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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FC 아우크스부르크 No.19
구자철 (具滋哲 / Koo Ja-cheol)
출생 1989년 2월 27일
가족 부모님, 형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본관 능성구씨 [1]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윙어, 공격수
신체 181cm, 75kg
등번호 국가대표 - 13번
FC 아우크스부르크 - 19번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2007~2010)
VfL 볼프스부르크 (2011~2014)
FC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2012~2013)
1.FSV 마인츠05 (2014~2015) FC 아우크스부르크 (2015~현재)
국가대표 45경기 / 13골

2010년 K리그 도움상
루이스(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2010년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2007 U-18 월드컵 대표팀 주장
2009 U-20 월드컵 대표팀 주장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주장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주장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주장

Contents

1. 플레이 스타일
2. 리그
2.1. 제주 유나이티드
2.2. VfL 볼프스부르크
2.3. FC 아우크스부르크
2.4. 13~14 시즌
2.5. 1.FSV 마인츠05
2.5.1. 13-14 시즌
2.5.2. 14-15 시즌
3. 대표팀
3.1. 20세 이하
3.2. 올림픽 대표팀
3.3. 국가대표팀
4. 기타


1. 플레이 스타일

2011년을 기점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부정적으로.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작했지만, 뒤를 받쳐주는 선수가 있을때 발휘되는 공격 본능으로 주목받았다. 제주 시절에는 준수한 퍼스트 터치와 안정적인 볼키핑,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중거리 슛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성용에 비해 피지컬은 떨어지지만 보디 벨런스와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준수하고 숏패스 능력도 갖추고 있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어느정도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다.

그러나 조광래아시안컵 대표팀에서 지동원과 연계한 섀도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포지션에서 뛰게하면서 모든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해당 대회에선 의외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서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데 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결정력, 피지컬, 드리블이 전업 공격수로 뛸 정도로 좋은 선수가 아니었던지라 아예 공격수로 고정하자 이내 한계가 찾아왔다. 게다가 독일 진출 이후 기존의 간결한 볼터치 대신 공을 질질끌는 버릇[2]이 심해졌고 잘 되지도 않는 드리블 돌파를 자주 시도하여 공격 템포를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졌다. 게다가 순간 판단력이나 축구 지능조차 떨어져 상황에 맞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다. 역습 상황에서의 접기 혹은 팽이질을 하면서 혼자서 공격 자체를 말아먹는다. 믿기 힘들면 당장 유튜브에 구자철 유럽 하이라이트 영상을 쳐보면 구자철의 활동 동영상이 쭉 나오는데 동영상을 보면 열에 한 번은 팽이질을 한다. 당장 멋있다기 보다는 역습 템포를 갉아먹는 느낌이 싹 온다.

팬들 사이에선 2011 아시안컵 이후 겉멋이 들어 자신의 본분을 완전히 망각했다는 의견이 많다. 어디까지나 본분은 미드필더이고 골은 옵션인데 미드필더 위치에 서있으면서 스트라이커 마냥 골을 노리고 달려드니 구자철을 선발로 쓰면 중원의 공수간격이 크게 벌어져 경기 밸런스가 무너진다. 즉, 현재 폼과 상관없이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선수.

또 다른 단점은 피지컬. K리그 시절부터 지목받아온 문제점인데 독일에서도 리그가 뒤로 가면 갈수록 체력이 방전되어 활동량이 줄어든다. 스피드나 경합 능력도 떨어진다. 2011년 이후 골만 노리고 달려드는 모양새를 보면 아예 공격수로 올려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으나 그럴 수 없는게 톱에서 뛰기엔 피지컬이 너무 떨어진다.

