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공화당(미국)

last modified: 2018-09-15 13:19:45 Contributors

Republican Party[1]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1970년대 이전의 역사
2.1.1. 노예해방을 외치다
2.1.2. 장기 집권(1861년~1933년)
2.1.3. 혁신주의
2.1.4. 민주당의 대반격
2.2. '남부전략'과 공화당의 재반격
2.2.1. 닉슨의 부활과 보수의 반격
2.2.2. 레이건, 부시 부자와 신보수주의 혁명
2.3. 부시 대통령 이후의 공화당
2.3.1. 아들 부시의 나쁜 유산과 티 파티
2.3.2. 2012년 대선
2.3.3. 오바마 정부 2기 - 티 파티의 셧다운 자폭
2.3.4. 유로마이단2014년 크림 위기 사태가 준 기회, 그러나...
2.3.5. 2014년 경선
2.3.6. 2014년 중간선거
2.3.7. 2016년 대선
3. 역대 선거결과
3.1. 대통령 선거
4. 지지층
5. 외교
6. 분파

공홈

1. 개요

미국에서 진보적인 민주당과 대치하는 보수정당이며. 과거에는 공업지대와 북부가 주요 텃밭이었으나 오늘날은 농촌과 남부가 주요 텃밭이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미국에서의 정통적 진보주의는 정확히 말해서 중앙정부에 권한을 더 줘서 돈을 사회복지에 더 쓰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고, 정통적 보수주의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되도록이면 줄여서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한 규제를 줄여서 발전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같지만 사회규범은 더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에 구별되며, 그래서 리버럴리즘(자유주의)은 민주당의 이념이고, 리버테리아니즘(자유의지주의)은 보수의 이념이다.[3]

그러나 현재는 그냥 현실감각 없는 레드넥, 심하게는 미국과 전세계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만악의 근원 취급받고 있다. 내정이야 여러 가지로 복잡한 면이 많으니 단정하긴 이르지만, 외교정책에 있어서 이들의 판단력은 한마디로 말해서 답이 없다. 아직도 자신들의 나라가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직후(정확히는 레이건 시절)의 슈퍼 파워와 다를게 없는 줄 안다는 평가까지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4]

2. 역사

2.1. 1970년대 이전의 역사

2.1.1. 노예해방을 외치다

초창기에는 개혁의 선두주자였다. 모체는 휘그당으로, 노예제도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당론 때문에 노예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극심해져 결국 당이 깨지는 사태가 초래되고 1854년 북부의 개혁파들 중심으로 창당된다.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대통령 선출로 1860년대에 처음으로 여당이 된다. 그야말로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수호하는 아름다운 정당으로 시작은 화창했다.

물론 그 배경엔 경제적 요인도 있었지만 말이다. 최근의 연구는 되레 경제적 요인만으로 남북전쟁을 설명하기보다는, 도덕적 이슈가 정치의 메인이 될 만큼 숙성한 미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는 측면도 있다. 링컨 이전에 휘그당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만 보아도, 노예해방에 좀더 우호적인 경향은 있었지만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많기 때문.

2.1.2. 장기 집권(1861년~1933년)

이후 공화당은 19세기 중반부터 긴 장기집권을 이룩한다. 남북전쟁을 북군이 이겼던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남부연맹을 지지했던 전력이 있던 민주당은 일부 잔당이 북군을 지지하긴 했었지만 한동안 북부의 군정에 죽어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부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참정권과 피참정권이 한동안 금지되니 한 때 남부에서는 흑인 상원의원과 부주지사가 나오기도 했다. 백인들은 충성 서약을 할 때까지 참정권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1866년과 1868년 미국 상원의 공화:민주 의석 비율은 57:9, 62:12이었고 하원은 174:48, 168:70으로 공화당이 압도적이었다. 1872년에도 하원 203:89의 대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1858년부터 러더퍼드 헤이스 정권 하에서 2년(1878년부터 1880년까지)을 제외하고는 공화당은 근 20여년간 득표에서 승리했고,[5] 상하원 다수당을 지켜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공화당은 하원은 1874년부터 1894년까지 20년간 두 번(80년, 88년)을 제외하고는 소수당이었는데, 첫 패배는 율리시스 S. 그랜트 정권의 말년 디버프와 함께 경제 공황이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턱걸이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열세에 시달렸으나, 공화당 역시 인기가 낮았으므로(…)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인기 등을 바탕으로 하원 과반을 지켜냈다. 결국 1894년 이후로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클리블랜드의 2기 행정부는 썩 즐겁지 못했다.

민주당의 클리블랜드나 우드로 윌슨 같은 이들이 정권을 뺏어올 수 있었으나 그것도 소수 출신 그룹(아일랜드인 등의 백인 비주류.)이 많은 뉴욕주를 바탕으로 잠시였다.[6] 인구적인 측면에서도 서부를 개발한 북부의 인구는 압도적이었고, 민주당이 중서부의 농업주들의 지지를 받을 때도 공화당의 인구빨은 강대했다. 이 시기의 대통령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았던 율리시스 S. 그랜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임으로, 실질적 힘은 강한 상원의원들이 휘둘렀다는 게 특징.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공화당 정권의 영향이 지대하게 미친 것이 사실이다. 공화당의 자유방임주의 정책은 거대 기업집단인 트러스트를 방치했고, 미국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갔으나 동시에 제2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또한 엄청난 관세를 때리는 보호무역 정책은 대전 후 세계공업을 주도할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미국의 주 수출품이었던 농산품으로 먹고 살던 남부 농민들은 북부인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또한 연방정부의 힘도 공화당 정권 아래 더 세졌는데, 이는 지금도 미국 연방정부가 국내에서 가진 힘이 다른 정부에 비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필요한 조치였다. 초창기의 연방정부는 세금을 부과할 권리도 힘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미국에서 소득세를 부과하게 된 것은 헌법을 수정하고 나서인 1895년이다. 물론 사회주의라고 매도하는 엄청난 반대를 뚫고 이룩한 것이다.

