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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last modified: 2017-06-10 04:02:26 Contributors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양 중 하나인 낫과 망치.
러시아어: Коммунизм
영어: Communism
독일어 : Kommunismus
한자: 共産主義
에스페란토 : Komunismo

Contents

1. 설명
2. 역사
3. 마르크스주의
3.1. 마르크스이론의 철학적 기반
3.2. 마르크스의 경제이론
4. 마르크스-레닌주의
5. 스탈린주의
6. 마오이즘
7. 비주류 공산주의 이론
7.1. 좌파공산주의
7.2. 아나코 공산주의
7.3. 트로츠키주의
8. 실패
8.1. 공산주의는 권위적이다???
9. 보충
10. 오해
10.1. 공산주의는 개인이 재산을 가질 권리를 박탈한다?
10.2. 공산주의는 지도자를 우상화한다?
10.3. 인민 = 공산주의 나라 사람?
10.4. 공산주의자는 종교 반대론자?
10.5. 공산주의는 폭력적이다?
10.6. 공산주의자 = 종북주의자?
10.7.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문물을 차단한다?
10.8. 냉전때 공산진영에 대적한 나라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다? or 공산주의의 반의어는 자유민주주의다?
11. 관련항목
11.1. 공산주의 관련 사건
11.2.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
11.2.1. 현재 사라진 공산주의 국가
11.2.2. 현재는 공산주의를 포기한 국가
12. 인물
12.1. 같이보기
12.2. 농담삼아 같이 회자되는 것들(...).


"백전백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만세!"

왼쪽부터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어째 갈수록 수염이 적어지는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공산주의에서는 그 반대이다.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Communism is like prohibition, it's a good idea but it won't work.
공산주의는 금주법과 같다. 좋은 생각이지만 제대로 실행될 턱이 없다.
- 윌 로저스 (1879 - 1935), Weekly Articles (1981), first published 1927

공산주의라는 사회현상은 평범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종교로 인식되어야 한다...나는 교리와 삶의 방식을 지배, 모순된 근거들에 대한 무시. 지성이 아닌 감성과 권위의 수단에 의해 심어지는 믿음을 종교로 정의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종교다...종교들 중에서도, 공산주의는 기독교나 불교가 아닌 이슬람교에 닮아있다. 기독교와 불교는 개인을 중시하는 종교로 신비주의적인 교리와 명상을 사랑하는 종교다. 이슬람과 공산주의는 현실적, 사회적, 세속적으로, 땅위에 제국을 세우는 데 관심을 지닌다. 이들의 교조들은 광야에서 세 번째 유혹에 저항하지 않았다. 아랍에서 이슬람이 했던 것을 공산주의는 러시아에서 행하고 있다. 알리가 정치인이 되기 전에 그의 성취이후 예언자로서 물러났던 것처럼,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Bolsheviks)들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

Marxism is the opium of the intellectuals
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
- 레이먼드 에런 (1905 - 1983)

우리에게 공산주의란 달성해야 할 미래의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 마르크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 위의 명언들을 전부 쌈싸먹어버린다


1. 설명


붉은 색은 1920년 ~ 1930년대, 연붉은 색은 1940년 ~ 1950년대, 살구색은 1960년 ~ 1970년대 까지의 공산주의의 확산과정을 의미한다.

사유재산 제도의 부정과 '생산수단'의 공유재산 제도의 실현을 통해 불합리한 분배를 없애자는 사상. 흔히들 착각하는 '네 것 내 것 모두 우리 것 우왕 굳'하는 모습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에서 지칭하는 '자본재'의 공유를 뜻한다. 원론적인 공산주의에서는 모두가 1/n으로 공평히 나눠 갖지 않는다. 일한 양에 비례해서 차별적인 부가 존재한다. 공부 깨나 한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는 무조건 1/n으로 나눠가지는 제도!"라 하면 자신를 바라보는 눈빛이 불쌍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상이지만, 인류 역사상 공산주의가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 [1][2]

흔히 냉전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대립하였던 역사 때문에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의 반대말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과두정, 군주정, 독재[3]국민 모두에게 참정권이 있음을 부정하는 정치 체제 모두다.[4] 많은 공산주의 국가 역시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들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전했다. 그 예가 바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사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공동 지배하는 사회인 만큼 이쪽도 정말 그 말대로 하면 자본가를 다 몰락시키고 나면 다 함께 노동자일 테니 민주주의가 되어야 정상이다. 공산주의 간판 걸어놓은 나라 중에 정말 그런 나라는 하나도 없었지만. [5] 흔히 공산주의가 독재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라 할 지라도, 상명하복이 전제된 민주집중제 이론과 거기에 따른 일당 계급독재 때문에 소련 등의 공산국가는 실질적으로 독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선 이런 독재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거기에서 더 진보된 모습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간단하게 축약해서 설명하자면 '너나 나나 공평하게 일한 대가를 골고루 얻어먹자는 원칙'이지만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실제 운용은 '너나 나나 공평하게 일한 대가를 국가와 직업혁명가 계층만 얻어먹자는 원칙'으로 바뀌었다.

용어의 개념 자체는 전부터 존재했으나,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밀려 비중이 얼마 없었다. 이를 주류로 만든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다.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사회민주주의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을 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해 강하게 주장한 단어이다. 요즘 들어서는 공산주의=소련 혹은 공산주의=부카니스탄이 되는 바람에 다시 사회주의란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

다만, 학파와 학자에 따라 개념이 조금씩 달라지므로 아래를 참조하며 이해하자.

