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last modified: 2018-09-20 01:09:31 Contributors

sangmu_s.png
[PNG image (Unknown)]
성남 상무 신협
Seongnam Sangmu Shinhyup
   



LIG_Insurance_Greaters.png
[PNG image (Unknown)]
과거 팀 엠블럼 과거 팀 마스코트
희망이, 나누미, 꾸미


의정부 KB 손해보험 스타즈
Uijeongbu KB Insurance Stars
창단 1976년
프로출범 2005년 2월 15일
구단명 변천 금성통신 배구단 (1976년 ~ 1982년)
금성사 배구단 (1982년 ~ 1985년)
럭키금성 배구단 (1985년 ~ 1992년)
럭키화재 배구단 (1992년 ~ 1995년)
LG화재 배구단 (1995년 ~ 2005년)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2005년 ~ 2015년)
구미 KB 손해보험 스타즈 (2015년 ~ 2017년)
의정부 KB 손해보험 스타즈 (2017년 ~ 현재)
연고지 경상북도 구미시 (2005년 ~ 2016)
경기도 의정부시 (2017년 ~ 현재)
모기업 KB손해보험 (KB Insurance)
구단주 양종희
단장 허정수
감독 권순찬
키트 스폰서 나이키
홈구장 의정부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홈페이지

대회 우승횟수 우승년도
대통령배-슈퍼리그 0회 역대 최고성적 - 준우승 : 5회
1985, 1987[1], 1991, 1995, 2002
V-리그 0회 -
KOVO컵 1회 2012

Contents

1. 구단 소개
2. 역사
2.1. 실업 시절
2.2. 구단 레전드
2.3. V-리그 시대
2.3.1. V-리그 원년부터 2006-07 시즌까지
2.3.2. 박기원 감독 시절
2.3.3. 2010-11 시즌
2.3.4. 2011-12 시즌
2.3.5. 2012-13 시즌
2.3.6. 2013-14 시즌
2.3.7. 모기업의 매각, 그리고 구단의 새로운 출발
3. 팀 특징
4. 2014-15 시즌 선수단



2012 KOVO컵 우승! 이거 얼마 만에 해 보는 우승이야?!

1. 구단 소개

V-리그의 남자 프로배구팀. 연고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홈 구장은 정희체육관. 까는 사람들은 LIG의 발음을 묘하게 비틀어서 에라쥐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대부분 엘라라고 부르는 듯.

2. 역사

2.1. 실업 시절

LIG손해보험[2]은 1976년 6월 24일, 당시 금성사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전신은 철도국-체신부 배구단으로 1970년대 후반 당시 공공기관·공기업이 운영하던 체육팀을 인수하여 재창단한 것이다.[3] 어쩄든 당시만 해도 꽤 많은 회사들이 실업배구구단을 창설했는데 몇 년 못가서 해체 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다가 럭키금성그룹이 배구단을 창설하면서 실업배구계의 민영팀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한다.

창단 이래 3~4년 사이에 종합선수권, 실업연맹전을 포함한 6개의 대회를 우승하고 각종 스타플레이어들을 입단시키는 등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하나 싶었는데 현재 배구 팬들이 떠올리는 LIG 특유의 맨날 당하기만 하는 안습 이미지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그 시기에 입단한 선수중에 김호철현대캐피탈 감독과 강만수우리카드 감독도 있다. 다들 2,3년 동안 활동하며 많은 우승컵을 안겨줬다. 그러나 현재 배구팬들은 김호철 감독과 강만수 감독을 현대자동차의 레전드로 생각하지 LIG의 레전드로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김호철 감독은 이탈리아에 진출한 후 대한민국에 복귀할 때도 친정팀인 LIG가 아니라 현대자동차로 돌아왔으며,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배구계의 위기 상황때도 LIG가 아닌 현대캐피탈을 선택했다(...)

창단 직후 곧바로 맞은 전성기도 1980년대 들어 곧 끝나게 되는데, 바로 려증권 배구단대한항공 배구단의 창단과 20년 넘게 지속된 악연의 라이벌 현대자동차 배구단[4]의 창단이 그것이다.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의 등장으로 LIG는 예전처럼 우승컵을 차지하는건 힘들어졌고 한양대를 위시한 대학배구팀의 저항도 거셌다. 게다가 선수수급문제 마저 돈을 앞세운 현대자동차에게 완벽히 밀려버렸다.

