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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

last modified: 2015-04-08 22:11:38 Contributors


Veritas et Lux

우뚝 솟은 북악산 정기도 맑다
가슴엔 더운 열정 슬기를 품고
이상에 나래치는 배움의 전당
우정을 다져가는 배움의 요람
아~아 마음의 고향 광운대학교
영원토록 빛나리라 광운대학교
-광운대학교 교가-


Contents

1. 개요
2. 학부
2.1. 전자정보공과대학
2.2. 공과대학
2.3. 자연과학대학
2.4. 사회과학대학
2.5. 법과대학
2.6. 경영대학
2.7. 동북아대학
2.8. 인문대학
3. 대학원
3.1. 공학계열
3.2. 이학계열
3.3. 인문계열
4. 교통
5. 역사
6. 건물/시설
6.1. 화도관
6.2. 참빛관
6.3. 비마관
6.4. 동해문화예술관
6.5. 중앙 도서관
6.6. 옥의관
6.7. 복지관
6.8. 연구관
6.9. 한울관
6.10. 누리관
6.11. 아이스 링크
6.12. 인터네셔널 하우스
6.13. 기숙사 (건설예정)
6.14. 지하캠퍼스 (건설예정)
7. 특징
7.1. 남녀성비
7.2. 등록금
7.3. 대학입시 전형
7.4. 유명인
7.5. 기타


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4년제 종합대학교.

교훈은 참·빛(Veritas et Lux), 상징은 비마(飛馬)이다.

1934년에 조광운 박사가 설립한 조선무선강습소가 모체이다.[1][2] 그 후 조선무선공학원,광운전자공과대학,광운공과대학 등으로 교명을 변경해 오다가 1983년에 광운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1987년에 종합대학교 개편과 함께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1993년 입시 부정 사건이 터지면서 타격(?)을 받아[3] 현재는 고3 원서 시즌 전엔 "그게 어디야?" 하는 수준의 대학이 되었으나, 3~40대에게 말을 꺼내면 "아아, 광운대? 거기 괜찮지" 하는 정도의 애매한 인지도를 자랑한다. [4][5] 그래도 성북역이 광운대역으로 바뀌면서 학교가 조금씩 인지도가 오르고 있다.

2. 학부

애초에 시작이 전자공대라서 전자정보공과대학 쪽이 강세이며, 실제로도 학부 중 전자정보공과대학쪽 학생들의 수가 가장 많다. 광고도 동북아 IT 최강대학이라고 광고했었다. 이에 비해 문과는... 모집 단위를 인문사회과학부로 퉁친 시절도 있을 정도로 약세다. 인문학부와 사회학부도 아니다, 인문사회과학부다! 이러한 여러 면모가 겹쳐서 문과대생들은 공대생들에 대해 묘한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양과목의 경우 그런거 없고 그냥 비슷비슷하게 한다(...) 중요한 건 전공이 아니라 사람의 성실성이라는 점에는 조별과제 한번 해보면 다들 동의하게 된다(...) 특이하게도 완전히 인문철학쪽 교양공부에 학점을 매꾸려고 순수한 흥미를 느끼고 들어보려는 공대생이나 자연대생들이 꽤 존재하는 편이다.

2.1. 전자정보공과대학


  • 전자공학과

  • 전자통신공학과

  • 전자융합공학과

  • 컴퓨터공학과

  •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컴퓨터공학과에서 컴퓨터소프트웨어로 갈라졌다. 최근까지 통합되어 있던 과라서 입결과 아웃풋은 컴퓨터공학과와 사실상 동등하다. 원래 '컴퓨터과학과'로 간판을 걸려고 했는데, 어른의 사정이 개입하여 컴퓨터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여기에 대한 미련(?)인지 교수들은 '컴퓨터 사이언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커리큘럼도 컴퓨터소프트웨어에 대해 배운다기보다는 컴퓨터과학에 가까운 편. 재학생들도 컴공과와의 차이를 햇갈려한다

  • 전기공학과

  • 전자재료공학과

  • 로봇학부

2.2. 공과대학


  • 건축공학과

  • 화학공학과

  • 환경공학과

  • 건축학과

2.3. 자연과학대학


  • 수학과

  • 전자바이오물리학과

  • 화학과

  • 생활체육학과

  • 정보컨텐츠학과

2.4. 사회과학대학


  • 행정학과

  • 산업심리학과

  • 미디어영상학부

2.5. 법과대학


  • 법학부

  • 자산관리학과

2.6. 경영대학


  • 경영학부

2.7. 동북아대학


  • 동북아통상학부
  • 동북아문화산업학부

  • 국제학부

2.8. 인문대학


  • 국어국문학과: 06~07년도 당시에 국문과 폐지논란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기현상이 언론에 보도가 된 적이 있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학교측에서는 국문과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문과대를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으며 기회만 나면 예산을 축소시키려고 한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특히 14년도에는 국문과 입학정원을 뜬금없이 절반으로 줄인다는 안을 내놓아서 다시 반발이 생겼다어째 국문과만 존나 패는 분위기가 있다

  • 영어영문학과

3. 대학원

3.1. 공학계열


  • 전기공학과

  • 전자통신공학과

  • 전자재료공학과

  • 컴퓨터공학과

  • 컴퓨터과학과

  • 로봇학과

  • 화학공학과

  • 환경공학과

  • 전파공학과

  • 건축공학과

  • 건축학과

3.2. 이학계열


  • 전자바이오물리학과

  • 화학과

  • 수학과

3.3. 인문계열


  • 경영학과

  • 국제통상학과

  • 행정학과

  • 법학과

  • 국어국문학과

  • 영어영문학과

  • 산업심리학과

  • 신문방송학과

  • 경영정보학과

  • 국제지역학과

4. 교통

수도권 전철 1호선 광운대역[6]에서 도보로 학교 후문까지 약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정문보다는 후문이 역에서 가깝다.[7] 광운대역에서 정문, 누리관을 가려면 걸어서 가거나 월계삼거리(11-336)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석계역에서도 이용가능하다. 석계역에서 정문이나 후문을 가려면 석계역1번출구(11-457)에서 261번 버스를 타거나.[8] 30m 정도 떨어진 맞은편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태릉입구역석계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스쿨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5. 역사