2.1.3. 혁신주의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도한 혁신주의 바람은 20세기 초기의 미국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기업들이 각종 편법을 사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 법을 제정하고, 독점을 막았으며, 식약청이 세워지는 등 안전과 발전을 위한 규제를 세웠다. 무엇보다도 루스벨트는 노동자와 흑인들에게 어느 정도 온정적인 노선을 취하면서 그들의 권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었다. 물론 루스벨트는 민권운동을 좋아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다만 전 대통령들보다 더 온정적이었을 뿐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정부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할 건 없이 운동 세력들을 탄압했고 클리블랜드 같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배경에서 루스벨트의 노선은 그의 엘리트적인 배경을 생각할 때 놀라운 것이었다. 인민당이나 진보당 등이 성행했던 시기도 이때였다. 1908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확보한 상원 의석은 무려 62석(민주당은 32석)이나 되었지만...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의 제국주의가 융성한 것도 사실이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미서전쟁이 대표적. 쿠바 독립에 관여하며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등의 식민지를 빼앗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돌입했다.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스페인을 미국과 함께 몰아내고 필리핀 혁명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졸지에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온 꼴이 되었다. 1899년 벌어진 전쟁은 1902년까지 계속되었고 100만의 필리핀인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대통령 매킨리는 백악관에서 어느 날 들은 필리핀을 개종시키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필리핀을 식민지화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지만 사실 변명일 뿐, 그동안 시어도어 루스벨트나 다른 제국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먼로 독트린 이래 미국은 항상 아메리카 대륙에 세력을 떨치려 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남미에 대한 영향력이 더더욱 극대화되었다.

하지만 혁신주의의 공은 결국 학자 출신인 우드로 윌슨에게로 넘어갔고, 공화당 내에서 혁신주의는 점점 세력을 잃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윌슨의 재임 기간 민주당에게 6년 연속 상하원 다수당을 잃었고, 특히 윌슨이 재선을 거둔 1916년의 경우 의석상에선 승리를 거뒀지만(216:214). 진보당과 사회당이 민주당을 지지해줌에 따라 하원 의장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물론 다시 1918년 선거 이후 14년간 다수당이 되었으며, 특히 1920년에는 산사태(Landslide)라고 부를 만한[7] 하원의 대승(302:132)을 거두었다. 루스벨트를 열심히 지지하던 워런 하딩은 별다른 업적 없이 죽었고, 캘빈 쿨리지 시대에 들어서는 미국은 자유방임주의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후유증을 씻어낸 민주당의 거센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2.1.4. 민주당의 대반격

공화당은 186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70년간, 행정부로 따지면 클리브랜드, 윌슨의 16년을 제외하고는 56년간 미국을 다스렸다. 그 경이로운 비율은 무려 7:2. 대통령 수로는 공화당에 단임 대통령이 많아 13:2였다. 하지만 허버트 후버 때 터진 세계 대공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사실 대공황 자체는 그 혼자 책임을 질 사항은 아니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전임자 쿨리지의 지나친 자유방임 정책에 원인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버는 적어도 그 대처에 있어서는 실패했으며 차후 대응은 분명 부족했고 너무 늦게 나왔다.

그리고 그 때 그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8]가 나와서 민주당 내의 진보세력과 규합하고 민주당의 정책을 바꿔놓는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링컨 이후 흔들림이 없었던 흑인들의 지지를 잃었으며 민주당은 소수인종-유태인-이민자-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되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얻게 된다. 이른바 라인.

그 극명한 결과는 1936년, 루스벨트의 재선에서 드러난다. 재선에서 루스벨트는 무려 60.8%를 득표하며 36.5%를 득표한 앨프리드 랜던을 1100만 명 차이로 격파했으며, 민주당이 상원에서는 76석(82%), 하원에서는 334석(76.7%)을 차지하면서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 공화당은 상원 16명(…)에 하원 88석(!)으로 대패를 당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은 1930년대 이후 공화당 지지를 버렸고,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지만 1970년 이후로 흑인사회에서 미국 정부에 대한 반발이나 비난보다는 흑인사회의 자립과 향상을 지지하는 토마스 소웰이나 암스트롱 윌리엄스 등 소위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한다. 물론 그 비율은 대충 전체 흑인 중 15% 내외로서 한국으로 치면 TK지역에서 민주당계 정당을, 호남에서 보수계통의 정당을 지지하는 비율 수준이다.

이 '뉴딜 동맹'의 지지 기반은 훗날 '남부전략'이 백인 하층민들을 공화당으로 끌어들일 때까지 어느정도 지속된다.

2.2. '남부전략'과 공화당의 재반격

2.2.1. 닉슨의 부활과 보수의 반격

FDR에서 해리 트루먼까지 민주당은 이렇게 무려 20년간 미국을 연이어 통치하였다. 이런 장기 통치와 세계대전, 이어지는 냉전에 국민들은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민주당 정권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끝났다. 1952년 대선 당시 아이젠하워의 공약 중 하나는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었고 당시 전쟁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인들은 아이젠하워를 지지하게 된다. 물론 트루먼 때문에 민주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기도 했지만.[9]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의 경험을 살려 국방 예산을 줄이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미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어 개념 대통령 취급을 받는다. 이 시기(1950년~1958년) 상하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적은 의석차로 엎치락뒤치락했으며, 의석동수로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공화당을 다수당으로 행사한 적도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서민과 남부, 공화당은 중산층 이상과 북부의 지지를 받았으나 20세기 중반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이, 민주당과의 텃밭 바꾸기 전술, 일명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이다.

20세기 들어와서도 남부에서 공화당의 입지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남북전쟁 이후 피해를 입은 남부에서 봤을 때 공화당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였기 때문. 남북전쟁 자체가 노예제보다는 노예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 즉 농업과 산업의 대립, 남부의 현금작물 대농장과 북부 개척민(자영농) 들의 대립 등 나라가 팽창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뿌리깊은 대립이 모여서 터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출생성분이 달랐던 공화당은 남부에서는 거의 멸시와 혐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딕시크랫이라고 불리며 민주당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어색한 동거는 FDR 때부터 시작한 민주당의 진보화(정확히는 연방정부 강화주의와 민권운동)에 불안을 느끼면서 삐걱대더니, 드디어 존 F. 케네디린든 존슨이 민권운동을 강력히 지지하면서 헛돌기 시작했다. 존슨이 남부의 상원의원 거물큰 형님로 민권운동과 여러 중요한 법안(업적)들을 이끌어 냈지만 속은 곪고 있었던 것.

이런 분위기를 당시 사우스 캐롤라이나 남부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스트롬 서몬드가 감지하였고 그가 주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남부 백인들의 마음을 돌려 민주당을 분열시켰다.[10] 닉슨은 당시 일고 있던 민권운동에서 슬며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이 딕시크랫들을 유혹했고, 기어이 1964년 서몬드가 공화당에 입당하면서 남부의 정치토양은 대 균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남부 애리조나 출신인 배리 골드워터였다. 결국 선거 결과는 존슨의 대승으로 끝나나 압승 속에도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기어이(그리고 도리어) 남부였다. 존슨의 지지 기반이었던 텍사스를 비롯하여 아칸소, 테네시, 노스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은 존슨을 찍어 주었으나 Deep South로 분류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조지아, 미시시피, 루이지애나는 골드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참고로 50개주+DC 중에서 골드워터가 승리한 주는 전술한 Deep South 5개주+골드워터의 Home State인 애리조나가 전부. 상황이 정반대가 된 것.[11] 이는 잠시 남부 출신인 지미 카터가 등장하면서 주춤해지지만[12] 후에 레이건이 이런 문화적 보수주의 전략을 한층 더 승화시켜서 현대 공화당의 전략을 확립한다.

