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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정보사령부

last modified: 2015-04-05 23:10:1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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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특수부대
국 군
 정보사 육상 / 해상 
육 군
 특전사 / 707 
해 군
 UDT/SEAL / SSU 
공 군
 CCT / SART 
해병대
 해병수색대 
경 찰
 경찰특공대 
과거 첩보부대 HID UDU AISU 미 군
KLO
CIA
영도유격대

정보사
KDIC.png
[PNG image (Unknown)]
國軍情報司令部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DIC)


Contents

1. 개요
2. 하는 일
3. 역사
4. 지원 및 선발
5. 흑역사
5.1. 부대 위치와 이전
6. 출신 인물



1. 개요

대한민국 국군의 첩보 부대.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방정보본부 산하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곳의 관리, 통제, 지휘를 받는다. 사령관은 소장이다.

서울특별시에 있어서 서울 시민에게는 선망의 부대. 외박을 갈 때 강남, 삼성동, 잠실(롯데월드)로도 나가기 좋기 때문. 지방에서 올라올 때는 높은 KTX 요금 때문에 고역이다.

2. 하는 일

공식 입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파공작부대가 없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럽다 보니 알려진 것이 적다. 유사시 특수임무를 수행하여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아저씨들로 알아두면 편하다.

흔히 북파공작부대라고 알려져 있는데, 중앙일보(2011)에 따르면 장교는 북한 땅에 들어갈 방법이 없으며 규정상 들어가는 것도 금지이다. 대신 정보사에서는 '북한인, 조선족, 중국인, 탈북자' 등을 협력자로 고용한다. 예를 들어 1997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 미사일기지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일반인의 상상대로라면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이 북한 군복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보사에서 보낸 간첩은 중국 선양이나 베이징 같은 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탈북한 북한군 출신을 고용해 카메라와 돈을 줘서 보낸다. 이들은 국경부터 미사일기지까지 길을 정확히 아는데다, 잡혀도 간첩의 얼굴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찍어온 사진은 미국의 첩보위성으로도 정확히 판별되지 않는 자세한 설비를 판별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영변 핵시설이나 핵실험장에서 물, 흙 등의 시료를 채취해오는 것도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이 아닌 탈북자로 보아야 한다.

보안을 위해 현장에서는 보고문건을 작성할 수도 없다. '태풍이 왔다 / 배가 잘 들어왔고 물건을 잘 받았다' 같은 암호로 간단하게 보고하고, 정식 보고는 국내에 들어온 뒤에 하게 한다.

대북 공작요원으로 필드에서 뛰는 최고 직급은 중령이다. 보통 현장 팀장을 맡으며 '전무'라는 가짜 직급을 쓴다. 대령 이상은 현장에 나가지 않고 본부에서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보사 공작부서 간부라 해도 대북 특수임무수행팀에서 훈련받는다. 이들은 중위 정도의 초급장교 시절에 대부분 선발되며, 6개월~1년간 집중교육을 받는다. 이후 대북 특수임무수행팀 팀장을 맡아 스쿠버다이빙, 공중강하, 육상침투 등의 특수훈련을 받는다. 중위 시절까지 소대장 정도의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에 포로로 잡히더라도 군사기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이런 침투에는 어려움이 많다. 중앙일보(2011)에 보도된 'CKW 사건'에 따르면, 1998년 40대 초반의 정보사 중령이 북한에 7개월간 납치된 뒤 고문당하고 이중간첩으로 전향한 일이 있었다. 그는 단둥의 한국고려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해 대북 공작망의 현지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노출되어 숙소에 외부인이 침입하고 피를 흘릴 정도의 격투를 벌여 납치 당한 것이다. 방첩기관에서 전향을 밝혀냈고 전역시키기는 했지만, 정보활동은 이런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납치가 흔한 일은 아니다. 중앙일보(2011)은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에 정 중령 외에 피랍된 장교는 없다고 보도했다. 조선족, 탈북자 중에는 일부가 잡혀서 납북되었다고 한다.

또, 북한에 한국인을 침투시킬 경우 체격 차이도 크고 북한 내에는 외국인도 드물어서 들키기 쉽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을 북한 내에 직접 보내지 않는다. 괜히 체포되어 기밀이라도 유출하다간 큰일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이외의 외국에는 정보사 팀을 보낸다.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당시 자이툰 부대가 파견되기 전 정보사 팀이 선발대로 들어갔다. 특히 북한과 전쟁이 난다면 아마 자신들 나름대로의 계획에 의해 북한 땅에서 작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예하에 수송부대가 존재한다. 운전병 지원하면 로또확률로 서울의 빌딩숲을 보며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물론, 로또.