광운대학교(조선무선강습소부터)의 초대 이사장 및 설립자의 이름은 조광운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도 '광운대학교' 라 이름지어졌다. 조광운은 1899년 4월 20일에 태어났는데 그의 호는 '화도' 이며 학교 건물중 '화도관' 이라는 건물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조광운의 10대 시절. 최소 1910년 이후, 즉 한일합방 이후에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이쪽 일에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으나 그의 학문적인 재능이 당시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에게 인정받아 그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 당시 유일한 사립대학교였던 일본 세다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30대가 될 때까지 그는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했는데 첫째로는 쌀가마니 운반노동자, 둘째로는 택시 운전사 , 그리고 일본 부잣집의 지배인으로 일했는데 그 부잣집 사이에서 그의 근면 성실함이 꽤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하던 도중, 그는 자기가 모았던 재산을 전자 기업에 투자를 했는데 그 투자가 잭팟이 터져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 없던 16세 청소년이 뭘 알겠는가. 사기꾼에게 털리고 재산을 흐지부지 탕진하여 90퍼센트의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돈을 가지고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일본으로 부터 백열전구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이였다. 그러다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으로 부터 기계를 수입하여 전자 조립 공장을 만들었으며 한국부터 만주까지의 이쪽 관련 사업에 꽤 큰 손이였다고.. 이렇게 돈을 잘 벌어들인 결과 겨우 20대에 몇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의 사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몇년이 지나자 조광운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을 보면서 '이 돈을 더 뜻깊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파나소닉의 전신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설립자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로부터 '교육기관을 설립해 보는게 어떻겠소?' 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 생각에 동의한 조광운은 1934년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하고 그후 1963년에 광운 공과대학, 마침내 1988년 4년제 종합대학 '광운대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합대학 광운대학교의 초대 총장은 조무성이였고 조광운 설립자의 둘째아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설립자의 재산이 그때 당시 쉽지 않았던, 아니 현재도 이루기 쉽지 않은 1조원의 부자였는데 학교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다. 물론 10대 중반에 번 돈이라 대부분을 날렸다고 하지만 1000억 가지고 사업을 한걸로 봐선 충분히 돈을 더 벌긴 했을 터. 가장 큰 이유는 1993년 입시 비리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전에 조광운 설립자가 애초에 일제시대 당시 일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해방 이후 "너 친일파냐?" 라고 국가에게 압박을 당했고 설립자는 극구 부정하였으나 결국 현재 광운대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는 노원구 일대의 땅을 조광운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 대다수를 국가에 빼앗겼으며, 현재는 그 땅에 이미 상가와 아파트가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다른 목차에도 적혀 있지만 1993년 조무성 당시 이사장의 입시부정사태 덕분이라고 봐도 무관. 그것은 정말 학교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와서 평가 절하 및 입결 추락의 악몽을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교를 만든 설립자 자체가 전자공학에 몸을 담고 있었고 학교의 시작또한 '조선무선강습소' 라는 전자공학 전문 교육기관. 그리고 4년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기 이전, 광운전자공과대학, 광운공과대학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전자공학의 처음와 끝을 함께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래서 수만휘등 각종 입시사이트에서도 국숭세단 광명상가 등 입결이 비슷한 라인에서 '공대는 광운대가 낫지' 라는 무한 입지를 보여주는 중.

중앙일보 대학평가 연구순위에서도 2010, 2011, 2012 3년 연속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순위 2위를 달성하였고, 외부 연구비 2위, 교내 연구비 8위 등 전통답게 교수 수준 또한 높지만, 학생들 수준은 냉정하게 말해서 교수 수준에 비해 낮은 편.

그 이유는 일단 제일 큰 건 1993년 입시비리 사태지만. 학교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점(캠퍼스 라이프의 부재)과 그리고 전자공학에 비해 부족한 문과계열 학과와 사범대, 의대, 로스쿨, 예체능 학과 등의 부재로 네임 밸류가 딸리는 점도 크다. 재학생도 학년당 2000명 수준으로 동문도 부족하고, 출신 연예인도 그다지 없다보니 인지도는 더욱더 떨어진다..

고3 원서접수 시즌이나 되어야 인서울 마지노선으로 알게되는 수준인데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70%가 문과라는 점에서, 학교가 딱히 문과쪽으로 튀는점이 없으니.. 문과생 대부분에겐 '아 이런 대학도 있었구나' 수준. 그러나 학교 관점에서 볼 때 딱히 현재의 학교구성에 불만은 없는 듯.

1993년 이후 17년동안 관선이사 체제를 유지하며 학교 발전이 더디다가 2010년 조무성 비리재단이 다시 복귀하면서 임시이사를 벗어나 정이사 체제로 환원하였는데 3년이 지난 현재 딱히 1993년 시절의 악덕 짓은 안하는 걸로 보아서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는게 대부분의 생각. 관선이사 체제부터 진행되어왔던 지하캠퍼스(광운스퀘어)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기숙사 건설이 확정되었는데, 현재 광운대학교는 인서울 대학 최하위 수준의 기숙사 확보율을 가지고 있지만, 기숙사 건립 이후에는 10%대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여 딱히 현재 재단이 맘에 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썩 꺼지라고 할정도로 욕먹을 만한 짓도 거의 안하는 듯. 학교가 대내외적으로 전자공학으로도 유명하고 역사도 있으니 이 상태 그대로 유지만 해도 평타는 칠 것으로 보인다.

단 학교가 현재 상태에서 입결로나 내외적으로나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단의 파워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 보인다. 미국최대명문으로 인정받는 칼텍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한자리 수에 불과한데, 중앙일보 대학평가 기준 2012년에 비해 -5~6명 정도 꽤 많이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31명 수준으로, 국내 상위권 대학인 서카포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편이다.(카이스트 15명, 포항공대,서울대 11~12명 수준). 학원에서도 소수정예를 좋은 학원이라고 홍보하듯이 다수를 위한 강의보다 소규모를 위한 강의가 더 효과적인건 사실이나, 많은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교수의 임금이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재단의 부족한 파워가 한 몫한다고 보여진다. 사립대 1위인 연세대의 경우 교수 1명 당 19명 자정도인데, 10명의 차이는.. 매우 커보인다.

