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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last modified: 2019-02-24 10:47:3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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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公州市 / Gongju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864.20 ㎢
광역시도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9 6
시간대 UTC+9
인구 107,369 명
(2019년 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24.24 명/㎢
시장 김정섭(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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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행정
4. 경제
5. 상권
6. 관광명소
7. 교통
7.1. 철도
7.2. 도로
7.3. 버스
8. 문화
8.1. 음식
8.2. 문화시설
8.2.1. 도서관
8.2.1.1. 공주시 도서관 목록
8.2.2. 전시 및 공연시설
8.2.2.1. 공연 단체
8.2.3. 박물관
8.2.4. 극장
9. 교육
10. 출신 인물
11. 기타

1. 개요

公州市 / Gongju City
충청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인구는 2012년 기준 126,351명이며, 면적은 940.58㎢이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시(市).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할 때 공주시 장기면을 편입(편입과 함께 장군면으로 개칭)하여, 면적이 다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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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청
본관, 제1별관 및 봉황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舊 봉황동 319번지)
교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25(舊 교동 120번지)
중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0(舊 중동 27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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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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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마스코트

대동강을 낀 평양직할시, 한강을 낀 서울특별시는 굴지의 도시로 성장했지만 충청도 최대의 강인 금강을 끼고도 주저앉은 비운의 도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충청감영이 설치된 도내 최고의 고을 중 하나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저앉아버렸다. 구한말 일본경부선을 건설할 때 공주를 경유하도록 돌아가려고 했으나, 양반 및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호남선마저 피해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일본이 유생들의 반대를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유생의 반대가 있었으나 일본은 밀어붙였다.[1] 사실 유생 반대라는 게 진짜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진짜 문제는 러일전쟁을 눈앞에 둔 일본군부의 요구였다.

비슷한 기믹의 도시로 전라남도 나주시가 있다. 역시 전통적인 도내 주요도시였지만(전라도의 '라'가 바로 나주), 바로 옆에 일제강점기 동안 새로운 대도시(광주)가 성장하여 쇠퇴한 케이스.[2] 그래도 공주시가 나주시보다 사정이 약간 낫긴 하다.[3] 그리고 세종시로 인해 공주도 망했어요 한술 더 떠서 ㅇㅅ역까지....

2. 역사

백제 문주왕 때 처음 백제의 수도가 되어 성왕에 의해 천도할 때까지 짧은 기간동안 백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라의 통일 이전에는 웅진(熊津)이라 불리었고[4](그래서 위의 마스코트도 이다), 고유어로는 고마나루, 즉 곰나루로써 불리워졌다. 통일신라의 통일과 행정지역 개편으로 인해 웅천주로 개칭되었다가[5], 조선시대 이후로는 쭉 공주라 불렸다. 공주의 '公'은 '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명실상부한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그래서 한 때는 충청도 지역을 공청도[6], 공홍도[7]라고 한 적도 있었다.

1931년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이 결정된 직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었다.병주고 약주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공주시와 공주군이 다시 공주시로 통합되었다.

곰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암컷 곰이 인간 남자를 좋아해서 그를 쮸쀼쮸쀼납치해서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감금한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몇 년 후 남자를 가두어두었던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를 다시 굴려 동굴 입구를 폐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곰이 쫓아 나와 아이들을 강물에 하나하나 빠뜨리는 식으로 돌아오라 호소하나 남자가 뒤도 안 돌아보는 바람에 같은 마누라는 다 싫어하나? 매우 슬퍼하여 나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이 곰나루로 불리었고 나중에는 한자로 웅진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는 차마 저걸 그대로 표현하기 뭐했는지 여우처럼 둔갑해서 같이 살다가 본모습이 들켜서 남자가 도망갔고 그 남자를 쫓다가 강에 빠져 죽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난 요새는 아동용에도 곰나루 원전 내용 그대로 기술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3.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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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옛날 로고

4. 경제

농업 따위가 성하다. 이 특산물이다. 다만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해 관광쪽으로는 큰 수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8] 1년에 단 9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백제문화제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례를 할 정도.

한편, 공주시의 주된 부가가치 창출은 단연 '원룸업'에서 이루어진다. 강북의 공주대학교를 중심으로는 수많은 원룸과 여러 상권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의 공주교육대학교를 중심으로도 수 많은 원룸이 자리하고 있다. 원룸과 별개로 이들 두 대학교는 공주의 경제를 지지해주는 엄청난 기반으로, 2011년 두 대학교가 통폐합되어 세종시로 이전하려 하자 인근 상인들이 대학교 본부에 난입해서 총장과 면담을 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특히, 공주교육대학교에 있는 강남 지역의 경우 총장을 면담한 상인들이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청에도 난입하여 시장 면담을 요구하였고, 시장 면담이 불발되자 바로 옆에 있는 시의회 의장실에 들이닥쳐 시의회 의장과 면담을 하기도 하였다.

