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광저우 에버그란데"

E,AHRSS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last modified: 2015-03-21 13:37:39 Contributors

2015 중국 슈퍼 리그
GUR.jpg
[JPG image (Unknown)]
광저우 푸리
(Guangzhou R&F)
GUE.jpg
[JPG image (Unknown)]
광저우 헝다
(Guangzhou Evergrande)
GUI.jpg
[JPG image (Unknown)]
이저우
(Guizhou)
LIA.jpg
[JPG image (Unknown)]
오닝
(Liaoning)
BEI.jpg
[JPG image (Unknown)]
베이징
(Beijing)
SHA2.jpg
[JPG image (Unknown)]
산둥
(Shandong)
SHD.jpg
[JPG image (Unknown)]
하이 상강
(Shanghai SIPG)
SHX.jpg
[JPG image (Unknown)]
하이 선신
(Shanghai Shenxin)
SHH.jpg
[JPG image (Unknown)]
상하이 선화
(Shanghai Shenhua)
SHI.jpg
[JPG image (Unknown)]
자좡
(Shijiazhuang)
JIA.jpg
[JPG image (Unknown)]

(Jiangsu)
CHA.jpg
[JPG image (Unknown)]

(Changchun)
CHO.jpg
[JPG image (Unknown)]

(Chongqing)
TIA.jpg
[JPG image (Unknown)]
톈진
(Tianjin)
HAN.jpg
[JPG image (Unknown)]
저우
(Hangzhou)
HEN.jpg
[JPG image (Unknown)]

(Henan)

2015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H조
Guangzhou_Evergrande_logo.jpg
[JPG image (Unknown)]
광저우 헝다
(Guangzhou Evergrande)
Western_Sydney_Wanderers_logo.jpg
[JPG image (Unknown)]
웨스턴 시드니
(Western Sydney)
Kashima_Antlers_logo.jpg
[JPG image (Unknown)]
가시마
(Kashima)
FC_Seoul_logo.jpg
[JPG image (Unknown)]
서울
(Seoul)


헝다그룹 산하 스포츠단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축구)
광둥 헝다
(배구)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Guangzhou Evergrande Taobao F.C
정식명칭 广州恆大足球俱乐部淘宝
Guangzhou Evergrande Taobao Football Club
구단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헝다 그룹(恆大集团)
알리바바 그룹(阿里巴巴集团)
각각 지분율 50%
소속리그 중국 슈퍼 리그(Chinese Super League)
창단연도 1954년
연고지 광둥 성 광저우 (Guangzhou)
홈구장 톈허 스타디움(Tianhe Stadium, 수용관중 58,500석)
구단 대표 류융줘(刘永灼)
최고기술고문 마르셀로 리피(Marcelo Lippi)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Fabio Cannavaro)
라이벌 베이징 궈안
애칭 화남의 호랑이(华南虎)
공식 홈페이지 http://www.gzevergrandefc.com

중국 슈퍼 리그에 소속된 클럽. 중화인민공화국 광둥 성 광저우시를 연고로 하는 클럽이다. 광동어로는 궝짜우 항따이라고 읽는다. K리그의 명문 클럽들이나 알 이티하드에 이어서 새로운 아시아 깡패로 떠오를 뻔 하다가 1년만에 깡패 구단 이름값을 못 하는 수준으로 돌아가 버리기는 했지만, 중국 내에서는 리그 4연패에 빛나는 명실상부한 절대자.

영문 명칭인 광저우 에버그란데로도 본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여담이지만 에버그란데는 어디서 그대로 나온 것이 아니라 모기업 헝다그룹의 중국어 恆(Heng, 항상) 大(Da, 크다) 이름을 의역해 만든 번역어이다. 그래서 자금력도 크고 아름답구나...

Contents

1. 개요
2. 초창기
3. 지아 A리그 시절
4. 암흑기
5. 중국 슈퍼리그
6. 클럽의 현재
7. AFC 챔피언스 리그
7.1. 2012 시즌
7.2. 2013 시즌
7.3. 2014 시즌
8. 주요 선수

1. 개요

광저우 헝다의 전신은 1954년 6월에 창단된 중국 최초의 프로 축구팀인 중난체육원 경기지도과 축구팀(中南体院竞技指导科足球队)의 백팀(白队), 약칭 중난바이두이(中南白队) 축구단이다.