물론 교수의 숫자가 곧 질로 연결되는건 아니다. 그런데 교수의 숫자가 늘어나면 교수 1인당 강의부담비율이 적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교수가 자기 개인 연구에 투자할 시간과 노력이 많아지고 그것은 곧 기존보다 다량의 그리고 양질의 논문 연구가 가능해진다는 것. 그렇게 연구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교수준도 상승하게 된다.

6. 건물/시설

캠퍼스는 매우 작은 편이다.[9] 후문부터 시작해 도보로 15분~20분 정도면 교내 대부분의 시설물을 모두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다. 캠퍼스 내가 좀 가파르지만.

약간 후줄근한 건물 외관에 비해 교내 내부 시설은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교내 학생식당은 복지관 2층과 문화관 지하1층에 위치해 있다. 이 중 복지관 학생식당은 복지관이 2009년에 철거할 예정이 잡힘에 따라 곧 없어질 예정...이었는데 복지관 철거가 기약없이 연기되는 바람에 언제 없어질지는...

문화관과 복지관 학생식당이 2500원이면 한 끼를 때울수 있는 반면 옥의관 학생식당(..라기보단 카페에 가깝다)은 라면을 제외하곤 한 끼에 4000~5000원 이라는 고가(...)를 자랑한다. 그래서 옥의관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학생은 부르주아 취급을 받으며 놀림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단, 2011년에 대부분의 학교 주변 음식점에 가격 인상이 단행되면서 가격이 비슷해졌다.

캠퍼스 주변 상권 대부분이 식당,분식점,호프,고기집 등등 요식업 관련으로 이루어져 있어 먹거리 많다. 2009년쯤부터 급 학교 주변에 카페가 늘어나는 추세. 이 때문에 광운대 학생들은 항상 이게 동네 상권이지 무슨 대학가 상권이냐고 징징거린다. 하지만 노원구 소재 대학가 상권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번화하다는게 함정.

교내 도서관으로 참빛관 옆에 위치한 중앙도서관이 있다. 본교 관계자, 재학생, 졸업생만 출입을 허용하므로 약간 폐쇄적인 느낌이 있다.[10] 구비하고 있는 도서의 수는 어느 정도 있는 편. 1층엔 인터넷카페가 있으며 항상 사람이 붐빈다. 1층 영화상영실에선 매주 영화 한 편을 상영한다.

기숙사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인 인터내셔널하우스가 있다. 기숙사 건설이 확정되어 한울관 뒤로 건설할 예정에 있다.

문과계열 건물이 대부분 한울관에 몰려있기 때문에 그나마 여학생 비율이 높은 한울관은 재학생들에게 한울여대라 불린다.(...)
공과대학의 중심건물인 비마관은 지은지 45년이 넘은 데다가 구조도 괴악해서[11]비마던전으로 불린다.(...) "비마관을 배경으로 FPS 게임을 만들자!!!"라는 컴퓨터 관련 학과의 오래된 떡밥이 있을 정도. 던전인데 RPG가 아니고?

학교가 좁다보니 강의실 문제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서 2009년에 '누리관'이란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이게 본래 학교 위치와 300m 가량 떨어져 있어서 말이 많다. 말이야 300m이지만 이는 정문으로부터의 직선 거리를 따진 것이고, 실제로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중앙 도서관까지 걸어서 갈 경우 약 700m.# 물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 대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작고 귀여운 캠퍼스에서 노닐던 재학생들에겐 그야말로 충공깽.

사실 저게 가십거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건물의 위치가 대학 내부도 아닌 대학 외부, 그것도 뜬금없이 부속 공고[12] 정문쪽에 냅다 지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울관의 경우도 본관과는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며 갈라져있고 반대쪽과도 공고와 접해있는 묘한 위치에 지어져있는데 누리관은 그걸 뛰어넘는 위치. 그런데 복지관 한켠에 붙어있는 학교 약도에 보면 70주년 기념관을 건설하려고 찍어둔 부지는...강 건너 남대문중학교 부근이다. 학교너머 여기저기 멀티해서 주변땅 먹으려고 하나? 그런데 그쪽은 성북구...

6.1. 화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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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학교 사진에서 나오는 비마상 뒤로 나오는 건물이 이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학과 사무실을 제외한 학교의 거의 모든 행정 사무실들이 존재한다. 입학증명서 혹은 재학증명서등의 서류부터 수험응시생들의 입학상담, 창업 관련 문의등등 필요하다싶으면 화도관으로 가는 것이 맞다. 또한 이 건물에는 교수님들 방과 함께 연구실도 존재하며, 건축학과 수업 및 여러 교양 수업들도 진행되고 있다.
정장입은 아저씨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장소이기도 하다(...)

6.2. 참빛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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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상으로는 도서관과 이웃해 있으며, 바로 옆부분에는 잔디로 이루어진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쉼터에서는 학생들이 잘 접근을 안한다는게 함정. 지하 1층, 1층, 2층이 강의실로 쓰이고 있으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캠퍼스 라이프에서의 강의실들이 여기에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3층부터는 연구실 혹은 교수님들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에서 보면 꽤 넓어 보이는데 사실 건물이 V자 형. 3층 이상은 가운데 공간이 푹 파여 있으므로 대부분 페이크다.(…)
1층에는 인터넷 카페가 하나 있다. 일단 장부에 기입해두고 사용해야 하지만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보통 자리가 비면 알아서 사용한다.
참빛관의 3층 이상 올라가는 학생은 드문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낮인데도 음습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사방을 메우고 있다. 또한 옥상에 매우 조그마한 정원(...)이 마련되어 있는데, 교수들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마련된 곳인 듯 하다. 실질적으로 광운대에서 가장 높은 장소이므로 일몰 광경이 매우 괜찮은 곳.