두 대학교의 실질 재학생을 단순히 1만여 명이라고 한다면 1인당 하루에 쓰는 금액을 최소 1만원씩만 잡아도 일일 최소 1억원의 돈이 공주시에 풀리는 것이다. 방학[9]을 고려한다면 1년동안 이 두 대학교로 하여금 공주에 풀리는 돈은 최소한 200억원정도인 것이다. 또 이러한 수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웬만한 기업체나 공장이 들어와 있는 것보다도 도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주시의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 된다. 공주대 정도 규모의 대학이라면 어느 도시가 되었건 간에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부 타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시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면 문제가 좀 심각하다.학원도시도 아니고 하다못해 안성시도 이 정도로 대학 상권에 목숨 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똑같은 1만명이라고 해도 공장이나 기업 등 일자리로 인해 유입된 1만명과 대학생 1만명은 구매력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사실 공주는 역사적으로 중심지라는 인상이 강해서 그렇지, 당장 백제가 공주에 도읍을 둔 것부터가 일종의 임시수도 성격이 컸다. 전근대에 무려 배수임산으로 도시를 건설하지 않나, 수도 존속 기간이 고작 63년밖에 안 되지를 않나.... 근대 이후로만 생각해봐도 현 공주시가지는 물론이고 인접한 의당, 우성, 지금은 남의 동네지만 장기 등지의 평지들을 죄다 합해서 확보 가능한 개발부지가 해봐야 현 청주 시가지 정도에 불과하다.[10] 게다가 충남의 정중앙에 위치해있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산줄기로 막혀서 교통로 개설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11] 정 안되면 주거지야 어떻게 언덕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산업시설 등의 일자리는 그게 안된다. 당장 부산이나 대구 등의 대도시들이 점점 생산기능을 인근도시에 빼앗기고 소비도시로 변해가는 이유도 심각한 부지난 때문이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 무려 5방향(!) 고속도로망이 건설된 지금도 현실은 안습.[12] 하다못해 연기 산업단지가 공주에 있는 어느 산업단지보다도 큰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학생 소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졌는데, 이러면 해당 주민들의 수입은 어느정도 보장될지 모르지만 세금 걷어서 써야 하는 시청 입장에서는 죽을맛이 된다. 애초에 생산성이 제조업에 비해 낮은 업종이 서비스업인데, 그나마도 기업은 고사하고 해봐야 원룸업이나 식당 같은 저차원 영세 서비스업으로만 도배되니 충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안그래도 자영업자는 철통지갑이라 답이 없다

5. 상권

금강을 기준으로 남서(아래)쪽의 구 시내는 롯데리아가 패스트푸드 상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이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를 넘어 시민들의 전형적인 외식 장소로도 자리잡았다. 이러한 롯데리아의 위상은 중구난방으로 나 있는 강남의 교통망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입지에 있기 때문이다[13]. 반면, 강북의 신관 쪽은 나름 계획 도시로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도로망도 잘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입지 조건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해 딱히 한 업체나 한 업종이 독점하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2001년 말 중동에 맥도날드가 입점하였으나 롯데리아 햄버거에 익숙한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서인지 1년여만에 롯데리아와의 경쟁에서 패퇴하여 다시 롯데리아가 독점중이다.

2010년에는 시내에 던킨도너츠가 입점, 대학교 근방에 까페가 성업하면서 엔젤리너스, 까페베네, 탐앤탐스 등이 입점했다. 다만, 시 당국의 규제[14]로 인하여 롯데마트이마트 등과 같은 대형 할인 마트는 없다. 하지만 배산임수의 지형의 이점을 많이 본다. 2010년 하반기, 신관동에서 롯데리아를 유일하게 견제하던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문을 닫았다. 대신, 롯데리아 근처에 맘스터치가 있다.
공주 요식업 중 가장 성업하는 것은 카페 산업으로, 투썸플레이스의 대단한 성업에 이어(전국매출 1위라는 소문이 있다) 마침내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공주의 카페 산업은 정점을 맞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공주에 대형 할인마트가 없는 이유는 공주시의 독특한 정책 때문이다. 현재 시 당국은 ‘5도2촌’이라는 도시와 농촌을 조화시키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 정책의 일환 중 하나가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전통시장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대형 할인마트의 입점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관 신도시가 개발 될 때 롯데마트나 이마트[15]의 입점 시도가 있었지만 시에서 허가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러한 시의 규제로 대기업들이 약간의 트릭을 써서 입점을 하고 있는데, GS익스프레스는 법정업종 상 대형 할인마트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입점을 시도하였다. 시에서 이러한 입점을 막으려 했지만 조례 상으로는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 두어 전통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조건을 내세우는 식으로 타협을 보았다.
또다른 트릭은, 기존에 존재하는 중소형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시내에 새로 생긴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원래 중동마트라는 공주시민이 운영하는 중소형마트 자리에 입점하였다. 이러한 입점은 이마트 자체자본으로 입점한 것이 아니라 이마트와 중동마트가 합동 투자하는 형태로 입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점포의 소유와 운영은 중동마트가 하고 상품의 공급은 이마트가 담당한다고 한다. 현재는 이마트 간판을 아예 뗐다.