1993년 1월에 타이양선 그룹이 팀을 인수하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타이양선(广州太阳神)'으로 변경했고,2006년에 광저우 이야오 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도 '광저우 이야오(广州医药)'로 변경되었다. 2008년 광저우 이야오는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했으며 2009년에 슈퍼리그 9위를 차지했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2010년 2월 23일에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갑급 리그(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2010년 3월 1일에 헝다 부동산 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헝다(广州恆大)'로 변경했다. 헝다 그룹은 2010년 3월 25일에 대한민국의 이장수 감독을 영입, 2010년 10월 30일에 갑급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광저우 헝다는 다시 슈퍼리그로 승격되었다.

2. 초창기

1955년 리그에 참가해 8위를 기록했지만 강등당하고 1956년 2부리그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승격이 좌절되었다. 1957년 8위를 기록했고 1958년 2부리그 우승을 거두며 승격했다. 하지만 1960년 2년만에 열린 리그에서 17위로 겨우겨우 강등을 면했고 1961년 9위를 기록했으나 1962년 18위로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1963년 20등 꼴지를 기록하면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당했고 1964년 7위, 1965년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게 되고 홍위병에 의해 선수, 코치, 감독이 자본주의, 반동분자로 몰리면서 팀이 풍비박산나게 된다.

1976년 문화대혁명은 끝났자만 휴우증이 너무컸고 1974년리그도 참가 못하고 한동안 헤메다가 1980년 겨우 겨우 3리그로 복귀 하게된다. 1980년 3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해 2부리그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해 20년만에 1부 리그 복귀를 하게된다. 그러나 1982년 15위를 기록해 강등을 당했고 1983년 2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승격하지 못해서 1년더 2부리그에 머물러야 했고 1984년 9위를 기록했으나 어찌어찌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1985~1988년 4년 연속 7위를 기록하면서 힘겨운 강등 싸움을 하다가 1989년 8위 꼴찌로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90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해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해 1991년 4위를 기록하고 1992년 팀창단 처음으로 1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게된다. 그러나 1993년다시 8위로 곤두박질 치게 된다.

3. 지아 A리그 시절

지아 A리그 첫시즌에 참가해 1994년 2번째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1995년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6년 7위 1997년 8위를 기록하면서 순위가 DTD를 찍게 되더니 1998년 14위로 다시 강등당하게 된다.

4. 암흑기

1999년 2부리그에서도 8위 2000년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4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하고 2002년 11위로 다시 추락하게 된다. 2003년 3위를 기록하면서 승격을 노렸으나 승격이 안됐다.

2004년 슈퍼리그가 출범되었으나 광저우 입장에서 보면 강건너 불구경 이야기였고 2부리그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2004년, 2005년 2부리그 연속 4위를 기록했고 2006년 3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했고 2007년 1부리그 우승을 하면서 9년동안 기나긴 2부리그 늪에서 빠져나와 1부리그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5. 중국 슈퍼리그

2008년 1부리그에 합류해 7위라는 나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고 2009년 9위로 성적을 마감했으나 승부조작을 한게 들통나 7위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나란히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러나 2010년 헝다 부동산 개발에게 인수되어 오늘날 "광저우 헝다"로 바뀌게 되고 베이징 궈안에서 잘린 이장수 감독을 광저우 사령탑에 선임하는걸 시작해서 팀전력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2010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11년 4라운드까지는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4라운드 이후 1위에 정착하게 되고 10라운드부터 연승가도를 달리게 되고 이후 2위 베이징 궈안과 승점15점 차이를 보이면서 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6. 클럽의 현재