6.3. 비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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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대학 학생들이 쓰는 건물.
내부 구조가 매우 복잡한 던전. 광운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축 년도가 1960년.(...) 지하를 1,2층으로 인정하는 괴한 층수 셈법때문에 실질적인 1층이 3층이 되는 괴한 건물.[13] 게다가 원래는 4층 건물이었기 때문에 5층 이상은 후에 증축했다. 덕분에 광운대에서 가장 복잡한 건물 타이틀을 얻게 됐다. 덕분에 운동권이 강성이던 학교라면 어디든 있는 '경찰 진입 시 도주루트'라는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1층은 스터디룸과 기자재 대여실 및 프린터실이 존재하며, 2층은 수업 강의실과 독서실 및 이전에는 영어 동아리였던 자리가 현재 스터디 카페로 변경되어 조성되어 있다. 3층부터는 학과 사무실이나 강의실들로 조성되어 있다.
공과대학 건물이기 때문에 3층1층 같은 로비에서는 작품전시회, 캠퍼스 리쿠르팅 등 공과대학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특히 로봇전시회는 매년 한번씩은 구경하고 가게 되는데, 공돌공돌한 기운이 매우 많이 느껴진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이지만 삼성 관련 행사도 꽤 많이 열린다.
여담으로는 비마관 옆길로는 모두들 아는 듯 모르는 듯 아는 비밀 퇴교길이 존재한다. (...) 이를 통해서 가면 정문을 통해서 석계역에 가는 것보다 약 5분정도 단축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6.4. 동해문화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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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의 최대 대학 강당. 이곳에서는 큰 규모의 특별 강좌 혹은 CDP를 진행을 많이 한다. 2011년 리모델링을 통해서 지하 2층부터 헬스장, 지하 1층에는 푸드코트 및 만화 카페가 존재하며 1층부터는 강당이 존재한다. 또한 알게 모르게 이런 저런 행사를 많이 한다. 배경을 꼽아보자면 1. 서울 외곽이라 교통이 붐비지 않으며 2. 적당히 넓고 3. 대관료가 싸서(......) 그렇다고 한다.
2PM은 두 번의 팬미팅을 전부 이 곳에서 치뤘다. FT아일랜드, 최강창민, 시아준수 등 연예인의 생일파티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수요 예술 무대, JAM Project 내한 공연, 클럽데이 MSL 결승전 등의 행사장으로 이용되었다,이후 ABC마트 MSL 결승전도 이곳에서 열렸다.[14] 왜인지 가끔 광운대 문화관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나온다. 그런 거 없어

6.5. 중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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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 구조로 이루어진 도서관.

1층엔 소극장[15], PC카페, 24시간 열람실이 있고 3층을 제외하고 2~7층 까진 전부 대출용 및 보관용 자료가 있다.[16]

책을 대출하는 공간은 3개층이다.
2층은 인문과학자료실로 문학도서, 어학도서, 역사도서 등이 있다. 식객, 강철의 연금술사, 신의 물방물 같은 만화책이 있다는검 함정
4층은 자연과학자료실로 공과대학도서는 전부 있다고 보면 된다.
5층은 사회과학자료실로 경영,경제도서 등 이 있다.
6층은 정기간행물실로 주간지, 월간지 등을 볼 수 있다. 시사,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자료가 있다.심지어 맥심도 있다 대출은 되지 않는다.
7층은 멀티미디어실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6,7층에 집현실이라는 스터디 공간이 존재하는데 별도로 신청해서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책 바꿀 생각을 잘 안하는지 새 책을 구입할 돈이 없는건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책들이 당당히 도서관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도서들은 물론 보통 수십만원 하는 해외 원서들도 희망도서 신청을 하면 잘 구해주므로 오래된 책보고 좌절하지 말고 희망도서 신청해서 보도록 하자.

1,8,9층에 열람실이 있는데, 이 때문에 1층 열람실 자리 잡는것에 실패하면 8,9층까지 강제로 올라가서 공부해야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17]
여담으로 방학이 되면 정말 썰렁해져 1층도 텅텅 비는 눈물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향후 지하캠퍼스가 완공되게 된다면 기존 도서관에서 지하캠퍼스로 도서관이 옮겨질 예정이다.

6.6. 옥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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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대학의 본거지.
90년대 초에 지어졌으며 완공 이후 8층을 증축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7층까지만 운행한다. 이전에는 지하에서 매점이 운영되었었지만 현재는 매점은 비마관으로 이동되었으며, 현재 지하는 연구실로서 사용되고 있다. 1층은 자그마한 스터디 카페가 존재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조그마하기도 하고 바로 문 옆에 있어서 공부를 하기에는 겨울에는 정말 춥다. 아마 운동장에서 몰려오는 바람이 그대로 쏟아지는 부분에 정문이 위치해 있어서인듯(...)
그 이외에는 특이점이 별로 없는 건물.
이상할 정도로 축구나 각종 체육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건물이기도 하다.

6.7. 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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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 정문 위에 ㅅ자 형태로 있는 건물로 우체국, 학생식당, 동아리방 등이 위치한다. 이 건물도 괴악한 구조를 자랑하는데 2,3층은 양 사이드가 중앙 통로로 연결되어있지만 4,5층은 옥의관처럼 완공 후 증축했기 때문에 따로따로 논다. 또한 4,5층에는 학보사 및 광운annals를 비롯한 언론사와 외국인학생을 위한 공간과 함께 동아리들이 많이 있기도 한데, 축제 기간만 되면 계단 오르내리며 녹초가 되어 있는 부원들을 볼 수 있다. 이게 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그렇다. 참고로 정문에서 바라보이는 계단을 올라오면 양 옆으로 동아리방들이 즐비해있다. 주로 운동동아리들이 많다. 검도부,야구부,축구부,테니스부 등. 또한 계단을 올라가기 전 양 옆 도로쪽에도 동아리들이 존재한다. 등산부, 풍악부, 밴드부 등.

6.8.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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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 1층에는 하나은행이 위치해 있고 2층부터는 컴퓨터실이 주로 이루고 있으며 지하는 문화관과 공유하고 있다. 혹시 학생증을 분실했다면 1층 하나은행을 들러보자. 컴퓨터 관련 교양 실습이 주로 이루어지며 광운대의 전산 관련 부서는 죄다 여기에 몰려있다.
위층에서 밑층이 내려보이는 형태의 내부구조이기 때문에 추락사고의 염려가 있다고 보는 학생이 많다.