2. 역사

기원은 멀리 고대 유대인들의 저서인 에세네파교도(Essenes), 플라톤의《국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교리, 중세 말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Utopia》, 근세 초 T.캄파넬라의《태양의 나라 Civitassolis》(1623) 등에서도 기원한다.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6세기 경 개신교의 소수 분파인 재세례파가 초기 기독교적인 공동생활을 추구하면서 주장한 것이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평등을 추구하며 속세적 가치를 부정하는 등의 특징을 띤다. 그러나 주류 기독교인들에 의해 재세례파가 박해당하면서 이러한 의미의 공산주의 용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8세기 들어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부활하는데, 이 때의 공산주의는 인클로저 운동에 대한 반발로 촌락 내 공동체적 소유를 지향하고 사적 소유관계를 배척하던 사람들을 지칭한다.

19세기 초에는 사회주의와 혼용되면서 사적 소유관계를 배척한다는 기본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중반에 들어서는 사회주의와 구분지어 사용하게 되는데, 소수의 엘리트가 봉기를 통해 국가권력을 직접 타도하고 국가기구를 장악하여 사회ㆍ경제적 변혁을 추구하는 사상을 뜻한다. 블랑키주의가 19세기적 의미의 공산주의라 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 이론을 확립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프랑스 혁명 시기의 정치 선동가 프랑수아노엘 바뵈프를 '최초의 공산주의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산주의라고 할 때는 19세기 중반 이전의 문헌에만 남아 있는 죽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19세기 후반 이후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킨다. 마르크스-레닌주의[6]는 184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하여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20세기 초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에서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의 체계와 실천운동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즉 공산당(共産黨)이 수립한 과거 소련·동유럽·중국·북한·인도차이나 반도 등지의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마르토프의 멘셰비키와 전략적 입장을 달리함으로써 19세기의 공산주의가 의미하는 엘리트(혁명전위)의 봉기를 중시하면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차용하게 된다. 레닌은 후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사회주의는 '각자로부터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도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공산주의는 '각자로부터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의미한다고 정리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사실상의 실권을 쥔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나라를 너무나 막장으로 다스린 탓에 민중들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무력을 동원한 진압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전황 악화가 겹치면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된다. 결국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멸망하고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 적백내전을 거쳐 마침내 세계 최초의 공인된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한다.

3.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 혁명산업혁명의 여파가 유럽의 정치와 사회에 격심한 파동을 일으킨 격동의 시대 산물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평등·의 3대 이념을 목표로 내세운 민주주의혁명으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은 반(半)봉건적 전제군주제를 전복하고 시민적 자유와 인권을 천명하는 데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천명한 자유와 인권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도화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거친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帝政)을 초래하고 말았다. 더욱이 평등의 이념은 법률 앞의 평등에 그쳤을 뿐 사회의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였으며, 실현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은 재산권의 신성을 선언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서유럽의 의식과 양심 속에 인간평등의 관념을 심어 놓았으며 그 후에 일어난 각종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에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F.바뵈프, A.블랑키, W.바이틀링 등 혁명적 공산주의자와 C.H.생시몽, 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 등 비폭력적인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프랑스 혁명의 평등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프랑스 혁명의 자유와 평등이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자기들의 조국 독일에 비하면 프랑스는 사상적으로 멀리 앞선 선진국이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반봉건적 절대주의국가인 독일에서 프랑스식 민주혁명을 수행하는 것을 실천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가 취약하고 무력하였던 독일의 상황에서, 부르주아지가 혁명의 주체는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신 프롤레타리아트(근대 노동자 계급)를 혁명의 주체로 간주하였다. 마르크스는 독일의 해방은 단순한 정치적 해방(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인간적 해방만이 독일의 완전한 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 이 인간적 해방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계급은 바로 '인간성의 완전한 상실태(喪失態)요, 그러므로 인간성의 완전한 회복에 의해서만 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되는 한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3.1. 마르크스이론의 철학적 기반

이러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은 1840년대의 전반기에 형성된 것인데, 여기에서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헤겔변증법적(辨證法的) 철학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唯物論的) 인간주의 사상이었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 해방이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모든 인간의 자기소외(自己疎外)의 극복과 계급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유재산이란 인간의 노동이 대상화(對象化)된 것, 즉 객관적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의 산물이 사유재산이 되면서, 거꾸로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노동자)을 지배하는 현상을 그는 인간의 자기소외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요컨대 그에게서 공산주의란 단순한 재산의 공동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한 인간소외의 극복, 인간성(인간의 본질)의 적극적인 회복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자극에 의하여 촉발되었지만, 동시에 헤겔과 포이어바흐 철학의 주제였던 소외의 개념을 핵심(核心)으로 하여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였다. 그는 1845∼46년 엥겔스와 더불어《독일 이데올로기 Deutsche Ideologie》를 집필, 여기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 관계와 생산력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임을 구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유물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의하여 그들은 헤겔에서 파생된 독일의 각종 관념론(觀念論)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7]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다.