비슷한 연배에 플레이 스타일 차이가 확연한 기성용과 자주 비교되었는데 둘을 함께 기용할 경우 엇박자가 심해 이 둘의 공존이 10~12년에 국대 주요 떡밥거리였다.[3]

2. 리그

2.1. 제주 유나이티드

2007년 보인고등학교 졸업 후 드래프트 2순위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오승범, 김재성 등과 함께 제주의 중원을 먹여 살렸지만 팀의 성적이 워낙 저조한데다 데뷔 초반 잦은 부상으로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 제주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돌풍의 중심으로 함께 떴다. 플레이오프 포함 5골 12어시스트, 2010시즌 K리그 도움왕이자 주간 베스트 11 최다선정자이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막판 3경기 연속 선발 풀 출장에 그나마도 그 중 두 경기는 연장전이었던 상황에서 플레이 오프 경기를 치르러 소속 팀으로 복귀했는데, 이틀 뒤 vs전북의 플레이오프에 선발 풀 출장, 이 때 부상을 당하고 '경미한 부상이니 괜찮다'며 또 이틀 뒤 vs서울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선발 풀 출장, 부상이 채 낫지 않은 모습이더니 경기 초반에 태클당하고 부상이 악화된 듯. 그 와중에 1도움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현재 2차전 출전 여부는 불투명. 예상대로 벤치에서 2차전을 지켜봤다. 후반 역전골을 허용하자 긴급히 투입되어 투혼을 발휘했지만 워낙 컨디션이 나빠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2010 K리그 시상식에서 판타스틱 플레이어, 베스트 11, 도움왕을 수상하며 삼관왕에 올랐다.

2.2. VfL 볼프스부르크



2010년 시즌을 마치면서 챔스 진출이 가능한 중소 리그,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팀으로 가고싶다는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각종 커뮤니티가 대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헀다. 대체 거기가 어딘데.

후에 스위스 리그의 영 보이즈의 오퍼가 들어왔지만 팬들의 반응은 부정적. 가네 마네를 놓고 설레발이 이어지다가 아시안컵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슈투트가르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에서도 입단 제의가 왔다는 기사가 나오더니만 1월 29일 카타르에서 독일로 바로 출국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보이즈는 되도 않는 FIFA 제소 드립을 치면서 이적 협상을 방해하려 했지만 이미 계약서 싸인 한 선수에게 제소 드립을 친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에 모두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다. 아무리 바이아웃을 제시했어도 일단 이적 동의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제주에게 통보를 해야한다. 하지만 제주는 통보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에이전트가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에야 이중 계약을 시도할 리가 없다.

아시안컵 폐막 후 이적건이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더니 각종 설레발과 찌라시는 뒤로 하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이 성사됐다.

큰 기대를 얻고 진출한 유럽이었지만 하필이면 팀이 막장 일보 직전의 팀이었다. 분데스 챔피언의 위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강등권을 헤매는 팀에서 반 년간 제대로 기회도 얻지 못한다. 그나마 시즌 막판 출전 빈도가 늘어나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1선발 9교체에 0골.

2011-12 시즌을 앞두고 손흥민이 있는 함부르크 SV가 공개적으로 임대 이적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절차 다 밟아둔 상태에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이적을 파탄내면서 결국 잔류했다. 한국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했지만 이 사건 때문인지 프리 시즌에 자주 선발 출장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독재자 마가트 감독의 똘끼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 폭풍 영입과 폭풍 방출로 팀 케미스트리는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포지션 경쟁자가 주구장창 몰려오며 결국 시즌을 암울하게 시작한다. 역시나 예상대로 전혀 경기 출장을 못했는데, 시즌 전반 막판 갑작스럽게 기회를 여러 번 얻는다. 특히나 선발 출전이 무려 7경기나 되어서 드디어 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

하지만 문제는 포지션인데, 공미는 그렇다쳐도 때에 따라 이나 스트라이커로 썼고, 당연히 한국 팬들은 데꿀멍. 경기력은 실전 감각이 쌓이며 좀 좋아졌으나 역시 어울리지 않은 위치에서 고전했다. 공격 포인트는 1어시스트……인데 그 어시스트도 미묘. 프리킥 상황에서 툭 하고 50cm 밀어준게 어시스트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참으로 희한한 시즌을 보내던 중, 겨울 이적 시장에 볼프스부르크가 역시나 폭풍영입을 하면서 다시 상황이 미묘해지던 찰나에 구세주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이 성사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마가트가 구자철이 마음에 들어서 키워주고 싶었는데 며칠 전의 뮌헨과의 경기에서 놓친 1:1 찬스 때문에 임대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강등권에서 노는 팀인 만큼 제 포지션서 충분한 출전 시간을 얻지 않을까 기대되는 중.