6.9. 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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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여대.(...)
문과대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바글바글한 광운대에서 유일하게 여자 비율이 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졸업자의 말로는 그래봤자 CC는 극소수만 생존한다는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도리어 여자비율이 높은 편이기에 더 분위기가 험악해 진다고도.
지하 1층에는 보통 교양 과목들의 100명짜리 대규모 강좌들이 여기서 진행된다. 간혹 학회나 각종 경영자 연수과정또한 진행되는 편이다. 지상 1층에는 인터넷 카페가 존재하며(약 15명 규모) 또한 각 과의 사무실, 인쇄실이 존재한다. 2층부터는 강의실들과 함께 교수님들 방들이 존재한다. 교수님들 방은 5~7층에 포진해 있으며 6층부터는 왠만큼 고학년이 아니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조그마한 엘리베이터 2개에는 모두 간이형 TV가 우상단에 설치되어 있으며 광운대뉴스를 방송한다. 그리고 구조상의 한계때문인지 수업시작 5분 전에는 항상 엘리베이터가 꽉꽉 차서 타지 못하는 일이 학기중에 매일같이 발생한다(...) 시루떡처럼 되기 싫은 사람들은 그냥 재빨리 뛰어서 3,4,5층으로 올라가긴 하지만 땀내기 싫어하는 여대생들은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수용인원에 비해서 엘리베이터가 적은 것은 최초설계시에 문과대건물 수용인원 계산을 잘못한 탓이라고 한다.

6.10. 누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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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배지.
굉장히 불쾌할 수도 있는 이명이지만, 누리관을 거점으로 하는 경영학과와 로봇학부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그나마 가장 늦게 지어진 건물이라 깔끔하다는 것이 위안거리. 하도 건설 부지가 없다 보니 같은 재단에 속한다고는 하나 절대 부속중고가 아닌, 독자적인 기관인 광운중고의 양해를 거쳐 부지 일부에 대학 건물을 지었다.
그러다보니 광운대학교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는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내게 되었다. 총학이나 다른 기관들이 거는 현수막이나 알림판 같은 것도 누리관은 제외되기 일쑤고,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온 학교가 시끄러울 때도 누리관은 그저 평화롭기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내에서 유이하게 편의점이 입점한 곳[18]이기도 하다. 단, 이 곳은 학생 복지 차원으로 입점한 것이라 편의점인데도 대부분의 제품에 10% 할인이 기본으로 붙고 심야 영업은 하지 않는 등 일반 편의점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누리관 근처의 버스정류장이 꽤 있기 때문에 자취생 입장에서는 시내를 오가면서 자주 보게되는 건물이기도 하다.

6.11. 아이스 링크

1979년에 창단한 이스 하키부가 있다. 80~90년대에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도 하고 전국 대학부 체전에서 우승도 몇번 하는 등 강호 팀이었지만 90년대 말에 재단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학교 재정이 타격을 입게 되고, 2000년대 중반즈음에 들면서 학교측에서 재정부족을 이유로 들어 진행한 운동부 지원 축소 정책과 맞물려 결국 학교에서 폐부를 결정했다. 2008년 2월 20일에 열린 제8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준결승전에서 연세대학교와의 고별전을 마지막으로(선수교체가 필수인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교체선수 없이 6명의 선수들이 경기를 이끌었다. 경기 결과는 당연히 패배.) 이후 아이스하키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2011년 4월 재창단되었다.
역사가 있다 보니 아이스링크의 노후도가 상당했는데, 2011년 3월부터 약 한달간의 보수공사 끝에 리모델링되어 상당히 깔끔해졌다. 우와 좌석이 생겼어요 개관 행사와 아이스하키부 창단식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행사에 방문한 사람들이 이승훈, 모태범, 성시백 선수 등 상당히 화려했다.
물론 재학생들이 여기에 다니냐고 하면, 졸업 때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학생이 매우 많다. 신기하긴 하지만 매일같이 학교다니는 도중에 들러 보기가 신경쓰인다는 듯. 도리어 사회인이나 동호회 사람들이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서 한담을 나누는 광경이 자주 보인다.


6.12. 인터네셔널 하우스

기숙사이면서도, 기숙사같지 않으면서도, 기숙사인 기숙사.
광운대를 다니면서 평소에는 한번도 들르지 않는 곳이다.
위에 언급한 누리관보다도 더 깊숙한, 한울관 뒤쪽의 산 등지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 입주할 수 있는 조건은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이며, 언어교육원 재학생이어야 가능하다.
존재조차도 모르는 학생이 많다(...)

6.13. 기숙사 (건설예정)

부속 고등학교인 광운공고쪽 땅을 용도전환하여 기숙사를 건설할 계획.
총 수용규모는 1000명 수준.
10%를 재단에서 부담하여 나머지 90%를 사학진흥재단과 국가에서 반반씩 부담.
원래 예정은 2014년 7월에 착공하는 것이지만 2015년 2월로 착공이 연기되었다.
2015년 1월 노원구청에 기숙사 건축허가를 접수했지만 지역 주민의 건축 반대 민원[19] 때문에 노원구청의 건축 허가가 지연되었다.
2015년 2월 노원구청과 민자사업추진단, 지역주민이 한 자리에 모여 간담회를 진행했고 민자사업추진단은 간담회 결과를 토대로 민원대책[20]을 노원구청에 다시 제출했다. 노원구청은 2015년 2월 23일에 건축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덕분에 2015년 6월 착공 예정으로 또 연기되었고 2017년 2월 완공으로 예정이되어 2017년 1학기부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숙사 이용금액은 월 24만원(학생 순수 부담액)이라고 한다.


6.14. 지하캠퍼스 (건설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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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조무성 이사가 들어오기 전 몇개의 재단들한테 인수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그 투자금을 기반으로 '광운스퀘어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그들이 들어오는 게 무산되면서 무기한 연기되었던 사업. 현재 복지관을 헐어버리고 운동장을 캠퍼스로 만드는 사업이였으나 규모가 축소되어 복지관은 남겨둔채 운동장을 없애고 한쪽은 공원등의 녹조시설. 나머지 반을 도서관 시설을 만들기로 계획된 상태.