물론 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였던 것이다.[8] 이들의 새로운 유물론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기계적(機械的) 유물론을 극복한 사회적 유물론[9]이었다. 역사유물론의 성립으로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그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역사유물론에 의하면 인간은 생산을 중심으로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한 시대의 생산관계는 그 시대의 생산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생산력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요인은 사회의 토대이며, 정치 제도·법률·사상·종교·문화 등은 이 경제적 토대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上部構造)이다.

3.2. 마르크스의 경제이론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라 토대가 바뀔 때는 이에 걸맞도록 상부구조도 바뀐다. 그런데 생산력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학·의 발달에 의하여 발전한다. 그 때는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에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생겨나고 이 모순은 계급관계로 이전된다. 다시 말하면 낡은 생산관계의 유지에서 이득을 보는 지배 계급과, 새로운 생산관계의 창설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피지배 계급 간에는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즉, 종래의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 내려는 사회혁명이 피지배계급측에 의하여 일어나, 마침내 새로운 생산관계(경제제도)가 창설되고, 이에 따라 정치제도를 비롯한 상부구조도 바뀐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 나타난 원시 공산주의사회(아시아적 생산양식)·고대 노예사회·중세 봉건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 등 여러 사회제도의 출현과 붕괴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사회발전의 법칙에 의거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도 이 법칙에 따라 붕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유물론은 역사의 발전에 있어서 경제적 요인을 중요시하는 데 그치는 일반적인 경제사관과는 구별된다. 역사유물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유발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에 의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파괴되며, 마침내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하는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한다는 점에 있다. 역사유물론은 이와 같이 일종의 계급투쟁사관(階級鬪爭史觀)이다.

마르크스-엥겔스가 계급투쟁사관을 더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1848년 2월 혁명 직후에 발표한《공산당 선언(共産黨宣言)》에서였다. 여기서 그들은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사회가 출현하기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부르주아 계급이 인류의 역사에서 수행한 진보적 역할을 높이 찬양하였다. 동시에 부르주아지가 이룩한 자본주의사회도 그 내재적 모순으로 발생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혁명에 의하여 붕괴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왜 붕괴하지 않을 수 없는지에 관한 경제학적 이론을 자세히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제시하기 위하여 마르크스가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자본론(資本論)》이다.[10] 여기에서 그의 소외론(疎外論)은 계승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2월 혁명이 좌절된 후 영국으로 망명, 경제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영국 고전경제학의 여러 범주를 비판하는 한편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을 기초로 잉여가치(剩餘價値)의 이론을 도출하였다. 거기에 따르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고 그 대가를 임금으로 받아서 생활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약자의 입장에 있으므로 자기의 노동력을 재생산(再生産)하는 데 필요한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한다. 이 지불받지 못하는 잉여 노동시간에 창조한 가치, 즉 잉여가치는 당연히 노동자에게 돌아와야 하는데도 자본가의 수중으로 들어가 이윤이 된다. 이윤은 곧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자유경쟁하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하지 않고서는 경쟁에 이길 수도, 살아 남을 수도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공황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 예언했다. 자본가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를 착취할수록 시장에서의 수요는 줄어든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자본가 입장에서 착취의 대상이지만, 시장에서는 소비자-즉 수요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오히려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많으므로 노동자의 구매력 감소는 자본가의 구매력 감소보다 자본주의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 자본가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시장의 수요가 감소한다는 모순적 상황은 결국 경기의 악순환인 공황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11]

여기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이해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계급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숫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계급의식으로 단결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을 일으켜 부르주아지의 정치권력을 타도하고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여, 그 힘으로 부르주아지가 사유하였던 생산수단을 사회 전체의 공유로 한다는 것이다.[12] 이러한 이론을 전면적으로 전개한 것이 1867년에 출간된 《자본론》 제1권이다.

마르크스는 생전에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엥겔스가 그의 원고를 정리하여 뒤에 출판하였다. 엥겔스는 역사유물론과 잉여가치론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고 자부하였으며, 70년대부터는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고,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선구적인 사회주의에는 과학적 이론이 없다고 하여 '공상적 사회주의'라 불렀다.

19세기 중엽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은 엄밀한 구별없이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마르크스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라고 하였다. 그는 1875년 《고타 강령(綱領) 비판》에서 계급없는 공산주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산주의를 '보다 낮은 단계'와 '보다 높은 단계'의 2단계로 구별하였다. 제1단계는 아직 초보적 단계로서 여기에서는 완전한 분배상의 평등은 실현될 수 없으며,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그리고 제1단계는 완전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로서 계급적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4. 마르크스-레닌주의

레닌은 이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였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여 수립되는 '사회주의' 정권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레닌 이래로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거부하는 사회주의는 결코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라는 용어도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 사이에서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제2단계, 즉 '보다 높은 단계'는 생산력의 높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分業)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며, 따라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일의 욕구(欲求)'로 되고,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 낭만적인 공산주의의 미래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계승한 것은 여기까지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하지 않은, 레닌 등에 의해 덧붙여진 부분도 상당히 많다. 이는 사실상 필연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몰락할 필연적인 이유'를 기술하고 그 대안으로서 나타날 공산주의를 예언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인지에 대해서나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형태를 띌 것이며 어떤 생산방식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식에 대한 내용은 전부 마르크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레닌 등이 새로 만들어낸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마르크스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부분이 생산 수단의 유화이다. 오늘날에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와 국유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정작 마르크스 본인은 국유화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소멸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경제를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13] 마르크스 본인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했으므로, 중요한 것은 노동자라는 하부구조이며 경제체계라는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규제하고 자본가의 손에서 경제적 권력을 거둬들이기 위한 수단은 국가 권력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국가 권력을 강화해서 국유화를 실행하였다.