닉슨은 비록 데탕트로 상징되는 외교정책과 미국의 베트남전 축소[13]는 성공하긴 했지만 거짓말, 월권, 사법부 직원들의 줄사표로 얼룩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임기 중 사임을 하고야 만다.

2.2.2. 레이건, 부시 부자와 신보수주의 혁명

그나마 온정적이고 중도적이며 총기 규제에 적극 나서는 등 과거의 진보적 유산을 승계한 공화당의 이미지는 닉슨 선에서 끝난다. 로널드 레이건 때에는 결국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소련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고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지지자들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결국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소련을 경제적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 및 개혁 노선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그 유명한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장벽을 부수시오!"라든가... 즉, 강경한 정책이 소련이 자멸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담으로 레이건과 먼데일이 맞붙었던 1984년 미 대선은 미국 역사에 남을 정도의 대관광이었다. 먼데일은 미국 50개 주+워싱턴 DC 가운데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와 DC만 간신히 먹고(선거인단 13명) 나머지는 모두 레이건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시 레이건의 인기가 워낙 좋았고, 먼데일이 좀 멍때리는 인상이라서(…)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다나.

그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임기 때는 냉전의 뒷수습을 잘했지만 걸프전의 함정과 경기 침체[14]로 인해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그가 보수표를 잃은 큰 이유는 바로 그가 공약에서 절대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임기중에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기 때문. 이 때문에 선거에서 로스 페로에게 보수표를 다수 빼앗겼으며[15] 결국 경제를 내세우며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빌 클린턴에게 패한다.[16] 잠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공화당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 지지도가 충분치 않았던 클린턴 정권이 의료개혁의 실패로 비틀거리자, 1994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지도자 뉴트 깅그리치가 내세운 미국과의 약속(계약)으로 공화당이 40년만에 하원 다수당을 되찾은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거대한 타격이었으며, 클린턴 정권은 이후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아들 조지 W. 부시석연치 않게 앨 고어를 선거인단에서 이기고 당선되었고,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안보에 대한 공포심리를 이용하여 연임에도 성공하였다. 물론 그의 온정적 보수주의와 높은 도덕성도 스캔들에 질린 국민들의 지지를 끌었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점차 수렁으로 빠져들고 각종 비리 사건이 터졌고 무엇보다 부시 재임중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신자유주의+보수주의 노선은 국민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2.3. 부시 대통령 이후의 공화당

한마디로 말해서 그야말로 헬게이트 그 자체. 게다가 이들은 아직도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며 우크라이나이라크에 대한 적극개입을 주문하는 등 부시 시절의 미국의 역량과 현재의 역량에 대한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받을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14년 중간선거의 결과에서 보듯이 일반 미국인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실 감각이 없는 공화당보다도 더 아래라는 사실이다.

2.3.1. 아들 부시의 나쁜 유산과 티 파티

2008년 공화당 경선 후보, 특히 존 매케인의 경우는 부시를 까면서 지지를 받는 수준이었다. 매케인은 경선 후보가 된게 신기할 정도로 공화당 비주류였던 원칙 있는 보수주의자였다. 그의 표결이 거의 보수적이긴 했으나 중요한 순간마다 개념찬 발언들을 많이 했던 반면, 결국 세라 페일린에서 보듯 밑바닥 공화당은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이 판을 쳤다. 결국 페일린 디버프로 매케인은 큰 격차로 패배.

이렇게 공화당은 2008년 대선에 패배했고 의회에서도 소수당이 됐다. 팽팽하던 배아복제도 오바마가 새로운 법령으로 허용한 당시 60~70% 전후의 찬성률을 보이는 등 공화당의 문화적 보수주의는 잠시 패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렇게 된 원인은 조지 W. 부시 덕분이었고, 여기에 양념을 쳐준 딕 체니도널드 럼즈펠드도 잊지 말자.

오죽하면 매케인이 대선 때 이런 말을 했을 정도...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의 정당에 부디 한 표를 부탁드립니다!"
아아 좋은 추억팔이다. 근데 그 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게 아니라 그 분들을 본받아야지.

이렇게 공화당은 2008년 이후 역사상 전례가 없을 수준으로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티 파티 무리가 조직되면서 공화당은 분주히 세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레이건 시절이 좋았어여!"라고 과거를 회상시키면서 유권자를 설득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종교 수준. 이런 대 반격 전략과 보수 언론인 FOX 뉴스의 공세가 겹쳐, 중간선거 결과 하원에서 공화당은 큰 승리를 거두며 4년만에 하원을 되찾았다. 상원만 간신히 민주당이 유지한 정도. 그러나 이것도 회광반조에 불과했으니 이후의 4년은 공화당에 대한 민주당의 대반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공화당에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당과의 대결구도 그 자체에 있다. 서부/동북부의 인텔리 백인+도시 노동자+흑인+히스패닉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여성+성 소수자+헐리우드라는 황금동맹을 형성한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의 갑부 자본가+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종교적 보수주의자 연합이 기본적으로 머릿수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17][18] 그리고 공화당에게 있어 더 암울한 점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앞으로 그 숫자가 더더욱 늘어날 것이고(특히 히스패닉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 공화당의 경우 특히 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과 종교적 보수주의자는 점점 적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려면 민주당의 대규모 삽질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 그리고 리더십과 능력을 갖춘 공화당 인물의 출현이라는 3종신기가 필요한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셋 중 하나라도 실현이 불가능하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칼 로브를 중심으로 공화당 지도부가 취했던 더 극단적/보수주의적으로 가기 전략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

2.3.2. 2012년 대선

밋 롬니를 내새운 2012년 대선에서 백인 표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비백인들의 표에서 심각하게 털리며 도시쪽 선거에서 탈탈 털린 이후론 여지껏 내세운 극단적인 보수주의로 나가는 걸 피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지도를 보면 미국 전역을 새빨간 색으로 물들이며 땅따먹기 면적 자체는 공화당이 이겼다. 문제는 그들이 이긴 지역들은 인구수가 적은 시골이나 소형 도시/마을이 속한 카운티고, 각 주의 인구가 몰려있는 대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다. 이런 성향은 경합주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다.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시골과 소형 도시를 먹고 있는 공화당의 미래는, 젊은 인구와 해마다 늘어나는 이민자 인구가 대거 주거하고 있는 대도시를 먹고 있는 민주당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암담하다. 물론 공화당의 성향은 한국처럼 고령화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개선할 생각이나 있는지 의문인 국가라면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크게 유리하다. 노인층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정확히 그 반대의 국가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패배한 것. 사실 다른 공약은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내세워도 유색인종 표엔 큰 문제가 없지만, 이민에 관련된 문제는 여태껏 내새운 강경주의를 사용하지 못할 듯.[19]

2008년 이후 대선 후보로는 밋 롬니, 세라 페일린, 마이크 허커비, 론 폴[20] 등이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의외로 흑인이지만 극우파인 케인과, 페일린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완전 극우파는 없다. 그나마 다행. 허커비는 11년 불출마를 선언.