농담 삼아서 공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군데 있다고 한다. 사진관, 미용실, 병원. 정작 가야된다면 공주서 쭉 살아본 분들한테 추천받는게 낫다. [16]

6. 관광명소

명승고적으로 산성,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17] 등 백제의 여러 유적지가 있고, 대표적인 시설로는 립공주박물관, 휴양지로는 계룡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괜찮은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적발굴과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관광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도시 라고 했다.

발로 한 발굴로 유명한 무령왕릉과 현재도 발굴이 진행중인 공산성[18], 시가지에서 참 멀리도 떨어져있는 변두리의 국립공주박물관[19] 등, 유적지 관리 실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공주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참 씁쓸한 말일 것이다. 비슷한 문화재가 많은 경주와 비교해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주하고 비교하기에 공주는 일단 역사적인 중심지였던 기간부터 시작해서천년수도 vs 60년 수도? 정부 및 학계 차원에서의 지원, 세간의 관심까지 워낙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게다가 대한민국 수립시까지 남아있거나 일제에 의해 조사라도 된 유적의 절대량부터가 넘사벽이다. 유적지 발굴이나 관리가 잘 되었다고 다 관광도시 되는 것도 아니고. 까놓고 서울의 백제 관련 유적이나 부여는 그렇게 잘 되어있나? 그래도 공주보단 낫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을까.
"경주는 수학여행에서 유적지를 보고 자고 가는 곳, 공주는 수학여행에서 유적지를 보고 지나가는 곳"

이 외에도 사립 박물관도 있으며, 지당세계자연사만물박물관 등이 있다.

7. 교통

7.1. 철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공주 철도의 역사
읽기 전 손수건이나 휴지를 준비하기 바람
시골 촌구석 한밭경부선으로 상전벽해한걸 보고 땅을 치고 있다 카더라
경부선 개통 100여년만에 간신히 역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는데 현실은...
한화 한국시리즈 우승 vs 컵스 월드시리즈 우승 vs 공주역 일 평균 이용객 1만명 찍기 승자는 컵스

유독 철도와 인연이 전혀 없다. 아니 거의 악연수준이다. 경부선은 공주 옆의 조치원-대전으로 이어지는데, 철도 부설 당시 한말 공주의 유생들의 극렬하게 반대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풍수지리나 기타 여러 것들이 돼지의 기운이 강했는데, 길고 구불구불한 모습의 철도가 마치 돼지와 상극인 을 상징한다거나(철도의 모양이 계룡산(鷄)과 상극인 지네와 닮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철도부설로 지맥이 끊긴다면서 반대했다 카더라.

그런데 사실 유생들이 반대해서 철도를 내쫓았다는 얘기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1901년 확정된 경부선 철도 노선은 서울-수원-천안-전의-공주-노성-금산-황간-김천-약목-대구-현풍-창녕-영산-삼랑진-부산으로, 이는 1899년 쿠노 후루야(久野知義)가 이끄는 측량팀의 답사루트를 따르고 있으며 당시 기사를 보면 주로 기존 인구밀집지역을 한데 훑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것이 불과 몇 년만에 전의-대전-김천으로 변경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유생 반대설이 불거졌는데, 사실 경부선 수원 이남 공사가 본격화되는 1903년에 접어들면 일본은 본격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에 착수하게 되고, 당연히 일본은 빠른 시일내에 최단거리로 서울-부산-신의주를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사설철도회사에 정부예산을 투입해가며 경부선 완공을 무려 2년이나 앞당기도록 독촉하는 상황이었다. 설령 공주지역에서 경부선 유지를 극렬히 희망한다 해도 가망이 없었던 것이다.[20][21]