1991년 슈퍼리그에서 실업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전에서 LIG 마저 꺾어버리고 우승을 차지한 한양대학교의 우승 주역 멤버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문양훈을 현대자동차에서 모두 싹쓸이 스카웃해가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더욱 타격을 입었다.[5][6]

어지간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대학을 거치면 현대자동차에 입단해서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한 LIG는 고등학교 때부터 잠재력있는 선수들을 선택, 장학금 등을 지원해가며 대학 졸업 후 LIG로 입단하게끔 스카웃 전략을 바꿨고 LIG의 목표는 바로 김세진, 권순찬, 김기중이었다. 사실 권순찬과 김기중은 그렇다 쳐도 김세진은 다들 알다시피 역대급에 해당하는 공격수였고, 한양대학교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세진의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구준회, 후인정과 더불어 경기대 폭풍을 이끌었던 구본왕까지 스카웃에 성공하며 보란 듯이 반격에 나섰지만... 이러한 LIG의 꿈을 박살낸 일이 벌어졌다.

바로 삼성화재 배구단의 창단이다.

삼성화재 배구단이 창설되고 그 이후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알고 싶다면 이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사실 삼성화재는 김세진뿐만 아니라 구준회와 구본왕까지 노렸지만, LIG는 구단의 해체까지 각오하고 저항하자 김세진만 삼성화재로 가는 걸로 합의하고 구준회와 구본왕은 남았다.[7]

여기에 삼성화재의 1993, 1994, 1995학번 핵심 자원 싹쓸이 파동 이후 이어진 배구계의 냉랭한 분위기 속에 다시 1999-2000 슈퍼리그 출전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김완식, 문병택, 이종만, 김재만 등을 강제 은퇴시키는 뻘짓을 저지른다.

물론 저 때 뿐만 아니라 5년 뒤인 2002년 이경수 파동으로도 LIG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이름부터가 이천수-이만수를 짬밥도 안 되게 하는 장수생라인이다. 자유계약제였던 실업배구는 2000년부터 현재와 같은 드래프트제로 변경된다. 이는 모든 구단이 합의했다. 삼성화재는 창단 당시 스카웃전쟁에서 타 구단을 압도해버린터라 선수층이 두터웠고, 반대로 현대캐피탈이나 대한항공, LIG는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한 여파로 선수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어 평소에 뽑지 않았던 대학교에서 스카우트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최대어인 이경수는 순위로 보면 대한항공에서 지명할 확률이 99.9%였으나 뜬금없이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에 LIG와 이경수 간의 영입계약이 맺어졌다. 그리고 같이 드래프트를 거부한 경희대 세터 황원식도 영입했다. 협회와 타 구단은 당연히 반발했고 그 여파로 LIG는 2001-02 시즌 슈퍼리그에는 참가했지만 2002-03 시즌에는 아예 리그 자체 참가를 포기했다.[8] 나머지 98학번 선수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는 실시되었지만...[9]

결국 이경수 파동은 2003년 중반에 가서야 간신히 해결되어, 이경수와 황원식의 LIG행을 인정하는 대신 프로 출범 후 치르는 첫 드래프트에서 LIG가 행사할 1라운드 지명권을 대한항공에게 넘겨주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경수 파동은 2014년 현재까지 이 팀을 짓누르는 짐이 되고 말았다.

2.2. 구단 레전드

故 강두태, 홍기택, 서남원, 이상열, 강호인, 최영준, 김성채, 구본왕, 구준회

강만수, 김호철을 여기에 넣기도 하지만 이들은 금성에서 뛴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주로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데다가 일시 귀국 후에는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뛰었기 때문에 레전드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 故 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은 팀에서 주전으로 뛴 적이 없었으므로 역시 레전드라고 칭할 수는 없다.

강두태 시절부터 이어지는, 원맨 에이스 스파이커가 고독하게 팀을 이끌어가는 전통(?)이 있다. 말그대로 현역시절에 죽어라 고생하면서 기록을 세워가지만 결국 우승컵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는 계보인데, 강두태-이상열-김성채가 일단 있고, 현재는 이경수가 곧 뒤를 이어갈 위험이 있다. 더불어 이제 나이가 서른 줄에 접어든 김요한도 부상을 달고 살다 보니 안타깝다.참으로 안타깝다.