2.3. FC 아우크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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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적 후 첫 경기에서 60분에 교체 투입되며 바로 데뷔전을 치뤘다. 구자철 투입 이후 그때까지 뻥축을 구사하던 팀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좋은 볼간수와 수비가담을 보여줬고 양민팀에 오면서 자신감이 붙은 건지 마르세유 턴까지 보여주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감독도 후한 평가를 내리며 첫 단추를 잘 채운 모습.


레버쿠젠 원정에서 1-0으로 뒤지던 후반 분데스리가 데뷔골이자 팀의 동점골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3골 더 먹고 4-1로 완패.

**
3월 17일 26차전 1.FSV 마인츠05와의 홈경기에서도 동점골인 2호골을 기록하며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6경기에 나서서 2골 1도움을 기록 중. 3월 25일 브레멘전에는 경기 종료 직전 슈팅이 어시스트로 인정 됐……는가 싶었지만 후에 취소되었다. 3월 31일 28차전 FC 쾰른 경기에서 전반 18분 선취골을 기록, 2:1 팀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에서 정대세와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가운데 시즌 3호골을 터트리셨다.펠릭스 마가트 보고 있냐?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후 8경기 3골 1도움이란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구자철이다. 더불어 이 승리로 팀이 강등권을 탈출했기에 더더욱 값어치가 컸다.

4월 7일 29차전 리그 2위인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도 전반 23분 동점골을 기록하며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런 활약 속에 강등 위기에 몰렸던 아우크스부르크가 리그 잔류를 확실히 해냈고 요스 루후카이 감독이나 서포터들도 구자철의 완전 이적을 원했지만 팀 재정문제로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5월 5일 마지막 리그 34차전 함부르크와의 경기. 손흥민과의 맞대결에서 상대방 수비 마크를 완벽하게 벗어나며 분데스에서 첫 헤딩골을 기록하였다. 세레머니로 2011년 5월 6일에 자살한 故윤기원 선수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의 팬티 세레모니로 K리그 팬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거기에 아이러브사커에서 원정간 팬들이 가져간 Pride of K-league라는 플랜카드도 카메라에 잡히며 여러 가지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팀은 1:0으로 승리하며 최종 순위 14위를 기록.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모두 15경기에서 뛰며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시즌을 끝냈다. 이 5골은 공격수 사샤 묄더스(5골 3도움)와 함께 팀 내 득점 1위 기록이지만 묄더스가 30경기를 뛰며 기록한 걸 생각하면 구자철은 그 절반만 뛰고 넣은 득점 1위이었기에 그에 대하여 감독이나 선수들이나 서포터들이나 지역언론이 에이스라고 칭송하며 완전 이적을 놓친 걸 아쉬워한 게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

그리고 6월 4일 아우크스부르크와 임대 연장에 합의하고, 등번호 7번을 받았다.#

하지만 12-13 시즌에선 부진에 빠졌고 팀은 18위 꼴찌로 추락했다. 시즌 첫 골은 12차전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기록했지만 2:4로 팀은 패했다.

2012-2013년 DFB 포칼 16강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프랑크 리베리와 거친 실랑이를 벌였다. 볼경합을 하는 과정에서 구자철은 리베리의 허벅지를, 리베리는 구자철의 종아리를 걷어차게 되었다. 구자철이 넘어진 후 리베리가 사과의 제스쳐를 보였으나 구자철은 그대로 일어나서 돌진하였고 리베리는 구자철의 얼굴을 밀쳐냈다. 이후 구자철이 다시 접근하여 리베리의 뺨을 쳤고, 리베리가 그대로 주먹으로 응수했다. 리베리는 당연히 퇴장당했으며 시비의 발단이 된 구자철도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팀은 마리오 고메스, 샤키리에게 골을내줘 2:0으로 탈락하게 된다.

2013년 지동원이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면서 한국인 선수 동료랑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새해 첫 리그 경기 18차전 뒤셀도르프전에서 시즌 3호골을 기록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팀은 17위이지만 16위랑 1점차로 어느 정도 강등권 탈출희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더불어 팀내 공동득점 2위이다.(1위는 역시나 전번 시즌의 팀내 득점왕 사샤 묄더스가 6골을 기록 중)다만 같은 2위인 토비아스 베르너가 15경기 출전에서 3골, 구자철은 11경기 출전해 3골을 기록 중.

