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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last modified: 2015-04-08 20:30:09 Contributors

한자: 科學
영어: Science (사이언스)

Contents

1. 개요
2. 경험과학
3. 어록
4. 종류
5. 방법론
5.1. Ask Why? Ask How?
6. 창작물에서의 과학
7. 여담

1. 개요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C. 클라크

인간계와 자연계의 법칙과 지식을 이론적/실증적으로 규명하는 행위 및 그 방법론의 체계. 엄밀하게는 철학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방법론을 이루게 된 학문의 총체를 뜻하나, 보통 자연과학을 칭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科學(과학)이라는 단어는 1874년 명륙잡지(明六雜誌)에 연재된 <지설(知說)>이란 글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 아마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1][2]

2. 경험과학

과학이 다른 분야와 분류되는 결정적인 특징은 바로 경험적 실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철학, 미학, 심지어는 순수수학, 논리학 등은 경험적 방법론보다는 주로 사변적/연역논리적 방법론에 기반을 두므로 이 점에서 경험과학과 대비된다.

일반적으로 경험과학의 4가지 목표는 기술(description), 설명(explanation), 예측(prediction), 통제(control)라고 할 수 있다.

  • 기술: 테크놀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와 서술을 말한다. 분류, 서열, 관계 등.
  • 설명: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설명이다.
  • 예측: 과거와 현재가 이러이러하니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
  • 통제: 가장 궁극적인 목적. [3]

지진으로 예를 들면,

  • 기술: 지진의 정의, 역사, 어원를 논한다.
  • 설명: 지진은 왜 일어나는지, 지진을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를 논한다.
  • 예측: 지진계는 물론 경고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발-설치-유지-관리-수리에 기여한다.
  • 통제: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에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진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 목적이 변화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런 식으로 지진을 통제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소설적 상상의 영역이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전쟁으로 예를 들면,

  • 기술: 전쟁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어떻게 체계적으로 측정/관찰할 수 있는가를 논한다.
  • 설명: 전쟁이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은가를 인과논리적으로 설명한다.
  • 예측: 특정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음을 예측한다.
  • 통제: 위에 서술한 인과적 설명과 예측을 기반으로 하여,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소(factor) 및 변수(variable)에 조작을 가함으로써 전쟁의 피해를 줄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 역시 다소 공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미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 예를 들면 국제기구의 설립, 동맹, 내전에 대한 중재의 노력 등은 모두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사회에 퍼져 있는 관념과는 달리, 자연계의 현상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현상에 대한 체계적 관찰과 설명 또한 과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3. 어록

"과학은 우리의 생각을 결정해주지 않는다. 과학은 그저 우리에게 제시를 해줄 뿐이고 우리는 과학을 이용해 결정을 내린다. 과학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은 달라진다. - 과학의 중립성"[4]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과학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초보적이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이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C. 클라크"


4. 종류

과학은 크게 사회과학자연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혹은 응용 방법에 따라 용과학순수과학으로 분류시킬 수 있다.

자연과학은 이성과 관찰 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물리적 세계, 특히 인간의 행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닌 자연의 원리에 대해 검증 가능한 방법을 통해 알아보는, 또는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이자 그러한 노력의 산실이다. 즉, 결과 자체로 미래를 추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과정을 토대로 하여 자연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애매한 편이나 대충 이 정도면 어느정도 일반인과의 타협의 선이 되지 않는가 싶다. 이런 의미가 깊숙히 들어간 단어로는 코스모스가 있다.

사회과학인간이 이루어놓은 단체, 구성 모든 것들과 사회, 제도 등등을 과학적 방법론등을 사용해 기술되는 학문이다. 인간이 이룩한 것을 연구하는 측면에서는 인문학과 같으나 인문학과 구별하자면, 인문학이 인간세계의 현상에 대한 규범적 성찰에 무게를 두는 반면, 사회과학은 인간세계의 현상을 가능한 한 가치중립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5] 그러나 사회과학 역시 그 기저에는 인간사회의 가치에 대한 기본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철저히 가치 중립적인 자연과학과는 다르다. 또한 사회과학은 인간사회를 연구하기 때문에 물질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잘 통제된 실험이 어렵고, 주로 관찰을 기반으로 한 통계연구/사례연구/참여관찰로서 이론을 실증한다는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회과학 항목 참조.