3. 역사

국군정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71년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1948년 8월)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대(1948년 11월)
육군 정보국 정보대(1과)육군 정보대
Military Intelligence Group
육군 정보국 공작과(2과)(1950년 7월)
→첩보 파견대로 독립(1951년 3월)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육군 첩보대(1961년 7월)
Army Intelligence Unit
해군 작전국 정보과(1948년 9월)해군 정보부대 (1954년)
Navy Intelligence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1971년 ~ 1990년 1990년 ~ 현재
육군 정보사령부(1972년 2월)
Army Intelligence Command
  국군 정보사령부
  (해군 첩보부대, 공군 20특무전대 통합)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해군 첩보부대(1971년 5월)
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위국헌신 군인본분

육군의 정보 부대는 처음 1946년 1월에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로 발족하여, 1946년 8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을 거치고, 같은 해 11월 말 육군본부 정보국으로 개편되었다. 이것이 입수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정보대인 1과로 불렸고, 후에 육군 정보대(MIG)가 된다. 1950년 7월에 육군본부 정보국 내에 공작과가 만들어져 주로 첩보를 담당하는 2과로 불리다가, 1951년 3월 첩보 파견대(HID)로 독립 했다. 첩보 파견대(HID)는 1961년 육군 첩보대(AIU)로 개칭하고, 1972년 정보대(MIG)와 첩보대(HID)를 통합해 육군정보사령부(AIC)가 되었다.

해군의 정보 부대는 1948년 9월 해군 작전국 내 정보과로 발족하였으며, 1955년부터 자체적으로 UDU요원을 선발했다. 1970년 이전까지 NIU내 해상정찰대의 UDT요원 들을 해군첩보 수중파괴단(UDU)라 불렀고, UDT부대에서 북파공작원을 직접 양성후 해군 정보부대(NIU)에 전속 하였다. 1971년 5월 5일 해군첩보부대령에 의해 해군 첩보부대가 창설 되면서 공식적으로 UDU라고 칭하였다. UDU 기수는 UDT기수를 그대로 이어받아 UDU 1기가 아닌 UDU 17기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군은 1954년 9월 美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철수함으로서 美 6006부대가 사라지게 되자,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일명 실미도 부대라 불리는 684부대가 바로 20특무전대 소속이다. 그 후 1990년 육·해·공군 정보부대를 통합해, 기존에 있던 육군의 HID, 해군의 UDU, 공군의 AISU가 국군정보사령부가 되었다. 방첩부대였던 제3과는 현재 국군기무사령부가 되었다.

4. 지원 및 선발

특수정보부사관 항목 참조

5. 흑역사

  • 오홍근 테러사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노태우가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된 가운데, 5공 청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높아져 가던 상황이었다. 1988년 오홍근은 중앙일보의 월간지인 월간중앙 4월호부터 "오홍근이 본 세상" 이라는 칼럼을 게재하면서 군사정권하에서 사회에 만연한 군사문화를 비판하자, 신문사로 항의 편지가 오거나 오홍근의 집에까지 협박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6일,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명의 청년(정보사 요원)이 오홍근을 공격했고 자칫 오홍근은 죽을 위기였으나 마침 출근하던 아파트 경비원 덕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5.1. 부대 위치와 이전

사진 출처 : 한국경제(2013)

정보 관련 부대의 위치라서 기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도권 언론의 신문기사로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라 기밀이 아니다.[1] 정보사 외에도 국가정보원 역시 본청의 위치는 공개되어 있다. 물론 출입 통제는 한다. 실제로 정보사령부 예하부대가 위치한 곳을 가보면 기가 막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게 잘 알려진 이유는 부대가 위치한 곳이 도시 한가운데라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고, 한강 이남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로 하나를 떡하니 막아 도로가 끊겨 있고, 여기에 가로막힌 서초구 주민들이 강남구로 가려면 길을 빙 돌아가야 하는 때문에 부대 이전이 만년 떡밥이라 그렇다. 경기도 안양 박달예비군훈련장 인근이전한다는 데가 겨우 안양이냐?[2]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자, 2014년에 서울시의회에서 정보사 부지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승인했고, 2018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처음 정보사가 위치할 때는 허허벌판이었지만 1970년대에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가지 한가운데가 되어 버렸다(공공기관이나 시설 같은 곳 중 이런 곳 허다하다). 거기다 1992년 이 부지에 대한 초대형 사기사건이 터졌고, 정치권이 개입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상당히 큰 정치스캔들로 퍼졌다. 결국 배후는 없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 국민에게 정보사 위치가 알려졌다… 이미 기밀이 아니잖아 이전 안 하냐

6. 출신 인물

 성 명  비 고
김종대  로드 FC 소속 종합격투기 선수, HID 출신
김태현  SBS 공채 7기 코미디언, 정보사 화물 차량 운전병 출신
남보원  개그맨 북파공작원 출신
기 타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인 차태식이 국군정보사령부(UDU)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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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밀이라면 기자가 구속당하고 출판된 신문은 회수당했을 것이며 인터넷 상의 기사는 삭제당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기밀 노출을 철저히 막는다. 즉, 기밀이 아닌 것을 기밀로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 [2] 그나마 이것도 성남과 안양으로 분산이전하려다 안양으로 전부 이전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