그리고 마지막 34차전, 강등 여부가 걸린 중요한 경기. 18위로 강등 확정된 퓌르트와 벌인 이 경기에서 3:1로 이기면서 팀은 리그 15위로 역전, 극적으로 리그 잔류를 해내며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더불어 지동원은 이 경기에서 75분에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하며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2.4. 13~14 시즌

볼프스부르크로 돌아왔지만 제대로 경기에 나오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요한 순간에 큰 활약을 한 탓에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완전 이적을 원하고, 구자철도 볼프스를 떠나길 바라는 상황.

그런 가운데 2014년 1월 들어서 볼프스부르크도 그를 이적시킬 예정이며 아우크스부르크 아니면 마인츠 05로 이적할 가능성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2.5.1. 13-14 시즌


2014년 1월 18일 마인츠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018년 여름까지다. 이적료는 500만 유로로 추정된다.

2월 2일 19차전 SC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벌인 경기에서 팀동료 박주호가 리그 데뷔골을 터뜨린 데 이어 구자철도 후반 13분 유누스 말리 대신 교체 투입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후반 42분 추가골을 터트려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드디어 구자철이 좋은 팀에서 잘 나가는 줄 알았다.

2.5.2. 14-15 시즌

2014년 8월 8일 유로파리그 3차 예선전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그리스)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앞서 열린 안방경기 트리폴리스 전에서도 도움을 기록하며 1-0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팀은 원정에서 1-3으로 패했고 1승 1패를 주고받았지만 골득 2득 3실점으로 뒤쳐져서 탈락했다.

8월 16일 헴니처(3부리그)와 DFB포칼 경기에서 구자철은 2-2로 맞선 후반 28분 한발 앞서가는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20분 연장혈투 끝에 5-5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 돌입해 4-5로 져 포칼 첫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맛봤다. 구자철과 박주호도 각각 두번째와 네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했지만 결국 승리는 놓쳤다.

8월 24일(이하 한국시간) SC 파더보른과의 2014-15 분데스리가 홈경기 1차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후반 추가시간 4분 동점 페널티킥을 넣으면서 극적으로 2-2로 비겼다. 아무튼 초반 4경기에서 3골 1도움을 넣으며 맹활약을 하고 있긴 한데 팀이 3경기 연속 무승이라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리고 슬슬 중반으로 접어드는 현재는 초반의 기세가 무색하게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다. 선발 기회를 꾸준히 잡고 있으나 대표팀에서나 소속팀에서나 활약이 전혀 없다. 그러다가...

계속 팀에서 자리를 못 잡다가 2015년 3월 15일 지동원의 소속팀 아우쿠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전반 20분에 교체 출전했다. 팀 동료 조나스 호프만의 부상으로 갑자기 들어갔으나 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결정적으로 경기 종료 직전 6개월만에 골을 넣었다!! 골 넣은 후 세레모니를 전혀 하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다.[4] 경기 직후 후스코어드닷컴에서 MOM을 먹었다. # 경기를 본 누리꾼들도 대체적으로 오랜만에 감각이 돌아왔다며 호평을 내리는 중. 과연 이번 경기를 계기로 다시 재기할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4월 12일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후반 78분,90분 페널티 골로 2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손흥민이 1골을 넣은 레버쿠젠에게 결국 2-3으로 팀은 졌다.

3. 대표팀

3.1. 20세 이하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의 주축으로 활약하여 청소년 대표팀을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기성용이 A대표팀으로 차출이 결정된 상태에서 지명도 있는 선수가 없는 당시 청대 상황을 생각하면 구자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대회에서 득점을 한 김보경, 김민우, 윤석영 등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을 후방에서 지원해준 구자철이 없었다면 역대 최약체 청대로 남을 뻔 했다.

2010년 초 블랙번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진출하진 못했다. 국가 유공자 자녀이기 때문에 병역은 6개월 공익(일명 육방)[5]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해외 진출에는 문제가 없다. 제주는 일찍이 해외에서 콜이 들어오면 대승적 차원에서 보내겠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2011년까지 제주 유나이티드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각 팀에서 군침을 흘리는 중.