2014년 9월 5일에 대림산업주식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9월 25일에 기공식을 올렸다.

크게 교육연구시설과 주차장이 건립된다.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캠퍼스 안에서 보행자와 차가 만날일이 없어진다. 아스팔트길이 없는 캠퍼스를 기대한다.) 층수는 지하 3층에서 지상 4층으로 계획되었다. 공사기간은 2년이니 2016년 10월 전에 완공된다.

(재학생이 관찰한 바로) 운동장, 화도관 앞 화단, 중앙도서관 앞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2014년 11월의 모습

2016년 9월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5년 1월 31일 기준으로 전체 공정률 중 6%가 진행되었고 지하층 건축을 위한 흙막이 공사와 토공사 등의 토목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광운로에 있던 월광교 육교 철거 및 가로변 옹벽의 철거 공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2015년 4월 말 터파기 공사를 완료하고, 골조공사를 진행해 2015년 9월에 지하 골조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5년 10월 말에 지상 골조 공사를 마치고 이후 2016년 2월 지상 건축물의 외피공사인 커튼월공사를 마무리한 후, 인테리어공사와 부대 토목공사를 끝으로 2016년 9월 준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7. 특징

7.1. 남녀성비

공대가 중심적인 대학이라 재학생 중 공돌이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재학생 중 여학생비율이 21%로 서울시내 4년제 대학교 중에선 여학생 비율이 가장 낮다. 흠좀무
(참고로 70년대에는 여학생이 들어오기만 해도 장학금이었고, - 공대의 전기공학과는 89년에 최초로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행히 사히 졸업했다.[* 상당한 포스의 분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이냐고 한다면 한학년에 남학생만 최소80~100명, 곱하기 4, 선배는 당연히 없고, 후배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보내야 한다. 거기에 교수님들에게는 언제나 주시의 대상이 되는 상태, 그당시 공대 여학생비율이 3%정도였다. 그것도 건축공학과의 위엄이랄까] 90년대에는 대략 10%의 여학생 비율, 하지만 이것은 인문사회대학이 있어서 가능한 숫자였고, 축제에서 여학생 부분은 국문과, 영문과, 전산과를 주축으로한 이과대학, 공과대학(?)연합 네개정도로 치뤄졌다. 2000년대 들어 여학생이 많이 늘어나서인지 몰라도 졸업한 선배들이 오면 샤방샤방한 학교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7.2. 등록금

꽤 오랜 시간 동안 재단이 없었고, 2011년 현재도 등록금 의존률이 엄청나게 높다.[21] 2007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등록금이 높은 이화여대 다음이었으니 말 다한 듯.(...) 덕분에 등록금이 쓸데없이 높아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 특히 등록금 문제는 총학생회장 투표 때마다 사실상 필수요소급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다. 재단 정상화도 꾸준한 떡밥이었으나[22] 이미 복귀한 지금은 그저 삽질화 된 듯. 반면 등록금의 경우 2013년 기준 5년째 동결하고 있다. 다만, 이는 레알 꼼수 중 꼼수로 원래 16주였던 수업일수를 15주로 줄이면서 동결한거라 사실상 등록금 인상의 결과를 낳았다.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하지만 재단은 들은척도 안한다.

7.3. 대학입시 전형

한때 수시적성검사 100% 전형이 추가되면서 성적은 안되는데 인서울 대학교는 오고 싶은 수험생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다. 심지어 미디어영상학부의 경우 06년 1학기 수시에서 경쟁률이 280:1을 자랑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쟁률이 가장 높은 과의 수시 2학기 경쟁률[23]이 145:1 정도일 때가 그나마 많이 낮아진 편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적성검사 수시 전형료가 학생 일인당 7~8만원 이라서 학교에서 적성검사 수시전형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그러나 학교 시설이나 복지는 적성검사 수시전형을 시작하기 전과 후와 별 차이가 없어서 그 많은 전형료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의문이었고, 재학생들 대부분이 적성검사 전형에 대해 회의적이나 비관적이었다.[24]

광운대 적성검사는 적성검사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로 평가받았는데, 일단 수리 적성검사는 둘째손 치더라도 오답 시 감점이라는 게 문제였다. 보통 적성검사는 시간이 매우 모자라기 때문에 잘 안풀리는 문제는 찍는다던지, 시간관계 상 다 못푼 문제는 한번호로 밀어버리는데 이 방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응답시에는 감점이 없기 때문에 모르겠거나 못푼 문제는 그냥 마킹하지 않는것이 일반적.

2012년 입시부터는 적성검사로 인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광운대 생각했다가 피눈물 좀 본 사람이 있을듯.

2014학년도 입시부터(2013년 고3부터)는 개편된 수능 방식에 따라 자연계열에서 수리'나'형 응시자, 즉 수리 A형 응시자를 모집하지 않는다. 수능 개편 전, 나형 공대중에 가장 높은 입결을 자랑하여서 나형과 가형 구분의 의미가 거의 없었긴 했으나 나형이든 가형이든 붙을놈은붙고 떨어질놈은 떨어지는 어중간한 입결이였기 때문. 실제로 학생들도 나형,가형 비율이 압도적이진 않은편 앞으로의 입결에 변동여지가 많다.[25]

7.4. 유명인

가수 김수철이 동문 (놀랍게도 전공은 전자통신 ...). 골프선수 박인비 선수가 재학중이며,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설기현 선수와 최순호 감독의 모교이다. 또한 공대부터 시작한 광운대답게, 이재령 LG-Ericsson CEO,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 유원식 한국오라클 사장, 한빛소프트 창업주 김영만 전 회장 등 공학 쪽으로 유력 인사가 제법 많은 편이다. 김원희도 광운대학교 출신이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미디어영상학부 중퇴). 이따금 "광운대 레전드"라며 성적표 스캔본이 웹에 떠돌았으며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한 #, 현 Futureplay # CCO 황성재 동문이 있다. 그리고 ROTC 출신으로 수도군단 포병여단장, 제2보병사단장,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한 고현수 중장(現 제2군단장)이 있다.