2012년 경선 와중에는 조지 W. 부시와 닮은 릭 페리라는 텍사스 주지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가 사그라들고, 보수주의의 대부인 뉴트 깅리치가 등장했다. 문제는 깅리치는 당내 지지도만 강하다는 것. 결국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뉴트 깅리치는 밀려나가고 롬니와 뤽 샌토럼이 8표 차이로 1, 2등을 하고 4chan에서 트롤링으로 밀어주는 론 폴이 3등을 했다.[21]

이렇게 롬니가 후보 자리를 굳히는가 했더니...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에선 고인 취급받던 깅리치가 1등을 해버렸다. 이건 뭐 뒤틀린 황천도 아니고. 플로리다네바다에서 롬니가 64명을 가져가면서 대세를 다시 끌어오더니 이번에는 샌토럼이 콜로라도와 미네소타를 가져갔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당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나.

그리고 운명의 슈퍼 화요일, 롬니는 많은 승수를 쌓으며 대세론을 이어갔지만 가장 중요한 오하이오[22] 등 10개 주 중 6주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해 결국 공화당 경선은 초장기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당은 더더욱 승리를 자신. 남부 보수우파를 등에 업은 깅리치는 어마어마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돈을 쏟아부었고, 여기에 롬니가 맞서면서 경선이 거의 대선, 당내 내전 수준으로 이어졌다(…)

롬니가 이렇게 고전했던 이유는 단 하나, 성경책에 손에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나라에서 엄연히 기독교가 아닌 몰몬교라는 것이었다. 오바마도 미들네임 '후세인'으로 곤욕을 치렀고, 미국 사회에 영향력이 큰 유대인도 대통령 후보는 내지 않는다. 깅리치는 허먼 케인과 세라 페일린 같은 비교적 강경파들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다만 정치적 색깔이 극단적인 깅리치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는 것이다. 반면 롬니는 롬니대로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다고 까였다. 서민 드립을 치고 있는 공화당 후보인데 지난 2년간의 '개인' 수입은 $42 million... 거기에다가 롬니가 지난 2년간 낸 세금의 세율은 14%도 안 된다. 하루에 5만 6천불 벌고 있는 사람의 세율이 연봉이 5만 6천불인 사람과 비슷한 세율. 더 큰 문제는 롬니가 위법하지 않고 세금을 냈는데 세율이 14%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샌트롬은 도덕적 타격을 입은 깅리치를 대신해서 깨끗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정통 보수들의 지지를 받는 모양새지만, 그만큼 아무래도 정치인인지 목사인지 모를 도덕론과 극단적인 보수주의 때문에 기존 공화당 지지자 표심은 잘 잡겠으나 중도층에는 취약할 후보라는 게 단점. 무난하지만 대신 보수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중도, 좌파스러워 미지근한 지지를 받는 롬니와는 반대의 경우인 셈. 선명성과 중도의 양강 대결로 점점 굳어졌다.

결국 샌트롬은 사퇴를 표명했고 그와중에 유타에서 모르몬교도인 롬니에게 도전하는 뉴트 깅리치는 재혼왕의 패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결국 2012년 5월 29일(현지시간), 롬니가 텍사스 주 프라이머리에서 공화당의 전체 대의원 중 과반수[23]를 (누적)확보하여 공화당의 44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24] 2012년 8월 말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지명되어 2012년 11월 6일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게 될 예정이다.

2012년 7월 말까지도 러닝메이트는 결정되지 못했다.[25] 러닝메이트 하나 잘못 뽑아서 선거를 말아먹은 전례가 있어서...

그런데 9월 17일 미국의 진보성향의 잡지 '마더 존스'에서 밋 롬니가 그의 비공개 선거자금 모집행사 중에 연설하는 모습을 담은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행사에서 롬니는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롬니가 대형 자폭을 시전하면서(…) 결국 노스 캐롤라이나를 제외한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등의 경합주를 모조리 내주며 대선에서 패배했다. 하원에서는 과반을 유지했지만 상원 선거에서는 리처드 머독 인디애나 주 후보와 토드 아킨 미주리 주 후보의 자폭[26]에 힘입어 8석 확보에 그쳤다.

2012년 선거 패배 후 낙태 관련 자폭 발언들과, 공화당이 장악한 지역 의회의 투표율 저하를 위한 공작[27] 티 파티의 활동 등으로 인한 꼴통스러운 이미지가 공화당에 덧씌워져 유권자들의 성향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예측이 중도층과 온건 지지자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면 강경 보수주의자들은 롬니가 모르몬교도에 진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3.3. 오바마 정부 2기 - 티 파티의 셧다운 자폭

2013년 10월, 우려되던 셧다운 사태가 터지고, 그 원인이 오바마케어를 막으려는 공화당의 무리수임이 지적되면서 피해를 받는 유권자들의 분노가 공화당에게로 향했다. 주로 공무원이 많은 주들과 노인이나 중소기업처럼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많은 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주들에는 공화당의 텃밭인 앨라배마와 알래스카도 끼어있다. 이외에도 셧다운 사태에 피해를 보는 주들 중에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고 인구가 많은 주들이 다수 끼어있어 이들의 지지도가 낮아졌다. 셧다운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기에... 공화당으로서는 당장 급한 일 땜빵하려다가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자충수를 둔 셈.