2.3. V-리그 시대

2.3.1. V-리그 원년부터 2006-07 시즌까지

배구의 인기가 갈수록 몰락하자 배구연맹은 프로화를 모색하고 2004년 슈퍼리그를 폐지, 세미프로 형태인 V-투어를 시작하며 가능성을 찾는다. 결국 2005년 V-리그를 시작하고 실업팀 중 한국전력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은 전부 프로화한다.

LIG는 삼성화재에서 신치용 감독의 참모 역할을 했던 신영철 코치를 2004년에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명예회복에 나선 듯. 하지만 완전 프로화가 되기 직전, 즉 V-투어 시절 구단끼리 스카웃 전쟁이 재개됐고 삼성화재는 이형두, 박재한, 고희진을, 대한항공은 장광균과 김영래를,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당시 송만덕 감독이 신기에 가까운 스카웃을 보여 주며 권영민, 이선규, 윤봉우, 장영기, 박철우를 영입했다.[10] LIG는 대어들을 다 놓치고 그나마 김종일, 김장수, 김재춘을 건졌으며 현대캐피탈에서 홍석민과 방신봉을 영입하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11] 역시 이경수에 매달리느라 전력 보강에 손을 놓았기 때문으로 이 후유증은 위에 언급했듯이 현재진행형이다.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했다면 2005년 프로화로 다시 시작된 드래프트에서 거물급 선수들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것도 실패. 1라운드 1순위는 이미 이경수 파동으로 대한항공에게 양보를 했기 때문에 당시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던 괜찮은 선수들을 대한항공(신영수, 김형우[12]) 대캐피탈(주상용, 하경민), 삼성화재(김정훈)[13]가 데려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하현용을 얻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손석범의 대안이 되어 주리라 생각했던 곽승철은 폭망하고 데뷔 시즌 후 결국 은퇴했다.어째 이 팀은 성균관대학교 출신과는 그다지 궁합이 안 맞는 듯

또 다시 선수 수급에 실패했지만 2005년 프로 원년에는 LIG는 대한항공을 누르고(!) 3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4위를 기록한 대한항공이 강동진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LIG는 임동규를 데려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05-06 시즌엔 외국인 선수 농사도 실패[14]하고 감독이 바뀌나 안 바뀌나 별 차이도 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또 3위를 기록(!) 결국 리그 4위를 기록한 대한항공이 김학민을 데려가 버렸다. 그리고 3위를 기록한 LIG는 이종화를 지명했고, 그 결과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5]

이 와중에 신영철 감독이 하현용, 곽동혁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고,[16] 이를 내부 고발한 당사자인 이동훈, 황원식, 김종일은 구단의 공공연한 홀대 속에 쫓기듯 상무에 입대했다. 그리고 공익요원 복무를 마치고 돌아 온 손석범은 합쳐서 3년 반이나 되는 공백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9년 이동엽, 안준찬과 함께 황동일을 상대로 우리캐피탈에 트레이드 됐다. 결국 2006-07 시즌의 부진이 겹쳐서 신영철 감독은 2007년 3월에 경질됐고, 후임 감독으로 온 사람이 바로 '이란 배구의 대부'라고 불리는 박기원 감독이다.[17]

2.3.2. 박기원 감독 시절

2007-08 시즌엔 꿈에도 그리던 LIG가 1순위를 차지했다. 물론 대한항공에 이어 4위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확률추첨제를 실시했던지라... [18]

2007-08 시즌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차지한 LIG는 당시 최대어인 인하대학교김요한을 지명했다.[19][20] 그리고 수비를 보강하고자 리베로도 한 명 더 지명했다. 바로 한기호.[21]

당시 선진화된 스피드 배구를 하고자 했던 박기원 감독은 인맥을 통해 당시 유럽 리그에서 대활약을 펼쳤던 스페인 출신의 라이트인 기예르모 팔라스카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스피드 배구는 무슨... 윙 리시버로 기용된 김요한은 리시브에 취약해 오히려 타 구단의 목적타 서브에 박살났고, 팔라스카는 당시 세터 이동엽의 느린 토스에 적응도 못했다. 게다가 팔라스카는 시즌 중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참가하느라 시간을 날려버렸고 막판에는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LIG는 2007-08 시즌을 날려 버렸다. 그래도 이 때 거둔 수확은 한 시즌 내내 김요한을 윙 리시버로 돌리면서 어느 정도 김요한을 완성시킨 것 밖에...[22]