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정당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 역시 레닌주의에 속한다. 레닌주의적 정당운영방식은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에도 정당을 민주집중제로 운영할 것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레닌주의를 생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며[14]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혁명의 과정 역시 문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무너트리라는 행동지침은 제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의 행동지침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역사가 긴 러시아의 혁명가들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것을 레닌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마르크스 본인이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마르크스는 어디까지나 혁명에 이론적 기반과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사회주의자 중에는 심지어 혁명 자체도 공산주의 본래의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은 자본주의를 무너트리려고 노력하는 혁명가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꾀하던,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고 점진적인 개량을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향은 아니다.

5. 스탈린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제정책과 정치체계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영향도 상당하다. 레닌은 혁명 이후 경제정책을 확립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레닌 사후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국가 주도하의 자급자족을 위한 중공업 중심의 공업화와 무자비할 정도로 예외없는 집단화를 실행하여 이를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표준적인 경제정책으로 확립시켰다. 또한 그는 다른 혁명 동지들에게 존경받는 친우로 받아들여지던 레닌을 무오류의 절대자로 신격화하고 사실상의 1인독재체제를 구축하여 이를 세계적으로 보급했다.

스탈린의 경제정책과 정치체제는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혹은 심지어 그 이전부터도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온 부분이다. 레닌은 말년에 신경제정책(NEP)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를 일부 수용하는 듯한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당 안팎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왔으며 레닌 스스로도 진심에서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시적인 방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레닌이 오래 살았으면 공산주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을 것이라는 주장과 레닌의 경제정책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스탈린주의 항목 참조.

6. 마오이즘

마오쩌둥 사상, 모택동 사상이라고도 한다. 마오이즘은 1920년대부터 치열한 혁명투쟁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해 정강산 유격투쟁, 강서 소비에트 임시정부 수립, 대장정, 국공합작과 항일전,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마오이즘이 등장하게 된 원인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직접 대입할 수 없는 중국의 현실이었다. 1920년대, 중국은 반(半)봉건적인 사회였으며,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발달된 자본주의에서 도시 노동자가 혁명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이론을 중국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많았을 뿐더러 사실상 반식민지 상태에 처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 달성 이전에 반식민지 상태 탈피가 우선이었다. 즉 도시 노동적를 중심으로한 공산주의 혁명 달성은 소수의 요구였으나 반식민지 상태 탈피는 대부분 중국인의 요구였다. 또한 농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자본가의 착취가 아니라 토지 소유 관계였다.[15]

마오이즘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구별되는 점은 첫 번째,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농민의 계급동맹을 중심으로 민족자본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농촌을 혁명근거지화 하여 장기간의 유격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두 번째, 인간의 인식은 생산활동·계급투쟁·과학실험 등의 실천과정에서 형성되며, 실천을 통하여 이론은 그 정확성이 검증되고 확대된다고 하여 실천을 중시하였다. 세 번째, 모든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을 확대시켜 모순을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으로 구별하고,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인민 내부의 모순을 비적대적 모순으로 규정하여 그 해결방법으로 비판·설득·사상개조·교육 등을 제시했으며, 네 번째, 자본주의사회가 전복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수립된 후에도 계급·계급적 모순·계급투쟁, 사회주의노선과 자본주의노선 간의 투쟁, 자본주의 복구의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모순은 혁명을 계속함으로써만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결정적으로 유물론이 아닌 관념론적인 사상이였다.

7. 비주류 공산주의 이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체제, 공산당일당독재가 아닌 비주류 이론을 말한다.

7.1. 좌파공산주의

로자 룩셈부르크가 창시한 공산주의로써 마르크스 이론을 거이 100% 존중하기 때문에 '보수적 공산주의'라고도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공산주의와 차이점은 일당독재나 '위에서 아래로 시키는 행위'를 혐오한다.

즉, "지도자 없는 공산주의"를 추구한다.
그렇기때문에 좌파공산주의자들은 레닌주의, 스탈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인민들 스스로가 자본이나 자원을 나누는게 아니라 국가가
나누어주기 때문

좌파공산주의는 아나키즘과 이론이 닮아있으나 전혀 다르다.

즉, 원시시대처럼 노동자, 인민들이 "스스로" 자원이나 자본을 통제하며 "똑같이" 나눠같자는 이념이다.

공산주의자 내에서도 비주류이며 아직까지 한번도 실현된 적 없다.

7.2. 아나코 공산주의


사실 아나코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라고 분류해야할지도 의문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창시하기 훨씬이전부터 존재한이념이기 때문이다. 아나코공산주의의 시초는 아일랜드 내전, 프랑스 대혁명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사실 딱히 명칭이 없던 이념에 후세에 억지로 명칭을 붙이면서 생긴 이뭐병 이라고 할 수 있다. ~~ 분배개념때문에 그렇다카더라 ~~

7.3. 트로츠키주의


레닌주의에 분파중 하나이며, 스탈린주의를 반대한다.
과거 스탈린주의 이후 공산국가들에게는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빨갱이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 동무 트로츠키주의자레? 자아비판하시오


8. 실패

8.1. 공산주의는 권위적이다???