경부선 건설 직후인 1905년부터 '군산지선', 즉 호남선 노선을 두고 공주 경유안이 등장했다. 당초 경부철도측에서 계획한 노선은 태전(대전)-강경-군산이었으나 경부철도측은 공사비 문제로 이 노선을 빠른 시일내에 착공하기 힘들었고, 이에 한국인 서오순과 일본인 오타 슈사부로 등은 조치원-공주-노성-연산-은진-강경으로 철도를 놓으려 하였다. 이 계획은 꽤 진척이 되어서 1906년에는 호남철도회사 공주지사가 설치되고 1908년 2월에는 주식모집 공고까지 나왔는데, 만일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공주지역에서 철도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면 이 정도로 일이 진행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호남선 항목에서 설명했듯 애초에 일제가 호남선을 건설한 1차적인 목적은 호남지방의 농산물을 부산항으로 실어오는 것이었고 경부철도회사에서 대전-군산노선을 건설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조치원과 청주에서 조치원분기를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국권 피탈 직전인 1910년 4월 2일에 호남선 분기점은 대전으로 결정되어버린다.

1916년에는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음죽-)청주-조치원-공주, 성환-충주, 장호원-여주의 3개 노선안을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이는 충북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추진중이던 부강-청주-충주-제천간 舊충북선 계획과 충돌하였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가 치열하게 싸운 끝에이때부터 시작이었군 결국 절충안으로 조선경철[22]에서 평택-충주, 충주-공주간 노선을 부설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조치원 이남 구간은 이후 쥐도새도 모르게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왜 싸웠어? 결국 1920년에 접어들면 철도 빨리 안 지어줘서 현기증 난다고 난리가 났었다.(...) 사실 현기증이 날 만도 한 게, 이 시기에 충남에서는 슬슬 도청이전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1920년대 내내 공주에서는 조치원과 연계하여 이런저런 철도노선들을 끌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몇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조치원-공주 궤도자동차: 1921년 초 투척된 떡밥(...)으로 설명으로는 일본에서 개발된 가솔린 추진 궤도자동차를 조치원-연기-갈운[23]-대교-신관-공주로 부설하고 추후 논산, 부여, 장항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었다. 궤도자동차라는 것은 이후 뚝섬에 설치된 가솔린 기동차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비가 저렴하여 6개월이면 공사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1922년을 넘기지 못하고 떡밥이 사그라들었다.

  • 조치원-공주-전주 철도: 1923년에 등장한 떡밥. 사실 첫 등장은 꽤 오래된 떡밥으로, 1905년에 조치원-공주-전주를 호남선 본선으로 하고 강경-군산을 지선으로 부설하는 계획이 제시된 바 있었는데 이 시기에 다시 불거져나왔다. 이후 아래에서 등장한 조치원-대천선에 밀려 잠잠했다가 1928년경 다시 등장했다. 당시 광려선[24]을 운영하던 민간업체 남조선철도주식회사는 순천-경부선간 연결노선으로 대전-선천[25] 철도를 계획했는데, 공주는 전주와 연합하여 전주-강경-논산-공주-조치원으로 이어지는 가칭 충전선 노선을 요구했다. 1931년까지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국은 대전-관촌과 조치원-전주 둘 다 사이좋게 사라져버렸다(...) 다만 떡밥 자체는 살아있어서 1939년에도 이야기가 나왔다.

  • 조치원-공주-대천/서천 철도: 1926년 일본 정부의 조선철도12년계획선 편입을 노리고 추진한 노선. 당시 보령군 송학리에는 송학항이 건설될 예정이었고 조선경남철도[26]는 자회사로 충남임항철도회사를 설립하여 송학항 임항철도 건설에 나섰는데, 이와 맞물려 경기남부 및 충남지역 물자를 송학항으로 수송하기 위해 안성선과 함께 조치원-대천 노선이 추진되었다. 최초 계획은 조치원-공주-부여-대천-송학항이었고 이후로 조치원-공주-청양-대천-송학항, 조치원-공주-부여-서천 판교리 노선과 대천-송학항 지선을 별도로 건설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으나 결국 군산항의 기능 약화 문제와 공주-대천/서천 사이의 지형 기복으로 인한 공사비 폭발(...), 연선인구 부족으로 인한 경제성 문제등이 겹쳐 송학항 계획 자체가 흐지부지되고 이 철도계획도 죽어버렸다(...) 대략 현재 이야기되는 충청선 철도(조치원-공주-대천)의 전신격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1931년 충남도청을 대전에 빼앗기면서 공주의 철도부설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그나마 도청이라는 강력한 행정기능이 있으니 철도부설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는데, 그 추진동력의 핵심이 사라져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일본의 만주침공과 이어지는 15년 전쟁의 여파로 일본은 주로 조선 북부에서의 철도망 확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충전선이나 조치원-장항철도 부설운동이 1930년대에도 나타나는 등 1931년 이후로도 공주의 철도유치운동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 몇가지 새로운 떡밥들도 나타났다.