2008-09 시즌 팔라스카를 돌려보내고 네덜란드 출신 카이 반 다이크를 데려왔다. 그리고 여기서 박기원 감독의 운명을 갈라버린... 그리고 김남성 전 우리캐피탈 감독의 최대 낚시질로 평가받는 LIG와 우리캐피탈의 3:1트레이드가 단행된다. 박기원 감독은 스피드 배구를 하기 위해 당시 신장도 크고 그나마 토스가 빠른 황동일을 눈여겨봤고, 그를 데려오고자 황동일을 지명했던 우리캐피탈에게 손석범, 이동엽-황동일 간의 트레이드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황동일에 미들블로커인 신영석까지 추가해서 2:2 트레이드를 시도하는데, 여기서 김남성 감독은 거의 배구 팬들 사이에서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는 낚시질을 해버린다. 바로 황동일 급의 세터를 받는 대신 당시 LIG가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안준찬을 추가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 대신 신영석의 트레이드를 묵살시켜 버렸다. 그래서 희대의 손석범, 이동엽, 안준찬 <-> 황동일의 3:1 트레이드가 성사됐고, 이것은 박기원 감독의 운명을 갈라놨다. 황동일은 애초에 아포짓으로 뛰다가 경기대학교 진학 전 뒤늦게 세터로 전향했기 때문에 토스의 질이 아주 나빴고 궤도도 일정치 않았다. 뭐 그래서 쓸데없는 모션과 짧은 토스, 게다가 네트와 바짝 붙여주는 괴상한 토스를 올려주는 등 세터로 보기엔 너무 미달이었고 김요한-이경수라는 걸출한 윙 리시버들과 수준급 용병 아포짓이 있는데도 별다른 성적도 못내고 무너져 벼렸다.[23]

결국 스피드 배구를 주장하면서 개혁을 가했던 박기원 감독은 성적에 목을 메게 되었고 2008-09 시즌엔 갑자기 용병 카이를 미들 블로커로 전향시키고 김요한을 아포짓으로 바꿔서 경기를 치루는 등, 2009-10 시즌엔 결국 삼성화재나 현대캐피탈 처럼 리시브를 강조한 구식 배구로 돌아오는 등 꽤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 2009-10 시즌에 중도 사퇴했다.[24] 시즌 잔여경기는 감독대행은 코치였던 김상우가 맡으며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박기원 감독은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2.3.3.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시작 전, 다시 한번 명예회복을 노리고자 당시 계약만료가 되었던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의 영입을 시도한다. 거의 합의 직전이라 언론에도 보도 자료를 돌리고 홍보에 나섰지만 김호철 감독이 LIG로 간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현대 수뇌부 사이에서 김호철 감독 붙잡기에 나섰고 결국 LIG가 아니라 다시 현대캐피탈 잔류를 선택하게 된다. 괜히 보도자료 돌리면서 설레발 쳤다가 창피만 당한 꼴. 게다가 FA로 풀린 현대캐피탈 세터였던 권영민 영입마저 불발로 돌아갔다.

결국 정식감독으로 임명된 김상우가 리그에 나서지만 황동일은 세 시즌째 나아지지 않았고, 그나마 중앙을 지켜줬던 하현용이 상무에 입대했고[25], 김요한과 이경수가 잇다라 부상을 당하며 불운한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보스니아 특급 밀란 페피치[26]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우리캐피탈과 KEPCO45, 삼성화재의 부진에 힘입어(?) 정규리그 4위를 기록, 준PO 진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삼성화재에게 패배하여 준플레이오프 탈락... LIG팬들은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이런 LIG를 까고 또 깠다...[27] 그래도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전패를 당한 데 비해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을 거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2.3.4. 2011-12 시즌

그러나... 김상우는 경질되어 엠스플의 해설위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김상우의 갑작스런 경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삼성화재식의 훈련 방식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려 하자 선수들이 여기에 반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후임 감독이 경기대 감독이었던 이경석. 그리고 당연히 프런트는 그야말로 신나게 까였다... 능력은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폭압적인 성향이고, 개인 비리 문제로 경기대학교에서 퇴진했다가 슬그머니 복귀한 이력의 감독인지라 당연히 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1-12 시즌 LIG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날개 공격 자원의 부족과 지나치게 비대한 세터와 리베로 자원이라 쓰고 막장이라 읽는다으로 인해 전력 불균형이 커진데다가 이경수와 페피치의 부상은 나머지 공격수들의 체력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 차례의 트레이드(김영래, 조성철 ↔ 황동일 / 주상용, 이효동 ↔ 임동규, 정성민)를 단행했고 페피치까지 중도 퇴출하면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시즌 초부터 떨어진 6위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승부조작 파동으로 중도 이탈한 상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하위.