위에 서술한 좌파공산주의와 같이 """권위없는 공산주의""", """인민들스스로 분배하는공산주의"""를 추구하는 공산주의도 있기때문에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같은 주류공산주의이론이 권위적인건 사실이지만 모든 공산주의자가 권위주의적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안된다.

9. 보충

  • 애초에 자본주의사회주의든 무오류의 완벽한 체제는 없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역사의 최종 발전 단계라고 보았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해서 볼 때, 공산주의도 마르크스가 몰랐던 문제점을 내포해서 공산주의 사회도 붕괴하고 다음 단계의 새로운 사회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다음 단계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일 수도 있다.

  • 대한민국에서는 건국 직후를 제외하면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조차도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모토로 내세운 경우는 없었다.[16]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론 등으로 많이 대체되기도 했고, 반공 정서 문제로 정치적 지지를 받기도 힘들며, 현실적으로는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날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있다. 공산주의를 대놓고 표방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의 노동운동단체 활동가가 2008년 국보법으로 잡혀들어간 일은 뉴스화되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안세계화 등의 용어로 바꾸지 않고 공산주의를 직접 이야기하는 학생운동조직들도 어렵긴 마찬가진데, 사실 2000년대 후반에는 거의 와해되어 찾아보기 힘들다.


소련식 공산주의 한줄 요약. 야! 신난다~
외국 대학도 다를 건 없다.

  • 공산주의가 아직까지도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라면 인도케랄라 주가 있다. 케랄라 주는 1957년 이후로 50년이 넘도록 공산당이 여당이었던 곳으로, 청년들이 낫과 망치 깃발을 대놓고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성금을 걷는 등 반공 교육을 받고 자라온 한국인이 이곳을 보면 경악할 만한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카스트 제도와 여성 살해 악습이 아직까지 곳곳에 남아있는 상황인데다가 인도자체가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다 보니 내부 견제도 잘되어[17] 아러한 장점이 잘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인도 전체적으로 보면 공산당은 매우 진보적이라서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여성 지참금 및 여성 살해를 가장 엄격하게 처벌하고 반대한다. 애초에 고대 노예제도가 19세기 말엽에 나온 사상에 상대가 될 리가 없잖아

  • 아이러니한 점으로 ,19~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한 혁명가 중에는 그들이 그토록 타도를 외쳤던 대상인 지식인-중산층 출신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르크스엥겔스부터 각각 프리랜서 자유기고가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다와 공장주였으며,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중산층 교육자 집안 출신인 변호사였다. 쿠바 혁명의 주도자들인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는 각각 변호사와 의사, 베트남의 호찌민은 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었고 중국의 마오쩌둥저우언라이는 각각 창사사범학교와 황푸군관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심지어 극단적인 부르주아지 숙청을 주장한 캄보디아폴 포트 조차 본인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10. 오해

공산주의는 냉전으로 인해,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으로 인해서 공산주의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과 오해가 자라났고 지금도 이런 오해는 여전히 남아 있다.

10.1. 공산주의는 개인이 재산을 가질 권리를 박탈한다?

현실사회주의, 예컨대 소련 체제는 개인에게 재산 소유와 양도, 상속을 실질적으로 보장한 체제였으며, 심지어는 부동산까지도 획득, 거래, 양도의 대상으로 사실상 허용하였음이 최신 연구들[18]을 통해서도 확정된 상태이다. 그에 반해 생산수단(Die Produktionsmittel)은 대체로 공공의 소유물로 전환되었음이 맞다. 생산수단은 좁은 의미로는 노동력을 투여해서 인간이 원하는 노동 생산품으로 전환되는 재료들인 노동 대상(Die Arbeitsgegenstände)과 도구나 기계 등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가 사용하여 노동 대상을 노동 생산물로 전환하게 하는 노동 수단(Die Arbeitsmittel)을 가리킨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생산 행위를 가능케 하는 모든 물적 기반을 가리키기에, 자본금과 그 자본에 얽매인 작업 공간, 원자재, 작업 수단, 운송 수단 일체를 포괄하는 개념이 된다.

물론 소련 성립 이후 암시장의 존재는 단 한번도 제거되지 않았기에 소규모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거래(특히 농산물 분야)는 줄곧 기능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실제로 노동을 담당하는 자가 분리된 채 오로지 이윤 증산만을 목표로 하는 무정부적인 경쟁 체제로 굴절되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폐지함은 공산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조건.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농민 소유의 토지 역시 생산수단의 하나로 상정, 강압적인 집산화 정책을 실시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마찬가지로 투기를 가능케 하는 일체의 거래 행위, 즉 주식,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 점유, 고리대금업, 광고 등의 행위들도 비슷한 논리로 억압되었다. 정리를 하면, 소련은 개인 재산(личная собственность, personal property)은 보장했지만, 자본주의 생산과 투기를 가능케 하는 사유 재산(частная собственность, private property)은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의 대중은 개인 재산을 획득하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내가 돈을 벌었는데 마땅히 쓸 데가 없다"는 성토를 했다는 점. 이를테면 소련, 동독 등은 중공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발판으로 자금줄을 불린 뒤 이를 최소한도의 복지를 가능케 하는 주거, 의료, 식료품 등을 보장하는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최소한의 복지를 넘어서 좀더 다원적이고 고품격적인 소비를 원하는 대중의 욕구는 커져만 가는데, 현실사회주의 경제가 내놓은 생산품들은 양과 질에서 이런 요구 조건을 전혀 충족 시키지 못했다. 소련, 동독 등의 대중은 당 관료가 많이 벌고 재산을 불려서 부패한 놈들이라고 분노하기 보다는, 당 관료들이 고급 상품이나 해외 수입품들을 구매할 수 있던 접근할 수 있는 특권에 더 분노했다.[19]

10.2. 공산주의는 지도자를 우상화한다?