  • 조선중부횡단철도 동부선 기성운동: 1935년에 강원도 지역에서 조선중부횡단철도 동부선의 건설을 촉구하는 기성운동을 벌였다. 이 횡단철도 동부선은 당시 충주까지 건설되어 있던 충북선을 제천, 영월, 정선, 강릉으로 연장해 달라는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태백선-영동선 루트다. 이 당시 기성회에서 제시한 노선은 삽교-공주-조치원-충주-제천-영월-정선-강릉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광복 이후 충주 이북 구간만 건설되고 조치원 이남은 짤렸다.

  • 경부선 복선화 공주 경유안: 1936년 조선총독부는 경성-대전간 경부선 복선화를 추진하면서 조치원-대전 구간의 터널공사비를 줄이고자 공주 경유를 검토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주시내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 조치원-대평리-유성-대전으로 이어지는 노선이었고[27] 대전에서도 사업비를 줄여 빠른 시일내에 복선철도를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28] 하지만 공사기간을 1년이나 단축시켰을 정도로 시일이 촉박했던 탓인지처음 부설할 때에도 그러더니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어 기존 노선을 그대로 복선화하게 되었고 공주는 그나마 반경 10km 이내에 철도역이 생길 기회마저 사라졌다(...)

  • 조치원-공주-장항 철도: 1939년에 제시된 안으로, 위에서 언급한 조치원-대천 철도의 변형안 중 조치원-서천(판교)안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29] 이유는 장항항 확장으로 인한 물동량 처리 및 부여신궁 조성으로 인한 참배객 수송을 위해서(...) 그래서 당시 이 철도 부설운동의 이름은 참궁(參宮)철도 기성운동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방 후 부여신궁이 사라지고 장항항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묻혀버렸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초기에 기존 철도 유지에도 벅찬 현실이었고교외선 같은거 지을 돈으로 여기에나 철도 좀 놓지 특히 일제강점기에 호서/호남지방의 식량자원을 일본과 중국 등지로 반출하면서 성장한 군산, 장항 등 서해안 항구들이 무역구조 변화로 쇠퇴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급감하였다. 해외 지원을 통해 어느정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1960년대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도로가 투자 우선순위에 놓이면서 공주는 예나 지금이나 철도 없는 동네로 남게 되었다. 정리하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절대 조상들이 못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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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현대에 들어서도 공주에 철도가 들어올 기회가 한 번 있었다. 박정희 정부에서 계획했던 행정수도는 장기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현 세종행정도시, 서로는 공주 강북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현 행정도시 지역에는 일반철도를, 현 공주 강북 일대에는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행정수도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한동안 잊혀졌는데....

호남고속철도 분기 당시 천안아산역 분기가 실현된다면 바로 위의 방안이 그대로 부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천안아산역 분기는 거리상 이익일 뿐더러 공주에 고속철도역이 설치될 경우 행정도시로부터 15분 이내에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철도 동호인들은 공주역 설치를 포함하여 천안아산역 분기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모든 철도 동호인들이 공분해 마지않는 높으신 분들삽질로 결국 호남고속철도는 오송역에서 분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나마 공주 여론을 달래고자 공주역 설치가 결정되었고 시내에서 15분 걸리는 계룡면 일대에 역이 들어서면 제법 이용할만 했겠지만 이조차도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하루 이용객 500명이 예상되는 기괴한 위치에 기괴한 역이 들어서게 되었다. 자세한 사정은 공주역 참조. 이 쯤 되면 진짜로 지세가 철도랑 안 맞는건지 의심된다

마지막의 마지막 희망으로 조치원-공주-청양-보령간 충청선(가칭) 철도와 천안-논산간 철도 계획이 있다. 그런데 충청선 철도는 2007년에 예타에서 물먹은 이후로[30] 감감무소식이고 천안-논산간 철도는 그냥 떡밥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유구한 떡밥의 충청선 철도는 조치원-세종행정도시-공주 구간의 타당성이 다소 높게 나온데다가 세종시가 도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라 조금은 희망이 있는 줄....알았으나 여태 감감 무소식이다.

여기에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면 천안~논산 사이에 직결철도를 설치할 경우 물리적으로나 중간역 간격이나 여러모로 공주시내에 가까운 지역에 역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인데 실제로 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안습.