2011년, 헝다 그룹이 클럽에 돈지랄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브라질 리그 볼라 지 오우르 수상자[1] 출신인 다리오 콘카를 이적료 약 107억원 연봉 약 160억원에 영입한 데 이어[2], 대한민국의 스타플레이어 조원희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였다. 또 자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인 양하오, 펑샤오팅[3] 등을 영입하였다. 결국 2011시즌 승격 첫해만에 중국 슈퍼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 광저우 헝다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2012년에는 아예 탈 아시아급의 투자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파라과이의 스타 카스 바리오스를 1200만 달러(약 134억원)에 영입했고, 전북 현대에서 뛰던 후앙 보웬을 200만 달러(약 22억원)에 영입했다.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을 동메달로 이끌었던 신예 김영권을 250만 달러에 영입했다. 감독 또한 세계 수준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팀이 강팀으로 도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이장수감독의 뒤통수를 치고을 경질하고 이탈리아의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을 영입하였다. 리피 감독의 연봉은 무려 1000만 유로(약 150억원)로 유럽 최고 명장인 무리뉴나 안첼로티와 비슷한 수준이며 전속 코치 등을 포함하면 코치진 연봉만 총 200억원이 넘는 규모라고 한다. 아시아 한계돌파

2012 시즌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아시아의 새로운 강호로 떠올랐다. 2012시즌 중국 슈퍼 리그, FA컵을 우승함으로써 더블을 기록했고 중국 슈퍼 리그를 2연패하였다. 요즘 스타플레이어가 많이 주입되고 있긴하나 이 사기멤버로 우승 못하는게 다 이상하다 심지어 2013년에는 리그와 FA컵, AFC 챔피언스 리그 모든 경기를 통틀어 단 세 번 패했다. 리그에서 톈진 테다에 한 차례, 슈퍼컵에서 장쑤 세인티에 한 차례 그리고 ACL 조별리그에서 우라와 레즈에게 한 차례 패한 게 전부다. 24승 5무 1패 승점 77점을 기록하면서 2위 산둥 루넝과 승점을 18점 차이로 벌리면서 3번째 우승을 차지하고 AFC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여 중국 FA컵만 우승하면 아시아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결승 1차전에서 2:0, 2차전에 1:2로 통합 3:2로 준우승에 그치는 바람에 트레블은 실패했다. 서울 팬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탈리아에서 콘카의 대체자로 볼로냐 FC 1909의 주전 공미이자 나름 스타플레이어 레산드로 디아만티를 영입에 성공하였다. 이적료는 9M유로, 연봉은 4M유로(!)이며 처음에는 7M까지도 생각했다고. 클럽 레코드를 넘어 이정도면 아시아 레코드급...이 떡밥이 처음 풀리는 날 디에고 포를란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였다. K리그 클래식은요?? 돈이 없잖아, 걔네 연봉이면 웬만한 구단 1년 예산

2014년 6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그룹 광저우 헝다의 지분 50%를 12억위안(한화 약 1,966억 원)에 인수하였다. 이로서 광저우는 헝다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의 공동소유 상태.

이를 반영하듯 팀 이름도 광저우 헝다에서 알리바바 소유의 쇼핑몰 이름인 타오바오를 붙여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2014년 7월 11일에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15골을 넣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고, 나이가 아직 만 32세로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나이이기에 더욱 놀랍고 두렵다. 리피 감독 후광 + 구단 자금력으로 이탈리아 국대 선수 다 긁어 모을 기세

2014년 11월 5일 리피감독이 최고기술 책임자로 물러나고 이탈리아 전설의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새 감독이 되었다. 맙소사

한술 더 떠서 2015년 1월에는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 및 2014년 볼라 지 오우르 수상자 히카르두 굴라르와 유로파 조별예선 득점 1위 알란 카르발류까지 영입하였다. 물론 작년에 39경기 출전해서 34골을 때려박은 엘케손은 아직도 잘 계신다.(...) 근데 알란이 얼마 안가 인대파열로 6개월간 드러눕게되었다(...)