5. 방법론

과학은 매우 구성론적인 입장에서 인간은 자연을 이해할 수 있으며, 추론하고,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과학'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과학적 방법론'에 집중해야 하며, 이것은 인류가 발명한 고금에 다시없을 획기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믿음의 근원을 현상에 대한 추론과 비교, 분석으로부터 도출해낸다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추론 방법에는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추론이 있다. 각 과학의 분야에 따라 적절히 나눠쓰이고 있다.

사실 귀납론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흄의 용어로 '항상적 결부'를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과거에 이렇게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거기에서 '필연적'이라는(그러니까, 기존의 관찰에서 보았던 것 대로 미래가 될 것이라는 생각)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증명될 수 없는 하나의 전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보다 더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6][7]

칸트는 이러한 점에서 과학은 언제나 어떤 증명될 수 없는 전제를 가진다고 보았고, 그래서 바로 이 과학은 '선험적(정확히 말하면 경험과 상관 없다는 이야기이다.) 종합명제'에 속한다고 보았다.[8] 복잡하게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과학이 귀납이나 증명 안 되는 전제를 포함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결국 아무리 과학적 방법론이나 과학이 진보하더라도 언제나 과학의 이론들은 반례에 의해서 뒤집히는 수가 있게 된다. 과학자들은 현대의 문제점이니 뭐니로 거론되는 기술과학의 맹신 이런거랑 본질적으로 상관 없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실험이 실험실에서 한번 실수가 터졌다고 뒤집히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론이 뒤집히려면 그야말로 '적절한' 실수가 우선 실수가 아니라고 인식되어야 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계속 그 실험에 관계된 내용이 더 나아지는 관찰 기법과 보조 가설로 팽창하다가 결국 그래도 그게 실수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이론이 바뀌게 된다. 사람의 믿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실험자의 손은 실제로도 많이 틀리는 일이고.) 이 과정은 결국은 어느 정도 모호함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과학적 방법론의 정식화는 끝내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바로 저 방법이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은 다른 학문과 구별된다. 경험을 통해서 반증 가능한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고 과학에서 반증 가능성은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 반증 가능성의 유무가 곧 과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에 오면서 많이 반박되는 부분으로 대중들이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측면으로 인해 유사한 학문들이 언제나 과학의 자리로 오려고 하고 과학자들은 가짜 과학으로 판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다행인 것은 이단 심문처럼 편파적일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과학계에 속한 사람이면 대부분 받아들일 어떤 기준이 있긴 있다는 것. 하지만 최근들어 과학이란 단어가 오남용되고 있는 부분은 있다. 그래도 과학이 다른 학문들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토대에 있다 뿐이고 또 연구자들끼리 조금 더 잘 통한다 뿐이지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그렇게까지 단단한 토대는 아니라는걸 언제나 생각하자.

어쨌거나 흔히 과학이라 하면 자연 과학만을 대상으로 이야기할 때 쓰이는 단어이나 종종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지식 체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그런 대상에 포함되는 지식으로는 정치, 경제, 심리, 언어 등이 있으며 특히 인간 개인 및 집단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것을 사회과학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수학, 정보과학 따위를 경험이나 경험적인 개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과학이라 하여 형식 과학으로 분류하기도 하나 이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과학은 현실에 기반한 추론이라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가설이나 이론에 대한 근거, 즉 데이터 없이 믿는 것은 맹신이라 칭해야 할 만큼 위험한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데이터가 진실한 데이터인지에 대한 검증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사이비 같은 과학을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창조과학 항목부터 읽어보자.