2.3.5. 2012-13 시즌

지난 시즌 KEPCO, 드림식스에게도 밀리며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센터 하현용이 상무에서 전역했고, 날개 김요한과 이경수가 부상에서 회복된 상태에서 수원컵 대회를 맞이했다. 컵대회 결승에서 삼성화재를 3-0 셧아웃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995년 전국체전 이후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번외 경기가 아닌 KOVO 주관 리그 정식대회에서 우승하기로는 거의 최초의 우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28] 또한 오프시즌에 영입한 쿠바 국가대표인 레올 까메호 드루티에게 거는 기대 또한 있어 순식간에 시즌 다크호스로 떠오른 상태. 제발 사촌팀이 시즌 전에 설레발 쳤던 짓은 하지 않길 바랄 뿐. 그러나...

LIG는 정규 시즌에 돌입하면서 상승세를 타며 전반기를 2위로 돌았지만 결국 4라운드부터 상승세가 꺾이면서 원점으로 돌아갔고, 2013년 2월 13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다 잡았던 경기를 역전패당하자 이경석 감독을 중도 경질했다. 트레이너로 영입한 브라질 출신의 조세 라이먼도 레이테 감독대행[29] 체제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고 까메호를 시즌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돌려보내면서 잔여 시즌을 사실상 접었다.오히려 손정식 코치 겸 통역[30]이 바빴을 뿐 성적은 전년도와 똑같이 꼴찌에서 두 번째(5위).

시즌이 끝난 뒤 조세 라이먼도 레이테 대행은 트레이너직에 복귀했고, 문용관 전 대한항공 감독을 영입했다.

몇 년 후 오레올의 동생인 오스멜도 대한민국에서 뛰게 됐다는 것 뛰게 된 팀은 다른데, 불명예스럽게 쫓겨난 것은 같았다.

2.3.6. 2013-14 시즌

특색 없던 팀 로고를 방패모양으로 바꾸고, 문용관 신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어창선 전 도로공사 감독을 영입했다. LIG에서도 하이패스 다이어트[31]를?

시즌 개막전에서 한국전력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한 뒤 이어진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김요한이 손등 부상을 당해 한동안 전열에서 이탈했다. 여기에 2라운드에서 러시앤캐시에 완패하며 신생 팀에게 창단 첫 승리를 안기는 등 시즌 시작부터 힘겨운 행보를 이어갔다.

외국인 선수 토마스 에드가가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김요한이 다행히 3라운드부터 합류하면서 쌍포를 형성했으나 순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결국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그나마 러시앤캐시의 상승세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다가 힘겹게 5위를 지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수확이라면 신인 손현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과,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가 복귀한 정기혁이 센터 한 자리를 지켜주었다는 것, 그리고 리베로-세터 멀티 신승준을 얻은 정도.

시즌 종료 후 한국전력에 주상용과 권준형을 내주고 김진만양준식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어창선 수석코치와는 재계약하지 않고 강성형 전 현대캐피탈 코치를 수석코치로 영입한데 이어 국가대표팀 코치로 있던 김경훈 전 현대캐피탈 코치를 추가로 데려왔다.

2.3.7. 모기업의 매각, 그리고 구단의 새로운 출발

모기업인 LIG손해보험이 2014년 5월 매각대상으로 나왔고 6월 27일 KB금융그룹 이사회에서 인수승인을 확정 지으며 LIG손해보험 지분 19.47%(1168만 2580주)를 685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후속 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KB금융지주의 내분 사태가 겹치면서 매각 작업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가 됐다가 겨우 수습되었다.

일단 2014-15 시즌은 그대로 LIG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가운데, 12월 24일이 되어서야 금융위원회에서 LIG손해보험의 KB금융지주 편입을 승인함에 따라 2015년 1월 중순 이후 팀명을 변경할 예정이었지만 올스타전을 전후해서도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남은 시즌은 LIG손해보험의 이름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2014-15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배구단의 이름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를 유지할 예정이다. 관련 기사

한편 5라운드 도중인 2015년 2월 5일, 문용관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였다. 남은 시즌은 강성형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치르게 되었다.