북한주체사상으로 이런 을 신처럼 떠받치다보니 공산주의는 무조건 지도자를 숭배한다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공산국가의 지도자 우상화는 멀쩡한 유럽 공산국가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어왔다. 적어도 소련스탈린에 대한 숭배는 있긴했으나 정작 북한같이 아예 세습하지도 않았고 이에 스탈린 사후에는 부정되었다. 중국문화대혁명기때 마오쩌둥을 우상화한 적은 있으나 마오가 사망한 뒤에는 여전히 국부로 여기되 우상화까지는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상화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카를 마르크스를 광적으로 추종한 탓에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교조적 성향이 강하며, 이는 사회주의 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치질을 학문의 세계까지 끌어들이다보니 생겨난 부작용으로, 이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을 재해석하려 하는 고학적 태도가 강해진다.

사실 공산주의가 지도자를 우상화하는건 아니지만, 우상화될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정부가 막강한 권력으로 철저하게 통제,분배하는 제도다보니 지도자의 역량의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너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보니 북한처럼 잘못된 지도자 만나면 혼자서 나라 거덜낼 수도 있을 정도니까, 따라서 공산주의 국가의 나라가 부강해지면 이건 지도자의 덕이라며 숭배할 개연성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과거 북한주민들이 쌀밥을 먹으며 '김일성 수령님의 은혜'라고 하듯이 말이다.

10.3. 인민 = 공산주의 나라 사람?

인민 항목 참고.

10.4. 공산주의자는 종교 반대론자?

북한에서 관제 종교활동만을 제외한 종교 자체가 금지되어있고, 중국도 완화되긴하지만 종교에 대한 제한이 있다보니 공산주의자가 종교를 혐오한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다른 공산국가에서도 종교에 대한 감시는 있었긴 했지만 사실 체제유지만 잘되는 선에서 종교를 믿되 밖으로 퍼트리고 다니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터치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도, 궁극적으로 종교 그 자체보다는 종교라는 아편을 빨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종교인이면서도 공산주의적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간단한 반례도 있다.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에서 자란 실뱅 사부아의 이야기를 그린 마르지를 보면 성당에서 기도도 하고 세례도 잘만 받는다. 원래 폴란드도 스탈린주의파가 한창 집권했을때 종교를 탄압했으나 고무우카가 집권하고나서부터는 가톨릭에 대해 어느정도 용인하게 되었다. 또 남예멘어서도 원칙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임을 표방했지만 국교를 이슬람교로 정한 에도 있다.

10.5. 공산주의는 폭력적이다?

윗동네에서 하도 협박질을 해대다보니 공산주의가 폭력적인 이념이라는 생각이 들 건데 일단 어느 정도 맞긴 하다. 마르크스인민노동자를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을 타파해야하는데, 평화적으로 나서봐야 그 지배계급이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국가가 폭력으로 응수할게 뻔하니 어쩔 수 없이 똑같이 폭력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는 "무장투쟁론"을 주장했다.

일단 이런 무장투쟁은 지배계급을 뒤집어 엎기 위한 계획일 뿐이지, 공산정권 성립 이후 인민을 억압하는데 쓰라는게 절대 아니다. 그러나 '반동계급','적대계급'은 그 특성상 무한히 확장되는 경향이 있고, 적에 대한 폭력 사용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대중에 대해서 무제한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대부분 공산주의를 한답시고 표방했던 국가가 이전의 폭력정권을 뒤엎더니 자기들도 인민을 억압하는 폭력정권이 되어버리는 모순이 생겼었다.

10.6. 공산주의자 = 종북주의자?

공산주의를 긍정하는 사람을 무조건 종북주의자로 모는 경우도 많은데, 이미 북한은 공산주의를 버린지 오래되었고[20] 현재는 영락없는 김씨일가의 군국주의 독재 체제다. 90년대 이전까지는 공산주의자가 종북으로 이행되는 것은 사실이였으나 지금 현존하는 종북주의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식 보다 민족의식이 앞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공산주의의 "공"자도 찾아볼 수 없다.물론 주의는 찾을 수 있다

2009년 헌법개정 이후로 현재까지 북한의 기본 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이는 간단히 풀어쓰면 제정일치 왕권신수설이다. 보다 더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동물농장 현실판으로 보면 된다. 한마디로 공산주의 만큼의 복잡한 이념도 뭣도 없이 새겨둘게 김씨 왕조에게 개기면 죽으니까 잘 섬겨라밖에 없는, 원초적인 전근대적 사상으로 의식이 퇴보한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창시한 진짜 공산주의 사상은 현재 북한에서 금지되어 있으므로 북한은 칼 마르크스의 저서를 금지시킨 1970년대 이후부턴 사실상 그냥 전제왕권 국가로 돌아섰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10.7.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문물을 차단한다?