아무튼 월드컵 엔트리 최종 발표 전에 탈락했기 때문에 그 전에는 K리그 빠들이나 아는 존재였다가 아시안 게임 주장을 맡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와일드 카드인 박주영김정우가 있는데 왜 어린 놈이 주장이냐 하면 멤버들이 거의 U-18 올림픽 대표팀 멤버들이었으며 그 때의 주장이 구자철이었기 때문. 결과적으로 동메달이었으나 요르단전 2골, 우즈베키스탄전 1도움, 이란전 1골로 주장으로써 할만큼은 했다.

3.2. 올림픽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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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발탁되어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기성용, 박종우, 김창수와 함께 올림픽 팀 동메달의 1등 공신으로 꼽히고 있다. 기존에 약점으로 거론되던 체력에 대한 우려를 한 방에 불식시켰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체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지성도 대표팀 경기를 보고 "자철이가 정말 미친듯이 뛰었다. 나도 저렇게 뛰면 힘들다."라고 평할 정도.

16강, 8강, 4강에 이르기까지 중앙에서 활발한 압박과 볼 배급을 선보였으며 간간히 공격에 힘을 보태는 등 전체적으로 나이스 플레이를 보였다. 다만 이번 올림픽 공공의 적인 심판(…)에겐 어쩔 수 없이 힘든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선수의 기질이 다분히 공격적이라 심판에게 어필하는 부분도 화면에 많이 잡혔다.[6] 특히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 주심에게 "Why?"를 외치는 모습이 화제에 올랐다.

4강에서는 아쉽게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한 골을 보태며 논산 거부포를 쏘고[7]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이날 대한민국은 호쾌한 피지컬 축구를 앞세워 일본을 부숴버렸는데 구자철 역시 태클을 넣다 유독 옐로카드를 남발하는 심판에게 걸려 옐로카드를 받았다. 그런데 이때 달려드는 게 아주 그냥 파이팅이 넘쳤다 일본 선수를 밀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질 뻔 했지만 구자철을 말린건 다름 아닌 셀틱일진 기성용!! 평소엔 투지 넘치는 기성용을 구자철이 말리고 달래는데 역변한 상황이라 일부 팬들은 '기성용이 저럴 때도 있다니'하며 당황스러워했다고, 그리고 후일 기성용은 "얘가 내 캐릭터를 탐내는 구나"라고 평했다....

3.3. 국가대표팀

생일을 10일 앞둔 2008년 2월 17일 한중전에서 19세의 나이로 A매치 데뷔를 했다. 이때 대표팀 멤버 가운데 유일한 십대였다. 물론 당시 감독은 심심하면 대표팀에 로리를 끌어들이는 허카우터. 당연히 선출했을 때부터 이 듣보잡은 뭐냐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결국 구구절절 해명 인터뷰까지 해야했다. 당시 넷상에서 씹어댄 놈들은 지금 구자철을 열심히 핥고 있겠지

2010년 1월 잠비아와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넣었다. 경기는 2:4로 대한민국이 패했다.

2010년 6월 1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기존의 예비 엔트리에 들었던 구자철, 신형민, 이근호 세 사람이 탈락했다.[8] 그 중 이근호와 구자철이 브라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두고 재능보다 경험을 중시한 것이고, 다가오는 아시안컵 엔트리에는 2010년 제주 돌풍을 이끈 구자철을 당연히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조광래 감독도 동의했으며 2011년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포함, 등번호 13번을 배정받았다. 슬슬 박지성을 대체할 자원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 조광래 감독은 쳐진 공격수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2011 아시안컵에서는 바레인전에서 평소의 위치보다 올라간 세컨드 탑으로 출전, 첫 경기부터 2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쳤다. 1골은 기성용슛패스 스루 패스를 골로 만들었고, 두 번째 골은 차두리의 강력한 슈팅이 키퍼의 선방에 막힌 것을 침착하게 밀어넣었다.

2경기인 호주전에서는 전반에 정성룡의 롱 킥을 지동원이 받아서 헤딩으로 패스한 것을 침착하게 슈팅을 해서 선취골을 넣었다.

3차전 인도전에서는 그야말로 구파드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전반 9분에 쐐기골을 집어넣었으며 지동원과 손흥민의 골을 어시스트, 이 날 mvp로 선정되었다.