결국 셧다운 중단 협상에서 공화당은 요구사항 중 단 하나도 얻지 못했고, 지지 기반만 흔들리고 미국에 재산피해를 끼쳤다. 근데 공화당 강경파는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셧다운 후폭풍으로 다른 공화당원들이 2013년 시장, 주지사 선거에서 이리저리 털리는 와중에도[28] 티 파티와 담을 쌓고 허리캐인 샌디를 통해서 자기 PR을 착실하게 해온 크리스 크리스티는 전형적인 진보州로 통하는 뉴저지에서 주지사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다음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크리스티가 포트 리의 시장이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을 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트 리(뉴저지)와 뉴욕 시를 이어주는 조지 워싱턴 다리[29]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허리캐인 샌디의 피해를 받았던 호보켄 역시 시장에게 구호금을 가지고 은유적으로 협박을 했던 게 드러나면서 그의 정치 생명과 공화당의 향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설마 진짜 Ron Paul 2016.[30]

심지어 '보수단체에 대한 차별적 세무조사 청문회'에서는 로이스 러너 미 면세국장이 수정헌법 5조를 근거로 대답을 거부하고도 공화당 의원이었던 조사위원장이 계속 질문공세를 하자 민주당 쪽 의원이 손을 들어 의사 진행 발언을 요청했으나 위원장이 이를 무시하고 휴회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왠지 이런 일이 익숙한 한국과는 달리 이런 일은 미국 의회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 미 언론에서도 "요즘 미 의회의 예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까였다.

2.3.4. 유로마이단2014년 크림 위기 사태가 준 기회, 그러나...

유로마이단 사태에서 미국은 아무리 멀리 있다고는 해도 사태가 저렇게 악화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는, 국력에 비해 엄청난 굴욕을 맛보았다. 러시아크림 반도를 다시 흡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대부분을 친러로 돌려 대규모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연합보단 낫다지만 아무런 제동도 못 걸었다는 점에서 이는 현 오바마 행정부에게 치명적인 오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전망도 있는데, 일단 저번 사태 때 집권당이 공화당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꼭 민주당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듯 미국인들은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서의 피해 이후로 해외분쟁에 끼어드는 것을 꺼려하는 고립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한국처럼 미국과 상위방호조약으로 맺어진 동맹국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을 미국인들이 과연 좋게 볼까? 당장 티 파티가 터트린 병크인 셧다운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못한 마당에? 뿐만 아니라 유로마이단의 주축에 네오 나치 세력이 끼어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로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은 더욱 차갑게 식을 것이 분명한 만큼 공화당이 이걸 공격해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대러시아 정책의 실상은 아들 부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나 미국인들은 잘 모르고 있어서 공화당이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 수는 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비판 항목 참고. 그러나 애초에 아들 부시가 먼저 깽판을 친 상태에서 태클 걸어봤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소리 이상은 듣기 힘들 듯. 매케인처럼 또 자기 당의 네오콘들을 까거나 대오각성의 의지를 보여줘야 그나마 좀 될 텐데 과연 그런 인물이 있을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당장 공화당이 사실상 티파티와 온건파의 두 당파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다. 당이 힘을 합쳐서 기회를 잡아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해나가야만 하는 마당에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현재 공화당 수뇌부의 상황과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행태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2.3.5. 2014년 경선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자 공화당 원내 대표인 에릭 캔터가 예비 선거에서 다른 공화당원에게 패배했다.[31] 사실 하원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다른 인물에게 밀리는 건 그다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이 양반이 공화당에서 다음 하원 의원장으로 예상될 정도의 거물 네임드라는 게 문제다. 거기다가 이 양반이 떨어진 이유가 '너무 진보적'이어서 듣보잡 복음주의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32] 당연한 소리지만, 저 양반이 실제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캔터가 티 파티를 비롯한 극우 공화당에게 '너무 진보적인' 이유는, 이민법 개정에 찬성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3]

사실 2014년 경선뿐만이 아니라 미국 현대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이, 가뜩이나 나라도 크고 인구수도 많은데 공화당과 민주당 네임드급 거물들이 대부분 극과 극을 달리는 우와 좌라는 것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금이 제일 많이 걷히는 중산층 사람들은 소득으로서나 교육으로서나 어느 한쪽의 극을 좋아할 이유가 딱히 없는 딱 중간, 진보적인 보수요 보수적인 진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인데 그걸 다 제쳐놓으니... 위의 에릭 캔터만 해도 미쳐서 이민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적극적으로 시민권 가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 유권자가 늘어난다는 당연한 생각에 기반한 것이니 말이다. 이민법 문제 말고도 선거에 자주 등장하고 의견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낙태나 동성결혼 등의 문제의 경우도, 물론 선택할 권리와 행복권에 기반한 중요한 이슈이지만 선거할 때마다 이런 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평범하게 벌어먹고 사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 나라 빚이 지금 천억을 넘어가는데다 실업율은 또 얼마인데 저러고들 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부시 선거하던 시절에 동성결혼 이슈를 기독교 교리의 원칙 이슈로 몰아가며 공감대를 새운 것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2.3.6. 2014년 중간선거

노스 캐롤라이나 등 스윙 스태이트에서 이기면서 상원을 다시 먹었다.

2014년 퍼거슨 소요에 놀란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결집, 프리즘 폭로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 티 파티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 공화당 온건파들의 대안화 등을 기반으로 중도파들이 대거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 등이 원인으로 파악되며,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레임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등치시키면서 오바마 심판론을 전개했고, 경합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온건파 후보를 배치하며, 온라인 여론전에도 신경을 썼으며, 티 파티와 민주당 행정부 양자에 모두 실망한 중도파들이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이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오바마 심판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바마에 실망한 미국인의 결집에 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34]

다만 지금은 썰물처럼 빠지긴 했지만 다시 밀물처럼 들어올 수 있는 티 파티가 공화당의 발목을 계속 잡는 것이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재계와 중도층은 티 파티는 싫으나 공화당 온건파를 지지한 경우가 다수라, 티 파티가 다시 강해지면 언제든지 공화당을 버릴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자칫 핵전쟁을 부를 우크라이나 적극 개입을 외치거나,[35] 이미 이라크와 아프간전을 통해 안정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데다 사회 자체가 극히 전근대적이라 현대적인 마인드 하에서의 접근 자체가 무의미한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공화당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그 오바마보다도 외교정책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충분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36] 이는 이라크나 아프간전과 경제위기로 인해 외부 개입에 대한 피로증이 심각한 미국 여론의 반발과 더불어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공화당 입장에서 최대 난점은 힐러리를 압도할 후보가 아직은 없다.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29%의 지지율인 젭 부시지만 부시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가문, 그것도 조지 W. 부시의 남동생이다(…). 스펙트럼이 넓어진 공화당에서 온건파에 속하고 형이 아닌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긴 하지만, 부시 가문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워낙에 많아서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견이 절반이라 형의 아우라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부터가 문제다(…).[37] 그 다음으로는 25%의 지지율인 랜드 폴이 있는데 그는 공화당의 딜레마인 티 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밋 롬니는 여운을 남겨 놨지만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고, 24%인 크리스티는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인 조지 워싱턴 다리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동안의 블루 칼라스러운 좋은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났다. 또 이름을 대자면 스캇 워커와 마르코 루비오 정도? 물론 공화당 후보로 공천되는 시점에서 '인지도' 정도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나, 힐러리와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10% 가량의 차이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게 문제지만, 적어도 힐러리라도 있다는 것이 민주당에겐 유리하다. 힐러리는 젊은 층에겐 비교적 인기가 적긴 하지만 최소한 blue dog 민주당원들이라는 든든한 지지 배경이 있고, 남편인 빌 클린턴의 고향인 아칸소를 비롯해 인접 남부 일대에서 공화당의 텃밭을 가져올 확률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공화당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후보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인물로는,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렌과, 무소속이지만 리버럴 성향인 버몬트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있지만, 센더스는 너무 마이너하고[38], 워렌의 경우는 민주당 내부에서 비주류에 속했는데도 2014년 중간선거 이후 당에 변화를 주기 위해 당 주요 인사에 추대될 정도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워렌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은 의회에 있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다.