알다시피 북한은 현재 자본주의 문물은 물론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문물마저도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공산주의 국가 사람들은 자본주의 문물을 아예 못 접해봤을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역시도 틀렸다.

냉전 당시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정식으로 들여오는 것을 금지했을 뿐이지 사실 80년대까지의 한국 용산에서 잡물건을 팔듯 잡상인들이 암시장에서 자본주의 문물을 팔아도 정부에 대들지 않고 위협이 될 요소가 아니면 보안 기관도 어느정도 넘어가준 편이였다. 대표적으로 동독도 암시장에서는 얼마든지 록음악 같은 자본주의 문물을 구할 수 있었다.

소련스탈린 사후에는 몰래몰래 자본주의 문물이 스며왔다. 빅토르 최1970년대에 이미 록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사례를 보자. 중국마오쩌둥 사후에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암시장 같은 곳에서 자본주의 문물의 밀거래가 있긴 했다. 물론 이 점은 소련과 중국이 점점 미국과 평화공존으로 들어선 점도 있다. 따라서 두 국가가 개혁개방으로 마치 보물단지 쏟아지듯 들어온게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이미 개혁개방의 준비가 된 것이다. 물론 소련은 너무 급하게 개혁하다보니 무너졌지만.

반면에 북한은 아직도 너무 철저한 감시 때문에 자본주의 문물을 접하려면 아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여기도 물론 돈 있으면 그런거 없다지만 잘못 걸려들면 피보든 건 매한가지.

10.8. 냉전때 공산진영에 대적한 나라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다? or 공산주의의 반의어는 자유민주주의다?

반공 항목도 함께 참고 해보는 것도 좋다. 흔히 공산국가하면 통제가 심하고 툭하면 잡아가는 독재로 생각하기에 반공을 내세우던 나라들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깨끗한 나라란 생각을 하겠지만 정말로 그럴까? 멀리갈 것도 없이 한국의 이랬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이 시절이 과연 자유롭고 정의로웠을까? 또한 같은 반공국가였던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를바 없이 장제스 치하의 막장 독재였다. 유럽반공국가들 중에서 그리스도 멀쩡한 노래를 "빨갱이 노래"라며 멋대로 잡아갈 정도로 반공군사독재였고, 스페인도 프랑코 집권시절에 반공을 주창하면서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일을 벌였다.

민주주의의 근원지라던 미국냉전때는 예외가 아니였다! 조지프 매카시 또는 매카시즘 참고. 매카시가 있을때의 미국도 안보를 핑계삼아서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인민재판을 연게 한두번이 아니였다. 따라서 냉전때는 자본주의 진영이나 공산주의 진영이나 둘다 다를 바 없던 혼란의 시기였다.

다만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진영에서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진영에 비해 정치활동 및 사회적 활동에 더욱 심한 제약을 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공산주의 체제 특유의 교조적 매커니즘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모든 이념의 궁극적인 도달점이자 종착지라고 정의되었다. 그에 따라 체제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었으며, 언론은 관영화되어 자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 및 견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 대부분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진영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이상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종국엔 오히려 체제의 모순을 견디지 못해 자유를 요구하는 인민들을 총칼로 억압하는 개막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처절하게 몰락했다. 물론 이는 당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자유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국가들에서도 일어났던 일들이지만, 대체적으로 체제 그 자체에서 독재를 담보하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그 빈도가 훨씬 잦았다는 것은 단순히 양비론적적인 입장에서 당시 시대상에 그 책임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반댓말은 아니지만, 공산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실행 방안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주장한다. 따라서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회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에 따라, 차별없이 모든 대중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11. 관련항목