2011 아시안컵 4강, 한일전 승부차기에서 첫번째 키커로 나섰는데 슈팅이 좋지 못한 곳을 스치는 바람에……. 그가 제주시절 자주 PK를 찼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94월드컵의 로베르토 바조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5골 3도움으로 한국인으로서 5번째 아시안컵 득점왕을 수상했다. 시상식 전에 이적 협상을 위해 출국했으므로 대리 수상. 박지성, 차두리와 함께 아시안컵 베스트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볼프스부르크에서 경기 출장을 못하면서 폼이 떨어져 삿포로 참사, 레바논 쇼크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참고로 삿포로 대참사는 컨디션이 최악인 구자철을 윙으로 박아버린 조광래의 선수 기용이 문제였다. 레바논 쇼크도 폼이 떨어진 상태의 구자철을 무리하게 기용한게 원인 중 하나. 조광래 경질 이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장으로 발탁되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차전 알제리전에서 후반전 이근호의 어시스트를 받아넣어 월드컵 무대 득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내내 둔한 몸놀림을 보였지만 이 골로 2차전까진 까임을 그나마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3경기 모두 공미가 가장 중요한 4-2-3-1포메이션에서 최악에 가까운 경기력이였고, 높은 활동량은 칭찬해줄만 하나 대개 전술 혹은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쓸데없이 체력만 소진하는(...) 활동량이였다는게 문제.

그나마 잘 하지는 못했어도 활발히 뛰며 열심히는 했다는 점과 득점을 기록했다는 점, 선배인 정성룡, 박주영과 감독 홍명보 등이 탱커역할을 한 덕에(...) 덜 까였다.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에는 말 그대로 팀의 암덩어리. 공격전개가 아예 안되고 템포를 다 끊어먹는 통에 대표팀이 4-2-3-1을 쓸 경우 공격이 답답해지는 원인이 되었다.[9] 이 11월 18일 이란전에선 경기 내내 패스 미스와 질질끄는 플레이로 일관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팬들은 폼이 올라올 때까지 차출은 자제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뭐가 좋은건지 구자철을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새라 팬들의 불안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아시안 컵 대표까지 차출.
그러나 아시안컵을 앞두고 벌어진 사우디와 평가전에서도 전혀 달라진것 없는 경기력으로 전반전 내내 팀이 고전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슈틸리케 감독이 후반전 구자철을 비롯해 부진했던 이근호 김진수를 교체하자 확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다. 덕분에 팬들은 제발 남태희를 주전으로 쓰고 구자철은 백업으로나 쓰길 기도하고 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분데스으리가의 으리계속 기용하고 있다.

아시안 컵 예선 오만전에서는 예상을 깨고[10] 또 선발출장했다.
전반전에 조영철의 선제골에 기여를 했고 후반전에는 헤딩을 했지만 아쉽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 경기에서 MOM으로 선정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전후반 내내 대표팀의 답답한 경기력을 제공한 원흉. 이날 대표팀은 4-2-3-1 전술을 썼는데,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구자철이 맡은 3의 꼭지점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구자철은 아예 그런 역할을 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세컨드 스트라이커라도 되는마냥 탐욕스럽게 골 챤스만 노렸고, 덕분에 실제 경기는 4-2-0-4 형태로 흘러갔다. 이날 골 챤스로 이어질 뻔한 패스는 이청용과 기성용 쌍용의 발끝에서만 나왔지 구자철은 슈팅 2개 빼놓고는 위협적인 상황 자체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상대가 오만인데도 불구하고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영혼의 텐백을 쓰는 상대를 90분 내내 가둬놓고 패다가 역습 한방에 털리는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은 이유도 이때문이다. 수비 6 공격 4 형태로 벌어지면서 오만이 텅 빈 중앙을 유유히 거쳐서 나왔고[11] 급기야 이청용이 부상으로 나가고 박주호의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는[12] 오만이 일방적인 공세로 나왔다.
지금으로선 떨어진 폼을 끌어올리기 이전에 지난 4년동안 순수한 포워드도 미드필더도 아닌 애매하게 성장한 부분이 아쉽다.[13] 런던 올림픽 이후 팬들이 구자철에 대해 수차례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공미가 대표팀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전혀 못해주는 이상,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2선의 뜬금포득점력과 팀의 공수 밸런스 유지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듯 하다. 이대로가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전임 감독의 엔트으리처럼 독일사람 피를 못속여 분데스으리가분데스리가 출신 우대한다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박주호, 손흥민, 김진수는 무슨 죄야?