그렇다고 데이터 따지기만 하는 것이 힘든게 또 과학을 하다보면 부딪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관찰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원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생겨난지 오래 되었고 당연히 그것이 있을 거라 여겨졌지만 원자 자체는 2000년대 들어서야 현미경의 발전으로 인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가설로 인해서 추론된 존재자가 있다고 여길 때 기존에 알고 있던 일반적인 존재자와 비교하여 과연 존재자의 어떤 쪽에 이러한 존재자가 위치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흔히 천재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사고를 쭉쭉쭉 뻗어 나가서 혁신적인 이론을 발전시킨다. 이쯤이면 어디가 귀납적 추론이고 어디가 연역적 추론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물리학의 경우 백 년 단위로 이론이 실험을 앞서 나갔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원자를 실제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원자의 존재를 가정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함으로써 원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그 당시 원자의 존재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일정한 질량비로 반응한다든지 등의 수많은 실험적 결과가 원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이건 과학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으로 어떤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가설이 증명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험이 필요하며 많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꼭 '눈으로 봐야하는 과정'이 필요한게 아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DNA 이중나선이 어떻게 복제되는지를 증명한 것도 그 과정을 눈으로 봐서가 아니라, 실험을 통해 각각의 가설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따진 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에도 계속 쓰이며 요즘 화두가 되는 초끈이론도 초끈이라는 것에 대한 가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초끈은 간접적인 증거조차도 증명되지 않았고 이 외에도 수많은 포스트-표준모형 이론들이 있다.

5.1. Ask Why? Ask How?

세간에 퍼져 있는, 과학이 '왜?'에 관한 학문이라는 인식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논쟁적이다.

간단히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생각해 보자. 이 법칙은 '어떻게' 사물들이 서로를 당기게 되는지(즉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얼마 떨어져 있으면 얼마의 힘으로 다른 물체를 당기는지)는 알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애초에 뉴턴이 자신의 역학 지식체계의 결정체인 <프린키피아>에서부터 왜 이런 공식이 나오는 지는 알 필요 없다다고 표명한 걸 보면, 과학의 태동에서부터 왜가 중요한 적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근대적인 물리학의 태동을 낳았던 것이 뉴턴의 중력 이론이나 광학과 같은 연구들임에도, 아직도 물리학자들은 중력에 대해서 몇 걸음 더 나아간 '왜?' 를 설명하지 못한다. 뉴턴보다 진일보한 것은 일반상대성이론 정도뿐, 아직도 력자(graviton)는 관측되지 않았고, 양자 중력학(QGD, 결국은 4개 힘을 통일하는 이론)는 허공답보중이니까. 거기다가 그 이론들이 완성된다고 해도 여전히 중력자가 왜 생기는지, 그리고 중력자가 만들어지는 그 메커니즘은 왜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며, 여기서 설명한 질문들의 메커니즘이 밝혀지더라도 그 메카니즘은 대체 왜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과학이 '어떻게?'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은, 학문이 깊이 들어갈 수록 '왜?'와 '어떻게?'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진다는 점 때문. 일군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찾고 있는 궁극적인 통합 이론을 설명할 수학은 현재 무엇에 대해 설명하는지조차 대부분의 비전공자들에게 있어 이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편한 비수학적인 언어로 간편하게 구분짓듯 자연의 궁극적인 진리를 "왜" 라고 나타낼수 있을 지도 의심스러울 뿐더러, 위의 뉴턴 말따마나 "말인지 아닌지도 구별 못하는(...) 과학체계에서 굳이 왜 그런지 찾을 이유가 있나"가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

또한 이와는 논외로 일반적인 언어로 "왜" 병에 걸리는가,"왜" 화산이 폭발하는가,그리고 "왜" 기상예보는 100% 정확할 수가 없는가 등의 의문들에서 시작해 괄목할만한 지식의 진전을 이룬 성과들은 분명히 "어떻게"만이 아닌 "왜"에서 시작된 질문들이었으며, 또한 거시적이거나 일반론적인 수준에서는 충분한 해답들을 내놓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왜라고 설명하기 곤란한 건 오직 물리학의 경험적 공식만일 수도 있다.