2014-15 시즌은 13승 23패, 승점 36점으로 6위로 마감하였다. 그래도 LIG로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카드를 이기며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은 위안.

4월 7일 강성형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새롭게 탈바꿈하는 KB호의 선장이 되었다. 이틀 뒤인 9일에는 현대캐피탈에서 권영민을 받고 정영호와 노재욱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3. 팀 특징

  • 유독 현대캐피탈 상대로 엄청 쩔쩔맨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래 2013-14 시즌 종료까지 무려 5승 54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냈다. 그야말로 현캐에게 호구요, 승점자판기이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천안 유관순체육관 원정경기 전적이 무려 25전 전패(...)로 10시즌 동안 단 1승도 거둔 적이 없다. 한국전력은 유관순체육관 연패 기록을 끊었는데 말이다(...). 경기장 이름 원상복귀 해야 하나?
    이후 2014-15 시즌에 1패를 추가하며 기록을 26연패로 늘렸으나, 2014년 12월 21일, 드디어 LIG는 천안 원정에서 희대의 명경기로 26연패를 탈출하였다. 그리고 2014-15시즌 현대캐피탈과의 상대 전적이 3승 3패로 동률이 됐다.(3승이 모두 3:2 승리)
  • 선수단 숙소(클럽하우스)와 경기장이 배구단 중 제일 멀다. 선수단 숙소는 수원시의 LIG 연수원을 사용하고 있는데, 막상 홈 구장은 구미시 광평동에 있다. 오죽하면 시즌 중 구미 6연전이 있었는데 감독은 원정경기같다고 푸념하곤 한다. 친척 농구단보다 거리가 짧은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듯.[32] 대구・경북 중 어디라도 숙소 지어야 하는 거 아님?
  • 여자부 막장팀보다는 낫지만 남자부 3위 경쟁팀과 마찬가지로 감독 경질이 남자 배구 팀 중 빈번한 편이다.[33] 근데 그걸 탐내는 [34]은 뭘까?
  • 홈 구장인 구미시 팬들의 배구 사랑이 그야말로 엄청나다. 3~4위는 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5위권을 전전하는 팀성적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근데 옆동네에 있다 야반도주한 농구팀이 생각나는 건 기분탓이다. 가족 단위의 관중들이 많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팬층이 다양하다. LIG가 실업부터 이어온 전통있던 배구팀이다 보니 지역에 뿌리내릴 때 홍보도 열심히 했었고 팬서비스도 많이 했던 게 이만큼 충성도가 높은 팬들을 거느리게 한 요인이다. 그러니 꾸준히 플옵권 팀으로 커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구미시민들은 모기업 매각에 따른 연고지 이전염려하고 있다. 2015년 여름 컵 대회가 청주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일각에서는 여자농구 팀이 연고지로 있는 청주로 옮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4. 2014-15 시즌 선수단

2014-15 시즌 구미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 선수단
감독 강성형 (대행)
코치 김경훈, 손정식
레프트 2.손현종 5.김요한 8.김나운 11.이경수 13.정영호 14.김진만
라이트 6.토마스 패트릭 에드가
센터 1.이강원 4.정기혁 7.하현용 9.이수황 15.이한호 19.김민규
세터 10.이효동 12.노재욱 17.양준식 20.신승준
리베로 3.부용찬 16.김진수 18.최돈선