7.1. 2012 시즌

2012년 팀창단 처음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해 H조에 속해 전북 현대 모터스, 가시와 레이솔, 부리람 PEA와 만나게 되었다. 조별 예선 1차전에서 자타공인 우승 후보였던 전북 현대 모터스를 5:1로 꺾어 아시아 축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하지만 2차전에서 조 최약체인 타이 부리람 PEA에게 홈에서 1:2로 패하고 3차전 가시와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는등 우승후보로 보기에는 좀 이른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나 4차전 가시와 레이솔을 홈으로 불러들여 3:1로 박살을 냈지만 5차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 홈경기에서 전반 10분 다리오 콘카의 페널티킥으로 1:0으로 앞서가나 했지만 43분 이승현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90분 추가시간에 이동국에게 역전골, 페널티킥 골을 내주며 3:1로 무너지게 된다. 결국 4팀다 진출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부리람 원정을 떠나게 되고 2:1로 겨우겨우 역전승을 일궈내 3승1무2패를 기록 조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16강에서는 FC 도쿄를 홈으로 불러들여 전반 31분 클레오가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도쿄의 공세가 만만치 않자 침대축구를 시전하면서 시간을 끌기 시작한다. 그와중에 조원희가 갈비뼈 부상으로 실려가면서 경기가 많이 불리할때쯤에 심판에 종료휘슬로 겨우겨우 8강에 진출한다.

8강전에서는 동아시아 킬러 알 이티하드를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알 이티하드 홈에 불려가 4:2로 크게 털렸다. 그러나 2차전 자기 홈에서 2:0으로 앞서서 원정골 원칙에 의해 4강에 가나 싶었는데 80분 실점을 내줘 골득실로 8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7.2. 2013 시즌

2013년 챔피언스리그에서 F조에 속해 전북 현대 모터스와 또 만나고, 태국 무앙통 유나이티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를 3:0으로 뭉개도 2차전 전번 패배를 설욕하려던 전북과 원정에서 1:1로 비기고 3차전 무앙통과 홈경기에서는 4:0대승을 거두며 중반 1위로 승승장구 중이다.

4차전 무앙통 원정 경기에서도 4:1로 또다시 뭉개버렸다. 5차전 일본 원정에서 3:2로 패배했지만 16강 진출은 확정지었고 마지막 6차전 전북과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3승 2무 1패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호주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로 확정되었다. 원정 1차전에서는 전반 7분 듀크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28분 바리오스가 골을 넣으면서 동점을 만들고 후반 31분 무리퀴가 골을 넣으면서 경기는 2:1로 역전되고 이대로 끝나면서 1차전은 광저우 승리로 끝났다. 2차전 홈에서는 홈팬들에 응원에 힘입어 전반 7분 무리퀴가 선제골을 넣고 전반 종료직전 패널티킥을 얻어내 콘카가 침착하게 성공하면서 2:0으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 23분 가오린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1, 2차전 합계 5:1로 8강에 무난하게 진출하게 된다.

8강 상대는 카타르 레크야를 만나게 되었다. 홈 1차전에서 전반 내내 공세를 펼쳤지만 득점 없이 전반전을 마쳐야 했지만 후반 27분 광저우가 선제골을 터트리며 앞서 나갔다. 광저우의 다리오 콘카는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팀에 리드를 안겼다. 4분 후인 후반 31분에는 엘케손이 추가골을 넣으며 점수를 2:0으로 만들었다. 레크야는 골을 넣기 위해 분투했지만 광저우 수비에 막혀 골을 넣지 못하고 이대로 경기가 끝났다.

원정 2차전에서는 광저우가 전반 14분 콘카, 전반 16분 엘케손이 골을 넣으면서 2:0으로 앞서나갔다 전반 21분 레크야는 골대를 3번이나 맞히는 불운이 따랐고 전반 31분에는 무리퀴가 연속골을 넣으면서 3:0이 되었다. 후반 레퀴야는 후반 6분 장 린펑의 자책골로 3:1이 되었으나 후반 32분 엘케손이 한 골을 더 넣으면서 4:1로 스코어가 벌어졌다. 1, 2차전 합계 6:1로 레크야를 누르면서 4강진출에 성공했다.