2.3.7. 2016년 대선

2014년 12월, 부시家의 차남인 젭 부시[39]가 2016년 대선에 출마를 고려하는 걸 신중히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2012년 대선은 웬만하면 당선되는 두 번째 임기 대선이고, 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어서 출마조차 하지 않았지만 2016년 대선에 출마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공화당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인 라티노 인구의 표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인물인지라 공화당 측에서 밀어줄 가능성이 높다.[40][41]

2015년 1월, 밋 롬니가 2016년 대선에 출마를 고려한다고 했다. 이걸로 다음 공화당 경선은 롬니 v. 부시 v. 크리스티 3파전으로 번질 듯...했지만 30일에 결국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고. 이에 있어선 FOX를 기반으로 한 루퍼트 머독 소유의 언론사가 롬니의 후원자들을 뒤흔든 것이 큰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리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수준의 47% 발언 때문에 서민 유권자들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 하는 공화당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후보는 아닌 듯. 카터 가문의 킬러 클라스.

2015년 4월, 론 폴의 아들인 랜드 폴이 출마 선언을 했다. 보다 중도에 스탠스를 잡으려 하는 젭 부시와는 반대로 파티, 극단적인 개신교 신자들의 표밭, 그리고 좀 더 리버테리안 성향을 보이는 젊은 우파들을 노리고 있다.[42] 한마디로 미드웨스트와 바이블벨트 시골 표는 자기꺼라 이거

3. 역대 선거결과

3.1. 대통령 선거

후보자연도선거인단득표율당선여부
토머스 E. 듀이19449945.9%낙선
토머스 E. 듀이[43]194818945.1%낙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95244255.2%당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95645757.4%당선
리처드 닉슨196021949.5%낙선
배리 골드워터19645238.5%낙선
리처드 닉슨196830143.4%당선
리처드 닉슨197252060.7%당선
제럴드 포드197624048.0%낙선
로널드 레이건198048950.7%당선
로널드 레이건198452558.8%당선
조지 부시198842653.4%당선
조지 부시199216837.5%낙선
밥 돌199615940.7%낙선
조지 W. 부시200027147.9%당선
조지 W. 부시200428650.7%당선
존 매케인200817345.9%낙선
밋 롬니201220647.3%깨알같은 47%낙선

4. 지지층

초기에는 북부가 공화당의 기반이었으나 1964년 시민권법 제정이후에는 남부가 공화당의 기반이 된다. 서부나 동부의 거대 도시보다 변두리나 시골에서의 공화당 지지도가 높다[44].

젊은 세대보다는 부모세대에서 인기가 높다. 고소득층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45].

흑인들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민주당과 싸운 정당이지만 지금은 흑인들에게 인기가 없다. 흑인들의 지지를 잃은 이유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탓이 크다.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인 감세와 예산삭감 때문에 빈민층을 이루는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가 감소되는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닉슨의 Southern Strategy 때문에, 흑인을 억압하던 과거의 남부와 중서부의 민주당이 공화당으로 턴 힐 하면서 민주당과의 입지가 완전히 뒤집혔다.

백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최근 백인들은 민주당을 더 선호한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46]

과거 공산권 지역출신의 히스패닉, 아시안들에게 인기가 높다.[47] 하지만 1세대 이민 세대인 부모 세대와는 달리 '반공' 이라는 사상에 공감하기 힘든 2~3세들에겐 그다지...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공화당을 선호한다[48].

군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장교, 사병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만 특히 장교들의 공화당 지지율이 매우 높다[49] .

메이저 언론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화당을 지지한다[50].

유대교 신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개신교나 모르몬교 신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51].

5. 외교

우선 남북한의 경우 보수성향이 짙은 정당이었기 때문에 역대 공화당 정권은 한국과는 한미동맹과 우호협력 등을 통해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을 위협할 적대국가로 인식하였고 역대 공화당 정권이나 공화당 대선 후보들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제재 등을 국가 및 선거공약으로 내세울 정도.

특히 공화당 당적의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3대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였고 북한의 2대 군주에 대해서도 "전혀 못 믿을 사람이고 믿을 가치조차 없다.", "무기를 만들기 전에 백성들이나 먹여 살려라."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런 도덕주의적 국제관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진 부시 후반기로 가면 결국 현실주의적인 협상론으로 기울어졌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협상 자체가 먹히지 않는 막장 오브 막장이라 그런지 대안이 없어서 여전히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바마 역시 이런 공화당의 시각을 북한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

이외 다른 국가들의 경우, 과거에는 적극적인 도덕주의를 유지했지만 현재는 갈수록 고립주의자들이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시리아 전쟁에서 미국 내 여론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시리아 개입에 반대하는 것[52]이 대표적인 사례. 다만 공화당 지도부는 여전히 국제적 도덕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6. 분파

한국의 정당의 경우 인물을 따라 분파가 형성되어 있다. 예를들어 한국의 공화당(...) 새누리당의 경우 친박, 탈박, 친이(비박) 진영으로 나눈다. 그에 비해 미국 공화당은 이념에 따른 분파가 형성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파티(Tea Party), 개혁보수주의(?) (Reform Conservatism),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가 있다. 티파티는 네오콘의 정신적 계승자로 사라 페일린을 얼굴마담으로 세운 레드넥 세력이며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동일한 이념을 지닌 세력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자유의지주의라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는 주의로 티파티와는 완전히 상극이다. 부시정권의 경우 네오콘으로 상징되는데 네오콘=티파티라고 보면 될 정도로 이념이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당을 레드넥 똘아이라고 욕할때 자신들은 자유지상주의라고 쉴드칠 때 많이 사용된다. 공화당에서 개념을 탑재한 인물들은 전부 자유지상주의라고 보면 무방하다.
그에 반해 Reform Conservatism은 개혁(Reform)과 보수주의(보수주의)를 결합한 말로 구글링을 해봐도 적절한 번역어가 나오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한국일보에서는 두 단어를 합성한 리퍼미콘(Reformicon)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는데 부시정부때의 네오콘을 신보수주의라고 번역하지 않듯이 리퍼미콘을 개혁보수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 일수도 있다. 이념성향은 간단히 말해서 민생 중심의 중도보수이다.