7.2. 도로

반면, 도로교통은 편리하다. 2002년 12월, 민자도로인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 방면 교통이 편리해졌다.[31] 그리고 2009년 5월, 당진영덕고속도로 유성-당진시 구간과 서천공주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동서 방면 교통도 편리해졌다. 국도23번 국도[32], 32번 국도, 36번 국도, 40번 국도가 있다.

7.3. 버스

시외, 고속버스는 신관동에 위치한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수도권과 충남권, 강원권으로 가는 노선이 존재한다. 시내버스는 공주시 시내버스 항목 참조.[33]

8. 문화

8.1. 음식

8.2. 문화시설

8.2.1. 도서관

8.2.1.1. 공주시 도서관 목록
  • 공주시시립도서관(웅진관/강북관)
  • 공주유구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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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전시 및 공연시설

8.2.2.1. 공연 단체
  • 공주시충남교향악단
  • 공주시충남연정국악원

8.2.3. 박물관

  • 국립공주박물관
  • 충남역사박물관

추가바람

8.2.4. 극장

메가박스가 유일하다. 과거에 공주대학교 후문쪽에 롯데시네마가 있었으나 몇달만에 폐업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9. 교육

초등교사를 배출하는 공주교육대학교, 한 때 사범대학교로 유명했던[34] 공주대학교가 있다.

충남에서는 천안과 함께 최고의 고등학교 라인을 자랑한다. 인구수 및 지역 분위기에 비하면 놀라운 일.
  •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특수목적 고등학교인 충남 과학고등학교는 전통적인 강호이며,
  • 2000년대 들어 전국 TOP급으로 성장한 자율형 사립고[35] 한일고등학교가 있다. 한 학년이 160명 정도인 비교적 작은 학교이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복이 없이 전교생이 사복 생활을 한다. 2000년대 초반에 거창고 등과 함께 농어촌 자율학교로 선정되었으며 농어촌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아오던 학교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명박정부때 대두되었던 자율형사립고와는 다른 학교분류에 속하며, 기존에 존재하던 상산고,해운대고,민사고 등이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것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종종 언론에 나오는 서울대 입시 상위100교나 수능성적 상위 학교 분석자료 등에는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로 분류되고 있다.농어촌특별전형의 브로커[36]
  • 충남 인문계 최고등급인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가 있다.
  • 거기에 공주고등학교. 이름만 놓고 보면 다른 시 같으면 동네 학교 포지션에 불과한데, 공주고는 결코 무시 못 할 급이다. 옆 지역의 청양고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근래 특별히 강세를 보이는 두 학교가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이다. 한일고는 특목고는 아니지만 모집단위가 한일고는 개교 당시(1987년)부터 '전국 단위'였고, 사대부고는 '충남 전체'였다. 그러다 사대부고도 2010학년도부터 전국모집으로 전환했다. 다들 중학교 때 공부 좀 해 봤다는(전교 1~10등) 놈들을 닥닥 굴려대는 통에, 두 학교 모두 진학 현황은 이미 지방권 외고 정도는 뛰어 넘는 수준이다. 특히 한일고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특목고, 사고를 포함해도 진학률 전국 TOP 5~10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는 중. 물론 학생 각자가 그만큼 뺑이친 결과물이지만.

헌데 문제는 정작 공주시 자체에서 위의 학교들에 들어가는 진학률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 충남과학고 같은 경우 몇 되지도 않는 중학교에서 1년에 2~3명 가기 일쑤이다. 한술 더 떠 한일고등학교는 역대 공주 지역에서 진학한 학생 수가 손으로 꼽힐 정도이다. 그나마 공주 학생들이 좀 가던 공주사대부고도 모집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공주시 중학생의 진학자 수가 현격히 떨어졌다. 공주고등학교의 경우 공주시 학생들이 다수 진학하긴 하지만, 정작 명문대 진학률을 높여주는 장학생들은 대부분 타지역 학생인 경우가 많다. 또한 공주고는 천안북일고나 대전고 만큼은 아니지만 충청팜의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며 텍사스 레전드 박찬호, 시카고 레전드 안승민, 조동찬, 조동화, 오재필, 김광림, 신경식, 김경문 등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금강을 기준으로 강남에 중/고등학교가 몰려있기 때문에[37] 아침 출근길이 버스와 자가용으로 상당히 빡세다. 신관동엔 아파트가 계속 세워지고있는 상황이지만 중/고등학교는 새로 안 지어지고 있는 상태.

10. 출신 인물

11. 기타

철도관련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보수적인 도시로, 온고지신의 정신을 매우 중시하여 일제 시대에 지어졌던 도시 구획이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다.