4강전 상대는 가시와 레이솔과 만나게 되었다. 광저우는 원정경기임에도 전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가시와를 압박했다. 비록 전반 10분 만에 호르헤 바그너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후반 들어 더욱 거센 공세를 퍼부으며 역전을 일궈냈다. 광저우는 후반 13분 무리퀴가 동점골을 넣은데 이어 후반 22분 다리오 콘카가 추가골을 넣어 승부의 균형을 가져왔다. 가시와는 승부를 뒤집기 위해 선수 교체 등으로 분위기 전환을 노렸지만, 문전에서 기회를 잡아도 골로 연결하지 못하며 추격하지 못했다. 오히려 광저우는 후반 37분 다리오 콘카의 도움을 받은 엘케슨이 한 골을 더 넣었고, 후반 46분 무리퀴가 추가골을 넣어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원정에서 4:1로 이긴 광저우는 홈에서 편안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2차전 홈에서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콘카-무리퀴-엘케슨 삼각편대가 가시와 골문을 흔들었으며 전반 14분 엘케슨의 헤딩 슈팅이 가시와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반칙이 선언되며 무효골 처리가 됐다. 하지만 광저우는 2분 뒤 선제골을 터트렸다. 첫 기회를 반칙으로 날려보냈던 엘케슨이 콘카의 코너킥을 침착하게 잡아낸 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왼발로 선제골을 만들어 냈다.

후반들어서 가시와가 조금 공세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골결정력 문제를 들어내면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고 오히려 후반 12분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룽하오의 크로스를 콘카가 머리에 정확히 맞히며 광저우에 2번째골을 만들어 냈다. 이후 가시와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후반 34분 무리퀴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수비수 한 명을 앞에 둔 채 오른발로 3번째 골을 터트렸다. 무리퀴는 후반 42분 골키퍼까지 제친 뒤 쐐기골을 뽑아내며 여유있게 4:0을 만들어 냈다. 1, 2차전 총합 8:1로 대승한 광저우는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 진출한 광저우는 에스테그랄을 꺾고 올라온 K리그 클래식FC 서울과 ACL 결승전을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를 예정이다.

1차전 FC 서울과 원정경기에서 전반 10분 에스쿠데로에게 실점했지만 29분 엘케슨이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슛으로 1:1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13분 순시앙이 올린 크로스를 가오린이 오른발로 침착하게 받아 넣어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후반 37분 데얀에게 실점하면서 2:2가 되었고 경기는 팽팽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양팀 모두 추가득점없이 경기는 2:2로 끝났고 광저우는 원정골 이점을 안고 홈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후반 12분 무리퀴가 서울 수비 뒷공간으로 내준 공간패스를 엘케손이 받아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켜 1:0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후반 17분 데얀에게 동점골을 내주면서 1:1 동점이 되었다. 이후 광저우는 공수 조절을 하며 서울에 공격을 차단했고 결국 경기는 1:1로 종료 합계 3:3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광저우가 팀창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다.

곧이어 FA컵 결승에도 진출하여 우승한다면 AFC 챔피언스리그 개편이후로 처음이자,종전 클럽컵 대회까지 합치자면 태국농업은행(타이)-(1995년) 이후 18년만에 2번째 트레블이다. 하지만 구이저우 런허에게 1차전 원정을 0-2로 패했고 2차전 안방경기에서 2-1로 이기는 통에 종합성적 2:3으로 밀려 준우승하면서 트레블 달성은 실패했다.

2013년 FIFA 클럽 월드컵에선 아프리카 클럽챔피언인 알 아흘리(이집트)를 상대로 엘케손과 다리오 콘카가 나란히 골을 기록하며 2-0으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유럽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독일). 그리고 0:3으로 털리면서 역시 아무리 돈다발 무장해도 유럽 챔피언을 넘어서진 못했다.[4] 3, 4위전에서 남미 챔피언으로 참가했다가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한 라자 카사블랑카(모로코)에게 일격을 맞고 미끄러진 아틀레티코 미쿠(브라질)를 상대로 역전골을 넣었지만 후반들어 재역전되면서 2:3으로 패했고 4위로 대횔 마감했다.

7.3. 2014 시즌

2014 AFC 챔피언스 리그 G조에 속해 천생연분 전북 현대 모터스, 멜버른 빅토리,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멜버른을 불러들여 전반까지 2:0으로 끌려가다 후반 들어 10분 사이에 3골을 폭격하는 등 결국 4:2로 역전승을 했다.