세 분파의 이념은 총기문제, 낙태문제, 정부시장개입등에 따라 사사건건 서로 부딛칠 정도로 틀리다. 몇가지 예로 들자면 노조에 대한 대응은 티파티의 경우 노조=좌빨 이라는 단순한 사고를 같고 있으며 어째 국내의 모 정당 같은데? 자유지상주의는 사업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노조의 자유까지 보장한다. 리퍼미콘의 경우 아예 노조와 노동세력까지 지지기반으로 포섭할려고 하는 수준이다.
총기문제의 경우 티파티는 총기소유의 자유를 적극옹호하며 한술 더떠 그총으로 민주당원 쏘라는 식의 발언을 하다가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적이 있으며, 자유의지주의는 당연히 총기 소유의 무한한 자유를 지지한다. 리퍼미콘이 총기의 합법적 소유를 주장하는 정도.
문제는 이러한 공화당이 2014년 11월 선거에서 미국 상원/하원은 물론 주지사선거까지 대승을 거두어 다수당이 되었는데 이중 상당수가 티파티 세력이다. 이제 세계는 꿈도 희망도 없어

그런데 이상의 세분파가 약간 복잡해 지는게 위에서 언급한데로 네오콘의 정신적 계승자는 티파티이지만 네오콘의 몸통들은 일견 천박해보이는 티파티가 아닌 지지세력의 확대를 꾀하기 위해 리퍼미콘으로 변신하는 추세이다. 또한 티파티들이 욕먹으로 우리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라며 쉴드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견만 보고 셋중에서 어느분파인지 알기 어려운 감이 있다.
----
  • [1] 별칭으로 Grand Old Party(GOP)라고 하나 어디서 유래한 이름인지는 모른다. 공화당도 추측할 뿐. # 상징은 코끼리. 원래 상징은 아니었으나 공화당을 까던 기사에서 풍자하면서 그렸고 그게 퍼지다 보니 후에는 그냥 상징으로 사용했다(…).
  • [2] Party가 흔히 생각하는 신나는 파티뿐만이 아니라, 정당이나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는것을 이용한 개그.
  • [3] 자유의지주의는 개인에 대한 완전한 소유, 즉 정부의 권한을 줄이자는 이념이고, 자유주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에선 자유의지주의보단 덜한 자유, 더 강화된 정부의 권한을 주장한다.
  • [4] 농담이 아니라, 파티 내지 레드넥들은 툭하면 오바마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라며 까댄다. 심지어 동맹국가인 일본의 아키히토 덴노를 만났을때 동양 문화 특유의 '연장자 존중' 코드에 맞추기 위해 머리 숙여 인사한걸 가지고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왜놈 왕에게 머리 숙였다능!!' 하면서 딴지를 거는 수준. (...)
  • [5] 민주당은 1876년 새뮤얼 틸던이 득표에서 이겼지만 결국 졌다. 헤이스와 틸던 항목 각각 참조.
  • [6] 공화당은 1892년 선거에서 2년간만 상원 다수당을 잃었다.
  • [7] Landslide는 영어에서 압승을 표현.
  • [8]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친척 관계. 민주당에 온 이유가 공화당엔 시어도어의 아들들이 이미 포진되어 있어서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서였다나...
  • [9] 공화당은 1946년과 1952년의 각각 2년간 하원 다수당을 회복하는데(246:188, 221:213), 이후 40년간 이 지위를 되찾지 못했다. 1930년의 석패부터 따지면 64년간!
  • [10] 케네디의 경우엔 대선에서 남부 선거인단 15명이 제3의 인물을 지지하는 돌발사태까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몬드의 표였다.
  • [11] 참고로 골드워터가 출마한 이때를 미국 20세기 보수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골드워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유의지주의'와 '신보수주의'가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드워터는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자유주의자라서 훗날의 미국 공화당 정서와는 조금 안 맞는 인물이지만... 이 계통을 재밌게도 존 매케인이 이어받았다.
  • [12] 카터는 버지니아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
  • [13] 이른바 전쟁의 베트남. 남베트남으로 보면 실패한 전략이나 미국의 입장으로는 모로가도 발만 빼면 됐기 때문에...
  • [14] 레이건 후반기부터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 시기까지는 21세기가 되면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제1위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이 석학자들 입에서도 나올 때였다. 물론 조금 지나 일본도 경기 침체에 허덕이면서 설레발이 되긴 했지만.
  • [15] 19%가 페로에게 갔다.
  • [16] 물론 1992년 선거에서 클린턴은 43%의 득표율밖에 보이지 못했다.
  • [17] 한국정치에 비유하면 민주당 계열 정당이 지역구도와 언론구도상(조중동은 보수계 정당의 분열을 우려하기 때문에 온리 새누리당에 가깝고,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언론들은 민주당을 고깝게 본다.)의 불리함으로 인해 대선에서 핸디캡을 안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 [18] 아래에 후술할 201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것도 늘 그렇듯이 오로지 현실감 없는 레드넥 백인 장년층덕분이었다. 게다가 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최대 표밭 캘리포니아뉴욕은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공화당이 2014년 중간선거에서 압승했어도 앞으로의 전망은 특별한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정말 암울하다.
  • [19] 사실 히스패닉계 자체의 정치 성향 자체는 오히려 공화당에 가깝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종교적인데다가 'hard work'를 내세우는 마초스러움에 심취하는 성향이니...
  • [20] 의사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마리화나 합법 찬성, 외교적으로 빈간섭주의 등 당내 비주류 의원이다.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나이가 많은 게 흠(1935년생.). 하지만 그의 인기는 아들 랜드 폴이 이어받고 있다.
  • [21]트롤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사실 인터넷에서 폴의 인기는 상당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 투표를 싹쓸이했을 정도. 유튜브 같은 곳에서 미 공화당 경선을 검색해 보면 론 폴을 조금이라도 까는 영상은 추천의 배가 넘는 비추천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후보들은 정반대.
  • [22] 가장 무난하게 미국 전체의 표심을 대변하는 주이다. 롬니가 센토럼을 1% 차이로 간신히 이겼고, 공화당 표밭에서는 샌토럼이 이긴 경우도 있었다.
  • [23] 공화당 대의원 총 2286명 중 1144명. 텍사스 프라이머리에서는 고작 대의원 58명의 지지를 추가하였을 뿐이어서 사실상 그 전에 이미 공화당 후보로서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 [24] 과거 매케인이 3월에 이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에 비하면 거의 6월이 다 되어서야 확정된 롬니는 상당히 늦은 셈이다.