이와 관해서 아주 적절한 동영상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83년도에 리처드 파인만이 한 리포터와 전자기력에 대해서 논하는 인터뷰다. 리포터가 파인만에게 "왜 자석끼리 서로 맞대면 서로 달라붙거나 서로 멀어질려는 힘이 발생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파인만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아주 쉽게 설명하는 동영상이니 한번 보도록 하자. 단 영어 실력이 좀 돼야 한다. 리포터를 우리 같은 일반인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동영상을 보면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과학'과 파인만처럼 정직하고 천재적인 물리학자가 생각하고 있는 '과학'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과학과 인간 지성의 한계를 일반인에게 쉽게 풀어내는 인터뷰다.[9]

또한 더 나아가 사회과학을 다룬다면, "왜"라는 질문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아주 당연하며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이 된다. 이 점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다소 다른데, 자연과학은 자연법칙의 근본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 반면, 사회과학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그 근본목적을 인과관계의 규명에 둔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은 왜 중력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탐구하지 않고 그러할 필요도 없으나, 경제학자들은 왜 전세계적 불황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6. 창작물에서의 과학

판타지 물의 경우 마법이나 같은 초자연적인 힘과 대립하거나 그런 초자연적인 힘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예 순수하게 과학만을 중심 소재로 다룬 장르를 SF라고 한다. 가끔 유사과학이나 너무 만능으로 묘사되거나 작가의 잘못된 지식으로 엉뚱한 것들이 과학으로 포장되어서 전공자들이 뒷목잡는 사태가 발생한다.

7. 여담

왠지 현대의 기계문명=과학이라는 꽤 왜곡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지금의 기계문명을 있게 한 것이 과학적 방법론의 등장이기 때문. 그러나 사실 과학은 어디까지나 기계문명의 근간일 뿐이며, 산업혁명과 같은 문명의 변화는 지식의 진보만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인 많은 요소들의 복합적인 작용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10] 또한 지금 우리 주변의 컴퓨터, 자동차, 고층빌딩 등 수많은 문명의 이기는 과학보다는 공학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해당 항목 참조. 어차피 비전공자의 눈에는 과학자나 공학자나 거기서 거기지만

수포자 못지 않게 과포자도 문제가 있다. 해당 항목 참조.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화생지 시리즈가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한 만능주의도 존재한다. 과학만능주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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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당시에는 Science의 뜻이 아니라 '전문화되는 각 분과(分科)의 학문(學)' 이란 정도의 뜻으로 쓴 표현이었다.
  • [2] 출처: 인물과학사 2 세계의 과학자들. 저자 박성래.
  • [3]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존재한다.
  • [4]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도 서술되어있다.
  • [5] 무엇을 인문학으로 봐야 하고, 사회과학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이 주장이 늘상 들어맞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학과 역사학.
  • [6]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을 두고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닌 것이라며 과학을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과학은 원래 절대적이지 않고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현상을 틀림없이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반증의 여지가 있더라도 수정·보완하면서 그 현상과 계속 가까워지는 것이 과학의 방향이다.
  • [7] 물론 의사과학보다는 과학이 더 옳고 정확하니 무조건적으로 과학을 거부하는 태도는 지양하도록 하자.
  • [8] 모든 과학이 경험과 독립적이라는게 아니라 과학이 선험적 전제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 [9] 왜 늦었는가 → 병원에 갔다 → 왜 → 다리를 다쳐서 → 왜 → 남편이 넘어진걸 봐서 → 왜 → 빙판에 넘어져서… → 아이스스케이팅을 하다 → 허허 이녀석 허허허 → ...죄송합니다!만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이 이어진다.
  • [10] 이 항목의 첫머리를 상기하자. 인간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닌, 과학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