11.2.1. 현재 사라진 공산주의 국가

11.2.2. 현재는 공산주의를 포기한 국가

12.2. 농담삼아 같이 회자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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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인데, 사실 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일종의 추상적인 대전제이지 구체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간파하는데 주력했지 공상적 사회주의자처럼 이상적인 사회를 말한적이 없다. 살짝 언급되는 내용(낮에는 일하면서 ~ 밤에는 비평가가 되기도 하는 구절) 이것이 주가 아니며 언급하는 내용마저 상당히 추상적이다. 이 것이 마르크스의 공백이라고 일컬어 지는 것이며, 그 이후 어떤 대안을 찾는지에 따라서 여러 분파로 갈려지는 것이다.
  • [2] 일부는 공산주의를 표방한 국가를 실상은 '국가 자본주의'를 채택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간주하기도 했고, 일부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인데, 사회주의 단계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공산국가란 현재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 [3] 군주정과 독재가 상당 부분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군주정은 '군주를 선출하는 정치 체제'를 말하는 반면 독재는 '지배 계급에 대한 견제가 용납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군주정이면서 독재가 아닌 예도 많고, 독재면서 군주정이 아닌 예도 많다.
  • [4]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정치적, 공산주의는 경제적 차원의 용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정부를 부정하고 이 부분은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을 동일선상에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수정 요망, 그런 사회를 지양하는 점에서 정치적 차원의 용어도 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반대가 되는 경제 개념은 국가가 주도로 시장에 개입하여 부를 분배한다는 사회주의다.
  • [5] 다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연립정권에 참여해서 집권한 예는 '''있기는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프랑스 공산당, 네팔 공산당, 인도 공산당 키프로스 노동자 진보당, 몰도바 공산당, 인도 공산당
  • [6] 정작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본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소련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명칭으로 스탈린주의가 퍼져나갔기 때문.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유사한 지점도 무수히 많다. 특히 특유의 경제주의는 사회에 끼친 해악이 크다.
  • [7]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잘 드러난다. A4 두어 쪽밖에 안 하는 글이므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어보자. 특히 마지막 11번 테제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캐간지 명문이다.
  • [8] 단, 마르크스는 이후의 연구들에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의식하려 노력하면서도, 결국 개인별로 원자화시켜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기계론적 러다임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 [9] 후에 레닌에 의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려진다
  • [10] 'Das Kapital'은 '자본'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으나 국내에서 '자본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일러만 두고 수정하지는 않는다.
  • [11] 그런데, 상품은 넘쳐나는 데 노동자는 굶고, 자본가는 팔 데가 없는 상황은 대공황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래서 케인스주의자가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 [12] 그러니까, 1) 노동 계급이 충분히 원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서 자원을 두고 서로 쟁탈하지 않게 되거나(하면 계급분화가 되니까), 2) 자원쟁탈의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 즉, 원숙한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최대한 발전시켜 일하고 싶은 놈 일하고 놀고 싶은 놈 놀면서 각자의 욕망만큼 가져가도 분쟁이 없을 만큼 인간이 욕구하는 모든 자원이 풍족한 세상과 그런 세상을 유지할 생산수단을 낳고 자본가는 사라져주는 시대.
  • [13] 일단 이 이론에 완전히 어긋나지 않도록, 소련은 형식상으로는 '소비에트'의 연합이며 국가가 아니었다.
  • [14] 민주집중제라는 말에는 '레닌주의적 정당체계' 혹은 '레닌주의의 전반적인 내용' 이외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를 거론한 정치인들이 어떤 측면에서건 레닌주의적 정책을 추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 [15] 지주와 소작농 관계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와 같다고 이해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노동자는 공장을 소유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 필요-특히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면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 필요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같이 농민이 집단화에 크게 반발한 이유는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옷 공장을 가진 자와 자신의 농지를 가진 농민을 비교해보자. 옷 공장을 가진 자는 공장에서 생산된 옷을 팔지 못하고 다른 물건으로 교환도 하지 못한다면 옷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그는 식량을 얻지 못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민은 자신의 땅에 먹을 것을 심으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다.
  • [16] 다만 이는 정치권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소련 붕괴 시점까지는 내기가 사회과학 동아리에 들어오면 이 항목의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서를 읽으며 이론을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코스가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급변하는 세상에 충격은 받았지만 길은 잘못되지 않았고 이상은 건재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던 시절. 마침 노태우 정부 이후부터 출판이 허용되어 여러 가지가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의외로 이 바닥에서는, '공산주의'라고 하면 유토피아적 향수를 자극하는 이상적인 의미가 있다. 종북이니 북한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과 다르게 보이는(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이는) 순수한 이미지.
  • [17] 다만 1977년 총선에서 연립정권 형태로 집권하기는 했다. 몇 년 못가긴 했지만.
  • [18] Mark B. Smith, Property of Communists, Illinois, 2010.
  • [19] Stephan Merl, Staat und Konsum in der Zentralverwaltungswirtschaft, in: Hannes Siegrist, 외(편), Europäische Konsumgeschichte, Frankfurt, 1997, 205~241쪽.
  • [20] 심지어 최근의 헌법개정에서는 '사회주의'마저도 삭제해버렸다.
  • [21] 사실 여기 나와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사실상 자본주의이며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쿠바 정도인데 그마저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 [22] 중국 정부는 공산국가라고 우기지만 사실상 자본주의국가이다. 공산당이 독재하므로 공산국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공산주의는 정치체계가 아니라 경제체계이므로 에러.그럼 민주당이 독재하면 민주주의냐 이거?
  • [23] 여기도 중국처럼 정치체계만 공산당 집단지도체제 이고, 배급제와 집단생산은 이머이(쇄신)의 도입과 함께 포기했다.
  • [24] 러시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몰도바,벨라루스,조지아,우크라이나,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총 15개국 1991년 해체
  • [25] 1972년 ~ 1993년까지 공산정권이 수립됨.
  • [26] 근데 그 이전부터 껍데기만 공산국가이기는 했다. 2009년에 본색을 드러낸 것일 뿐.
  • [27]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총 6개국
  • [28] 1978년 좌익 군부 쿠데타로 공산당 1당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독재정권의 특성상 이슬람 전통이 깊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산정권은 지지를 받지 못해 곳곳에서 공산당 정권의 통치를 거부하는 반란군 군벌 게릴라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할거하면서 내전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소련군 보호 아래 겨우겨우 버티다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소련군 철수 이후 소련의 지원 하에 겨우겨우 버티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지원줄마져 끓어져 이듬해인 1992년 4월 붕괴되었다.
  • [29] 원래 왕정국가였으나 1975년 쿠데타로 공산정권이 수립됨.
  • [30] 1993년 1월 1일자로 체코슬로바키아로 분할.
  • [31]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와는 별개의 국가이다.
  • [32] 1889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광범위하게 발전해 온 사회주의 운동을 배경으로 성립한 국제 기구로 노동절, 성의 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을 일으켰다. 참조.