7.5. 기타

과거 동급생 시리즈를 비롯한 수 많은 게임들의 한글패치를 만들었던 사과나무팀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엔 정치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BBK 발언을 한 곳으로 유명. 덕분에 대운하 시공이 시작될 경우 운하의 시발점이 되어 지도에서 깨끗이 증발한다는 괴담이 있었다(…) 괴담의 바리에이션으로 '광운대는 수상대학이 되고 통학버스는 통학 곤돌라로 대체되며 리얼 아리아가 실현된다.'가 있었다.

교내의 명물(?)로 비마타이거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비마타이거"는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고 꼬리가 선천적으로 굽은 코숏이었는데, 무려 99학번부터 학교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특기는 비마관의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이면지 박스에서 숙면 취하기, 전자정보공과대학의 과사무실 등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하도 수업시간 잠만자서 유급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심지어 교직원 혹은 교수님들이 점심식사겸 회의를 주제히는 자리에 참여해서 밥을 얻어먹고(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도서관을 자유로이 들락거리며 엘리베이터 등을 자유자재로 이용해주는 등 그야 말로 범상치 않은 묘생을 살았다.

2007년에 TV동물농장에 친히 출연해주시어서 항상 인지도로 고생하던 광운대의 인지도 상승에도 크게 기여하여 밥값을 해 주었다. 다만 이 당시 이미 연로하시어 노천극장 까치떼에게 공격당해서 이마가 찢어지는 등의 흑역사도 있다. 2008년 6월 27일 축구부 학생들의 숙소 옆 도로에서 과속차량에 치여 사망하였다. 죽은 후에는 평상시 비마타이거를 아끼던 교직원과 경비 담당 직원에 의해서 참빛관 옆 잔디밭에 묻어주었다. 고묘의 명복을 빌어주자.[26]

축구 명문으로 U리그 전통의 강호이다. 출신 축구선수만 봐도 설기현,최순호[27],김태수,곽희주,배기종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

의정부시와 MOU 체결로 의정부캠퍼스가 생길 수도 있었으나 얼마 안 가서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디시인사이드 힛갤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1 #2

2012년 12월 24일 있었던 솔로대첩의 주최자가 광운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 이였다. 자세한 사항은 솔로대첩 참고.

2013년 3월 8일자로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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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북아학과의 13학번 3수생(선배가 아니다!)이 다른 13학번 동기들을 '형'이라는 명목으로 나오게 하였다. 그리고 3월 7일 새벽에서 3월 8일에 걸쳐 DC 광운대갤에 이야기하였다. 이후 약속장소는 문과대 앞으로 바뀌었다. [29]
사실 문제의 카톡은 전달이 왜곡되어 일어난 것으로, 삼수생 본인은 한 번 놀려고 모이자고 한 게 이상하게 번져 당황했던 듯 하다. 또한 휴학생은 계절학기를 수강할 수 없다.


그리고 2014년 12월 28일에 일이 또 터졌다.