보수적인 풍조는 공주시의 식당에서도 볼 수 있다. 공주시민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평소에 가던 식당을 일평생 가기 때문에 주인과 주인의 가족까지도 그 사람과 친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외지인이 공주 지역의 식당에 가면 홀대받기 쉽다. 한 사례로, 강남 지역의 한 유명한 중식당에서는 주인이 맛객 블로거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문을 무시하고 아예 받지 않은 적도 있다. 어느 식당인가 대충은 알겠다. 공주 토박이 입장에서 이렇게 홀대하고 무시하는게 자랑인가? 이건 보수적인게 아니라 그냥 무식한거다 대학교 근처의 식당들도 주인들이 학생들의 얼굴을 익혀두고 자주오는 사람에게는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거나 식대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 이는 공주시의 사회가 좁기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주 가는 사람에게 못해주면 지역사회에 안좋은 소문이 나기 대문이다.

공주는 다른 충청남도의 시군에 비해 유독 개발이 덜 된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게 다 개발만 하려 하면 향로가 나오고 무덤이 나오고 금관이 나온 터라 그렇다 하더라.[39] 하지만 불행히도 상술했듯이 관리소홀과 지자체의 무관심에 관광 산업으로도 성장하지 못하여서 현재 '시'딱지는 붙이고 있으나 주변 시군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그와중에 행정도시마저...