17일 호주와의 경기 도중 호주 수비와의 볼경합 도중 넘어지면서 오른팔이 반대로 완전히 꺾여버려 큰 부상을 당했다. MRI 검진 결과 팔꿈치 인대 파열 진단을 받고 2015 아시안컵을 조기마감했다. 그나마 상기한 플레이 스타일 문제때문에 이청용에 비해 공백은 적다.

4. 기타

  • K리그와 올림픽 대표팀 시절까지는 팬들 사이에서 멘탈이 좋다는 칭찬이 많았다. 그러나 부진과 홍명보호에서의 해외파 파벌논란 이후 페르난도 토레스처럼 실제론 멘탈이 형편없는데 팬들이 과대포장한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힘을 을 얻고있다. 언론플레이나 팬서비스가 좋다고 프로선수로서 멘탈이 좋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14] 월드컵 졸전 직후의 경험드립이나 부진을 지적하는 여론에 대해 관심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해서 팬들에게 크게 실망을 주고 있다. 슈틸리케호 출범이후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그렇다고 홍명보호 시절에 좋았다는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없는 것이 더 도움되는 민폐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는데 인터뷰에선 자신이 좋은 경기력을 펼쳤다며 자신의 단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적반하장식의 발언으로 그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 먹었다. 이에 팬들의 반응은 국대병 걸렸다, 올대부심, 답이 없다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만전 이후의 인터뷰에서는 그들이 내가 살아온 방식을 모른다 , 비판 여론 관심없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 고향팀 제주 유나이티드K리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비시즌이면 반드시 원소속팀을 방문하고 지역 방송에서 해설을 자처하기도 하며 런닝맨 등 여러 미디어에 출연했을 때에도 K리그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또한 해외 생활을 마친 후 반드시 국내 무대로 돌아와 은퇴하겠다고 공헌을 하기도 하여 제주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다.

  • 2010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였던 구자운그 해 단 1경기에 출장해 3이닝 2실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뜬금없이 엔트리에 발탁되었다 좋은 활약을 펼치자 구자철과 상관관계가 있는게 아니냐는 기사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플레이오프가 워낙 비범했던 가운데 던져진 떡밥이라 한동안 구자철과 구자운이 나란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전후해서 그의 오글거리는 인터뷰가 화제가 되어 구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동료 선수의 부모님이 쟤는 무슨 말을 저렇게 느끼하냐고 하자 원래 그런 형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 외에 트위터에서 좀 심하게 진지한 멘션을 했다가 절친 기성용에게 까이는 일도 종종 있다.

  • FC 서울넬로 빙가다 감독의 추천으로 2010 서울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호날두 에이전트 쪽에서 경기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이 에이전시는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이전트 중 하나인 조르제 멘데스의 회사다. 호날두 뿐만 아니라 무리뉴 및 거물 포르투갈 선수들과 스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거대 에이전시다.

  • 구자철인데 KOO라고 쓰기 때문에 캡틴 쿠라고도 부른다.

  • 기성용과 같이 투미들로 가면 충격과 공포의 수비붕괴를 맛볼수 있다. 조광래에 의해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옮겨진 이후는 지동원과 돌아들어가는 플레이에서의 시너지 효과가 좋아 아시안컵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구자철의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이고 형은 ROTC로 병역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15] 6개월간 공익근무만 이행한다면 군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근데 정작 본인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 올림픽 동메달을 단체로 취소시킬 뻔했다. 2012년 올림픽 남자 축구 3, 4위전에서 구자철은 박종우와 같이 독도와 관련된 세레머니를 하려고 했는데 구자철의 경우는 주위의 코칭 스텝들이 문제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렸기 때문에 그냥 만세만 부르고 끝났다. 하지만 박종우는 독도 세레머니를 하는 바람에 박종우 혼자서만 동메달 수여가 보류되었다. 나중에 받긴 했지만.

  • 집안 사정을 조금 더 서술하자면 어린 시절은 전투비행단에서 자랐다고 한다. 원인은 아버지. 아버지가 사실 공군 장기 부사관 출신이었다고.상세 기사

위닝 온라인 CF를 찍었다.