  • [25] 롬니 측에서는 점점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를 뺏어오기 위해 히스패닉계 후보를 내세우고 싶어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경력을 가진 히스패닉 후보가 없다는 듯. 때문에 심지어 카다피의 흑인 여왕 콘돌리자 라이스까지 러닝메이트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 [26] 둘 다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인데 낙태를 반대한답시고 머독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신의 뜻."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참고로 이건 경선 후보였던 릭 샌토럼도 한 인터뷰에서 쳤던 개드립이다. 강간으로 임한 임신을 해도 신이 준 생명이니 키워야 한다는 희대의 병신소리를 지껄이는 이가 경선에서 롬니랑 엎치락 뒤치락 했다는 소리가 된다(…). 토드는 "진짜 강간(legitimate rape)을 당했을 경우, 여성의 몸이 임신 기능을 자동적으로 셧다운시킨다."라고 중학생만도 못한 성교육 수준의 헛소리를 하다가 사이좋게 낙선했다.
  • [27] 조기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통한 유권자 확인을 강제화. 선거 부정을 없애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국에는 이런 신분증 없는 이가 제법 많고 발급받기도 까다롭다. 이 이슈들은 선거 직전 <심슨 가족>에 의해 대차게 까였다. 심지어 에런 소킨은 드라마 뉴스룸을 통해 이 공작에 주로 가담한 조직 티 파티아메리칸 탈레반이라고 까버렸다. 탈레반이 미국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흠좀무.
  • [28] 2013년 주목할 만한 새 시장들 보면 알겠지만 전부 민주당이다(…). 게다가 신시내티처럼 공화당은 아예 존재감이 없고 민주당 후보만 둘이 격돌한 도시도 있다. 그저 안습.
  • [29]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다.
  • [30] 여러모로 시원시원하고 까칠하지만 정감 있는 '블루 칼라'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쌓으면서 민주당의 표밭을 위협하던 크리스티가 무슨 마피아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스캔들로 무너지면서, 2014년 시점에서 남은 '빅 네임' 후보는 론 폴의 아들인 랜 폴같은 티 파티/리버테리언 계열 인사들만 남은 상태다.
  • [31]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 [32] 5~600만 달러 선거자금을 쓰고 10만불 쓴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 돈 더 많이 쓴 쪽이 승리가 거의 확정적인 것을 보면 더 후덜덜하다.
  • [33] 물론 단순히 이민법 개정 진보화가 캔터의 낙선의 모든 뒷배경은 아니다. 캔터의 경운 월가쪽과 상당히 친했고(선거 떨어진 지 반 년도 안 돼 월가에서 '국회 내부 커넥션'을 위한 로비스트로 몇 백만불의 연봉을 주며 모셔갔다.), 셧다운 등을 통해 공화당 내부에서 중도에 가까운 투표자들이 아예 공화당 자체에 등을 돌리거나 관심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극우 단체인 티 파티 후보가 남아있는 극우 투표자들의(티 파티) 지지를 받고 올라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34]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빌 게이츠가 이번 선거에는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으며, 마크 저커버그도 공화당을 지지하였다.
  • [35] 게다가 이 전쟁은 오바마 항목 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병크도 엄청난 수준이다.
  • [36] 실제로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외교관들은 오바마의 이슬람권 및 우크라이나 개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당장은 공화당이 까이지 않지만 결국 공화당의 정책이 오바마의 정책을 더 강경하게 계승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똑같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 [37]많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긴 하지만,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공화당 입장으론 최상의 후보이긴 하다. 일단 성향이 공화당 내부에서 온건파에 속해서 중도표를 끌어들이는 데도 문제가 없고, 본인이 미국 대선에 매우 영향을 끼치는 스윙 스테이트 중 하나인 플로리다에서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스윙 스테이트 하나를 공화당쪽으로 끌어오기에도 적합하다. 그리고 부인이 히스패닉계이기 때문에 공화당의 가장 큰 고심거리인 히스패닉계의 표를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 [38] 2014년 11월 17일 콜베어 르포어에서 대선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무소속으로 출마를 할 경우, 민주당 표를 갈라먹을듯(...).
  • [39] 위에서 언급된 조지 W. 부시의 동생
  • [40] 친 라티노 정책을 밀어줄 경우,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기 쉽지만 잽 부시의 경우는 본인의 아내와 자식이 라티노인지라 보수측 성향의 유권자들이 공감할 만한 가족이라는 주제로 레드넥백인들의 반감을 식힐 수도 있는 점 역시 그가 가진 잇점이다.
  • [41] 그리고 예상대로 2015년 2월 CPAC에서 이민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 [42] (경제적으론)자유의지주의자 + (사회적으론)우파라는 극과 극이 만나서 짬뽕한 괴랄한 조합의 성향이다.(...)
  • [43] 안습의 대선을 두 번이나 겪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전임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패배한 44년 대선은 그렇다 쳐도, 압도적인 승리로 예상되던 트루먼과의 48년 대선에서 대역전패 당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 듀이 - 트루먼의 사례는 정계에서 선거 국면이 불리한 진영의 희망고문의 소재로 종종 쓰이곤 한다.
  • [44] 정책이념이 상당히 보수적이라 보수성향이 짙은 이들에 대한 지지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 [45]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 중 하나가 감세다.
  • [46] 하지만 2012년 대선과 2014년 중간선거의 결과에 따르면 유색인종표를 더 얻은건 민주당이고, 백인표를 얻은건 공화당이다. 물론 유색인종이 없는 시골 표를 공화당이 독점하다시피 먹은게 크긴 하지만.
  • [47] 반공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공화당은 대채적으로 반공주의 성향이 짙다.
  • [48] 미국은 기혼자에 대한 세금부담이 덜하다.
  • [49] '강한 미국'을 가치로 내세우는 공화당의 성격답게 군 관련 정책이 상당히 우호적이다. 물론 네오콘성향의 의원들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지긴 했어도 최강 미군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당의 성향이 강하다보니 군 관련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 [50] 친기업 정책이 굉장히 강하기로 유명하고 여기에 의원직을 은퇴하고 나면 대게가 대기업 임원들로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대체적으로 기업들이 로비를 벌일때 타겟으로 삼는 일순위가 바로 공화당이고 공화당 역시 경제정책에 대해선 정부의 무간섭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죽이 맞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 [51] 주로 낙태나 동성결혼 반대같은 점에서 공감을 하고 있으므로.
  • [52] 그것도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탄을 쓰든 말든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