같이 부정한다.
  • [7] 국새를 만들 때 생긴 잔여 금(金)을 몰래 빼돌렸다고 한다. 무슨 아르키메데스가 적발한 세공사도 아니고...
  • [8]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대로 제작하겠다고 계약했음에도 기계를 사용하는 현대방식으로 제작했다. 수사과정에서 아예 전통적 제작방식을 배운 적도 없는 등 경력이 모두 가짜임이 드러났다.
  • [9] 태평한 시절에 만 세대 동안 어어질 국새란 뜻이다.
  • [10] 민홍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국새 제작 기술은 이미 실전되었다. 민홍규는 처음부터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 [11] 주로 유리를 자르는 칼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 공업용 다이아몬드이다.
  • [12] 육사 출신이며, 언어학을 배운 적도 없고 연구소도 아니다. 밑에 나와있듯이 글씨체랑 표기법이랑 구분을 못하는 ㅄ이다.
  • [13] 서양에서는 도장으로 낙관을 찍는대신, 밀랍으로 봉인을 하고 그 봉인위에 도장을 찍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