  • 갑작스럽게 결혼 발표를 했다! 2013년 6월 22일에 결혼을 한다고 밝혔다. 제주 유나이티드 당시 만난 연상의 연인이라고. 관련기사

  • 기성용이 국가대표 올대vs비올대, 해외파vs 국내파 파벌 형성의 주범으로 찍힌 상황에서 절친인 구자철도 동조 내지는 방조를 하지 않았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축구 사이트에서 이 주제가 거론되면 상주하던 구자철 팬들이 쉴드치다가 키배가 벌어지는 광경을 종종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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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능성 구씨 27세손 '자' 자 돌림이다.
  • [2] 독일가서 생긴 버릇은 아니고 제주에서 잘나가던 2010년 경부터 조금씩 나타나던 버릇. 자신의 볼컨트롤을 과신한 나머지 볼을 바로 걷어내야 할 순간에도 잡고 끌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철엉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치명적인 실수가 나온 적은 거의 없었지만 수비안정감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수비적인 룰을 맡은 박현범, 오승범의 기여도가 매우 높았다.
  • [3] 예전 홍명보 감독의 청대에서 구자철-기성용 라인을 시험했으나 그다지 호흡이 맞지 않았는데다 동선이 완벽하게 겹쳤다. 그러나 기성용이 셀틱 이적 후 수비력이 늘어 수미로 뛸 수 있게 되었고, 2011 아시안컵에서 구자철을 4-2-3-1의 중앙공미로, 기성용이용래와 함께 더블 볼란치로 쓰며 공존에 성공했다.
  • [4] 이는 나름대로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표한 것이겠으나, 얼마 전 웰벡이 OT에서 맨유 상대로 골 넣고 세레모니하고 다비드 루이스가 스탬포브 브릿지에서 첼시 상대로 골 넣고 그야말로 화끈하게 세레모니를 해버렸던지라 더 화제가 되고 있는 듯.
  • [5] 연기자 이병헌 등이 대표적인 육방 복무자이다. 가장 최근에 육방으로 복무 중인 유명인사는 연기자 김영광. 대신 육방 때문에 "피끓는 청춘"의 개봉을 보지 못했다.
  • [6] 영국과 맞붙은 8강전에는 아예 심판의 기질을 파악하고 일부러 미친듯이 어필했다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이건 무슨 담당교수 성격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 [7] 참고로 이 골은 구자철의 무시무시한 보디 밸런스를 잘 보여주는 골. 뒤에서 넘어온 골을 중심을 잃지 않고 발끝으로 터치한 뒤 역시 어려운 자세로 균형을 잃지 않고 그대로 슛을 날렸다. 힘이 아닌 중심을 잡는 밸런스가 정말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골.
  • [8] 수비형 미드필더 경쟁에서 김정우, 김남일에게 밀렸다.
  • [9] 또 다른 문제점은 고질적인 원톱 부재. 수비진을 휘저어줄 원톱이 없는 상황에서 공미가 공격전개마저 못하니 4-2-3-1은 무의미해졌다.
  • [10] KBS 이영표 해설위원이 하루 전날 예상한 오만전 명단은 구자철만 빼고 다 들어맞았다. 구자철대신 남태희를 예상했다.
  • [11] 대한민국의 득점상황은 상대 공격을 끊은 뒤 빠른 역습 상황이었다. 오만 진영에 공격 셋 수비 셋이 경합했을 정도로 오만이 겁도 없이 밀고 올라왔다.
  • [12] 기성용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전방 공격 라인을 아래로 내리라고 손짓하는 장면도 TV에 잡혔다.
  • [13] 애시당초 피지컬이 후달려서 톱으론 못간다. 본인이 2011년 이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버린게 크다.
  • [14] 예로 든 페르난도 토레스의 경우 첼시 이적이후 멘탈이 형편없다는게 만천하에 드러났으나 별도로 팬서비스는 좋은 편이라 개인팬들은 이걸 근거로 멘탈이 좋다는 쉴드를 치고있다. 물론 멘탈 안좋은 선수들이 팬에게도 막대하는 경우가 많긴하나 팬들에겐 웃으면서 뒤에선 아마추어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례도 결코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당장 구자철의 절친 기성용부터 그랬다.
  • [15] 2012년 6월에 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