----
  • [1] 4회 대통령배
  • [2] 이하 LIG, 2005년 이전에는 금성사, 금성통신, 럭키금성, LG화재 등 과거 럭키금성-LG그룹의 여러 자회사들이 운영해 왔으나, LG그룹에서 LIG그룹이 계열 분리되고 지역연고 홈앤드어웨이 리그 방식으로 바뀌며 현재의 팀명을 쓰고 있다. 다만 LIG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LG에서 분리된 뒤에도 한동안 LG화재라는 이름을 유지해 왔다. 본문에는 예전 일화도 LIG라는 명칭으로 통일해 기재함을 알린다.
  • [3] 이런 방식으로 재창단을 한 다른 사례로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있다. 현대건설의 전신은 한국산업은행 여자배구단이었다.
  • [4] 물론 현대캐피탈 팬들은 LIG를 라이벌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 자체가 넘사벽이라...
  • [5] 이러한 싹슬이로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에선 현대자동차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여졌고, 협회의 중재안으로 LIG는 윤종일을 데려올수 있었으나, 4인방 전원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는지 거절하게 된다. 물론 이건 LIG의 삽질 중 하나.
  • [6] 그리고 1991-92 대통령배(슈퍼리그의 전신) 대회 상무 우승의 주역 중 하나였던 센터 유병종을 입대 전의 태도 불성실을 이유로 복귀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 [7] 구준회는 그런 대로 활약했지만 구본왕은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했다.
  • [8]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선수가 손석범이다. 손석범은 이경수 파동으로 1년 반을 쉬고, 다시 늦은 나이의 공익요원 복무로 2년 넘게 쉬면서 예전 기량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우리캐피탈에 트레이드된 후 은퇴했다.
  • [9]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드래프트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명을 받지 못한 홍익대 세터 원영철이 아무런 태클을 받지 않고 LIG로 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 [10] 현대캐피탈이 영입한 저 5명은 훗날 리그 2연패의 주역들.
  • [11] 물론 현대캐피탈행이 유력했던 세터 손장훈을 빼오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정작 손장훈은 폭망했다.삼성화재로 간 그의 라이벌 유부재 역시 폭망하고 3회 연속 상무 입대 실패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긴 채 은퇴했다.
  • [12] 신영수는 대한항공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지명했고, 김형우는 바로 이경수 파동 해결에 따라 LIG가 대한항공에게 넘긴 지명권으로 얻었다.
  • [13] 레이싱 모델 지혜의 남편이다.
  • [14] 엄밀히 말해 실패는 아니었다. 당시 외국인 선수였던 키드는 현대캐피탈의 숀 루니 다음으로 활약이 좋았다. 삼성화재는 아쉐가 폭망하고 리엄 프리디를 데려왔지만 프리디는 삼성화재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알렉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 [15] 물론 괜찮은 신인 나온다고 일부러 져주기를 해서 꼴찌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결국 여자부에서 병림픽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16] 이 때부터 신영철 감독에게 밉보였던 곽동혁은 군 면제였음에도 돌연 은퇴 공시되었고 한참 지나 한국전력의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다시 신영철 감독과 만나게 되고 1년 뒤 삼성화재로 트레이드된다.
  • [17] 물론 이란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기 전에도 이탈리아에서 성공을 거둔 지도자. 현재는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이다.
  • [18] 그런데 확률추첨제만 아니었어도 LIG에 이어 2순위를 차지하게 될 대한항공이 확률추첨제로 오히려 3순위로 밀려버리고 뜬금없이 삼성화재가 2순위가 돼 버렸다.
  • [19] 사실 2007-08 드래프트는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로 불린다. 김요한과 함께 인하대학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광우, 임시형도 포함됐으며 현재 대한항공의 주전으로 뛰고 있는 진상헌과 한선수까지 참가했다. 역대 드래프트 명단을 보면 제일 화려했을 때가 이 때였다.