충청남도 지역의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육군 제32향토보병사단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지역 일대가 세종특별자치시로 합쳐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문제 때문에 연기군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공주시를 지켜오던 분들에게는 충청남도청이 다른 곳으로 뺏겨버린 탓에 다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이 온다는 소식으로 일개 도시에서 다시 한번 도약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갑자기 나온 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이에 대한 여러 삽질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에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때 완벽하게 발라버리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혹자들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아무튼, 세종특별자치시에 대해서 공주시민들로서는 단순한 이익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이 수도권 분산의 효과가 아닌 세종특별자치시가 망하느냐 인근 충청 도시 들이 망하느냐를 결정하는 단두대 매치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인접 도시 중 인구가 제일 적은 공주시의 경우 타격이 커서 상생 위기라는 기사도 나왔고, 통합 떡밥도 나왔으며, 도지사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는 무서가 없고, 공주세무서가 세종특별자치시까지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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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심지어 다른 철도건설지역에서는 대놓고 철도 건설을 사보타주하는 활빈당 사건까지 있었다. 점잖은 유생들 반대 정도는 일본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3년 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가 된 대구 같은 도시에서도 철도는 잘만 놓았다.
  • [2] 다만 나주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광주가 대전처럼 근대에 갑툭튀한 신흥도시는 아니다. 이래봬도 남도 3목(나주, 광주, 능주) 중 한 곳이었으며 충청도가 공홍도나 공충도로 개칭된 것처럼 전라도도 종종 광남도나 전광도 등으로 개칭되기도 했다.
  • [3] 공주시는 시가지(동 지역)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만 명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2013년 기준 65,091명), 나주시는 시가지 인구가 5만 명, 아니 4만 명 이하로까지 떨어졌다(2013년 기준 36,229명)! 심지어 나주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감에도 공주보다 더 심하게 쇠퇴하였다. 저 정도면 일개 읍 수준이고 실제로 나주시내를 가봐도 도시라기보단 쇠락한 읍 분위기다.
  • [4] 대한민국의 재벌그룹인 웅진그룹이 여기서 따와서 이름을 지었다.
  • [5] 이 시기 최대의 난이었던 헌창의 난이 바로 웅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 [6] 공주와 청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 [7] 공주와 홍성(당시엔 홍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 [8] 특히 이웃한 부여와 비교하면 공주는 수도로서의 역사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등 쓸만한 유적이 많은데도 관광지로서의 기능은 그게 그거라....
  • [9] 참고로 학생들이 거의 없는 방학에는 학교 주변 상가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
  • [10] 그나마 청주는 시 외곽에 개발가능부지가 넘쳐흘러서역 주변도 개발 못하고 쩔쩔매는 판 욱여넣으면 400만도 불가능하지 않지만, 공주는 그냥 저게 다다.
  • [11] 위의 철도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치원-보령 철도는 공주 서쪽이 워낙 첩첩산중이라 공사비 폭발로 때려쳤을 정도다. 충청남도라고 만만하게 볼 지역이 아니다. '공주-청양-보령' 노선의 시외버스를 타본다면 이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서해안고속도로도 이 부근은 우회해서 간다.
  • [12] 당장 서산시만 해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백제 멸망 이래 가장 활기가 돌고 있다.
  • [13] 실제로 롯데리아가 있는 장소는 공주 시내 전 지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다.
  • [14] 시 조례에 따른 것이다. 시 조례에서 대형마트의 입점을 제한하고 있다.
  • [15]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통합 될 때도 예전 시외버스터미널 부지에 이마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결국 흐지부지 된 적이 있었다.
  • [16] 그 이유가 있는데, 우선 사진관의 경우 강북 기준으로 단 2군데이며, 미용실도 상권인 대학교 밀집지역 외에는 매우 적다. 심지어 터미널 인근에도 미용실이 없다. 이발소가 있을 뿐. 또한 병원이 극심하게 적은데, 강북에는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현대병원이 있는데, 이 건물은 과거 예식장과 뷔폐로 활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의외로 건물 자체는 오래된 곳이며, 강남 역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의료원이 있다. 하지만 24시간 응급실은 공주의료원만 유일한데, 현대벙원은 22시에 닫는다. 매일 22시면 끝!!!
  • [17] 정확히는 송산리고분군 중 하나
  • [18] 공산성 발굴은 1980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진행중. 최근 화제가 된 백제의 옻칠된 갑옷이 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 [19] 거기다 박물관과 공주시내를 오가는 시내버스(108번)는 60분 간격이다. 본래는 강남의 비교적 시내에 있었으나, 이전시 멀리 가버렸다. 예전의 박물관 자리에는 충남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 [20] 사실 당초 공주경유안도 의도가 불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서울-목포간 철도를 대놓고 방해하려는 복안이 깔려 있었기 때문.
  • [21] 실제로 한국인들이 반대해서 노선이 틀어진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안양-수원 구간은 원래 전통적으로 이용되던 통로인 지지대고개 인근에 터널을 뚫으려 했으나 사도세자와 정조의 묘인 융건릉의 지세에 영향이 간다는 이유로 수원지역에서 난리가 나 한국정부가 직접 일본측에 노선변경을 요청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경부선 전체에서 보면 그야말로 사소한 변경에 불과하고 중심축을 넣고 빼는건 애초에 레벨이 다른 문제다.
  • [22] 1919년 조선중앙철도로 변경
  • [23] 구 연기군 남면 갈운리, 현재 도담동 북쪽지역.
  • [24] 광주-여수
  • [25] 임실군 오천면 선천리, 현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
  • [26] 충남선(현 장항선)을 건설, 운영한 사철업체.
  • [27] 참고로 대평리는 바로 지금 세종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 [28] 이러면 기존 경부선에 비해 선형이 상당히 돌아가게 되는데, 위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이설안은 부산항의 포화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여수항 활성화도 아울러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됐으면 노은동에 유성역이 들어서서 호남선 분기역이 되고 한밭대로를 따라 경부선이 달리는 비범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지도....
  • [29] 사실 장항선과의 합류지점이 명확하게 나온 것은 아니라서 위에서 제시된대로 판교 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사라진 계획이지만.
  • [30] 이 때 함께 예타를 받은 서해선 철도는 살아남았다. 지못미.... 그런데 물먹을 만한 것이 '공주-청양-보령' 노선의 시외버스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는 길마다 계속 첩첩산중이다. 연미산과 칠갑산의 콜라보 덕분에 고속도로도 칠갑산을 우회해서 돌아가는 형국인지라 공주에서 보령까지 국도나 고속도로나 소요시간이 차이가 없는 안습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철도를 놓았다가는 건설 비용이 폭발한다는 소리이다.
  • [31]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천안까지 국도로 이동 한 다음에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해야 됐다. 당연히 국도로 이동하는 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 [32] 특히 이 국도는 논산천안고속도로와 아예 직선으로 나란히 펼쳐져 있다.
  • [33] 시내권 노선은 보통 밤 11시, 비 시내권은 10시가 막차이다. 야간버스 그딴거 없다.
  • [34] 과거형으로 써놨지만 지금도 임용고시에선 탑을 자랑하고 있다.
  • [35] 자립형 사립고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자율학교라는 분류로 인가를 받았고 2010년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언뜻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참조.
  • [36] 대학들이 농어촌특별전형 지원 대상에서 특목고자사고 출신을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 [37] 강북 봉황중학교, 생명과학고등학교, 정보고등학교 제외
  • [38] 정확한 출생지는 대전으로 초중학교는 유성초, 갈마중 등 대전에서 다녔다가 고교부터 이곳 공주의 금성여고를 다녔다. 대전광역시 항목에도 박세리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 [39]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2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