2차전 광저우에 우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요코하마 원정에서 선제골을 먹혔으나 디아만티 프리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양팀 추가 득점없이 경기가 종료되었고 광저우는 승점1점에 만족해야 했다.

3차전 전북 전에선 주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반칙도 넘어가면서 3-1로 이겼다. 그리고 리피 감독의 기자회견 불참으로 국내 언론에게 신나게 까였다.

4차전 전북 원정에선 정혁이 퇴장당해 10명으로 뛰던 전북에게 후반에 실점하여 0-1로 패하면서 전북과 올 시즌도 나란히 1승 1패로 동률을 이뤘다. 이번에도 리피 감독이 경기 하루 전 기자회견에 불참하면서 전북팬의 공분을 이끌어내고 있다. 전북만 만나면 도지는 불치병

여하튼 전북을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 세레소 오사카랑 맞붙게 되었다. 1차전 원정에선 압도적으로 5-1 대승을 거두며 8강 진출 가능성이 커졌다. 광저우 원정에서 세레소가 5골차 아니면 4-0으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하기에. 결국 0-1로 안방에서 세레소에게 졌지만 골득실에 크게 앞서서 거뜬히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에게 또 원정에서는 0-1로 졌다. 뭐 16강전처럼 안방 경기에서 더 크게 이기면 되지만 문제는 1차전에서 주전 장린펑과 가오린이 퇴장당한 탓에 27일 치러지는 2차전에 나설 수 없어 2년 연속 우승 도전에 먹구름이 꼈다. 게다가 이 2명은 막판 채 몇 분 경기시간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괜히 거칠게 경기를 하다가 퇴장당했으니.

아무튼 8강까지 벌써 4패를 기록하며 전번 시즌 아챔리그 우승까지 딱 1패를 기록하던 거랑 대조적이기에 몇몇 기자들은 광저우 헝다 돈빨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결국 2차전 안방경기에서 막판 90분에 역전골을 넣어 2-1로 이겼으나 2-2 동률에서 원정득점 우위로 앞선 시드니 원더러스에게 4강자리를 넘겨주며 탈락했다.

2014년 11월 2일 산둥 루넝과의 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쳤지만,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광저우에 영광을 가져다 준 명장 마르첼로 리피가 사임과 동시에 은퇴를 발표했다. 리피는 은퇴 이후 광저우의 최고기술고문으로 일할 예정이다. --이걸두고 리피의 상왕등극, 수렴청정이라고 비꼬는 타팀팬들의 반응이 많다.-


후임으로는 2006 발롱도르로도 유명한 파비오 칸나바로가 선임되었다.

2015 챔피언스리그 32강 조예선 추첨에서 또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랑 맞붙게 되었다. 거기에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올라와 같은 32강 조예선에 속한 팀이 또 FC 서울. 그리고 가시마 앤틀러스까지 같은 조에 속하면서 죽음의 조에 속하게 되었다.

8. 주요 선수

----
  • [1] 브라질리그 올해의 선수.
  • [2] 당시 세계 축구선수 연봉 3위에 해당하는 놀라운 액수의 영입이었다. 그럴만도 한 게 최근 볼라 지 오우르 수상자를 살펴보면 카카, 카를로스 테베즈, 호비뉴, 루카스 레이바, 네이마르 등이니...대략 어떤 급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유럽챔스 뛸 선수를 아챔에 데려오다니
  • [3] 전북이 대구로부터 펑샤오팅을 영입할 때 온병훈+5억원(추정)의 이적료를 대구에 지불했다.하지만 광저우는 전북으로부터 펑샤오팅을 영입해갈 때 1250~1500만 위안(약 25억)원을 지불하고 영입해갔다. 심지어 펑샤오팅은 전북의 전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선수도 아니었다. 광저우가 이적료를 '부르는 대로' 줬다는 얘기.
  • [4] 아시아 입장에서야 돈지랄 클럽이 맞겠지만, 유럽의 주요 클럽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소소하게(?) 지르는 정도다. 바이에른의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하비 마르티네즈를 영입할 때 수틀리니 바이아웃 금액안 40m을 질러버렸다...물론 주급규모는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건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