  • [20] 여담으로, 대한항공은 당시 세터가 필요했고 확률추첨제에서도 2순위를 가져갈 확률이 높아서 세터 유광우를 지명하려고 했었다. LIG도 세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 생각에서 이미 김요한의 지명을 생각해둔 상태. 그런데 앞서 설명했 듯 뜬금없이 삼성화재가 2순위로 걸렸고 삼성화재 역시 최태웅의 뒤를 이을 세터가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광우를 지명했다. 대한항공은 울며 겨자먹기로 두번째 취약 포지션이었던 센터보강을 할수 밖에 없었고 우승팀이자 드래프트 최하순위였던 현대캐피탈은 임시형을 지명하는 행운을 거뒀다. 대한항공은 노렸던 유광우 대신 한선수를 지명했다. 그러나 유광우는 부상 오진에 따른 치료 및 재활로 거의 두 시즌을 날렸고 한선수는 데뷔 시즌 말미에 주전 세터로 도약하면서 국가대표 주전 세터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대한항공이 승리하는 듯했으나 유광우가 살아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선수는 상근예비역 입대로 한창 때에 자리를 비우게 된다.
  • [21] 보통 선수들이 못하면 팬들은 억지로라도 쉴드를 쳐주는데 LIG팬들이 쉴드치는 것도 포기하고 오히려 타 구단 팬들보다 더 대차게 까는 선수가 바로 한기호. 리베로이면서 리시브도 윙 리시버에게 떠넘기고 공격이 오면 안막고 도망가면서 오히려 심판에게 아웃이라고 소리치는 등... 저러한 행동으로 LIG팬들은 그에게 걸맞는 별명을 하나 만들어줬다 '피구왕 한기호' 어느 정도 인지궁금하면 LIG팬들에게 '한기호 라는 선수 수비 잘 하는 선수인가요?'라고 질문하자. 그럼 LIG팬들에게 한 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용찬에게 주전 리베로 자리를 내줬다. 이제는 상무에 입대했으니 박삼용 감독이 선수로 만들어주길 바랄 수 밖에... 상무 전역 후도 그런 모습이면 방출이지...
  • [22] 실제로 시즌 초반에는 리시브가 박살났지만 후반부에 들어선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 시즌은 부상 당하기 전까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 [23] 반면에 황동일로 낚시질에 성공한 김남성 감독은 오히려 삼성화재에서 제2의 여오현으로 기대하고 있었고 당시 상무에서 복무 중이었던 이강주를 전력보강 선수로 빼내 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강주는 FA를 선언하고 친정 팀으로 돌아갔다.
  • [24] 참고로 말하자면 2009-10 시즌 LIG가 영입한 외국인 선수는 피라타. 당초 데려왔던 팜펠이 석연치 않게 퇴출된 뒤 영입한 선수다. 그런데 당시 삼성화재에 입단한 가빈 역시 LIG가 원래 노리던 선수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스카웃 전쟁에서 패 to the 배.
  • [25] 하현용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아 조기전역을 노렸지만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남은 복무 기간을 다 채웠다.
  • [26] 자국 국가대표 출신의 아포짓으로, 이경수 김요한의 연쇄부상으로 망가져버린 2010-11 시즌, 엘아지에서 홀로 공격을 담당하며 플옵 진출까지 이룬 엘아이지 역사상 최고의 용병. 그러나 다음 시즌에선 본인이 부상을 당해버려 시즌 중반에 쓸쓸히 떠나야 했다. 하지만 부상 회복 후 일본 배구계의 명가인 사카이 블레이저스에 진출, 팀을 우승시키며 건재함을 뽐냈다.
  • [27] 삼성화재는 창단 시절 LG에게 빼앗은 선수만 해도 우승 트로피 몇 개나 되는 수준이어서 웬만한 LIG팬들은 삼성을 정말 증오한다...
  • [28] 대통령배 출범 이전 제외.
  • [29] 감독대행이긴 하지만 V-리그 출범 후 최초의 남자부 외국인 사령탑이다. 여자부는 2009-10 시즌 중반부터 2010-2011시즌까지 팀을 이끈 흥국생명의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대행의 사례가 있었다.
  • [30] 어릴 적에 아르헨티나에서 살았고 브라질과 일본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LG화재에 입단했지만 십자인대 부상으로 은퇴하고 코치 겸 통역으로 활동 중이다. 따라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영어 등을 구사한다. 아버지는 전 아르헨티나 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남미 배구의 대부’로 불렸던 손영완이다.
  • [31] 도로공사 감독 부임 시즌인 2010-11 시즌 준비 전에 선수들의 혹독한 체중 감량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덕분에 부임 첫 시즌에 이보람, 황민경의 강서브와 화끈한 공격을 바탕으로 한 한방 배구라는 팀 컬러를 만들어 정규리그 2위/플레이오프 3위, 그리고 2011 KOVO컵 우승을 이끌었다.
  • [32] 이 농구단은 숙소는 서울 송파인데 연고지는 구미보다 더 남쪽의 창원이다... 그런데 훈련장을 이천시로 이전한다고 하니...
  • [33] 흥국생명은 넘사벽이고, 대한항공도 프로화 이후만 따져도 차주현-문용관-진준택-신영철-김종민, LIG도 신영철-박기원-김상우-이경석-문용관으로 두 팀은 현재까지 5명의 감독이 부임했다.
  • [34] 여긴 지난 시즌이 5번째 시즌인데 부임한 감독님이 무려 4명이다... 팀 상황상 그렇다 쳐도 말이다. 김남성-박희상-김호철-강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