지하캠퍼스 건설과정, 교원채용과정, 법인에 금전적 손해 및 청탁에 횡령에 배임죄까지 도대체 몇 개야 엄청나게 저질러버렸다는 의견이 대세. 애초에 비리혐의로 수사받은 적이 있던 인물이 재차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으니 현재까지 진행된 캠퍼스 공사가 어떻게 될지는 완전히 미지수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광운스퀘어 및 80주년 기념관 공사는 이 일과 관계 없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 일로 조무성 이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현재는 재단법인 두레원의 대표이사인 김진홍 목사가 광운학원의 이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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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광운대학교라는 이름은 당연히 조광운 박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 [2] 조선무선강습소는 광운대학교의 모체가 아니라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와 남대문중학교의 모체이다. 쉽게 말해서, 광운공고가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대학이 생긴 셈. 조선무선강습소는 1946년 조선 무선 초급 중학교로 설립인가가 바뀌고, 1948년에 다시 6년제 중학교로 변경, 50년에 1기생 배출, 그후 52년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된다. 중학교는 남대문중학교로 여전히 광운공고 앞에 존재하고 있으며, 고등학교는 분리된 52년부터 동국무선고등학교로 명칭을 써 오다가 1964년에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로 개칭된다. 광운대의 전신인 동국전자 대학은 1963년에야 설립된다.
  • [3] 하지만 입시 부정 사건때문에 오히려 대학의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지금도 광운대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그게 더 심해서 특히 지방쪽에서는 광운대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 솔직히 지금도 지방에서는 건동홍 밑으로는 거의 모른다 하지만 입시부정으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매스컴에 크게 학교이름이 오르내려서 적어도 대학의 존재를 전국에 크게 알렸다. 게다가 그 시절에 입시부정은 아주 흔한일이여서 심지어 서울대학교도 1991년 음대 입시부정사건으로 홍역을 치를 정도이이다. 따라서 입시부정이 대학에 끼치는 악영향은 솔직히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그 당시의 정서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이제야 언론에서 언급되네?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구만 정도.
  • [4] 3~40대에게(그리고 이 3~40대의 부모나 형인 5~70대에게도) 광운공대의 인지도가 좋은 이유로는 70년대까지 후기대학이였던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 등의 학교가 80년대 초반 거의 모두 전기모집으로 돌아섰을 시기 몇 안 남던 후기대학이면서 또한 전자,컴퓨터 분야에서 학교 실습시설이 대체로 좋았기 때문이다. 즉 전기에 한양공대연고대에 지원하여 떨어진 공대 지망 학생의 경우 재수를 피하여 후기대학에 입학하려면 사실상 광운대 이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던 상태(국숭세단급 및 인수도권(분교포함) 대학 일부 분할모집만 존재했으나 대부분 문과위주의 대학으로 대학서열은 광운대보다는 높았으나 이공계 실험시설은 별로였다. 연고대 썼던 수험생들인데 중경외시 아래는 다 마찬가지라고 보았을 것이다.)에서 아까운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 특히 이미 한번 재수를 해서 3수를 하기 힘든 수험생들이 대개 이런 선택을 했고 학교측에서는 이른바 타 대학에 비해 빡센 커리큘럼(1,2학년 수업시간이 타 대학보다 2~3시간 많았다)으로 굴림과 동시에 어짜피 대학의 낭만과 학교간판은 날아갔으니 실력으로 승부하자 그래서 대학원이라도 카이스트 라는 후기입학생들의 파이팅이 융합되어 그 시절 광운공대 졸업생들의 아웃풋이 꽤 뛰어났다. 즉 이들 후기 입학생들의 인풋은 5공과 비슷하던가 높으며 아웃풋은 5공보다 더 좋으니 인지도가 좋을 수밖에. 물론 전자정보공과대학 한정이다. 공대 이외의 학과? 그런 것 없다. 인지도나 입학성적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공대라도 전자컴퓨터자 안 들어간 과도 그런 것 없다 부류에 속한다. 다 떠나서, 광운대 리즈시절에는 광운대가 아니라 광운공대였다. 지금도 이 리즈시절을 기억하고 광운대를 괜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광운공대로 기억하고.
  • [5] 하지만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로 바뀌면서 전기/후기 제도가 사라지고 가나다군 복수지원이 시행되면서 이전처럼 전기 탈락자들을 독점적으로 받는 상황이 없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입결이 하락하여 광운공대의 인지도가 낮아지게 된다.
  • [6] 지역명 혼란으로 인한 불편 야기로 인해 성북역의 역명 변경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투표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광운대역으로 변경하는 것이 확정되어 역명이 변경됐다. 원래 성북역 시절에는 부역명이 광운대앞이었다.
  • [7] 오히려 정문은 석계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게 더 빠르다. 약 10분 정도의 거리로 광운대역-후문 사이보단 멀지만 석계역에서 광운대역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걸리기 때문에 충분히 상쇄된다. 특히 6호선으로 통학하는 경우 환승 시간도 줄일 수 있다.먹고 마시는데도 이쪽 루트가 더 많고 활발하다
  • [8] 석계역→후문(월계현대아파트)→광운대역→월계삼거리→정문 방향으로 간다
  • [9] 이 작은 캠퍼스를 탈피하고자 노원구 계동 당고개역 인근에 토지를 매입하여 광운대학교의 일부 시설을 이전하려고 했다. 실제로 90년대 중반까지도 해당 지역에 광운대학교 신축부지라는 팻말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차여차 하여 없던 일로 되었다. 아무래도 개발제한구역이니 건물 신축이 쉽지 않았을 듯. 참고로 한국외국어대학교단국대학교도 좁은 캠퍼스 때문에 서울시 외곽에 학교이전부지를 마련했으나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이전 못 하게 된 역사가 있다.
  • [10] 지역 주민의 경우 오후 5시 30분 전까지는 관련 출입증을 발부 받으면 출입이 가능하다. 열람실 사용은 확인바람
  • [11] 1,2층은 3구역으로 나뉘고 모두 벽으로 막혀있다. 고로 계단을 잘못 타고 내려가면 얄짤없이 길을 헤메게 된다는 말. 그렇다고 1,2층 구조가 대칭인것도 아니다.
  • [12] 광운공대랑 공고랑 같은 재단이긴 하지만 거의 남남이기 때문에 부속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더욱이 광운공고가 먼저 생겼다!!!
  • [13] 화도관 건물 쪽에서 보면 1층이 맞다. 애초에 기울어진 땅을 파서 지은 듯한 모양이기에 입구가 3층도, 1층도 되는 괴악한 구조이다.
  • [14] 여담이지만 여기 우승자들은 다 금뱃지를 얻었다.
  • [15] 취업설명회, 동아리나 학과 행사 등이 열린다.
  • [16] 3층은 도서관관장실 등 행정관련 부서들이 있다
  • [17] 반대로 1층은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어서 일부러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 [18] 다른 한 곳은 동해문화예술관
  • [19] 기숙사가 완공되면 인근 주택 창문이 기숙사 건물에 가려져 해당 지역 거주자들은 일조권과 조망권을 보장받기 어렵고 기숙사 신축으로 인근 숙박업체는 기존 수요가 줄어 생존권을 침해 받을 수 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 [20] 기숙사가 신설되면 1000명 정도의 기숙사 거주 인원으로 학교 주변 상권이 활성화된다는 점과 지방 학생들을 유치할 가능성이 커져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근 숙박 업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21] 옛 재단이 비리로 인해 학교 운영 권리를 박탈당했다. 호시탐탐 운영 복귀를 노리더니, 2011년 초에 복귀해버렸다. #
  • [22] 총학생회의 성향에 따라 재단 정상화 + 구재단 저지 를 한 세트로 묶어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 [23] 수시 1학기는 07학년을 기해서 없어졌다.
  • [24] 적성검사란 것이 문제 유형이 매번 비슷하기 때문에 정말 소양있는 학생을 발견하기도 힘들 뿐더러 학교의 이미지가 로또취급을 받기 때문.
  • [25] 일단 2014에서 수학B, 영어B 지정대학들은 백분위 기준으로 모두 점수가 4~6점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 떨어졌다고 진짜 점수가 떨어졌다고 착각하지 말자. 거기다가 2014학년도 수능에서 원점수 분포도를 보면 수포자들이 많은 분포가 나타나는데 이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점수는 떨어진게 아닐 수도 있다.
  • [26] 그래도 어찌어찌 자손들은 남겼는지(…) 화도관-노천극장 근처를 보면 고양이들이 꽤 귀엽게 놀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붙는 별명은 고양이동산(…).
  • [27] 다만 최순호는 2개월만 재학하고 포항에 입단했다.
  • [28] 사진 참조.
  • [29] 앞 주석에서 후기 광운대 시절을 언급했는데 연고대급 이상에 지원하여 떨어지만 현역은 대부분 재수해서 이미 재수,삼수해서 떨어진 경우가 주로 후기 명지대, 광운대에 입학했다. 따라서 그시절 광운대는 타 대학에 비해 현역,재수,3수 등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혼재했고 나름대로 이들 간의 평화로운 질서가 잡혀있는 상황이였다. 저렇게 나이많다고 동기들 앞에서 각 잡는 분위기는 그시절 절대 없었으며, 현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